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2022년 3월 29일(화)_70~80p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3.21|조회수50 목록 댓글 0

[원서_70p, He had been given no date for his release. (In our camp it was pointless even to talk about it.) Actually a prison term was not only uncertain but unlimited. A well-known research psychologist has pointed out that life in a concentration camp could be called a "provisional existence." We can add to this by defining it as a "provisional existence of unknown limit."

New arrivals usually knew nothing about the conditions at a camp. Those who had come back other camps were obliged to keep silent, and from some camps no one had returned. On entering camp a change took place in the minds od the men. with the end of uncertainly there came the uncertainty of the end. It was impossible to foresee whether or when, it at all, this form of existence would end.

The Latin word ‘finis’ has two meanings: the end or the finish, and a goal to reach. A man who could not see the end of his ‘provisional existence’ was not able to aim at an ultimate goal in life. He ceased living for the future, in contrast to a man in life. Therefore the whole structure of his inner life changed; signs of decay set in which we know from other areas of life. Unemployed worker, for example, is in a similar position. His existence has become provisional and in a certain sense he cannot live for the future or aim at a goal. Research work done on unemployed miners has shown that they suffer from a peculiar sort of deformed time-inner time-which i s a result of their unemployed state. Prinoners, too, suffered from this strange "time-experience". In camp, a small time unit, a day, for example, filled with hourly tortures and fatigue, appeared endless. A larger time unit, perhaps a week, seemed to pass very quickly. [번역판_127p, 우리는 언제 석방되는지를 몰랐다.(내가 있던 수용소에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수형 기간은 불확실했으며, 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저명한 연구 전문 심리학자는 강제수용소의 이런 삶을 일시적인 삶(provisional existence)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마디 더 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수용소 환경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다른 수용소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고, 어떤 수용소로 간 사람들은 한 사람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수용소에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의 불확실성은 결망이 났지만, 이번에는 결말에 대한 불확실성이 뒤를 잇는다. 이런 형태의 삶이 끝날 것인지 말 것인지, 끝난다면 과연 언제 끝날 것인지 미리 예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라틴어 ‘finis’ 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이나 완성을 의미하고,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퇴행 현상을 볼 수 있다. 예들 들자면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일시적인 것’ 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고 목표를 세울 수도 없다. 예를 들자면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고, 목푤를 세울 수도 없다. 실직한 광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그들이 아주 기이한 형태의 변형된 시간감각-내면의 시간-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것은 실직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서_71p, My comrades agreed when I said that in camp a day lasted longer than a week. Hoe paradoxical was our time-experience! In this connection we are reminded of Thomas Mann’s The magic Mountain, which contains some very pointed psychological remarks. Mann studies the spiritual development of people who are in an analogous psychological position. i.e., tuberculosis patients in a sanatorium who also know no date for their release. They experience a similar existence- without a future and without a goal.

One of the prisoners, who on his arrival marched with a long column of new inmates from the station to the camp, told me later that he had felt as though he ware marching at his own funeral. His life had seemed to him absolutely without future. He regarded it as over and done, as if he had already died. This feeling of lifelessness was intensified by other causes: in time, it was the limitlessness of the term of imprisonment which was most acutely felt; in space, the narrow limits of the prison. Anything outside the barbed wire became remote-out of reach and, in a way, unreal. The events and the people outside, all the normal life there, had a ghostly aspect for the prisoner. The outside life, that is, as much as e could set of it, appeared to him almost as it might have to a dead man who looked at it from another world.

