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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VC_6월 28일(금). 6장. Taking responsibility for our feelings

작성자Frida|작성시간24.06.29|조회수19 목록 댓글 0

5. Taking responsibility for our feelings

 

Having a Negative Message: Four Options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았을 때: 4가지 선택들

 

What others do may be the stimulus of our feelings, but not the cause.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우리의 자극이지 원인이 아니다

 

The third component of NVC entails the acknowledgment of the root of our feelings. NVC heightens our awareness that what others say and do may be the stimulus, but never the cause, of our feelings. We see that our feelings result from how we choose to receive what others say and do, as well as from our particular needs and expectations in that moment. with this third component, we are led to accept responsibility for what we do to generate our own feelings. When someone gives us a negative message, whether verbally or nonverbally, we have four options as to how to receive it. One option is to take it personally by hearing blame and criticism. For example, someone is angry and say, "You're the most self-centered person I've ever met!" If choosing to take it personally, we might react: "Oh, I should have been more sensitive!" We accept the other person's judgment and blame ourselves. We choose this option at great cost to our self-esteem, for it inclines us toward feelings of guilt, shame, and depression. NVC의 세 번째 요소는 우리 느낌의 근원을 인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NVC는 우리의 자각을 높인다. 그 자각 정도가 다른 사람들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그냥 자극이고 근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 느낌에 대한 근본 원인과 자극은 다르다. 우리는 안다. 우리의 감정들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기로 선택하느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행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기로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물론 그 당시 우리의 특별한 욕구나 기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세 번째 요소에 의해서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수용하도록 유도된다. 우리가 하는 것에 대해. 우리 자신의 감정들을 일으키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부정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낼 때, 언어적이건 비언어적이건, 우리는 네 가지 선택이 있다.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하나의 선택은 그것을 비난이나 비판으로 들으면서 개인적으로(부정적으로, 자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화가 나서 말하기를 <당신은 가장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예요. 내가 지금까지 만나 사람 중에서>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면. 자학적으로(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반응할 것이다. ‘아 나는 좀 더 민감하게 잘 했어야 했어’ 이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판단과 비난을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우리는 이 선택을 한다. 우리의 자존감에 큰 손상을 입고. 왜냐하면 그 선택은 우리에게 기울게 한다. 죄책감, 수치심, 그리고 우울한 쪽으로.

 

2. blame others

A second opinion is to fault the speaker. For example, in response to "You're the most self-centered person I've ever met," we might protest: "You have no right to say that! I am always considering your needs. You're the one who is really self-centered." When we receive messages this way, and blame the speaker, we are likely to feel anger. 두 번째 의견은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 비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신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항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요’ 라고. ‘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항상 고려하고 있어요’ 당신이야 말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상대방의 말을 이런 방식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분노를 느낄 것이다.

 

3. sense our own feelings and needs.(자신의 느낌과 욕구 인식하기)

When receiving negative messages, our third option would be to shine the light of consciousness on our own feelings and needs. Thus we might reply, "When I hear you say that I am the most self-centered person you've ever met, I feet hurt, because I need some recognition of my efforts to be considerate of your preferences." By focusing attention on our own feelings and needs, we become conscious that our current feeling of hurt derives from a need for our efforts to be recognized.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을 때, 우리의 세 번째 선택은 의식의 빛을 비추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느낌과 욕구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내가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난 마음이 아픕니다. 왜냐하면 나는 좀 더 인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 노력에 대한, 당신이 원하는 것에 내가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에 대한 나의 노력에 대한 인정을 원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느낌과 필요에 집중하는 것에 의해, 우리는 깨닫게 된다. 우리 자신의 아픈 느낌은 유도되어 나온다는 것을. 우리 노력에 대한 욕구.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4. sense others' feelings and needs.(다른 사람들의 느낌과 욕구를 인식하기)

Finally, a fourth option on receiving a negative message is to shine the light of consciousness on the other person's feelings and needs as they are currently expressed. 마지막으로 네 번째 의견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을 때, 비추어 보는 것이다. 의식의 불을. 다른 사람의 느낌과 욕구에. 상대방이 표현하고 있는.

 

We might for example ask, "Are you feeling hurt because you need more consideration for your preferences?" We accept responsibility for our feelings, rather than blame other people, by acknowledging our own needs, desires, expectations, values, or thoughts. Note the difference between the following expressions of disappointment:우리는 예를 들면 물어 볼 수 있다. ‘당신은 감정이 상하셨습니까? 당신이 좀 더 배려를 원했기 때문에, 당신의 선호에 대해서. 우리는 책임을 받아들인다. 우리 감정에 대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보다. 우리 자신의 욕구, 희망, 기대, 가치관 또는 생각들을 인정하는 것에 의해. 차이를 알아보자 다음과 같은 실망을 표현들에게서.

 

Example 1

A: “You disappointed me by not coming over last evening." 네가 어제 저녁에 오지 않아서 나를 실망시켰어.

 

B: "I was disappointed when you didn't come over, because I wanted to talk over some things that were bothering me." 걱정되는 일이 있어서 너와 상의하고 싶었기 때문에 네가 오지 않았을 때 실망했어. 난 실망했었어. 당신이 어제 오지 않아서. 왜냐하면 나는 어떤 일을 얘기하고 싶었거든. 나를 괴롭히는 어떤 것을 너와 얘기하고 싶었거든.

 

Speaker A attributes responsibility for his disappointment solely to other person's action. Speaker B traces his feeling of disappointment to his own unfulfilled desire. 화자 A는 그의 실망에 대해 책임을 오로지 상대방에게 지우고 있다. 화자 B는 추적한다. 그의 실망에 대한 그의 느낌을. 그 자신의 실현되지 않는 욕구에.

 

Example 2

A: Their cancelling the contract irritated me! 그들의 취소는 나를 짜증나게 해.

B: When they cancelled the contract, I felt really irritated because I was thinking to myself that it was an awfully irresponsible thing to do. 그들이 계약을 취소했을 때, 나는 진짜 짜증남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말로 무책임한 것이라고.

 

Speaker A attributes her irritation solely to the behavior of the other party. whereas Speaker B accepts responsibility for her feeling by acknowledging the thought behind it. She recognizes that her blaming way of thinking has generated her irritation. 화자 A는 그의 짜증남을 순전히 다른 사람의 행동에 원인을 돌리고 있다. 반면에 화자 B는 그녀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인다. 인정하는 것에 의해. 그 뒤에 있는 생각을 인정하는 것에 의해. 그녀는 인정한다. 남을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그녀의 생각이 짜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인정한다.

 

In NVC, however, we would urge this to go a step further by identifying what she is wanting: what need, desire, expectation, hope, or value of hers has not been fulfilled? As we shall see, the more we are able to connect our feelings to own needs, the easier it is for others to respond compassionately. To relate her feeling to what she is wanting, Speaker B might have said: "When they cancelled the contract, I felt really irritated because I was hoping for an opportunity to rehire the workers we laid off last year." NVC에서는 우리는 권장한 더 한 걸음 나아가라고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 그녀가 원하는 것을: 무슨 욕구, 기대, 희망, 가치가 충족되지 않았는지를 알아차리는 단계로 나아가라고 권장한다. 우리가 보게 되듯이 우리는 더 우리 감정에 대해 더 연결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욕구에 대한 감정에 연결될 수 있을수록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연민으로 대할 수 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그녀의 느낌과 연관시키면 화자 B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계약을 취소했을 때, 나는 짜증이 났다. 왜냐하면 나는 기회를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우리가 해고했던 직원들을 다시 채용할 기회를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It is helpful to recognize a number of common speech patterns that tend to mask accountability for our feelings. 도움이 된다. 일반적인 말하기 패턴을 인식하는 것. 우리 감정에 대한 책임을 숨기는 유형을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1. Use of impersonal pronouns such as it and that주어로 비인칭의 그것’ ‘저것을 쓸 때.

