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2022년 3월 30일(수)_80~85p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3.21|조회수19 목록 댓글 0

[영문판_80p A man who becomes conscious of the responsibility he bears toward a human being who affectionately waits for him, or to an unfinished work, will never be able to throw away his life. He knows the "why" for his existence, and will be able to bear almost any "how".

The opportunities for collective psychotherapy were naturally limited in camp. The right example was more effective than words could ever be. A senior block warden who did not side with the authorities had, by his just and encouraging behavior, a thousand opportunities to exert a far-reaching moral influence on those under his jurisdiction. The immediate influence of behavior is always more effective than that of words. But at times a word was effective too, when mental receptiveness ad been intensified by some outer circumstances. I remember an incident when there was occasion for psychotherapeutic work on the inmates of a whole hut, due to an intensification of their receptiveness because of a certain external situation.

It had been a bad day. On parade, an announcement had been made about the many actions that would, from then on, be regarded as sabotage and therefore punishable by immediate death by hanging. Among these were crimes such as cutting small strips from our old blankets(in order to improvise ankle supports) and very minor "theft". A few days previously a memi-starved prisoner had broken into the potato store to steal a few pounds of potatoes. The theft had been disconvered and some prisoners had recognized the "burglar." When the camp authorities heard about it they ordered that the guilty man be given up to them or the whole camp would starve fro a day. Naturally the 2,500 men preferred to fast. [번역판_142,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집단을 대상으로 정신치료를 할 기회는 제한되어 있었다. 말로 하는 치료보다는 오히려 올바른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공정하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보아 수용소 편이 아닌 것이 분명한 한 고참 관리인은 자기 담당구역 사람들에게 지대한 도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무수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행동을 통해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대개는 말보다 훨씬 효과적인 법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말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어떤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의 폭이 넓어졌을 경우이다, 나는 어떤 외부적인 조건으로 이런 정신적 수용력이 넓어졌을 때 우연히 막사에 있던 모든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정신요법을 시도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아침 점호 시간에 반란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가 수없이 나열되었다. 만약 지금부터 이런 행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그 범죄행위 중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낡은 담요에서 조각(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을 잘라내는 행위와 ‘좀도둑질’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전에 반쯤 굶어 죽게 된 한 수감자가 감자 창고를 부수고 들어가 거기에서 감자 몇 파운드를 훔친 적이 있었다. 절도가 있었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고, 수감자 몇 명은 그 ‘도둑’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수용소 당국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죄를 진 사람이 누군지 불지 않으며 수용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루 동안 굶기겠다고 했다. 2,500명의 사람들을 물론 굶는 쪽을 선택했다.

 

[원서_81 On the evening of this day of fasting we lay in our earthen huts-in a very low mood. Very little was said and every word sounded irritable. Then, to make matters even worse, the light went out. Tempers reached their lowest ebb. but our senior block warden was a wise man. He improvised a little talk about all that was on our minds at that moment. He talked about the many comrades who had dies in the last few days, either of sickness or of suicide. but he also mentioned what may have been the real reason for their deaths: giving up hope. He maintained that there should be some way of preventing possible future victims from reaching this extreme state. And it was to me that the warden pointed to give this advice.

God knows, I was not in the mood to give psychological explanations or to preach any sermons-to offer my comrades a kind of medical care of their souls. I was cold and hungry, irritable and tired, but I had to make the effort and use this unique opportunity. Encouragement was now more necessary than ever.