A man who let himself decline because he could not see any future goal found himself occupied with retrospective thoughts. In a different connection, we have already spoken of the tendency there was to look into the past, to help make the present, with all its horrors, less real. But in robbing the present of its reality there lay a certain danger. It became easy to overlook the opportunities to make something positive of camp life, opportunities which really did exist. [번역판_128p, 수용소에서 내가 한번은 동료에게 하루가 일주일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고 얘기하자 그 친구도 내 말에 동의한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리의 시간 감각이 얼마나 역설적이었던가! 이와 관련해서는 예리한 심리학적 관찰이 돋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토마스 만은 서로 비슷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 즉 페결핵에 걸려 요양소에서 언제 나가게 될지 모르는 환자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영적인 발달 단계를 얘기하고 있다. 그들도 똑같은 상태, 미래도 없고, 삶의 목표도 없는 생존의 상태를 경험한 것이다. 수용소 동료 중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역에서부터 수용소까지 길게 줄을 서서 행진해 들어왔는데, 그 행진이 마치 자기의 장례식 행렬같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자신의 삶은 전혀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자기가 이미 죽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삶이 날아간 것 같은 이런 느낌은 다른 요인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갗혀 있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사실 수감자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부분이다.)과, 갇혀 있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 그 요인이다. 철조망 밖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손이 닿을 수 없는 것 그래서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정상적인 삶은 수감자들에게는 유령과 같은 것이었다. 만약 그가 바깥 세계를 볼 수 있다면 그에게는 그것이 마치 저 세상에서 온 사람이 바라보는 이승과 같이 비쳐졌을 것이다.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앞에서 우리는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수감자들이 공포로 가득 찬 현재를 덜 사실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현실에서 현재를 박탈하는 행위에는 어떤 일정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원서_72p, Regarding our "provisional existence" as unreal was in itself an important factor in causing the prisoners to lose their hold on life; everything in a way became pointless. Such people forgot that often it is just such an exceptionally difficult external situation which gives man the opportunity to grow spiritually beyond himself. Instead of taking the camp's difficulties as a test of their inner strength, they did not take their life seriously and despised it as something of no consequence. They preferred to close their eyes and to live in the past. Life for such people became meaningless. Natually onlyh a few people were capable of reaching great spiritual heights. But a few were given the chance to attain human greatness even through their apparent worldly failure and death, an accomplishment which in ordinary circumstances they would never have achieved. To the others of us, the mediocre and the half-hearted, the words of Bismarck could be applied: "Life is like being at the dentist. You always think that the worst is still to com, and yet it is over already> [번역판_130p,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이것이 단지 예외적으로 어려운 외형적 상황일 뿐이며,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수용소의 어려운 상황을 자신의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과거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렇게 위대한 영적인 고지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세상일에서의 실패와 죽음을 통해서도 이런 위대함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들은 평범한 환경에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낸다. 평범하고 의욕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 이 말을 들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치과 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원서_73p, It is a peculiarity of man that he can only live by looking to the future-sub specie aeternitatis. And this is his salvation in the most difficult moments of his existence, although he sometimes has to force his mind to the task.

I remember a personal experience. Almost in tears from pain(I had terrible sores on my feet from wearing torn shoes), I limped a few kilometers with our long column of men from the camp to our work site. Very cold, better winds struck us. I kept thinking of the endless little problems of our miserable life. What would there be to ear tonight? If a piece of sausage came as extra ration, should I exchange if for a piece of bread? Should I trade my last cigarette, which was left from a bonus I received a fortnight ago, for a bowl of soup? How could I get a piece of wire to replace the fragment which served as one of my shoelaces? Would I get to our work site in time to join my usual working party or would I have to join another, which might have a brutal foreman? What could I do to get on good terms with the Capo, who could help me to obtain work in camp instead of undertaking this horribly long daily march?

I became disgusted with the state of affairs which compelled me, daily and hourly, to think of only such trivial things, I forced my thoughts to turn to another subject. Suddenly I saw myself standing on the platform of a well-lit, warm and pleasant lecture room. In front of me sat an attentive audience on comfortable upholstered seats. I was giving a lecture on the psychology of the concentration camp! All that oppressed me at that moment became objective, seen and described from the remote viewpoint of science. by this method I succeeded somehow in hising above the situation, above the sufferings of the moment, and I observed them as if the were already of the past. Both I and my troubles became the object of an interesting psychoscientific study undertaken by myself. [번역판_131p, 이것이 인간의 특성으로 이렇게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날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릴 정도의 극심한 통증(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겼다)을 겪으며 긴 행렬에 끼어서 수용소에서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날은 추웠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우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는 우리의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만약 특별배급으로 소시자가 나온다면 그것을 빵과 바꾸어 먹을까? 2주일 전에 상으로 받았던 담배 한 개비를 수프 한 그릇과 바꾸어 먹을까? 한쪽 신발끈이 끊어졌는데 끈을 대신할 철사를 어디서 구하지? 시간 안에 작업장에 가서 평소에 내가 일하던 작업반에 낄 수 있을까? 그렇지 않고 다른 작업반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고약한 감독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매일 긴 행렬에 끼어서 작업장에 가지 않고 대신 수용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는 카포는 없을까? 그 카포와 잘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다가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내 앞에는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나 자신과 문제는 내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원서_74p, What does Spinoza sa in his Ethics?-Affets, qui passio est, desinit esse passio simlatqe eius claram et distinctam formanus ideam. Emotion, which is sffering, ceases to be as soon as we form a clear and precise picture of it.

