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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킹제임스 성경 로마서 강해_7(롬 6장)

작성자ourdailybread|작성시간14.05.16|조회수367 목록 댓글 0

 

 

6장은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는 '성령 침례'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거듭남이 무엇인지 모르는 수많은 교인들이 부흥회에서, 은사주의 교회에서, 기도원에서 '성령 달라'고 애먼 육신적 열성을 쏟고 있지만 결코 거듭나지 못하고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마지막 시대에 로마서에서 특별히 조명해서 이 진리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7절부터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려서 죄에 대해 승리하는 방법을 기술하고 있는데 거듭난 사람도 마귀와 죄의 종노릇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교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은사주의식으로 '성령 세례'를 받은 자들, 구원파식으로 거짓 영접한 교인들, 칼빈주의식으로 주권적 선택이 구원이라고 자가 세뇌된 교인들, 그들 모두가 실질적으로 마귀의 종노릇하는 생을 살게 되는데 성령께서는 죽은 영을 살려주시며 죄인을 구원시키지만 구원받은 후의 삶은 성령을 통해서 육신의 소욕을 죽이는 '결단'과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망각한 데서 이런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

3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받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의 모양으로 함께 심겨졌다면 또한 그의 부활하심의 모양과 같이 되리라.

6 우리가 이것을 아나니 곧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더 이상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7 이는 죽은 자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라.

8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으며

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셔서 다시는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더 이상 그를 주관하지 못하는 줄 우리가 아노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게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사심은 하나님께 사심이라.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가운데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13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들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라.

15 그런즉 어떻게 하리요?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가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너희가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되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든지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는 줄 알지 못하느냐?

17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리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

18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이라.

19 너희의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대로 말하노니 전에는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의 종으로 내어주어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로부터는 자유로웠느니라.

21 그런즉 너희가 지금 부끄럽게 여기는 그 일들에서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그런 일들의 끝은 사망이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끝은 영생이니라.

23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

3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받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1절, 5장과 이어져서 '율법이 죄를 심히 죄되게 해서 범죄가 많아지게 한다'는 것을 은혜시대의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반면교사 삼아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구원받았을 때의 감격, 이 큰 죄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값없이 용서해주신 감사함과 기쁨을 진짜 구원받은 성도는 잊지 못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재삼 느끼기 위해서 또 죄를 지어야겠느냐? 그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용서받고 구속(redemption)받았으므로 은혜는 그것을 믿었을 때 충분한 것입니다. 그 뒤로는 죄는 십자가에 넘겨주고 믿은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는 것이 주님의 권면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 16:24).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죄가 용서된 것을 믿은 것이고 이후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즉 '자기 부인'을 통해 '제자도'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도'는 구원과는 상관없는데 신약 경륜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마태복음에서 부자 청년의 경우처럼 구원과 제자도가 결합되어 있는 것(마 19:21)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은혜 복음 시대인 지금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상을 받기 위해', 또 인생 자체를 주 안에서 의미있게 살려면 죄짓고 회개하고를 반복하는 대신 '제자도'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절, '죄에게 죽은'이라는 말은 실제로 거듭난 사람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토대로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몸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는데 거듭남은 이 세 부분 중 혼과 영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골 2:11-13).

 

또한 너희가 그의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로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린 것이라(골 2:11).

남편이 있는 여인은 그 남편이 살아 있는 한 그에게 법으로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그녀는 그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롬 7:2).

 

거듭남은 옛 남편(육신)과 이혼한 아내(혼)로 설명되는데 남편을 사별함으로써 자동적으로 결혼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성령께서 죄인의 몸 안으로 들어오셔서 죄의 몸과 혼을 나누시고 영은 부활시키신 사건입니다. 이 변화가 일어난 사람은 '죄에게 죽은 사람'인 것이고 그 가운데 살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절, 이 '침례'는 물(H2O)침례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데 물 한방울 뿌려지거나 잠기는 것과는 상관없이 성령께서 죄인의 혼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집어넣으시는 영적 침례를 말합니다.

