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살펴볼 구절은 구약의 '어린양'='예수 그리스도'='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라는 중요한 교리들을 다루는 것이라 아주 중요합니다. '성육신', '속죄양', '그리스도의 신성'이 이 구절 안에 예표로서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대로 변개된 개역성경과 영어 성경들은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린양으로'라는 것을 '친히'로 변개시켜 놓았습니다. 이 엄중한 변개에 대해서 피터 럭크만 목사는 지면을 할애해서 배교자들을 꾸짖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럭크만의 창세기 주석서를 확인할 수 있는 분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10여년 전에 성경침례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배교자들은 사실 정확히 말해 정통 세대주의 노선과 럭크만 노선을 배격하고 나가서 자기들끼리의 근본주의를 세운 자들인데 그들은 미국의 독립침례교회 근본주의자들(반럭크만) 일부의 배교 노선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 자들이 여전히 럭크만 박사 노선을 신실하게 따르는 체 가장하는 이유는 바이블빌리버로 보이기 위해서 어느 정도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코 믿음이 신실해서가 아닙니다.
그럼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2:8
(KJV) And Abraham said, My son,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so they went both of them together.
(정동수 흠정역)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의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하고 이처럼 그 두 사람이 함께 가서
(개역개정)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영어 현대 역본들에서도 흠정역과 개역개정과 마찬가지, 22:8 말씀을 한결같이 변개시켜 놓았습니다.
(New International Version)
Abraham answered, 'God himself will provide the lamb for the burnt offering, my son.' And the two of them went on together.
(NASV)
Abraham said, "God will provide for Himself the lamb for the burnt offering, my son." So the two of them walked on together.
영어 표현에 능숙하지 못한 독자라도 NIV가 어떤 변개를 가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NIV는 himself의 위치를 단순히 이동시켰을 뿐인데 의미를 바꿔 놓았습니다.
God will provide himself (하나님께서 자신을 - 로 제공하다)
God himself will provide (하나님께서 친히 - 을 제공하다)
NASV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for Himself(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 을 제공하다).
정동수 흠정역에서는 NASV와 NIV를 따라 '자신을 위하여, 친히'의 뜻으로 변개했습니다.
개역과 개역개정 역시 자신을 위하여 친히로 변개시켰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더 깊이 살펴보면,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를 위한 어린양으로 제공하실 것이다),
이렇게 여기서 himself의 위치는 '자신을'에 해당하고 있습니다. NIV가 했듯이 himself의 위치만 앞으로 이동시켜 God himself로 해도 의미가 바뀝니다.
성경 변개라는 것은 이처럼 단어 자체를 바꾸지 않고도 단어 위치를 앞뒤로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합니다.
현대 역본들은 창세기 22장의 그 '어린양'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련성을 없애 버렸습니다. 개역성경 주석가들은 창세기 2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 어린양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의문난다면 개역성경으로 주석한 유명 목사들의 주석을 모두 찾아 보십시오.
요한복음 1:29, 계 5:6을 살펴보고 이 문제에 대해 결론내리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 다음 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요 1:29).
이에 내가 보니, 보라, 보좌와 네 짐승의 한가운데와 장로들의 한가운데 도살당하였던 것 같은 한 어린양이 서 있는데,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졌더라.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 5:6).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린양으로 주시는 예표였습니다. 단순히 '친히 마련하신'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하셔서 어린양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영어킹제임스 성경에서 이 구절을 '친히'로 적용할 여지는 없으며 그렇기에 현대 영어 역본들은 그 구절에 변개를 가한 것입니다. 만일 KJV 그대로도 '친히'로 해석할 수 있다면 굳이 변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글개역은 변개된 역본의 계보를 이었기에 이 구절이 변개되어 있고, 어찌된 일인지 킹제임스 성경을 가장 정확하게 직역했다는 '흠정역'은 이 구절에서는 굳건하게 개역성경을 따르고 있습니다. 대체 그들의 '직역 정신'은 여기서 왜 꼬리를 말았던 것입니까?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시인할 수 없는 '아리우스주의'(여증) 사상을 감추고 있지 않다면 이 구절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