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2021. 05. 19. 팔영산 - 붕어잡이 대장님 리딩

작성자보나파르트|작성시간21.05.19|조회수451 목록 댓글 6
[ 팔영산 두류봉에서 칠성봉을 가는 도중 촬영한 바위에 핀 애기철쭉 ] 

" 有而無(유이무) 無而有(무이유)  "

 

"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다. "

 

부처님오신날에 가는 오늘의 산행지는 중원대륙의 위왕(魏王)이 찾아와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팔영산(八影山, 608m)"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 전설이 전하는 " 선녀(仙女)의 바다 정원(庭園) "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고흥 팔영산입니다

오늘 산행들머리는 팔영산 능가사입니다.

 

능가사 소개글을 옮깁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417년(눌지왕 1)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보현사(普賢寺)’라 하였다 하나, 지리적인 위치로 보아 창건자의 신빙성은 없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1644년(인조 22)에 벽천(碧川)이 중창하고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벽천은 원래 90세의 나이로 지리산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절을 지어 중생을 제도하라는 계시를 받고 이곳에 능가사를 신축하였다고 한다. 그 뒤 1768년(영조 44)과 1863년(철종 14)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1993년에 응진전을, 1995년에 사천왕문을 각각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5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당·종각·천왕문(天王門)·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350여 년 전에 나무로 만든 뒤 개금한 불상 8위와 나무로 만든 뒤 도분(塗粉)한 불상 22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높이 157㎝의 범종(梵鐘)과 4.5m의 목조사천왕상(木造四天王像), 귀부(龜趺) 위에 세워진 높이 5.1m의 사적비(事蹟碑)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중 사적비는 1726년(영조 2)에 건립한 것으로 불교의 유래와 절의 역사를 기록해놓은 귀중한 자료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비석은 원래 탑 앞에 있었는데, 덕목이 도술을 부려 절 뒤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절의 경내에는 광희(廣熙)·사영당(泗影堂)·추계당(秋溪堂) 등의 부도(浮屠) 8기가 있다.

영조 때 이중환(李重煥)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 일본 류큐(琉球:지금의 오키나와)의 태자가 표류하다가 이곳에 이르렀는데, 이 절의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면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었더니 7일 만에 승려가 나타나서 태자를 끼고 파도를 넘어갔다고 하며, 절의 승려들이 법당 벽에 그 모양을 그려놓았던 것이 영조 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부속암자로는 만경암(萬景庵)과 서불암(西佛庵)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부처님 오신날이라서 절의 안과 밖에는 형형색색의 등이 가득합니다.

천황문을 지나서 경내로 들어가니 바로 정면의 대웅전과 마주하는데 질서 있게 걸린 등들과의 조화가 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대웅전 좌측 처마 아래로 보이는 팔영산 모습 또한 절과 산의 형세의 신묘함이 어우러져서 보기드문 경관입니다.

절을 둘러보고 곧바로 산행길로 갑니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곳으로 전하는 곳이 두 곳인데 여수와 고흥입니다. 고흥(高興)은 옛 지명은  흥양(興陽)입니다. 옛 지명은 땅의 모양으로 짓는 곳이 많은데 전남 동부지역에 " 해가 뜨다 "라는 뜻의 지명이 여러 곳인 이유는 여수반도-순천-고흥반도와 여자만 등이 형성하는 땅의 모습이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천의 본래 지명은 평양(平陽-수평선 지평선의 태양)으로 단군성조의 도성으로 전하는 평양의 원조입니다. 현재 '평양'이라는 지명을 거리의 간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요임금의 도성인 산서성 린펀시(临汾市)입니다. 이곳의 옛 지명이 평양입니다. (북한은 평양(平壤)임)

또한 이런 모습의 강이 있는데 바로 금강(錦江)입니다. 금강의 옛 이름이 백강(白江)인 이유입니다. 금강은 둥그런 모습이 마치 호수 같으므로 또한 호강(湖江)이라 했는데 호남(湖南)은 호강의 이남지역이란 뜻입니다. 배달(培達), 밝달(朴達), 조선(朝鮮), 일본(日本) 등의 명칭 등이 이곳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지형 ]

길 옆에 있는 팔영산 안내간판을 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위왕의 전설과 관련하여 그 시기가 태화연간(太和年間: 227~231)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흥군청 팔영산 홍보영상에서는 전국시대 위나라라고 합니다. 홍보영상을 올립니다.

[ 팔영산 홍보영상 ]

중국에서 연호로 태화를 사용한 예를 보겠습니다.

