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2022년 3월 24일(목)_48~50p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3.18|조회수16 목록 댓글 0

[원서_48p, But it is not for me to pass judgment on those prisoners who put their own people above everyone else. Who can throw a stone at a man who favors his friends under circumstances when, sooner or later, it is a question of life or death? No man should judge unless he asks himself in a absolute honesty whether in a similar situation he might not have down the same. Long after I had resumed normal life again(that means a long time after my release from camp), somebody showed me an illustrated weekly with photographs of prisoners lying crowded on their bunks, staring dully at a visitor. Isn't this terrible, the dreadful staring faces-everything about it. "Why?" I asked, for I genuinely did not understand. For at that moment I saw it all again: at 5:00 AM. It was pitch dark outside. I was lying on the hard boards in an earthen hut where about seventy of us were "taken care of." We sere sick and did not have to leave camp fro work; we did not have to go on parade. We could lie all day in our little corner in the hut and doze and wait for the daily distribution of bread(which, of course, was reduced for the sick) and for the daily helping of soup(watered down and also decreased in quantity). But how content we were; happy in spite of everything. While we cowered against each other to avoid any unnecessary loss of warmth, and were tooo lazy and disinterested to move a finger unnecessarily, we heard shrill whistles and shouts from the square where the night shift had just returned and was assembling for roll call. The door was flung open, and the snowstorm blew into our hut. An exhausted comrade, covered with snow, stumbled inside to sit down for a few minutes. But the senior warden turned him out again. It was strictly forbidden to admit a stranger to a hut while a check-up on the men was in progress. [번역판_93p, 하지만 나는 여기서 자기가 아는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우선시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자기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해서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정말로 정직하게 그런 일을 하지 않을 확신이 서지 않는 한 그런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정상적인 생활(이것은 곧 내가 수용소에서 풀련난 후에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의미한다)로 돌아왔을 때, 누군가 나에게 주간 회보에 실린 사진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죄수들이 침상 위에 빽빽하게 누워서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방문객을 바라보는 사진이었다.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사람을 바라보는 저 무시무시한 얼굴들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너무나 끔찍하지 않습니까?> <어째서요?> 나는 물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과거에 일어났던 그 모든 일들이 다시 내 눈 앞을 스쳐간다. 새벽 5시, 밖은 아직 어둠에 묻혀 있었다. 나는 70명의 사람들이 ‘치료받고 있는’ 흙으로 만든 막사의 딱딱한 판자 위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병에 걸려 있었고, 그래서 일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되었다. 행진에 나갈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막사의 한 귀퉁이에 누운 채로 졸면서 그날 분의 빵(물론 환자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적은 양이 빵이 배급된다)과 수프(물을 타서 실질적으로 양이 적어진)가 배급되기를 기다렸다. 그 때 우리는 얼마나 이 상황을 흡족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했다. 우리는 불필요한 체온 저하를 막기 위해 몸을 꼭 밀착하고,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나른한 상태에서 이제 막 돌아온 야간 당번들이 점호를 받고 있는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와 구령 소리를 들었다. 마침 그때 문이 열리면서 눈보라가 막사 안으로 몰아쳐 들어왔다. 지칠 대로 지친 동료 한 사람이 눈을 뒤집어 쓴 채 단 몇 분 동안이라도 앉아서 쉬기 위해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고참이 그를 다시 밖으로 쫓아냈다. 인원 점검이 진행되는 동안 외부인이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서_49p, How sorry I was for that fellow and how glad not to be in his skin at that moment, but instead to be sick and able to doze on in the sick quarters! What a lifesaver it was to have two days there, and perhaps even two extra days after those! All this came to my mind when I saw the photographs in the magazine. When I explained, my listeners understood why I did not find the photograph so terrible: the people shown on it might not have been so unhappy after all. On my fourth day in the sick quarters I had just been detailed to the night shift when the chief doctor rushed in and asked me to volunteer for medical duties in another camp containing typhus patients. Against the urgent advice od my friends(and despite the fact that almost none o fmy colleagues offered their services), I decided to volunteer. I knew that in a working party I would die in a short time. But if I thought that it would doubtless be more sense in my death. I thought that it would doubtless be more to the purpose to try and help my comrades as a doctor than to vegetate or finally lose my life as the unproductive laborer that I was then. [번역판_94p, 그때 내가 얼마나 그 친구에게 미안했는지 그리고 또 그 순간 그와 같은 처지에 있지 않고, 병에 걸려 병동에서 졸 수 있다는 사실이 또 얼마나 기뻤는지! 그곳에 보낸 이틀이, 그리고 그 이후에 주어진 또 다른 이틀이 내 생명을 보존하는 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 모든 일들이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떠올랐다. 나는 이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들려주었고, 그제서야 그는 내가 그 사진을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전혀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병동에 누워 있은 지 사흘째 되는 날, 나는 야근 당번에 편성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주치의가 달려와 발진티푸스 환자를 수용하고 있는 다른 수용소에서 의료 자원봉사자로 일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친구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그리고 내 동료의사들 중에 이런 일에 자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가 작업반에 들어갈 경우, 짧은 시간 안에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내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의사로서 내 동료들을 돕다가 죽는 것이 그 전처럼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로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는 것보다 학실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원서_50p, A man's character became involved to the point that he was caught in a mental turmoil which threatened all the values he held and threw them into doubt. Under te influence of a world which no longer recognized the value of human life and human dignity, which ad robbed man of his will and ad made him an objected to be exterminated(having planned, however, to make full use of him first-to the last ounce of his physical resources)-under this influence the personal ego finally suffered a loss of values. If the man in the concentration camp did not struggle against this in a last effort to save his self-respect, he lost the feeling of being an individual, a being with a mind, wit inner freedom and personal value. He thought of himself then as only a part of an enormous mass of people; his existence descended to the level of animal life. The men were herded-sometimes to one place then to another; sometimes driven together, then apart-like a flock of sheep without a thought or a will of their own. A small but dangerous pack watched them from all sides, well versed n methods of torture and sadism. They drove the herd incessantly, backwards and forwards, with shouts, kicks and blows. [번역판_96p,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가치를 위협하고, 또 그것을 의혹 속으로 내던져버린 정신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지닌 가치가 더 이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게, 인간의 의지를 박탈하고 그를 단지 처형(처음에 그를 이용한 대로 이용해 먹다가 육체의 마지막 한 점까지 이용하도록 계획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세계, 이런 세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그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만약 강제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이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으며, 그는 자기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 마음을 지니고 내적인 자유와 인격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거대한 군중의 한 부분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한다. 존재가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이나 의지가 없는 양떼처럼 무리지어-때로는 여기에 있다가 그 다음에는 저기로, 때로는 함께 몰려다니다가 때로는 서로 떨어져 다니는-다니게 된다. 그런데 비록 수는 적지만 매우 위험한 무리들이 사방에서 이들을 감시하고 있다. 이 무리들은 고문을 하는 것과 남을 괴롭히는 방법에 아주 능통한 자들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고함을 치고, 발길질과 주먹질을 해대며 무리를 뒤에서 앞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양떼인 우리들은 오로지 두 가지 생각만 한다. 어떻게 하면 저 무서운 개들을 피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까 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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