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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소지섭 수영선수시절과 예전 잡지이야기..어릴적사진 추가]

작성자Irish♡|작성시간07.05.11|조회수3,723 목록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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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영선수에서 모델로


얌전했던 어린 시절 "아! 아련한 삼각관계"

난 1977년 11월 4일 서울 남영동에서 태어났다. 그러고보니 벌써 23년 전의 일이다. 정말 세 월 빠르다.

뽀얀 피부에 살까지 포동포동 쪘던 난 어린 시절에는 너무나 얌전해 ‘계집애 같다’는 말 을 많이 들었다. 그래선지 난 동네 누나들에게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유치원은 안양에서 다녔는데 그때 역시 숫기가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름대로 러브스토리는 있었다. 나를 좋아하는 여자애와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 사이에서 3각관계에 빠졌었다. 하하.

영화 <작은 사랑의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조용하면서도 예쁘게 ‘데이트’를 한 기억이 난다. 공사장에 가면 아이들이 들어갈만큼 커다란 둥근 파이프들이 많았는데 거기가 바로 우리의 아지트였다. 난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와 함께 수시로 그 안에 들어가서 소꼽놀이 등 을 즐겼다. 그애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

유치원 학예회 때 재미있던 일도 기억난다. 학예회에서 꼭두각시 놀이를 했는데 마지막에 파트너 여자애를 업으면서 앞으로 ‘꽈당’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당시 난 키가 작고 깡마 른 왜소한 체구였는데 여자애는 나보다 덩치가 컸던 것이다.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조용하긴 마찬가지였다. 교실에서 눈에 안 띄는 그런 아이였다. 서울 에서 2학년까지 다니다가 3학년때 인천 신광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때부터 수영을 시 작했다. 잘 먹지 않는 내가 수영을 하면 밥을 잘 먹지 않을까 하는 우리 어머니의 바램 때 문이었다. 그런데 수영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대회에 나가 3등으로 입상했다.

초등학교때부터 시작한 수영 "1등이 아닌 이상 그만두자"

앞서도 말했지만 내가 수영을 시작하게 된 것은 밥을 잘 먹지 않는 아들이 운동을 하면 살 이 좀 붙을까 하는 우리 어머니의 생각에서였다.

나도 처음에는 대회에 나가서 입상하는 재미에 그런대로 수영을 즐겼다. 하지만 2년간 똑같 은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5학년때가 고비였는데 수영이 하기 싫 어 코치 선생님을 찾아가 그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부모님이 더 이상 수영을 하지 말라 고 했다며 이제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들통이 났고 난 코치 선생님한테 죽 도록 맞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수영을 계속했는데 운좋게도 대회에 나가면 등위권 안 에 들었다.

그후 수영으로 유명한 인천 광성 중학교에 진학했고, 그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수영 부 주장을 했다. 운동부 주장이라고 하면 후배들 군기께나 잡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러 지 못했다. 마음이 약해서 몽둥이 드는 것은 동기들이 했고 난 말로 타이르는 쪽이었다.

수구는 광성 고등학교에 올라가서야 시작했다. 그것도 고1 때 잠깐 하다가 대학입시를 앞둔 고3 때 집중적으로 했다. 수구팀의 일원으로 출전한 첫대회에서 1등을 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것뿐, 난 1인자가 되지 못했다. 수영에서는 평형이 주종목이었는데 대회에 나가면 입상은 하지만 1등은 하지 못했다. 한국체육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 래서 결심했다. “1등이 아닌 이상 그만두자”고. 또 이미 고3 때부터 모델 일을 하고 있었 기 때문에 더 이상 미련도 없었다. 그래서 2학년때 교수님을 찾아가 그만두고 싶다고 말씀 드리고는 그 길로 ‘도망’ 나왔다.

탤런트 제의 처음엔 거절했지만 할수록 매력적

고3 때 의류 카탈로그 모델이 되며 연예계 데뷔를 했다.

