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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 장언식 공의 正射論정사론

작성자한산|작성시간12.06.01|조회수1,481 목록 댓글 0

청교 장언식공의 正射論정사론입니다.

활쏘는 기술보다는 정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진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첨부파일 정사론_원문_및_해석.hwp / 권성구님 해석본


 

첨부파일 장언식 선생 정사론.pdf


 

첨부파일 장언식_선생의_정사론[1].hwp 

 

 

홍성우접장님의 정사론 정리분을 퍼 왔습니다.

 

정사론 해석 한줄 요점정리 및 한글풀이 모음

http://blog.daum.net/woo-139/30

 

<<각 줄의 내용에 해당하는 장으로 이동하는 링크를 걸어 두었습니다.

줄의 문장을 클릭하면 새창 또는 새탭으로 이동합니다.>>

 

요점을 한줄로 정리하기)

 

서문) 정사론은 사예에도 도움이 되지만, 정신수양서로서도 훌륭하다. 이것을 서문에 밝힌다.

사론) 사예는 국가의 간성이며, 사예에는 군자의 도가 있다

01장 정기정심 전거후집 규구방원의 이치가 있는 사예는, 예와 악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02장 삼절(손목 중구미 어깨관절)이 궁현과 조화를 이루어야한다.

03장 정기의 활쏘기에는 10심 10정이 있다.

04장 궁후로 시작하여 정궁 유엽전 편전을 배웠는데, 모두 등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05장 정궁은 등힘과 뼈마디로 활을 벌리는 것인데, 중도이립의 묘리를 알아야한다.

06장 육량의 도는 거궁 자세를 높여 뼈마디로 당겨야 하는데, 전거후집에 힘써야 한다.

07장 머리를 곳곳이 하는 와 어깨죽지뼈를 빗겨 내리는 '리'의 이치를 알아야한다.

08장 자신의 사체를 살필 수 있어야, 배가 대해를 헤쳐나가듯 올바른 사예를 익힐 수 있다.

09장 활을 배우는데는 단계가 있는데, 사람의 수준에 맞는 맞춤식 교육을 해야 한다.

10장 만작을 하고도 다섯까지 헤아린 후 발시해야 한다.  미발지도를 익혀야 한다.

11장 정곡만 하려고 하지 말고 정기에 힘쓴다면, 선사의 경지에 저절로 다다를 수 있다.

12장 정기의 활쏘기는 등힘으로 후집하는 것으로, 선사하려면 반구제기해야 한다.

13장 자신이 언덕과 같으면, 어깨와 중구미와 손목이 실해진다. 이것이 삼절이요 삼동이다.

14전거후집 동시에 실해야 하는데, 연습량이야 말로 신궁이 되는 지름길이다.

15장 정심의 활쏘기는 사예로서, 자신 가정 사회 국가를 위할 수 있는 나라의 간성이다.

16장 줌손 앞쪽이 살짝 보이게 하고 깍지손에 힘을 쓰면, 코 줌손 과녁이 일치하게 된다.

17장 전거 후집 좌우살피기 깍지맺기 화살보내기의 여섯 가지를 알아야 선사할 수 있다.

18장 활과 사람이 더불어 강력하게 깍지를 맺어야, 붕횡의 도를 얻을 수 있다.

19장 만작을 했을 때 화살이 머무는 궁실이 실하면, 얼굴 눈 코 줌손 과녁이 바르게 된다.

20장 독선에 빠지거나 계속 배우려는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 좋은 스승 착한 제자.

21 목을 길게 어깨를 낮게 하여 전거후집하고, 손끝의 묘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22장 얼굴과 몸이 먼저 주체가 되고 팔과 뼈마디가 보조를 해주면, 좋은 사체를 얻게 된다.

음말) 이상 22편에서 빼 먹으면 안 되는 열 가지를 추려서, 10도라 하니 꼭 지켜야 한다.

