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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VC_6월 7일(금) 7장: Receiving Empathically

작성자Frida|작성시간24.06.08|조회수11 목록 댓글 0

7: Receiving Empathically

 

The last four chapters described the four components of NVC: what we are observing, feeling, and needing and what we would like to request to enrich our lives. ow we turn from self-expression‎ to apply these same four components to hearing what others are observing, feeling, needing, and requesting. We refer to this part of the communication process as receiving empathically. Presence: Don't just do something, Stand There. 제 3장부터 제 6장까지는 NVC의 네 가지 요소-우리가 무엇을 관찰하고, 어떻게 느끼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부탁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설명했다. 이제 이 네 요소를 적용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서 다른 사람의 관찰, 느낌, 욕구, 그리고 부탁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넘어가 보자.대화의 이 부분을 ‘공감으로 듣기’라고 부른다. 제 3장부터 제6장까지 NVC의 네 가지 요소-우리가 무엇을 관찰하고, 어떻게 느끼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하기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부탁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설명했다. 현존(현재에 있음) :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곳에 그대로 있어라.

 

Empathy: emptying our mind and listening with our whole being. 공감: 마음을 비우고 우리의 전 존재로 듣는 것.

 

Empathy is a respectful understanding of what others are experiencing. The Chinese philosopher Chuang-Tzu stated that true empathy requires listening with the whole being: "The hearing that is only in the ears is one thing. The hearing of the understanding is another. But the hearing of the spirit is not limited to any one faculties. 공감이란 다른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철학자 ‘장자’는 말했다. 진정한 공감이란 자신의 존재 전체로 듣는 것이라고. 듣는 것에는 귀로만 듣는 것이 있고, 마음으로 이해하면 듣는 것이 있다. 그러나 영혼으로 들을 때는 몸이나 마음 같은 어느 한 기능에 국한되지 않는다.

 

And when the faculties are empty, then the whole being listens. There is then a direct grasp of what is right there before you that can never be heard with the ear or understood with the mind. Empathy with others occurs only when we have successfully shed all preconceived ideas and judgments about them. The Austrian-born Israeli philosopher Martin Buber describes this quality of presence that life demands of us: “In spite of all similarities, every living situation has, like a newborn child, a new face, that has never been before and will never come again. It demands of you a reaction that cannot be prepared beforehand. It demands nothing of what is past. It demands presence, responsibility it demands you.” 이런 기능들이 비워졌을 때 전 존재로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직접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절대로 귀로 듣거나 마음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공감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가진 선입견과 판단에서 벗어난 후에 비로소 가능해진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이러한 ‘현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매순간은 항상 새로 태어난 아기와 같이 이전에도 없었고, 절대로 다시 올 수도 없는 새로운 얼굴을 가진다. 그래서 삶은 당신에게 미리 준비할 수 없는 순간 순간의 반응을 요구한다. 그것은 과거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 바로 당신의 존재 그 자체를 요구한다.

 

Ask before offering advice or reassurance. 조언이나 안심시키기 전에 먼저 물어본다.

 

The presence that empathy requires is not easy to maintain. “The capacity to give one’s attention to a sufferer is a very rare and difficult thing: it is almost a miracle; asserts French philosopher Simone Weil. “Instead of offering empathy, we tend instead to give advice or reassurance and to explain our own position or feeling.” Empathy, on the other hand, requires us to focus full attention on the other person’s message. We give to others the time and space they need to express themselves fully and to feel understood. there is a Buddhist saying that apply describes this ability: “Don’t just do something, stand there.” 공감에 필요한 존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매우 드물고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다. 사실 기적이다. 라고 프랑스 철학자 시모 베유가 주장한다. 우리는 공감하는 대신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조언을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거나, 우리의 견해나 느낌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와 달리 공감은 상대방이 하는 말에 우리의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충분히 이해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이러한 능력을 적절히 표현하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곳에 그대로 있어라.”

 

It is often frustration for someone needing empathy to have us assume that they want reassurance or “fix-it” advice. I received a lesson from my daughter that taught me to check whether advice or reassurance is wanted before offering any. she was looking in the mirror one day and said, “I’m as ugly as a pig.” “You’re the most gorgeous creature God ever put on the face of the earth,” I declared. She shot me a look of exasperation, exclaimed, “Oh Daddy!” and slammed the door as she left the room. I later found out that she had wanted some empathy. Instead of my ill-timed reassuranceI could have asked, “Are you feeling disappointed with your appearance today?” My friend Holley Humphrey identified some common behaviors that prevent us from being sufficiently present to connect empathically with others. The following examples: 상대가 위로나 조언을 받고 싶어 할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공감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렇게 해 봐” 라고 해결책을 말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 이에 관해 나는 딸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 내 딸은 안심시켜주는 말이나 조언을 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이 그것을 원하는지 물어보라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하루는 딸 아이가 거울을 보면서 “난 돼지처럼 못 생겼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렇지 않아 너는 하느님이 지구상에 창조한 얼굴 중에서 제일 예쁘고 멋진 얼굴이야. 라고 했다. 딸은 화난 얼굴로 나를 쏘아 보면서 ‘아이 아빠’ 라고 하면서 문을 쾅 다도 나가버렸다. 나중에 나는 딸아이가 공감을 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황에 맞지 않게 안심시켜 주는 말을 하는 대신, 이렇게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네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내 친구 홀리 험프리는 알아냈다. 약간 공통적인 행위들. 그 행위들을 우리를 막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히 공감적으로 연결되려는 시도를.

 

Advising: "I think you should. . ." "How come you didn't. . .?" 조언하기 : 내 생각에 너는 ~해야 해. 왜 ~하지 않니.

 

One-upping(한술 더 뜨기): "That's nothing; wait you'll hear what happened to me."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나한테는 더한 일이 있었는데.

 

Educating: "This could turn into a very positive experience for you if you just. . ." 가르치려 들기 : 이건 정말 좋은 경험이니까 여기서 배워.

 

Consoling: "It wasn't your fault; you did the best you could."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최선을 다했어.

 

Story-telling: "That reminds me of the time. . ."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데.

 

Shutting down: "Cheer up. Don't feel so bad." 그만하고 기운 내.

 

Sympathizing: 'Oh, you poor thing. . ." 참 안됐다. 어쩌면 좋으니.

 

Interrogating: 'When did this begin?" 언제부터 그랬어?

 

Explaining: 'I would have called but. . ."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Correcting: "That's not how it happened."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In his book when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 Rabbi Harold Kushner describes how painful it was for him when his son was dying, to hear the words people offered that were intended to make him feel better. Even more painful was his recognition that twenty years he had been saying the same things to other people in similar situations.! Believing we have to “fix” situations and make others feel better prevents us from being present. Those of us in the role of counselor or psychotherapist are particularly susceptible to this belief. 랍비 해럴드 쿠쉬너는 그의 책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에서 자신의 아들이 죽어갈 때 사람들이 위로로 해 준 말들이 오히려 듣기에 고통스러웠다고 말하고 있다. 더 괴로웠던 것은 그의 깨달음이었다. 20년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식으로 위로의 말을 해왔다는 깨달음이었다. 문제를 해결해주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더 좋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가 온 존재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방해한다. 특히 상담사나 심리치료사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생각에 영향을 받기 쉽다.

