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2022년 3월 23일(수)_46~48p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3.18|조회수27 목록 댓글 0

[원서_46p, And yet we were all very pleased! There was no chimney in this camp and Auschwitz was a long way off. Another time we saw a group of convicts pass our work sit. How obvious the relativity of all suffering appeared to us then! We envied those prisoners their relatively well-regulated, secure and happy life. They surely had regular opportunities to take bats, we thought sadly. They surely had toothbrushes and clothesbrushes, mattresses-a separate one for each of them-and monthly mail bringing them news of the whereabouts of their relatives, or at least of whether they were still alive or not. We had lost all that a long time ago. And how we envied those of us who had the opportunity to get into a factory and work in a sheltered room! It was everyone's wish to have such a lifesaving piece of luck. The scale of relative luck extends even further. Even among those detachments outside the camp(in one of which I was a member) there were some units which were considered worse than others. One could envy a man who did not have to wade in deep, muddy clay on a steep slope emptying the tubs of small field railway for twelve hours daily. Most of the daily accidents occurred on this job, and they were often fatal. In other work parties the foreman maintained an apparently local tradition of dealing out numberous blows, which made us tale of the relative luck of not being under their command or peerhaps of being under it only temporarily. Once, by an unlucky chance, I got into such a group. If an air raid alarm had not interrupted us after two hours(during which time the foreman had worked on me especially), making it necessary to regroup the workers afterwards, I think that I would have returned to camp on one of the sledges which carried those who had dies or were dying from exhaustion. [번역판_90p,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했다. 이 수용소에는 굴뚝이 없고, 또 아우슈비츠는 여기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한번은 한 무리의 죄수들이 우리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들과 비교해서 우리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커보였는지! 우리는 그 죄수들이 누리는 상대적으로 잘 규정된,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부러워했다. 저 사람들은 틀림없이 정기적으로 목욕을 할 거야 하고 생각하니 내 신세가 처량해졌다. 분명 칫솔과 옷솔을 갖고 있을 거야. 매트리스도 각자 하나씩 있겠지.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은 편지를 받을 거야.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니 적어도 그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 수 있는 편지 말이야. 우리는 아주 오래 전에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공장에 들어가 안전한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을 얼마나 부러워했는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그런 한 조각의 행운을 얻는 것이 당시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상대적인 행운의 척도는 이것 말고도 많이 있었다. 수용소 밖으로 나가서 일하는 사람들(나도 여기에 속해 있었다) 중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곳보다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작업반이 있었다. 매일 12시간씩 가파른 언덕에서 진흙탕을 오가며 좁은 선로를 따라 운반되는 통을 비우는 일을 했던 사람들은 그보다 편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매일같이 일어나는 사고의 대부분은 바로 여기서 일어났으며, 그 사고의 결과는 대개 치명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감독이 그곳의 전통이라면서 수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작업반에 배치된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런 작업반에 들어가지 않게 된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한번은 운 나쁘게도 내가 우연히 그런 작업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만약 두 시간(그 동안 감독이 줄곧 나를 주시해서 보고 있었다)만에 공급경보가 울려 작업이 중단되고, 그 후 작업조가 다시 편성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지쳐서 죽었거나 아니면 죽어가는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대형수레에 실려 수용소로 되돌아왔을 것이다.

 

[원서_47p, No one can imagine the relief that the siren can bring in such a situation; not even a boxer who had heard the bell signifying the finish of a round and who is thus saved at the last minute from the danger of a knockout. We were grateful for the smallest of mercies. We were glad when there was time to delouse before gong to bed. Although in itself this was no pleasure, as it meant standing naked in an unheated hut where icicles hung from the ceiling. But we were thankful if there was no air raid alarm during this operation and the lights were not switched off. If we could not do the job properly, we were kept awake half the night. The meager pleasures of camp life provided a kind of negative happiness-"freedom from suffering" as Schopenhauer put it-and even that in a relative way only. Real positive pleasures, even small ones, were very few. I remember drawing up a kind of balance sheet of pleasures one day and finding that in many, many past weeks I had experienced only two pleasurable moments. One occurred when, on returning from work, I was admitted to the cook house after a ong wait and was assigned to the line filing up to prisoner-cook F. He stood behind one of the huge pans and ladled soup into the bowls which were held out to him by the prisoners, who hurriedly filed past. He was the only cook who did not look at the men whose bowls he was filling; the only cook who dealt out the soup equally regardless of recipient, and who did not make favorites of his personal freinds or countrymen, picking out the potatoes for them, while the others got watery soup skimmed from the top. [번역판_91p, 그런 상황에서 사이렌소리가 주는 안도감이 어떤 것인지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한 라운드가 끝나는 종소리를 듣고, 마지막 순간에 넉 아웃될 위기를 모면한 권투선수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아주 작은 은총에도 고마워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를 잡는 시간을 준다는 것도 우리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물론 이를 잡는 일 자체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를 잡기 위해서는 천장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추운 막사에서 옷을 벗고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잡는 도중에 공습경로가 울리지 않아 전등불이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고마워했다. 만약 이 시간에 이를 제대로 잡이 못하면 하룻밤의 절반을 꼬박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용소 생할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쇼페하우어가 ‘시련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던-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진정한 의미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의 없었다. 한번은 즐거움에 대한 일종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보았다. 그 결과 지난 수 주 동안 나에게 즐거운 순간이 딱 두 번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일을 마치고 난 후, 취사실에 들어가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다가 마침내 요리사 F 앞으로 난 줄에 설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우리와 같은 수감자 출신인 요리사 F는 커다란 국냄비를 앞에 놓고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내미는 그릇에 수프를 퍼넣어 주고 있었다. 그는 수프를 퍼주면서 그릇을 내민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 유일한 요리사였다. 자기 친구나 고향 사람에게는 몇 알 안 되는 감자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위에서 살짝 걷어낸 희멀건 국물만 주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수프를 나누어 주었다.

