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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history_시즌2

[역사란 무엇인가_시즌2] 120~126(60+6*11)p_9월 11일(일)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9.11|조회수38 목록 댓글 0

 

Chapter 3_37_120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But it is in periods of radical change that the issue appears in its most dramatic form; and it is here that we find it easiest to study the attitude of the historian towards it. Let us take the story of the industrialization of Great Britain between, say, about 1780 and 1870. Virtually every historian will treat the industrial revolution, probably without discussion, as a great and progressive achievement. He will also describe the driving of the peasantry off the land, the herding of workers in unhealthy factories and unsanitary dwellings, the exploitation of child labour. He will probably say that abuses occurred in the working of the system, and that some employers were more ruthless than others, and will dwell with some unction on the gradual growth of a humanitarian conscience once the system has become established. 이렇게 급변하는 시기이다. 그 이유가 가장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리고 바로 여기서 그 시기, 그 사건을 보는 역사가의 태도를 연구하는 가장 쉽다. 영국의 산업화 시기의 얘기를 해 보자. 즉, 1780년대와 1870년대. 실제로 모든 역사가는 산업 혁명을 아마 논의할 필요 없이 위대하고 진보적인 성취라고 취급할 것이다. 그는 또는 농토로부터 농민들을 쫓아낸 사실을 기술할 것이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공장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집단생활, 그리고 환경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거주, 그리고 어린이 노동의 착취들에 대해서 기술할 것이다. 그는 또한 말할 것이다. 노동 시스템에서의 학대가 일어난 사실들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고용주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혹했음을 그리고

 

But he will assume, again probably without saying it, that measures of coercion and exploitation, at any rate in the first stages, were an unavoidable part of the cost of industrialization. Nor have I ever heard of a historian who said that, in view of the cost, it would have been better to stay the hand of progress and not industrialize; if any such exists, he doubtless belongs to the school of Chesterton and Belloc, and will - quite properly - not be taken seriously by serious historians. 그는 가정할 것이다. 어느 정도의 강압과 착취는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우리가 차라리 산업화하지 않는 단계에 있는 게 낫다고. 만약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체스톤과 벨록의 학교에 속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진지한 역사가에 의해서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Chesterton and Belloc were brilliant, often humorous, rear-guard defenders of Christian orthodoxy against the prevailing materialist philosophies of their and the present day. Their works have enduring value to anyone interested in an unsullied and all-encompassing Christian world view.>

 

PART 3_38_121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is example is of particular interest to me, because I hope soon in my history of Soviet Russia to approach the problem of the collectivization of the peasant as a part of the cost of industrialization; and I know well that if, following the example of historians of the British industrial revolution, I deplore the brutalities and abuses of collectivization, but treat the process as an unavoidable part of the cost of a desirable and necessary policy of industrialization, I shall incur charges of cynicism and of condoning evil things. 이 예는 나에게 특별하다. 왜냐하면 나는 곧 러시아의 역사에서 집단화의 문제에 접근하려고 한다. 산업화의 희생으로의 일부분으로서 농민들의 집단화에 대해 접근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잘 안다. 그리고 만약 영국 산업 혁명의 역사가들의 예를 따라 간다면 나는 통탄한다. 야만성과 가혹성을, 집단화의, 그러나 그 과정을 바람직하고 필요한 산업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희생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인정한다면, 나는 냉소주의의 비난을 일으킬 것이다. 나쁜 것들을 허용한 것에 대해 공격을 받는 것을 초래할 것이다.

 

Historians condone the nineteenth-century colonization of Asia and Africa by the western nations on the ground not only of its immediate effects on the world economy, but of its long-term consequences for the backward peoples of these continents. After all, it is said, modern India is the child of British rule; and modern China is the product of nineteenth-century western imperialism, crossed with the influence of the Russian revolution. Unfortunately it was not the Chinese workers who laboured in the western-owned factories in the treaty ports, or in the South African mines, or on the western front in the First World War, who have survived to enjoy whatever glory or profit may have accrued from the Chinese revolution. Those who pay the cost are rarely those who reap the benefits. The well-known purple passage from Engels is uncomfortably apt: 역사가들은 허용한다. 19세기 식민화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서구 국가들에 의한 아래와 같은 이유로 그것은 세계 경제에 즉각적인 효과를 불러 왔을 뿐만 아니라, 이들 대륙의 후진 국민들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 인도는 영국 지배의 아들이며, 그리고 현대 중국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러시안 혁명의 영향과 함께. 불행하게도 서구 지배의 공장에서 일했던 중국인 노동자들이나 아프리카 탄광에서, 또는 1차 대전 서부 전선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 살아남아서 영광이나 이익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희생을 치른 사람들은 이익을 거의 보지 못한다. 엥겔스로부터 잘 알려진 purple passage는 기분이 나쁠 정도로 적절하다.

