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_50p, A man's character became involved to the point that he was caught in a mental turmoil which threatened all the values he held and threw them into doubt. Under te influence of a world which no longer recognized the value of human life and human dignity, which ad robbed man of his will and ad made him an objected to be exterminated(having planned, however, to make full use of him first-to the last ounce of his physical resources)-under this influence the personal ego finally suffered a loss of values. If the man in the concentration camp did not struggle against this in a last effort to save his self-respect, he lost the feeling of being an individual, a being with a mind, wit inner freedom and personal value. He thought of himself then as only a part of an enormous mass of people; his existence descended to the level of animal life. The men were herded-sometimes to one place then to another; sometimes driven together, then apart-like a flock of sheep without a thought or a will of their own. A small but dangerous pack watched them from all sides, well versed n methods of torture and sadism. They drove the herd incessantly, backwards and forwards, with shouts, kicks and blows. [번역판_96p,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가치를 위협하고, 또 그것을 의혹 속으로 내던져버린 정신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지닌 가치가 더 이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게, 인간의 의지를 박탈하고 그를 단지 처형(처음에 그를 이용한 대로 이용해 먹다가 육체의 마지막 한 점까지 이용하도록 계획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세계, 이런 세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그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만약 강제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이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으며, 그는 자기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 마음을 지니고 내적인 자유와 인격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거대한 군중의 한 부분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한다. 존재가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이나 의지가 없는 양떼처럼 무리지어-때로는 여기에 있다가 그 다음에는 저기로, 때로는 함께 몰려다니다가 때로는 서로 떨어져 다니는-다니게 된다. 그런데 비록 수는 적지만 매우 위험한 무리들이 사방에서 이들을 감시하고 있다. 이 무리들은 고문을 하는 것과 남을 괴롭히는 방법에 아주 능통한 자들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고함을 치고, 발길질과 주먹질을 해대며 무리를 뒤에서 앞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양떼인 우리들은 오로지 두 가지 생각만 한다. 어떻게 하면 저 무서운 개들을 피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까 하는 생각 말이다.
[원서_51p, But at other times it was a very conscious effort on our part-in conformity with one of the camp's most imperative laws of self-preservation: Do noto be conspicuous. We tried at all times to avoid attracting the attention of the SS. There were times, of course, wen it was possible, and even necessary, to keep away from the crowd. It is well known that an enforced community life, in which attention is paid to everything one does at all times, may result in an irresistible urge to get away, at least for a short while. The prisoner craved to be alone with himself and his thoughts. He yearned for privacy and for solitude. After my transportation to a so-called "rest camp" I had the rare fortune to find solitude for about five minutes at a time. Behind the earthen hut where I worked and in which were crowded about fifty delirious patients, there was a quiet spot in a corner of the double fence of barbed wire surrounding the camp. A tent had been improvised there with a few poles and branches of trees in order to shelter a half-dozen corpses(the daily death rate in the camp). There was also a shaft leading to the water pipes. I squatted on the wooden lid of this shaft whenever my services were not needed. I just sat and looked out at the green flowering slopes and the distant blue hills of the bavarian landscape, framed by the meshes of the barbed wire. I dreamed longingly, and my thoughts wandered north and northeast, in the direction of my home, but I cold