 

너희가 침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도 그와 함께 살아났느니라(골 2:12).

 

4절, 이 영적 침례는 '죽음 안으로'라는 조건이 붙었는데 실제적으로 우리 혼과 몸의 단단한 결속이 분리되면서 죄인은 '내면에서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육신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 부활을 죄인 안에서 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이를 통해서 죄인의 혼이 구원받고 영이 거듭난 것입니다.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의 모양으로 함께 심겨졌다면 또한 그의 부활하심의 모양과 같이 되리라.

6 우리가 이것을 아나니 곧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더 이상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7 이는 죽은 자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라.

8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으며

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셔서 다시는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더 이상 그를 주관하지 못하는 줄 우리가 아노라.

 

5절, '부활하심의 모양'은 33살 반의 유대인 남자의 모습 그대로 부활하신 주님을 말하는데 우리가 '영적 부활'을 자신 안에 체험한 채로 살다 죽는다면 공중 재림 때 '그의 부활하심의 모양과 같이' 육신도 바뀔 것입니다.

 

6절, 뿐만 아니라 우리는 분리된(이혼) 옛 아담의 몸을 '영적으로' 2천년 전의 갈보리 십자가로 넘겨준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셨고 지금은 빠져나오신 빈 십자가에 대신 멸망할 죄인들의 몸이 못박혀서 구원받은 '혼'인 우리의 자유를 확증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못박힌 것'이라고 이미 확정해서 말씀하기 때문에 자의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순간 육신은 십자가로 넘겨졌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어서 자신에게 적용한 사람은 참 자유를 누리는 것이고 거듭났지만 여전히 육신과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에게 종노릇하는 '육신적 크리스찬'으로 살게 됩니다.

 

7-9절, 이제부터 거듭난 사람이 죄에 대해 삶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사실 거듭남 자체보다 이것이 수만배 어려운 작업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매우 쉬운 거듭남에다 진입 금지 팻말을 놓고 자기들한테 잘 보이면 들어온다고 선전합니다(거듭남의 비밀 운운, 부흥회 티켓).

 

율법사들이여,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려서 너희 자신도 들어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막았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눅 11:52).

 

정작 중요한 것은 거듭난 후의 '죄에 대해 승리하는 삶'이며 성령께서 거듭난 신자를 인도하시는 방향은 '자기 거듭남에 대해 의심과 확신을 거듭하는 삶'이 아닙니다.

 

7절은 다시 '죽은 자' 즉 죄의 몸을 십자가에 넘겨 준 구원받은 '혼'에 대해 말합니다. 당신이 구원받았다면 그 '혼'(지정의)은 이미 죄의 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8절, '그와 함께 죽었으면'(영적 부활) '그의 함께 살 줄을 믿으며(몸의 부활), 9절, 사망이 그를 주관하지 못하신다는 것(행 2:24)을 말씀하신 것은 거듭난 사람이 죄에 대해 승리하는 이유를 알려준 것입니다.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게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사심은 하나님께 사심이라.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가운데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13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들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0절,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몸으로 죄들을 담당하신(벧전 2:24) 후에 죄들은 그 몸을 떠나 버렸습니다. 주님의 육신은 "썩어짐을 보지 않았는데"(행 2:27,31), 이는 그 분의 몸에 죄가 남아있지 않았고 살아 계신 혼이 속죄제물이 되어(사 53:10) 지옥으로 내려가셔서 죄들을 그곳에 던져 버리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인이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지옥에 가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지불하셨고 지옥에 던지신 죄값을 거기서 만나 자신이 죄값을 치르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11절, '죄에게 죽은 것'으로 여기라고 했지 죄가 죽은 것으로 여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거듭난 사람의 몸 안에 여전히 죄는 자리잡고 있습니다(요일 1:8). 구원받은 자기 속사람(혼)이 죄에게 죽은 사람인 것으로 여기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죄없는 삶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죄에게 죽은 것으로 여기라'는 명령,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2절, 죄는 거듭난 죄인의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할 수 있는데 이는 '육신적 크리스챤'이 '몸의 정욕 가운데 죄에게 순종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극단적 성결론자들(폴 워셔, 존 맥아더)은 '육신적 신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들만이 로마서 6:11을 문자적으로 실행하는 초인인 양 위선을 떱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에 대해 죽은 것으로 여긴 사람'은 연약한 교인들에게 지옥 갈 것이라고 위협하는 데 시간을 쏟지는 않을 것이고 약한 자들이 실행하게끔 권면과 충고를 할 것입니다.

