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라(롬 2:9-10).
여러분이 이 구절들에 대한 교리적인 심층 설명을 원한다면 피터 럭크만 박사의 로마서 주석이나 럭크만 성경 관주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오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이 구절을 잘못 오해해서 "복음은 먼저 유대인에게 전하고 이방인에게 전해야 순서적으로 맞다"(백투예루살렘 운동가들이 잘 하는 말)고 주장하는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서 그를 구령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방 죄인이 구원받는 것과 똑같이 기뻐하신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 12:13).
이 시대의 구원은 혈통, 민족, 종교적 배경 등과 무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기에 유대인이라고 해서 복음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유리한 점이 있다던지, 이방인들보다 성경을 더 잘 믿는다는 것은 전혀 없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그 수로페니키아 여인을 시험해 보시려고 하대하셨던 태도 이상으로 "고이"(goy)라 부르며 이방인들을 하찮게 보는 오늘날 유대인들도 자기들이 지옥에 안 가려면 이방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게 만드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원조 자손이라는 어드벤티지가 약간 부스러기라도 남은 것이 아니라 아예 없어진 것이 이 시대인 것이다. 오늘날 메시야닉 쥬 운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착각하는 부류가 있는데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서들에 보면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 안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주도적으로 행사하고 이방인들을 가르치고 명령하니까 지금도 그렇게 세상이 돌아가는 줄로 착각하고 유대인들한테 가서 성경을 배워야 더 깊이 있게 배운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가장 성경을 잘 알 것 같은 정통 유대인들, 소위 랍비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선생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볼 때 단순한 영지주의자거나 카톨릭 수도원 금욕주의자들의 레벨 이상이 아니다. 그들은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라 랍비들의 말과 그들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탈무드, 미쉬나 같은 헛된 유대교 전통을 따르고 있다. 한줌도 안 되는 구원받은 메시야닉 쥬들은 성경적 지식이 카톨릭 교도보다 약간 나은 수준으로 결핍되어 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시대에 구원 문제와 성경을 깨달아 진리의 지식을 아는 면에서 이방인 크리스찬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려면 하셨을텐데 이 시대에 구원받은 유대인들 가운데서 뛰어난 성경 주석가, 뛰어난 복음 전도자를 내도록 허용하지 않으셨다. 내가 뛰어나다고 말하는 선은 필라델피아 시대의 "거물들"과 같은 그런 전도자들을 말한다. 혹은 피터 럭크만 박사나 라킨, 펨버, 스코필드 같은 걸출한 교사들을 뜻한다. 그런 사람들이 유대인 출신에서 나왔는가? 어찌 한 명이라도 나올 법 한데 왜 사도 바울 같이 정통 유대인이면서 걸출한 그리스도인 전도자, 성경 교사가 안 나오냐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같이 뛰어난 과학자, 혹은 수학자 유대인은 있어도 영적인 면에서 그들은 전혀 탁월하지 못하다. 교회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유대인들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신것 뿐만 아니라 영적 수준에서도 이방인들보다 밑에 있게 만드셨다.
상기 인용한 로마서 1,2장 구절들을 이제 살펴보겠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사도 바울은 왜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라고 말했는가? 실제로 바울은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는데 단순히 바울이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웠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주님께서 빨리 재림하시겠다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울 혼자의 착각이 아니라 실제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회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더 빨리 오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울에게는 해당되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해당 안되는 말씀인가? 그렇지는 않다. 결국 유대인들은 민족적으로 주를 믿을 것이고 스카랴서 12:10에서처럼 회개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일이 교회 시대에 전면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유대인에게 먼저 전해야 주님이 오신다라고 교리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백투예루살렘 운동, 이것은 중국 기독교와 일부 은사주의 계통 한국 개신교가 연루된 잘못된 종말론 운동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소망한다면 그것은 바랄 만한 것 중에 가장 복된 소망이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바라고 산다. 그런데 백투예루살렘 운동하는 사람들이 잘못 나간 부분은 지금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어서 주님이 천년왕국을 주신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 휴거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무지하지 않더라도 간과하는 편이다. 그들은 이 시대의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에 있는 것, 이런 제반적인 것들을 무시하고 유대인들을 "대박의 재료"로만 사용하려 한다. 가령 복음을 믿는 데 있어서는 오리지널 아브라함 자손인 유대인이 더 잘 믿으니 그들이 복음을 더 잘 전할테니 유대인 위주로 해야 세계 복음화가 빨리 된다. 그런 생각이 암암리에 있다. 앞서 말했지만 유대인들은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 식인종들의 영적 수준보다 더 타락해 있는 게 교회 시대 그들의 모습이다. 스테판을 돌로 쳐 죽이던 그 때와 지금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이것은 바울의 복음 전파 순서가 그랬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 구절을 영적으로 적용하자면 "첫째는 나의 동족 한국사람에게요." 라고 적용한대도 틀린 것이 아니다. 같은 말과 문화를 공유한 동족에게도 복음을 입도 벙끗 못하는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선교를 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쓰시겠는가? 그런 무자격 선교사가 수 만명이 해외에서 외화만 낭비하고 있는 게 한국 기독교 선교의 현주소이다. 물론 모두가 무자격 선교사는 아니지만 수많은 짝퉁 선교사들이 나가 있다는 말이다.
