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영성의 숲) 2009. 2. 1
앞 부분 중략.......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고 별 생각 없이 읽는 것,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좋아 보이는 구절을 선택하고 묵상하고 해석하고 적용하고 누리는 것.. 그것은 오늘날 쉽게 흔히 행해지고 있는 잘못입니다. 그것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많은 문제의 시작입니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으로부터 많은 문제가 시작됩니다.
기도하기, 성경 읽기, 예배드리기, 찬양하기.. 이러한 것들은 은혜의 아름다운 도구입니다. 사람들은 이 자체에 접하기만 하면 무조건 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긍지를 가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하나님도 그러실까요?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 그러한 그 자체의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도 기뻐하실까요?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이사야1:11-14)
이사야서는 대선지서의 첫 번째 책이며 분량도 가장 긴 대표적인 선지서입니다. 그런데 그 대표적인 선지서의 첫 장에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나는 너희들의 예배가 무거운 짐이며 그것에 너무 지쳤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회와 함께 악을 행하기 때문에 그들의 무수한 예물과 집회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와 성경과 예배 등 그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기도하고 바르게 성경을 읽고 바르게 예배를 드리며 바른 삶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된 삶이 없이, 여전히 죄를 지으며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면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렸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기쁜가가 아니고 하나님이 기쁘신가? 하는 것입니다. 찬양을 열심히 드린 후에 내가 기분이 좋다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 드려서 영이 충만해지고 좋아졌다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 기도를 기뻐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을 읽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해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말씀을 붙드는 것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인도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예배도, 찬양도 흔히 잘못 사용되지만, 성경이 잘못 사용되는 것도 이 시대에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문맥을 무시하고 내가 마음에 드는 구절만 뽑아서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논쟁을 하는 이들을 보면 흔히 상대방의 말이나 글을 반박할 때 전체적으로 보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앞뒤를 다 잘라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한 부분만을 선택해서 공격의 소재로 삼는 것을 흔히 봅니다. 물론 그러한 논쟁의 방식은 비인격적이며 저급한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며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도 아닙니다. 그것은 양심이 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비록 악의는 없고 무지로 인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성경 역시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전체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지으신 하나님의 의도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2:19)
이 말씀은 진정한 믿음은 지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며 행함이 따른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말씀에서 [믿고 떠느니라]만 끄집어내어 [믿음에는 떠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떪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동하십시오. 믿음이 있을 때 진동이 옵니다..] 라는 식으로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물론 완전히 엉터리인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진동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문맥을 무시하는 잘못의 예를 과장된 경우를 들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가 보아도 뻔히 보이는 잘못된 사용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오류는 비교적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가정이나 사업장을 방문하면 흔히 아름다운 성구들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봅니다. 대부분 좋은 말씀들이지만, 가끔 이상한 내용이 걸려있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7)] 라는 구절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업장에는 이 말씀이 벽에 걸려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씀을 사용하는 것이 별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 말은 욥의 친구 수아 사람 발닷이 한 말입니다.
