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_85p, Third, the feelings of the majority of the guards had been dulled by the number of years in which, in ever-increasing does, they had witnessed te brutal methods of the camp. These morally and mentally hardened men at least refused to take active part in sadistic measures. But they did not prevent others from carrying them out. Fourth, it must be stated that even among the guards there were some who tok pity on us. I shall only mention the commander of the campf from which I was liberated. It was found after the liberation-only the camp doctor a prisoner himself, had known of it previously-that this an had paid no small sum of money from his own pocket in order to purchase medicines for his prisoners from the nearest market town. But the senior camp warden, a prisoner himself, was harder than any of the SS guards. [번역판_150p, 셋째, 대다수 감시병들은 감정이 메말라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몇 년 동안 수용소에서 점점 심해지는 야만적 행위를 보면서 지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렇게 도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메마른 사람들을 적어도 이런 가학적인 행위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다. 수용소가 해방- 그 전에는 주치의와 수감자 한 사람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된 후, 이 사람이 인근 마음에 있는 상점에서 수감자들에게 줄 약을 사기 위해 적지 않을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서 지불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면에 수용소 고참 관리인은 그 자신이 수감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나치 대원들보다 지독했다.
[원서_85p_각주, An interesting incident with reference to this SS commander is in regard to the attitude toward him of some of his Jewish prisoners. At the end of the war when The American troops liberated the prisoners from our camp, three young Hungarian Jews hid this commander in the Bavarian woods. Then they went to the commandant of the American forces who was very eager to capture this SS commander and they said they would tell him where he was but only under certain conditions: the American commander must promise that absolutely no harm would come to this man.
[번역판_151p, 각주, 이 나치 친위대원 수용소장에 관해서 유태인 수감자들에 대한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들어와 우리 수용소소에 있는 수감자들을 풀어줄 때, 헝가리 출신의 젊은 유태인 세 명이 그를 바바리아 숲 속에 숨겼다. 그런 다음 그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미국 소장을 찾아가서 조건을 들어주면 그가 있는 곳을 말해 주겠다고 했다. 미군소장은 절대로 이 사람을 절대로 다치지 않게 할 것이라고 약속해야 했다. 얼마 후, 미군소장은 마침내 이 사람을 체포했을 경우 해를 입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미군소장은 약속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그를 복직시켰다. 왜냐하면 그에게 인근에 있는 바바리아 마을에서 옷을 수집해 우리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책임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아우슈비츠 역에 도착하자마마 운 나쁘게 가스실로 직행해야 했던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은 옷을 입고 있었다.
[원서_86p, He beat the other prisoners at every slightest opportunity, while the camp commander, to my knowledge, never once lifted his hand against any of us. It is apparent that mere knowledge that a man was either a camp gard or a prisoner tells us almost nothing. Human kindness can be found in all groups, even those which as a whole it would be easy to condemn. The boundaries between groups overlapped and we must not try to simplify matters by saying that these men were angels and those were devils. Certainly, it was a considerable achievement for a guard or foreman to be kind to the prisoners in spite of all the camp's influences, and, on the other hand, te baseness of a prisoner who treated his own companions badly was exception contemptible. Obviously the prisoners found the lack of character in such men especially upsetting, while they were profoundly moved by the smallest kindness received from any of thee guards. I remember how one day a foreman secretly gave me a piece of bread which I knew he must have saved from his breakfast ration. It was far more than ths small piece of bread which moved me to tears at that time. It was the human "something" which this man also gave to em-the word and look which accompanied the gift. From all this we may learn that there are two races of men in this world, but only these two-the "race" of the decent man and the "race" of the indecent man. Both are found everywhere; they penetrate into all groups of society. No group consists entirely of decent or indecent people. In this sense, no group is of "pure race"-and therefore one occasionally found a decent fellow among the camp guards. 번역판_150p, 그는 아주 사소한 것을 핑계 삼아 수감자들을 때렸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수용소장은 우리에게 손 한 번 댄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수감자였는가 아니면 감시병이었는가 하는 단순한 정보만 가지고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 인간의 자애심은 모든 집단, 심지어는 우리가 정말 벌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집단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과 집단 사이의 경계선이 서로 겹쳐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천사, 저 사람들은 악마라고 부르면서 문제를 단순화시키려도 해서는 안 된다. 수용소에서 그렇게 나쁜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수감자들을 친절하게 대했던 감시병이나 감독은 대단한 인간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같은 동료 수감자를 괴롭힌 사람의 비열함은 정말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물론 수감자들은 특별히 고약하게 굴었던 이런 사람들을 성격적으로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감시병으로부터 아주 작은 친절이라도 받았을 경우에는 깊이 감동했다. 나는 어느 날 감독이 은밀히 나를 불러 빵을 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침에 배급받은 빵을 아껴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나를 눈물로 감동시킨 빵의 의미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나에게 인간적인 ‘그 무엇’도 함께 주었다. 그것은 따뜻한 말과 눈길이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으며,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부류’와 미천한 인격을 가진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들은 사회의 모든 집단에 들어가 있다.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악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순전히 한 부류’의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수용소 감시병 중에도 가끔씩은 좋은 사람이 끼어 있을 수도 있다.