당시 난 듀스 김성재 형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한 의류업체에서 듀스와 함께 모델할 사람을 모집하는 것을 알고 거기에 지원했다. 난 고교 시절의 마지막 추억이라고 생각했고 뽑히면 용돈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재미있는 것은 지원하려면 그 브랜드의 옷을 입은 사 진을 찍어보내야 했는데, 그 옷이 비싸 사지는 못하고 친구의 옷을 빌려 입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원을 하자마자 성재형이 하늘로 갔다. 난 슬픔에 잠겼고 모델 지원을 했던 것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얼마 후 1차 심사에 붙었다는 연락이 왔다. 지금은 182㎝_80㎏의 듬직한 체구지만 그때만 해도 181㎝_68㎏로 호리호리 했다. 2차 심사에서도 붙어 그로부터 일주일만에 일본으로 건너가 카탈로그 작업을 했다. 그때 같이 뽑힌 동기가 있었는데 바로 (송)승헌이 형이다. 그러니까 승헌이 형과 나의 우정은 벌써 7년 정도 된 셈이다.

그렇게 시작한 모델일은 대학에 입학해서도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압구정동의 한 식당에 서 밥을 먹고 있는데 SBS의 이강훈 PD께서 드라마 출연 제의를 해왔다. 그래서 출연한 드 라마가 <모델>. (김)남주 누나의 동생역이었는데 시골에서 상경해 모델로 성공하는 ‘현경 철’역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못한다고 거절했다. 모델일 하는 것을 좋았지만 연기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옆에서 설득하는 매니저 형이랑 많이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연기를 해보니까 참 매력 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영말고 다른 일은 해본게 없던 난 연기자의 ‘역할 바 꾸기’가 너무나 멋져 보였다.

<모델>을 시작으로 MBC TV <남자셋 여자셋>과 각종 쇼프로로부터 출연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2] 열혈남아의 사랑이야기


소개팅 한 여자에 반지 주려 겨울에 4시간동안 기다리고...

고1 때의 러브 스토리를 이야기하겠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하는 일일카페가 유행이었는데 수영부 선배와 함께 그곳에 놀러갔다가 처음으로 소개팅을 했다. 이름은 B. 나와 동갑내기 였는데 무용을 하는 친구였다. 현대 무용을.

긴 생머리에 청순하고 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때까지 수영말고는 아무 것도 모르던 난 여자친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B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연히 만 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내가 B에게 그만 푹 빠지고 말았다.

사귄지 1년 정도 됐을 때 크게 싸웠다. 뭐가 틀어졌는지 아무튼 그때 우리 사이는 끝날 뻔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난 B를 달래기 위해 거금을 들여 커플링을 준비하고는 B의 집 앞으로 갔다. 당시에는 휴대폰이나 삐삐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B를 기다렸다. 그 렇게 4시간을 기다렸다.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금세 만날 줄 알고 얇게 입고 나갔던 난 동태가 됐다. 제자리 뛰기도 하고 권투하는 시늉도 하면서 몸을 움직였지만 추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B가 나타났 다. 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B의 손에 반지를 끼워줬다. B가 감동한 것은 물론.

그런데 정작 내 손에 반지를 끼우려는 순간 반지가 안 들어갔다. 헉! 추위에 떠는 사이 손 가락이 퉁퉁 부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화해한 우리는 고3 때 B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헤어졌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상형이 변한다. 지금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능력있는 여자가 좋 다. 물론 예쁘면 좋고. 그리고 나보다는 여자쪽이 날 더 좋아했으면 좋겠다. 왜냐면 난 첫눈 에 반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만날수록 정을 주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고 3때 친구들과 술마시다 패싸움 8:30 수적 열세 불구 혈기로 눌러

운동선수들은 술을 일찍 배우게된다. 선배들이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하에 술자리를 벌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도 중3때 술을 배웠다.

그때는 정말 많이 마셨다. 고3 때는 거의 하루도 안 거르고 마셨을 정도다. 한창 땐 소주 5 병 이상을 마시기도 했다. 어휴∼. 지금은 1병만 마셔도 힘들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집에서는 한번도 안 걸렸다는 사실. 일단 술을 마셔도 얼굴색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셨기 때문이 정신을 잃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한가지 버릇도 생겼다. 술이 취하겠다 싶은 순간에 바로 도망가는 것이다. 지금도 내 상태를 내가 책임지지 못할 것 같으면 바로 도망가버린다.