 

13절, '불의의 병기'라는 말은 거듭난 사람의 육신이 선도 악도 아닌 '중립적 상태'에 놓이지 않는 것을 확증합니다. 성령께 육신을 맡겨드리고 죄가 주관하지 못하게 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육신은 죄에게 다시 순종할 것이고 그것이 오래 가면 통제할 수 없는 '불의의 병기'가 되어 그 거듭난 사람의 생을 아나니아와 삽피라, 혹은 후메네오와 필레토같은 식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육신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면 그것은 의의 병기가 되어 영적 전쟁을 할 수 있는 복음의 전진 기지가 될텐데 몸이 성령의 통제 아래 있어야 그것으로 복음도 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엡 6:12).

 

14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라.

15 그런즉 어떻게 하리요?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가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너희가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되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든지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는 줄 알지 못하느냐?

17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리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

18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이라.

 

14절,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라', 이것은 그렇게 믿는 사람 자신에게 적용되는 진리이며 믿고 거듭났으나 '율법 아래'(죄의 몸) 살고자 하는 사람은 계속 죄의 종으로 살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너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느니라(갈 5:18).

 

많은 거듭난 크리스챤들이 거듭나자 마자 성령의 인도하심 대신 '다른 영'이나 '다른 예수', 또는 '율법 교사들'(딤후 4:3)에 코를 꿰어 따라갑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성령께서 풀어 놓으신 속사람이 자유의 공기 한번 제대로 호흡해 보지 못하고 지독한 마귀의 종으로 계속 얽매여 살아가게 됩니다.

 

15절,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이냐?' 이 말씀은 거듭난 사람은 결코 어떤 죄도 짓지 않는다라는 철학 명제를 언급한 게 아닙니다. 그는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았고 그 카드를 활용하던지 아니면 예전처럼 살수 있습니다.

 

16절, 거듭난 사람은 그 순간부터 자유인이 되었는데 이제 그의 자유는 성령께서 맡아 두셔서 의로운 일에 사용되게 하던지 아니면 마귀가 다시 탈취해 가서 종으로 삼던지 선택 하에 있습니다. 당신이 '구원받았으니 이제 무조건 자유다'라고 말한 후 '구원파'가 되어 스쿠알렌을 팔기 시작한다면 기껏 획득한 자유를 마귀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그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나 자기들 자신은 타락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정복을 당하면 그는 정복한 자의 종이 되는 것이라(벧후 2:19).

 

17절, '교리의 본'(롬 16:26; 10:16, 살전 2:13)은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전해 준 신약 교회의 교리들인데 은혜의 복음으로 통하는 말입니다. 이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은 성령께 순종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듭난 후 성령의 법에 순종하지 않고 고집대로 사는 사람은 죄의 종으로 '사망'(육신의 사망)에 이를 것입니다.

 

18절, '죄에서 해방되어'는 십자가에서 죄값이 치러진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던 그 순간(거듭남)을 말하지 않습니다. 혼이 지옥의 굴레에서 해방된 죄인은 다시 '생활면'에서 죄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자기 육신이 십자가에 못박힌 사실을 인정하고, 죄에게 죽은 것을 받아들여서 '의의 종'(성령을 따르는)이 되는 순종의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19 너희의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대로 말하노니 전에는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의 종으로 내어주어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로부터는 자유로웠느니라.