The prisoner who had lost faith in the future-his future-was doomed. With his loss of belief in the future, he also lost his spiritual hold; he let himself decline and became subject to mental and physical decay. Usually this happened quite suddenly, in the form of crisis, the symptoms of which were familiar to the experienced camp inmate. We all feared this moment-not for ourselves which would have been pointless, but for our friends. Usually it began with the prisoner refusing one morning to get dressed and wash or to go out in the parade grounds. No entreaties, no blows, no threats had any effect. [번역판_133p,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무엇이락 했던가?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미래-그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수용소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이런 징후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라(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우리 친구 때문에 우리는 모두 이 순간을 두려워했다. 대체로 이런 현상은 아침에 수감자가 옷 입고 세수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아니면 연병장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간청과 주먹질, 위협도 효과가 없다.

 

[원서_75p, You know what I mean, doctor-for me! I wanted to know when we, when our camp, would be literated and our sufferings come to an end. <And wen did you have this dream?> I asked. "In February, 1945," he answered. It was then the beginning of march. "What did your dream voice answer?" Furtively he whispered to me, "March thirtieth." When F-told me about his dream, he was still full of hope and convinced that the voice of his dream would be right. But as the promised day drew nearer, the war news which reached our camp made it appear very unlikely that we would be free on the promised date. On March twenty-ninth, F-suddenly became ill and ran a high temperature. On March thirtieth, the day his prophecy had told him that the war and suffering would be over for him, he became deliious and lost consciousness. On March thirty-first, he was dead. To all outward appearances, he had died of typhus. [번역판_135p,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의사 양반? 나를 위해서 말이오. 저는 언제 우리가, 우리 수용소가 해방될 것인지, 우리의 고통은 언제 끝날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언제 그런 꿈을 꾸었소?> 내가 물었다. <1945년 2월에요> 그가 대답했다. 그 때는 3월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그래, 꿈속의 목소리가 뭐라고 대답합디까?> <3월 30일이래요> F는 희망에 차 있었고 꿈속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맞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의 날이 임박했을 때 우리 수용소로 들어온 전쟁 뉴스를 들어 보면 그 약속한 날에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3월 29일, F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열이 아주 높게 올랐다. 3월 30일, 그의 예언자가 그에게 말해 주었더너 거처럼 그에게서 전쟁과 고통이 떠나갔다. 헛소리를 하다가 그만 의식을 잃은 것이다. 3월 31일에 그는 죽었다. 사망의 직접적 원인은 발진티푸스였다.

 

