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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_영문판

[레 미제라블_2월 25일(일)_Volume 1_BOOK 1_Chap 3, 4

작성자Frida|작성시간24.02.26|조회수37 목록 댓글 0

VOLUME I FANTINE

    BOOK FIRST - A JUST MAN(올바른 사람)

        CHAPTER III -  A HARD BISHOPRIC FOR A GOOD BISHOP(착한 주교에 어려운 교구)

 

The Bishop did not omit his pastoral visits because he had converted his carriage into alms. The diocese of D- is a fatiguing one. There are very few plains and a great many mountains; hardly any roads, as we have just seen; thirty-two curacies, forty-one vicarships, and two hundred and eighty-five auxiliary chapels. To visit all these is quite a task. The Bishop managed to do it. He went on foot when it was in the neighborhood, in a tilted spring-cart when it was on the plain, and on a donkey in the mountains. The two old women accompanied him. When the trip was too hard for them, he went alone. One day he arrived at Senez, which is an ancient episcopal city. He was mounted on an ass. His purse, which was very dry at that moment, did not permit him any other equipage. The mayor of the town came to receive him at the gate of the town, and watched him dismount from his ass, with scandalized eyes. Some of the citizens were laughing around him. "Monsieur the Mayor," said the Bishop, "and Messieurs Citizens, I perceive that I shock you. You think it very arrogant in a poor priest to ride an animal which was used by Jesus Christ. I have done so from necessity, I assure you, and not from vanity." 주교는 마차비를 더 많은 자선 활동을 하는데 사용했고 순회 또는 중단하지 않았다. 디뉴는 지형이 험한 곳이었다. 앞서 나온 것처럼 산이 많고 평지가 적어 평탄한 길이 없었다. 32개의 사제관과 41개의 사제;보관, 285개의 분교회당을 모두 찾아다니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주교는 그것을 해냈다. 가까운 곳을 갈 때는 걸었고, 평지는 삼륜 마차로, 그리고 산은 나귀를 타고 올라서 넘었다. 두 노부인도 주교를 따랐다. 그러나 만약 너무 험한 여정일 성싶으며 주교는 혼자서 길을 떠났다. 어느날 주교는 옛 주교관 소재지였던 스네라는 마을로 나귀를 타고 갔다. 사정이 좋지 않아 다른 것을 탈 형편도 되지 않았다. 시장이 주교관 문 앞에 나와 그가 나귀에서 내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주변에 모여든 시민들은 비웃고 있었다. “시장님 그리고 여러분.” 주교는 말했다. “당신들이 왜 못마땅하게 여기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타시던 나귀를 나 또한 타는 것이 보잘것없는 목자로서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몽양입니다. 바로 보셨습니다. 절대 허영심에서가 아니랍니다.”

 

In the course of these trips he was kind and indulgent, and talked rather than preached. He never went far in search of his arguments and his examples. He quoted to the inhabitants of one district the example of a neighboring district. In the cantons where they were harsh to the poor, he said: "Look at the people of Briancon! They have conferred on the poor, on widows and orphans, the right to have their meadows mown three days in advance of every one else. They rebuild their houses for them gratuitously when they are ruined. Therefore it is a country which is blessed by God. For a whole century, there has not been a single murderer among them." In villages which were greedy for profit and harvest, he said: "Look at the people of Embrun! 그는 온화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순회를 했다. 강론을 한다기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마주 대하는 듯했다. 그는 덕에 댛새 강론할 때도 아주 높이 떠받들며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예를 들 때도 결혼 먼 곳의 이야기를 대지 않았다. 어느 마을 사람들에게나 친숙할 만한 이웃의 예를 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박한 마을에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브리앙송 사람들이 어떤지 아십니까? 그분들은 가난한 사람이나 미망인, 고아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사흘 먼저 목장의 풀을 베게 합니다. 그들의 집이 무너지며 무료로 개축해 주지요. 그곳은 신의 축복을 받은 마을입니다. 100년 동안 한 명의 살인자도 생기지 않았지요. 많은 이익과 추수에 혈안이 된 마을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If, at the harvest season, the father of a family has his son away on service in the army, and his daughters at service in the town, and if he is ill and incapacitated, the cure recommends him to the prayers of the congregation; and on Sunday, after the mass, all the inhabitants of the village--men, women, and children-go to the poor man's field and do his harvesting for him, and carry his straw and his grain to his granary." To families divided by questions of money and inheritance he said: "Look at the mountaineers of Devolny, a country so wild that the nightingale is not heard there once in fifty years. Well, when the father of a family dies, the boys go off to seek their fortunes, leaving the property to the girls, so that they may find husbands." To the cantons which had a taste for lawsuits, and where the farmers ruined themselves in stamped paper, he said: "Look at those good peasants in the valley of Queyras! There are three thousand souls of them. Mon Dieu! it is like a little republic. Neither judge nor bailiff is known there. 앙브룅 사람들이 어떤지 아십니까? 추수할 때 아들이 군대에 가서 없고 딸은 도시로 돌을 벌러 가 있고, 아버지는 병이 깊어 일을 할 수 없다면, 신부는 주일 미사 강론에서 그 사정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답니다. 그러면 미사 뒤에 마을의 모든 사람이 그 가정을 위해 추수를 도와 줍니다.“ 돈이나 상속 문제로 화목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드볼뤼의 산골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아십니까? 그곳은 50년 동안 꾀꼬리 소리가 들린 적 없을 정도로 황폐한 곳입니다.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 죽으면, 누이들이 시집갈 수 있도록 재산을 물려주고 아들들은 다른 고장으로 돈벌이를 하러 떠납니다. 재판에 목숨을 걸고서 소작인을 파산하게 하는 마을에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케라스 산골의 착한 농부들을 아십니까? 그곳에는 3천 명이 넘게 살지만 마치 공화국을 보는 듯하답니다. 그곳에는 재판관도 집행관도 없습니다.

