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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사람들로 알았다가 놀라며(행 4:13)

작성자ourdailybread|작성시간17.05.06|조회수312 목록 댓글 0

그때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자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로 알았다가 놀라며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더라(행 4:13).


어떤 형제들은 이 구절을 놓고 해석이 분분, 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사실 진술로 받아들여서 실제 베드로와 요한은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보는 관점이 있고 그 반대로 해석하는 관점이 있다. 

사실, 어느 한쪽이다 확증할 수 없는 것인데 베드로와 요한은 바울 같은 사람을 그들 옆에 놓고 비교해 본다면 확실히 배우지 못한 사람들과에 속한다. 


“나는 실로 유대인이라. 킬리키아의 한 성읍 타소에서 태어나 그 성읍에서 가말리엘 밑에서 자랐고 조상들의 율법의 완전한 방식에 따라 교육받았으며 하나님을 향한 열성이 지극하기로는 오늘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와 마찬가지였노라(행 22:3).


사도 바울은 "율법의 완전한 방식에 따라" 교육받았는데 더구나 그는 모든 바리새인들이 이상으로 꿈꾸는 최고의 율법학자 밑에서 수학했다. 그는 단순히 모세의 토라만 연구한 것이 아니라 제반 세상 학문들도 겸하여 익힌 수재였다. 오늘날로 치면 하버드나 옥스퍼드에서 전액 장학생으로서 석박사 과정까지 완벽히 수료한 인재가 바울이었다. 


행 4:13은 따라서, 그 종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진짜 문맹자로 보고 업신여겨서 무식하다고 한 것은 아니며 자기들같이 대학원, 박사 과정급으로 공부 많이 한 신학자들 입장에서 볼때 초등학교 겨우 졸업하고 구구단과 ABC나 마스터 한 그저 그런 촌놈 촌사람들로 인식했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자가 되기 위해 꿈에 부푼 이상과 희망을 안고 해마다 무수한 예비 신학도들이 국내외 유명 신학교의 문을 두드린다. 그들은 그 학교들에 들어가면 성경을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 같은 명설교가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비싼 등록금을 내고 신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면 기대했던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철학, 인문학, 종교학, 심리학, 이런 쓸데없는 밥 벌어먹는 기술이나 가르치고 있으니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하는 것이다. 다행히 필자 본인은 신학교에 들어가 그런 쓰레기 같은 것들을 배우며 세월과 뇌를 좀먹는 헛짓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그런 허튼 시도를 할까 말까 마음 속에 고민이 있던 젊은 청년 시절에 하나님께서 한민족에게 보존하여 주신 최종권위 성경 "한글킹제임스"를 만나서 이 성경을 통해 신학교에서 결코 배울 수 없는 수많은 진리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필자의 글을 읽는 고정 독자들은 아마 느끼는 바가 있을텐데 나의 글은 결코 어렵게 쓰지 않는다. 현란한 화술과 기막힌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다. 외국 학자의 견해를 부지런히 인용하며 타인의 의견 뒤에 숨어서 눈치 보는 짓은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신학자와 목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작년에 작고하신 고 피터 럭크만 목사님을 존경하고 클라렌스 라킨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스코필드 성경을 쓴 스코필드 박사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내가 그 선대 성경 학자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이 나처럼 "보통 사람의 평범한 언어"를 구사하며 성경 진리를 어렵게 만들지 않고 쉽게 내게 전달해 준 감사한 스승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른 고등 학문을 한 목사와 신학자들처럼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학자들만의 전문 용어와 은어를 써 가면서 성경을 믿는 대신 비평만 해 대는 신학자들이었다면 나는 그 분들을 존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글의 주제이자 요지로 돌아와서, 당신의 언어는 한글킹제임스 성경의 "코이네 한국어"와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가? 이 성경은 유치원생에서부터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인 진리를 터득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님의 위대하신 섭리와 역사로 전수하여 여러분에게 주신 귀한 성경이다. 이 성경을 귀히 여기고 여기서 진리를 배운 사람들의 특징은 "외국어 숭상자들"(헬라어 표준원문주의자 또는 영킹우월주의자)에게 절대 주눅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가진 것도 없으면서 쥐뿔도 없이 자존심만 쎄서, 이 성경, 한글킹제임스 성경은 진리니까 진리다, 무조건적으로 옳다 라고 생억지를 쓰고 있지 않다. 실제로 나는 이 성경을 통해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많은 진리들을 배웠고 가르치고 있고 매일 더 배우고 있다. 내가 이 성경을 만나지 못했다면 결코 이런 기적을 맛보고 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는 너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들의 확실함을 알게 하며, 너에게 사람을 보낸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들을 대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잠 22:21). 