So I began by mentioning the most trivial of comforts first. I said that even in this Europe in the sixth winter of the Second World War, our situation was not the most terrible we could think of. I said that each of us had to ask himself what irreplaceable losses he had suffered u to then. I speculated that fro most of them these losses had really been few. Whoever was still alive had reason for hope. Health, family, happiness, professional abilities, fortune, position in society-all these were things that could be achieved again or restored. After all, we still had all our bones intact. Whatever we had gone through could still be an asset to us in the future. [번역판_144p, 하루 종일 꼬박 굶어야 했던 그날 저녁, 우리는 막사에 누워있었다.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몇 마디 말이 오갔을 뿐이고 한 마디 말조차도 신경에 거슬렸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불이 나가버렸다. 기분이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 고참 관리인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머리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를 입 밖에 냈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병이나 자살로 죽어간 수많은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 죽음의 진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희생자들이 이런 최악의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어떤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했다. 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정신의학에 대해 설명하거나 설교를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춥고, 배고프고, 짜증스럽고, 피곤했다. 하지만 나는 노력해야 했다.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이런 기회를 활용해야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절실한 때였기 때문이다. 나는 단수한 위로의 말부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여섯번째 겨울을 맞지만 지금 유럽의 정세를 보면 우리 처지가 그렇게 최악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련을 겪어오면서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잃은 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의외로 그들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희망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건강, 가족, 행복, 전문적인 능력, 재산, 사회적 지위-이것은 모두 나중에 다시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원서_82 And I quoted from Nietzsche: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arker"( That which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Then I spoke about the future. I said that to the impartial the future must seem hopeless. I agreed that each of us could guess for himself how small were his chances of survival. I told them that although there was still no typhus epidemic in the camp, I estimated my own chances at about one in twenty. But I told them that, in spite of this, I had no intention of losing hope and giving up. For no man knew what the future would bring, much less the next hour. Even if we could not expect any sensational military events in te next few days, who knew better than we, with our experience of camps, how great chances sometimes opened up, quite suddenly, at least for the individual. For instance, one might be attached unexpectedly to a special group with exceptionally good working conditions-for this was the kind of thing which constituted the "luck" of the prisoner. [번역판_145p, 그 때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공정하게 얘기해서 미래가 가망 없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적은지에 대해서도 모두 생각을 같이 했다. 우리 수용소에는 이작 발진티푸스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살아남을 확률을 20명 중의 한 명으로 점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잃거나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바로 한 시간 후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며칠 안에 전쟁 상황에 엄청난 반전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적어도 각 개인에게는 얼마나 엄청난 기회가, 그것도 아주 갑자기 찾아오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기대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작업환경이 좋은 특별 작업반에 배치된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일들이 당시 수감자들에게 바로 ‘행운’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일이었다.

 

[원서_83 I told my comrades(who lay motionless, although occasionally a sigh could be heard) that human life, under any circumstances, never ceases to have a meaning, and that this infinite meaning of life includes suffering and dying, privation and death. I asked the poor creatures who listened to me attentively in the darkness of the hut to face up to the seriousness of our position. They must not lost hope but should keep their courage in the certainty that the hopelessness of our struggle did not detract from its dignity and its meaning. I said that someone looks down on eac of us in difficult ours-a friend, a wife, somebody alive or dead, or a God-and he would not expect us to disappoint him. He would hope to find us suffering proudly-not miserable-knowing ow to die. And finally I spoke of our sacrifice, which had meaning in every case. It was in the nature of this sacrifice that it should appear to be pointless in the normal world, the world of material success. But in reality our sacrifice did have a meaning. Those of us who had any religious faith, I said frankly, could understand without difficulty. I told them of a comrade who on his arrival in camp had tried to make a pact with Heaven that his suffering and death should save the human being he loved from a painful end. For this man, suffering and death were meaningful; his was a sacrifice of the deepest significance. He did not want to die for nothing. None of us wanted that. The purpose of my words was to find a full meaning in our life, then and there, in that hut and in that practically hopeless situation. I saw that my efforts had been successful. When tghe electric bulb flared up again. I saw the miserable figures of my friends limping toward me to thank me with tears in their eyes. [번역판_147p, 나는 내 동료(꼼짝도 않고 누워 있다가 가끔 한숨을 쉬던)를 향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의미를 갖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삶의 무한한 의미에는 고통과 임종, 궁핍과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어둠 속에서 내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불쌍한 신의 피조물들에게 우리가 처한 가혹한 현실에 과감하게 직면하자고 했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고, 우리들의 가망 없는 싸움이 삶의 존엄성과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누군가가-친구나 아내, 산 사람, 혹은 죽은 사람, 혹은 하느님-각각 다른 시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지켜보고 있는 그 사람은 우리가 자기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의연하고 비굴하지 않게 시련을 이겨내고, 어떤 태도로 죽어야 하는지를 알기를 바란다고.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의 희생에 대해서 얘기했다. 희생은 어떤 경우에나 다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희생은 그 특성상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는, 물질적인 성공이 중요한 세계에서는 틀림없이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질 희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희생에는 의미가 있었다. 나는 진솔한 말투로 말했다. 우리 중에 종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한 동료가 하늘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런 종말로부터 구원받도록 해달라는 기도였다. 이런 사람에게 고난과 죽음은 의미 있는 것이다. 그의 희생은 아주 심오한 의미를 지닌 희생이다. 그는 헛되게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바로 그곳, 그 막사에서, 실제로 가망이 없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들의 삶이 갖고 있는 충만한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 이 말을 했다. 내 말은 효과가 있었다. 불이 다시 들어와 주위가 밝아지자 누추한 몰골을 한 동료들이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다가와 감사하다고 했다.