 

Once, when I was working with twenty-three mental health professionals, I asked them to write, word for word, how they would respond to a client who says, “I’m feeling very depressed. I just don’t see any reason to go on.” I collected the answers they had written down and announced, I am now going to read out loud what each of you wrote. Imagine yourself in the role of the person who expressed the feeling of depression and raise your hand after each statement you hear that gives you a sense that you’ve been understood. Hands were raised to only three of the twenty-three responses. Questions such as, “When did this begin?” constituted the most frequent response they give the appearance that the professional is obtaining the information necessary to diagnose and then treat the problem. 23명의 정신 건강 전문가들을 교육할 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그들에게 ‘정말 우울해요. 더 살 까닭을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는 내담자에게 어떻게 반응할지 그대로 써보라고 했다. 나는 대답을 쓴 종이를 걷고 나서, “이제 여러분이 쓴 답을 제가 하나씩 읽을 때, 여러분 자신이 우울하다고 한 내담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이해를 받았다고 느끼면 손을 들어 주세요.” 라고 말했다. 23개의 응답 중 세 개에만 몇 명이 손을 들었다.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시작되었습니까? 라는 질문이 가장 흔한 응답이었다. 이러한 질문은 전문가가 문제를 분석하고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모으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In fact, such intellectual understanding of a problem blocks the kind of presence that empathy requires. When we are thinking about people’s words and listening to how connect to our theories, we are looking at people-we are not with them. The key ingredient of empathy is presence: We are wholly present with other party and what they are experiencing. This quality of presence distinguishes empathy from either mental understanding or sympathy. While we may choose at times to sympathize with others by feeling their feelings, it’s helpful to be aware that during the moment we are offering sympathy, we not empathizing. 그러나 이렇게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공감하는 데 필요한 존재로 있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생각하면서 머릿속에 있는 어느 이론과 어떻게 맞는지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지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감의 열쇠는 바로 우리의 존재이다. 그 사람 자신과 그 사람이 겪는 고통에 온전히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이 점이 공감을 머리로 하는 이해나 동정과 구별해 준다.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느낌을 같이 느낌으로써 이들을 동정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우리가 그 순간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Listening for feelings and needs.

In NVC, no matter what words people use to express themselves, we listen for their observations, feelings, needs, and requests. Imagine you’ve loaned your car to a new neighbor who had a personal emergency, and when your family finds out, they react with intensity: “You are a fool for having trusted a total stranger!” You can use the components of NVC to tune in to the feelings and needs of those family members in contrast to either (1) blaming yourself by taking the message personally, or (2) blaming and judging them. NVC는 사람들이 어떤 말로 자신을 표현하던, 그 사람의 관찰, 느낌, 욕구,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하는 부탁을 듣는 것이다. 새로 이사 온 이웃이 급한 일로 부탁을 해서 자동차를 빌려 주었다고 상상해보자. 이 사실을 알고 가족들이 강하게 반응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믿고 차를 빌려주다니, 정말 멍청하네요!> NVC를 이용할 수 있다. 가족들의 느낌과 욕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아래와 같이 하는 대신에 (1) 당신 스스로 그 메시지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2) 가족들을 비난하고 판단하는 대신에

 

In this situation, it's obvious what the family is observing and reacting to: the lending of the car to a relative stranger. In other situations, it may not be so clear. If a colleague tells us, "You're net a good player," we may not know what he or she is observing, although we can usually guess at the behavior that might have triggered such a statement. The following exchange, from a workshop, demonstrates the difficulty of focusing on other people's feelings and needs when we are accustomed to assuming responsibility for their feelings and taking messages personally. The woman in this dialogue wanted to learn to hear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certain of her husband's statements. 이 상황에서는 가족들이 관찰하고 반응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차를 빌려준 일에 대해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무엇을 관찰했는지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직장 동료가 “당신은 조직 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 라고 말했다면, 아마도 이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대개는 추측할 수 있겠지만 그 정확은 까닭은 모를 수 있다. 다음 내용은 워크숍에 참가한 부부의 대화이다. 이 대화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느낌에 책임을 지면서 그들의 말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에 초점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화에 나오는 이 여성은 남편이 하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느낌과 욕구를 듣는 방법을 배우기 원했다.

 

I suggested that she guess at his feelings and needs and then check it out with him. Listen to what people are needing rather than what they are thinking. Husband's statement: What good does talking to you do? You never listen. 나는 우선 남편의 느낌과 욕구를 추측해본 다음, 그에게 확인해보라고 제안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귀를 기울인다. 당신과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소? 당신을 내 말을 듣지 않는데.

 

Woman: Are you feeling unhappy with me? 당신 나 때문에 불행해요?

 

MBR: When you say “with me,” you imply that his feelings are the result of what you did. I would prefer you to say, "Are you unhappy because you were needing...?" and not "Are you unhappy with me?" It would put your attention on what's going on within him and decrease the likelihood of your taking the message personally. 부인께서 나 때문에 라고 말하면, 남편의 느낌은 부인 때문에 생겼다는 뜻이 되죠. 당신은 나 때문에 불행해요? 라고 말하기보다 당신은 ~(욕구)를 원하기 때문에 불만스러운가요? 라고 말하는 게 좋겠어요. 그러면 부인께서는 남편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고 있는지에 더 주의를 집중할 수 있게 되고 뿐만 아니라 부인께서 남편의 말을 자기 탓으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적어지지요.

 

Woman: But what would I say? "Are you unhappy because you. . .? because you what?" 그런데 그걸 어떻게 말로 하지요? 당신은 불행한가요? 왜냐하면 당신은 왜냐하면 당신은 그 다음은 뭐죠.

 

MBR: Get your clue from the content of your husband's message, "What good does talking to you do? You never listen." What is he needing that he's not getting when he say that? 남편이 한 말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당신과 이야기해봤자 무슨 소용 있겠소? 당신은 내 말을 듣지 않는데 라는 말에서 실마리를 얻으세요. 남편이 이렇게 말한 때, 남편이 원하지만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Woman: (trying to empathize with the needs expressed through her husband’s message) Are you feeling unhappy because you feel like I don’t understand you? (남편의 말에 표현된 욕구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면서) 당신은 내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불만스러운가요?

 

MBR: Notice that you are focusing on what he's thinking, and not on what he's needing. 남편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남편이 원하는 것 보다는.

 

I think you'll find people to be less threating if you hear what they're needing rather than what they're thinking about you. Instead of hearing that he's unhappy because he thinks you don't listen, focus on what he's needing by saying, "Are you unhappy because you are needing. . ."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는, 대신 그가 무엇을 원하고 있느냐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사람들이 덜 위협적으로 보일 겁니다. 당신이 남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그가 불만을 느낀다고 생각하기보다 남편에게 ‘당신은 ~(욕구)을 원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해 불만을 느끼나요’ 라고 말해 보세요. 그렇게 해서 남편의 욕구에 초점을 맞춰보세요.

 

Woman: (trying again) Are you feeling unhappy because you are needing to be heard? (다시 시도하면서) 당신은 이해받기를 원하는 데 그게 안 돼서 불만을 느끼나요?

 

MBR: That's what I had in mind. Does it make a difference for you to hear him this way?

 

Woman: Definitely-a big difference. I see what's going on for him without hearing that I had done anything wrong. 분명히 큰 차이가 있네요.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다는 소리로 들리지 않고, 그 대신 남편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네요.

 

Paraphrasing 바꾸어 말하기

After we focus our attention and hear what others are observing, feeling, and needing and what they are requesting to enrich their lives, we may wish to reflect back by paraphrasing what we have understood. In our previous discussion on requests(Chapter 6), we discussed how to ask for a reflection; now we will look at how to offer it to others. If we have accurately received the other party's message, our paraphrasing will confirm‎ this for them. If, on the other hand, our paraphrase is incorrect, we give the speaker an opportunity to correct us. 상대방이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필요로 하고 또 부탁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잘 들은 다음에, 우리는 상대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할 필요를 느낄 때가 있다. 6장에서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의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제는 우리가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말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들었다면, 그 말을 되풀이해줌으로써 그들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었다는 것을 확인해 줄 수 있다. 한 편 우리가 바꾸어 말해준 것이 정확하지 않았다면, 상대방이 우리가 잘못 이해한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Another advantage of choosing to reflect a message back to the other party is that it offers them time to reflect on what they've said and an opportunity to delve deeper into themselves. NVC suggests that our paraphrasing take the form of questions that reveal our understanding while eliciting any necessary corrections from the speaker. Questions may focus on these components: 이렇게 바꾸어 말하는 과정의 또 다른 이점은, 상대방이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자신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들은 말을 상대에게 되풀이 말해줄 때는, 우리가 그의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잘못 이해한 부분을 상대가 바로잡을 수 있도록 질문 형태로 하는 것이 좋다. 다음과 같이 관찰, 느낌, 욕구, 부탁에 맞춰서 질문해 본다.