[원서_76p, The observations of this one case and the conclusion drawn from them are in accordance with something that was drawn to my attention by the chief doctor of our concentration camp. The death rate in the week between Christmas, 1944, and New Year's, 1945, increased in camp beyond all previous experience. In his opinion, the explanation fro this increase did not lie in the harder working conditions or the deterioration of our food supplies or a change of weather or new epidemics. It was simply that the majority of the prisoners had lived in the naive hope that they would be home again by Christmas. As the time drew near and there was no encouraging news, the prisoners lost courage and disappointment overcame them. This had a dangerous influence on their powers of resistance and a great number of them died. [번역판_136p, 내가 이 경우를 통해 간찰하고 도출해낸 결론은 후에 수용소 주치의로부터 들었던 말과도 일치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 기간 동안 사망률이 증가한 원인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조건이나 식량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다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 그 중 많이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원서_77p, What was really needed was a fundamental change in our attitude life. We had to learn ourselves and, furthermore, we had to teach the despairing men, that it did not really matter what we expected from life, but rather what life expected from us. We needed to stop asking about the meaning of life, and instead to think of ourselves as those who were being questioned by life-daily and hourly. Our answer must consist, not in talk and meditation, but in right action and in right conduct. Life ultimately mean taking the responsibility to find the right answer to its problems and to fulfill the tasks which it constantly sets for each individual. These tasks, and therefore the meaning of life, differ from man to man, and from moment to moment. Thus it is impossible to define the meaning of life in a general way. Questions about the meaning of life can never be answered by sweeping statements. "Life" does not mean something vague, but something very real and concrete, just as life's tasks are also very real and concrete. They form man's destiny, which is different and unique for each individual. No man and no destiny can be compared with any other man or any other destiny. No situation repeats itself, and each situation calls for a different response. Sometimes the situation in which a man finds himself may reqire him to shape his own fate by action. At other times it is more advantageous for him to make use of an opportunity for contemplation and to realize assets in this way. Sometimes man may be required simply to accept fate, to bear his cross. Every situation is distinguished by its uniqueness, and there is always only one right answer to the problem posed by the situation at hand. When a man finds tht it is his destiny to suffer, he will have to accept his suffering as his task; his single and unique task.

[번역판_138p,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 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높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제들, 즉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가 현실적인 구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발 이것이 개개인마다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도, 어떤 운명도, 그와는 다른 사람, 그와는 다른 운명과 비교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경우는 한도 없으며, 각각의 상황은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행동에 들어갈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반면에 어떤 때에는 더 생각할 시간을 갖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십가가를 지고 나가야할 때도 있다. 각각의 상황들은 각각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갖는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비롯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단 하나만 있는 법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원서_78p, He will have to acknowledge the fact that even in suffering she is unique and alone in the universe. No one can relieve him of his suffering or suffer in his place. His unique opportunity lies in the way in which he bears his burden. For us, as prisoners, these thoughts were not speculations far removed from reality. They were the only thought could be of help to us. They kept us from despair, even when thee seemed to be no chance of coming out of it alive. Long age we had passed the stage of asking what was the meaning of life a naive query which understands life as the attaining of some aim through the active creation of something of value. For us, the mean of life embraced the wider cycles of life and death, of suffering and of dying. Once the meaning of suffering had been revealed to us, we refused to minimize or alleviate the camp's tortures by ignoring them or harboring false illusions and entertaining artificial optimism. Suffering had become a task on which we did not want to turn our backs. We had realized its hidden opportunities for achievement, the opportunities which cause the [oet Rilke to write, Wie viel ist aufzuleiden! (How much suffering there to get through!). There was plenty of suffering for us to get through. Therefore, it was necessary to face up to the full amount of suffering, trying to keep moments of weakness and furtive tears to a minimum. But there was no need to be ashamed of tear, for tears bore witness that a man had the greatest of corage, the courage to suffer. Only very few realized that. Shamefacedly some confessed occasionally that they had wept, like the comrade who answered my question of how e had gotten over his edema, by confessing, "I have wept it out of my system." [번역판_139p,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아디. 우리 같은 수감자들에게 이런 생각들은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사색적인 이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도둘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이 생각들을 우리가 살아서 그곳을 나올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때에도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었다. 오래 전에 우리는 삶의 의미가 무잇이냐고 묻는 단계를 통과했었다. 그 수순한 물음은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창조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어떤 목표를 성취하는 것으로 삶을 이해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는 싦과 죽음, 고통 받는 것과 죽어가는 것까지를 폭넓게 감싸 안는 포괄적인 것이었다. 시련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명백하게 밝혀지면서 우리는 수용소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무시하거나 거짓 상상을 하거나 억지로 만들어낸 낙관적인 생각을 즐기는 것으로 그것이 주는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시련 속에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릴케가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라는 시를 쓴 것도 아마 시련 속에 이런 기회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릴케는 마치 ‘작업을 완수한다’ 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시련을 완수한다’ 고 했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원서_79p, The tender beginnings of a psychotherapy or psychohygiene were, when they were possible at all in the camp, either individual or collective in nature. The individual psychotherapeutic attempts were often a kind of "lifesaving procedure." These efforts were usually concerned with the prevention of suicides. A very strict camp ruling forbade any efforts to save a man who attempted suicide. It was forbidden, for example, to cut down a man who was trying to hang himself. Therefore, it was all important to prevent these attempts from occurring. I remember two cases of would be suicide, which bore a striking similarity to each other. Both men had talked of their intentions to commit suicide. Both used the typical argument-they had nothing more to expect from life. In both cases it was a question of getting them to realize that life was still expecting something from them; something in the future was expected of them. We found, in fact, that for the one it was his child whom he adored and who was waiting for him in a foreign country. For the other it was a thing, not a person. this man was a scientist and had written a series of books which still needed to be finished. His work could not be done by anyone else, any more than another person could ever take the place of the father in his child's affections. This uniqueness and singleness which distinguishes each individual and give a meaning to his existence has a bearing on creative work as much as it does on human love. when impossibility of replacing a person is realized, it allows the responsibility which a man has for his existence and its continuance to appear in all its magnitude. [번역판_141p, 강제수용소에서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나는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정신요법과 정신건강법을 이용한 치료를 시도해 보았다.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요법은 일종의 ‘인명 구조’와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말하자면 자살 방지책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수용소에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금하는 엄한 규칙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목을 매 자살하려는 사람의 목에 달려 있는 줄을 끊는 것도 금했다. 따라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아직도 두 개의 자살미수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두 사건의 성격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두 사람 모두 자살 동기를 털어놓았다. 그 동기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내세우는 것, 즉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두 사람에게는 인생이 그들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그들이 인생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그 중 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의 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가 그렇게 사랑하는 그 아이는 지금 다른 나라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사람에게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닌 일이었다. 이 사람은 과학자로 그 동안 책을 써오고 있었는데 그것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사람의 아이, 그 아이에게 애정을 베푸는 데에 있어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청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원서_80 A man who becomes conscious of the responsibility he bears toward a human being who affectionately waits for him, or to an unfinished work, will never be able to throw away his life. He knows the "why" for his existence, and will be able to bear almost any "how".

