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2022년 4월 5일(화)_20~25p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3.27|조회수40 목록 댓글 0

[영문판_20p, And then he pointed to me and said, "I hope you don't mind my telling you frankly." To the others he repeated, "Of all of you he is the only one who must fear the next selection. So don't worry!" And I smiled. I am now convinced that anyone in my place on that day would have done the same. I think it was Lessing who once said, "There are things which must cause you to lose your reason or you have none to lost." An abnormal reaction to an abnormal situation is normal behavior. Even we psychiatrists expect the reactions of a man to an abnormal situation, such as being committed to an asylum, to be abnormal in proportion to the degree of his normality. The reaction of a man to his admission to an concentration camp also represents an abnormal state of mind, but judged objectively it is a normal and, as will be shown later, typical reaction to the given circumstances. These reactions, as I have described them, began to change in a few days. The prisoner passed from the first to the second phase; the phase of relative apathy, in which he achieved a kind of emotional death. Apart from the already described reactions, the newly arrived prisoner experienced the tortures of other most painful emotions, all of which he tried to deaden. First of all, there was his boundless longing for his home and his family. This often could become so acute that he felt himself consumed by longing. Then there was disgust; disgust with all the ugliness which surrounded by him, even in its mere external forms. Most of the prisoners were given a uniform of rags which would have made a scarecrow elegant by comparison. Between the huts in the camp lay pure filth, and the more one worked to clear it away, the more one had to come in contact with it. [번역판_51p, 이렇게 말한 다음 그는 나를 가리키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솔직하게 얘기하는 걸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말했다. <자네들 가운데 다음 번 선별을 두려워할 사람은 바로 저 사람뿐이야 그러니 모두 안심들 하게.> 그 말에 모두 웃었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누구라도 당시 나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나와 똑같이 웃었을 것이다. 레싱이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이다. 심지어 나와 같은 정신과 의사들도 비정상적인 상황, 예를 들자면 정신병원에 수용된 상태라거나 평소보다 비교적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는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수용소에 들어오게 된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 역시 그들의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뒤에 얘기하겠지만 어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전형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들을 며칠이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첫 번째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상대적인 무감각의 단계로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감정과는 별도로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그 고통을 약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엇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집과 가족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은 너무나 간절해서 그리워하는데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키고 말 정도 된다.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온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혐오감, 심지어 그저 생긴 모양에서도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수용자들에게는 줄무늬 수의가 입혀졌다. 허수아비에게나 입혀야 어울릴 것 같은 넝마 같은 옷이다. 수용소의 막사와 막사 사이에는 오물로 뒤덮여 있었는데, 오물을 치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오물을 묻혀야 했다.

 

[영문판_21p, It was a favorite practice to detail a new arrival to a work group whose job was to clean the latrines and remove the sewage. If, as usually happened, some of the excrement splashed into his face during its transport over bumpy fields, any sign of disgust by the prisoner or any attempt to wipe off the filth would only be punished with a blow from a Capo. And thus the mortification of normal reactions was hastened. At first the prisoner looked away if he saw the punishment parades of another group; he could not bear to see fellow prisoners march up and down for hours in the mire, their movements directed by blows. Days or weeks later things changed. Early in the morning, when it was still dark, the prisoner stood in front of the gate with his detachment, ready to march. He heard a scream and saw how a comrade was knocked down, pulled to his feet again, and knocked down once more-and why? He was feverish but had reported to sick-ba at an improper time. He was being punished for this irregular attempt to be relieved of his duties. But the prisoner who had passed into the second state of his psychological reactions did not avert his eyes any more. By then his feelings were blunted, and he watched unmoved. Another example: he found himself waiting at sick-bay, hoping to be granted two days of light work inside the camp because of injuries or perhaps edema or fever. He stood unmoved while a twelve-year-old boy was carried in who had been forced to stand at attention for hours in the snow or to work outside with bard feet because there were no shoes for him in the camp. His toes had become frostbitten, and the doctor on duty picked off the black gangrenous stumps with tweezers, one by one. [번역판_53p, 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화장실을 청소하고 시궁창의 오물을 치우는 일에 배정되었다. 