only see clouds. Te corpses near me, crawling with liive, did not bother me. Only the steps of passing guards coul rouse me from my dreams; or perhaps it would be a call to the sick-bay or to collect a newly arrived supply of medicine for my hut-consisting of perhaps five or ten tablets of aspirin, to last for several days for fifty patients. [번역판_98p, 하지만 때로는 이런 일이 수용소 안에서 가장 절박한 자기보존의 법칙에 따라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 법칙은 될 수 있는 대로 눈에 띄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치대원들의 눈에 뜨이지 않으려고 항상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수용소에서도 사람들로부터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었다. 잘 알다시피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끄는 강요된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잠시 동안만이라도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혼자 있게 되기를, 혼자서 사색에 잠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들은 자기만의 개인적인 공간, 혼자 있는 고독을 열망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요양소’로 옮긴 후 나는 한 번에 5분 정도 혼자 고독을 즐기는 흔치 않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내가 일하는 막사에는 약 50명의 정신착란증 환자가 수용되어 있었는데, 그 막사 뒤 수용소를 두 겹으로 둘러친 철조망 한 귀퉁이에 아주 조용한 곳이 있었다. 이곳에는 시신 여섯 구(수용소에서는 하루에 평균 이 정도의 사람이 죽는다)를 보관하기 위해 기둥 몇 개와 나뭇가지를 엮어서 세운 임시 천막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배수관으로 통하는 구멍도 있었다. 나는 일이 없을 때마다 이 구멍의 나무 뚜껑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곤 했다. 그냥 앉아서 꽃이 만발한 초록빛의 산등성이를 바라보거나 철조망의 마름모꼴 그물 눈 안에 들어가 있는 먼 바바리아의 푸른 언덕을 바라보았다. 나는 간절하게 꿈을 꾸었다. 그러면 내 마음은 북쪽에서 북서쪽, 나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구름뿐이었다. 옆에 있는 시체, 이가 득실거리는 그 시체도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감시병이 지나가는 발소리만이 나를 꿈에서 깨울 수 있었다. 병실에서 부르는 호출이나 새로 들어온 의약품-약이라고 해 봤자 아스피린 다섯 알 내지 열 알이 전부로 50명의 환자가 있는 막사에서 며칠이며 바닥이 나는 양이었다-을 받아가라는 소리 때문에 꿈에서 깰 때도 있었다.
[원서_52p, I collected them and then did my rounds, feeling the patients' pulses and giving half-tablets to te serious case. But the desperately ill received no medicine. It would not have helped, and besides, it would have deprived those fro whom there was still some hope. For light cases, I had nothing, except perhaps a word of encouragement. In this way I dragged myself from patient to patient, though I myself was weak and exhausted from a serious attack of typhus. Then I went back to my lonely place on tghe wood cover of the water shaft. This shaft, incidentally, once saved the lives of three fellow prisoners. Shortly before liberation, mass transports were organized to go to Dachau, and these three prisoners wisely tried to avoid the trip. They climbed down the shaft and hid there from the guards. I calmly sat on the lid, looking innocent and playing a childish game of the throwing pebbles at the barbed wire. On spotting em, the guard hesitated for a moment, but then passed on. Soon I could tell the three men below that the worst danger was over. [번역판_99p, 약을 받은 다음 나는 회진을 했다. 환자들의 맥발을 일일이 재보고 상태가 위급한 환자에게 반 알씩 주었다. 약을 받은 다음 나는 회진을 했다. 환자들의 맥발을 일일이 재보고 상태가 위급한 환자에게 반 알씩 주었다.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는 약을 주지 않았다. 약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그것이 결국 가망 있는 환자들을 위해 써야 할 약을 빼앗는 것가 같기 때문이다. 증사가 가벼운 환자에게는 격려의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나 자신도 발진티푸스에 심하게 걸려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을 끌다시피 하면서 이 환자에서 저 환자로 옮겨가며 그들을 돌보았다. 그런 다음 나는 다시 배수구의 나무 뚜껑 위에 있는 나 혼자만의 장소로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이 구멍이 어느 날 우연히 내 친구 세 명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수용소에서 풀려나기 바로 직전 다카우를 목적지로 하는 대규모 수송 작전이 있었다. 하지만 세 친구들은 아주 약삭빠르게 이것을 피해갔다.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가 감시병의 눈을 피했던 것이다. 친구들이 구멍으로 들어가고 나서 나는 조용히 뚜껑 위에 앉아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순진한 표정을 하고 어린 아이처럼 철조망에 자갈을 던지고 있었다. 감시병이 나를 보고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다음 그냥 가버렸다. 그가 간 다음 나는 밑에 있는 세 친구들에게 최악의 위험한 상황은 지나갔다고 알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