It really infuriates me when spelling mistakes appear in our public brochures. 나를 화나게 해. 스펠링 오류가 보일 때, 우리의 회사 소개 책자에.

 

That bugs me a lot. 저것은 정말 나를 짜증나게 해.

 

2. The use of the expression‎ "I feel(an emotion) because..." followed by a person or personal pronoun other than I: 다른 사람의 행동만을 나의 느낌의 원인으로 말할 때.

I feel hurt because you said you don't love me. 난 아픔을 느낀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I feel angry because the supervisor broke her promise. 난 화가 난다. 왜냐하면 상관이 그녀의 약속을 깨뜨렸기 때문에.

 

3. Statements that mention only the actions of others:(오직 상대방의 행동만을 느낌의 원인으로 말할 때)

When you don't call me on my birthday, I feel hurt. 당신이 내 생일에 전화하지 않아서 난 섭섭해

Mommy is disappointed when you don't finish your food. 엄마는 실망스러워. 니가 니 음식을 남기면.

 

Connect your feeling with your need: I feel ...because I need...욕구와 느낌을 연결한다. ‘나는 ~이 필요하기 때문에 ~을 느낀다.’

 

Distinguish between giving from the heart and being motivated by guilt.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과 죄책감 때문에 행동하는 것을 구별한다.

 

In each of these instances, we can deepen our awareness of our own responsibility by substituting the phrase, "I feel. . . because I. . ." For example: 각 예제에 대해 우리는 알아차림을 더 깊게 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책임감에 대한 의식을 더 깊게 할 수 있다. 표현으로 바꾸면 ‘나는 느낀다 ~. 왜냐하면 나는 ~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1. I feel really infuriated when spelling mistakes like that appear in our public brochures, because I want our company to project a professional image. 나는 우리 회사가 전문가라는 인상을 주고 싶기 때문에 회사 소개 책자에 오타가 있으면 나는 정말 화가 난다.

 

2. I feel angry that the supervisor broke her promise, because I was counting on getting that long weekend to visit my brother. 나는 화가 난다. 상관이 그녀의 약속을 깨뜨렸을 때, 왜냐하면 나는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긴 주말을. 동생을 방문하러 갈 긴 주말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3. Mommy feels disappointed when you finish your food, because I want you to grow up strong and healthy. 엄마는 실망감을 느낀다. 니가 음식을 다 먹지 않을 때. 왜냐하면 나는 니가 좀 더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원하기 때문에.

 

The basis mechanism of motivating by guilt is to attribute the responsibility for one's own feelings to others. When parents say, "It hurts Mommy and Daddy when you get poor grades at school," they are implying that the child's actions are the cause of the parents' happiness or unhappiness. On the surface, taking responsibility for the feelings of others can easily be mistaken for positive caring. It may appear that the child cares for the parent and feels bad because the parent is suffering. However, if children who assume this kind of responsibility change their behavior in accordance with parental wishes, they are not acting from the heart, but acting to avoid guilt. 자기 느낌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 그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죄책감을 행동 유발의 동기로 이용할 때 쓰는 기본 심리과정이다. 만약 부모가 말한다면, <마음이 아프다. 아빠와 엄마는 니가 낮은 점수를 학교에서 받아 올 때> 그들은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행동들이 부모의 행복과 불행의 원인이라고. 만약 부모가 “네 성적이 나쁘면 엄마와 아빠는 마음이 아프다.” 라고 말한다면 부모의 행복이나 불행의 원인이 아이의 행동에 달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다른 사람의 느낌에 책임을 지는 것을 긍정적인 배려로 착각하기 쉽다. 인 듯 보인다. 아이가 부모를 걱정하고 나쁜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부모가 속상해 하는 것을. 하지만 만약 아이들이 이와 같은 책임감으로 그들의 행동을 바꾼다면 부모가 바라는 대로, 그들은 마음으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The needs at the Roots of Feelings

Judgments of others are alienated expressions of our own unmet needs.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판단은 왜곡된 표현이다. 우리의 충족되지 않는 욕구들에 대한.

 

Judgments, criticism, diagnoses, and interpretations of others are all alienated expressions of our needs. If someone say, "You never understand me." they are really telling us that their need to be understood is not being fulfilled. If a wife says, "You've been working late every night this week; you love your work more than you love me," she is saying that her need for intimacy is not being met.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판단, 비판, 분석, 해석은 우리의 욕구들에 대한 소외된 표현들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은 나를 결코 이해하지 않아’ 라고 말하면 그들은 우리에게 진실 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고. 또 아내가 “당신은 이번 주 내내 밤늦게까지 일만 했어요. 당신은 나보다 일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아요.” 라고 했다면, 남편과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고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If we express our needs, we have a better chance of getting them met. 만약 우리가 자신이 필요한 것을 표현하면 우리는 더 큰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 욕구가 충족될 가능성의 더 큰 기회.

 

When we express our needs indirectly through the use of eval‎uations, interpretations, and images, others are likely to hear criticism. And when people hear anything that sounds like criticism, they tend to invest their energy in self-defense or counterattack. If we wish for a compassionate response from others, it is self-defeating to express our needs by interpreting or diagnosing behavior. Instead, the more directly we can connect our feelings to our own needs, the easier it is for others to respond to us compassionately. Unfortunately, most of us have never been taught to think in terms of needs. We are accustomed to thinking about what's wrong with other people when our needs aren't being fulfilled. Thus, if we want coats to be hung up in the closet, we may characterize our children as lazy for leaving them on the couch. Or we may interpret our co-workers as irresponsible when they don't go about their tasks the way we would prefer them to. 우리가 우리의 욕구를 간접적으로 표현할 때, 평가, 해석, 이미지등을 사용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할 때, 다른 사람들은 비판으로 듣기 쉽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것을 들을 때, 비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들을 때, 그들은 그들의 에너지를 자기 방어나 반격을 하는 데 사용하기 쉽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기를 원하면서, 역효과를 거두게 된다. 우리의 욕구를 표현하면서 분석이나 비판하는 방식으로 하게 되면.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기 원하면서 그 사람의 행동을 비판하거나 분석하는 식으로 우리의 욕구를 표현한다면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 오게 된다. 대신에 더 직접적으로 우리의 감정에 대한 우리 자신의 욕구에 연결할 수 있을수록 더 쉽게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연민의 방법으로 반응할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 대부분은 결코 배워본 적이 없다. 욕구라는 면에서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익숙하다. 생각하는 것에 관해서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다.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그러므로 우리는 코트가 옷장에 걸려있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게으르다고 규정짓는다. 옷들을 의자위에 놓아 놨다고. 또는 우리는 해석한다. 우리의 동료들을 무책임하다고. 그들이 그들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을 때

