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역사를 따라서

구약시대 - 바벨탑과 지구라트

작성자영성|작성시간18.07.02|조회수152 목록 댓글 0

5. 바벨탑과 지구라트


 지금부터 바벨탑 사건에 얽힌 고고학을 살펴 보겠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11장 1-9절에 보시면

'온땅에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서로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니... 그들이 성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하니...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여기서 성이란 도시를 말합니다.

개정개역판 성경에 보시면 도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냥 성이 아니라 거대한 도시였던 것이지요.


이를 누가 주도했을까요?

바로 고대 최초의 통일제국을 만든 사람 '니므롯' 입니다.


니므롯이 통일제국을 만든 뒤 여러 가지 이질적인 종족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쉽게 다스리기 위해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와 같이 도시부터 만든 이후에 높은 탑을 쌓은 것입니다.


  이제 바벨탑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을 살펴 보겠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신전을 지구라트라고 합니다.

그 신전중에 제일 큰 것으로

보이는 탑이 근래에 와서 발견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이 지그라트가 그 당시에도 이미 오래된 역사를 가진 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최고 왕이 느부갓네살이고, 예루살렘을 함락한 것이 기원전 586년입니다.


그 당시에도 이미 지그라트는 오래된 탑이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기록뿐 아니라 그리스의 유명한 역사가 헤로도투스도 같은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BC500년 경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바빌로니아의 거대한 건축물에 대해서 기록해 놓았는데,

이 건축물은 서로 맞물리는 여덟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위에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한 나선형의 길이 나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거대한 신전, 바빌로니아의 신의 집을 지어 놓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210m 이상의 높이를 가졌다고 합니다.

한 층을 약 3m로 잡으면 70층이 되는 것이지요.

63빌딩보다 더 높습니다.

수천년 전에 이러한 어마어마한 탑을 지은 것입니다.

다 지었으면 더 높았겠지만, 중간에 하나님이 공사를 중단시켜 그 정도로 그친 것이지요


 오늘날 이라크 지역에 많은 지구라트들이 남아 있습니다.

지그라트의 무너진 수많은 벽돌을 다시 쌓아서 복원하였습니다.

후세인이 관광목적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수천년전에 만들어진

이 벽돌 한 장 한 장에는 놀랍게도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기들이 섬기던 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마르둑(Marduk)'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오른 쪽 그림은 이라크에 있는 많은 지구라트 중 하나의 모습입니다.


바빌로니아의 전승에 의하면 이 탑은 원래 니므롯에 의해 축조되었다고 합니다.


아랍 사람들은 오늘날 까지도

이 탑이 있는 지역을 Birs Nimrud, 즉 '니므롯의 땅'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진의 탑은 옛날 하나님이 중단시킨 바벨탑과 동일한 유형의 것이지만 그 보다는 훨씬 작습니다.  

 


 


초가잔빌 지구라트의 원래 모습

 


남쪽 정문

 


남서쪽 문과 제단

 


북동쪽

 


서쪽

 


동쪽 묘지

 

지구라트 해시계                http://tong.nate.com/travel




지구라트 쐐기문자, 엘람어


 

지구라트 지성소



 

 

초가잔빌 [Tchogha Zanbil]


이란 후제스탄주에 있는 고대도시 유적지로

BC 13세기 중반 엘람 왕국의 왕  운타시 갈(Untash Gal:BC 1250경 재위) 건설한 도시이다.


수도인 수사 남쪽에 있으며 당시에는 '두르운타시'라고 불렸다.

수소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신 인슈시나크를 모신 성소로서 엘람 왕족의 묘지가 있는 성도이다.


BC 640년 무렵  아시리아의 침입으로 수사와 함께 파괴되었으나

1935년 유전탐사로 인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도시는 2중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벽 총길이는 약 4km이고 안쪽에는 내벽이 둘러쳐져 있다.

내벽 안쪽은 가로 470m, 세로 380m, 면적 약 18ha로서 성역으로 여겨졌다.

이곳에는 성탑  지구라트, 신전, 안뜰, 무기와 장식품을 보관하는 창고 등이 세워져 있었다.


지구라트 북서쪽 벽으로 둘러싸인 사각 모양의 공간에는

남신 이슈니칼랍·나피리샤와 여신 키리리샤를 모신 3개의 신전이 있다.