 

1. What others are observing: "Are you reacting to how many evenings I was gone last week?" 상대방이 관찰한 것. 지난주에 저녁때마다 내가 집에 없었던 것 말하는 거니?

 

2. How others are feeling and the needs generating their feelings: "Are you feeling hurt because you would have liked more appreciation your efforts than you received?" 네가 노력한 것에 대해서 좀 더 인정받기 원했기 때문에 실망했니?

 

3. What others are requesting: "Are you wanting me to tell you my reasons for saying what I did?"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이유를 말해 주기를 부탁하는 거니?

 

These questions require us to sense what's going on within other people, while inviting their corrections should we have sensed incorrectly. Notice the difference between these questions and the ones below: 위와 같은 방식으로 질문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대방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추측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잘못 추측한 부분은 상대가 바로잡아 주도록 요청할 필요가 있다. 위 질문과 아래 질문을 차이점을 살펴보자.

 

1. "What did I do that you are referring to?" 지금 뭘 갖고 얘기하는 거야?

2. "How are you feeling?" "Why are you feeling that way?" 기분이 어때? 왜 그렇게 느껴?

3. "What are you wanting me to do about it?" 내가 어떻게 해 주면 좋겠어?

 

When asking for information, first express our own feelings and needs. 물어볼 때는 우선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한다.

 

This second set of questions asks for information without first sensing the speaker's reality. Though they may appear to be the most direct way to connect with what's going within the other person. I've found that questions like these are not the safest route to obtain the information we seek. Many such questions may give speakers the impression that we're a schoolteacher examining them or a psychotherapist working on a case. If we do decide to ask for information in this way, however, I've found that people feel safer if we first reveal the feelings and needs within ourselves that are generating the question. 두 번째 질문들이 가진 공통점은 먼저 상대방의 내적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 정보만을 묻는 것이다. 이런 질문이 상대방의 마음을 알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는 이런 질문이 우리가 얻고자 하는 정보를 얻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러한 질문은 듣는 사람에게 학생을 조사하는 교사나 내담자를 대하는 심리치료사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묻기로 했다면, 먼저 이런 질문을 하게 된 우리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면 듣는 사람이 좀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Thus, instead of asking someone, "What did I do?" we might say "I'm frustrated because I'd like to be clearer about what you are referring to. Would you be willing to tell me what I've done leads you to see me in this way?" While this step may not be necessary-or even helpful-in situations where our feelings and needs are clearly conveyed by the context or tone of voice, I would recommend it particularly during moments when the questions we ask are accompanied by strong emotions How do we determine if an occasion calls for us to reflect people's messages back to them? Certainly if we are unsure that we have accurately understood the message, we might use paraphrasing to elicit correction to our guess. But even if we are confident that we've understood them, we may sense the other party wanting confirmation that their message has been accurately received. 내가 뭘 했는데? 라고 묻는 대신 “네가 무엇에 관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좀 더 분명하게 알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 난감해. 나의 어떤 행동 때문에 네가 나를 그렇게 보게 됐는지 말해줄래? 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상황이나 억양을 통해 우리의 욕구와 느낌이 이미 명확하게 전해졌다면 이 단계를 생략할 수도 있다. 로는 굳이 다시 말하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질문에 강한 감정이 실려 있을 때는 특히 자신의 느낌이나 욕구를 먼저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상대의 말을 다시 반복해 줄 것인가? 물론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을 때 우리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고 확신할 때라도 상대방이 우리가 정확히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을 때는 우리가 들은 말을 되풀이해 줄 수 있다.

 

Reflect back messages that are emotionally charged.

Paraphrase only when it contributes to greater compassion and understanding. 강한 감정이 담긴 말은 반복해 준다.

 

They may even express this desire overtly by asking, "Is that clear?" or "Do you understand what I mean?" At such moments, hearing a clear paraphrase will often be more reassuring to the speaker than hearing simply, "Yes, I understand." For example, shortly after participating in an NVC training, a volunteer at a hospital was requested by some nurses to talk to an elderly patient; "We've told this woman she isn't that sick and that she'd get better if she took her medicine, but all she does is sit in her room all day long repeating, 'I want to die. I want to die.'" 상대방이 우리에게 <‘잘 알아들었니?> 혹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니? 라고 말하면서 명백하게 확인하고 싶어 할 때도 반복해 준다. 이런 경우에 <어 이해했어> 라고만 하기보다는 명확하게 그 사람을 뜻을 요약해서 다른 말해주면 상대를 더 안심시킬 수 있다. NVC 프로그램에 참가해 교육을 받기 시작한 한 여성의 얘기이다. 병원에서 자원 봉사하는 이 여성은 함께 일하는 간호사들로부터 나이든 한 여성 환자와 이야기를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우리는 이 환자에게 병이 그리 심각하지 않고, 약을 계속 복용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이 환자는 병실에 앉아서 하루 종일 ‘죽고 싶어, 죽어야지’ 라는 말만 계속해요.

 

The volunteer approached the elderly woman, and as the nurses had predicted, found her sitting alone, whispering over and over, "I want to die." "So you would like to die." the volunteer empathized. Surprised, the woman broke off her chant and appeared relieved. She began to talk about how no one understood how she was feeling. The volunteer continued to reflect back the woman's feelings; before long, such warmth had entered their dialogue that they were sitting with their arms locked around each other. Later that day, the nurses questioned the volunteer about her magic formula; the elderly woman had started to eat and take her medicine, and was apparently in better spirits. Although the nurses had tried to help her with advice and reassurance, it wasn't until her interaction with the volunteer that this woman received what she was truly needing: connectin with another human being who could hear her profound despair. 이 여성이 찾아갔을 때, 환자는 간호사들 말대로 병실에 혼자 앉아서 ‘죽어야지’ 라는 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힘드세요. 이 여성이 공감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그 환자는 놀라면서 죽어야지 라는 소리를 멈추었고, 다소 안심하는 듯이 보였다. 그 환자는 자신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느끼는지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여성은 환자의 느낌을 계속 반복해서 확인해 주었다. 이들의 대하에 온정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은 얼마 안 되어 서로 팔짱을 끼고 앉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간호사들은 이 여성에게 비결을 물어보았다. 간호사들은 환자에게 조언을 해주고 또 안심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 환자가 진심으로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절망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과의 연결이었다.