 

[원서_84p, But I have to confess here that only too rarely had I the inner strength to make contact with my companions in suffering and that I must have missed many opportunities for doing so. We now come to the third stage of a prisoner's mental reactions: the psychology of the prisoner after his liberation. but prior to that we shall consider a question which the psychologist is asked frequently, especially when he has personal knowledge of these matters: What can you tell us about the psychological make-up of the camp guards? How is it possible that men of flesh and blood could treat others as so many prisoners say they have been treated? Having once heard these accounts and having come to believe that these things did happen, one is bound to ask how, psychologically, they could happen. To answer this question without going into great detail, a few things must be pointed out: First, among the guards there were some sadists, sadists in the purest clinical sense. Second, these sadists were always selected when a really severe detachment of guards was needed. There was great joy at our work site when we had permission to warm lurselves for a few minutes(after two hours of work in the bitter frost) in front of a little stove which was fed with twigs and scraps of wood. But there were always some foremen who found a great pleasure in taking this comfort from us. Hoe clearly their faces reflected this pleasure when they not only forbade us to stand there but turned over the stove and dumped its lovely fire into the snow! When the SS took a dislike to a person, there was always some special man in their ranks known to have a passion for, and to be highly specialized in, sadistic torture, to whom the unfortuate prisoner was sent. [번역판_148p, 하지만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당시 나는 고통 받고 있는 내 동료들의 마음속에 그렇게 대단한 정신력을 심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분명히 나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텐데 내가 그것을 놓쳐버리고 만 것이 틀림없다. 이제 수감자들이 보인 심리적 대응의 세 번째 단계, 즉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에 대해 설명할 차례가 되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정신의학자들이 자주 받는 질문, 특히 개인적 체험을 통해 수용소 안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신의학자들이 자주 받는 질문에 대해 얘기해 보기로 하겠다. 그것은 수용소 감시병들의 정신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다. 살과 피를 가진 인간으로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일, 수용소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당했다고 말하는 바로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수용소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또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의학적으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이 질문에 대해 상세한 대답을 하기 전에 몇 가지 사실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감시병 중에는 새디스트, 정신의학적인 의미에서 정말로 순수한 새디스트가 있었다. 둘째, 이 새디스트들은 아주 잔인한 감시병이 필요한 경우에 선발되었다. 비록 몇 분 동안이지만 작업장에서 작은 가지와 나무토막으로 불을 지핀 따뜻한 난로 앞에서 몸을 녹일 수 있도록 허락받는다는(추운 날씨에 밖에서 2시간 동안 일하고 나면)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감독 중에는 우리가 누리는 이런 안락함을 빼앗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우리에게 불을 쬐지 못하게 하고, 난로를 뒤엎고, 그토록 사랑스런 불씨를 눈 속으로 던져버릴 때 그들의 얼굴에서 생생한 쾌감의 빛을 읽을 수 있었다. 만약 나치대원이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자. 그런데 감독 중에 이런 일에 아주 열정을 갖는 사람, 가학적인 고문에 아주 정통해 있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그 수감자는 불행하게도 바로 그 사람에게 보내진다.

 

[원서_85p, Third, the feelings of the majority of the guards had been dulled by the number of years in which, in ever-increasing does, they had witnessed te brutal methods of the camp. These morally and mentally hardened men at least refused to take active part in sadistic measures. But they did not prevent others from carrying them out. Fourth, it must be stated that even among the guards there were some who tok pity on us. I shall only mention the commander of the campf from which I was liberated. It was found after the liberation-only the camp doctor a prisoner himself, had known of it previously-that this an had paid no small sum of money from his own pocket in order to purchase medicines for his prisoners from the nearest market town. But the senior camp warden, a prisoner himself, was harder than any of the SS guards. [번역판_150p, 셋째, 대다수 감시병들은 감정이 메말라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몇 년 동안 수용소에서 점점 심해지는 야만적 행위를 보면서 지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렇게 도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메마른 사람들을 적어도 이런 가학적인 행위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다. 수용소가 해방- 그 전에는 주치의와 수감자 한 사람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된 후, 이 사람이 인근 마음에 있는 상점에서 수감자들에게 줄 약을 사기 위해 적지 않을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서 지불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면에 수용소 고참 관리인은 그 자신이 수감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나치 대원들보다 지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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