늘 있는 일이지만 땅이 울퉁불퉁한 들판이기 때문에 오물을 버리러 가는 동안 똥물이 얼굴에 튀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싫은 기색을 보인다거나 얼굴에 묻은 똥물을 닦아내려고 하면 카포가 가차 없이 주먹질을 해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에 대해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줄지어 행진하며 단체기합을 받는 것을 보면 고개를 돌렸다. 진흙탕 속을 몇 시간씩 헤매면서 걸핏하면 주먹질을 당하는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한 사람이 같은 반 동료들과 함께 행진을 나가기 위해 문 앞에 서 있었다. 바로 그 때 비명 소리와 함께 동료 한 사람이 쓰러졌다가 다시 일으켜 세워지고 또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 왜 저라는 거지? 알고 보니 그 사라에게 열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병실 담당자에게 말 한 시간이 적절치 못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회피하기 위해 규정에 어긋나는 시도를 했다는 이유로 벌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심리적 반응의 두 번째 단계로 들어선 그 사람은 그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감정이 무뎌져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자. 그 남자는 상처나 부종 혹은 열 때문에 앞으로 이틀 동안 수용소 안에서 하는 가벼운 일만 할 수 있게 허락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병실로 찾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12살의 소년이 실려 들어왔다. 눈 속에 차렷 자세로 여러 시간 동안 서 있었거나 아니면 수용소 안에 맞는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밖에서 작업을 해야 했던 거 같다. 그는 그것도 무감각하게 바라보았다. 소년의 발가락은 이미 동상에 걸려 있었는데 의사가 집게로 시커멓게 썩은 살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영문판_22p, Disgust, horror and pity are emotions that our spector could not really feel any more. The sufferers the dying and the dead, became such common-place sights to him after a few weeks of camp life that they could not move him any more. I spent some time in a hut for typhus patients who ran very high temperatures and were often delirious, many of them moribund. After one of them had just died, I watched without any emotional upset the scene that followed, which was repeated over and over again with each death. One by one the prisoners approached the still warm body. One grabbed the remains of a messy meal of potatoes; another decided that the corpse's wooden shoes were an improvement on his own, and exchanged them. A third man did the same with the dead man's coat, and another was glad to be able to secure some-just imagine!-genuine string. All this I watched with unconcern. Eventually I asked the "nurse" to remove the body. When he decided to do so, he took the corpse by its legs, allowing it to drop into the small corridor between the two rows of boards which wee the beds for the fifty typhus patients, and dragged it across the bumpy earthen floor toward the door. The two steps which led up into the open air always constituted a problem for us since we were exhausted from a chronic lack of food. After a few months' stay in the camp we could not walk up those steps, which were each about six inches high, without putting our hands on the door jambs to pull ourselves up. The man with the corpse approached the steps. Wearily he dragged himself up. Then the body: first the feet, then the trunk, and finally-with an uncanny rattling noise-the head of the corpse bumped up the two steps. [번역판_54p, 하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정말로 혐오감과 공포, 동점심 같은 감정들을 느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가거나 또 이미 죽은 것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용소에서 생활한 지 몇 주가 지나면 그런 것들이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나는 발진티푸스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한 막사에서 얼마 동안 보낸 적이 있다. 환자들은 고열에 시달렸으며, 종종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방금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감정 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죽음은 그 후에도 이어졌는데, 그 때마다 매번 그랬다. 한 사람이 숨을 거두자 나머지 사람들이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시신 곁으로 다가갔다. 한 사람이 죽은 사람이 먹다 남긴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감자를 낚아채 갔다. 그 다음 사람은 시신이 신고 있는 나무 신발이 자기 것보다 좋다고 생각했는지 신발을 바꾸어 갔다. 세 번째 사람도 죽은 사람의 외투를 가지고 앞에 사람이 했던 것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진짜 구두끈을 갖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나는 ‘간호사’에게 시신을 치워달라고 했다. 그는 시체의 다리를 잡아서 50명이나 되는 환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두 개의 나무판 사이로 나 있는 좁은 통로로 시체를 끌어내렸다. 그런 다음 울퉁불퉁한 바닥 위로 시체를 질질 끌고 문 쪽으로 갔다. 문 앞에는 계단이 두 개 있었다. 이 계단을 지나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데 바로 이 계단 때문에 우리는 늘 애를 먹었다. 만성적인 굶주림으로 기운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수용소에서 몇 달을 보낸 후, 우리는 걸어서 그 계단을 올라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높이가 겨우 6인치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곳에 오르기 위해 문설주를 붙잡고 자기 몸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시체를 끌고 간 사람이 그 계단 앞까지 갔다. 그는 힘겹게 자기 몸을 끌어 올렸다. 그런 다음에 시체가 끌어올려졌다. 처음에는 발이, 그 다음에는 몸뚱이, 그리고 드디어 제일 마지막으로-괴상하게 덜컥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머리가 올라갔다.