 

  • 태화(太和)는 조위(曹魏) 명제(明帝)의 첫 번째 연호이다.
  • 태화(太和)는 후조(後趙) 석륵(石勒)의 연호이다.
  • 태화(太和)는 성한(成漢) 후주(後主)의 첫 번째 연호이다.
  • 태화(太和)는 동진(東晉) 폐제(廢帝)의 연호이다.
  • 태화(太和)는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의 세 번째 연호이다.

이 중에서 우리에게 삼국지연의로 잘 알려진 조조가 건국한 위나라(曹魏)의 명제가 227년에서 233년 1월까지 6년 1개월 동안 사용한 연호가 태화(太和)인데 이것을 근거로 팔영산 안내간판은 서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위명제(魏明帝) 조예(曹睿), 조조의 孫 ]

조조의 위나라가 한반도 남단까지 세력을 확장한 모습은 삼국유사에 전합니다.

 

북대방(北帶方)

北帶方 本竹覃城 新羅弩禮王四年 帶方人與樂浪人投于羅

[此皆前漢所置二郡名, 其後僭稱國今來降]

북대방(北帶方)은 본래 죽담성(竹覃城)이다. 신라 노례왕(弩禮王) 4년에 대방(帶方) 사람들이 낙랑(樂浪) 사람들과 함께 신라에 항복해 왔다(이것은 모두 전한前漢 때에 설치한 두 군郡의 이름이다. 그 후에 참람되이 나라라고 불러 오다가 이때에 와서 항복한 것이다)

 

남대방(南帶方)

曹魏時, 始置南帶方郡[今南原府], 故云. 帶方之南, 海水千里, 曰瀚海.

[後漢建安中, 以馬韓南荒地, 爲帶方郡, 倭韓遂屬, 是也]

조위(曹魏) 때 비로소 남대방군(南帶方郡; 지금의 남원부南原府)을 두었기 때문에 남대방이라 한 것이다.  그런 연유로 대방의 남쪽은 바닷물이 천 리(千里)나 되는데 한해(澣海)라고 했다 한다(후한後漢 건안建安 연간年間에 마한馬韓 남쪽의 먼 땅을 대방군帶方郡으로 삼아서  왜倭와 한韓이 드디어 여기에 속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부연하면 북대방은 한사군 때 설치된 황해도 지역의 대방군을 말하고, 남대방은 조조의 위나라 때 설치된 것인데 이 때 지금의 남한 지역을 통할하는 관부가 설치된 곳이 남원으로 남원광한루의 현판이 대방고부(帶方古府)인 이유입니다.

[ 대방고부(帶方古府) 현판이 걸린 옛 광한루 ]

그러나 태화연간의 역사로 위왕이 팔영산을 내왕했다면 굳이 "황제"를 "왕" 이라고 전했을지는 의문이 갑니다.

처음에는 천자(天子)를 "황(皇)"으로 칭해서 "삼황(三皇)"이 나셨는데, 그 이후에는 "황(皇)"이 높다고 겸양하여 "제(帝)"를 칭하니 "오제(五帝)"가 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천자들은 "제(帝)"도 높다 하여 재차 겸양하여 천자를 "왕(王)"으로 칭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상 최초의 위왕(魏王)은 위혜왕(魏惠王, 제위 : 369년 ~ 기원전 319)으로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인 대량(大梁)으로 천도를 하였으므로 양혜왕(梁惠王)으로도 전하는 분입니다. 사서오경 중 맹자의 처음 장은 양혜왕((梁惠王)편인데 이 장은 위혜왕(양혜왕)과 맹자의 대화록입니다. 전국시대를 연 양혜왕의 조부이신 위문후(魏文侯, 제위 : 기원전 445년~기원전 396년) 대왕이 중국 대륙을 장악하면서 이후  중원대륙에 있었던 위나라가 전국시대 초기 100여 년 간의 패권을 장악합니다.  위문후 대왕은 이후 중국을 벗어나서 주변국가를 정복해가며 만리대국을 건설해 나가는데 이분을 팔영산을 찾은 위왕으로 추정하는 것이 역사에 가장 근접한  추론이 아닐까 합니다.

 

산해경(山海經) 

蓋國在鉅燕南,倭北。倭屬燕。 朝鮮在列陽東,海北山南。(개국(蓋國, 마한)은 연나라 남쪽, 왜의 북쪽에 있다. 조선(기자조선)은 열수(列水, 대동강)의 북쪽 땅의 동쪽, 해(海, 한반도 남부)의 북쪽, 산(山, 백두산)의 남쪽에 있다. - 이 때는 연나라의 최전성기로 조선이 먼저 연나라를 선공하려했으나,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에 의해서 서쪽 강역의 2천리(요동)를 잃고 강역이 최소로 축소된 시기인 BC. 300년 경임)

[ 기원전 300년 기자조선이 요동 2000리 땅을 연나라에 빼앗긴 이후의 형세도 ]

위문후 대왕의 소개글을 옮깁니다.

