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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history_시즌2

[역사란 무엇인가_시즌2] 90~96(60+6*6)p_9월 6일(화)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9.06|조회수24 목록 댓글 0

 

Chapter 3_7_90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is description equally fits the historian, who has abandoned the search for basic laws, and is content to inquire how things work. The status of the hypotheses used by the historian in the process of his inquiry seems remarkably similar to that of the hypotheses used by the scientist. Take, for example, Max Weber's famous diagnosis of a relation between Protestantism and capitalism. Nobody today would call this a law, though it might have been hailed as such in an earlier period. It is a hypothesis which, though modified to some extent in the course of the inquiries which it inspired, has beyond doubt enlarged our understanding of both these movements. Or take a statement like that of Marx: 'The hand-mill gives us a society with a feudal lord; the steam-mill gives us a society with an industrial capitalist.'' This is not in modern terminology a law, though Marx would probably have claimed it as such, but a fruitful hypothesis pointing the way to further inquiry and fresh understanding. Such hypotheses are indispensable tools of thought. The well-known German economist of the early 1900s, Werner Sombart, confessed to a 'troubled feeling' which overtook those who had abandoned Marxism. 이와 같은 서술은 똑같이 역사가들에게 맞아 떨어진다. 이 역사가는 기본적인 법칙들을 찾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탐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가설들의 지위, 역사가에 의해 사용되는 가설들의 지위는 그의 탐구 과정이다. 그리고 이 가설들은 과학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가설들과 눈에 띌 정도로 유사하다. 예들 들어보자. 막스 베버의 유명한 진단,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의 관계라는 유명한 진다. 오늘날 아무도 이것을 법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전시대에는 법칙이라고 환호 받았다. 가설이다. 약간의 변형이 가해졌지만, 탐구 과정에 이 가설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의 이해를 넓혀줬다. 이 운동의 이해를 위한. 또는 마르크스가 말한 것을 예를 들어보자. 방앗간은 봉건 사회를 가져왔고, 증기기관차는 근대 자본가를 가지는 사회를 가져왔다. 이것은 근대적인 용어로 법칙이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법칙이라고 주장했고, 이것은 풍성한 가설을 낳았다. 어떤 길을 가리키는 가설로서, 더 많은 탐구와 신선한 이해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 그러한 가설들은 사고를 위한 필수적인 툴이다. 잘 알려진 독일 경제학자, 1900년대 초의, 바그너 솜바르트는 고백했다. 혼란스런 감정을, 덮쳐온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덮쳐온 사람들의 혼란스런 감정을 고백했다.

 

Chapter 3_8_91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When [he wrote] we lose the comfortable formulas that have hitherto been our guides amid the complexities of existence. . . we feel like drowning in the ocean of facts until we find a new foothold or learn to swim." The controversy about periodization in history falls into this category. The division of history into periods is not a fact, but a necessary hypothesis or tool of thought, valid in so far as it is illuminating, and dependent for its validity on interpretation. Historians who differ on the question when the Middle Ages ended differ in their interpretation of certain events. The question is not a question of fact; but it is also not meaningless. The division of history into geographical sectors is equally not a fact, but a hypothesis: to speak of European history may be a valid and fruitful hypothesis in some contexts, misleading and mischievous in others. Most historians assume that Russia is part of Europe; some passionately deny it. The bias of the historian can be judged by the hypothesis which he adopts. 그는 썼다. 우리가 편리한 공식들을 잃어 버렸을 때, 지금까지 우리의 안내자였다. 현실의 복잡성 속에서, 우리는 허우적거림을 느낀다. 바다에서, 사실의 바다에서 우리가 새로운 발판을 찾을 때까지 또는 수영을 배울 때까지. 역사에서 시대 구분에 관한 논란은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역사를 시기에 따라 나누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필요한 가설 또는 생각의 도구이다. 그러나 유효하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해 주는 한. 그리고 어느 정도는 해석의 문제에 의존한다. 역사가들, 중세가 언제 끝났는가에 대한 질문에 다르게 대답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건들의 해석에도 다르게 해석한다. 문제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 없지도 않다. 역사를 지역으로 분할해서 접근하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가설이다. 유럽 역사를 이야기 할 때 어떤 맥락에서는 유효하고 풍성한 결과를 낳는다. 어떤 맥락에서는 오도되기 쉽고 해를 끼친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소련은 유럽의 일부분이라고 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강력하게 부정한다. 역사가의 경향은 그가 도입하는 가정에 결정된다.