 

[영문판_23p, My place was on the opposite side of the hut, next to the small, sole window, which was built near the floor. While my cold hands clasped a bowl of hot soup from which I sipped greedily, I happened to look out the window. The corpse which had just been removed stared in at me with glazed eyes. Two hours before I had spoken to that man. Now I continued sipping soup. If my lack of emotion had not surprised me from the standpoint of professional interest, I would not remember this incident now, because there was so little feeling involved in it. Apathy, the blunting of the emotions and the feeling that one could not care any more, were the symptoms arising during the second stage of the prisoner's psychological reactions, and which eventually made him insensitive to daily and hourly beatings. By means of this insensibility the prisoner soon surrounded himself with a very necessary protective shell. Beatings occurred on the slightest provocation, sometimes for no reason at all. For example, bread was rationed out at our work site and we had to line up for it. Once the man behind me stood off a little to one side and that lack of symmetry displeased the SS guard. I did not know what was going on in the line behind me, nor in the mind of the SS guard, but suddenly I received two sharp blows on my head. Only then did I spot the guard at my side who was using his stick. At such a moment it is not the physical pain which hurts the most(and this applies to adults as much as to punished children); it is the mental agony caused by the injustice, the unreasonableness of it all. [번역판_56p, 당시 나는 막사 맞은편에 있었다. 바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는 작은 창문 옆에서 얼어붙은 손으로 뜨거운 수프가 담긴 그릇을 들고는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창밖을 보게 되었다. 방금 전에 옮겨진 시체가 동태 같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간 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다시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만약 그 때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직업의식을 가지고 나의 감정 결핍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일을 기억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그 일이 나에게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더 이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정서와 감정의 둔화를 의미하는 무감각은 수용자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의 두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징후이다. 수감자들을 마침내 매일같이 반복되는 구타에 대해서 무감각해진다. 이런 무감각을 수단으로 사람들은 자기 주위에 꼭 필요한 보호막을 쌓기에 이른다. 구타는 아주 사소한 이유로 일어났으며, 어떤 때는 전혀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빵이 작업장까지 배달되면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그런데 한 번은 내 뒤에 섰던 사람이 그 줄에서 약간 밖으로 삐져 나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줄이 삐뚤어졌다는 사실이 감시병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나는 내 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고, 감시병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내 머리통을 두 번 강타하는 것이 아닌가.

 

[영문판_24p, strangely enough, a blow which does not even find its mark can, under certain circumstances, hurt more than one that finds its mark. Once I was standing on a railway track in a snowstorm. In spite of the weather our party had to keep on working. I worked quite hard at mending the track with gravel, since that was the only way to keep warm. For only one moment I paused to get my breath and to lean on my shovel. Unfortunately the guard turned around just then and thought I was loafing. The pain he caused me was not from any insults or any blows. That guard did not think it worth his while to say anything, not even a word, to the ragged, emaciated figure standing before him, which probably reminded him only vaguely of a human form. Instead, he playfully picked up a stone and threw it at me. That, to me, seemed the way to attract the attention of a beast, to call a domestic animal back to its job, a creature which you have so little in common that you do not even punish it. The most painful part if beatings is the insult which they imply. At one time we had to carry some long, heavy girders over icy tracks. If one man had to carry some long, heavy girders over icy tracks. If one man slipped, he endangered