 

위환자 위구(魏桓子 魏駒)의 아들이다. 

위 문후의 아버지인 위 환자의 시대에 진나라(晉)의 유력 가문인 지씨(知氏)를 멸망시켰고, 위씨 · 조씨(趙氏) · 한씨(韓氏)가 진나라를 분할하여 통치를 했지만, 명목상으로 아직 진나라의 신하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403년 위 문후는 조씨, 한씨와 함께 동주 위열왕 희오(東周 威烈王 姬午,  주나라의 32대 왕)으로부터 정식으로 제후에 책봉되었다.

위 문후는 공자의 제자인 복자하(卜子夏)와 재전 제자인 전자방(田子方), 단간목(段干木) 등의 현인에게서 배움을 청했다. 이 때문에 사마천은 《사기》에서 그를 “학문을 좋아하는 군주”라고 칭찬했다. 이회(李悝)를 재상으로 임명하여, 업적이 있는 자에게 벼슬과 녹봉을 주고, 상과 벌을 정확하게 시행하는 법가적 개혁을 단행했다. 오기를 기용해서 진나라를 공격하여 하서(河西)를 빼앗았으며, 악양을 장수로 삼아서 중산국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차지했다. 서문표를 등용해서 업 지역을 잘 다스리게 했다.

이런 개혁의 결과 전국시대 초기에 위나라는 패권 국가가 되었다. 위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사람은 문후이다.

[ 팔영산의 위왕으로 추정되는 위문후(魏文侯) ]

팔영산 산행지 입구문 앞에는 팔영산 여덟 봉우리를 간략하게 표현한 조형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근 거리에 "팔영산 소망탑"이 있는데 거대한 자연석으로 만든 소망탑의 위용이 제법 대단해 보입니다.

"

소망탑을 지나서 본격적으로 산행길로 접어드는데 이곳은 숲이 울창하여 한여름에도 햇볕 걱정은 안해도 되겠습니다.

숲의 공기와 풀내음이 좋아서 천천히 산행을 합니다.

 

흔들바위에 도착합니다. 산새들의 지저귐, 시워한 물소리, 키 큰 소나무 사이로 산란되는 명랑한 햇빛...

저는 이곳에서 10여 분간 앉아서 힐링을 하고나서 다시 산행을 진행합니다.

산행길이 숲길이라 수월하게 팔영산 제 1 봉인 유영봉에 도착합니다. 

이후 여덟 봉우리를 주변 경관을 마음껏 즐기면서 서둘지 않고 올랐습니다.

[ 유영봉 정상석, 그 뒤에 보이는 봉우리는 선녀봉(仙女峯) ]

유달은 아니지만 공맹의 도 선비레라

유건은 썼지만 선비풍채 당당하여

선비의 그림자 닮아 유영봉 되었노라

[ 유영봉에서 바라본 성주봉 ]
[ 성주봉에서 바라본 유영봉 ]

성스런 명산주인 산을지킨 군주봉아

팔봉 지켜주는 부처같은 성인바위

팔영산 주인되신 성주봉이 여기로세

[ 생황봉에서 바라본 성주봉 ]
[ 성주봉에서 생황봉을 가는 도중에 발견한 큰바위얼굴 ]

열아홉 대나무통 관악기 모양새로

소리는 없지만 바위모양 생황이라

바람결 들어보세 아름다운 생황이라

[ 생황봉에서 바라본 사자봉 ]

동물의 왕자처럼 사자바위 군림하여

으르렁 소리치면 백수들이 엎드리듯

기묘한 절경속에 사자모양 갖췄구려

다섯명 늙은 신선 별유천지 비인간이

도원이 어디메뇨 무릉이 여기로다

5신선 놀이터가 5로봉 아니더냐

[ 오로봉에서 바라본 두류봉 ]
[ 두류봉에서 바라본 제 5 봉 오로봉 ]
[ 두류봉에서 내려다 본 거금대교(居金大橋), 거금도(居金島)를 연결하는 현수교가 황금색인데 거금도는 본래 금광(金鑛)이었다고 함 ]
[ 거금대교 ]

건곤이 맞닿는 곳 하늘문이 열렸으니

하늘길 어디메뇨 통천문이 여기로다

두류봉 오르면 천국으로 통하노라

[ 두류봉에서 바라본 칠성봉 ]
[ 칠성봉의 명물 팔영산 통천문 ]