[원서_87p, Life in a concentration camp tore open the human soul and exposed its depths. Is it surprising that in those depths we again found only human qualities which in their very nature were a mixture of good and evil? The rift dividing good from evil, which goes through all human beings, reaches into the lowest depths and becomes apparent even on the bottom of the abyss which is laid open by the concentration camp. And now to the last chapter in the psychology of a concentration camp-the psychology of the prisoner who has been released. In describing the experiences of liberation, which naturally must be personal, we shall pick up the threads of that part of a our narrative which told of the morning when the white flag was hoisted above the camp gate after days of high tension. This state of inner suspense was followed by total relaxation. But it would be quite wrong to think that we went mad with joy. What, then, dd happen? With tired steps we prisoners dragged ourselves to the camp gates. Timidly we looked around and glanced at each other questioningly. Then we ventured a few steps out of camp. This time no orders were shouted at us, nor was there any need to duck quickly to avoid a blow or kick. Oh, no! This time the guards offered us cigarettes! We hardly recognized them at first; they had hurriedly changed ito civilian clothes. We walked slowly along thr road leading from the camp. Soon our legs hurt and threatened to buckle. but we limped on; we wanted to see the camp's surroundings for the first time with the eyes fo free men. "Freedom"-we repeated to ourselves, and yet we could not grasp it. We had said this word so often during all the years we dreamed about it, that it had lost its meanings. [번역판_152p,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성에서도 선과 악의 혼합이라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을 관통하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단층은 아주 심오한 곳까지 이르러 인간성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강제수용소라는 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제 강제수용소에서의 정신의학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풀려난 사람들의 심리이다. 해방의 체험을 애기하는 것은 당연히 개인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는 극도로 긴장했던 며칠이 지난 후 수용소 정문 위의 휜 깃발이 펄럭였던 그날 아침의 경험담 중에서 하나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정신적 흥분 상태에 이어 전체적인 긴장이완 상태가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가 미친 드시 기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들은 피곤한 발걸음으로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수용소 정문으로 걸어갔다. 조금씩 사방을 둘러보고, 의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과감하게 수용소 밖으로 몇 발자국 걸음을 옮겨보았다. 우리에게 고함을 치며 명령하는 사람이 없었다.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피하기 위해 자맥질하는 오리처럼 몸을 움츠릴 필요도 없었다. 세상에! 감시병들이 우리에게 담배를 권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에 우리는 그들을 거의 못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재빠르게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천히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곧 다리가 아파오면서 구부러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절뚝거리며 걸웠다. 자유인의 눈으로 그 전까지 미처 보지 못했던 수용소 주위를 한번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면서 얼마나 자주 이 단어를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그것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원서_88p, Its reality did not penetrate into our consciousness; we could not grasp the fact that freedom was ours.
We came to meadows full of flowers, We saw and realized that they were there, but we had no feelings about them. The first spark of joy came when we saw a rooster with a tail fo multicolored feather. 'But remained only a spark; we did not yet belong to this world.