각 신전에는 안뜰 지성소·공물보관소 등이 설치되어 있다.

건물 기단은 불에 구워 만든 벽돌, 건물 위쪽은 햇볕에 말린 어도비 벽돌로 지었으며

벽에는 엘람어로 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유적 중앙에 있는 지구라트는

서아시아 최고의 규모로서 현재 높이 28m이다.

초가잔빌은 원래 5층이였으나 현재 3층까지만 남아있으며

원래 높이는 60미터로 추정되나 현재는 25미터이다.

밑면은 한 변의 길이가 102미터인 정사각형 모양이다.

4모퉁이가 동서남북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1935년 앵글로 이란 석유회사가 지역조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고대 이란땅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산을 신성시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산이 없어서

산의 형상을 만든 것이 이 초가잔빌의 지구랏트로 알려져 있다.

197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지구라트


 

BC 3000년대 전반 이전의 기단이 있는 신전에서 그 원형을 볼 수 있으며,

우르(Ur) 제3왕조의 수립자인 우

르남무(Ur―Nammu)의 지구라트에서 기본적인 형을 거의 갖춘 것으로 보인다.


우르남무는 우르·우르크·니푸르(Nippur)·에리두에 지구라트를 세웠는데

이 중 유명한 우르의 지구라트는 3층의 기단 윗부분에

주신(主神) 난다에게 봉헌한 신전을 배치하고 정면과 양 측면에는 계단을 배치한 구조이다.

이러한 형태의 지구라트는 카시트시대(BC 2000년대 후반) 두르쿠리갈주에서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기단 위의 신전과 같은 신을 모시는 신전이 산기슭에 세워져 있다. 


이것은 신이 있는 곳(높은 곳의 신전)과 인간이 예배를 드리기 위한 장소(낮은 곳의 신전)라는

종교개념의 확립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뒤의 지구라트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시리아 시대(BC 1365∼BC 609), 북메소포타미아의 각 도시에 조영(造營)된 지구라트에는

계단 대신에 경사로(傾斜路)가 설치되었다.


6개의 신전에 부속되어 있는 코르사바드의 지구라트는 4층만 남아 있는데

그 당시는 7층으로 채색되어 있었다고 한다.

<바벨탑>으로 유명한 바빌론의 지구라트는 신바빌로니아시대(BC 625∼BC 538)에 속한다.


주신 마르두크의 신전에 이르려면 계단과 경사로를 지나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채색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밖에 엘람에서도 초가잔빌에 BC 13세기에

5층의 기단이 있는 인슈시나크신(神)의 지구라트가 건조되었다.

이와 같은 지구라트를 축조할 때에는 속에는

햇볕에 말린 벽돌을, 겉마무리 쌓기에는 구운 벽돌을 쓰고,

역청(瀝靑) 등을 모르타르로 사용하였다. 또한 표면의 채색은 채유(彩釉) 벽돌로 하였다




 


우르의 지구라트


 

우르의 지구라트는 3층의 기단 윗부분에

주신(主神) 난다에게 봉헌한 신전을 배치하고 정면과 양 측면에는 계단을 배치한 구조이다.

이러한 형태의 지구라트는 카시트시대(BC 2000년대 후반) 두르쿠리갈주에서도 볼 수 있다


 


우르의 지구라트


 

 

서기전 2100년경 건설된 우르의 지구라트는

지금까지 발견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전된 것이다.


당시 우르 제III 왕조의 왕 우르-남무는

이 도시의 수호신 난나(Nanna)를 모신 신전을

좀더 높은 곳에 세워 도시의 중심적인 상징으로 만들고자 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의 원형이기도 한 지구라트는

원래 꼭대기의 신전을 받치기 위한 받침대에 불과하다.

따라서 비록 지구라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부터 그 건축적인 아이디어를 빌려왔지만

이곳에서는 무덤이 아닌 신전 받침대로 활용됐다.

