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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 용흥사

작성자손처사|작성시간08.05.23|조회수52 목록 댓글 0

용흥사

용흥사의 창건연대에 대해 구전으로는 백제 때 창건되었으며 처음 이름은 용구사(龍龜寺) 혹은 몽성사(夢城寺)였다고 전하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는 없다. 그 뒤의 연혁 역시 잘 알 수 없으며, 조선후기 이후부터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 숙종 때 궁녀 최복순(崔福順)이 이 절에서 기도하여 영조를 낳고 숙빈이 된 후, 절 이름을 용흥사(龍興寺)라 하고 산 이름을 몽성산(夢聖山)으로 고쳤다고 한다. 그러나 1644년(인조 22)에 만들어진 용흥사 동종에 ‘용구산 용흥사(龍龜山 龍興寺)’라 기록되어 있어 산 이름과 절 이름에 혼동을 주고 있다. 더욱이 용흥사가 『태고사법』에는 몽성산에, 『범우고』에는 용구산에 자리한다는 기록이 보이며 절 이름도 원래 용구사(龍龜寺)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을 정리해보면 동종의 제작시기인 17세기에는 ‘용구산 용흥사(龍龜山 龍興寺)’로 부르다가, 숙종 연간에 최복순에 의해 ‘몽성산 용흥사(夢聖山 龍興寺)’로 개칭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17세기 이전에 용구사로 불렸는지는 지금으로서 알 수 없는 일이다. 1871년에 간행된 『호남읍지』의 창평현 사찰조(寺刹條)에, “용흥사는 용구산에 자리하며 궁(宮)의 원당(願堂)으로 종이를 만드는 임무를 담당하였다”고도 하였다.

숙종연간 숙빈이 왕래하던 당시 용흥사에는 일곱 개의 암자가 있었으며 고승들이 50여 년 동안 머무르면서 사세를 키웠다고 한다. 그 뒤 한일합방 전후에 의병활동의 근거지가 되어 전투 중에 폐허가 된 것을 박항래(朴恒來)가 중건하였으나 다시 불타 없어졌고, 1930년대에 백양사의 정신(定信) 스님이 중건하였다. 이후 6.25사변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을 1964년에 법당과 요사를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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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부도군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39호

용흥사 입구 왼편으로 부도(浮屠) 7기가 나란히 자리한다. 이 부도군(浮屠群)은 부도의 형태와 명문(銘文) 등으로 미루어 17세기 중반부터 1793년까지 약 150년간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용흥사부도는 비록 조선시대에 속한 부도이나 그 조형과 작풍이 모두 팔각원당형을 고수하고 있으며, 더구나 조성의 절대연대를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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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이 오래된 용흥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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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공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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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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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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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석조 미륵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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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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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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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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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부연을 단 겹처마 건물로서, 흙으로 돋운 축대 위에 자리잡고 있다. 자연석 주초석에 그랭이질을 한 원형의 기둥을 세웠으며, 공포는 다포계로 내외 각 3출목형식이다. 어칸과 양쪽 협문은 각각 정자살창의 이분합문으로 달았다.

대웅전은 6.25 때 소실되었는데, 원래는 석조기둥이었다고 하며 현재 경내 곳곳에서 보이는 석주들을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대웅전은 원래의 터에 복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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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대웅전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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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범종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0호

이 범종은 전체높이 102cm, 걸고리를 제외한 종신높이 78cm, 상대지름 36cm, 중대지름 58cm, 하대지름 66cm로서 현재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종의 구조는 정형인 상대와 하대가 있고 중앙 윗부분에 4개의 유곽(乳廓)과 유곽 내에 각각 9개의 유두(乳頭)를 표출하였다.

세부를 보면 하대로 굵은 두 줄의 가로줄을 두고 그 안에 두 마리의 용을 양각하여 반결형을 하였으며, 3개의 발톱과 입에서 불을 내뿜는 불꽃무늬가 각출되었다. 몸체 중앙부에는 凹형의 4각 선곽(線廓)을 조식하고 그 안에 '순치원년사월일창평현용구산용구사신주종기(順治元年四月日昌平縣龍龜山龍龜寺新鑄鐘記)…'라는 명문(銘文)이 표기되었는데 행서종행으로 총 38행 255자를 새겼다.

이 명문에 의하면 종의 조성연대는 1644년(인조 22)임을 알 수 있다. 종신 중앙 상단으로는 네 군데 유곽에 9개의 유두와 인동당초문으로 그 외곽을 장식하였다. 유곽 사이로는 전후좌우로 두광(頭光)을 선각한 보살상을 정교하게 새겨 몸체를 장식하였다. 상대로는 두 줄의 가로줄에 범자(梵字)로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을 새겼다. 상부의 용머리는 대개 한 마리 용의 허리를 구부려 그 중심부에 고리를 걸도록 하고 뒤로 음관(용통)을 세운 뒤 용꼬리를 조각하는 데 반해, 이 범종은 이러한 통례와는 달리 4마리의 용이 서로 얽혀 고리를 걸도록 하였으며 음관은 생략하였다.

조선시대 범종은 대개 임진왜란 이후의 것인데 이 종은 그 중에서도 비교적 초기에 속하며 태안사 천순명 동종과 함께 매우 귀중한 예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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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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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용된 계단 소멧돌

사찰 주위에 예전에 사용된 석조들이 있어 당시의 건물 형태를 가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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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미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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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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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 괘불지주석

절 입구에 있는 대나무식당 앞 길가 좌우에 위치하고 있다. 괘불지주의 구멍이 하나는 원형이고 다른 하나는 방형으로 구분되어 있어, 2종류의 괘불지주인 것으로 여겨진다.

구멍의 형태가 다른 것은 제작시기의 선후에서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놓인 장소는 괘불지주의 건립위치상 원래의 자리에서 옮겨진 것으로 보이며, 전체 높이는 96cm와 80cm이다


 

 

 

 

 

용흥사 찾아가는 길

담양읍에서 담양교를 건너 15번 지방도로를 따라 백양사 쪽으로 간다. 월산면소재지를 지나면 바심재 고개를 만나는데 고개정상에 휴게소가 있고 왼쪽으로 용흥사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이 세워진 도로를 따라 좌회전하여 월산저수지를 지나 4km 정도 산길을 따라가면 용흥사에 닿는다. 담양에서 바심재까지는 8km 정도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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