이 한글킹제임스 성경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만이 지역 교회 내에서 "유능한 상담자"가 될 자격이 있다. 성경적인 상담은 바른 한킹으로만 할 수 있지 형편없는 마귀의 변개된 성경들인 개역개정과 NIV 등으로는 절대 못한다. 필자는 인터넷 사역을 통해 적지 않게 성도들을 위한 상담과 성경 풀이를 해 주었으며 내가 해 준 성경 구절 설명과 상담에 대해서 특별히 "당신이 내게 비성경적인 것을 가르쳤군요. 당신은 나쁩니다"라고 컴플레인하는 신자는 보지 못했다. 물론 처음부터 검은 의도를 가지고 내게 접근해서 비방하기 위해 떠 보는 질문을 던지는 위선자들을 제외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진리의 말씀들의 확실함"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들을 대답"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확실함"(certainty)이란 "무오함"(infallible)에 준하는 확실함인데 후자의 단어는 킹제임스 성경 사도행전 1:3에 쓰였다.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신 후 자신이 살아 계심을 그들에게 많은 무오한 증거들로 보여 주시고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노라(행 1:3).


개역개정은 "무오한" 대신 "많은"이라는 말을 써서 의미를 완전히 훼손시켰고 그 전의 개역성경은 "확실한"을 써서 의미를 "무오한"보다 50% 정도만 전달하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확실한" 것은 "무오한"보다는 강조성이 약하기 때문인데 개역과 개역개정을 비교하자면 개역개정은 의미가 약하게 되어 있는 번역을 완전히 마귀적으로 변개시킨 수준이다.


단순히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 위해 목사가 코메디를 하고 개그, 만담을 하면서 청중들을 웃게 만든다거나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위해 강한 표현을 고르다 보니 서민적인 말을 썼다 하여 그가 바울 타입의 설교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자의 경우는 개그하는 목사들 일부, 장모 목사가 주로 그런 쪽이고 후자는 카리스마적 은사주의 설교자들 가운데 많이 있다. 그들의 설교는 대중적인 것처럼보이지만 실은 무척 학자티가 나는 교만한 것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헬라어, 히브리어를 포함해 고등 비평 수단을 가진 전문가인데 무식한 대중들에게 쉬운 말로 어려운 학문을 해석해주는 친절한 지도교사인 양 행세한다. 즉, 그 자들도 대중에게 그 싸구려 원어 지식을 팔아먹기 위해 개그맨이나 이웃집 형님의 소탈한 태도를 취했을 뿐이지 그 자들 안에 있는 영도 성령이 아닌 "교만한 학자의 영"인 것은 매한가지란 말이다. 


후자인 은사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은사주의 목사들은 체계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법이 거의 없고 주변 동료들 또한 성경에 대단히 무식한 감성파들이기 때문에 어디서 성경 연구를 배우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역시 원어 사전을 뒤지고 다니며 거기서 은사주의에 잘 써먹을 만한 애매한 구절들을 발견하면 "유레카" 하면서 즉시 교인들에게 가서 천연덕스럽게 "에, 헬라어에 찾아보면 이 단어가 우리의 한글 성경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늘상 하는 방언과 다른 은사들은 초대 교회의 그것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는 식으로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카리스마적인 은사주의자들"은 항상 원어 지식에 목말라 있으며 교인들을 등치고 사기 치기 위한 "도둑놈 전용 전문 기술 고등 용어 모음집"인 헬라어 어휘집과 사전을 떼 놓고는 부모 손 놓친 어린아이처럼 전전긍긍, 강단에 올라가기 힘들다. 


