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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개념정리

영광 : 독사

작성자주영성|작성시간26.06.06|조회수114 목록 댓글 0

독사(δόξα) : 영광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영광’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독사’(δόξα)는

‘생각하다, …처럼 보이다, 여겨지다, 상상하다, 간주되다’라는 뜻의 ‘도케오’(δοκέω)의 어간에서 파생되었으며,

‘의견, 판단, 견해, 장엄, 탁월, 현저, 존귀, 품위’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문자적인 면과 상징적인 면에서 ‘거룩, 위엄, 거룩한 영예, 찬양, 경배’라는 의미와 함께

‘가장 영광스러운 상태, 가장 고귀한 상태’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독사’(δόξα)의 히브리어는 ‘카보드’(דובכ)라는 단어인데

‘무거움, 영광, 명에, 영광스러운, 존귀, 풍부’라는 뜻이며,

알파벹의 뜻을 조합하면 ‘하나님의 것을 우리에게 넘겨주신 진리의 그 집이 열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카보드’(דובכ)의 동사형은 ‘카바드’(דבכ)또는 ‘카베드’(דבכ)이며 (형용사형과 같다),

이 단어의 의미는 나쁜 의미에서 ‘짐이 되다, 엄하다, 둔하다, 무겁다’

그리고 좋은 의미에서 ‘많다, 부유하다, 풍부하다’이다. 

 

구약에서 ‘카보드’(דובכ)라는 단어가 사람에게 쓰일 때는

‘거부’(창 31:1,2), ‘존귀’(창 43:19), ‘둔하고’, ‘뻣뻣하고’(출 4:10), ‘완강하고’(출 7:14)등의

다양한 의미로 쓰이지만 하나님과 관련하여 쓰일 때에는

‘여호와의 영광’(출 16:7,10 ; 24:16,17등)이라는 여호와가

바로 ‘영광’(דובכ) 그 자체이며 자신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영광’(דובכ)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보드” (כָּבוֹד)는 매우 중요하고 풍부한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어원과 기본 의미. 어원 : 동사 כָּבֵד (카베드)에서 유래 → "무겁다", "중대하다", "중요하다"는 뜻

고대 히브리어에서 “무거움”은 존재의 무게, 중요성, 가치를 상징함

⇒ 따라서 “카보드”는 하나님의 무게감 있는 존재, 본질적 영광을 의미

 

히브리어 단어 하나가 그 길을 비추어 줍니다. 카프(כ).“~처럼, ~과 같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마치 토기장이의 손에 빚어진 그릇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르심은, 메시아를 닮아가는 삶에 있습니다.

또 하나의 단어, 카보드(כָּבוֹד). 이는 “영광”을 뜻하지만, 단순히 빛나는 화려함이 아닙니다.

그 뿌리에는 무게와 존귀, 풍성함이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 못 박힌 가난한 자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그 모습,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을 통해 맺히는 열매, 자기 희생을 통해 드러나는 영광.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카보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영광을 멀리 두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사 49:16)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그분의 손 안에 새겨진 보배입니다.
지워지지 않고, 결코 버려지지 않는 존재.

 

예수님은 마지막 기도에서 “아버지여, 그들도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영광은 바로 이 하나 됨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그리고 서로와 하나 될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오늘 우리가 낮아지고, 순종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할 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미 하나님의 카보드가 빛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읽다 보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졌다는 것입니다.

재앙이 한 번 끝날 때마다 바로는 잠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재앙이 끝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말씀은 이런 바로의 모습을 “마음이 완악하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완악해지다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베드입니다. 원어적인 의미는 “무거워졌다”라는 의미입니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마음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과 권력에 빠진 자신이 삶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끊임없이 말합니다. "내가 왕이야. 결정은 내가 하는거야. 내 뜻이 중요해"

결국 바로의 삶에서 가장 무거운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4장에 와서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내가 바로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라."

여기서 영광은 카보드라는 단어입니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보드’와

바로의 완악함을 표현하는 ‘카베드’라는 단어는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둘다 무겁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가장 무거운 존재는, 가장 큰 삶의 의미와 중심은 어디에 있으십니까?

우리는 영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추상적인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래서 대단한 기적 정도는 보여야, 엄청난 능력이 눈 앞에 있어야

그 추상적인 영광이 드러난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말씀에서 이야기 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존재의 무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분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삶의 중심이 되셔서 우리의 기준이 되시고, 삶의 방향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본성이 바로와 너무 닮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내가 중심이 됩니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뜻과 내 자존심이 삶의 중심이 됩니다.

어느 순간 하나님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내가 내 삶의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바로가 특별히 악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리에 자기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말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의 ‘영광’ (δόξα)을 보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영광’(δόξα)을 보는 것이요(요 1:14), 하나님이 바로 ‘영광’(δόξα) 그 자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 기록된 ‘영광’(δόξα)을

국어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경쟁(競爭)에서 이기거나,

남이 하지 못한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의 빛나는 영예(榮譽)’인 ‘영광’(榮光)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영광’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דובכ, δόξα)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며(사 42:8), 

예수님도 사람으로부터 ‘영광’(δόξα)을 취하지 않는다(요 5:41)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영광’(δόξα)은 ‘영광’(δόξα)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도는 스스로 ‘영광’이 되려는 내가 죽고 하나님의 ‘영광’인 그리스도로 사는 자(갈 2:20)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여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카보드 : דובכ) (고전 3:16)

그래서 이미  하나님의 ‘영광’ (δόξα)이 된 존재인 것이며,

그가 비로서 하나님께 그 하나님의 ‘영광’(δόξα)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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