 

Chapter 3_9_92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I must quote one general pronouncement on the methods of social science, since it comes from a great social scientist who was trained as a physical scientist. Georges Sorel, who practised as an engineer before he began in his forties to write about the problems of society, emphasized the need to isolate particular elements in a situation even at the risk of over-simplifying: ‘One should proceed [he wrote] by feeling one's way; one should try out probable and partial hypotheses, and be satisfied with provisional approximations so as always to leave the door open to progressive correction.’ This is a far cry from the nineteenth century, when scientists, and historians like Acton, looked forward to one day establishing, through the accumulation of well-attested facts, a comprehensive body of knowledge which would settle all disputed issues once for all. Nowadays both scientists and historians entertain the more modest hope of advancing progressively from one fragmentary hypothesis to another, isolating their facts through the medium of their interpretations, and testing their interpretations by the facts; and ways in which they go about it do not seem to me essentially different. In my first lecture I quoted a remark of Professor Barraclough that history was 'not factual at all, but a series of accepted judgments'. 나는 하나의 일반적인 선언문을 인용해야 한다. 사회과학의 방법들에 대한, 왜냐하면 그것은 위대한 사회과학자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는 처음에는 물리 과학자로 훈련받았었다. 조지 소렐, 첨에는 엔지니어로 훈련받았다. 그가 40대에 사회 문제들에 관해 글을 쓰기 전에는, 그는 강조했다 필요성을, 특정한 요소들을 분리해 내 필요성에 대해, 물론 과잉 단순화의 위험성은 있지만.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우리 자신의 방법을 느끼면서, 우리는 시도해야 한다. 있을 듯한, 일부의 가정들을 시도해야 한다. 잠정적인 근사치들에 만족하면서, 그래서 언제나 문을 남겨 놓아야 한다. 열어 둔 채로 진보적인 수정에 대해 오픈하는 자세로 문을 열어 놔야 한다. 이것은 19세기에는 거리가 먼 외침이다. 19세기의 과학자들과 액튼같은 역사가들은 기대했다. 언젠가는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잘 증명된 사실들의 축적을 통해서, 그리고 광범위한 지식들의 총체를 가지고,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한 번에 논란이 된 모든 이슈들을 해결할 것이라고. 요즘은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즐긴다. 더 소박한 희망을 진보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지만, 하나의 가정으로부터 다른 가정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사실들을 분리해 낸다. 그들의 해석들을 매개로, 그리고 그들의 해석들을 테스트한다. 사실들을 가지고,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들이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1장에서 인용했다. 바라클라우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을, 역사는 전혀 사실들만이 아니라 일련의 받아들여진 판단들이다.

 

Chapter 3_10_93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While I was preparing these lectures, a physicist from this university, in a B.B.C. broadcast, defined a scientific truth as 'a statement which has been publicly accepted by the experts'." Neither of these formulas is entirely satisfactory - for reasons which will appear when I come to discuss the question of objectivity. But it was striking to find a historian and a physicist independently formulating the same problem in almost exactly the same words. Analogies are, however, a notorious trap for the unwary: and I want to consider respectfully the arguments for believing that, great as are the differences between the mathematical and the natural sciences, or between different sciences within these categories, a fundamental distinction can be drawn between these sciences and history, and that this distinction makes it misleading to call history-and perhaps also the other so-called social sciences-by the name of science.These objections-some of them more convincing than others-are in brief: (1)that history deals exclusively with the unique, science with the general; (2)that history teaches no lessons; (3)that history is unable to predict; (4)that history is necessarily subjective, since man is observing himself; and (5)that history, unlike science, involves issues of religion and morality. I will try to examine each of these points in turn. 내가 이 강의들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에 이 대학의 물리학자는 BBC에서 과학적 진리를 정의했다. 공개적으로 받아들여진 진술들이라고, 전문가들에 의해. 이 공식들 중 어느 것도 완전히는 만족스럽지 않다. 내가 객관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논의 할 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역사가와 물리학자가 독립적으로 같은 문제를 거의 정확한 단어들로 공식화한다는 것이. 하지만 비유는 조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악명 높은 함정이 된다. 나는 아래와 같은 주장들에 대해 각각 살펴보고자 한다. 수학적인 것과 자연과학적인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다른 과학들에서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근본적인 차별이 이 과학들과 역사사이에 선을 그을 수 있고, 이와 같은 차별이 역사를 과학이라고 부르려고 할 때 오류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나는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같은 반대들은 다음과 같이 간략히 정리될 수 있다. 물론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설득력이 있지만 첫 번째 역사는 특수한 것을 다루고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다룬다, 역사는 교훈을 주지 않는다. 역사는 예언할 수 없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스스로 관찰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학과 달리 종교와 도덕을 이슈들을 포함한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각각 조사해 보고자 한다.