그러다 크게 한번 사고가 터졌다. 역시 고3때. 수영부를 벗어나서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내가 다른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한 것이 그때다. 다양한 아이들을 만났는데 우리는 ‘테러 리스트’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함께 몰려다녔다.

사고는 인천 대학로에서 터졌다. 그날도 우리 ‘테러리스트’ 8명은 술을 한잔 했는데 그만 다른 패거리와 시비가 붙은 것이다. 그런데 그쪽은 반창회를 하러 모인 애들로 30명 정도 됐다.

순식간에 패싸움이 벌어졌고, 숫적으로 열세했던 우리가 처음에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만 명색이 ‘테러리스트’라 1대 4 정도의 싸움임에도 ‘일반인’을 상대로 했기 때문에 우 리가 세를 잡기 시작했다. 200여명 정도의 구경꾼이 우리를 에워쌌고 그쪽 애들은 하나둘씩 도망쳤다. 정말 혈기왕성했던 시절이다. 하하.

[3] "좋아좋아" vs "남자셋 여자셋"


SBS "좋아 좋아"출연진 일심동체 오중형과 애드리브 경쟁 NG연발

현재 출연중인 SBS TV 일요 아침드라마 <좋아좋아>는 여지껏 내가 출연했던 드라마 중에 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시청률은 부진하지만 출연진끼리는 그렇게 마음이 잘 맞을 수가 없다. 촬영하는 순간순간이 너무나 즐겁고 스태프도 다 좋다. 시청률과는 상관없이 출연진끼리 좋아서 하는 특이한 드 라마다. 게다가 난 이 드라마를 통해 연기가 많이 좋아졌다는 칭찬을 받고 있다. 그런데 다 음달에 조기종영을 한다.

내가 맡은 ‘박지섭’이라는 인물은 잘났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못난 친구에게 언제나 한발 뒤지는 ‘억울한’ 캐릭터. 못난 친구는 (권)오중이 형인데 나와 형은 모든 상황에서 라이벌 로 나와 배꼽잡는 상황을 만든다. 우리 둘은 누가누가 애드리브를 더 잘하나 경쟁한다. 인터 넷에서 보여주는 NG 장면이 더 재미있는 것도 그 때문.

출연진들 모두 웃음을 참지 못해 NG를 많이 내는데, 그중 최다 기록은 내가 보유하고 있다. 난 한번 웃음이 터지면 참지 못한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연기를 하면서 몸이 많이 풀어졌 다. ‘스타일’을 생각해 괜시리 힘이 들어갔던 눈과 어깨가 부드러워졌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중이 형의 도움이 컸다.

내가 캐스팅됐을 때 제작진에서는 비관론이 많았다. <왕룽의 대지>에서 보여줬던 소심한 법대생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다. 오중이 형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중이 형과 호흡을 맞추면서부터 난 ‘망가지기’ 시작했다. 오중이 형은 내가 편하게, 즐 겁게 연기할 수 있도록 리드해줬다. 내게서 새로운 면을 이끌어내준 연기선배다.

MBC "남자셋 여자셋" 출연 동엽형에 코믹연기 배워

‘과일가게집 아들 김철수’.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게된 역할이다. MBC TV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맡았던 배역 으로 이의정 누나를 죽어라고 쫓아다니는 착한 녀석이었다.

처음에는 의정이 누나의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간간이 출연하는 카메오였을 뿐이다. 하지만 도중에 (송)승헌이 형이 하차하면서 그 대타를 하라는 제안이 왔다. 난 안하겠다고 했다. < 남자셋 여자셋>의 인기가 한창 좋을 때였는데 괜히 내가 들어가서 시청률이 떨어졌다는 소 리를 듣게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실 ‘대타’라는 말도 별로 안 좋았다.