당신의 설교는 누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인가?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서 "무식"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구약에 한 번, 신약에 세 번 등장하는데 다 설명하자면 글이 길어지고 일부만 발췌 설명하겠다. 


또 그 책을 무식한 자에게 건네주며 말하기를 “청컨대 이것을 읽으라.” 하나 그가 말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하느니라(사 29:12).


사 29:12은 누구에게 1차 적용되는 진리인가? 우선 "그 책"은 성경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서 무식한 자는 베드로, 요한이 시골 초등학교 졸업한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듯이 완전히 글자도 모르는 문맹자가 아닌 학문을 덜 배운 사람을 뜻한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청컨대 이것을 읽으라"라고 했을 때 청하는 사람 쪽에서는 무식할지라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 청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나는 읽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무식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아니 누가 "읽으라"고 했지 "주석하라", "해석하라", "고등비평하라", "원문비평하면서 분해 주석하라"고 했는가? 그러란 게 아니라 그냥 당신에게 보여지는 대로 줄줄 읽어보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뜬금없이 "나는 무식해서 안 되겠어"라고 대답한 것이다. 즉 이 대답한 사람의 정신 상태가 완전히 정상이 아니고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오늘날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구령하는 서울 성경침례교회 설교자들과 구령자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복음 메시지가 쓰여 있는 신약 성경 구절들을 보여주면서 "읽어보라. 좀 읽어보라"고 가리키면 그들은 "나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서"라 대답하면서 꽁무니를 빼곤 한다. 아니, 누가 당신이 그 구절을 신학적으로 주석할 수 있는지 능력을 물어본 것인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성경 구절을 한번 읽어보고 믿을지 말지 결정하라고 했는데 무식하다는 핑계로 거절하다니? 오늘날 이 시대가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교회가 영적으로 도둑놈의 소굴, 배교자의 둥지가 된 것은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평이한 "우리말 한글킹제임스 성경 읽기"는 천민들의 영역이라 멸시하고 신학자들의 고등학문 배워 보겠다고 신자들까지 한꺼번에 "신학교", "사이버 신학"으로 몰려가서 원어에만 귀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자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로 알았다가 놀라며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더라(행 4:13).


이제 처음 보았던 구절이기도 하지만 신약에 처음 나오는 "무식한"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행 4:13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대로 믿는 설교자들이 기존 기독교계 고위 학자들로부터 당하는 멸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너 서클(같은 신학교 동문들, 선배, 후배)에 포함된 고등 학자들만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지성들이라고 믿고 사는 자들이요, 그들의 자존심 빼면 시체인 신학자들이다. 그런 교만한 학자들이 산헤드린 공의회에 앉아 있었고 그 자들이 곧 제사장과 율법사들, 바리새인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작자들이 볼 때 베드로와 요한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겠는가? 예루살렘에서 알아주지도 않는 저 먼 촌구석 갈릴리에서, 또 존재도 인정 못 받을 시골 회당에서 히브리어 ABC나 겨우 깨치고 나온 것으로 보이는 촌티 나는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의 눈에 뭘로 보였겠는가? 뭘로 보이긴, 우물 안 개구리 갈릴리 촌놈들이요, 너무 한심할 정도로 무식해서 우리 같은 위대한 바리새인 대학자님들께서 한 말씀 주어 교화시켜야 될 인생들로 생각하셨겠지.


그런데 상황이 역전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의 설교는 바리새인들처럼 "형식적"이지 않았고 고등 학자의 용어를 남발하거나 일반 회중들을 아래로 깔아 보면서 "너희가 뭘 알겠어" 하는 교만의 티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사도들의 설교는 대단한 호소력과 전달력이 있었고 수만 명을 한 번에 집중, 몰입시키는 황금 같은 설교였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당황하고 제사장들이 얼마나 머리가 아팠을지 상상해 보라. 그들은 "저 베드로, 요한이라는 다크 호스들이 대체 어디서 온 거지? 저들의 출신 학교를 다시 확인해 봐. 저들이 우리가 미처 모르는 유명 웅변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일 수도 있어"라고 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야말로 아무 학문적 뒷배경도 없는 갈릴리 시골 사람들이요, 단지 예수를 3년 반 동안 따라다닌 것 외에는 특이사항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었음을 알았을 때 그들은 소위 "멘탈 붕괴"를 느꼈을 것이다. 