not only himself but all the others who carried the same girder. An old friend of mine had a congenitally dislocated hip. He was glad to be capable of working in spite of it, since the physically disabled were almost certainly sent to death when a selection took place. He limped over the track with an especially heavy girder, and seem about to fall and drag the others with him, As yet, I was not carrying a girder so I jumped to his assistance without stopping to thing. I was immediately hit on the back, rudely reprimanded and ordered to return to my place. [번역판_57p, 그제서야 나는 몽둥이를 휘두른 감시병이 내 옆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이것은 어른들이나 벌을 받는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인데-정작 참기 힘든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다. 정말로 이상한 것은 흔적도 남지 않은 단 한 방의 구타가 어떤 상황에서는 그보다 심한 흔적을 남긴 구타보다 더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나는 눈보라를 맞으며 철로 위에 서 있었다. 험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에 있는 사람들을 일을 계속해야 했다. 나는 자갈을 가지고 철로를 고치기 위해 정말로 열심히 일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딱 한순간 숨을 돌리기 위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삽에 몸을 기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운 바쁘게도 감시병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내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때 그가 나에게 준 고통은 무례한 행동이나 주먹질이 아니었다. 넝마 같은 옷에 초라한 몰골을 하고 서 있는 나를 인간의 형태를 한 물건쯤으로 여겼는지 말은 물론 욕지거리도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욕을 하는 대신 그는 장난하듯이 돌멩이 한 개를 집어 나에게 던졌다. 그 행동이 나에게는 맹수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가축들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자기와는 닮은 점이 전혀 없어서 벌을 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짐승을 향해 하는 행동같이 느껴졌다. 구타를 당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주는 모멸감이었다. 한 번은 얼어붙은 철로 위로 길고 무거운 도리를 옮겨야 할 때가 있었다. 만약 한 사람이 미끄러지면 그 자신은 물론 함께 도리를 옮기던 모든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내 오랜 친구 중에 엉덩이가 선천적으로 기형인 장애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선별 과정에서 그와 같은 장애인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난히 무거운 도리를 들고 철로 위에서 절뚝거렸다. 자기가 넘어지는 물론이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넘어뜨릴 것 같았다. 마침 그 때 나는 도리를 옮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그를 도와주기 위해 달려갔다. 바로 그 때 등으로 한 방이 날아왔다. 감시병이 나에게 심하게 욕을 하면서 내 자리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영문판_25p, A few minutes previously the same guard who struck me had told us deprecatingly that we "pigs" lacked the spirit of comradeship. Another time, in a forest, with the temperature (화씨 2도, 섭씨 -17호, F=9/5*C+32, we began to dig up the topsoil, which was frozen hard, in order to lay water pipes. By then I had grown rather weak physically. Along came a foreman with chubby rosy cheeks. His face definitely reminded me of a pig's head. I noticed that he wore lovely warm gloves in that bitter cold. For a time he watched me silently. I felt that trouble was brewing, for in front of me lay the mound of earth which showed exactly how much I had dug. Then he began: "You pig, I have been watching you the whole time! I'll teach you to work, yet! Wait till you dig dirt with your teeth-you'll die like an animal! In two days I'll finish you off! You've never done a stroke of work in your life. What were you swine? A businessman?" I was past caring. But I had to take his threat of killing me seriously, so I straightened up and looked him directly in the eye. "I was a doctor-a specialist." "What? A doctor? I bet you got a lot of money out of people." As it happens, I did most of my work for no money at all, in clinics for the poor." But, now I had said too much. He threw himself on me and knocked me down, shouting like a madman. I can no longer remember what he shouted. I want to show with this apparently trivial story that there are moments when indignation can rouse even a seemingly hardened prisoner-indignation not about cruelty or pain, but about the insult connected with it. That time blood rushed to my head because I had to listen to a man judge my life who had so little idea of it, a man(I must confess: the following remark, which I made to my fellow-prisoners after scene, afforded me childish relief)"who looked so vulgar and brutal that the nurse in the out-patient ward in my hospital would not even have admitted him to the waiting room." [번역판_59p, 나를 때린 그 감시병은 불과 몇 분 전에 우리를 향해 멸시하는 투로 너희 같은 ‘돼지들’에게는 동지애가 없다고 욕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한 번은 화시 2도나 되는 날씨에 숲으로 가서 얼어붙은 땅을 파야 했던 적도 있었다. 