하지만 그 덕에 ‘애드리브의 천재’ (신)동엽이 형과 호흡을 맞출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인기도 얻게 됐다. 다행히 시청률도 떨어지지 않았다. 의정이 누나가 시도때도 없이 “철수 야!”를 부르던 모습, 내가 의정이 누나에게 구애하고 애틋한 시선을 던지는 모습 등이 시 청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지금 하고 있는 SBS TV <좋아좋아>에서는 (권)오중이 형에게 연기를 배운다면 그때는 동 엽이 형에게 배웠다. 동엽이 형이 연기하는 것을 보면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상대배역 이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런 연기를 한다. 반면 당시의 난 너무나 긴장을 해서 코믹 연기를 해도 전혀 웃기지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어설픈 모습이 시청자들을 웃겼지만.

동엽이 형을 보면서 배운 코믹연기는 지난 겨울 SBS TV <러브 스토리> _‘미스힙합 미스 터 록’에서 꽃을 피웠다. 사무라이처럼 머리를 뒤로 쫙 묶고 온 몸에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단채 좌충우돌하는 ‘날라리’ 역할을 해낸 것이다. 스스로도 내 자신이 참 대견스러웠다

4] "대한해협횡단팀" 합류


11시간 수영했건만... 대한해협횡단 실패 악천후 바다가 "미워요"

지난달 12일 난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날은 SBS TV <뷰티풀 라이프> ‘대한해협횡단 20년전의 약속’이 첫 도전에서 실패한 날이었다. 무려 11시간이나 수영을 했지만 악천후로 경남 통영시 홍도 앞 바다에서 우리는 철수를 해야만했다.

‘대한해협횡단팀’에 합류한 것은 지난 5월말. 사실 처음엔 너무 하기 싫었다. MBC TV 일일극 <당신 때문에>와 SBS TV 일요 아침극 <좋아좋아>를 촬영하느라 일주일에 쉬는 날은 토요일 하루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마저 빼서 연습을 해야한다니 반가울 리 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었다. 잠이 부족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꼬박꼬박 연습에 참가했다. 한강 물에서 수영하던 날은 컨디션이 안 좋아 탈진해 쓰러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제주도 바닷물 에서 연습을 하면서는 몸이 가뿐해졌다. ‘물 만난 고기’라고나 할까. 힘들었지만 기분은 참 좋았다. 그때부터 연습이 즐거워졌고 횡단을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12일 실패를 한 것이다. 그것도 11시간이나 수영을 한 후였다. 4㎙ 높이로 요동치는 파도에 배 위에 있던 MC 백지연씨는 안의 내용물을 다 토해냈다. 바다에 설치했던 그물망 의 철봉이 다 휘어질 정도로 강풍이 불었다.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조오련 선생님은 “나보 다 수영 못하는 사람은 다 구명조끼 입어!”라고 소리쳤고 그러기를 몇십분, 철수가 결정됐 다.

바다가 미워지고 하늘이 무심했다. ‘이 힘든 것을 다시 해야하나’라는 두려움과 ‘여기까 지 어떻게 왔는데’라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이러지도 저러 지도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체대 도망친후 "왜 수영했나"회의 대한해협 횡단으로 생각 바뀌어

한번의 실패 끝에 지난달 29일 우리는 대한해협횡단에 성공했다. 그것도 예상보다 6시간이 나 빠른 18시간 11분의 기록으로. 그때의 기분? 내가 그동안 수영이란 운동을 왜 했는가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았다.

사실 그랬다. 체대를 도망쳐 나온 후 도대체 내가 왜 수영을 했을까 하는 회의에 사로잡혔 었다. 농구나 배구 야구 같은 인기 종목들도 많은데 하필 비인기 종목을 택했을까 자조하기 도 했다. 물론 1등할 실력이 못돼 그만두긴 했지만 수영에 대한 주위의 무관심에 힘이 빠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대한해협횡단이라는 기회가 온 것이다. 수영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었다.

대한해협을 건너면서 해파리에게 무척 많이 쏘였다. 마치 라이타를 켤때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처럼 몸 여기저기에 ‘타다다’ 쏘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1,000번 이상은 쏘 인 것 같다. 아프지는 않지만 온 몸에 벌건 뾰루지가 일어났고 엄청 가려웠다. 하지만 가렵 다고 수영하다가 긁을 수는 없는 법. 참고 하느라 더 괴로웠다.