이는 주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분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마 7:29).


베드로, 요한이 대단한 설교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는데, 즉 그들이 3년 반 동안 밀착해서 따라다녔던 그 스승님인 예수께서 잘 쓰시는 말투를 따라 배웠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권위 있는 분" 같고 "서기관들과 달랐다". 여기서 "권위 있는 분"은 모세 같은 선지자의 권위를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 자타칭 최고 성경 권위자라고 해서 싫으나 좋으나 할 수 없이 그들의 설교를 듣고 살았지만 그 자들이 진짜 모세처럼 "권위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구약 토라에서 생생하게 뛰쳐 나온 것 같이 모세의 언어, 엘리야의 언어,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의 언어의 느낌이 묻어나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을 전하신 것이다. 주님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끼고 다니던 "성경 외 경전들"(탈무드, 미쉬나 같은)의 어떤 구절도 인용하지 않으셨다. 주께서 인용하신 유일한 성구들은 정통 히브리어 원문 두루마리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보통 사람들은 주님의 설교를 더 듣기를 원했지 탈무드나 다른 양념을 팍팍 뿌린 학자 티 나는 바리새인들의 설교는 식상해 했다.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한 선지자를 너희에게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한 그가 이 모세라(행 7:37).


실제 주께서는 모세가 예고한 대로 그와 같은 한 선지자로 오셨고 그 당시 모든 바리새인들을 제치고 구약 성경을 권위 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 유일한 설교자이셨다. 그리고 그 주님으로부터 3년 반 동안 배운 사도들은 주님과 같이 "권위 있는 설교자"가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도적 전승"이며 사도들에게서 현대 교회가 물려받아야 할 진정한 영적 유산이다. 사도들은 모국어로 된 성경을 백성에게 가르쳐서 그들이 모든 진리를 깨닫도록 인도했는데 현대 라오디케아 시대의 어중간한 목자들은 모국어 대신 난해한 외국어로 사역하려고 하기에 애초에 그들에게는 권위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또 어릴 때부터 네가 성경을 알았으니, 그 성경은 너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할 수 있느니라(딤후 3:15).


사도 바울이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읽었고 믿음으로 인도했다고 하는 그 성경은 디모데가 모르는 외국어로 된 성경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운 사람"은 늦깎이로 회심하고 크리스찬이 된 사람보다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맡기실 경우가 많다. 자녀를 믿음 안에서 양육하는 일은 그래서 크리스찬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지상 과업이기도 한데 과연 어떻게 자녀를 신앙 안에서 적절히 양육할지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해법은 딤후 3:15에 의하면 매우 단순한 데 있다. 어린아이들이라고 해서 "어린이용 쉬운 성경"을 봐야 된다는 규칙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아예 글자를 아직 몰라서 그림으로만 이해해야 된다면 성경 그림을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지만 한글을 깨친 다음이라면 나이가 어릴지라도 한글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모든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울이 딤후 3:15에서 말씀한 취지에 적합한 자녀 양육이며 모든 크리스찬 부모들이 유념해야 할 교훈인 것이다. 당신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알고 자랐는가? 불행히도 그 성경이 한킹은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어린 시절 성경을 빈도수 높게 접하고 읽고 있었지만 그것이 변개된 한글 개역이었기에 별다른 자극은 받지 못했고 거듭남의 필요성도 늦게 알았다. 내가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성경이 인생에 꼭 필요한 사람인 줄 알게 된 것은 한글킹제임스 성경을 손에 쥐었고 거듭났던 그 시기 어간이었고 한참 나중의 일이었던 것이다. 


여러분이 어려서부터 바른 하나님의 말씀 한글킹제임스 성경으로 양육된 사람이라면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이제 여러분에게는 진리의 말씀을 취할지 거부할지 선택권이 남아 있다. 개인적인 생사화복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기에 여러분은 신중하게 진리에 입각해 결단해야 한다. 마귀의 짝퉁 성경을 믿고 살겠는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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