땅 밑에 수도관을 박기 위해서였다. 그 때 나는 육체적으로 쇠약해져 있었다. 마침 저쪽에서 통통하고 혈색이 좋은 감독관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이 정말로 돼지머리를 연상시켰다. 나는 그가 이 혹독한 날씨에 아주 따뜻한 장갑을 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곧 벼락이 떨어질 조짐을 느꼈다. 내 앞에는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열심히 땅을 팠는지를 입증해 주는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이 돼지 같은 새끼. 처음부터 너를 지켜보고 있었어. 일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지. 네 이빨로 쓰레기더미를 팔 때까지 한번 기다려 봐! 그러면 너는 짐승처럼 죽을 거야. 아니 이틀 안에 아주 요절을 내주지.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놈이야 전에는 뭐 했지? 이 돼지새끼야. 장사했나?” 그가 화를 내는 것은 조금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나를 죽이겠다는 위협에는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의사, 전문의였습니다” “의사였다고? 사람들로부터 돈푼깨나 긁어 모았겠군.”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돈을 벌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진료소에서 일했습니다. 그 말을 하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너무 많이 말을 해버린 뒤였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면 나에게 달려들더니 나를 쓰러뜨렸다. 그 때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고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피가 머리로 솟구쳤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내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백할 것이 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동료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나서 내 분노가 어린아이처럼 누그러졌다는 사실이다. “저렇게 짐승 같고 야비하게 생긴 작자가 우리 병원에 오면 아마 간호사들이 대기실에도 들여보내지 않고 쫓아낼 것.”

 

[영문판_21p, It was a favorite practice to detail a new arrival to a work group whose job was to clean the latrines and remove the sewage. If, as usually happened, some of the excrement splashed into his face during its transport over bumpy fields, any sign of disgust by the prisoner or any attempt to wipe off the filth would only be punished with a blow from a Capo. And thus the mortification of normal reactions was hastened. At first the prisoner looked away if he saw the punishment parades of another group; he could not bear to see fellow prisoners march up and down for hours in the mire, their movements directed by blows. Days or weeks later things changed. Early in the morning, when it was still dark, the prisoner stood in front of the gate with his detachment, ready to march. He heard a scream and saw how a comrade was knocked down, pulled to his feet again, and knocked down once more-and why? He was feverish but had reported to sick-ba at an improper time. He was being punished for this irregular attempt to be relieved of his duties. But the prisoner who had passed into the second state of his psychological reactions did not avert his eyes any more. By then his feelings were blunted, and he watched unmoved. Another example: he found himself waiting at sick-bay, hoping to be granted two days of light work inside the camp because of injuries or perhaps edema or fever. He stood unmoved while a twelve-year-old boy was carried in who had been forced to stand at attention for hours in the snow or to work outside with bard feet because there were no shoes for him in the camp. His toes had become frostbitten, and the doctor on duty picked off the black gangrenous stumps with tweezers, one by one. [번역판_53p, 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화장실을 청소하고 시궁창의 오물을 치우는 일에 배정되었다. 늘 있는 일이지만 땅이 울퉁불퉁한 들판이기 때문에 오물을 버리러 가는 동안 똥물이 얼굴에 튀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싫은 기색을 보인다거나 얼굴에 묻은 똥물을 닦아내려고 하면 카포가 가차 없이 주먹질을 해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에 대해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줄지어 행진하며 단체기합을 받는 것을 보면 고개를 돌렸다. 진흙탕 속을 몇 시간씩 헤매면서 걸핏하면 주먹질을 당하는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한 사람이 같은 반 동료들과 함께 행진을 나가기 위해 문 앞에 서 있었다. 바로 그 때 비명 소리와 함께 동료 한 사람이 쓰러졌다가 다시 일으켜 세워지고 또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 왜 저라는 거지? 