해파리를 마주보고 수영하기도 했다. 우리가 수영하는 주위에는 그물이 둘러져있었는데 그 그물에 해파리가 달라붙는 경우가 많았다. 거짓말 안하고 농구공의 10배 크기만한 놈이 떡 하니 붙어서 날 바라보기도 했다.

대기하는 배 위에서는 주로 김밥과 라면을 먹었다. 꼭 배가 고파서라기 보다는 몸이 힘들어 서 먹었다. 한차례 수영을 하고 올라오면 기진맥진해서 모두가 뻗었다. 너무 힘들어서 잠도 안 올 지경이었다. 이상훈 PD와 지봉균 감독, 베이비 복스의 심은진은 심한 파도에 발톱과 손톱에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고생 끝에 대한해협을 건넌 것이다.

5] 둘도 없는 친구 "박용하"


오토바이 가르쳐준 용하 연예계 둘도 없는 친구

탤런트 박용하(사진)는 나랑 가장 친한 동료 연예인이다. 마음이 정말 잘 통하고 사고방식도 비슷하다.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는 것도 같다.

용하와는 98년 MBC 스튜디오에서 오가며 만났다. 당시 난 <남자셋 여자셋>을 하고 있었 고 용하는 <보고 또 보고>에 출연 중이었다. 촬영 틈틈이 담배를 피우다가 마주쳤고 자연 스레 술자리까지 이어지면서 속을 털어놓는 사이가 됐다.

난 용하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우선 오토바이. <보고 또 보고>에서 보여준 반듯한 선생님 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용하는 꽤 터프하다. 과격한 스포츠는 두루 섭렵할 정도. 오토 바이 동호회의 회원이면서 레이서 자격증도 있다. 경주에 나가 중상위권의 성적을 낼 정도 로 수준급의 실력이다. 용하에게 배우기 전 전도연씨와 함께 출연했던 MBC TV <베스트극 장> "간직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를 촬영하면서 오토바이를 처음 접했다. 극중 오토바이 를 몰고 다니는 역할이었는데 그때 오토바이의 매력을 느꼈다. 그러다 용하를 만나서 정식 으로 배우게 됐다.

우리는 심야시간에 올림픽대로나 강변대로를 신나게 달렸다. 어떨 때는 "달려서는 안되는 길"도 가리지 않고 달렸다. 물론 보호장비는 철저하게 착용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에버랜드 에 있는 오토바이 경기장에 가서 레이서 자격증 필기 시험을 치기도 했다. 실기 시험은 어 영부영하다가 못쳤지만. 그런데 올초 그만 오토바이를 팔고 말았다. 가족들이 너무 위험하다 며 뜯어말린 것이다. 하도 완강하게 말리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박용하에게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스노보드도 배워

생각해보니 (박)용하에게서 오토바이만 배운 게 아니다. 내가 최고로 즐기는 스타크래프트와 스노보드도 용하한테 배웠다.

지난해 한창 스타크래프트가 유행할 때 나도 용하를 따라 PC 방에 갔다. 컴퓨터랑 친하지 않던 난 스타크래프트가 여느 오락과 같은 ‘애들용’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용 하가 PC방에 가자고 했을 때도 “뭐 그런 애들 같은 것을 하냐”고 핀잔을 줬다.

하지만 한번 맛을 들인 후에는 밤을 새며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우린 주로 홍대 앞의 PC방 을 애용했는데 모자를 눌러쓴 채 밤새도록 컴퓨터 모니터를 노려보곤 했다. 용하는 연예인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나가 1등을 할 정도로 실력이 좋다. 나도 처음엔 용하의 발뒷꿈치를 쫓아갔지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지금은 실력이 엇비슷하다.

지난 겨울에는 스노보드를 배웠다. 어제도 말했지만 용하는 보기보다는 과격한 스포츠를 즐 긴다. 오토바이 아이스하키 농구…. 덕분에 수영하느라 사시사철 물속에만 살던 나도 여러가 지 스포츠를 즐기게 됐다.

