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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비평

구원(과 구원의 보장)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

작성자ourdailybread|작성시간17.04.27|조회수56 목록 댓글 0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매사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후속 작업이 잘 풀리게 마련이고 세상 일도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적인 일들은 더욱이 첫 번째가 나중을 결정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를테면 성경에서 어떤 단어가 처음 언급되는 구절은 교리적으로 여타 관련 구절들보다 훨씬 큰 중요성을 갖는데 이것을 "첫 번째 언급의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가령 성경에서 최초로 "교회"가 언급되는 구절을 찾아 보면 그것이 사도행전이 아니라 마태복음인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너에게 말하노니,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첫 번째 언급의 중요성을 잠깐 이야기했지만 나는 마 16:18이 신약 교회와 그 속성에 대해서 잘 드러내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구절 자체를 조금 설명하자면 여기서 "반석"은 헬라어 "페트라"로서 집체 만한 바위를 말하고 베드로(게바)라는 이름은 그와 상반되는 "조약돌"(페트로스)을 뜻하는 단어이다. 조약돌과 바위는 속성은 동일하게 암석 재질이라 할지라도 덩치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기에 도저히 동일체로 취급할 수 없다. 물론 여기서 "반석"(페트라) 같은 단어의 경우 그 페트라라는 말은 셀라 페트라(유대인의 대환란 피난처)와도 관련되는 용어이기에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어쨌든 주 예수께서는 페트로스(조약돌) 위에 자신의 몸된 교회를 세우실 계획이 아니었고 자신(페트라: 바위, 반석) 위에 세우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주님의 몸된 교회는 막강한 권위와 파워를 갖게 되는데 심지어 "지옥의 문들"이 도전장을 내밀 수도 없는 권세를 가진다.


"지옥"이 실존하는 고통과 형벌의 장소이며 땅 밑에 있는 문자 그대로의 지옥이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현대주의, 자유주의자들은 이 성구에서 "지옥의 문들"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감히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개역개정 같은 경우 그 단어를 "음부의 권세"라고 변개시켜 놓았다. 그 구절에서 "지옥"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문들"(그냥 문이 아닌 복수의 "문들")도 사라졌다. 누가 이런 깜찍한 짓을 벌일 수 있는가? 성경 변개자들 뒤에서 서기관의 펜을 조종하는 흑암의 권세자 마귀가 한 짓이다. 


그래서, 이 구절을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 한글킹제임스 성경으로 읽는 독자는 신약 교회가 "지옥의 문들"을 이긴다는 말씀을 정확하게 읽는 것이다. 이 구절을 올바로 읽고 올바로 이해한 크리스찬은 은사주의 양아치들이 와서 건들거리며 "당신 거듭남을 취소당할 수도 있는데 무섭지 않소?" 찔러보아도 전혀 의심이 들지 않는다. 로마 카톨릭 교도나 지옥을 믿지 않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와서 그들의 서푼어치 짜리 반성경적 거짓 교리를 싼 값에 팔아보려고 애쓸지라도 바른 한글킹제임스 성경으로 이 구절을 확인하고 확신한 신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최초로 "교회"가 언급된 그 중요한 구절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지옥의 문들"에 구속받지 않는다고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 대해서 반박할 수 있는 은사주의, 구원상실파, 카톨릭들의 반론은 궁색하다. 


그들은 원어에서 다른 해석이나 다른 의미가 가능하다고 주절거리면서 "지옥의 문들"을 추상화시켜 다른 단어로 바꾸기 위해 슬금슬금 시도할 것이다. 그런 짓은 주로 최종권위 자국어 성경(한국인의 경우 한킹)을 거부하는, 대가리가 헬라어, 히브리어 잡지식으로만 가득 찬 원어 숭상자들이 잘 시도하는 짓이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음부의 권세"든지 비슷한 다른 단어로 교체한 뒤에 그들은 이 구절에 지옥도 없고 지옥의 문들도 없는 것으로 간주한 채 넘어가려 할 것이다.


지옥의 지리적인 위치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땅 속이라는 것을 성경은 명시하고 있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마 12:40).


요나가 있었던 그 고래 뱃속은 상징적인 고래가 아니었고, 디즈니랜드 같은 곳에 가면 있는 고래 모양 놀이기구 같은 것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의 고래 뱃속에 들어간 요나는 기절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사망했다. 공기도 없고 소화액과 분비물로 온통 끈적대는 협착한 고래 뱃속에서 요나가 정말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 "기절"해 있었다고 생각하는 신학자가 있다면 그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 봐야 한다. 그런 생각은 마치 주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잠깐 쇼크로 기절 상태에 있다가 시원한 돌 무덤 속에서 깨어났다고 주장하는 이단 종파들의 생각이나 진배 없다. 