알고 보니 그 사라에게 열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병실 담당자에게 말 한 시간이 적절치 못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회피하기 위해 규정에 어긋나는 시도를 했다는 이유로 벌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심리적 반응의 두 번째 단계로 들어선 그 사람은 그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감정이 무뎌져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자. 그 남자는 상처나 부종 혹은 열 때문에 앞으로 이틀 동안 수용소 안에서 하는 가벼운 일만 할 수 있게 허락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병실로 찾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12살의 소년이 실려 들어왔다. 눈 속에 차렷 자세로 여러 시간 동안 서 있었거나 아니면 수용소 안에 맞는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밖에서 작업을 해야 했던 거 같다. 그는 그것도 무감각하게 바라보았다. 소년의 발가락은 이미 동상에 걸려 있었는데 의사가 집게로 시커멓게 썩은 살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영문판_22p, Disgust, horror and pity are emotions that our spector could not really feel any more. The sufferers the dying and the dead, became such common-place sights to him after a few weeks of camp life that they could not move him any more. I spent some time in a hut for typhus patients who ran very high temperatures and were often delirious, many of them moribund. After one of them had just died, I watched without any emotional upset the scene that followed, which was repeated over and over again with each death. One by one the prisoners approached the still warm body. One grabbed the remains of a messy meal of potatoes; another decided that the corpse's wooden shoes were an improvement on his own, and exchanged them. A third man did the same with the dead man's coat, and another was glad to be able to secure some-just imagine!-genuine string. All this I watched with unconcern. Eventually I asked the "nurse" to remove the body. When he decided to do so, he took the corpse by its legs, allowing it to drop into the small corridor between the two rows of boards which wee the beds for the fifty typhus patients, and dragged it across the bumpy earthen floor toward the door. The two steps which led up into the open air always constituted a problem for us since we were exhausted from a chronic lack of food. After a few months' stay in the camp we could not walk up those steps, which were each about six inches high, without putting our hands on the door jambs to pull ourselves up. The man with the corpse approached the steps. Wearily he dragged himself up. Then the body: first the feet, then the trunk, and finally-with an uncanny rattling noise-the head of the corpse bumped up the two steps. [번역판_54p, 하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정말로 혐오감과 공포, 동점심 같은 감정들을 느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가거나 또 이미 죽은 것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용소에서 생활한 지 몇 주가 지나면 그런 것들이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나는 발진티푸스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한 막사에서 얼마 동안 보낸 적이 있다. 환자들은 고열에 시달렸으며, 종종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방금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감정 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죽음은 그 후에도 이어졌는데, 그 때마다 매번 그랬다. 한 사람이 숨을 거두자 나머지 사람들이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시신 곁으로 다가갔다. 한 사람이 죽은 사람이 먹다 남긴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감자를 낚아채 갔다. 그 다음 사람은 시신이 신고 있는 나무 신발이 자기 것보다 좋다고 생각했는지 신발을 바꾸어 갔다. 세 번째 사람도 죽은 사람의 외투를 가지고 앞에 사람이 했던 것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진짜 구두끈을 갖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나는 ‘간호사’에게 시신을 치워달라고 했다. 그는 시체의 다리를 잡아서 50명이나 되는 환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두 개의 나무판 사이로 나 있는 좁은 통로로 시체를 끌어내렸다. 그런 다음 울퉁불퉁한 바닥 위로 시체를 질질 끌고 문 쪽으로 갔다. 문 앞에는 계단이 두 개 있었다. 이 계단을 지나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데 바로 이 계단 때문에 우리는 늘 애를 먹었다. 만성적인 굶주림으로 기운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수용소에서 몇 달을 보낸 후, 우리는 걸어서 그 계단을 올라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높이가 겨우 6인치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곳에 오르기 위해 문설주를 붙잡고 자기 몸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시체를 끌고 간 사람이 그 계단 앞까지 갔다. 그는 힘겹게 자기 몸을 끌어 올렸다. 그런 다음에 시체가 끌어올려졌다. 처음에는 발이, 그 다음에는 몸뚱이, 그리고 드디어 제일 마지막으로-괴상하게 덜컥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머리가 올라갔다.