In the evening when we all met again in our hut, one said secretly to the other, "Tell me, were you pleased today?"
And the other replied, feeling ashamed as he did not know we all felt similarly, "Truthfully, no!" We had literally lost the ability to feel pleased and had to relearn it slowly. sychologically, what was happening to the liberated prisoners could be called "depersonalization." Everything appeared unreal, unlikely, as in a dream. We could not believe it was true. How often in the past years had we been deceived by dreams! We dreamt that the day of liberation had come, that we had been set free, had returned home, greeted our friends, embraced our wives, sat down at the table and started to tell of all the things we had gone through-even of how we had often seen the day of liberation in our dream. And then-a whistle shrilled in our ears, the signal to get up, and our dreams of freedom came to an end. And now theh dream had come true. But could we truly believe in it? The body has fewer inhibitions than the mind. It made good use od the new freedom from the first moment on. It began to eat ravenously, for hours and days, even half the night. It is amazing what quantities one can eat. And on eof the prisoners was invited out by a friendly farmer in the neighborhood, he ate and ate and then drank coffee, which loosened his tongue, and he then began to tal, often for hours. [번역판_154p, 현실이 우리의 의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드디어 꽃이 만발한 초원에 이르게 되었다. 꽃이 만발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았지만, 거기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불꽃 튀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낀 것은 꼬리에 여러 가지 색깔의 깃털을 단 수닭을 보았을 때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모두 막사에 모였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은밀하게 물었다. “말해 보게. 자네 오늘 기뻤나?” 우리 모두 똑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 사람이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아니야.”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으로 천천히 그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이렇게 갇혀 있다가 석방된 죄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신의학적인 용어로 ‘이인증(depersonaliz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얼마나 많이 꿈에게 사기를 당해 왔는가! 자유의 날이 와서, 석방되고, 집으로 돌아가고,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아내를 포옹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그 동안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하는 꿈, 그런 꿈을 꾸었다. 오히려 너무 자주 꾼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그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자유의 날을 맞은 그 꿈도 끝이 나도 만다. 이제 그 꿈이 지금 실현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그 꿈을 믿을 수 있을까? 육체는 마음보다는 거부감이 적은 법이다. 육체는 처음부터 얻은 이 자유를 잘 활용했다. 드디어 우리 육체가 게걸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몇 시간 동안, 며칠 동안, 그리고 심지어는 한밤중에도 우리는 먹었다. 한 사람이 먹어치우는 음식의 양이 심히 놀라웠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이웃에 있는 친절한 농부의 초대를 받아 그 집에 갔는데, 거기에도 그는 먹고 또 먹고 그리고 커피까지 마셨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혀를 풀리게 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원서_89p, The pressure which had been on his mind for years was released at last. Hearing him talk, one got the impression that he had to talk, that his desire to speak was irresistible. I have known people who have been under heavy pressure only for a short time(for example, through a cross-examination by the Gestapo) to have similar reactions.
One day, a few days after the liberation, I walked through the country past flowering meadows, for miles, toward the market town near the camp. Larks rose to the sky and I could hear their joyous sing. There was no one be seen for miles around; there was nothing but the wide earth and sky and the larks' jubilation and the freedom of space. I stopped, looked around, and up to the sky-and then I went down on my knees. At that moment there was very little I knew of my self or of the world-I had but one sentence in mind-always the same: "I called to the Lord from my narrow prison and He answered me in the freedom of space."