purple passage 1. (평범한 작품 중의) 멋진 구절 2. (속어) 행운의 기간

 

PART 3_39_122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History is about the most cruel of all goddesses, and she leads her triumphal car over heaps of corpses, not only in war, but also in 'peaceful' economic development. And we men and women are unfortunately so stupid that we never pluck up courage for real progress unless urged to it by sufferings that seem almost out of proportion.' 역사는 모든 신들 중에서 가장 잔인한 여신이다. 그리고 그녀는 승리의 차를 몰고 시체의 산을 넘는다. 전쟁시 뿐만 아니라 평화로운 경제 발달 시기에도. 그리고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너무나 어리석어서 우리는 결코 용기를 내려고 하지 않는다. 진짜 진보를 위한 용기. 우리가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난에 직면하지 않는 한.

 

Ivan Karamazov's famous gesture of defiance is a heroic fallacy. We are born into society, we are born into history. No moment occurs when we are offered a ticket of admission with the option to accept or reject it. The historian has no more conclusive answer than the theologian to the problem of suffering. He, too, falls back on the thesis of the lesser evil and the greater good. 이반 까라마조프의 유명한 저항의 제스쳐는 역사적 오류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태어나고 역사 속에서 태어난다. 우리들에게는 받을 권리도 거절할 권리도 없는 입장권을 가진 적이 없다. 역사가는 더 결정적인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고난의 문제에 대해서 신학자들보다. 그는 결국에 가서는 더 작은 악과 더 큰 선이라는 명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But does not the fact that the historian, unlike the scientist, becomes involved by the nature of his material in these issues of moral judgment(주부) imply the submission of history to a super-historical standard of value. I do not think that it does. Let us assume that abstract conceptions like 'good' and 'bad', and more sophisticated developments of them, lie beyond the confines of history. But, even so, these abstractions play in the study of historical morality much the same role as mathematical and logical formulas in physical science. 그러나 역사가는 과학자와 달리 그가 다루는 대상들이 도덕적 판단의 이슈에 포함된다고 해서 어떤 초역사적인 가치기준에 종속된다는 것일까? 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이나 악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 또는 더 정교하게 발달된 개념들은 역사의 경계선 밖에 두기로 하자.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은 역사적 도덕의 연구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 수학이나 논리적인 공식들이 자연 과학에서 어떤 역할을 하듯이.

 

Chapter_3_39_123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ey are indispensable categories of thought; but they are devoid of meaning or application till specific content is put into them. If you prefer a different metaphor, the moral precepts which we apply in history or in everyday life are like cheques on a bank: they have a printed and a written part. The printed part consists of abstract words like liberty and equality, justice and democracy. These are essential categories. But the cheque is valueless until we fill in the other part, which states how much liberty we propose to allocate to whom, whom we recognize as our equals, and up to what amount. The way in which we fill in the cheque from time to time is a matter of history. 그들은 필수 불가결한 생각의 카테고리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의미나 응용이 비어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그들에게 채워질 때까지는. 만약 당신이 다른 은유를 원한다면, 도덕적 개념들, 우리가 역사나 일상생활에서 응용하는 도적적 개념들은 은행에서의 수표와 비슷하다. 그들은 프린트 되어 있는 부분과 씌어진 부분이 있다. 프린트되어 있는 부분은 추상적인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유, 평등, 정의, 민주주의등. 이들은 필수적인 카테고리이다. 그러나 수표는 가치가 없다. 우리가 뒷면에 글을 써넣을 때까지는. 얼마나 많은 자유를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가를 쓸 때까지는. 그리고 누구와 우리와 동등하게 대할 것인가? 등 우리가 그때 그때 수표에 적어 넣는 방식이 역사 문제가 되는 것이다.

 

The process by which specific historical content is given to abstract moral conceptions is a historical process; indeed, our moral judgments are made within a conceptual framework which is itself the creation of history. The favourite form of contemporary international controversy on moral issues is a debate on rival claims to freedom and democracy. The conceptions are abstract and universal. But the content put into them has varied throughout history, from time to time and from place to place; any practical issue of their application can be understood and debated only in historical terms. 어떤 과정, 특별한 역사적 내용이 추상적인 도덕적 관념들에게 적용되는 방식이 역사적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의 도덕적 판단들은 개념 틀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개념 틀 조차도 역사의 창조물인 것이다. 도덕적 이슈들에 대한 국제적인 논쟁들 중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형태는 자유와 민주의 경쟁적 청구에 대한 논쟁이다. 그 관념들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이다. 그러나 그것에 담겨지는 내용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변해왔다. 시간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그리고 따라서 이러한 실제적 이유들은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토론될 수 있다. 오직 역사적 견해, 내지는 용어들에 의해 가능하다.