 

The mayor does everything. He allots the imposts, taxes each person conscientiously, judges quarrels for nothing, divides inheritances without charge, pronounces sentences gratuitously; and he is obeyed, because he is a just man among simple men." To villages where he found no schoolmaster, he quoted once more the people of Queyras: "Do you know how they manage?" he said. "Since a little country of a dozen or fifteen hearths cannot always support a teacher, they have school-masters who are paid by the whole valley, who make the round of the villages, spending a week in this one, ten days in that, and instruct them. These teachers go to the fairs. I have seen them there. They are to be recognized by the quill pens which they wear in the cord of their hat. 어떤 일이든 이장이 해결하지요. 그는 세금을 매기고 모든 사람에게서 양심적으로 추렴을 하고, 무료로 분쟁을 조정하고, 보수 없이 유산을 분배해 줍니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복종하지요. 그것은 그가 다른 순수하고 순박한 사람 속에서도 더욱 올바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교와 교사가 없는 마을에 가서는 다시 케라스 마을 이야기를 꺼냈다. 그곳 사람들을 아십니까? 열다섯 집 정도 통틀어 공동으로 여기에서, 열흘은 저기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선생님들은 장터에도 나오지요. 나는 거기서 선생님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귿르은 모자 리본에 깃털 펜을 꽂고 있어 한 눈에 알 수 있지요.

 

Those who teach reading only have one pen; those who teach reading and reckoning have two pens; those who teach reading, reckoning, and Latin have three pens. But what a disgrace to be ignorant! Do like the people of Queyras!" Thus he discoursed gravely and paternally; in default of examples, he invented parables, going directly to the point, with few phrases and many images, which characteristic formed the real eloquence of Jesus Christ. And being convinced himself, he was persuasive. “읽기 선생님은 깃털 펜을 한 개, 읽기와 수학 선생님은 깃털 펜 두 개, 읽기와 수하과 라틴어 선생님은 깃털 세 개를 꽂는답니다. 세 개를 꽂은 분은 대학자이지요. 무식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케라스 사람들을 본받으십시오.” 그는 진지하면서도 자애로운 목소리로 사람들을 타일렀다. 만약 적당한 이야기가 없다면 그에 맞는 우화를 만들어 내고, 간결하지만 뇌레 박힐 수 있는 말만 골라 했다. 그것은 스스로를 믿고 많은 사람들에게 강복을 주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같았다.

 

VOLUME  I  FANTINE

     BOOK FIRST -  A JUST MAN(올바른 사람)

               CHAPTER IV  -  WORKS CORRESPONDING TO WORDS(말과 일치되는 행위)

 

His conversation was gay and affable. He put himself on a level with the two old women who had passed their lives beside him. When he laughed, it was the laugh of a schoolboy. Madame Magloire liked to call him Your Grace [Votre Grandeur]. One day he rose from his arm-chair, and went to his library in search of a book. This book was on one of the upper shelves. As the bishop was rather short of stature, he could not reach it. "Madame Magloire," said he, "fetch me a chair. My greatness [grandeur] does not reach as far as that shelf." She had numerous relatives, who were very old and near to death, and of whom her sons were the natural heirs. The youngest of the three was to receive from a grand-aunt a good hundred thousand livres of income; the second was the heir by entail to the title of the Duke, his uncle; the eldest was to succeed to the peerage of his grandfather. 주교의 이야기는 차분하고 재미있었다. 자기와 함께 여생을 두 노부인에게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이야기하곤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때면 마치 초등학생처럼 순진해 보였다. 마글루아르 부인을 그를 큰어르신이라고 즐겨 불렀다. 그는 책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마글루아르 부인, 의자를 좀 가져다주시지요. 아무리 큰어르신이라고 해도 내 손을 저기에 닿질 않는답니다.” 그는 말했다. 주교의 먼 친척인 백작 부인은 틈만 나면 그에게 와서 자신의 세 아들이 장래에 상속받을 수 있는 유산에 대해 떠들어 대곤 했다. 그 여자에게는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매우 늙은 친척이 여럿 있었는데, 그 여자의 아들들이 당연히 그들의 상속자였다. 셋 중 막내아들은 대고모로부터 10만 리브르돋더 되는 연금을 상속할 예정이었고, 둘째 아들은 큰아버지의 공작 칭호의 대승상속인이었으며, 큰아들은 조부의 작위를 계승하기로 되어 있었다.