 

I was once invited to Southern California to mediate between some landowners and migrant farm workers whose conflicts had grown increasingly hostile and violent. I began the meeting by asking these two questions: "What is it that you are each needing? And what would you like to request of the other in relation to these needs?" "The problem is that these people are racist! shouted a farm worker. The problem is that these people don't respect law and order!" shouted a landowner even more loudly. As is often the case, these groups were more skilled in analyzing the perceived wrongness of others than in clearly expressing their own needs. In a comparable situation, I once met with a group of Israelis and Palestinians who wanted to establish the mutual trust necessary to bring peace to their homelands. I opened the session with the same questions, "What is it you are needing and what you like to request from one another in relation to those needs?" Instead of directly stating his needs, a Palestinian mukhtar(who is like a village mayor) answered, "You people are acting like a bunch of Nazis." A statement like that is not likely to get the cooperation of a group of Israelis! Almost immediately, an Israeli woman jumped up and countered. "Mukhtar, that was a totally insensitive thing for you to say!" 나는 한 때 남부 캘리포니아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중재하기 위해서, 농장부들과 계절노동자들을 중재하기 위해서. 그들의 갈등은 점점 더 적대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미팅을 시작했다.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무엇입니까? 각자가 필요한 것이. 그리고 그 각자가 필요가 것과 관계해서 상대에서 부탁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한 노동자가 이렇게 외쳤다. 문제는 저 사람들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겁니다. 라고 농장 노동자가 외쳤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법과 질서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라고 농장주가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흔히 그렇듯이. 이 두 집단은 더 능숙하다. 분석하는 데 상대의 잘못을 알아채는 것에 더 능숙하다. 그들의 욕구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보다는. 이것과 비슷한 상황으로 나는 한 때 만난 적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그들은 상호 신뢰를 쌓고 싶어 했다. 그들의 조국에 평화를 가져와서. 나는 똑 같은 질문으로 시작했다. 무엇입니까? 당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무엇을 부탁하고 싶습니까? 서로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과 관련해서. 그러자 팔레스타인 측의 묵타(마을 대표)가 자신의 욕구를 직접 말하는 대신 당신들은 나치들처럼 행동하고 있소. 이런 식의 말로 할 것 같지 않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협조를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거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이스라엘 여성이 벌떡 일어나서 대꾸했다. 묵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완전히 ‘insensitive’ 한 것이에요.

 

Here were people who had come together to build trust and harmony, but after only one interchange, matters were worse than before they began. This happens often when people are used to analyzing and blaming one another rather than clearly expressing what they need. In this case the woman could have responded to the mukhtar in terms of her own needs and requests by saying, for example, "I am needing more respect in our dialogue. Instead of telling us how you think we are acting, would you tell us what it is we are doing that you find disturbing?It has been my experience over and over again that from the moment people begin talking about what they need rather than what's wrong with one another, the possibility of finding ways to meet everybody's needs is greatly increased. The following are some of the basic human needs we all share: 여기 함께 모인 사람들은 신뢰와 화합을 위해 모였다. 그러나 단 한 번 주고받자마자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들이 시작하기 전보다. 이것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사람들이 분석하고 비난하는 것을 서로서로 할 때, 분명하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보다. 이 경우 그 여성은 묵타에게 반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 자신의 욕구들과 부탁을. 예를 들면 ‘나는 필요로 합니다. 좀 더 존중하면서 대화하는 것을’ ‘말하는 대신에 우리에게 우리가 행동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는, 말해 주시겠습니까? 무엇이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지. 우리가 하는 행동 중에서’ 내가 여러 번에 경험한 것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탓하기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상대방의 잘못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들을 발견할 확률이 크게 증가하는 것이다. 다음은 인간의 기본 욕구들의 일부이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Autonomy

- to choose one's dreams, goals, values 자신의 꿈, 목표, 가치 등을 선택하는 것.

- to choose one's plan for fulfilling one's dreams, goals, values 자신의 꿈, 목표, 가치들을 달성하는 계획을 선택하는 것.

 

Integrity(온전함)

- authenticity, creativity, meaning, self-worth(진정성·개별성 존중, 창조성, 의미/보람, 자기신뢰/자기 존중)

 

celebration(축하)

- to celebrate the creation of life and dreams fulfilled(생명의 탄생이나 꿈을 이룬 것에 대한 축하)

- to celebrate loses: loved one's, dreams, etc.(mourning)(사랑하는 사람이나 꿈의 상실을 애도)

 

Interdependence(상호의존)

- acceptance, appreciation, closeness, community, consideration, contribution to the enrichment of life(to exercise one's power by giving that which contributes to life) 수용, 감사, closeness, 공동체, 배려,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기여(자신의 능력을 행사함으로써 삶에 기여)

 

5장 Taking responsibility for our feelings 자기의 감정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기

interdependence(continued) 상호 의존

- emotional safety

- empathy

- warmth
- honesty(the empowering honesty that enables us to learn from our limitations) 우리의 한계로부터 배울 수 있는 힘을 주는 솔직함.

- love

- reassurance

- respect

- support

- trust

- understanding

 

play

- fun

- laughter

 

Spiritual communion 영적 교감

- beauty

- harmony

- inspiration

- order

- peace

Physical nurturance 신체적 돌봄

- air

- food

- movement, exercise

- protection from life-threating forms of life: viruses, backeria, insects, predatory animals 삶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보호받는 것.

- rest

- sexual expression‎

- shelter

- touch

- water

 

The pain of expressing our needs versus the pain of Not expressing our needs 우리의 욕구들을 표현할 때 고통과 우리의 욕구들을 표현하지 않을 때의 고통

 

In a world where we're often judged harshly for identifying and revealing our needs, doing so can be very frightening. Women, in particular, are susceptible to criticism. For centuries, the image of the loving woman has been associated with sacrifice and the denial of one's own needs to take care of others. because women are socialized to view the caretaking of others as their highest duty, they often learn to ignore their own needs. At one workshop, we discussed what happens to women who internalize such beliefs. These women, if they ask for what they want, will often do so in a way that both reflects and reinforces the beliefs that they have no genuine right to their needs and that their needs are unimportant. 자신의 욕구를 인식하여 표현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회에서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자주 가혹하게 판단 받는 세상에서는, 확인하고 보이는. 우리의 욕구들을 확인하고 밖으로 내 보이는 것에 대해 가혹하게 판단 받는 세상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두려워진다. 특히 여성들은 이런 비판에 더 민감하다. 지난 수 백 년 간 사랑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다른 사람들 돌보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부인하고 희생하는 모습이었다. 여성들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도록 사회화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며 살아왔다. 한 워크숍에서 이 같은 신념을 내면화한 여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이런 여성은 만약 그들이 원하는 것을 요청할 때, 자주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한다. 반영하고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그들은 진정한 권리가 없다는 믿음으로. 그들에 욕구에 대한 진정한 권리가 없다는 믿음으로. 그리고 그들의 욕구는 중요하지 않다는 믿음을 반영하고 강화하는 식으로 자주 얘기한다.