How long I knelt there and repeated this sentence memory can no longer recall. But I knew that on the day, in the hour, my new life started. Step for step I progressed, until I again became a human being. The way that led from the acute mental tension of the last days in camp(from that war of nerves to mental peace) was certainly not free from obstacles. It would be an error to think that a liberated prisoner was not in need of spiritual care any more. [번역판_156p, 몇 년 동안 그의 마음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마침내 사라진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알았을 것이다. 그에게 말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는 것을. 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심한 중압감(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신경과민 상태)을 겪었던 사람이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았다. 혀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응어리도 함께 풀리는 데에는 여러 날이 걸렸다. 그런 다음에는 감정이 그것을 억압하고 있던 기기한 속박으로부터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자유를 찾은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수용소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가기 위해 꽃들이 만발한 들판을 지나 시골길을 걸었다.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주변 몇 마일 안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대지와 하늘, 종달새의 환호 그리고 자유로운 공간만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은 물론 이 세상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단 한 가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저는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그때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말을 되풀이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 날, 바로 그 순간부터 새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원서_90p, We have to consider that a man who has been under such enormous mental pressure for such a long time is naturally in some danger after his liberation, especially since the pressure was released quite suddenly. This danger(in the sense of psychological hygiene) is the psychological counterpart of the bends. Just as the physical health of the caisson worker would be endangered if he left his diver's chamber suddenly(where is under enormous atmospheric pressure), so the man who has suddenly been liberated from mental pressure can suffer damage to his moral and spiritual health.
During this psychological phase one observed that people with natures of a more primitive kind could not escape the influences of the brutality which had surrounded them in camp life. Now being free, they thought they could use their freedom licentiously and ruthlessly. The only thing that had changed for them was that they were now the oppressors instead of the oppressed. They became instigators, not objects, of willful force and injustice. They justified their behavior by their own terrible experiences. This was often revealed in apparently insignificant events. A friend was walking across a field with me toward the camp when suddenly we came to a field of green crops. Automatically, I avoided it, but he drew his arm through mine and dragged me through it. I stammered something about not treading down and young crops. He became annoyed, gave me an angry look and shouted, <You don't say! And hasn't enough been taken from us? My wife and child have been gassed-not to mention everything else-and you would forbid me to tread on a few stalks of oats!> [번역판_157p, 그렇게 심한 정신적 압박을, 그렇게 오랫동안 받았던 사람에게는 자유를 얻은 후에도 그 전과 똑같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히 그런 정신적 억압상태에서 갑자기 벗어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위험은 정신위생학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잠수병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속의 잠함에서 일하던 잠수부가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때 가장 위험한 것처럼 엄청난 정신적 억압을 받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건강에 손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이런 심리적 단계에서 원색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야만성의 영향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 자유를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제는 억압을 받는 쪽이 아니라 억압을 하는 쪽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이제 폭력과 불의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이런 일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 자주 발생한다. 어느날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들을 가로질러 수용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이 나타났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내 팔을 잡고 나를 밭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어린 농작물을 짓밟지 말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짜증을 냈다.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그런 말 하지 말게. 그만큼 빼앗았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 내 아내와 아이는 가스실에서 죽었어. 그것으로 더 이상 할 말 없는 것 아니야? 그런데도 자네는 내가 귀리 몇 포기 밟는다고 뭐라고 하다니!>
[원서_91p, Only slowly could these men be guided back to the commonplace truth that no one has the right to do wrong, not even if wrong has been done to them. We had to strive to lead them back to this truth, or the consequences would have been much worse than the lost of a few thousand stalks of oats. I can still see the prisoner who rolled up his shirt sleeves, thrust his right hand under my nose and shouted, "May this hand be cut off if I don't stain it with blood on the day when I get home!" I want to emphasize that the man who said these words was not a bad fellow. He had been the best of the comrades in camp and afterwards. Apart from the moral deformity resulting from the sudden release fo mental pressure, there were two fundamental experiences which threatened to damage the character of the liberated prisoner: bitterness and disillusionment when he returned to his former life. Bitterness was caused by a number of things he came up against in his former home town. When, on his return, a man found that in many places he was met only with a shrug of the shoulders and with hackneyed phrases, he tended to become bitter and to ask