욥기 8장에 있는 발닷의 이야기의 요지는 욥이 죄를 짓고 욥의 자녀들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버려두셨고 그래서 저주와 재앙이 왔으며 [욥8:4], 그러므로 지은 죄를 회개하고 간구하고 청결하고 정직하게 살면 네가 지금은 엉망이지만, 시작은 미약해도 나중에 창대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만약에 [네 시작은..] 이 성귀가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 말씀의 전제대로 열심히 회개를 해야 합니다. 모든 축복의 말씀은 조건과 전제가 있는데, 그 전제를 무시하고 결과로 오는 복 만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자녀에게 [네가 이번에 성실하게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내면, 엄마가 전자수첩 사줄께] 라고 했는데 아이가 공부는 전혀 안 하고 시험은 망쳐놓고도 날마다 [전자수첩.. 전자수첩..]하면 그것이 엄마에게 통하겠습니까? 조건이나 의무조항은 그냥 넘어가고 권리와 혜택만 주장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도 발을 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성경말씀에 대해서는 모든 전제 조건을 싹 빼놓고 권리와 약속만 주장하는 몰염치가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와서 [내가 당신에게 100억을 줄께]한다면 [우와! 감사합니다!] 할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히 [그것을 주는 조건이 뭡니까? 저에게 무엇을 원하세요?] 하고 물을 것입니다. 성경의 약속과 복에도 전제가 있고 우리는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전제조건과 우리의 의무사항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성구 내용에 감동을 받은 사람은 그 복을 받고 싶다면 발닷이 말한 전제 조건, 당신이 죄를 엄청 지어서 쫄딱 망했으니 지금이라도 열심히 회개하고 간구하고, 이제부터는 정직하게 살겠다는 결단을 하고 청결하게 살기로 애쓰고 결단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처소가 의로와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발닷의 말대로 나중이 창대해질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욥기 전체의 내용을 잘 아시겠지만, 이 발닷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욥에게 임한 재앙들이 욥이나 욥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결과로 인한 것이라는 판단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않습니다. 발닷의 말은 나중에 하나님이 직접 임재하셨을 때 잘못된 것으로 판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욥42:7-8)
노하신 하나님께 발닷이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은 욥의 기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이렇게 잘못된 말을 해서 까딱하면 죽을 뻔하다가 친구의 기도로 인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람의 잘못된 판단의 말을, 왜 성구 액자로 담아서 사업장에 걸어놓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발닷이 잘못 말했지만, 그래도 그 말 자체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말씀의 전후 문맥과 아무 상관 없이 자기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부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오류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알아가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려는 마음이 없이 그저 나에게 유리한 말씀, 듣기에 기분이 좋은 말씀을 찾으며 새해가 되면 흔히 하는 덕담 수준으로 말씀을 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흔히 잘못 오해되고 사용되는 구절로 기도원에 플랜카드로 많이 붙어있는 아래의 구절이 있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58:6)
나는 기도원에서 이 구절을 주제로 한 설교를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대체로 이런 내용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듣곤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금식을 기뻐하십니다! 금식할 때 우리를 묶고 있는 흉악한 결박은 풀립니다! 압제는 사라지며 멍에가 꺾어집니다!] 하지만 그 해석은 정말 오해입니다. 바로 그 전 구절만 보아도 그 사실은 명백합니다.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 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사58:3-5)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을 하면서 온갖 악행을 하므로 그러한 금식에는 응답이 없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금식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8장 6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금식을 기뻐하신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금식도 있고 기뻐하시는 금식도 있는데, 기뻐하시는 금식은 이런 것이다.. 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그저 굶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흉악한 결박에 묶여있는 자를 풀어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주고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사58:7) 하는 자비의 행동이 동반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에서 흉악의 결박은 내 결박이 풀린다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결박을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주린 자를 먹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른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여러분, 금식을 하면 흉악의 결박이 풀립니다] 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려운 자를 불쌍히 여겨라] 하는 말씀을 [여러분의 어려움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는 식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틀린 것입니다.
왜 이런 오해들이 많이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그리 어려운 내용이 아니며 조금만 기도하고 어떤 전제 없이 성경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들이 오늘날 적지 않은 것은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옳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이 성구를 벽에 건 이들은 과연 충분히 기도하고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 속에서 걸었을까요? [주님, 우리의 사업장에 필요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합니까?] 하고 기도하고 그 인도를 구하는 가운데서 그 말씀을 받은 것일까요? 아니면 그 액자를 선물로 받았다면, 그 선물을 하는 이들은 기도하는 중에 감동과 인도하심의 확신 속에서 그 말씀을 결정한 것일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당연한 것이지만, 아마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과 은총과 무한한 복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흔해 빠진 덕담 수준의 말씀이 아닙니다. 덕담을 고르려면 굳이 성경을 사용할 이유는 없습니다.
말씀은 중요합니다. 기도도 중요합니다. 예배도 찬양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멋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주님의 감동과 인도하심 속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 시간을 많이 채우고 [오, 오늘 기도를 많이 했다]고 즐거워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주님과 함께 기도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혼자 하는 기도는 열매의 풍성함이 부족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선하게 살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대로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에 있어서 우리는 주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시작이 나로부터인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인가..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이 먼저 선택하고 그것을 하나님이 응답해달라고 기도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집을 고를 때 위치를 보고, 구조를 보고, 교통을 보고, 여러 가지를 본 다음에 [주님.. 저 집이 너무나 마음에 꼭 들어요..제발 저 집을 저에게 주세요..] 합니다. 배우자를 고를 때 이것 저것, 여러 가지를 본 후에 [주님.. 제 이상형이에요. 너무 좋아요.. 제발.. 주님..] 하고 기도합니다. 대학을 선택하는 것도, 직장을 선택하는 것도.. 우리의 취향을 따라 우리가 세상의 가치관이나 시각과 별로 차이가 없는 시각으로 모든 판단을 다 한 후에 결정을 하고 [주님.. 제발.. ] 합니다. 주님이 말을 듣지 않으면 작정기도도 하고 금식기도도 합니다.