 

Chapter_3_40_124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o take a slightly less popular example, the attempt has been made to use the conception of 'economic rationality' as an objective and non-controversial criterion by which the desirability of economic policies can be tested and judged. The attempt at once breaks down. Theorists brought up on the laws of classical economics condemn planning in principle as an irrational intrusion into rational economic processes; for example, planners refuse in their price policy to be bound by the law of supply and demand, and prices under planning can have no rational basis. It may, of course, be true that planners often behave irrationally, and therefore foolishly. 약간 더 알려진 예를 들어보자. 어떤 시도가 되어 왔다. 경제적 합리성의 개념을 사용하려는 시도. 객관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준으로 경제적 합리성의 개념을 사용하려는 시도. 그 기준에 의해 경제 정책의 바람직성을 테스트하고 판단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에 즉각 실패한다. 고전 경제학의 법칙이라는 틀 안에서 자란 이론가들은 비난한다. 계획이런 것을 본질적으로 비이성적인 침입이라고. 합리적인 경제 프로세스에 침입이라고 비난한다. 예를 들면 계획가들은 그들의 가격 정책이 수용 공급 법칙에 묶이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계획 경제 아래서 가격들은 어떠한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한다. 물론 합리주의자들은 자주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그러므로 어리석게도 행동한다.

 

But the criterion by which they must be judged is not the old 'economic rationality' of classical economy. Personally, I have more sympathy with the converse argument that it was the uncontrolled unorganized laissez-faire economy which was essentially irrational, and that planning is an attempt to introduce 'economic rationality' into the process. But the only point which I wish to make at the moment is the impossibility of erecting an abstract and super-historical standard by which historical actions can be judged. Both sides inevitably read into such a standard the specific content appropriate to their own historical conditions and aspirations. 그러나 그들이 판단 받아야 할 기준은 오래된 고전 경제의 경제 합리성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반대의 진술에 더 공감을 가지고 있다. 통제되지 않은 비조직적 자유 방임 경제는 본질적으로 이 이성적이고, 계획 경제는 어떤 시도이다. 경제적 합리성을 과정에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유일한 강조점은 어떤 불가능성이다. 추상적이고 초역사적인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 역사적 행동들이 판단될 수 있다는 기준. 양쪽 모두가 불가피하게 그러한 기준에 특별한 내용을 읽어 내려는 것이다. 그 내용은 그들 자신의 역사적 조건들과 열망들을 적당한 것들이다.

 

Chapter 3_41_125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is is the real indictment of those who seek to erect a super-historical standard or criterion in the light of which judgment is passed on historical events or situations-whether that standard derives from some divine authority postulated by the theologians, or from a static Reason or Nature postulated by the philosophers of the Enlightenment. It is not that short- coming occur in the application of the standard, or defects in the standard itself. It is that the attempt to erect such a standard is unhistorical and contradicts the very essence of history. It provides a dogmatic answer to questions which the historian is bound by his vocation incessantly to ask: the historian who accepts answers in advance to these questions goes to work with his eyes blindfolded and renounces his vocation. History is movement; and movement implies comparison. That is why historians tend to express their moral judgments in words of a comparative nature like ‘progressive' and 'reactionary' rather than in uncompromising absolutes like ‘good' and 'bad’; these are attempts to define different societies or historical phenomena not in relation to some absolute standard, but in their relation to one another. Moreover, when we examine these supposedly absolute and extra-historical values, we find that they too are in fact rooted to history. 이것은 비판이다. 하는 사람들에 대한 초역사적인 기준이나 표준을 세우려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 기준들에 의해 역사적 사건들이나 상황들에 대한 판단이 될 수 있다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 그 기준이 어떤 신의 권위로부터 나왔건. 신학자들에 의해 설정된, 또는 정적인 이성이나 자연들로부터 나왔건, 계몽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설정된. 이것은 그 기준의 응용이나 기준 그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가 비역사적이고 역사적 본질에 모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독단적인 답변을 제공하는 것이다. 질문들에게. 그 질문들에게 역사가는 그의 직업상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미리 답변을 받아들이는 역사가는 그의 눈을 가린 채로 역사 연구의 작업을 하는 것이고 그의 직업을 포기하는 것이다. 역사는 운동이다. 그리고 운동은 비교를 의미한다. 그것이 왜 역사가들이 그들의 도덕적 판단들을 비교적인 용어로 하기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진보적이다 또는 반동적이다. 비타협적인 절대적 용어인 ‘선’ 또는 ‘악’이라는 단어들보다는. 이것들을 시도들이다. 다른 사회들이나 역사적 현상들 정의하기 위한 어떤 절대적인 기준에 관계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관계에서. 더욱이 우리가 이와 같은 절대적이고 초역사적인 역사 가치들을 조사해 보면 우리는 발견한다. 그들도 또한 역사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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