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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history_시즌2

[역사란 무엇인가_시즌2] 7월 18일(목)_162p~168(90+6*18)p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8.18|조회수43 목록 댓글 0

Chapter 4_31_162p Causation in History

At this juncture, it is time for me to confess to a rather shabby trick which I have played on you, though, since you will have had no difficulty in seeing through it, and since it has enabled me on several occasions to shorten and simplify what I had to say, you will perhaps have been indulgent enough to treat it as a convenient piece of shorthand. I have hitherto consistently used the conventional phrase 'past and present'. But, as we all know, the present has no more than a notional existence as an imaginary dividing line between the past and the future. In speaking of the present, I have already smuggled another time dimension into the argument. It would, I think, be easy to show that, since past and future are part of the same time-span, interest in the past and interest in the future are interconnected. 이 시점에서는 나는 고백하고자 한다. 약간 보잘것없는 속임수를. 여러분들에게 사용한 속임수. 당신들은 이 속임수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으리라 본다. 이 속임수는 나로 하여금 여러 상황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짧고 간결하게 말하고자 하는 데 도움을 주어 왔다. 그리고 당신들도 충분히 즐겼으리라 본다. 그것을 간편화를 위한 편리한 도구로. 나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과거와 현재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듯이 현재는 단지 개념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를 나누는 가상의 선에 불과하다. 현재를 말하면서, 나는 현재와는 다른 차원의 시간대를 나의 논의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는 같은 시간대의 일부분이므로 과거에 대한 관심과 미래에 대한 관심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The line of demarcation between prehistoric and historical times is crossed when people cease to live only in the present, and become consciously interested both in their past and in their future. History begins with the handing down of tradition; and tradition means the carrying of the habits and lessons of the past into the future. Records of the past begin to be kept for the benefit of future generations.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구분선은 그어진다. 우리가 살기를 멈출 때 오직 현재에 살기만을 멈출 때, 그리고 의식적으로 사람들이 과거와 미래에 관심을 가지게 될 때. 역사는 전통의 계승으로 시작한다. 전통은 전달을 의미한다. 습관과 교훈들을 과거의 습관들과 교훈들을 미래로. 과거의 기록들은 보존되기 시작한다. 미래 세대들을 위해서.

 

Chapter 4_32_163p Causation in History

'Historical thinking,', writes the Dutch historian Huizinga, 'is always teleological.' Sir Charles Snow recently wrote of Rutherford that 'like all scientists ... he had, almost without thinking what it meant, the future in his bones'." Good historians, I suspect, whether they think about it or not, have the future in their bones. Besides the question 'Why? is the historian also asks the question 'Whither?' 역사적 사고는 언제나 목적론적이다. 라고 네덜란드 역사가 호이징거는 썼다. 찰스 스노우경은 최근 썼다. 러더포드에 대해. 다른 모든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로 미래를 깊이 느끼고 있었다. 좋은 역사가들은 내가 생각하기엔 그들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미래를 느끼는 법이다. 역사가는 ‘왜’라는 질문 외에 ‘어디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Chapter 5 History as Progress

Chapter 5_1_166p History as Progress

LET me begin by quoting a passage from Professor Powicke's inaugural lecture as Regius Professor in Modern History in Oxford thirty years ago: The craving for an interpretation of history is so deep-rooted that, unless we have a constructive outlook over the past, we are drawn either to mysticism or to cynicism. 'Mysticism' will, I think, stand for the view that the meaning of history lies somewhere outside history, in the realms of theology or eschatology - the view of such writers as Berdyaev or Niebuhr or Toynbee. 'Cynicism' stands for the view, examples of which I have several times quoted, that history has no meaning, or a multiplicity of equally valid or invalid meanings, or the meaning which we arbitrarily choose to give to it. 한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포익크 교수의 취임사 문장이다. 그는 30년 전(1931년) 옥스포드 대학의 현대사 흠정 교수의 취임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 해석에 대한 열망은 너무나 깊이 뿌리 박혀있어서 우리는 과거에 대한 건설적인 전망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는 신비주의나 냉소주의로 끌려가기 쉽다. 신비주의는 내가 생각하기에 아래와 같은 의견을 나타낸다. 역사의 의미는 역사밖에 있다. 신학이나 종말론 같은 분야에. 그런 저자들 중에는 Berdyaev 또는 ‘니부어’나 ‘토인비’가 있다. 냉소주의는 아래와 같은 의견들을 나타낸다. 내가 여러 번 인용한 적이 있듯이. 역사는 의미가 없다. 또는 다수의 똑같이 유효한 또는 똑같이 유효하지 않은 의미들로 해석된다. 우리가 마음대로 그것을 선택하는 것에 의존한다.