 

There are no infallible guidelines regarding when to paraphrase, but as a rule of thumb, it is safe to assume that speakers expressing intensely emotional messages would appreciate our reflecting these back to them. When we ourselves are talking, we can make it easier for the listener if we clearly signify when we want or don't want our words to be reflected back to us. There are occasions when we may choose not to verbally reflect someone's statements out of respect for certain cultural norms. For example, a Chinese man once attended a workshop to learn how to hear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his father's remarks. 들은 말을 어떻게 되풀이해서 확인해줘야 하는지 확실한 기준은 없다. 그러나 대략 강한 느낌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를 확인해주길 바란다고 생각하면 안전할 것이다. 우리가 말을 할 때는 우리말을 반복해주길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상대방에게 분명히 말해줌으로써 듣는 사람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문화규범 때문에 상대의 말을 반복해서 다시 확인하지 않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중국인 남성이 워크숍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가 하는 비난 뒤에 담긴 느낌과 욕구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Because he could not bear the criticism and attack he continually heard in his father's words, this man dreaded visiting his father and avoided him for months at a time. He came to me ten years later and reported that his ability to hear feelings and needs had radically transformed his relationship with his father to the point where they now enjoy a close and loving connection. 워크숍에 참가하기 전에는 계속되는 아버지의 비난과 공격을 참을 수 없었다. 때문에 아버지를 만나기가 두려웠고, 때로는 몇 달 동안이나 아버지를 피하기도 했다. 이 남성은 10년 후에 나를 찾아와서, 느낌과 욕구를 이해하게 된 덕분에 부자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 이제 아버지와 가까워졌고 서로 사랑을 느끼는 관계로까지 되었다고 했다.

 

Behind intimidating messages are merely people appealing to us to meet their needs. 위협적인 표현 뒤에는 단지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자 우리에게 호소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Although he listens for his father's feelings and needs, however, he does not paraphrase what he hears. "I never say it out loud." he explained. "In our culture, to direct-talk to a person about their feelings is something they're not used to. But thanks to the fact that I no longer hear what he says as an attack, but as his own feelings and needs, our relationship has become enormously wonderful." "So you're never going to talk directly to him about feelings, but it helps to be able to hear them?" I asked. "No, now I think I'm probably ready," he answered. "Now that we have such a solid relationship, if I were to say to him, 'Dad, I'd like to be able to talk directly to you about what we are feeling,' I think he just might be ready to do it. When we paraphrase, the tone of voice we use is highly important. When hearing themselves reflected back, people are likely to be sensitive to the slightest hint of criticism or sarcasm. They are likewise negatively affected by a declarative tone that implies that we are telling them what is going on inside of them. If we are consciously listening for other people's feelings and needs, however, our tone communicates that we're asking whether we have understood-not claiming that we have understood. 그는 아버지의 느낌과 욕구에 귀를 기울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다시 반복해서 확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나는 절대로 밖으로 얘기하지 않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느낌을 직접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내가 아버지의 말을 공격으로 듣지 않고, 아버지의 느낌과 욕구로 이해한 덕분에 관계는 몰라보게 좋아졌어요. 나는 ‘앞으로도 아버지와 말할 때 느낌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을 건가요? 서로 느낌을 들을 수 있으면 아주 도움이 될 텐데’ 라고 물었다. <절대는 아니고요. 저는 그렇게 할 마음의 준비가 됐어요. 이제 사이가 좋아졌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께 서로의 느낌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면 아버지가 내 말을 받아 들이실지도 몰라요.> 상대방의 말을 우리 자신의 말로 바꾸어 확인할 때는 억양이 자주 중요하다. 자신이 한 말을 도로 듣게 될 때, 사람들은 매우 작은 비평이나 비꼬는 기미에도 민감하다. 또 우리가 상대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단언하듯이 말하면 상대는 이것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느낌과 욕구를 깊게 듣고 다시 바꾸어 말해주는 경우라면, 우리의 억양을 통해서 우리가 상대를 이해했다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로 이해했는지 물어보고 있다는 사실이 상대에게 전해진다.

 

We also need to be prepared for the possibility that the intention behind our paraphrasing will be misinterpreted. "Don't pull any of that psychology crap on me!" we may be told. Should this occur, we continue our effort to sense the peaker's feelings and needs; perhaps we see in this case that the speaker doesn't trust our motives and needs more understanding of our intentions before he can appreciate hearing our paraphrases. As we've seen, all criticism, attack, insults, and judgments vanish when we focus attention on hearing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a message. The more we practice in this way, the more we realize a simple truth: behind all those messages we've allowed ourselves to be intimidated by are just individuals with unmet needs appealing to us to contribute to their well-being. When we receive messages with this awareness, we never feel dehumanized by what others have to say to us. 한 편 상대방의 말을 바꾸어 되풀이해주는 우리의 의도가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 말장난 그만둬.> 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도 우리는 그 말 뒤에 있는 상대의 느낌과 욕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한다. 이 경우에 아마도 상대는 우리의 의도를 믿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다시 말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려면 상대방은 먼저 우리의 의도에 대한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그 말 뒤의 느낌과 욕구에 우리 관심의 초점을 두면 모든 비난, 공격, 모욕, 판단은 사라진다. 이런 연습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우리에게 위협적으로 들렸던 모든 메시지 뒤에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이 우리에게 자신의 삶에 기여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의식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그 사람이 하는 말로 비인간적으로 취급받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A difficult message becomes an opportunity to enrich someone's life. Paraphrasing saves time. 듣기 힘든 말은 누군가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상대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시간을 절약해 준다.

 

We only feel dehumanized when we get trapped in derogatory images of other people or thoughts of wrongness about ourselves. As author and mythologist Joseph Campbell suggested, "‘What will they think of me?’ must be put aside for bliss." We begin to feel this bliss when messages previously experienced as critical or blaming begin to be seen for the gifts they are; opportunities to give to people who are in pain. 우리가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때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경멸적으로 볼 때나 아니면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생각에 빠졌을 때이다. 작가이며 신화 학자인 조지프 캠벨은 ‘우리가 더 없을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고 말했다. 전에 비판이나 비난으로 들리던 말이 선물로 보일 때, 곧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뭔가 기여할 수 있는 기회로 보일 때 우리는 더 없는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If it happens regularly that people distrust our motives and sincerity when we paraphrase their words, we may need to examine our own intentions more closely. Perhaps we are paraphrasing and engaging the components of NVC in a mechanistic way without maintaining clear consciousness of purpose. We might ask ourselves, for example, whether we are more intent on applying the process "correctly" than on connection with the human being in front of us. Or perhaps, even though we are using the form of NVC, our only interest is in changing the other person's behavior. Some people resist paraphrasing as a waste of time. One city administrator explained during a practice session. "I'm paid to go give facts and solutions, not to sit around doing psychotherapy with everyone who comes into my office." This same administrator, however, was being confronted by angry citizens who would come to him with their passionate concerns and leave dissatisfied for not having been heard. Some of these citizens later confided to me, "When you go to his office, he gives you a bunch of facts, but you never know whether he's heard you first. When that happens, you start to distrust his facts." Paraphrasing tends to save, rather than waste, time. Studies in labor-management negotiations demonstrate that the time required to reach conflict resolution is cut in half when each negotiator agrees, before responding, to accurately repeat what the previous speaker had said.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바꿔 말해주는데 계속해서 상대방이 우리의 의도와 진심을 믿지 않는 상황이 생길 때에는, 우리 자신의 의도를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분명한 목적 없이 상대의 말을 되풀이하거나 NVC의 모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NVC를 ‘정확하게’ 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또는 우리가 NVC를 대화에 적용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유일한 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워크숍 참가자 중 어떤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반복 확인하는 것을 시간 낭비로 보고 거부감을 갖는다. NVC 연습 시간에 한 시청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내 일을 시민들에게 정보와 해결 방안을 내주는 것이지 한가하게 앉아서 심리치료나 하라고 월급을 받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불만에 찬 시민들과 부딪히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원을 가지고 찾아갔으나 충분한 이해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 중 몇 사람이 나중에 내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 사람한테 가면 정보만 잔뜩 줘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우리말을 듣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늘어놓는 정보도 사실 믿어지지가 않아요.> 상대방의 말을 반복해 주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약해 준다. 노사 협상에 관한 연구들에 의하면, 협상 당사자들 각자가 자기 견해를 말하기 바로 직전에 말한 사람의 발언을 정확하게 되풀이해서 확인하기로 합의한 경우, 분쟁 해결에 걸리는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I recall a man who was initially skeptical about the value of paraphrasing. He and his wife were attending an NVC workshop during a time when their marriage was beset by serious problems. During the workshop, his wife said to him. “You never listen to me.” "I do too," he replied. "No, you don't," she encountered. I addressed the husband: "I'm afraid you just proved her point. You din't respond in a way that lets her know that you were listening to her." He was puzzled by the point I was making, so I asked for permission to play his role-which he gladly gave since he wasn't having too much success with it. His wife and I then had the following exchange: 상대의 말을 바꾸어 말해주는 것에 대해 처음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한 남성이 생각난다. 그는 부인과 함께 NVC 워크숍에 참가했는데, 그 때 부부는 결혼 생활에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당신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아요. 나는 당신 말을 듣고 있어. 아니에요 당신은 안 들어요. 나는 남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 지금 부인의 말을 바로 증명해주셨네요. 당신이 듣고 있다고 부인이 알 수 있도록 대답하지 않았거든요. 내 말에 그는 의아해했다. 그래서 내가 남편 역할을 대신해보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자신이 부인과 대화를 잘 이끌어나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기꺼이 동의했다. 부인과 나는 다음과 같이 대화를 나누었다.