himself why he had gone through all that he had. When he heard the same phrases nearly everywhere-“We did not know about it,” and We, too, have suffered," then he asked himself, have they really nothing better to say to me? The experience of disillusionment is different. Here it was not one's fellow man(whose superficialit and lack of feeling was so disgusting that one finally felt like creeping into a hole and neither hearing nor seeing human beings any more)but fate itself which seemed so cruel. A man who for years had thought he had reached the absolute limit of all possible suffering now found that suffering has no limits, and that he could suffer still more, and still more intensely. [번역판_158p, 이런 사람들은 아주 천천히 평범한 진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진리로 다시 돌아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귀리 수천 포기를 잃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한 친구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오른손 주먹을 내 코 밑에 갖다대며 이렇게 소리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내가 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며 내 손을 잘라버리고 말테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말을 한 친구가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서나, 그 후에도 나의 가장 친한 동료였다. 정신적 억압에서 갑자기 풀려나게 되었을 때, 도덕적 결함을 보이는 현상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성격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두 가지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 겪게 되는 비통함과 환멸이다. 비통함은 그가 살던 마을로 돌아왔을 때 그가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면 그저 어깨를 으쓱하거나 상투적인 인사치레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는 점점 비통해지면서 자기가 과연 무엇 때문에 그 모든 고통을 겪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거의 모든 곳에서 거의 똑같은 말을 듣는다. <우리는 그것을 몰랐어요> 그리고 <우리도 똑같이 고통을 받았어요> 이런 말을 들어 때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저 사람들은 정말로 나에게 할 말이 없는 것일까?> 환멸을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여기서 그가 환멸을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토록 잔인해 보이는 운명 그 자체이다. 몇 년 동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시련과 고난의 절대적인 한계까지 가보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시련에는 끝이 없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시련을, 더 혹독하게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원서_92p, When we spoke about attempts to give a man in camp mental courage, we said that he had to be sown something to look forward to in the future. He had to be reminded that life still waited for him, that a human being waited for his return. But after liberation? There were some men who found that no one awaited them. Woe to him who found that the person whose memory alone had given him courage im camp did not exist any more! Woe to him who, when the day of his dreams finally came, found it so different from all he had longed for! Perhaps he boarded a trolley, traveled out to the home which he had seen for years in his mind, and only in his mind, and pressed the bell, just as he has longed to do in thousands of dreams, only to find that the person who should open the door was not there, and would nevr be there again. We all said to each other in camp that there could be no earthly happiness which could compensate for all we had suffered. We were not hoping for happiness-it was not that which gave us courage and gave meaning to our suffering, our sacrifices and our dying. And yet we were not prepared for unhappiness. This disillusionment, which awaited not a small number of prisoners, was an experience which these men ave found very hard to get over and which, for a psychiatrist, is also very difficult to help them overcome. But this must not be a discouragement to him; on the contrary, it should provided added stimulus.[번역판_160p, 내가 앞에서 수용ㅅ에 있는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용기를 주려고 할 때, 그가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얘기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삶이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고,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지만 정작 자유를 얻은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어떤 사람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슬프다! 수용소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용기를 주었던 그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여! 슬프다! 마침내 자유가 실현되었을 때, 모든 것이 자기가 꿈꾸어오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여! 어쩌면 그는 전차를 타고, 몇 년 동안 마음속에 그리던 집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꿈속에서 수천 번 되풀이했던 것처럼 벨을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문을 열어 주어야 할 그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없을 것이다. 수용소에 있을 때 우리는 이런 얘기를 했었다. 세상에 나가도 우리가 그 동안 겪었던 시련을 보상해 주루 많한 속세의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당시 우리가 바라던 것은 행복이 아니었다. 행복을 바라면서 스스로 용기를 얻고, 우리가 겪는 시련과 희생과 죽음에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행을 견딜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환멸 현상은 극복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이며, 나 같은 정신과 의사도 도와주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낙담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원서_93p, But for every one of the liberated prisoners, the day comes when, looking back on his camp experiences, he can no longer understand how he endured it all. As the day of this liberation eventually came, when everything seemed to him like a beautiful dream, so also the day comes when all his camp experiences seem to him nothing but a nightmare. The crowning experience of all, for the homecoming man, is the wonderful feeling, after all he has suffered, there is nothing he need fear any more-except his God. [번역판_161p,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언젠가는 그때를 돌아보며 자기가 그 모든 시련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다. 마침내 해방의 날이 찾아와 그 모든 일들이 아름다운 꿈같이 여겨졌던 것처럼 수용소에서 겪었던 그 모든 시련들이 언젠가는 그저 하나의 악몽으로 생각될 날이 올 것이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제 이 세상에서 신(God)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