 

The Bishop was accustomed to listen in silence to these innocent and pardonable maternal boasts. On one occasion, however, he appeared to be more thoughtful than usual, while Madame de Lo was relating once again the details of all these inheritances and all these "expectations." She interrupted herself impatiently: "Mon Dieu, cousin! What are you thinking about?" "I am thinking," replied the Bishop, "of a singular remark, which is to be found, I believe, in St. Augustine, -'Place your hopes in the man from whom you do not inherit.'" At another time, on receiving a notification of the decease of a gentleman of the country-side, wherein not only the dignities of the dead man, but also the feudal and noble qualifications of all his relatives, spread over an entire page: "What a stout back Death has!" he exclaimed. "What a strange burden of titles is cheerfully imposed on him, and how much wit must men have, in order thus to press the tomb into the service of vanity!" He was gifted, on occasion, with a gentle raillery, which almost always concealed a serious meaning. In the course of one Lent, a youthful vicar came to D-, and preached in the cathedral. He was tolerably eloquent. The subject of his sermon was charity. 주교는 그와 같은 악의 없는, 따라서 용서할 수 있는 어머니으 자랑을 언제나 잠자코 들었다. 그러나 딱 한 번 그러지 않는 때가 있었다. 로 백작 부인이 그러한 상속이며, ‘유산 받을 희망이야기를 자질구레하게 되풀이하고 있을 때 주교는 여느 때와 달리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부인은 안타까이 여기며 이야기를 그쳤다. “아니, 오라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주교는 말했다. “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어. 아마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에 있는 말 같은데, ‘유산을 받지 못할 자에게 그대의 희망을 걸어라.’ 라는 구절을 생각하고 있어. 또 언젠가 그 지방 어느 귀족의 부고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고인의 작위뿐만 아니라, 모든 친척의 봉건적이고 귀족적인 칭호가 지면 전체에 걸쳐 장황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죽음이라 놈은 무엇이고 죄 걸머지는구나.” 주교는 외쳤다. “즉음에다 칭호들을 한 짐 잔뜩 거뜬히 걸머지웠구나! 이렇게 허영을 위하여 무덤까지 사용하다니, 인간이라 참 재주도 용하지.” 때때로 그는 유쾌한 농담도 했는데, 거기에는 거의 언제나 중대한 뜻이 들어 있었다. 사순절 때 젊은 사제보 하나가 디뉴에 와서 대성당에서 강론을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쾌 능변이었다. 강론의 제목은 자선이었다.

 