 

For example, because she is fearful of asking for what she needs, a woman may fail to simply say that she's had a busy day, is feeling tired, and wants some time in the evening to herself; instead, her words come out sounding like a legal case: "You know I haven't had a moment to myself all day. I ironed all the shirts, did the whole weeks's laundry, took the dog to the vet, made dinner, packed the lunches, and called all the neighbors about the block meeting, so [imploringly]. . . so how about if you. . . .? "No!" comes the swift response. Her plaintive request elicits resistance rather than compassion from her listeners. They have difficulty hearing and valuing the needs behind her pleas, and furthermore react negatively to her weak attempt to argue from a position of what she "should" get or "deserves" to get from them. <예를 들어 바쁘게 하루를 보내서 몹시 피곤해도 자신이 바라는 것을 요구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저녁에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다. 대신에 마치 사정하는 투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오늘 하루 종일 한 순간도 내 시간을 갖지 못했어요. 일주일 동안 쌓인 빨래를 모두 다 했고, 셔츠를 다렸고, 강아지를 수의사에게 데려갔고, 식사를 준비하고, 도시락을 싸고, 반상회 일로 이웃들에게 전화를 했어요 (애원하듯이). . . 그러니까. . .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곧바로 “안 돼”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처럼 애원하는 듯한 부탁은 듣는 사람에게 연민보다 오히려 저항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식으로 부탁을 하면 상대는 그 부탁 뒤의 욕구를 알아듣기도 힘들고, 또 그것을 소중히 여기기도 어렵다. 더 나아가 자신이 상대에게 ‘~을 받아야 한다.’ 또는 ‘~을 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여기는 관점에서 나오는 여성의 하소연에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In the end of speaker is again persuaded that needs don't matter, not realizing that they were expressed in a way unlikely to draw a positive response. My mother was once at a workshop where other women were discussing how frightening it was to be expressing their needs. Suddenly she got up and left the room, and didn't return for a long time. She finally reappeared, looking very pale. In the presence of the group, I asked "Mother, are you all right?" “Yes," she answered, "but I just had a sudden realization that's very hard for to take in." "What's that?"“I've just become aware that for thirty-six years, I was angry with your father for not meeting my needs, and now I realize that I never once clearly told him what I needed.” My mother's revelation was accurate. Not one time, that I can remember, did she clearly express her needs to my father. She'd hint around and go through all kinds of convolutions, but never would she ask directly for what she needed. We tried to understand why it was so hard for her to have done so. 상대의 부정적인 반응이 자신의 표현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이 여성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욕구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믿게 된다. 내 어머니가 한 번은 워크숍에 참석했었다. 그 장소에서 다른 여성들이 논의하고 있었다. 얼마나 두려운지에 대해. 그들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에 대해. 갑자기 어머니는 일어나 밖으로 나가시더니 한 동안 돌아오지 않으셨다. 다시 돌아오셨을 때는 창백한 모습이어서 나는 “어머니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그래 괜찮다. 하지만 받아들이기 아주 힘든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라고 대답하셨다. 지난 36년 동안 내가 원하는 것을 네 아버지가 들어주지 않아서 화가 났는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네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분명하게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방금 깨달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버지에게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욕구를 슬쩍 암시하기도 하고 여러 방법으로 돌려서 자신의 욕구를 표현했지 한 번도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직접 말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어머니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이해해보려고 했다.

 

My mother grew up in an economically impoverished family. She recalled asking for things as a child and being admonished by her brothers and sisters, "You shouldn't ask for that! You know we're poor. Do you think you are the only person in the family?" Eventually she grew to fear that asking for what she needed would only lead to disapproval and judgment. She related a childhood anecdote about one of her sisters who had had an appendix operation and afterwards had been given a beautiful little purse by another sister. My mother was fourteen at the time, Oh, how she yearned to have an exquisitely beaded purse like her sister's, but she dared not open her mouth. So guess what? She feigned a pain in her side and went the whole way with her story. Her family took her to several doctor. They were unable to produce a diagnosis and so opted for exploratory surgery. 어머니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그래서 어렸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했다가 형제 자매로부터 “그러면 안 돼! 우리 집이 가난한 걸 모르니? 우리 집에 너만 있는 줄 아니?”라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는 자라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면 비난과 거절만 돌아온다는 두려움을 품고 자라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일화에 관련된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그녀의 언니들 중의 한 명에 관한 애기였다. 그 언니는 맹장 수술을 했었고 후에 다른 언니로부터 아름답고 작은 지갑을 선물 받았다. <한 언니가 맹장 수술을 받은 뒤 다른 언니들에게서 예쁜 동전지갑을 선물 받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어머니는 그 당시 14살이었다. 얼마나 열망했던지. 정교하게 구슬로 장식된 지갑을. 그녀의 언니 것과 같이. 그러나 그녀는 감히 그녀의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구슬로 정교하게 장식된 그 동전지갑을 어머니도 매우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감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어머니는 옆구리가 아픈 척을 해서 온 식구를 속였다. 가족들은 어머니를 여러 의사에게 보였지만 원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병의 원인을 알기 위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It has been a gold gamble on my mother's part, but it worked - she was given an identical little purse! When she received the coveted purse, my mother was elated despite being in physical agony from the surgery. Two nurses came in and one stuck a thermometer in her mouth. My mother said, "Ummm, ummm," to show the purse to the second nurse, who answered, "Oh, for me? Why thank you!" and took the purse. My mother was at a loss, and never figured out how to say, "I didn't mean to give it to you. Please return it to me." Her story reveals how painful it can be when people don't openly acknowledge their needs. 어머니에게는 대담한 도박이었지만 그것은 성공했다. 언니가 선물로 받은 것과 똑같은 동전지갑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원하던 지갑을 얻자 어머니는 수술 때문에 고통스러웠으면서도 정말 신이 났다. 그러던 중 간호사 두 명이 병실에 들어와서 한 간호사가 어머니 입에 체온계를 꽂고 있을 때 어머니는 동전 지갑을 자랑하고 싶어서 다른 간호사에게 “음 음”하고 소리를 내면서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간호사는 “어머나, 나한테 주는 거니? 고맙기도 해라!” 하며 가져가 버렸다. 어머니는 어쩔 줄 몰랐고 그거 드리려고 한 게 아니예요. 돌려주세요. 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절실하게 보여준다. 얼마나 괴로운지를.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할 때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절실하게 보여준다.

 

From emotional slavery to emotional liberation 정서적 노예상태로부터 정서적 해방으로

In our development toward a state of emotional liberation, most of us experience three states in the way we relate to others. Stage 1: "In this stage, which I refer to as emotional slavery, we believe ourselves responsible for the feelings of others. We think we must constantly strive to keep everyone happy. If they don't appear happy, we feel responsible and compelled to do something about it. This can easily lead us to see the very people who are closet to us as burdens. 우리의 단계. 감정적인 해방의 상태로 나아가는 발달 단계는 대체로 3단계를 거치게 된다. 1단계에서는 내가 정서적 노예 상태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느낌에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만약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 책임을 느끼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결국 이런 느낌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우리가 부담스럽게 느끼게 만든다.