재질이 약한 흙벽돌을 주로 건축자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강도를 높이기 위해 역청을 사이사이에 깔았고

어떤 경우에는 갈대로 엮은 매트리스를 일정한 간격으로 흙벽돌 사이에 끼워넣기도 했다

 

<이라크의 지구라트>

 

Assur의 지구라트       http://oi.uchicago.edu/OI/IS/SANDERS/PHOTOS/MESO/ASSUR

 







 

Assur

 

Assur  

 

Assur 지구라트 서쪽


 

Nimrud의 지구라트          http://oi.uchicago.edu/OI/IS/SANDERS/PHOTOS/MESO/NIMRUD

 
이라크 니므롯의 지구라트(대탑)


 

이라크에 있는 많은 지구라트 중 하나의 모습이다.

바빌로니아의 전승에 의하면 이 탑은 원래 니므롯에 의해 축조되었다고 합니다.

아랍 사람들은 오늘날 까지도 이 탑이 있는 지역을 Birs Nimrud, 즉 '니므롯의 땅'이라고 부릅니다.

이 탑은 옛날 하나님이 중단시킨 바벨탑과 동일한 유형의 것이지만 그 보다는 훨씬 작다.


바빌로니아의 신전을 지구라트라고 합니다.

그 신전중에 제일 큰 것으로 보이는 탑이 근래에 와서 발견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바빌로니아의 최고 왕이 느부갓네살이고,

예루살렘을 함락한 것이 기원전 586년 인데 그 당시에도 이미 지그라트는 오래된 탑이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 건축물은 서로 맞물리는 여덟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위에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한 나선형의 길이 나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거대한 신전, 바빌로니아의 신의 집을 지어 놓았다고 기록하였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210m 이상의 높이를 가졌고  한 층을 약 3m로 잡으면 70층이 된다.

수천년전에 만들어진 이 벽돌 한 장 한 장에는 놀랍게도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기들이 섬기던 신의 이름인 '마르둑(Marduk)'이라고 쓰여 있다


 

Uruk 지구라트            http://oi.uchicago.edu/OI/IS/SANDERS/PHOTOS/MESO/URUKl


 



Uruk 지구라트



 

Aqarquf 지구라트      http://oi.uchicago.edu/OI/IS/SANDERS/PHOTOS/MESO/AQARQUFl

 

Borsippa 지구라트     http://oi.uchicago.edu/OI/IS/SANDERS/PHOTOS/MESO/BORSIPPA

 

Borsippa 지구라트    



 

Eridu 지구라트     http://oi.uchicago.edu/OI/IS/SANDERS/PHOTOS/MESO/ERIDU

 

Kish 지구라트   http://oi.uchicago.edu/OI/IS/SANDERS/PHOTOS/MESO/KISH

 




Kish 지구라트


 

6층에 바알신의 지성소가 있었다

 

바빌론의 지구라트는 신바빌로니아시대(BC 625∼BC 538)에 속한다.

주신 마르두크의 신전에 이르려면 계단과 경사로를 지나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채색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바빌론에는 위대한 신들을 위한 신전 53개, 마르둑신을 위한 예배당 55개,

대지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 3백개, 하늘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이 6백개가 있었으며,

여러 신들을 위한 제단이 4백개가 있었다.


이 중에는 ‘신의 문’이라는 뜻의 바벨탑이 있었는데,

이 탑은 7층으로 높이가 90m며 8천5백만개의 벽돌을 사용했다.

나보포라싸왕은 ‘마르둑신이 나에게 에테메난키(바벨탑)의 기초를

지구 중심까지 닿도록 단단하게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래야만 하늘까지 오를 수 있는 건물을 만들 수 있다’고 적었다.

 

Tower of Babel (바벨탑)


바벨탑의 기사는, 창 11:1-9에 보여지는데,

홍수 후의 인간의 문명의 하나의 도달점이 여기서 간결한 기사에 의해 훌륭히 설명되어 있다.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두 가지의 물음에 대한답이 보여져 있기도 하다.

제1은, 어찌하여 지상의 민족은 종류가 다른 말을 쓰고 있는가,

제2는, 어찌하여 고대 바빌로니아의 주민은 오늘날도 아직 남아 있는

거대한 구운 벽돌의 탑(塔) 지구라트(Ziggurat)를 세웠는가의 물음인데,

이 물음과 답에서 성서기자는 심원한 영적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탑은, 인간이 자기의 위대함과

하나님 없이 인간의 일치를만들 수가 있다는 인간의 세속적 야심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에 심판을 내리시는데, 그것은 어떤 폭력적 수단에 의하지 않고,

다만 언어를 혼란케 하시는 방법을 취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상호 이해의 수단을 잃고, 각자 흩어져 갔다는 것이다.