 

Wife : "You never listen to me." 당신은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아요.

 

MBR in a role of husband: "It sounds like you're terribly frustrated because you would like to feel more connection when we speak." 우리가 같이 이야기할 때 더 깊은 연결을 느낄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많이 좌절감을 느끼는 것 같네요.

 

The wife was moved to tears when she finally received this confirmation that she had been understood. I turned to the husband and explained. "I believe this what she is telling you she needs-a reflection of her feelings and needs as a confirmation that she'd been heard." The husband seemed dumb-founded. "Is that all she wanted?" he asked, incredulous that such a simple act could have had such a strong impact on his wife. A short time later, he enjoyed the satisfaction firsthand when his wife reflected back to him a statement that he had made with great emotional intensity. Savoring her paraphrase, he looked at me and declared. "It's valid." It is poignant experience to receive concrete evidence that someone is empathically connected to us. 부인은 비로소 자신이 이해를 받았다는 확신이 들자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는 남편을 돌아보고 설명했다. 나는 남편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신이 부인의 말을 이해했다는 확인의 표시로 부인의 느낌과 욕구를 말해주는 것이 바로 부인이 원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남편은 기가 막힌 듯 “그게 아내가 원하는 전부란 말입니까? 라고 말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내에게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자신이 아주 강한 느낌으로 한 말을 부인이 반복 확인해 주었을 때, 남편은 그 만족감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부인이 자신이 한 말을 하나하나 반복해주었을 때 그 느낌을 음미한 다음 남편은 ‘이건 효과가 있군요.’ 라고 말했다. 누군가가 우리와 연민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분명한 증거를 느껴 보는 것은 아주 감동적인 경험이다.

 

sustaining Empathy 공감을 지속하기

I recommend allowing others the opportunity to fully express themselves before turning our attention to solutions or requests for relief. When we proceed too quickly to what people might requesting, we may not convey our genuine interest in their feelings and needs; instead, they may get the impressions that we're in a hurry to either be free of them or to fix their problem. Furthermore, an initial message is often like the tip of an iceberg; it may be followed by as yet unexpressed, but related-and often more powerful-feelings. 공감을 들어줄 때는 상대방을 돕기 위해 해결 방안이나 부탁을 듣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전에 상대방에게 충분히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빨리 상대의 부탁으로 옮겨가면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가 우리의 진정한 관심이라는 점이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상대방은 우리가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서두른다거나, 아니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사람들이 처음에 한 말들은 종종 빙산의 일각과 같다. 그 말들 다음에는 아직 표현되지 않았지만 연결되어 있는 더 강한 느낌이 뒤따라 나올 수 있다.

 

When we stay with empathy, we allow speakers to touch deeper levels of themselves. We know a speaker has receiced adequate empathy when (1) we sense a release of tension, or (2) the flow of words comes to a halt. 지속적으로 공감하면 상대방은 자신의 마음속 더 깊은 곳에 닿을 수 있다. 상대방이 충분히 공감을 받았을 때는 1. 긴장이 해소됨을 느낀다. 2. 상대방이 말을 멈춘다.

 

By maintaining our attention on what's going on within others. we offer them a chance to fully explore and express their interior selves. We would stem this flow if we were to shift attention too quickly either to their request or to our own desire to express ourselves. Suppose a mother comes to us, saying, "My child is impossible. No mater what I tell him to do, he doesn't listen." We might reflect her feelings and needs by saying, "It sounds like you're feeling desperate and would like to find some way of connecting with your son." Such a paraphrase often encourages a person to look within. If we have accurately reflected her statement, the mother might touch upon other feelings: "Maybe it's my fault. I'm always yelling at him."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둠으로써, 우리는 상대방이 좀 더 깊이 자신의 마음속을 관찰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다. 만약 우리가 관심을 초점을 너무 성급하게 그들의 부탁이나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옮기면, 상대방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표현할 수 있는 흐름을 막게 될 것이다. 어떤 어머니가 나를 찾아와서 “우리 아이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요. 무슨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아요.” 라고 했다면, 이 때 우리는 “지금까지 한 것보다는 아이를 좀 더 이해해줄 걸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아프시나요?” “지금 정말로 힘이 드셔서 아들과 연결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시군요. 라고 말함으로써 그 어머니의 느낌과 욕구를 반영해 줄 수 있다. 이렇게 말을 바꾸어 반복해 줄 때, 상대방은 좀 더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때 우리가 상대방의 뜻을 정확하게 반영했다면 그 어머니는 또 다른 느낌을 말 할 수 있다. “어쩌면 내 잘못인지도 몰라요. 나는 아이에게 항상 소리를 지르거든요.”

 

As the listener, we would continue to stay with the feelings and needs being expressed and say, for example, "Are you feeling guilty because you would liked to have been more understanding of him than you have been at times?" If the mother continues to sense understanding in our reflection, she might move further into her feelings and declare, "I'm just a failure as a mother." We continue to remain with the feelings and needs being expressed: "So you're feeling discouraged and want to relate differently to him?" 우리는 그 어머니가 표현하는 느낌과 욕구에 계속 귀를 기울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 것보다는 아이를 좀 더 이해해줄 걸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아프시나요? 우리가 반응해주는 말에서 자신이 잘 이해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 어머니는 자신의 더 깊은 느낌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엄마로서 완전 실패작이에요. 우리는 그녀가 표현하는 느낌과 욕구에 계속해서 머무른다. 그래서 많이 실망스러우신가요? 그리고 아이와 좀 다르게 관계를 맺고 싶으신 거죠?

 

We persist in this manner until the person has exhausted all her feelings surrounding this issue. What evidence is there that we've adequately empathized with the other person? First, when an individual realizes that everything going on within has received full empathic understanding, they will experience a sense of relief. We can become aware of this phenomenon by noticing a corresponding release of tension in our own body. 말하는 사람이 이 문제와 관련된 모든 느낌을 다 드러낼 때까지 이렇게 계속한다. 그러면 우리가 상대방을 충분히 공감해 주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첫째 상대방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느낌을 충분히 공감으로 이해받았다고 느낄 때 편안한 안도감을 느낀다. 이 때 우리도 몸에서 같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면서 이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A second, even more obvious sign is that the person will stop talking If we are uncertain as to whether we have stayed long enough in the process, we can always ask, "Is there more that you wanted to say?" 둘째 더 확실한 신호는 상대가 말을 멈추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과정에 충분히 오랫동안 머물렀는지 확실치 않다면, 더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라고 상대에게 물어볼 수 있다.