He urged the rich to give to the poor, in order to avoid hell, which he depicted in the most frightful manner of which he was capable, and to win paradise, which he represented as charming and desirable. Among the audience there was a wealthy retired merchant, who was somewhat of a usurer, named M. Geborand, who had amassed two millions in the manufacture of coarse cloth, serges, and woollen galloons. Never in his whole life had M. Geborand bestowed alms on any poor wretch. 그는 부자들에게, 지옥을 피하고 천국을 갈 수 있도록 가난한 자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권하면서, 지옥은 될 수 있는 대로 무시무시하게, 그리고 천국은 될 수 있는 대로 즐겁고 쾌적하게 묘사했다. 청중 가운데 제보랑이라는 은튀한 부자 상인이 있었는데 돈놀이도 좀 하는 자로서 투박한 나사와 서지, 두꺼운 모직, 터키 모자 같은 것을 만들어 50만 리브르쯤 벌었다. 제보랑 씨는 평생 불쌍한 사람에게 적선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After the delivery of that sermon, it was observed that he gave a sou every Sunday to the poor old beggar-women at the door of the cathedral. There were six of them to share it. One day the Bishop caught sight of him in the act of bestowing this charity, and said to his sister, with a smile, "There is M. Geborand purchasing paradise for a sou." When it was a question of charity, he was not to be rebuffed even by a refusal, and on such occasions he gave utterance to remarks which induced reflection. Once he was begging for the poor in a drawing-room of the town; there was present the Marquis de Champtercier, a wealthy and avaricious old man, who contrived to be, at one and the same time, an ultra-royalist and an ultra-Voltairian. This variety of man has actually existed. When the Bishop came to him, he touched his arm, "You must give me something, M. le Marquis." The Marquis turned round and answered dryly, "I have poor people of my own, Monseigneur." "Give them to me," replied the Bishop. 그런데 그의 설교를 듣고 나서 주일마다 성당 현관 앞에서 늙은 여자 거리들에게 ‘1를 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어느 날 주교는 그가 그렇게 동냥을 주는 것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누이에게 말해싿. “저것 봐. 제보랑 씨가 1수로 천국을 사고 있어.” 자선에 관한 한, 주교는 거절을 당해도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때는 상대방이 돌이켜 생각할 만한 말을 했다. 시내의 어떤 살롱에서 빈민들을 위하여 회사를 받고 있을 때였다. 거기에 샹테르시에 후작이라는 돈 많은 구두쇠 영감이 있었다. 그는 과격한 왕당파인 동시에 과격한 볼테르 파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그런 괴짜도 있다. 주교는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았다. “후작님, 당신도 내게 뭘 좀 주시지요.” 후작은 도아보며 쌀쌀하게 말했다. “예하, 제 주위에도 빈민들이 있는 걸요.” 그러자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을 내게 주시오.” 어느날 주교는 대성당에서 이런 강론을 했다.

 

One day he preached the following sermon in the cathedral:- "My very dear brethren, my good friends, there are thirteen hundred and twenty thousand peasants' dwellings in France which have but three openings; eighteen hundred and seventeen thousand hovels which have but two openings, the door and one window; and three hundred and forty-six thousand cabins besides which have but one opening, the door. And this arises from a thing which is called the tax on doors and windows. Just put poor families, old women and little children, in those buildings, and behold the fevers and maladies which result! 어느 날 주교는 대성당에서 이런 강론을 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선량한 친구인 여러분! 프랑스에는 대문과 창문을 합쳐 문이 세 개있는 농가가 132만호, 대문과 창문을 합쳐 두 개 있는 집이 1817천 호, 그리고 대문밖에 없는 오막살이가 346천호 됩니다. 이것은 대문세와 창문세를 징수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가족, 늙은 부인과 어린아이를 그런 환경에 두니 온갖 질병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Alas! God gives air to men; the law sells it to them. I do not blame the law, but I bless God. In the department of the Isere, in the Var, in the two departments of the Alpes, the Hautes, and the Basses, the peasants have not even wheelbarrows; they transport their manure on the backs of men; they have no candles, and they burn resinous sticks, and bits of rope dipped in pitch. That is the state of affairs throughout the whole of the hilly country of Dauphine. They make bread for six months at one time; they bake it with dried cow-dung. In the winter they break this bread up with an axe, and they soak it for twenty-four hours, in order to render it eatable. My brethren, have pity! behold the suffering on all sides of you!" 그러나 나는 법률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주님을 찬양하려는 것입니다. 이제르 현, 바르 현, 상하 두 알프 현에서는 손수레조차 없어서 농부들이 직접 등에 거름을 지고 일합니다. 그들은 초가 없어서 관솔이나 송진에 새끼를 적셔서 태웁니다. 도피네의 산간 지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반년 치 분량의 빵을 한꺼번에 만들어서 마치 말린 쇠똥처럼 말려 둡니다. 그래서 겨울이 오면 그것을 도끼로 쪼개어 먹을 수 있도록 물에 불립니다. 형제 여러분! 이들에게 사랑과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 주위에는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Born a Provencal, he easily familiarized himself with the dialect of the south. He said, "En be! moussu, ses sage?" as in lower Languedoc; "Onte anaras passa?" as in the Basses-Alpes; "Puerte un bouen moutu embe un bouen fromage grase," as in upper Dauphine. This pleased the people extremely, and contributed not a little to win him access to all spirits. He was perfectly at home in the thatched cottage and in the mountains. He understood how to say the grandest things in the most vulgar of idioms. As he spoke all tongues, he entered into all hearts. 프로방스 지방 태생인 주교는 남부 지방의 사투리를 여러 구사할 수 있었다. 그는 랑그도크 지방의 사투로 밤새 편안하셨어유?’ 라고 한다거나 또는 알프 지방의 어데 갔다 왔노?’ 라고 말하고는 또는 도핀 지방 사투리로 맛 좋은 양고기아 차진 치즈를 갖고 왔당께!’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민중은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열띤 환호를 보냈다. 주교는 오두막집이나 두메 산골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범한 말투로 매우 심오한 매시지를 전파했다. 여러 지방의 사투리를 자유자래로 쓰면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Moreover, he was the same towards people of the world and towards the lower classes. He condemned nothing in haste and without taking circumstances into account. He said, "Examine the road over which the fault has passed." Being, as he described himself with a smile, an ex-sinner, he had none of the asperities of austerity, and he professed, with a good deal of distinctness, and without the frown of the ferociously virtuous, a doctrine which may be summed up as follows: - "Man has upon him his flesh, which is at once his burden and his temptation. He drags it with him and yields to it. He must watch it, check it, repress it, and obey it only at the last extremity. There may be some fault even in this obedience; but the fault thus committed is venial; it is a fall, but a fall on the knees which may terminate in prayer. 게다가 주교는 사회사회 사람들과 하류계급 사람들을 차별 없이 대했다. 주위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 아무 근거 없이 짐작을 해서 잘못을 꾸짓는 일도 없었다. 그는 자주 이런 말을 썼다. “일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들어 보는 게 좋겠네.”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원래 지은 자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는 그는 남을 함부로 꾸짓는 일이 없었고,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오직 하나의 교리를 공언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인간이 지닌 육체는 무거운 짐이며 동시에 유혹이다. 인간을 그것을 짊어지고 또 그것에 끌려다닌다. 인간은 그것을 경계하고 억제하여 최후의 순간까지도 굴복해서는 안된다. 만약 여러 과실로 인해 그에 굴복했다면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용서받을 수 있다. 그것은 되도릴 수 없는 실수이나 기도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