문) 진짜 명궁이었는데 활병이 왔다. 48년의 깨달음으로 정사론을 쓰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글에서의 요점은 역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으로써,

본문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간혹 그 내용이 몇 장에 있었더라? 라고 헤매는 적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때 참고가 되시라고 올린 것 입니다.>>

 

 

 

 

<<요즘은 문자를 읽어주는 스마트폰 어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래의 한글 풀이 모음을 TTS(문자 읽어 주기) 앱으로,

혼자서 차를 운전할 때나 활터에서 활쏘기를 할 때 듣는다면 도움이 되실 것 같기에,

추가로 올려 봅니다.

 

 

정사론 한글 풀이 20140323.zip

 

 

>>

 

 

정사론 해석 한글 풀이 모음)

 

서문

 

  내가 어려서부터 육예의 글을 읽었지만, 사예의 심미한 묘미를 다 익힐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 현묘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있어서 단지 달처럼 당겨서 별이 흐르는 것처럼 쏠 수가 있었다. 멀어도 도리어 그곳과 소통하여 쏠 수가 있었으니, 맞추려고 하면 맞고 맞추지 않으려고 하면 맞추지 아니할 수가 있었다. 그러하니 그 과정에 있는 심오하고 현묘한 도리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지금 첨제절사 장언식 공의 한편의 사론을 보니, 규구 방원의 조화가 무궁하여 고서에서도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것이다. 22편의 글이 비단 사체 공부에 유익할 뿐만 아니라, 글 사이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적과 맞서는 당당함과 불의에 분개함과 충성심과 협의심의 뜻이 범상치 아니하기에 당연히 사람의 도리로 삼을 만하다.

 

  삼가 이 서문에서 이글의 이와 같은 놀라움을 밝힌다.

  임신년 유월 상순에 파평 윤씨 서호 윤흥섭이 삼가 서문을 짓는다.

 

 

사론

 

  천지가 생기고 삼황에서 제왕의 도가 나왔으니, 문무를 다룸에 있어 각기 경계가 있었다. 자고이래로 유학자들의 문장이 있었고, 도서와 전집으로 전해졌었다. 그러나 무예 중의 사예는 예가 그 신묘한 도리를 궁극으로 깨우쳤으나, 작금에 이르러 그 흔적조차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심히 미혹하지만 감히 보잘 것 없는 22편을 후인에게 전하노니, 사예를 잇는데 만에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무릇 사예는 국가를 지키는 방패와 같다. 서경에서는 천하의 도리는 제후가 사예가 국가의 간성이라는 것을 밝히고 계승하여 시행하는 것이라고 했다주역에서도 역시 천하지도를 엄하게 말하였는데, 나무를 휘어서 활을 만들고, 나무를 베어서 화살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확상의 포에서 사례를 행하는 것을 사람들이 빙 둘러서 구경을 했을 때, 제자들이 잔을 들고 나가기를 세 번씩하게 시켰다. 이것은 사예에서 그 제자의 덕행을 살핀 것이다. 덕이란 것은 자기를 바로 함인데, 자기를 바로 함이란 마음을 바로 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마음이 진실로 바르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부모를 섬김에서 불효하는 것과 같고, 전투에 임하여 전략도 없이 싸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제자를 꾸중함에 있어도 사예는 이와 같았다고 하셨는데, 군자가 정곡하지 못하면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였다.

 

  지금 사예에 대해 논하고 있다는 것은 정곡만 맞추어서 벼슬하기에만 관심이 있는 무리들의 사예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예에는 규구의 법도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하늘에는 일월의 도가 있고, 땅에는 사람과 사물의 도가 있고, 사예에는 군자의 도리가 있다. 정기점심을 도라고 하고, 전거정원을 규라고 하고, 후거집방을 구라고 하고, 전거후집을 법이라고 하며, 음사주례를 도라고 한다.

 

  또한 사풍으로부터 유래한 범례들이 다음과 같다. 비정비팔을 예라고 하고, 흉허복실을 예라고 하고, 선찰산형을 예라고 하며, 후관풍세를 예라고 한다.

