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2022년 3월 18일(금)_38~40p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3.15|조회수28 목록 댓글 0

[원서_38p, <Can't you hurry up, you pigs?> Soon we had resumed the previous day's positions in the ditch. The frozen ground cracked under the point of the pickaxes, and sparks flew. The men wee silent, their brains numb. My mind still clung to the image of my wife. A thought crossed my mind: I didn't even know if she were still alive. I knew only one thing-which I have learned well by now: Love goes very far beyond the physical person of the beloved. It finds its deepest meaning in his spiritual being, his inner self. Whether or not he is still alive at all, ceases somehow to be of importance. I did not know whether my wife was alive, and I had no means of finding out(during all my prison life there was no outgoing or incoming mail); but at that moment it ceased to matter. [번역판_79p, <이 새끼들.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해?> 곧 우리는 전날 일했던 배수구로 위치를 찾아서 갔다. 얼어붙은 땅이 곡괭이 끝에서 깨지는 ㅅ리를 냈다. 그러자 불꽃이 일어났다. 모두들 말이 없었고, 머리는 마비되어 있었다. 그때도 내 마음은 여전히 아내의 영상에 매달려 있었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나는 아내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만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때서야 내가 깨달은 것이 있는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아는 아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랐다.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수용소에는 오는 편지도 가는 편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원서_39p, As the inner life of the prisoner tended to become more intense, he also experienced the beauty of art and nature as never before. Under their influence he sometimes even forgot his own frightful circumstances. If someone had seen our faces on the journey from Auschwitz to a Bavarian camp as we beheld the mountains of Salzburg with their summits growing in the sunset, through the little barred windows fo the prison carriage, he would never have believed that those were the faces of men who had given up all hope of life and liberty. Despite that factor-or maybe because of it-we were carried away by nature's beauty, which we had missed for so long. [번역판_81p, 이렇게 내적인 삶이 심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때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우슈비츠에서 바바리아 수용소로 이송되는 도중에 호송열차의 작은 창살 너머로 석양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잘츠부르크 산 정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얼굴을 보았다면 그것이 절대로 삶과 자유에 대한 모든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믿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음에도 불고하고-어쩌면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우리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곤 했다.

 

[원서_40p, Another time we were at work in a trench. The dawn was grey around us; grey was the sky above; grey the snow n the pale light of dawn; grey the rags in which my fellow prisoners were clad, and grey their face. I was again conversing silently with my wife, or perhaps I was struggling to find the reason for my sufferings, my slow dying. In a last violent protest against the hopelessness of imminent death, I sensed my spirit piercing through the enveloping gloom. I felt it transcend that hopeless, meaningless world, and from somewhere I heard a victorious 'Yes' in answer to my question of the existence of an ultimate purpose. At that moment a light was lit in a distant farmhouse, which stood on the horizon as if painted there, in the midst of the miserable grey of a dawning morning in Bavaria. "et lus in tenebris lucet"-and the light shineth in the darkness. [번역판_82p, 그날도 우리는 참호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잿빛 새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 위에 있는 하늘도 잿빛이었고, 창백한 새벽빛에 반사되는 눈도 잿빛이었다. 동료가 걸치고 있는 넝마 같은 옷도 잿빛이었고, 얼굴도 잿빛이었다. 나는 또 다시 아내와 침묵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당시 나는 내 고통에 대한 그리고 내가 서서히 죽어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곧 닥쳐올 절망적인 죽음에 대해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이 사방을 뒤덮고 있는 음울한 빛을 뚫고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절망적이고 의미 없는 세계를 뛰어넘는 것을 느꼈으며, 삶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어디선가 “그렇다”라고 하는 활기찬 대답 소리를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수평선 저 멀리에 그림처럼 서 있던 농가에 불이 들어왔다. 바바리아의 동트는 새벽의 초라한 잿빛을 뚫고 불이 켜진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나니’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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