 

"To be a saint is the exception; to be an upright man is the rule. Err, fall, sin if you will, but be upright. "The least possible sin is the law of man. No sin at all is the dream of the angel. All which is terrestrial is subject to sin. Sin is a gravitation." When he saw everyone exclaiming very loudly, and growing angry very quickly, "Oh! oh!" he said, with a smile; "to all appearance, this is a great crime which all the world commits. These are hypocrisies which have taken fright, and are in haste to make protest and to put themselves under shelter. "성자에 이르는 길은 예외요. 현인이 되는 것은 통칙이다. 판단을 그르치고, 게으름에 빠지고 죄를 짓게 되더라도 올바른 사람이 되는 길을 포기하지 말라. 죄를 적게 저지르는 것이 인간의 길이다. 죄를 전혀 저지르지 않는 것은 천사꿈이다. 지상의 모든 것은 죄를 면할 수 없다. 죄는 사람의 일이다. 사람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것을 보면 그는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뜻 보기에 큰 죄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누구나죄를 짓고 산다. 위선이라는 것이 갑자기 위협을 받으려 변명하고 감추려고 드는 법이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 무거운 고통을 짊어지고 가는 여자들이나 가난한 이들에게 늘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다.

 

He was indulgent towards women and poor people, on whom the burden of

human society rest. He said, "The faults of women, of children, of the feeble, the indigent, and the ignorant, are the fault of the husbands, the fathers, the masters, the strong, the rich, and the wise." He said, moreover, "Teach those who are ignorant as many things as possible; society is culpable, in that it does not afford instruction gratis; it is responsible for the night which it produces. This soul is full of shadow; sin is therein committed. The guilty one is not the person who has committed the sin, but the person who has created the shadow." It will be perceived that he had a peculiar manner of his own of judging things: I suspect that he obtained it from the Gospel. 그는 인간 사회에서 무거운 고통을 짊어지고 가는 여자들이나 가난한 이들에게 늘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다. “여자와 어린이, 하인과 약자, 가난하고 무지한 이의 잘못은 모두 나편과 부모, 주인과 강자, 부자와 학자의 잘못이다.” 주교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무지한 인간에게는 되도록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을 무료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사회는 스스로 만들어 낸 음지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우리의 영혼에 그늘이 지면 죄악이 태어나는 법이다. 죄인은 죄를 지은 자가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영혼 속에 그늘을 선사받은 이들이다.” 마음 속에 그늘이 가득차 있으면 거기에서 죄가 범해진다. 죄인은 죄를 범한 자가 아니라, 그늘을 만든 자이다. 보다시피 그는 사물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그만의 독특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것은 복음서에서 얻었으리라고 짐작된다.

