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라고 한다.
물론 어려운 음악이다. 그러나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밴드의 음악
은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듣기에 매우 좋다.
어려운 음악이라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니까. 이들이 추구하는 장르
는 Fusion Jazz이다. 정확히 말해 'Jazz Rock Fusion'인 이 장르는
1969년 마일즈 데이비스의
정통 재즈만을 고집하는 몇 뮤지션을 제외하곤 우리귀에 익숙한 뮤지
션들은 모두 퓨전재즈의 계열이라 할 수 있다.
퓨전재즈의 좋은 점은 단순히 어느 한 장르에만 국한하지 않고 Cross
over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좋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방의 귀재들'인 일본인들이 이런 퓨전
재즈를 나름대로 그들의 음악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이 바로 카시오페
아이다. 이들말고도 일본에는 이들의 숙명의 라이벌인 'T-Square'와
Jimsaku, Paradox, Prism등이 Japanese Fusion계를 이끌어가고 있
다. 보통의 재즈가 자유로운Improvization 즉 즉흥연주를 중요시하는
데 반해, 이 일본 퓨전의 특징이라면 즉흥연주보다는 사전에 치밀하
게 계산된 전개 속에서 깔끔하게 연주하는 데 있다. 깔끔한 음식이나
깔끔한 옷차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런 류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CASIOPEA'는 생소한 이름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TV만 집에 있다면 카시오페아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
은 아마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면 프로그램 시그널 음악이나
방송 중간중간 BGM 등에 사용되는 음악 중 뻥 안치고 90%이상이 그
들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올 해로 결성 22년을 맞는 그들은 통산 30개의 앨범(94년 베스트 앨
범포함)을 발표했다. 말이 30개지 사십을 넘은 그들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정말 왕성한 창작력을 짐작케 한다.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인 Issei Noro는 76년에 일본 굴지의 악기회사인 야마하가 주최
하는 콘테스트에서 최우수 기타리스트 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
했고(Yamaha선 그를 위해 그의 이름을 빌린 기타모델도 제작한 바
있다.), 77년도에 카시오페아를 결성했다.
카시오페아의 거의 모든 곡을 작곡하는 그는 키보디스트인 Minoru
Mukaiya와 함께 지금까지도 카시오페아를 이끌고 있다.
미노루 무까이야는 언변이 아주 뛰어나다. 라이브에서 지루하지 않게
분위기를 이끄는 멘트도 곧잘 던지는데 이런 뛰어난 언변 못지 않게
연주 실력도 절대 이에 뒤지지 않는다.
현재 이 그룹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사람은 Yashihiro Naruse이다.
우리 나라의 베이시스트계의 전설인(?) "울고싶어라"의 이남이 씨와
외모에서 매우 흡사한 이 사람의 베이스 실력은 혀를 내두를 만하다.
연주력이 훌륭하기로 소문난 일본의 뮤지션 사이에서도 그의 베이스
초퍼 테크닉은 칭송받고 있다. 애석하게도 92년 가입했던 70년 생의
젊은 드러머 노리야키 구마가이가 탈퇴한 후 드러머 자리가 아직 공
석으로 남이 있다.
이후 앨범
전성기시에 멤버로 활동했던 천재드러머 'Akira Jmbo'가 참여하고
있다.
아키라 짐보는 현재 그룹 'Jimsaku'에서 활발한 활동 중이다.
1977년 이세이 노로와 Tetsuo Sakurai에 의해 결성된 이들은 당시 최
고의 퓨전그룹인 'The Spuarre'(현 T-square)를 능가하는 밴드를 찾
기에 혈안이 된 Alfa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게 되고 회사의 전폭적인 지
원 아래 79년 첫 앨범을 발표한다.
이들의 데뷔앨범은 당시의 변화하던 일본재즈계에 파란을 몰고 오게
되었고, 이어 발표한 2집의 성공으로 크게 고무되었다. 그 후 새로운
드러머인 아키라 짐보의 영입으로 카시오페아는 음악적으로 진일보
하였으며 계속되는 앨범의 발표로 빌보드 재즈 차트 탑10에 오르는
영광을 안게 된다.
어느덧 그룹결성 10주년을 맞이 한 86년에 'John
Waite'의 게스트 보컬이 참여한 10주년 기념앨범인
페아는 퓨전이라는 장르에 기류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얻어내게 된다.
소속 레코드사를 Polydor로 옮긴 이들은 88년 7월부터 브라질을 시
작으로 2달여의 월드 투어를 갖게 된다.
이 후 약 1년여의 공백 기간
동안 솔로앨범 작업 등 밴드 외적인 활동을 하던 이들은 이 기간 중
테츠오와 아끼라가 탈퇴하는 불운을 겪는다.
다시 명베이시스트 야시히로 나루세로 전열을 다듬은 카시오페아는
92년 젊은 드러머를 영입해 보다 많은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 후 후기작품들을 통해 다양한실험정신을 표출하고 있다.
카시오페아는 스스로의 음악에 대해 항상 진보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들 음악의 저변에 깔린 기본적 성향은 변함없으나 그들의 말대로
항상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로써 팬들을 만족시킨다.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특히 빠른 템포의 곡) 조그마한 빈틈도 보이지 않
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함 그 자체이다. 계속해서 리듬과 코드를 바꿔
나가며 심지어는 즉흥연주 시에도 과연 이것이 즉흥적인 것인지 의구
심이 들 정도로 환상적이다.
Casiopea는 서구의 다른 퓨전 밴드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하는 색다른
감흥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에겐 일본이라면 무조건 배격하는 성향
이 있는 게 사실이다.
카시오페아는 96년에도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말도 안되는
공연도 국내에서 행한 바 있다.
일본밴드의 국내 공연 금지라는 당국의 조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문화개방의 시대에 우리는 서 있다.
아니 일본문화 수입금지의 상황이라 해도 카시오페아 같은 훌륭한 밴
드의 공연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공연이 자주 이루어질 때 우리의 음악계도 발전할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