 

When pain blocks our ability to empathize 자신의 고통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없을 때

It is impossible for us to give something to another if we don't have it ourselves. Likewise, if we find ourselves unable or unwilling to empathize despite or efforts, it is usually a sign that we are too starved for empathy to be able to offer it to others. Sometimes, if we openly acknowledge that our own distress is preventing us from responding empathically, the other person may come through with them empathy we need. At other times, it may be necessary to provide ourselves with some "emergency first aid" empathy by listening to what's going on in ourselves with the same quality of presence and attention that we offer to others.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공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공감할 수 없거나,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을 공감해주기에는 우리 자신이 너무도 공감에 굶주려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다는 증거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고통 때문에 상대방을 공감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면, 우리가 필요한 공감을 그에게서 받게 될 수도 있다. 또는 어떤 때 우리는 ‘응급치료용’ 자기 공감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것을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때와 같이 우리의 온 존재와 관심으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Former United Nations Secretary-General Dag Hammarskjold once said, "The more faithfully you listen to the voice within you, the better you will hear what is happening outside." If we become skilled at giving ourselves empathy, we often experience in just a few seconds a natural release of energy that then enables us to be present with the other person. If this fails to happen, however, we have a couple of other choices. We can scream-nonviolently. I recall spending three days mediating between two gangs that had been killing each other off. One gang called themselves black Egyptians: the other, the East St. Louis Police Department. The score was two to one-a total of three dead within a month. UN의 전 사무총장인 다그 함마르셀드는 이렇게 말했다. 내면의 소리에 더 충실하게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잘 들을 수 있다. 자신에게 공감을 하는 데 능숙해지면, 우리는 많은 경우 단 몇 초 만에 자연히 기력이 샘솟는 것을 느끼게 되어 다시 상대방과 우리의 온 존재로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만약 이런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면 두 가지 다른 선택이 있다. 우리는 비폭력적으로 소리를 지를 수 있다. 나는 서로 죽고 죽이는 두 폭력조직 사이에서 사흘 동안 힘든 중재를 한 적이 있다. 한 쪽은 ‘검은 이집트인’ 이라 불리는 폭력단이었고, 다른 한 쪽은 동부 세인트 루이스 경찰이었다. 한 달 동안 이들 사이에서 경찰 한 명을 포함해 세 명이 죽었다.

 

After three tense days trying to bring these groups together to hear each other and resolve their differences, I was driving home and thinking how I never wanted to be in the middle of a conflict again for the rest of my life. The first thing I saw when I walked through the back door was my children entangled in a fight. I had no energy to empathize with them so I screamed nonviolently: "Hey, I'm in a lot of pain! Right now I really do not want to deal your fighting! 두 집단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여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 갈등을 해소하도록 돕느라 긴장 속에서 사흘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는 앞으로 다시는 이런 대립의 중간에 서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서서 내가 처음 본 광경은 아이들이 서로 엉켜 싸우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공감할 기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비폭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난 지금 너무 힘들어. 너희가 싸우는 것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I just want some peace and quiet!" My older son, then nine, stopped short, looked at me, and asked, "Do you want to talk about it?" If we are able to speak our pain nakedly without blame, I find that even people in distress sometimes able to hear our need. Of course I wouldn't want to scream, "What the mater with you?" Don't you know how to behave any better? I just got home after a rough day!" or insinuate in any way that their behavior was at fault. I scream nonviolently by calling attention to my own desperate needs and pain in the moment. 나는 지금 정말 조용히 평화롭게 있고 싶어. 그러자 당시 아홉 살이던 큰 아이가 갑자기 멈추고 나를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아빠 힘들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세요? 상대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괴로운 이유를 꾸밈없이 표현할 수 있다면, 곤경에 처한 사람이라도 우리는 우리의 욕구를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너희 도대체 왜 그러니’ ‘너희는 싸움밖에 할 줄 모르니? 나는 오늘 정말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왔단 말이야.’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어떻게든 아이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 대신, 그 순간 나 자신의 절실한 욕구와 고통에 초점을 두어 비폭력적으로 외쳐보는 것이다.

 

If, however, the other party is also experiencing such intensity of feelings that they can neither hear us nor leave us alone, and neither emergency empathy nor nonviolent screaming has served us well, our third recourse is to physically remove ourselves from the situation. We give ourselves times out and the opportunity to acquire the empathy we need to return in a different frame of mind. 하지만 상대 역시 감정이 격한 상태라서 우리 말을 들어줄 수도 없고, 우리를 가만 놔두지도 않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그 상황에서 몸을 피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마음 상태로 그 상황을 마주하기 위해 필요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Summary

Empathy is a respectful understanding of what others are experiencing. We ofter have a strong urge to give advice or reassurance and to explain our own position or feeling. Empathy, however, calls upon us to empty our mind and listen to others with our whole being. In NVC, no matter what words others may use to express themselves, we simply listen for their observations, feelings, needs, and requests. Then we may wish to reflect back, paraphrasing what we have understood. We stay with empathy and allow others the opportunity to fully express themselves before we turn our attention to solutions or requests for relief. We need empathy to give empathy. When we sense ourselves being defensive or unable to empathize, we need to (1)stop, breathe, give ourselves empathy; (2)scream nonviolently; or (3)take time out. 공감이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감을 하는 대신에 자신의 견해나 느낌을 설명하거나, 조언을 하거나, 상대를 안심시키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그러나 공감은 우리에게 마음을 비우고 온 존재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NVC에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떤 말로 표현하든 상관없이 그들을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며, 필요로 하고, 부탁하고 있는가를 듣는다. 그리고 우리가 이해한 것을 상대에게 되풀이해서 들려줌으로써 상대의 뜻을 확인할 수 있다. 상대를 도와주기 위해 우리의 관심을 해결 방안이나 부탁으로 돌리기 전에, 상대가 자신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계속해서 공감에 머무른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해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공감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이 방어적이 되거나 남을 공감하기 어려울 때에는 (1) 멈추고, 심호흡을 하고, 자기 공감을 하거나, (2) 비폭력적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혹은 (3) 잠시 그 자리를 떠나 자신을 위한 공감의 시간을 갖는다.

 

NVC in Action

A wife connect with her dying husband 부인과 죽어가는 남편사이의 연결

A patient had just been diagnosed with an advanced stage of lung cancer. The following scene at his home, involving the patient, his wife, and a visiting nurse, represents a last opportunity for him to connect emotionally with his wife and discuss his dying before being admitted to the hospital. The wife began the conversation with the nurse by complaining about the physical therapist who part of the home health care team assigned to her husband’s care. 다음 상황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음 상황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집에는 방문간호사, 환자, 그리고 환자의 아내가 있다. 이 대화는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 아내와 정서적으로 연결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진행되었다. 부인은 남편을 돌보던 물리치료사에 대한 불평으로 간호사와 대화를 시작했다.

 

Wife: She doesn't do anything. She made him stop walking when his pulse got high. 그 치료사는 형편없어요. 남편의 맥박이 빨라지면 걷지도 못하게 했어요.

 

Nurse : (continuing to hear the wife’s feelings and wants)

Is it because you want your husband to get better that you’re scared if the physical therapist doesn't push him, he won’t get stronger? (부인의 느낌과 욕구에 계속 귀 기울이면서) 물리치료사가 남편을 억지로라도 움직이게 해서 남편의 상태가 나아지기를 바라시는데, 그러지 않아 걱정하시는 거죠.

 

Wife : (starting to cry) Yes, I’m so scared! (울기 시작한다) 네 너무 겁이 나요.

 

Nurse: Are you scared of losing him? 남편을 잃을까 봐 겁이 나시지요?

 

Wife: Yes, we’ve been together so long. 예 우리는 정말 오랜 세월을 함께 했거든요.

 

Nurse: (Listening for other feelings behind the fear) Are you worrying about how you would feel if he dies? (두려움 속에 숨은 다른 느낌에 귀 기울이면서) 남펴닝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견딜지 걱정되시지요?