 

Chapter 5_2_167p History as Progress

These are perhaps the two most popular views of history today. But I shall unhesitatingly reject both of them. This leaves us with that odd, but suggestive, phrase 'a constructive outlook over the past'. Having no way of knowing what was in Professor Powicke's mind when he used the phrase, I shall attempt to read my own interpretation into it. Like the ancient civilizations of Asia, the classical civilization of Greece and Rome was basically unhistorical. As we have already seen, Herodotus as the father of history had few children; and the writers of classical antiquity were on the whole as little concerned with the future as with the past. Thucydides believed that nothing significant had happened in time before the events which he described, and that nothing significant was likely to happen thereafter. Lucretius deduced man's indifference to the future from his indifference to the past: Consider how that past ages of eternal time before our birth were no concern of ours. This is a mirror which nature holds up to us of future time after our death.' 이것들은 아마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역사에 관한 견해들이다. 그러나 나는 주저 없이 그들 모두 거부한다. 그러면 우리는 약간 이상하지만 약간 암시적인 ‘건설적인 전망’이라는 것이 남는다. 과거에 대한 건설적인 전망. 알 길이 없기에. 포익 교수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이 표현을 사용했을 때, 나는 내 나름대로 해석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과거 아시아 문명들과 같이 그리스, 로마의 고전적인 문명은 비역사적이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헤르도투스는 역사의 아버지이지만 거의 그의 후예들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고전 시대의 저술가들은 대체로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투키디데스는 믿었다.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가 사건을 기술할 그 당시 전에는. 그리고 아무 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 이후에라도. 루크레디스는 유추했다.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무관심을 과거에 대한 무관심으로부터. 고려해 보라. 우리의 출생 전의 영원한 과거의 시대들은 우리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리고 거울이다. 자연이 우리의 죽음 후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Chapter 5_3_168p History as Progress

Poetic visions of a brighter future took the form of visions of a return to a golden age of the past-a cyclical view which assimilated the processes of history to the processes of nature. History was not going anywhere: because there was no sense of the past, there was equally no sense of the future. Only Virgil, who in his fourth eclogue had given the classical picture of a return to the golden age, was inspired in the Aeneid momentarily to break through the cyclical conception: 'Imperium sine fine dedi' was a most unclassical thought, which later earned Virgil recognition as a quasi-Christian prophet. It was the Jews, and after them the Christians, who introduced an entirely new element by postulating a goal towards which the historical process is moving-the teleological view of history. History thus acquired a meaning and purpose, but at the expense of losing its secular character. The attainment of the goal of history would automatically mean the end of history: history itself became a theocracy. This was the medieval view of history. The Renaissance restored the classical view of an anthropocentric world and of the primacy of reason, but for the pessimistic classical view of the future substituted an optimistic view derived from the Jewish-Christian tradition. Time, which had once been hostile and corroding, now became friendly and creative: contrast Horace's 'Damnosa quid non imminuit dies? with Bacon's 'Veritas temporis filia'. 더 밝은 미래에 대한 시적인 버젼 형태를 띤다. 과거의 황금시대로의 회귀를. 이것은 순환론적인 견해다. 역사의 과정을 자연의 과정과 유사하다고 보는. 역사는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왜냐하면 과거에 대한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의식도 없었다. 오직 베르길리우스만이 그의 목가 제 4편에서 고전상을 보여줬다. 황금시대의 복귀라는. 그리고 그는 아에네이드에서 잠시나마 고전적인 개념을 탈출하려는 것에 조금 고무되었다. ‘나 끝없는 영토를 남겨 주었노라’는 라는 말은 가장 비고전적이다. 후에 베르길리우스는 반기독교 예언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유대인들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기독도인들이 있다. 완전히 새로운 요소를 도입했던 사람들은. 목표를 설정했다. 역사적 과정이 나아가고 있는 목표를 설정했다. 즉 역사의 목적론적인 견해이다. 역사는 그러므로 의미와 목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희생으로 세속적 성격을 잃게 되었다. 역사적 목표의 달성은 자동적으로 역사의 끝을 의미한다. 역사는 그 자체로 theocracy이 되었다. 이것은 중세 사관이었다. 르네상스는 고전적인 견해를 복구했다.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그리고 이성의 우위를. 그러나 비관적인 고전 미래관은 대체했다. 낙관주의 시간은 한 때 적대적이고 침식적이었다. 그러나 이젠 친근하고 창조적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망하지 아니할 것이 무엇이냐?’ 라는 호라티우스의 말과 ‘진리는 시간의 딸이다’라는 베이컨의 말을 비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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