오순절의 일은, 이 바벨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판의 역(逆)이었다(행 2:1-11).

여기서는 하나의 말이, 많은 언어를 달리하는 사람에게 모국어로 말하듯이 이해되었다.

바벨에서는 하나의 언어가 말해졌지만, 형제는 서로 이해치 못했다.

그러나 오순절에는 많은 다른 언어의 사람들이 서로형제처럼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이 있었다.

[하나에서 여럿으로]가 바벨의 분열의 비극이고,

[여럿에서 하나로]가 오순절의 축복이다.

성령에 의한 참 일치야말로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창10장과 행2장에 여러민족의 列記가 있는 것은 주의할 만하다).


바벨탑의 기원은 바빌로니아의 도시국가의 특징으로 되어 있는 지구라트(Ziggurat)이다.

이것은 피라미트 형(形)의 높은 탑으로서 보통은 7층루(七層樓)로 되어 있으며,

신원(神苑)의 중앙에세워졌는데, 정상에는 신전이 만들어지고, 거기서 제의가 행해졌다.

7층루는 일곱 가지 색으로 칠해지고, 5개의 유성과 태양, 태음,

또는 그것에 상당하는 신신의 상징으로 다음과 같은관계였다.


제1층 토성(土星)ㆍㆍㆍㆍ니니브(Ninib)ㆍㆍㆍㆍ흑색(黑色)

제2층 목성(木星)ㆍㆍㆍㆍ(마르두크Marduk)ㆍㆍ등황색(橙黃色)

제3층 화성(火星)ㆍㆍㆍㆍ네르갈(Nergal)ㆍㆍㆍ심홍색(深紅色)

제4층 태양(太陽)ㆍㆍㆍㆍ샤마슈(Samas)ㆍㆍㆍ황금색(黃金色)

제5층 금성(金星)ㆍㆍㆍㆍ이슈타르神(Istar)담황색(淡黃色)

제6층 수성(水星)ㆍㆍㆍㆍ느보神(Nebo)ㆍㆍㆍㆍ남색(藍色)

제7층 태음(太陰)ㆍㆍㆍㆍ신神(Sin)ㆍㆍㆍㆍ백은색(白銀色)


바벨론에 있어서의 발굴의 결과,

바벨탑은 마르두크의 신전(神殿) 에사길라(Esagila=머리를 높이 든 자의 집)의 북방

에테메난키(Etemenanki=하늘과 땅의 기초의 집)라고 불리우는 지구라트로 동정된다.


이것은 슈메르인에 의해서 기공된 것인데,

결국 셈족의 침입에 의한 정치적 변동 때문에 준공하지 못하기에 이르렀다.


이 미완성인 탑의 거대한 유물은 오랫동안 고대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되었다.

산헤립(Sennacherib 전 704-681)이 바벨론을 점령한 때 이 유물을 제거하려 했으나 성공치못했다.

에살핫돈(Esarhaddon 전 680-669),앗슈르바니팔(Asshurbanipal 전 668-631)등도

이재축(再築)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어서 나보폴랏살(Nabopolassar 전 626-605)도공사를 계속했으나

성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그 완성은 겨우 느브갓네살 2세(Nebuchadnezzar Ⅱ 전 605-562)에 의해 이룩되었다.

그의 비문에는 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다.

탑의 지계(地階)는 91.4㎡이고, 높이 36.5, 제2층의 주변은 지계(地階)보다 좁고, 높이는 20m,

제3층에서 6층까지는 각 층 모두 높이 6.4m, 그 주변은 층을 거듭함에 따라 좁아지고,

제7층 즉 최상탑은 높이 17m, 그 가운데 신전이 세워져 있으며 탑 전체의 높이는98.5m에 미치고 있었다.

바벨론 멸망후 이 폐허는 주변 주민의 흙벽돌 절취장(切取場)으로 되어버렸다.

옛 탑의 기초였던 부근은 현재 불과 91.5㎡의 구덩이로 되어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