 

 

1

 

  정기정심하는 도는 자기를 바르게 하고, 그 바름으로 마음을 다스려서 관덕의 몸가짐을 살피는 것이다.

 

  전거정원에서 규라는 것은 팔뚝이 '원'이 되고, 그 '원'이 하늘이 되어 편안히 거한 모습이 인과 의와 같이 된다는 것이다.

 

  후거집방에서 구라는 것은 팔뚝이 '방'이 되고, 그 '방'이 땅이 되어 부드럽게 거한 모습이 예와 지와 같은 모습이 된다는 것이다.

 

  전거후집에서 법이라는 것은 집으로 거하고 거함으로 집함으로써, 앞은 씨줄이 되고 뒤는 날줄이 되는 것이다.

 

  음사주례의 법도라는 것은 예로서 악을 삼고 악으로써 활을 쏘는 것이다. 그러니 사예가 어찌 예에 비견되고, 듣는 것이 어찌 음악에 비견되지 않겠는가? 향음향사하는 풍속은 성인 시대의 법으로서 위엄이 있기에, 절주라고 할 수 있다. 춘추에 전하여 이르기를 어찌 쏘고 어찌 듣는가는 예와 악을 가리키는 것인데, 예악의 활쏘기라는 것은 육례 중에서 세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범례로서 비팔비정이라는 것은 발모양이 편안한 것을 말한다. 흉허복실이라는 것은 자기를 바로하는 것을 논하는 것이다. 선찰산형이라는 것은 능히 표를 올리고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후관풍세라는 것은 능히 내부의 힘을 늘리고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2

 

  좌우의 팔에는 각기 3개의 관절이 있는데, 손과 팔뚝 사이의 뼈마디인 손목이 하나요, 팔꿈치에서 위로 팔의 중간 팔뚝 잔부 사이의 뼈마디로 굴곡하는 팔꿈치가 둘이요, 팔에서 위로 어깨의 어깨죽지뼈와 앞 어깨뼈의 오두 사이의 뼈마디로 굴곡하는 곳이 셋이다.

 

  이 세 개의 뼈마디가 궁현과 서로 짝이 되어 조화를 이루어야 이치에 합당하다.

 

3

 

  과녁을 쏘아 화포를 가지런히 하는 데는 마땅히 십심십정이 있다.

몸과 심성을 하나로 하여 그것을 굳게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정이라 하고,

작은 것을 크게 보는 바른 마음을 정이라고 하고,

원근 따져 형태를 살피는 너그러운 마음을 정이라고 하며,

줌통을 쥐고 전거함에 있어 줌손의 엄지 검지 중지로 줌통을 시험하여 굳히려는 마음을 정이라고 하며,

양팔을 거하는 사이의 앞뒤 팔뚝마디 잔부가 동시에 하늘을 가로질러서 그 둥근 것과 모난 것을 헤아리는 마음을 정이라고 하며,

어깨와 어깨죽지뼈와 오두가 제자리에 있게 하려는 마음을 정이라고 하고,

후집하는 깍지를 잡는데 있어 실속있게 하여 공교함이 극에 이르게 하는 마음을 정이라 하며,

깍지에서 이미 발시 순간에 이르렀음에도 깍지에 쏘려는 뜻을 더욱 더 하는 마음을 정이라고 한다.

 

  이 십심십정의 도는 바로 쏘는 것에서 비롯될 뿐이다. 바로 쏘는 도가 십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열가지 마음이 나의 감정과 호응함으로써 몸을 바르게 하여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러한 도리는 사예의 이치에 모두 통하는 것이다. 무릇 선사라 함은 이러한 방법을 따라 도를 얻는 것이며, 이렇게 도를 얻는다는 것은 그 묘리를 스스로 생각하여 얻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묘리를 얻는다는 것은 각자 스스로 체득하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이와 같아야 그 방법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4

 

  활쏘기를 배우는 방법은 궁후로 시작하여 배우기 시작하는데, 고래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이것을 사람마다 익혀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잡았다. 동국의 위엄있는 무예는 자기를 바로 함으로 부터 익히게 하는데, 이것은 무가의 오랜 전통이다.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궁후로 3년을 시험한 후 정궁을 배우게 했다.