 

[영문판_23p, My place was on the opposite side of the hut, next to the small, sole window, which was built near the floor. While my cold hands clasped a bowl of hot soup from which I sipped greedily, I happened to look out the window. The corpse which had just been removed stared in at me with glazed eyes. Two hours before I had spoken to that man. Now I continued sipping soup. If my lack of emotion had not surprised me from the standpoint of professional interest, I would not remember this incident now, because there was so little feeling involved in it. Apathy, the blunting of the emotions and the feeling that one could not care any more, were the symptoms arising during the second stage of the prisoner's psychological reactions, and which eventually made him insensitive to daily and hourly beatings. By means of this insensibility the prisoner soon surrounded himself with a very necessary protective shell. Beatings occurred on the slightest provocation, sometimes for no reason at all. For example, bread was rationed out at our work site and we had to line up for it. Once the man behind me stood off a little to one side and that lack of symmetry displeased the SS guard. I did not know what was going on in the line behind me, nor in the mind of the SS guard, but suddenly I received two sharp blows on my head. Only then did I spot the guard at my side who was using his stick. At such a moment it is not the physical pain which hurts the most(and this applies to adults as much as to punished children); it is the mental agony caused by the injustice, the unreasonableness of it all. [번역판_56p, 당시 나는 막사 맞은편에 있었다. 바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는 작은 창문 옆에서 얼어붙은 손으로 뜨거운 수프가 담긴 그릇을 들고는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창밖을 보게 되었다. 방금 전에 옮겨진 시체가 동태 같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간 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다시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만약 그 때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직업의식을 가지고 나의 감정 결핍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일을 기억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그 일이 나에게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더 이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정서와 감정의 둔화를 의미하는 무감각은 수용자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의 두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징후이다. 수감자들을 마침내 매일같이 반복되는 구타에 대해서 무감각해진다. 이런 무감각을 수단으로 사람들은 자기 주위에 꼭 필요한 보호막을 쌓기에 이른다. 구타는 아주 사소한 이유로 일어났으며, 어떤 때는 전혀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빵이 작업장까지 배달되면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그런데 한 번은 내 뒤에 섰던 사람이 그 줄에서 약간 밖으로 삐져 나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줄이 삐뚤어졌다는 사실이 감시병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나는 내 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고, 감시병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내 머리통을 두 번 강타하는 것이 아닌가.

 

[영문판_24p, strangely enough, a blow which does not even find its mark can, under certain circumstances, hurt more than one that finds its mark. Once I was standing on a railway track in a snowstorm. In spite of the weather our party had to keep on working. I worked quite hard at mending the track with gravel, since that was the only way to keep warm. For only one moment I paused to get my breath and to lean on my shovel. Unfortunately the guard turned around just then and thought I was loafing. The pain he caused me was not from any insults or any blows. That guard did not think it worth his while to say anything, not even a word, to the ragged, emaciated figure standing before him, which probably reminded him only vaguely of a human form. Instead, he playfully picked up a stone and threw it at me. That, to me, seemed the way to attract the attention of a beast, to call a domestic animal back to its job, a creature which you have so little in common that you do not even punish it. The most painful part if beatings is the insult which they imply. At one time we had to carry some long, heavy girders over icy tracks. If one man had to carry some long, heavy girders over icy tracks. If one man slipped, he endangered not only himself but all the others who carried the same girder. An old friend of mine had a congenitally dislocated hip. He was glad to be capable of working in spite of it, since the physically disabled were almost certainly sent to death when a selection took place. He limped over the track with an especially heavy girder, and seem about to fall and drag the others with him, As yet, I was not carrying a girder so I jumped to his assistance without stopping to thing. I was immediately hit on the back, rudely reprimanded and ordered to return to my place. [번역판_57p, 그제서야 나는 몽둥이를 휘두른 감시병이 내 옆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이것은 어른들이나 벌을 받는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인데-정작 참기 힘든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다. 정말로 이상한 것은 흔적도 남지 않은 단 한 방의 구타가 어떤 상황에서는 그보다 심한 흔적을 남긴 구타보다 더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나는 눈보라를 맞으며 철로 위에 서 있었다. 