The opportunities for collective psychotherapy were naturally limited in camp. The right example was more effective than words could ever be. A senior block warden who did not side with the authorities had, by his just and encouraging behavior, a thousand opportunities to exert a far-reaching moral influence on those under his jurisdiction. The immediate influence of behavior is always more effective than that of words. But at times a word was effective too, when mental receptiveness ad been intensified by some outer circumstances. I remember an incident when there was occasion for psychotherapeutic work on the inmates of a whole hut, due to an intensification of their receptiveness because of a certain external situation. It had been a bad day. On parade, an announcement had been made about the many actions that would, from then on, be regarded as sabotage and tgherefore punishable by immediate deah by handing. Among these were crimes such as cutting small strips from our old blankets(in order to improvise ankle supports) and very minor "theft"

[번역판_142,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집단을 대상으로 정신치료를 할 기회는 제한되어 있었다. 말로 하는 치료보다는 오히려 올바른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공정하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보아 수용소 편이 아닌 것이 분명한 한 고참 관리인은 자기 담당구역 사람들에게 지대한 도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무수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행동을 통해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대개는 말보다 훨씬 효과적인 법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말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어떤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의 폭이 넓어졌을 경우이다, 나는 어떤 외부적인 조건으로 이런 정신적 수용력이 넓어졌을 때 우연히 막사에 있던 모든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정신요법을 시도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아침 점호 시간에 반란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가 수없이 나열되었다. 만약 지금부터 이런 행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그 범죄행위 중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낡은 담요에서 조각(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을 잘라내는 행위와 ‘좀도둑질’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부터 며칠 전에 반쯤 굶어 죽게 된 한 수감자가 감자 창고를 부수고 들어가 거기에서 감자 몇 파운드를 훔친 적이 있었다. 절도가 있었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고, 수감자 몇 명은 그 ‘도둑’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수용소 당국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죄를 진 사람이 누군지 불지 않으며 수용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루 동안 굶기겠다고 했다. 2,500명의 사람들을 물론 굶는 쪽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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