21 그런즉 너희가 지금 부끄럽게 여기는 그 일들에서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그런 일들의 끝은 사망이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끝은 영생이니라.

23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

 

19절, 바울이 이 서신서를 쓰던 당시 '고린도 교회'만 육신적 성도들의 문제로 시끄러웠던 것은 아닙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지금 한국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성도들은 항상 지극히 육신적인 사람들(겔 16:26)과 얼굴을 대하고 살아갑니다. 한걸음 잘못 판단하고 내딛어도 죄의 종이 되도록 붙잡는 마귀의 덫과 올무가 사방에 놓여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마 10:16).

 

로마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육신도 죄에 대해 연약하므로', 바울이 하는 충고대로 따라야 할 것입니다. '전에는 너희가' 불의에 몸을 내어 맡겼을지라도, 이제 거듭났고 성령이 안에 계신 줄 알면 옛 행실을 버리고 몸을 의의 종으로 드려 성령의 전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고전 6:19).

 

20-22절, '의로부터는 자유로웠느니라',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 '의의 종'의 굴레를 씌워서 겉으로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게 만드는 교회들은 노새에 얼룩무늬 페인트를 칠해서 얼룩말로 만드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늑대에 양가죽을 씌워서 양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들은 '의로부터 자유한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교인 명찰을 붙이고 성도여, 성도여 부른다고 해도 그들은 '교회 소꿉 놀이'가 싱거워지면 양가죽을 털어버리고 '자유로운 야생'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21절, '그런 일들의 끝은 사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들은 이를 궤변으로 피해가고 종교인들은 '괜찮다, 괜찮다' 하며 과학자들은 사망은 의학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사기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의 원칙은 6천년 전부터 어떤 인간도 피해갈 수 없는 영적 물리적 법칙이며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몸조차도 이 원칙에 순응해서 무덤으로 보내져 벌레가 먹어 버립니다.

 

22절, 이 구절은 '이대로 살라'는 당위적 명령을 하는 것이지 당신이 아무 일도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시리' 하고 육신을 내버려 두는데도 그대로 성취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이 육신을 '의의 병기'로 보존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이러합니다.

 

1.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당신의 혼만 아니라 육신도 자유롭기를 원하는가?

2.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당신의 혼만 그렇게 할 것인가? 아니면 육신도 종으로 드릴 것인가?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성령의 열매들)를 얻게 되는데 그 끝은 <영생이니라>.

이 말은 당신이 육신에 대해 '성화'를 이루어야 그 끝에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영생은 거듭났을 때부터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22절이 강조하는 바는 당신이 '개선장군'과 같이 영생을 맞이할 수도 있고 부끄러운 상태로 개구멍 들어가듯이 영생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23절, 인류역사 6천년 동안의 엄청난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죄의 삯'은 전혀 인상되지 않았는데 '둘째 사망'은 아담 때 그랬듯이 지금도 동일한 값을 치르라고 죄인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계 20:12-14). '죄의 삯'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구원을 다시 내놓으라'고 요구할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죄의 삯'은 거듭난 사람의 육신에 관해서 요구할 수 있는데 육신이 맺는 열매들 중 죄의 열매들은 주님께서 우리 몸에 값이 지불되도록 청구하십니다. 

 

따라서 죄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가 깨뜨려지고(요일 1:6), 열매맺는 능력이 사라지며(막 4:18-19, 딤전 5:6, 계 3-12) 그 죄가 심각해지면 하나님께서 그의 육신을 끝내셔야 할 상황까지 가기도 합니다(고전 11:30, 요일 5:16).

 

그러나, 인간이 행하는 '최악'을 하나님께서는 '최선'으로 돌려놓으시는 능력이 있기에 우리가 그분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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