보드를 배우던 첫날 죽을뻔 했다. 초장에 바로 뒤로 넘어지면서 뒷통수를 바닥에 부딪힌 것 이다. 난 약간의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어지러워서 그날은 그걸로 접어야 했다. 정말 생각만 해도 웃기는 기억이다.

보드타는 법을 익힌 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지산이나 용평으로 달려갔다. 제법 타게 된 후에도 사고는 몇번씩 쳤다. 주로 점프를 한답시고 펄쩍 뛰었다가 꽈당 넘어지는 경우들이 다. 보드장에서는 (김)지수 누나를 종종 보게되는데 정말 실력이 좋다. ‘여자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수 누나를 보면서 자존심이 상해 더 열심히 연습을 하기도 했다


6] 연기자는 매력적인 직업


내겐 친형같은 송승헌 선배

(박)용하가 친구라면 (송)승헌이 형은 정말 친형같다. 형은 내가 고3때 의류모델로 데뷔하면 서 만났다. 당시 2명의 모델을 뽑았는데 형과 내가 뽑힌 것이다.

데뷔때 난 거의 형 집에서 살았다. 그때 난 인천에 살았는데 모델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집 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승헌이 형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됐다. 요즘에도 가끔씩 형의 집에 들러 잠을 자는데 그때마다 형의 어머니는 “밥 먹었냐”며 걱 정스레 물어보신다.

형네 식구들은 모두 내게 잘해주신다. 한번도 싫은 내색을 안하시고 자식처럼 따뜻하게 대 해주신다. 나도 형의 누나 결혼식에 가거나 조카의 돌잔치에 가는 등 가족처럼 행동한다.

승헌이 형은 내게 조언을 많이 해준다. 데뷔는 같이 했지만 나보다 활동을 활발히 했기 때 문에 이쪽의 경험이 많다. 그래서 언제나 내가 처한 상황에 맞게 필요한 말을 해준다.

형은 정말 고집이 세다. 하고 싶은 일은 주위에서 아무리 말려도 꼭 하고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한다. 예전에 형은 그렇게 친한 (임)창정이 형이 부탁하는데도 뮤직 비디오 에 출연하지 않았을 정도다.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며. 내가 가족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를 판 것과는 대조적이다.

할리우드 에드워드 노튼처럼 "연기 잘 한다" 소리 듣고 싶어

난 내가 연예인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수영이 하기 싫어질 무렵 모델활동을 시작 하긴 했지만 MC를 보거나 연기를 할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날이 갈수록 연기에 대한 욕심이 늘어가고 있다.

처음 MC 제안이 들어왔을 때 난 도망다녀야했다. 원래 말수가 적을 뿐 아니라 말주변이 없 는 내가 어떻게 MC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마이크를 잡으니 까 제법 그럴듯하게 해내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MBC TV <생방송 음악캠프> 같은 쇼프 로그램의 MC까지 했으니 나로서는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요즘은 연기에 방해가 될까봐 MC 제의를 거절하고 있다.

정말 연기를 잘 하고 싶다. 요즘은 “연기가 늘었다”는 말을 듣는게 커다란 즐거움이다. SBS TV <러브 스토리> ‘미스 힙합 & 미스터 록’과 <좋아좋아>를 하면서 하면 할 수 록 연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를 깨닫고 있는 중이다.

고등학교 때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면서 정신을 빼앗겼던 경험이 있다. 운동 가야될 시간이었는데 차마 중간에 끄지 못하고 끝까지 넋을 놓고 보았던 경험. 나도 누군가에게 그 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게 꿈이다. 할리우드의 에드워드 노튼 같은 좋은 배우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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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그따구로할꺼야? 작성시간 07.05.11 정말 바람직하게 잘 큰 스타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좋아~ 어떻해~ 내꺼해!!!!!!!!!!!!!!!!!!!!!!!!!!!!!
  • 작성자ryan11 작성시간 07.05.11 소.지.섭 !!!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아이엠어모델 작성시간 07.05.11 222222222222222222222 그뒤는 알아서 상상하시길..
  • 작성자그는마른여자를좋아해 작성시간 07.05.11 역시 기럭지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어!!! ㅎㅎㅎㅎㅎㅎ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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