 

Chapter 3_11_94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First, it is alleged that history deals with the unique and particular, and science with the general and universal. This view may be said to start with Aristotle, who declared that poetry was 'more philosophical' and 'more serious' than history, since poetry was concerned with general truth and history with particular.' A host of later writers, down to Collingwood inclusive, made a similar distinction between science and history. This seems to rest on a misunderstanding. Hobbes's famous dictum still stands: ‘Nothing in the world is universal but names, for the things named are every one of them individual and singular.' This is certainly true of the physical sciences: no two geological formations, no two animals of the same species, and no two atoms, are identical. Similarly, no two historical events are identical. But insistence on the uniqueness of historical events has the same paralyzing effect as the platitude taken over by Moore from Bishop Butler and at one time especially beloved by linguistic philosophers: 'Everything is what it is and not another thing.' Embarked on this course, you soon attain a sort of philosophical nirvana, in which nothing that matters can be said about anything. 첫 번째 역사는 유일하고 특별한 것을 다루고, 과학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다룬다고 주장된다. 이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해진다. 그는 선언하기를 시는 더 철학적이다. 더 진지하다 역사보다. 그리고 시는 일반적인 진리를 다루고 역사는 특별한 것들을 다룬다. 그 후 일련의 역사가들은 콜링우드를 포함해서 과학과 역사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비슷한 의견을 내 놨다. 이것은 오해에 기초한 듯 보인다. 홉스의 유명한 경구가 있다. 이 세상은 아무 것도 보편적인 것은 없다. 이름 빼고, 왜냐하면 이름이 있는 것들은 그들 스스로 개인적이고 독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리 과학에서도 마찬가지 진실이다. 어떠한 두 개의 지질학적인 형태, 어떠한 두 동물(같은 종이라도), 어떠한 두 원자들도 똑 같진 않다. 마찬가지도 어떠한 두 개의 역사적 사건들도 동일하지 않다. 역사적 사건들의 유일성에 대해 너무 주장하다 보면 같은 마비되는 효과를 낳는다. 무어에 의해 제기된 진부한(platitude), 버틀러 비숍로부터 무어는. 그리고 한 때는 언어 철학자들로부터 사랑받았던 아래와 같은 문장. 모든 것은 그 자체이지 다른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코스에 들어가면 당신은 곧 일종의 철학적 열반에 들어간다. 그 곳에서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것은 한 마디로 못할 것이다.

 

Chapter 3_12_95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e very use of language commits the historian, like the scientist, to generalization. The Peloponnesian War and the Second World War were very different, and both were unique. But the historian calls them both wars, and only the pedant will protest. When Gibbon wrote of both the establishment of Christianity by Constantine and the rise of Islam as revolutions, he was generalizing two unique events. Modern historians do the same when they write of the English, French, Russian, and Chinese revolutions. The historian is not really interested in the unique, but in what is general in the unique. In the 1920s discussions by historians of the causes of the war of I9I4 usually proceeded on the assumption that it was due either to the mismanagement of diplomats, working in secret and uncontrolled by public opinion, or to the unfortunate division of the world into territorial sovereign states. In the 1930s discussions proceeded on the assumption that it was due to rivalries between imperialist powers driven by the stresses of capitalism in decline to partition the world between them. These discussions all involved generalization about the causes of war, or at any rate of war in ninetieth-century conditions. The historian constantly uses generalization to test his evidence. 언어를 사용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 역사가로 하여금 과학자들과 같이 일반화를 하게 하는 것이다. 펠로폰네시아 전쟁과 2차 대전은 매우 다르다, 그리고 둘 다 독특하다. 역사가는 둘 다 전쟁이라 부르며, 오직 현학자들만 항의할 것이다. 기번이 썼을 때 기독교의 설립과 콘스탄틴에 의해, 이슬람의 봉기를 모두 혁명이라 할 때는 그는 두 독특한 사건들을 일반화 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 역사가들은 같은 일을 한다. 그들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혁명들을 서술할 때도. 역사가는 독특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독특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을 찾는다. 1920년대 논의들, 1914 전쟁의 원인들에 관한 논의들은 아래와 같은 가정을 하고 진행되었다. 그것은 외교관들의 잘못된 관리, 비밀리에 일하는 외교관들, 그리고 공공의견에 휘둘린 외교관들의 잘못된 관리 때문에 또는 불행한 분할, 세계의 분할 영토적 주권국가들의 잘못된 분할. 1930년에는 논의들이 아래와 같은 가정아래 진행되었다. 그것은 경쟁들이었다.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쫓긴 자본주의의 스트레스에 의해 쫓긴, 기울어져 가는 자본주의의 스트레스에 그들 사이에 세계를 분할하려는. 이런 논의들은 모두 전쟁의 원인들에 대한 일반화를 포함한다. 또는 어쨌든 19세기의 상황의 조건을 언급하고 있다. 역사가는 끊임없이 일반화를 사용한다. 그의 증거를 테스트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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