북극성 축을삼아 하로두 열두때를

북두칠성 자루돌아 천만년을 한결같이

일곱개 별자리 돌고도는 칠성바위

[ 칠성봉에서 바라본 적취봉 ]

 

[ 적취봉 쪽에서 바라본 칠성봉 ]

 

물총새 파란색 병풍처럼 첩첩하며

초목의 그림자 푸르름이 겹쳐쌓여

꽃나무 가지 역어 산봉우리 푸르구나

[ 적취봉에서 바라본 다도해 풍광 ]
[ 적취봉 가는 길의 헬기장 ]
[ 팔영산 주봉 깃대봉 ]

깃대봉에 오른 시각은 오후 3시 40분. 이곳에서 산행날머리인 주차장까지는 4km 거리입니다. 지금부터는 뛰어야만 합니다. 카메라와 스틱을 배낭에 집어넣고 전력 질주합니다. 이정표는 잠깐 멈춰서서 폴더폰을 촬영합니다.

탑재부터는 산림도로가 한동안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주차장 2.5km 지점에서 숲길로 들어갑니다.

전력질주해 가다가 개울에 다리가 있는 곳에서 이르러 개울로 잠시 내려가 세수를 합니다.

정말 시원하고 정신까지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다시 뜁니다.

야영장에 도착합니다. 

야영장 입구 가게에서 급하게 사이다 한병을 구입합니다.

 

조금더 내려가니 산행객 두분이 오디라고 하면서 열매를 따먹기에 저도 따먹었는데 맛은 영 아닙니다.

딱 한 개만 먹고 다시 갈길을 재촉합니다.

[ 오디 열매 ]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팔영산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시간을 확인하니 4시 37분. 출발 3분 전입니다. 4km 산길을 1 시간에 내려와서 땀은 많이 흘렸으나 심신은 가뿐합니다.

 

 

석가탄신일에 찾아 간 팔영산은,

 

" 선녀(仙女)가 산(山)이요, 산(山)이 곧 선녀(仙女) "인,

 

" 세상에 있으나 비현실계(非現實界)요, 비현실계(非現實界)나 세상에 있는곳 "으로 풍광으로 말하자면,

 

자연계 속에,

 

"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 유아독존) 第一峰(제일봉)  "

 

이었습니다.

 

오늘 안전운행해주신 기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산행을 이끌어주신 붕어잡이 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보나파르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5.20 붕어잡이 대장님, 안녕하십니까.
    친절한 답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제 날씨가 좀 더웠는데 산행을 이끌어주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좋은 풍광을 마음껏 감상하고 왔습니다.
    오늘도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가득 채워가시기 바랍니다.
    그럼 또 다음 산행에 뵙겠습니다.
  • 작성자미 산 | 작성시간 21.05.20 능가사 대웅전에서 바라보면 팔영산 여덟 봉우리가 아주 멋지지요
    숨을 할딱거리고 1봉 유영봉에 올라서면
    선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곡선 또한 예술이고요

    마지막 깃대봉 사진은 안 보이네요

    2년 전 1월까지 고압선 전봇대 아래 있던 흉칙한 깃대봉 정상석 위치를
    다도해 방향으로 돌리도록 유도해
    지금은 멋진 정상석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답니다

    숨은 범인이 저라는 애기는 안비밀입니다


    늘 품격높은 산행기 감사합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보나파르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5.20 미산대장님, 안녕하십니까.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깃대봉 정상석도 촬영했습니다. 여기에 미산대장님의 숨은 공로가 있는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몇 년 전에 카메라를 들고 갔을 때가 있었는데 저는 그런 것을 캐치하지 못했습니다. 둔감하고 관심의 정도가 낮았기 때문이겠지요. 미산대장님 덕분에 좋은 사진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노트북컴퓨터가 메모리가 부족하여서인지 더이상의 사진을 올릴 수 없어서 나중에 PC방에 가든지 해서 글씨기 작업을 완료해야 될 것 같습니다.
    남은 저녁시간도 많이 많이 행복한 시간되세요...
    아, 그리고 저의 산행기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시니 진심 감사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미 산 | 작성시간 21.05.20 카페 시스템이 개편되어 사진을 이전처럼 자유로이 올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도 소문난 찍사였으나
    개편 이후 카메라 사진은 블로그 자료용으로 혼자만 소장할 뿐
    고작 폰 사진만 간신히 올리고 있답니다
    요즘 벌려놓은 일이 많아
    소위 공사다망하여
    사진을 올리고 토다는 일은 손도 못대고 있네요
  • 답댓글 작성자보나파르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5.20 미 산 그랬었군요.
    여러 분야의 일을 하시는 미산대장님의 에너제틱한 모습이 감동입니다.
    좋은 정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