 

One day he heard a criminal case, which was in preparation and on the point of trial, discussed in a drawing-room. A wretched man, being at the end of his resources, had coined counterfeit money, out of love for a woman, and for the child which he had had by her. Counterfeiting was still punishable with death at that epoch. The woman had been arrested in the act of passing the first false piece made by the man. She was held, but there were no proofs except against her. She alone could accuse her lover, and destroy him by her confession. She denied; they insisted. She persisted in her denial. Thereupon an idea occurred to the attorney for the crown. He invented an infidelity on the part of the lover, and succeeded, by means of fragments of letters cunningly presented, in persuading the unfortunate woman that she had a rival, and that the man was deceiving her. Thereupon, exasperated by jealousy, she denounced her lover, confessed all, proved all. The man was ruined. 어느 날 한 살롱에서 이미 예심이 끝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어느 형사소송 사건 소식을 들었다. 한 남자와 여자가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위해 어떨 수 없이 위조지폐를 만들었다. 위조지폐를 만든 자에게는 사형이 구형되던 시절이었다. 남자는 위조지폐를 만들었고, 여자는 그것을 사용하다가 구속되었다. 여자가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것에는 아무것도 발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가 자백을 한다면 그녀의 정부를 죗값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것도 자백하지 않았다. 검사는 위조지폐를 만든 자를 잡아내기 위해 묘책을 생각해 냈다. 검사는 교묘하게 만든 위조 편지를 보여 주면서 그녀가 완전히 속았으며 남자와 그의 연적에게 이용 당했다고 믿게 했다. 그 사실에 속은 여자는 모든 것을 자백하여 남자를 파멸로 몰고 갔다.

 

He was shortly to be tried at Aix with his accomplice. They were relating the matter, and each one was expressing enthusiasm over the cleverness of the magistrate. By bringing jealousy into play, he had caused the truth to burst forth in wrath, he had educed the justice of revenge. The Bishop listened to all this in silence. When they had finished, he inquired,- "Where are this man and woman to be tried?" "At the Court of Assizes." He went on, "And where will the advocate of the crown be tried?" A tragic event occurred at D- A man was condemned to death for murder. He was a wretched fellow, not exactly educated, not exactly ignorant, who had been a mountebank at fairs, and a writer for the public. The town took a great interest in the trial. On the eve of the day fixed for the execution of the condemned man, the chaplain of the prison fell ill. A priest was needed to attend the criminal in his last moments. They sent for the cure. It seems that he refused to come, saying, "That is no affair of mine. I have nothing to do with that unpleasant task, and with that mountebank: I, too, am ill; and besides, it is not my place." This reply was reported to the Bishop, who said, "Monsieur le Cure is right: it is not his place; it is mine." 남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곧 공범인 여자와 함께 판결을 받게 될 처지였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법관의 묘책에 감탄했다. 여자의 질투심을 이용해 진실을 밝혀냈고, 복수심을 통해 정의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주교는 줄곧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이렇게 물었다. “그 남자와 여자는 어디서 재판을 받습니까?” “중쇠 재판소입니다.” 주교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지요?” 그 무렵 디뉴에 비극적인 사건이 또 일어났다. 한 남자가 살인죄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는 유식한 사람은 못 되었지만, 그렇다고 무식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장터에서 마술사를 하기도 했고, 대서인을 하기도 했다. 이 재판에 민중의 관심이 쏠렸다. 사형 집행 전날 감옥이 교회사가 병이 났다. 그래서 사형수의 최후의 순간을 위해 주임 사제는 모신다는 전갈이 왔다. 그러나 주임 사제를 이를 거절했다.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오. 나는 마술사 따위의 시끄러운 일은 모르오. 나 또한 몸이 불편하오. 게다가 그 일은 내 직책과 맞지 않고.” 주임 사제의 거절은 주교에게도 보고되어싿. 그러자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주임 사제의 말은 옳다. 그것은 그의 직책이 아니라 내 직책에 맞다.”

 

He went instantly to the prison, descended to the cell of the "mountebank," called him by name, took him by the hand, and spoke to him. He passed the entire day with him, forgetful of food and sleep, praying to God for the soul of the condemned man, and praying the condemned man for his own. He told him the best truths, which are also the most simple. He was father, brother, friend; he was bishop only to bless. He taught him everything, encouraged and consoled him. The man was on the point of dying in despair. Death was an abyss to him. As he stood trembling on its mournful brink, he recoiled with horror. He was not sufficiently ignorant to be absolutely indifferent. His condemnation, which had been a profound shock, had, in a manner, broken through, here and there, that wall which separates us from the mystery of things, and which we call life. He gazed incessantly beyond this world through these fatal breaches, and beheld only darkness. The Bishop made him see light. 그는 감옥으로 가서 마술사를 만났다. 그리고 마술사의 손을 잡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교는 꼬박 하루 동안 그의 곁에 있으면서 사형수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올렸으며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그 사형수에게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는 단순하면서도 최고에 가까운 진리를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주교는 마술사의 아버지이자 형제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다. 오직 축복을 내릴 때에만 주교가 되어 주었다. 그는 마술사를 안정시켜 주고 위로해 주었다. 그는 절망의 늪을 헤매던 중이었다. 죽음은 그 마숤사에게 헤어날 수 없는 심연이었다. 어두운 죽음의 입구에서 그는 뒷걸음치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을 모를 정도로 무식하지 않았다. 처형이란 그 절박함은 사물의 신비로부터 그를 가로막고서, 인생이라는 장벽을 무너뜨려 놓은 것 같았다. 그는 그 무서운 틈새로 세상을 내다보면서 짙은 어둠을 느꼈다. 그러나 주교는 그에게 빛을 주었다.