요나가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문자적이고 실제적인 땅(지구)의 심장(중심)에 사흘 낮과 사흘 밤(문자적인 72시간) 계셔야 한다. 그 기준을 만족시키려면 카톨릭과 개신교 대다수가 따르는 "성금요일설"(예수님이 금요일에 십자가 처형되셨다는 주장)은 단번에 박살난다. 주님이 주의 첫날 부활하시기 위해서는 불가불 수요일 오후에 무덤에 옮겨지셔야만 되고 따라서 주님의 십자가 처형은 금요일이 아닌 수요일이다. 그래야만 72시간 동안 무덤에 계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대하는 목사들과 원어 지식에 대가리만 커진 신학자들과 불신자들의 여일한 한 가지 반응은 이렇다. 요나는 죽은 적이 없고 "기절했다". 요나는 고래가 아닌 어떤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생물학자들은 고래를 일반 물고기가 아닌 젖먹이는 포유류로 분류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요나가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게 아니라면 주 예수님께서 요나가 고래 뱃속에 있었다고 하신 그 말씀이 거짓이 되어 버리고 우주의 창조주께서 무식한 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물에 살며 헤엄치고 물고기처럼 살고 행동하는 고래를 "물고기"로 분류하신 것이지 생물학자들이 분류하듯이 포유류로 보시는 게 아니다. 창조주의 기준이 먼저인가, 학자들의 생각이 우선인가?


그때 주께서는 요나를 삼킬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으니 요나가 그 물고기 배에서 삼 일 낮과 삼 일 밤을 있었더라(욘 1:17).


또한 그 자들은 지옥이 땅 밑에 있다고 믿는 것은 고대 전설과 신화나 미신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왜냐하면 지옥이 땅 밑에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소름끼치기 때문에 그 자들은 거듭나지 못한 자신들이 가야 할 집이 멀리 저 우주 어딘가 블랙홀 같은 데 있기를 차라리 바란다. 자기들 발밑에 지옥 유황불이 날름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성경 거부자들은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지옥을 땅밑에서 몰아내려 한다.



그들이 지옥으로 파고 들어간다 할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그들을 끌어낼 것이요, 그들이 하늘까지 올라간다 할지라도 내가 거기서 그들을 끌어내릴 것이라(암 9:2).


지옥은 "파고 들어가는 곳"이고 하늘과는 방향이 정반대인 곳이다. 물론 지옥까지 파고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 장소가 심히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산들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더니 땅이 그 빗장들로 영원토록 나를 막았나이다. 그러나 오 주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내 생명을 부패함에서 건져내셨나이다(욘 2:6).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의학적으로 사망했고, 예수님과 동일하게 사흘 낮 밤(72시간) 동안 그 곳에 시체로 있었다. 몸을 떠난 그의 혼은 "산들의 밑바닥"으로 내려갔으며 그곳에 도달했을 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지옥의 문들이었다. 요나는 문자적이고 실제적인 "그 빗장들"로 인해 외부 세계에서 분리되어 지옥에서 72시간 동안 머물러야 했다. 


이처럼 지옥은 구체적 장소이며 문들이 있고 빗장도 있는 실제하는 공간이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는 순간 지옥의 권세로부터 풀려나는 것이다. 즉, 여러분이 중생하였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이 확실하면 믿은 순간 지옥으로부터는 "영원히 안녕"이 된 것이란 말이다.


나는 살아 있는 자며, 죽은 자였으나,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졌노라(계 1:18).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중보하시는 한 위대한 대제사장이 계신데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께서 "지옥의 열쇠들"을 갖고 계신데, 즉 요나가 내려가서 머물렀던 그 지옥의 문들과 빗장들이 주님의 통제권 하에 있다는 말이다. 주님께서 구원받은 자기 몸된 지체, 크리스찬들을 지옥에 넣고 빗장을 채우시지 않는 이상 세상 그 누구도, 영적인 존재든 물리적 존재든 간에 크리스찬을 위협해서 지옥에 떨어뜨릴 수 없다는 말인 것이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 8:39).


이처럼 신약 성경 도처에는 크리스찬이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기에 실수로 놓치고 다른 교리를 믿기란 힘들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어떤 배교자들과 무지한 자들이 계속해서 거듭남의 취소, 구원 상실, 대환란 교리를 억지로 교회 시대에 적용하면서 이상한 짓들을 시키는 것(피난처로 가라, 식량을 준비하라)은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로서 성경을 대적하는 마귀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살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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