 

[원서_48p, But it is not for me to pass judgment on those prisoners who put their own people above everyone else. Who can throw a stone at a man who favors his friends under circumstances when, sooner or later, it is a question of life or death? No man should judge unless he asks himself in a absolute honesty whether in a similar situation he might not have down the same. Long after I had resumed normal life again(that means a long time after my release from camp), somebody showed me an illustrated weekly with photographs of prisoners lying crowded on their bunks, staring dully at a visitor. Isn't this terrible, the dreadful staring faces-everything about it. "Why?" I asked, for I genuinely did not understand. For at that moment I saw it all again: at 5:00 AM. It was pitch dark outside. I was lying on the hard boards in an earthen hut where about seventy of us were "taken care of." We sere sick and did not have to leave camp fro work; we did not have to go on parade. We could lie all day in our little corner in the hut and doze and wait for the daily distribution of bread(which, of course, was reduced for the sick) and for the daily helping of soup(watered down and also decreased in quantity). But how content we were; happy in spite of everything. While we cowered against each other to avoid any unnecessary loss of warmth, and were tooo lazy and disinterested to move a finger unnecessarily, we heard shrill whistles and shouts from the square where the night shift had just returned and was assembling for roll call. The door was flung open, and the snowstorm blew into our hut. An exhausted comrade, covered with snow, stumbled inside to sit down for a few minutes. But the senior warden turned him out again. It was strictly forbidden to admit a stranger to a hut while a check-up on the men was in progress. [번역판_93p, 하지만 나는 여기서 자기가 아는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우선시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자기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해서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정말로 정직하게 그런 일을 하지 않을 확신이 서지 않는 한 그런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정상적인 생활(이것은 곧 내가 수용소에서 풀련난 후에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의미한다)로 돌아왔을 때, 누군가 나에게 주간 회보에 실린 사진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죄수들이 침상 위에 빽빽하게 누워서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방문객을 바라보는 사진이었다.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사람을 바라보는 저 무시무시한 얼굴들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너무나 끔찍하지 않습니까?> <어째서요?> 나는 물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과거에 일어났던 그 모든 일들이 다시 내 눈 앞을 스쳐간다. 새벽 5시, 밖은 아직 어둠에 묻혀 있었다. 나는 70명의 사람들이 ‘치료받고 있는’ 흙으로 만든 막사의 딱딱한 판자 위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병에 걸려 있었고, 그래서 일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되었다. 행진에 나갈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막사의 한 귀퉁이에 누운 채로 졸면서 그날 분의 빵(물론 환자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적은 양이 빵이 배급된다)과 수프(물을 타서 실질적으로 양이 적어진)가 배급되기를 기다렸다. 그 때 우리는 얼마나 이 상황을 흡족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했다. 우리는 불필요한 체온 저하를 막기 위해 몸을 꼭 밀착하고,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나른한 상태에서 이제 막 돌아온 야간 당번들이 점호를 받고 있는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와 구령 소리를 들었다. 마침 그때 문이 열리면서 눈보라가 막사 안으로 몰아쳐 들어왔다. 지칠 대로 지친 동료 한 사람이 눈을 뒤집어 쓴 채 단 몇 분 동안이라도 앉아서 쉬기 위해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고참이 그를 다시 밖으로 쫓아냈다. 인원 점검이 진행되는 동안 외부인이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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