도대체 주님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존재입니까? 주님의 위치는 우리의 삶에서 어디입니까? 우리가 결정하고 주님은 충실하게 우리 소원을 들어주시고.. 과연 이러한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까? 우리가 주인이고 주님은 종노릇 하시는 것이.. 과연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까? 몰론 아닙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하찮게 종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주님과의 신실한 교제의 기쁨 속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성경을 읽어도 감격과 기쁨을 모르고 깨달음도 없으며 지겹고 딱딱하게 느낍니다. 기도를 해도 그 영광의 아름다움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졸다가 잠이 듭니다. 찬양을 해도 혼자 기분을 내고 즐기다가 맙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아주 낮은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현존에서만 나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파숫군이 새벽을 기다림과 같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기 전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가르치심과 깨닫게 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주의 영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드리면서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직장을 선택할 때도,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할 말을 선택할 때도, 여유 시간을 사용하는 것에도 범사에 모든 면에서 성령의 인도하심과 명령하실 것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가 자신의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그 열매가 너무나 한심스럽고 비참한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범사에 주님의 인도하심과 명령을 구하고 기다리는 것은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것은 묶이고 기계적인 삶이 아니라 풍성한 삶,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입니다. 인도를 받는 과정에서 고통이나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주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일 뿐이며 꾸준히 지속적으로 주님을 붙들고 있을 때 아름답고 향취가 가득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언제나 항상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구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직접 개입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의 영의 인도를 구하며 항상 무엇을 하든지 당신이 아니고 주님이 먼저 시작하게 하십시오.
성경을 읽기 전에 기도하십시오. 일을 하기 전에 기도하십시오. 선택을 하기 전에 기도하십시오. 범사에 성령의 인도와 감동을 구하십시오. 구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만 구하고 그 인도하심을 갈망하는 자에게 주님은 가까이 임하십니다. 잘나고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에게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자에게, 부족하고 무능한 자에게 임하십니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눈물로 무릎으로 간구하는 자에게 주님은 가까이 오셔서 그의 삶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풍성한 삶을 위하여, 열매 맺는 삶을 위하여, 주님과 친밀한 교제의 삶을 위하여 성령의 인도를 구하십시오. 그분의 개입하심이 있을수록 우리는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경험하며 더욱 더 깊은 주의 임재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09년, 이 한 해에 우리의 삶에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없고, 오직 주의 역사하심이 있을 때 우리는 많은 변화와 승리와 풍성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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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jslovjs 작성시간 09.04.02 문맥을 무시하고 내가 마음에 드는 구절만 뽑아서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논쟁을 하는 이들을 보면 흔히 상대방의 말이나 글을 반박할 때 전체적으로 보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앞뒤를 다 잘라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한 부분만을 선택해서 공격의 소재로 삼는 것을 흔히 봅니다. 물론 그러한 논쟁의 방식은 비인격적이며 저급한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며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도 아닙니다. 그것은 양심이 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 아멘.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시옵소서. 주님과 함께 하지 않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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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구름기둥 작성시간 09.04.02 아~~멘 모든글이 구구절절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다시 한번 나 자신이 주를 진정으로 나의 왕으로 모셔 드렸는가 뒤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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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사랑겸손믿음 작성시간 09.04.05 주님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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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백합화향기 작성시간 09.04.06 모든것에 주님의 뜻을 구해야하는군요. 아 ..허락도 없이 습관쫒아 금식하고 있었는데 ㅠㅠ 주님 용서해주세요. 내맘대로 요구한것이였다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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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꽃뿌리^^ 작성시간 09.06.17 눈물로 간구하고 간절히 사모하기....성령님 더욱 더 제삶에 개입해주세요 더 많이 대화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