 

Wife: I just can’t imagine how I going to live without him. He’s always been there for me Always. 남편 없이 살아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언제나 저를 위해 뭐든지 다 해주었거든요. 언제나....

 

Nurse: So you’ve sad when you think of living without him? 남편 없이 살 생각을 하니 슬프시지요?

 

Wife: There is no one else besides him. He’s all I have, you know. My daughter won’t even talk to me. 남편 말고는 내겐 아무도 없어요. 남편은 내 전부예요. 딸은 지금 나하고는 말도 않아요.

 

Nurse: It sounds like when you think of your daughter, you feel frustrated because you wish you had a different relationship with her. 마음이 많이 답답하세요? 따님과 좀 더 좋은 관계를 갖고 싶은데 말이죠.

 

Wife: I wish I did, but she is such a selfish person. I don't know why I even bothered having kids. A lot of good it does me now!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딸애는 너무 이기적이에요. 내가 왜 아이를 가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와서 내게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

 

Nurse: Sounds to me like you might be somewhat angry and disappointed because you want more support from the family during your husband's illness. 남편이 아픈 동안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시기 때문에 화도 나고 실망스러우세요?

 

Wife: Yes, he's sick; I don't know how I am going to get through this alone. I haven't anyone...not even to talk to, except with you here..now. Even he won't talk about it...Look at him!(Husband remains silent and impassive.) He doesn't say anything.! 네 지금 남편의 상태는 심각해요. 저 혼자서 어떻게 이걸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겐 아무도 없어요...지금 여기 있는 당신 말고는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요. 남편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좀 보세요. (남편은 아무 반응 없이 누워 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아요.

 

Nurse: Are you sad, wishing the two of you could support each other and feel more connected? 그래서 슬프시죠? 두 분이 서로 의지하고 좀 더 깊은 연결을 느끼고도 실으셔서...

 

Wife: Yes. (She pauses, then makes a request.) Talk to him the way you talk to me. 네(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부탁한다.) 제게 말씀하신 것처럼 남편에게도 이야기 좀 해주세요.

 

Nurse: (wishing to clearly understand the need that is being addressed behind the wife's request) Are you wanting him to be listened to in a way that helps him express what he's feeling inside? (부인의 부탁 뒤에 숨은 욕구를 분명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남편께서도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표현할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리기를 원하시나요? (분명하게 이해하기를 원하면서, 부인의 말 뒤에 있는 욕구에 대해 좀 더 이해하기를 원하면서) 그래서 슬프시죠. 두 분이 서로 의지하고 좀 더 깊은 연결을 느끼고도 싶으셔서.

 

Wife: Yes, yes, that's exactly it! I want him to feel comfortable talking and I want to know what he is feeling. 네 네 바로 그거예요. 저는 남편이 편안하게 이야기하길 바래요. 그리고 남편이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어요.

 

Using the nurse's guess, the wife was able to first become aware of what she wanted and then find the words to articulate it. 간호사의 도움으로 부인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각하면서 더 정확한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This was a key moment: often it is difficult for people to identify what they want in a situation, even though they may know what they don't want. 이 순간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도 무엇을 원하는 지를 자각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We see how a clear request - "Talk to him the way you talk to me" - is a gift that empowers the other person. 우리는 여기서, 구체적인 부탁 - 제게 말한 것처럼 남편에게도 이야기 좀 해주세요 - 은 상대가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선물임을 알 수 있다.

 

The nurse was then able to act in a way she knew to be in harmony with the wife's wished. 간호사는 이제 부인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이에 따라 구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This altered the atmosphere in the room, as the nurse and the wife could now "work together" both in a compassionate mode. 간호사와 부인이 함께 연민의 마음으로 협력하게 되자 방 안의 분위기가 바뀐다.

 

Nurse: (turning to the husband) How do you feel when you hear what your wife has shared.(남편에게) 부인이 하신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Husband: I really love her. 저는 아내를 정말 사랑해요.

 

Nurse: Are you glad to have an opportunity to talk about this with her? 부인과 이런 대화를 할 기회를 갖게 되셔서 좋으세요?

 

Husband: Yes, we need to talk about it. 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Nurse: Would you be willing to say how you are feeling about the cancer? 암에 걸린 것에 대하여 어덯게 느끼는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어요?

 

Husband: (after a brief silence) Not very good.(잚은 침묵 후에) 매우, 안 좋아요.

 

The words good and bad are often used to describe feelings when people have yet to identify emotion they are experiencing. Expressing his feelings more precisely would help this patient with the emotional connection he was seeking with his wife. ‘좋다’ 또는 ‘나쁘다’라는 단어는 대부분 자신의 특정한 느낌을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때 사용된다. 그가 자신의 느낌을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가 원하는 부인과의 정서적인 교류에 도움이 될 것이다.

 

Nurse: (encouraging him to move toward more precision) Are you scared about dying? 죽는다는 것이 두려우세요?( 남편이 좀 더 정학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Husband: No, not sacred. (Noticing the nurse's incorrect guess does not hamper the continued flow of dialogue.) 아니오. 두렵지는 않아요(이 때 간호사의 추측이 정확하지 않았다 해도 대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Nurse: (Because this patient isn't able to verbalize his internal experience easily, the nurse continues to support him in the process.) Do you feel angry about dying? (이 환자가 내면의 느낌을 말로 쉽게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이 생각날 때까지 간호사가 계속 도와준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시나요?

 

Husband: No, not angry.

 

Nurse: (At this point, after two incorrect guesses, the nurse decides to express her own feelings.) Well, now "I'm puzzled about what you may be feeling, and wonder if you can tell me. (두 번의 추측이 빗나가자, 간호사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로 한다.) 음. 지금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하네요. 말씀해 주실 수 있겠어요?

 

Husband: I reckon, I'm thinking how she'll do without me. 아내가 저 없이 어떻게 혼자 살아갈까 걱정이 돼요.

 

Nurse: Oh, are you worried she may not be able to handle her life without you. 아 부인이 혼자서 잘 견뎌낼지 걱정되신다고요?

 

Husband; Yes, worried she'll miss me. 네 아내가 저를 못 잊어할까 봐 걱정이 돼요.

 

Nurse: (She is aware that dying patients often hang on due to worry over those they are leaving behind, and sometimes need reassurance that loved ones can accept their death before they can let themselves go.) Do you want to hear how your feels when you say that? (간호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가끔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걱정에 붙잡혀 때로는 떠나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으세요?

 

Husband: Yes.

 

Here the wife joined the conversation; in the continued presence of the nurse, the couple began to express themselves openly to each other. In this dialogue, the wife began with a complaint about the physical therapist. However, after a series of exchanges during which she felt empathically received, she was able to determine that what she really sought was a deeper connection with her husband during this critical stage of their lives. 여기서 부인이 대화에 참여한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부부는 서로 솔직하게 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 대화는 부인이 물리 치료사에 대한 불평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진 대화로 공감대가 형성된 후에, 부인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살의 중대한 단계에서 남편과 좀 더 깊은 유대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To see whether we are in agreement about the verbal expression‎ of empathy, please circle the number in front of each statement in which person B is responding empathically to what is going on within Person A. 공감적 대화가 되는지에 대해 동의한다면 번호에 동그라미를 치시오. Person B가 Person A의 말에 공감적 대화를 하는 지 여부 판단하기.

 

1. Person A: How could I do something so stupid? 내가 왜 그렇게 바로 같은 짓을 했을까?

Person B: Nobody is perfect; you're too hard on yourself. 완벽한 사람은 없어. 너 자신을 너무 심하게 대하지 마!