험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에 있는 사람들을 일을 계속해야 했다. 나는 자갈을 가지고 철로를 고치기 위해 정말로 열심히 일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딱 한순간 숨을 돌리기 위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삽에 몸을 기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운 바쁘게도 감시병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내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때 그가 나에게 준 고통은 무례한 행동이나 주먹질이 아니었다. 넝마 같은 옷에 초라한 몰골을 하고 서 있는 나를 인간의 형태를 한 물건쯤으로 여겼는지 말은 물론 욕지거리도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욕을 하는 대신 그는 장난하듯이 돌멩이 한 개를 집어 나에게 던졌다. 그 행동이 나에게는 맹수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가축들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자기와는 닮은 점이 전혀 없어서 벌을 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짐승을 향해 하는 행동같이 느껴졌다. 구타를 당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주는 모멸감이었다. 한 번은 얼어붙은 철로 위로 길고 무거운 도리를 옮겨야 할 때가 있었다. 만약 한 사람이 미끄러지면 그 자신은 물론 함께 도리를 옮기던 모든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내 오랜 친구 중에 엉덩이가 선천적으로 기형인 장애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선별 과정에서 그와 같은 장애인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난히 무거운 도리를 들고 철로 위에서 절뚝거렸다. 자기가 넘어지는 물론이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넘어뜨릴 것 같았다. 마침 그 때 나는 도리를 옮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그를 도와주기 위해 달려갔다. 바로 그 때 등으로 한 방이 날아왔다. 감시병이 나에게 심하게 욕을 하면서 내 자리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영문판_25p, A few minutes previously the same guard who struck me had told us deprecatingly that we "pigs" lacked the spirit of comradeship. Another time, in a forest, with the temperature (화씨 2도, 섭씨 -17호, F=9/5*C+32,, we began to dig up the topsoil, which was frozen hard, in order to lay water pipes. By then I had grown rather weak physically. Along came a foreman with chubby rosy cheeks. His face definitely reminded me of a pig's head. I noticed that he wore lovely warm gloves in that bitter cold. For a time he watched me silently. I felt that trouble was brewing, for in front of me lay the mound of earth which showed exactly how much I had dug. Then he began: "You pig, I have been watching you the whole time! I'll teach you to work, yet! Wait till you dig dirt with your teeth-you'll die like an animal! In two days I'll finish you off! You've never done a stroke of work in your life. What were you swine? A businessman?" I was past caring. But I had to take his threat of killing me seriously, so I straightened up and looked him directly in the eye. "I was a doctor-a specialist." "What? A doctor? I bet you got a lot of money out of people." As it happens, I did most of my work for no money at all, in clinics for the poor." But, now I had said too much. He threw himself on me and knocked me down, shouting like a madman. I can no longer remember what he shouted. I want to show with this apparently trivial story that there are moments when indignation can rouse even a seemingly hardened prisoner-indignation not about cruelty or pain, but about the insult connected with it. That time blood rushed to my head because I had to listen to a man judge my life who had so little idea of it, a man(I must confess: the following remark, which I made to my fellow-prisoners after scene, afforded me childish relief)"who looked so vulgar and brutal that the nurse in the out-patient ward in my hospital would not even have admitted him to the waiting room." [번역판_59p, 나를 때린 그 감시병은 불과 몇 분 전에 우리를 향해 멸시하는 투로 너희 같은 ‘돼지들’에게는 동지애가 없다고 욕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한 번은 화시 2도나 되는 날씨에 숲으로 가서 얼어붙은 땅을 파야 했던 적도 있었다. 땅 밑에 수도관을 박기 위해서였다. 그 때 나는 육체적으로 쇠약해져 있었다. 마침 저쪽에서 통통하고 혈색이 좋은 감독관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이 정말로 돼지머리를 연상시켰다. 나는 그가 이 혹독한 날씨에 아주 따뜻한 장갑을 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곧 벼락이 떨어질 조짐을 느꼈다. 내 앞에는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열심히 땅을 팠는지를 입증해 주는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이 돼지 같은 새끼. 처음부터 너를 지켜보고 있었어. 일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지. 네 이빨로 쓰레기더미를 팔 때까지 한번 기다려 봐! 그러면 너는 짐승처럼 죽을 거야. 아니 이틀 안에 아주 요절을 내주지.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놈이야 전에는 뭐 했지? 이 돼지새끼야. 장사했나?” 그가 화를 내는 것은 조금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나를 죽이겠다는 위협에는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의사, 전문의였습니다” “의사였다고? 사람들로부터 돈푼깨나 긁어 모았겠군.”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돈을 벌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진료소에서 일했습니다. 그 말을 하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너무 많이 말을 해버린 뒤였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면 나에게 달려들더니 나를 쓰러뜨렸다. 그 때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고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피가 머리로 솟구쳤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내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백할 것이 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동료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나서 내 분노가 어린아이처럼 누그러졌다는 사실이다. “저렇게 짐승 같고 야비하게 생긴 작자가 우리 병원에 오면 아마 간호사들이 대기실에도 들여보내지 않고 쫓아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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