바울이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을 거스르고 예루살렘에 억지로 가서 포박당한 것은 잘못이었지만 그만한 열정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사역을 계속 맡기셨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이 있다면 먼저 내 수많은 가까운 이웃들이, 한국 사람들이 불타는 지옥에 가는 현실에 먼저 마음이 뜨거워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가장 쉬운 것은 거리에 나가서 거리 설교를 하고 구령하고 전도지를 나눠주는 일이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열정을 본받는 것이다. 타국 사람들에게 가서 하면 더 빛이 나 보인다고 착각하지 말라. 그러다가 LA의 WGM 송요셉 목사 같은 짝퉁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헬라인과 유대인" 두 부류에게 전했다. 헬라인은 민족성은 각기 별개이지만 헬라어라는 지중해권 국제 공용어를 쓰는 족속들을 아울러 말한 것이다. 단지 그리스 사람들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소아시아의 아시아 계통 사람들도 포함해서이다. 바울은 이후에 스페인과 어쩌면 영국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기에 그는 야펫과 셈에게 복음을 두루 전한 전도자였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라(롬 2:9-10).
롬 2:9-10은 앞서 본문과 차이가 있다. 맥락이 상당히 다른 말씀인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똑같은 죄를 지어도 유대인들은 지옥에 갈 개연성이 더 크고 이방인은 더 적고, 그렇다는 말씀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옛날 복음이 안 전해졌던 곳에 살던 사람들은 양심적으로 살면 다 하늘나라 간다고 일반화시켜 말하는데 조심해야 한다. 구약 시대에는 그럴 수 있었을지 몰라도 신약 시대에는 일단 복음을 듣고 믿어야 지옥에 안 가는 것이지 복음을 못 들었는데 양심적으로 살다가 구원받고, 이런 경우는 사실상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구약 시대에 아브라함 당시 아비멜렉 같은 왕이나 파라오는 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인 그들에게도 말씀을 주셨다. 그들이 결국 구원받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꿈으로 말씀을 주신 것이다. 만일 그 자들이 완전히 회개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았다면 구원을 받았겠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이방인들은 결국 타락의 길로 갔고 하나님께서는 신정 국가 이스라엘을 따로 세우셔서 구원받은 사람을 거기에 모아 놓으셔야 했다. 그때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은 구원받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 유대인을 섬기고 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율법을 지켜서 살면 된다. 양심적으로 살아서 구원받는 것은 "말하자면 그럴 수 있다"이지 만사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것도 어떤 복음을 왜곡하는 무식한 목사들이(이를테면 WGM 송요셉) 왜곡시켜서 복음이 안 전해졌던 시대나 지역에서는 무조건 양심적으로 살기만 하면 다 구원이라고 가르치니 분별하고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악을 행하는 유대인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율법 시대의 양상을 말씀하는 것이다.
율법 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 없이 멸망할 것이요,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에 의하여 심판받게 되리니(롬 2:12).
"첫째는", "둘째는"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심판하셨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죄를 지으면 이방 민족을 시켜서 유대인을 괴롭게 하시고, 나중에 그 이방인들을 자기들 죄로 심판하신다. 그래서 항상 순서가 유대인 먼저, 이방인 다음, 그렇게 매겨졌던 것이다. 민족적인 측면에서 그렇고 개인적인 면에서도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더러는 무지 가운데서 범하는 죄들도 먼저 판단을 받아야 했다. 육체적인 정결에서 영과 혼의 정결 문제에 있어서까지 유대인들이 먼저 판단받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라(롬 2:10)
만일 이 구절을 신약 시대의 예수 믿은 개인에게 적용하여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하늘나라와 구원이라 해석한다면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이 성립되고 "이신칭의"는 물 건너 가게 될 것이다. 그런가? 여러분이 "이신칭의"로 예수 믿어 의롭게 되고 하늘나라로 가는 사람들이라면 "선을 행하여..."를 자신에게 교리로 적용하여 구원 교리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선을 행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것"에도 유대인 먼저, 이방인 다음, 이렇게 언급되어 있으니 이것을 신약 교리로 잘못 가르치면 "유대 우월주의" + "행위 구원"이라는 희대의 사탄적 교리가 나와 버린다.
그 뜻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복음이 아직 전반적으로 전파되지 않은 그 당시 율법에 머무르고 있는 그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이것을 알린 것이다. 그때는 아직 과도기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다 알지 못한 채로 침례인 요한의 교리만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는 보혈을 믿은 사람만 구원받지만 율법 하 경륜에서 믿었다가 아직 신약 복음을 받지 못한 상태의 아폴로 같은 유대인이라면 어떻겠는가? 그는 롬 2:10의 말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현 교회시대에 이미 사도 바울의 은혜 복음이 신약 서신서들로 확립되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복음 앞에서 절대적으로 무차등하게 된 상황에서 롬 2:10을 교리적으로 적용하여 "선행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바울이 경고한 대로 "다른 복음의 저주"를 자청하는 것이다.
이번 글을 통해서 여러분이 사소하게 넘기는 "첫째는 유대인" 같은 구절도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묵상해서 의미를 놓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