<공감적 반응이 아니다. 일단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를 언급해 주는 것이 좋다. 공감으로 반응하는 예: 좀 더 깊이 생각하고 해동했으면 해서 실망스럽니?>

 

2. Person A: If you ask me, we ought to ship all these immigrants back to where they came from. 내 생각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두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야 해.

Person B: Do you really think that would solve anything? 정말 그렇게 되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니?

<공감적 반응이 아니다. 상대방을 교육시키려는 방식이다. 공감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먼저 상대방의 감정과 느낌을 언급해 줘야 한다. 공감으로 반응하는 예: 그 문제에 대한 어떤 방법이 있었으면 해서 걱정이 되니?>

 

3. Person A: You aren't God! 너는 신이 아니야!

Person B: Are you feeling frustrated because you would like me to admit that there can be other ways of interpreting this matter? 너는 이 문제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걸 내가 받아들였으면 해서 짜증이 나니?

<공감적 반응이 맞다>

 

4. Person A: I think that you take me for granted. I wonder how you would manage without me. 너는 나라는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해. 나 없이 어떻게 살지 궁금하다.

Person B: That's not true! I don't take you for granted. 아니야! 나는 너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아.

<공감적 반응이 아니다. 공감적 반응은 먼저 상대방의 감정 또는 느낌을 언급해 준다. 그리고 그 느낌에 대한 책임 또는 욕구를 언급해 줘야 한다. 공감하기보다 오히려 반대하고 자신을 방어한다고 생각한다. 공감을 반응하는 예: “네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 감사와 인정을 받고 싶어서 실망스럽니?”>

 

5, Person A: How could you say a thing like that to me?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니?

Person B: Are you feeling hurt because I said that?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마음이 상했니?

<공감적 대응이 아니다. 상대방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고 본다. 공감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느낌과 그 느낌에 대한 욕구 또는 책임을 언급해 주면 된다. 공감했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제안한 대로 따라주었으면 해서 마음이 상했니?”>

6. Person A: I'm furious with my husband. He's never around when I need him. 남편을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나요. 내가 필요할 때는 늘 옆에 없어요.

Person B: You think he should be around more than he is? 남편이 좀 더 당신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상대방을 이해는 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의 생각보다 그 뒤의 느낌과 욕구에 좀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더 깊은 연결이 가능하다. 상대방의 느낌과 느낌에 대한 욕구를 인정해 주면 좋다. 따라서 이렇게 말했으면 좀 더 좋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좀 더 함께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화가 나세요?‘>

 

7. Person A: I'm disgusted with how heavy I'm getting. 나는 점점 살이 찌는 것 같아 나 자신이 미워.

Person B: Perhaps jogging would help. 조깅이 아마 도움이 될 꺼야.

<공감이라기보다 조언이다. 공감은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를 인정하고 알아주는 것이다.공감의 예는 : 네가 원하는 몸무게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속상해? 가 될 것이다.>

 

8. Person A: I've been a nervous wreck planning for my daughter's wedding. Her fiance's family is not helping. About every day they change their minds about the kind of wedding they would like. 나는 내 딸 결혼식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거의 신경쇠약 수준입니다. 사돈댁이 도움이 안 되네요. 거의 매일 그들은 마음을 바꿉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려고.

 

Person B: So you're feeling nervous about how to make arrangements and would appreciate it if your future in-laws could be more aware of the complications their indecision creates for you? 당신은 초조함을 느끼고 있군요. 어떻게 결혼 계획을 진행해 나갈지. 그리고 당신의 사돈댁이 좀 더 알았으면 하는 군요. 그들의 불명확한 결정이 어떻게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지. 사돈댁이 알았으면 하는군요.

<공감적 반응이 맞다>

9. Person A: When my relatives come without letting me know ahead of time, I feel invaded. It reminds me of how my parents used to disregard my needs and would plan things for me. 내 친척이 나에게 미리 알리지도 않고 날 방문할 때, 난 생활을 침해당한 느낌이 들어.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 부모님이 내 욕구를 무시하고 당신들 마음대로 내 일을 결정하던 게 떠올라.

Person B: I know how you feel. I used to feel that way too. 네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어. 나도 그런 기분이 들곤 했어.

<공감적 반응이 아니다. 나는 Person B가 Person A의 말에 공감하며 귀 기울이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했다고 가정하고 본인의 느낌을 이야기 하려 한다. 공감적 반응은 말할 때는 내 느낌과 내 욕구를, 들을 때는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를 알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의 예로는 “너의 사생활에 대한 존경과 배려를 원하기 때문에 짜증 나?”>

 

10. Person A: I'm disappointed with your performance. I would have liked your department to double your production last month. 실적이 실망스럽군요. 지난달 그쪽 부서가 생산량을 두 배로 올려주었으면 했는데. . .

Person B: I understand that you are disappointed, but we have had many absences due to illness. 실망하시는 걸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 부서 직원들이 병으로 결근을 많이 했습니다.

<공감적 반응이 아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현재 느낌과 그 느낌에 대한 욕구를 알아주는 것이다. 공감의 예: 기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실망스러우세요.>

 

Here are my responses for Exercise 5:

1. I didn't circle this one because I see Person B giving reassurance to Person A rather than empathically receiving what Person A is expressing. 나는 이것에 동그라미를 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Person B는 확신을 준다. Person A에게 공감적으로 받아주기보다는. Person A가 표현하는 것에 대해. 공감으로 반응하는 예: 좀더 깊이 생각하고 해동했으면 해서 실망스럽니?

 

2. I see Person B attempting to educate Person A rather than empathically receiving what Person A is expressing. 나는 Person B가 Person A를 교육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본다. 공감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공감으로 반응하는 예: 그 문제에 대한 어떤 방법이 있었으면 해서 걱정이 되니?

 

3. If you circled this we are in agreement. I see Person B empathically receiving what Person A is expressing.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의 견해는 같다. Person B는 Person A의 말에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4. I didn't circle this one because I see Person B disagreeing and defendng rather than empathically receiving what is going on in Person A. 나는 Person B가 Person A 의 말에 공감하기 오히려 반대하고 자신을 방어한다고 생각한다. 공감을 반응하는 예: “네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 감사와 인정을 받고 싶어서 실망스럽니?”

 

5. I see Person B taking responsibility for Person A's feelings rather than empathically receiving what is going on in Person A. An example of an empathic response might be: "Are you feeling hurt because you would have liked me to agree to do what you requested?" 나는 Person B가 공감하기보다 오히려 Person A의 느낌에 책임을 느낀다고 본다. 공감했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제안한 대로 따라주었으면 해서 마음이 상했니?”

 

6. If you circle this we are in partial agreement. I see Person B receiving A's thoughts. However, I believe we connect more deeply rather than the thoughts. Therefore, I would have preferred it if Person B had said, "So you're feeling furious because you would like him to be around more than he is?"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의 견해는 부분적으로 일치한다. 나는 Person B가 Person A의 생각은 이해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의 생각보다 그 뒤의 느낌과 욕구에 좀더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더 깊은 연결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말했으면 좀 더 좋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좀 더 함께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화가 나세요?”

 

7. If you circled this we are in agreement. I see Person B empathically receiving what is going on in Person A.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의 견해는 같다. Person B는 Person A의 말에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8. If you circled this we are in agreement. I see Person B empathically receiving what is going on in Person A.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의 견해는 같다. Person B는 Person A의 말에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9. I didn't circle this one because I see Person B assuming they understand and talking about their own feelings than empathically receiving what is going on in Person A. 나는 Person B가 Person A의 말에 공감하며 귀 기울이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했다고 가정하고 본인의 느낌을 이야기 하려 한다. 공감의 예로는 “너의 사생활에 대한 존경과 배려를 원하기 때문에 짜증 나?”

 

10. I didn't circle this one because I see Person B starting by focusing on Person A's feeling but then shifting to explaining. 공감의 예: 기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실망스러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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