 

Taking responsibility for the feelings of others can be very detrimental to intimate relationships. I routinely hear variations on the following theme: "I'm really scared to be in a relationship. “Every time I see my partner in pain or needing something, I feel overwhelmed. I feel like I'm in prison, that I'm being smothered-and I just have to get out of the relationship as fast as possible.”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매우 해로울 수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 나는 자주 듣는다. 이런 것들의 변형된 형태들을 다음과 같은 주제로 “나는 진짜 무서워요. 누군가와 깊이 사귀는 것이 정말 두려워요. 상대가 괴로워하거나 무언가 원한다고 생각되면 심한 압박을 느껴요. 감옥에 갇힌 것 같고 질실할 것 같아요. 그래서 되도록 빨리 그 관계에서 벗어나야만 해요”

 

First stage: emotional slavery. We see ourselves responsible for others' feelings. 정서적 노예상태. 자신이 다른 사람의 느낌에 책임이 있다고 여긴다.

 

This response is common among those who experience love as denial of one's own needs in order to attend to the needs of the beloved. In the early days of a relationship, partners typically relate joyfully and compassionately to each other out of a sense of freedom. 이런 반응은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돌보기 위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부인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관계의 초기 단계에서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서로 공감하며 즐겁게 관계를 맺는다.

 

The relationship is exhilarating, spontaneous, wonderful. Eventually, however, as the relationship becomes "serious", partners may begin to assume responsibility for each other's feelings. If I were a partner who is conscious of doing this, I might acknowledge the situation by explaining, "I can't bear it when I lose myself in relationships. When I see my partner's pain, I lose me, and then I just have to break free." However, if I have not reached this level of awareness, I am like to blame my partner for the deterioration of the relationship. Thus I might say, "My partner is so needy and dependent it's really stressing out our relationship." 이때의 관계는 생동감이 넘치고, 자연스러우며, 경이롭다. 하지만 관계가 진지해지면 서로 상대의 느낌에 책임을 지기 시작한다. 만일 내가 이런 것에 대한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자신을 이렇게 이해할 것이다. 관계에서 내가 내 중심을 잃는 것은 참을 수 없어. 상대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어. 기거시 그저 벗어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의 인식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면 관계가 나빠지고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면서 다음과 같이 비난하기 쉬울 것이다. “내 파트너는 원하는 게 많고 또 너무 의존적이라서 우리 관계에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In such a case, my partner would do well to reject the notion that there is anything wrong with her needs. It would only make a bad situation worse to the pain of my emotional slavery: "So you find yourself in panic. It's very hard for you to hold on to the deep caring and love we've had without turning it into a responsibility, duty, obligation...You sense your freedom closing down because you think you constantly have to take care of me." If, however, instead of an empathic response, she says, "Are you feeling tense because I have been making too many demands on you?" then both of us are likely to stay enmeshed in emotional slavery, making it that much more difficult for the relationship to survive.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은 자신의 욕구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무시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만약 상대방이 모든 게 그의 탓이라는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그 대신 상대방이 내 자신의 정서적 노예 상태로부터 비롯된 나의 고통을 이해하면 다음과 같이 공감으로 반응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이런 공감 어린 반응 대신 “내가 너무 많은 걸 요구하기 때문에 당신이 힘든가요?”라고 한다면, 두 사람 모두 정서적인 노예 상태에 빠져들어 관계를 지속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Stage 2: In this stage, we become aware of the high costs of assuming responsibility for others' feelings and trying to accommodate them at our own expense. When we notice how much of our lives we've missed and how little we have responded to the call of our own soul, we may get angry. 이 단계에서는 우리는 깨닫게 된다. 비싼 대가를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책임감을 진다는 것의 비싼 대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맞춰가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는지. 나를 희생해 가면서. 우리가 알아차리게 될 때. 얼마나 많이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는지. 얼마나 적게 우리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반응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면 우리는 화를 느낄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느낌에 책임을 지고 나를 희생하면서 남의 기분을 맞춰주며 살 때에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또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으며 내면의 소리를 얼마나 무시하고 살았는지 깨닫게 되어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Second stage: The obnoxious stage. We feel angry; we not longer want to be responsible for others' feelings. 제 2단계: 얄미운 단계. 화가 나고 다른 사람의 느낌에 더 이상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I refer jokingly to this stage as the obnoxious stage because we tend toward obnoxious comments like, "That's your problem! I'm not responsible for your feelings!" when presented with another person's pain. We are clear what we are not responsible for, but have yet to learn how to be responsible to others in a way that is not emotionally enslaving. As we emerge from the stage of emotional slavery, we may continue to carry remnants of fear and guilt around having our own needs. 나는 이 단계를 재미있게 ‘얄미운 단계’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건 당신 문제야! 난 당신의 느낌에 책임이 없어!” 와 같이 얄미운 말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느낌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리지만 정서적인 노예 상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책임 있게 행동하는 법은 아직 모르고 있는 법이다. 우리는 정서적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서도 자신이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여전히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Thus it is not surprising that we end up expressing our needs in ways that sound rigid and unyielding to the ears of others. For example, during a break in one of my workshops, a young woman expressed appreciation for the insights she'd gained into her own state of emotional enslavement. When the workshop resumed, I suggested an activity to the group.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는 우리가 하는 욕구 표현이 다른 사람들에게 딱딱하고 고집스럽게 들릴 수가 있다. 내가 진행하던 워크숍의 휴식 시간에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이 처한 정서적 노예 상태를 통찰할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말을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모였을 때, 나는 한 가지 활동을 제안했다.

 

The same young woman then declared assertively, "I'd rather do something else." I sensed she was exercising her newfound right to express her needs - even if they ran counter to those of others. To encourage her so sort out what she wanted, I asked, "Do you want to do something else even if it conflicts with my needs?" She thought for a moment, and then stammered, "Yes. . . er. . . I mean, no." Her confusion reflects how, Her confusion reflects how, in the obnoxious stage, we have yet to grasp that emotional liberation entails more than simply asserting our own needs. I recall an incident during my daughter Marla's passage toward emotional liberation. She had always been the "perfect little girl" who denied her own needs to comply with the wishes of others. When I became aware of how frequently she suppressed her own desires in order to please others, I talked to her about how I'd enjoy hearing her express her needs more often. When we first broached the subject, Marla cried. "But Daddy, I don't want to disappoint anybody!" she protested helplessly. 그러자 그 여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다른 걸 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과 일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이제 막 새롭게 찾아낸 권리를 그녀가 행사하고 있음을 나는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려고 “당신이 원하는 게 저와 다르더라도 말입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네. . . 어. . .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라고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이 같은 혼돈은 정서적 해방단계로 가려면 단순히 자신의 욕구만을 주장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딸 말라가 정서적 해방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겪었던 사건이 생각난다. 말라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 ‘아주 착한 아이’ 였다. 말라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자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억누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딸에게 네가 자신의 욕구를 좀 더 자주 표현하는 것을 듣고 싶다고 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말라는 울면서 힘없이 항의했다. 하지만 아빠 나는 누구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I tried to show Marla how her honesty would be a gift more precious to others than accommodating them to prevent their upset. I also clarified ways she could empathize with people when they were upset without taking responsibility for their feelings. A short time later, I saw evidence that my daughter was beginning to express her needs more openly. A call came from her school principal, apparently disturbed by a communication he'd had with Marla, who arrived at school wearing overalls. "Marla," he'd said, "young women do not dress this way." "To which Marla had responded, "Bug off!" 이 말을 듣고 나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순응만 하기보다 솔직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소중한 선물이 되리라는 것을 말라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다른 사람의 기분이 상했을 때도 말라가 어떻게 그 사람의 느낌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지 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얼마 후 딸이 자신의 욕구를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를 보았다. 한 번은 위아래가 붙어 있는 작업복을 입고 등교한 말라와 얘기하는 동안 몹시 당황한 교장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말라 어린 여학생은 그런 옷을 입는 게 아니다. 라고 말했을 때 말라가 “꺼져요.” 라고 했다는 것이다.

