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메이온(σημεῖον) : 표적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1)
‘표적’으로 번역된 헬라어 ‘세메이온’(σημεῖον)은 ‘표시’라는 뜻의 ‘세마’라는 단어를 어원으로 가지고 있는
‘신호를 보내다, 신호하다, 지시하다, 알리다, 보이다, 가리키다’라는 뜻의 ‘세마이노’(σημαίνω)의 어간에서
추정된 파생어로 ‘지시, 신호, 표시, 상징, 징후, 전도, 기사, 표적, 기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메이온’(σημεῖον)의 동사형은 ‘세메이오오’(σημειόω)인데
데살로니가후서 3장14절에 한번 나오며 ‘지목하다, 표시하다, 표시로 구별하다, 기록하다’라는 뜻이다.
이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메이온’(σημεῖον)의 의미를
단순히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라는 의미의 ‘기적’(奇跡)으로만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물론 초자연적인 능력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는 일이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르쳐 주고 증거한다는 사실이다.
‘세메이온’(σημεῖον)의 히브리어가 ‘오트’(תוא)인데
구약성경에서도 이 단어는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신호,
문자적으로나 상징적으로 깃발, 횃불, 기념비, 증거, 기적, 증거, 전조, 서명, 상징’ 등의 의미로 쓰여지고있다.
출애굽기 12:13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살리는 표적임을 보여줍니다.
피는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장자의 죽음을 통한 대속의 은혜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표적을 껍데기로만 붙들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실체인 그리스도의 영을 깨달아야 심판을 넘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7:10 “너희 중 모든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말로만 약속하지 않고. 눈에 보이고 몸으로 기억되는 ‘표징’을 주셨어요.
성경에서 ‘표징’은 히브리어 ‘오트’(אוֹת) 라고 하는데 ‘표시(sign), 표적(mark)’이라는 뜻이에요.
즉, 하나님은 “내가 너에게 주는 언약은 너희가 잊어버릴 수 없는 방식으로 너희 삶 안에 새겨지길 원한다”
왜 ‘할례’였을까? — ‘할례’는 히브리어로 “מוּל (물)”, 뜻은 “잘라내다, 제거하다”예요.
단순히 신체적 행위가 아니라 영적으로는 ‘옛사람을 잘라낸다’는 상징이었어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세상을 따라 사는 옛 모습이 아니라
언약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마음에 새기는 표로 할례를 주셨어요.
바울도 나중에 이렇게 말하죠.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오직 마음의 할례가 진정한 할례니라.” (롬 2:28-29)
즉,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몸의 모양”보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가”였어요.
언약은 ‘조건’이 아니라 ‘관계’다
하나님이 할례를 주신 이유는 “너희가 이걸 해야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라는 조건이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예요.
“내가 너희를 먼저 사랑했고, 그 사랑을 너희가 잊지 않도록 언약의 표징을 준다.”
언약은 계약(contract) 이 아니라 관계(covenant) 에요. 계약은 서로의 의무를 조건으로 묶지만,
언약은 “사람 자체”를 묶어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삶 전체”를 묶으신 거예요.
오늘날의 ‘할례’는 무엇일까?
육체의 할례를 행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과의 언약을 마음에 새기기를 원하셔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언약의 표징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의 인침이에요.
성령께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죄를 잘라내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이끄셔요.
즉, 오늘날의 “할례”는 예수 안에서 새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영적 감각이에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잘라내고 주님께 순종하도록 부드러워지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의 할례”예요.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를 지키는 울타리이다
할례의 목적은 인간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울타리였어요.
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먼저 약속을 걸어오셨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약속의 흔적을 우리 마음과 일상 속에서 계속 기억하도록 하나님은 은혜의 표징을 주시는 거예요.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하세요.
“내가 너를 언약 안에 두었다.” “너는 내 것이다.” 이것이 창세기 17:10의 가장 따뜻한 메시지예요.
그러기 때문에 ‘세메이온’(σημεῖον)이나 ‘오트’(תוא)는
눈에 보이는 이적 그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임을 알아야 하며
신약성경에서 쉽게 오해할 수 있는 ‘이적(세메이온 : σημεῖον)이라는 단어를 올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표적’(σημεῖον)을 겉으로만 보고(에이도 : εἶδω)
말로는 예수를 세상에 오실 선지자라고 고백하지만
이 땅에서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려고 임금 삼으려 했던 것(요 6:14,15)이다.
그래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σημεῖον)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는 것이다(마 24:24).
그러나 예수님의 ‘표적‘(σημεῖον)은 모두가 그 자신의 영광을 명백하게 나타내시는 것이며(요 2:11)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가리키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σημεῖον) 밖에는
보일 ‘표적’(σημεῖον)이 없다(마 12:39)고 말씀하신 것이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면 하늘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손가락 끝이나 그 사람을 본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눈에 나타난 현상, 심지어 그것이 상식적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기적 같은 것이라도
그 현상 자체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며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라(호라오 : ὁράω)는 것이 ‘세메이온’(σημεῖον)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