 

On the following day, when they came to fetch the unhappy wretch, the Bishop was still there. He followed him, and exhibited himself to the eyes of the crowd in his purple camail and with his episcopal cross upon his neck, side by side with the criminal bound with cords. He mounted the tumbril with him, he mounted the scaffold with him. The sufferer, who had been so gloomy and cast down on the preceding day, was radiant. He felt that his soul was reconciled, and he hoped in God. The Bishop embraced him, and at the moment when the knife was about to fall, he said to him: "God raises from the dead him whom man slays; he whom his brothers have rejected finds his Father once more. Pray, believe, enter into life: the Father is there. When he descended from the scaffold, there was something in his look which made the people draw aside to let him pass. They did not know which was most worthy of admiration, his pallor or his serenity. "이튿날 사람들이 죄수를 데리러 갔을 때, 주교는 그의 곁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죄수의 뒤를 따라싿. 자주색 법의를 걸치고 주교 십자가를 목에 두른 주교의 모습이 밧줄에 묶인 죄수 옆에 나란히 보였다. 주교는 죄수와 함께 수레를 타고 단두대에 올랐다. 전날만 해도 어둠에 잠겨 있던 죄수의 영혼이 빛으로 충만해져 있었다. 그는 주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서 영혼의 구원을 느끼는 듯 보였다. 주교는 죄수와 포옹을 나누었다. 그리고 칼이 내려치려는 찰나에 죄수에게 말했다. “인간의 손에 죽은 자는 주님께서 되돌려 주실 것입니다. 동포에게 쫓긴 자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를 올리고 생명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십니다.” 단두대에서 주교가 내려올 때 그의 눈이 강렬하게 빛나 사람들은 옷깃을 여몄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울린 그 빛이 창백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태연함 때문이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On his return to the humble dwelling, which he designated, with a smile, as his palace, he said to his sister, "I have just officiated pontifically." Since the most sublime things are often those which are the least understood, there were people in the town who said, when commenting on this conduct of the Bishop, "It is affectation." This, however, was a remark which was confined to the drawing-rooms. The populace, which perceives no jest in holy deeds, was touched, and admired him. As for the Bishop, it was a shock to him to have beheld the guillotine, and it was a long time before he recovered from it. In fact, when the scaffold is there, all erected and prepared, it has something about it which produces hallucination. One may feel a certain indifference to the death penalty, one may refrain from pronouncing upon it, from saying yes or no, so long as one has not seen a guillotine with one's own eyes: but if one encounters one of them, the shock is violent; one is forced to decide, and to take part for or against. Some admireit, like de Maistre; others execrate it, like Beccaria. The guillotine is the concretion of the law; it is called vindicte; it is not neutral, and it does not permit you to remain neutral. He who sees it shivers with the most mysterious of shivers. All social problems erect their interrogation point around this chopping-knife. The scaffold is a vision. 주교는 그가 늘 나의 궁전이라고 부르는 그 허름한 숙소로 돌아와 누이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주교의 의식을 행하고 옸다.‘ 가장 숭고한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거리의 사람들은 주교의 행동을 위선이며 가식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같이 신성한 행위를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갔이 주교이 태도에 감명받고 감탄을 했다. 주교는 그 나름대로 단두대의 처형을 지켜본 일이 매우 충격적이엇다. 그래서 그 일을 잊고 마음을 추스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수는 사람들에게 환각을 일으킨다. 단두대의 처형을 직접 보지 않는 한 사람들은 실제와 그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며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두대의 처형을 보고 나면 그 충격은 너무나 커서 옳고 그름에 대해 무심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즉각 둘로 나뉘어서 메스트로(프랑스 종교철학자)처럼 찬성하기도 하고, 베카리아(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형법학자)처럼 저주하기도 한다. 단두대는 법률의 구현과 같다. 형벌이라 불리며, 중성이 아니고 사람들이 중립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을 보는 사람은 지극히 신비로운 전율을 느낀다. 모든 사회문제는 그 의문점을 이 단두대의 칼날 주위에 세웨 놓는다. 단두대는 환영(幻影)이다.