 

Third stage: Emotional liberation. We take responsibility for our intentions and actions. 3단계 : 감정적 해방 단계.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 행동들에 대한 책임을 가진다.

 

Hearing this was cause for celebration: Marla had graduated from emotional slavery to obnoxiousness! She was learning to express her needs and risk dealing with the displeasure of others. Surely she had yet to assert her needs comfortable and in a way that respected the needs of others, but I trusted this would occur in time. 이 이야기는 축하할 만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말라가 드디어 정서적 노예 단계를 졸업하고 얄미운 단계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말라는 다른 사람의 화를 상대해야 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자기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물론 나는 말라가 다른 사람의 욕구도 존중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편안하게 주장하는 법을 머지않아 배우게 되리라고 믿었다.

 

Stage 3: At the third stage, emotional liberation, we respond to the needs of others out of compassion, never out of fear, guilt, or shame. 3단계에서는 정서적 해방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대해 두려움, 죄책감 또는 수치심이 아니라 연민에서 나와 반응한다.

 

Our actions are therefore fulfilling to us as well as to those who receive our efforts. We accept full responsibility for our own intentions and actions, but not for the feelings of others. At this stage, we are aware that we can never meet our own needs at the expense of others. Emotional liberation involves stating clearly what we need in a way what communicates what we need in a way that communicates we are equally concerned that the needs of others be fulfilled. NVC is designed to support us in relating at this level. 다른 사람의 느낌에는 책임을 지지 않지만 우리는 자신의 의도와 행동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또한 이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자신의 욕구를 결코 충족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정서적 해방이란 상대의 욕구 충족도 똑같이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드러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NVC는 이런 차원에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

 

Summary

The third component of NVC is the acknowledgment of the needs behind our feelings. What others say and do may be the stimulus for, but never the cause of, our feelings. When someone communicates negatively, we have four options as to how receive the message; (1) blame ourselves, (2) blame others, (3) sense our own feelings and needs, (4) sense the feelings and needs hidden in the other person's negative message. Judgments, criticisms, diagnoses, and interpretations of others are all alienated expressions of our own needs and values. When others hear criticism, they tend to invest their energy in self-defense our counterattack. The more directly we an connect our feelings to our needs, the easier it is for others to respond compassionately. NVC의 세 번째 요소는 욕구들의 인정이다. 우리의 감정 뒤에 있는 욕구들의 인정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자극이지 원인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들에 대해. 어떤 사람이 부정적으로 우리에게 말할 때 우리는 네 가지 선택을 가지고 있다. 그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1) 우리 자신을 비난한다. (2) 상대방을 비난한다. (3) 우리의 감정과 욕구들을 알아챈다. (4) 감정들과 욕구를 알아챈다.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사람의 부정적인 메시지에 담겨있는 감정과 욕구들을 알아챈다. 판단들, 비판들, 분석들, 해석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모든 소외된 표현들이다. 우리 자신의 욕구와 가치들의 소외된 표현들이다. 사람들은 비판이나 비난을 들으면, 그들의 에너지를 쏟는다. 우리의 공격을 맞받아칠 방어를 하는 것에 힘을 쏟는다. 더 직접적으로 우리 자신의 감정에 연결될수록 - 우리 자신의 욕구에 대한 감정들에 연결될수록 더 쉽게 다른 사람들은 연민으로 우리에게 반응할 것이다.

 

In a world where we are often harshly judged for identifying and revealing our needs, doing so can be very frightening, especially for women who are socialized to ignore their own needs while caring for others. In the course of developing emotional responsibility, most of us experience three states: "emotional slavery"-believing ourselves responsible for the feeling of others, "the obnoxious state"-in which we refuse to admit to caring what anyone else feels or needs, and "emotional liberation" - in which we accept full responsibility for our own feelings but not the feelings of others, while being aware that we can never meet our own needs at the expense of others. 세계에서는. 우리가 자주 가혹하게 판단되는 세계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욕구을 알아채는 것에 대해 가혹하게 판단되는 세계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두려울 수 있다. 특별히 여성들에게, 사회화된 여성들에게. 그들 자신의 욕구들에 무시해야 되는 여성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그들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도록 사회된 여성들에게는. 우리가 감정적 책임감을 발달시키는 과정에 우리 대부분은 3단계를 경험한다. “감정적 노예” 단계에서는 우리 자신을 믿는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두 번째 단계는 “얄미운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는 받아들이기 거부한다. 다른 사람들의 느낌이나 욕구에 대해서 돌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세 번째 단계에는 “정서적 해방”의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전면적인 책임감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 자신의 감정을 충족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NVC in Action

Bring back the Stigma of Illegitimacy! (사생아에 대한 낙인)

A student of Nonviolent Communication volunteering at a food bank was shocked when an elderly co-worker burst out from behind a newspaper, "What we need to do in this country is bring back the stigma of illegitimacy!"The student's habitual reaction to this kind of statement would have been to say nothing, to judge the other severely but silently, and eventually to process her own feelings safely away from the scene. This time, she remembered she had the option of listening for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the words that had shocked her. NVC 연수생, 푸드 뱅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NVC연수생 한 명은 놀랐다. 같이 일하던 여성 연장자가 갑자기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고, 신문을 읽다 말고 갑자기 큰 소리를 터뜨리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생아들에게 낙인을 찍는 일이야” 이 학생의 평소의 반응, 이와 같은 말에 대한 평소의 반응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속으로는 심하게 비난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을 처리했을 것이다. 느낌을 다른 것으로 돌려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는 기억했다. 그녀는 선택을 가졌다는 것을. 감정과 욕구들을 들을 선택을 가졌다는 것을. 그 말들의 뒷면에 있는 감정과 욕구들을 들을 선택. 그녀는 놀라게 했던 말들의 이면에 있는 감정과 욕구들을 들을 선택을 가졌다는 것을 기억했다.

 

Student: (first checking out her guess as to what the coworker was observing) Are you reading something about teenage pregnancies in the paper? 그녀의 추측을 확인하면서, 그 동료 근로자가 관찰하고 있는 것들에 관해 그녀의 추측을 확인하면서 “당신은 읽고 있나요? 10대의 임심에 관해서 읽고 계신가요? 신문에서?

 

Listen to what people are needing rather than what they are thinking. 사람들이 필요한 것에 귀를 기우려라.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가보다는.

 

Co-worker: Yes, it’s unbelievable how many of them are doing it! 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지 믿을 수가 없어요.

 

Student: (now listening for the co-worker’s feeling, and what unmet need might be giving rise to this feeling) Are you feeling alarmed because you’d like kids to have stable families? 동료 근로자의 감정을 들으면서, 그리고 어떤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이것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당신은 놀라시는군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기를 원하기 때문에 놀라신거예요.

 

Co-worker: Of course! Do you know, my father would have killed me if I had done anything like that! 물론이죠. 내 아버지라면 나를 아마 죽였을 거예요. 만약 내가 이와 같은 것을 했다면요.

 

Student: So you’re remembering how it was for the girls in your generation who got pregnant? 선생님이 10대였을 때 여자 아이가 임신하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이 나시는군요.

 

Co-worker: Sure thing! We knew what would happen to us if we got pregnant. We were scared about it all the time, not like these girls nowadays. 물론이죠. 우리들은 알았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만약 우리가 임신했을 때. 우리들은 두려웠어요. 그것에 관해 언제나. 요즘 애들과는 다르게.

 

Student: Are you annoyed that there is no fear of punishment for the girls who get pregnant these days. 당신은 짜증나세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요즘 소녀들에 대해서. 임신했을 때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요즘 소녀들에 대해서 두려우세요?

 

Co-worker: Well, at least fear and punishment worked! It says here that these are girls sleeping around with different men just so they can get pregnant! That’s right! They have babies and the rest of us in society pay for it! 글쎄요. 겁을 주고 처벌을 하는 게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요. 그리고 신문에서 말하길, 여기 소녀들은 다른 사람들과 잔다고 한다. 그들이 임신하기 위해서. 정말 못 믿겠어. 그들은 애를 가지게 되고 우리는 그 양육비용을 세금으로 지불하는 것이네요.

 

The student of NVC heard two different feelings in this statement: astonishment that girls would deliberately get pregnant, and annoyance that taxpayers end up paying for children born in this way. She chose which feeling to empathize with. NVC 학생은 이 진술에서 두 가지 느낌들을 들었다. 놀라움과 억울함. 소녀들이 의도적으로 임신한다는 놀라움과. 결국은 납세자들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지불해야 한다는 억울함. 그녀는 어느 감정에 공감할지 선택했다.

 

Student: Are you astonished to realize that people are getting pregnant these days without any consideration of reputation, consequences, financial stability...all the things you used to consider? 당신은 깨닫고 놀라는군요. 사람들이 오늘날 임신한다는 것에 대해 비난의 고려, 결과의 고려, 경제적인 안정성들에 대해 고려없이 임신한다는 것에 대해 놀라시는군요. 과거에는 이런 것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는데 말이죠.

 

Co-worker: Yeah, and guess who ends up paying for it? 결국 그 돈은 누가 내야 할 것인가요?

 

The co-worker, probably feeling heard around her astonishment, moved on to her other feeling: that of annoyance. As often happens when there is a mixture of feelings present, the speaker will return to those that have not received empathic attention. It is not necessary for the listener to reflect back a complex mixture of feelings all at once; the flow of compassion will continue as each feeling comes up again in its turn. 자신이 놀라는 이유를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자, 동료는 또 하나의 느낌인 억울함으로 옮겨갔다. 동료 근로자는 아마 자신이 놀라는 이유를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자, 또 하나의 느낌인 다른 감정(억울함)으로 옮겨갔다. 여러 느낌이 동시에 일어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을 아직 공감 받지 못한 느낌으로 돌아온다. 청자는 할 필요가 없다. 복잡한 감정으로 한 번에 대응하려고 할 필요 없다. 느낌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공감이 이어진다. 느낌이 하나하나 순서대로 떠오르면서.

 

Student: Sounds like you're exasperated because you'd like you tax money to be used for other purposes. Is that so? 당신은 화가 나는 듯 보이네요. 왜냐하면 당신은 우리의 세금이 다른 용도로 쓰이길 원하기 때문에.

 

Co-worker: Certainly is! Do you know that my son and his wife want a second child and they can't have one-even though they have two jobs-because it costs so much! 물론이죠. 내 아들과 며느리는 두 번째 아이를 갖기를 원하고 있죠. 그리고 그러질 못하고 있어요. 그들이 맞벌이를 하고 있는 데도 말이죠. 돈이 너무 들어요.

 

Student: I guess you're sad about that? You'd probably love to have a second grandchild. . . 그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세요. 당신은 두 번째 손자를 가지고 싶은 데 말이죠.

 

Co-worker: Yes, and it's not just for me that it would make a difference. 그래요, 그렇게만 되면 저만 좋은 일이겠어요?

 

Student: . . . and for your son to have the family he want. . . (Even though the student guessed only partially correctly, she did not interrupt the flow of empathy, instead allowing the co-worker to continue and realize another concern.) 아드님도 정말 그렇겠네요. 연수생의 추측이 일부만 맞았다 해도, 그녀는 공감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았다. 대신에 동료 근로자가 계속해서 또 다른 자신의 관심사를 이야기 할 것이기 때문에.

 

Co-worker: Yes I think It's sad to be single child too. 그래요, 또 아이가 외동딸로 자라는 것도 슬픈 일이지요.

 

Student: Oh, I see, you'd like for Katie to have a little brother? 아~케이티에게 동생이 있었음하고 바라는 군요.

 

Co-worker: That would be nice. 그러면 좋죠.

 

At this point, the student sensed a release in her co-worker, a moment of silence elapsed. She felt surprised to discover that, while she still wanted to express her own views, her urgency and tension had dissipated because she no longer felt "adversarial," 이 시점에서 연수생은 동료의 태도에 다소 여유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발견하고 놀랐다. 그녀는 여전히 그녀의 견해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긴박감이나 긴장감은 사라졌다. 왜냐하면 그녀는 더 이상 적대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She understood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co-worker's statements and no longer felt that the two of them were "worlds apart." 그녀는 이해했다. 동료 근로자의 진술 뒤에 있는 감정과 욕구들에 대해. 그리고 더 이상 그들 두 사람은 다른 세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Student: (expressing herself in NVC, and using all four parts of the process: observation[O}, feeling[F], need[N], request[R]) You know, when you first said that we should bring back the stigma of illegitimacy[O}, I got really scared[F}, because it really matters to me that all of us here share a deep caring for people needing help[N}. NVC 방식으로 그녀 스스로 표현하면서 NVC 네 부분들을 사용하면서, 관찰, 느낌, 욕구, 부탁등. 당신이 처음 우리는 사생아에게 낙인을 찍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 두려웠어요. 왜냐하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공감하고 나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에.

 

Some of the people coming here for food are teenage Parents[O], and I want to make sure they feel welcome[N}. 여기에 오는 사람들의 일부분은 10대 부모들이다. 그리고 나는 확신하길 원한다. 그들이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갖는 다는 것을.

 

Would you mind telling me how you feel when you see Dashal, or Amy and her boyfriend, walking in? [R] 어떤 느낌이 드세요. 당신이 데샬, 또는 에이미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여기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The dialogue continued with several more exchanges until the woman got the reassurance she needed that her coworker did indeed offer caring and respectful help to unmarried teen clients. 이 대화는 동료가 이곳에 오는 미혼 청소년에게 존중과 애정이 담긴 도움을 주리라고 연수생이 확산하게 될 때까지 더 이어졌다. 그녀의 동료 근로자가 존중과 애정이 담긴 도움을 제공한다는 것. 미혼 청소년들에게 존중과 애정이 담긴 도움을 주리라고 연수생이 확신하게 될 때까지 더 이어졌다.