 

The scaffold is not a piece of carpentry; the scaffold is not a machine; the scaffold is not an inert bit of mechanism constructed of wood, iron and cords. It seems as though it were a being, possessed of I know not what sombre initiative; one would say that this piece of carpenter's work saw, that this machine heard, that this mechanism understood, that this wood, this iron, and these cords were possessed of will. In the frightful meditation into which its presence casts the soul the scaffold appears in terrible guise, and as though taking part in what is going on. 단두대는 나무 뼈대가 아니고 기계가 아니고, 단두대는 나무와 쇠와 밧줄로 만든 무력한 기계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뭔지 알 수 없는 음침한 자발성을 가진 일종의 생물과 같다. 마치 이 나무 뼈대가 눈으로 보고, 이 기계가 귀로 듣고, 이 기계장치가 이해하고, 이 나무와 쇠와 밧줄이 욕구하는 것 같다. 그 존재가 보는 사람의 영혼을 그 속으로 던지는 무서운 몽환 속에서, 단두대는 무시무시하게 보이고, 제가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 같다.

 

The scaffold is the accomplice of the executioner; it devours, it eats flesh, it drinks blood; the scaffold is a sort of monster fabricated by the judge and the carpenter, a spectre which seems to live with a horrible vitality composed of all the death which it has inflicted. Therefore, the impression was terrible and profound; on the day following the execution, and on many succeeding days, the Bishop appeared to be crushed. The almost violent serenity of the funereal moment had disappeared; the phantom of social justice tormented him. He, who generally returned from all his deeds with a radiant satisfaction, seemed to be reproaching himself. 단두대는 사형집행인의 공범이다. 그것은 게걸스럽게 먹는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 단두대는 법관과 목수가 만들어낸 일종의 괴물이며, 제가 부여한 죽음으로 이루어진 무시무시한 생명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악귀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매우 음산하고 무섭다. 사형이 집행된 다음 날과 그 이후로 많은 날이 지났음에도 주교는 허탈감에 젖어 있었다. 사형이 질행되던 날의 침착함과 평정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회정의의 환영이 그의 마음을 괴로비혀 왔다. 언제나 밝은 미소를 띠었던 그가 스스로를 매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At times he talked to himself, and stammered lugubrious monologues in a low voice. This is one which his sister overheard one evening and preserved: "I did not think that it was so monstrous. It is wrong to become absorbed in the divine law to such a degree as not to perceive human law. Death belongs to God alone. By what right do men touch that unknown thing?" In course of time these impressions weakened and probably vanished. Nevertheless, it was observed that the Bishop thenceforth avoided passing the place of execution. 그는 가끔 홀로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음의 말들은 어느 날 밤 누이동생이 그의 말을 적어 두었던 것이다. ‘그럿이 이토록 무서울 줄 몰랐다. 인간의 규범을 몰랐을 만큼 신의 규범에 빠져 있었던 것은 내 잘못이다. 죽음은 주님의 뜻에 달려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권리로 인간이 이것을 빼앗는 것인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영혼도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극복해 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이후로 주교가 사형장을 피한다는 것을 알았다.

 

M. Myriel could be summoned at any hour to the bedside of the sick and dying. He did not ignore the fact that therein lay his greatest duty and his greatest labor. Widowed and orphaned families had no need to summon him; he came of his own accord. He understood how to sit down and hold his peace for long hours beside the man who had lost the wife of his love, of the mother who had lost her child. As he knew the moment for silence he knew also the moment for speech. Oh, admirable consoler! He sought not to efface sorrow by forgetfulness, but to magnify and dignify it by hope. 병자가 있는 곳에는 늘 미리엘 주교가 있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직책이자 의무임을 잘 알고 있었다. 과부나 고아의 집에서는 일부러 그를 청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그런 집이라면 자진해서 시간을 대싿. 아내를 잃은 사내나 아들을 잃은 어머니 곁이라면 주교는 몇시간이든 그들 옆을 지녔다. 묵묵히 옆자리를 지켜 주어야 할 때와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 때를 주교는 알고 있었다. 위대한 위안자여! 그는 잊음으로써고통을 지우려 하지 않고 희망으로써 그것을 감싸고 존엄한 것에 이르게 했다.

 

He said:- "Have a care of the manner in which you turn towards the dead. Think not of that which perishes. Gaze steadily. You will perceive the living light of your well-beloved dead in the depths of heaven." He knew that faith is wholesome. He sought to counsel and calm the despairing man, by pointing out to him the resigned man, and to transform the grief which gazes upon a grave by showing him the grief which fixes its gaze upon a star. “여러분은 우리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늘 이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썩어 가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똑똑히 그 안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래야 하늘 높은 곳에서 이어지는 고인의 영롱한 빛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신앙이 건전한 것임을 믿었다. 그는 참고 인내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을 위로해 주었으며, 별을 바라보는 사람의 슬픔을 이야기하며 무덤을 지키는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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