 

Even more importantly, what the woman gained was a new experience in expressing disagreement in a way that met her needs for honesty and mutual respect. In the meantime, the co-worker left satisfied that her concerns around teen pregnancy had been fully heard. Both parties felt understood, and their relationship benefited from their having shared their understanding and differences without hostility. In the absence of NVC, their relationship might have begun to deteriorate from this moment, and the work they both wanted to do in common-helping people-might have suffered. 더 중요한 것은 얻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의견이 다른 것을 표현할 때, 그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상대와 자기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시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을 얻은 것이었다. 한편 동료는 만족을 느꼈다. 그녀의 10대 임신에 대한 우려를 누군가가 충분히 들어 준 것에 대해 만족을 느꼈다. 두 사람은 이해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나아졌다는 것을. 그들의 이해를 공유하고 적대감 없이 차이점을 서로 알게 되어서. NVC가 없었더라면 그들의 관계는 악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하고자 했던 - 사람들을 돕는 것 - 일을 하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Exercise 3

To practice identifying needs, please circle the number in front of each statement where speaker is acknowledging responsibility for his or her feelings. 욕구를 알아채는 연습을 위해서 번호에 동그라미를 치시오. 각 진술의 앞에 있는 번호에 동그라미를 치시오. 화자가 책임감을 인정할 때. 그 또는 그녀의 감정들에 대해서 책임을 인정하는 진술일 때 문제 번호에 동그라미를 치시오.

 

1. "You irritate me when you leave company documents on the conference room floor." 당신은 나를 초조하게 만듭니다. 당신이 회사 서류들을 회의실에 두고 떠날 때. <이것은 화자의 감정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초조합니다. 당신이 회사 서류들을 회의실에 두고 떠나는 것을 보면, 왜냐하면 나는 우리 서류들이 안전하게 보존되고 찾기 쉽게 보관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2. I feel angry when you say that, because I am wanting respect and I hear your words as an insult. 나는 화가 납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할 때, 왜냐하면 나는 존중을 원하고 있고 당신의 말들이 모욕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화자의 자신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3. “I feel frustrated when you come late.” 나는 좌절감을 느낍니다. 당신이 늦게 온 것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고 있다. ‘나는 ~을 원하기 때문에 ~이라고 느낀다’ 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나는 좌절감을 느낍니다. 당신이 늦게 올 때 왜냐하면 나는 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좀 더 앞자리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4. I’m sad that you won’t be coming for dinner because I was hoping we could spend the evening together. 난 슬픕니다. 당신이 저녁 식사에 오지 않은 것 때문에. 왜냐하면 나는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5. I disappointed because you said you would do it and you didn’t. 난 실망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 해 놓고 그렇게 하지 않아서. <자신이 감정에 대한 책임을 상대방에게 넘기고 있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하겠다고 해 놓고 하지 않았을 때, 저는 실망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말을 신뢰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6. I’m discouraged because I would have liked to have progressed further n my work by now. 지금쯤 작업이 많이 진행됐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걱정이에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7. Little things people say sometimes hurt me. 사람들이 말하는 사소한 것들 때문에 가끔 상처를 받아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사람들이 사소한 것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상처받는다. 왜냐하면 나는 인정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비판받기 보다는>

 

8. I feel happy that you received that award. 네가 그 상을 타서 정말 기뻐. <“네가 그 일에 들인 노력이 인정받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 상을 받았을 때 나는 정말 기뻤어.”>

 

9. I feel scared when you raise your voice.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당신이 목소리를 높일 때 <당신이 목소리를 높였을 때, 나는 무서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내 스스로에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가슴 아플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알 필요가 있다. 우리가 모두 안전하다는 것을.”>

 

10. I am grateful that you offered me a ride because I was needing to get home my children arrive. 전 고마움을 느낍니다. 당신이 나를 태워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왜냐하면 나는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집에 오기 전에 도착해야 해서.

 

Here are my responses for Exercise 3: 연습문제에 대한 나의 대답

1.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me, the statement implies that the other person's behavior is solely responsible for the speaker's feeling. It doesn't reveal the needs or thoughts that are contributing to the speaker's feelings. To do so, the speaker might have said. “I'm irritated when you leave company documents on the conference room floor, because I want our documents to be safely stored and accessible.”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진술은 다른 사람의 행동이 온전히 화자의 감정에 책임이 있다고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욕구나 감정들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화자의 감정이나 느낌에 영향을 준 것에 대해. 그렇게 하기 위해서 화자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초조합니다. 당신이 회사 서류들을 회의실에 두고 떠나는 것을 보면, 왜냐하면 나는 우리 서류들이 안전하게 보존되고 찾기 쉽게 보관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2.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in agreement that speaker is acknowledging for his or her feelings. 당신이 이 문제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합니다. 화자가 인정하고 있다고 그 또는 그녀의 감정에 대해.

 

3.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express the needs or thoughts underlying his or her feelings, the speaker might have said. "I feel frustrated when you come late because I was hoping we'd be able to get some front-row seats.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또는 그녀의 감정들 밑에 깔려 있는 욕구들과 생각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화자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좌절감을 느낍니다. 당신이 늦게 올 때 왜냐하면 나는 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좀 더 앞자리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4.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in agreement that the speaker is acknowledging responsibility for his or her feelings.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합니다. 화자가 책임감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그 또는 그의 감정들에 대한 책임감을 인정한다는 것에 대해.

 

5. If you circle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express the needs and thoughts underlying his or her feelings, the speaker might have said, "Whey you said you'd do it and then didn't, I felt disappointed because I want to be able to rely upon your words.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또는 그녀의 감정들 밑에 깔려 있는 욕구들과 생각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화자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것을 하겠다고 해 놓고 하지 않았을 때, 저는 실망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말을 신뢰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6.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in agreement that the speaker is acknowledging responsibility for his or her feelings.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말하는 이가 자신의 느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다는 데에 우리 의견이 일치한다.

 

7. If you circle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express the needs and thoughts underlying his or her feelings, the speaker might have said, "Sometimes when people say little things, I feel hurt because I want to be appreciated, not criticized.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또는 그녀의 감정들 밑에 깔려 있는 욕구들과 생각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화자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가끔 사람들이 사소한 것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상처받는다. 왜냐하면 나는 인정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비판받기 보다는”

 

8.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express the needs and thoughts underlying his or her feelings, the speaker might have said, "When you received the award, I felt happy because I was hoping you'd be recognized for all the work you'd put into the project."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의 견해는 서로 다르다. 느낌 뒤에 있는 욕구가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그 일에 들인 노력이 인정받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 상을 받았을 때 나는 정말 기뻤어.”

 

9.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not in agreement. To express the needs and thoughts underlying his or her feelings, the speaker might have said, “When you raise your voice, I feel scared because I’m telling myself someone might get hurt here, and I need to know that we’re all safe.” 만약 당신이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욕구와 생각들 - 그 또는 그녀의 감정 밑바닥에 있는 욕구와 생각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화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당신이 목소리를 높였을 때, 나는 무서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내 스스로에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가슴 아플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알 필요가 있다. 우리가 모두 안전하다는 것을.”

 

10. If you circled this number, we’re in agreement that the speaker is acknowledging responsibility for his or her feelings. 이 번호에 동그라미를 쳤다면 말하는 이가 자신의 느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다는 데에 우리 의견이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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