 

  정궁은 큰 활인데, 큰 활로 철전을 쏘았다. 철전의 무게는 여섯량이다.

  사예로써 무과를 보는 사람은 정궁을 익힌 후에 유엽전을 시험하는데, 이것은 먼저 육량의 원리를 법으로 삼아서 등힘의 기운을 두루 퍼지게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량을 취하여 시험을 하고, 그 나머지는 유엽전과 편전을 취하여 시험한다. (무과 시험의 지침서인) 격서의 활쏘기에서 활을 추구하는 것은 정궁을 다루는 재주로 시작하는데, 철전으로 위력을 감당할 수 있는 것과 유엽전으로 정확하게 쏠 수 있는 것을 시험한다. 이 모든 것이 등힘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예의 위엄이 사해에 퍼진다는 것은 바로 국가의 간성으로서 중요한 것이며,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리는 방법의 기초가 된다. 예부터 문과 무를 함께 숭상하는 것이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것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5

 

  육량의 화살을 쏘는 도는 하는 것으로 방법을 삼고, ‘하는 것으로 법도를 삼는다.

가르치는 사람은 뼈마디를 다스리는 방도를 가르쳐야 한다. 어깨는 아래로 내리고, 어깨죽지뼈는 신발을 신듯이 빗겨 내리고, 어깨 앞쪽 뼈는 고정 시키고, 오두는 지탱하고, 머리는 꼿꼿이 위로 당긴다. (상투를 끌어당기듯이) 자세를 곳곳이 바로하는 것은

(스승과 선배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에 비롯되는 것이며, 그것을 따른다는 것은 (뼈마디와 힘줄이) 서로 상응하는 것이며, 서로 상응한다는 것은 (뼈마디와 힘줄이) 제자리에 있게 된다는 것이며,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뼈마디와 힘줄이 자리를 잡아서) 자세의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모두 갖춘 연후에야, 육량의 도라는 이치를 깨우칠 수가 있다.

 

  무릇 갖추어 쏨에 거궁하는 법은 오로지 양팔의 힘으로만 거궁하지 말고, 다만 높이 드는 것이다. 거궁의 힘은 뼈로 받치는 것에서 기초를 기약하고, 뼈마디에서 힘을 구하는 것이다. 팔꿈치를 먼저 세우면 근육의 힘줄이 벌써 서 버리고, 힘줄이 먼저 세우면 뼈와 마디가 기세를 잃게 된다. 뼈와 마디가 기세를 잃으면 활을 만작하기에 어려움이 있고, 만작하기에 어려움이 있으면 반드시 발시 전의 끝마무리의 기세를 실하게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도약한다는 것은 중도에 일어나서도 능히 앞에 것을 앞지른다는 것이다.

 

 

6

 

   만작을 유지하며 화살을 놓는 방법에서 앞뒤 팔뚝은 다음과 같이 한다. (양팔뚝을 머리 위로) 높고 높게 멀고 멀게 들어서 머리의 공간을 발판으로 원의 최고점으로 삼는다. 힘쓰기를 다하여 소리도 다하는 것처럼 어깨를 (내려) 당김에 부가하는 것으로 방의 시작점으로는다. 즉 앞은 받들고 뒤는 누르니, ‘함을 중심으로 오로지 함에 힘쓴다. 이렇게 함으로써 중도에 설 수 있다. 이러한 절주(순서 또는 리듬)로 몸을 쓰게 되니, 그러한 기능으로 뒤는 머물고 앞은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배가 나아감에 돛에 바람을 가득한 안고 나아가는 것과 같은데, 그 모양에서 진진 충충 보보 즉즉하는 음율을 느낄 수 있다.

 

  능력있는 것 중에서 제일 유능한 것은 내달은 상태에서 한발 더 내닫는 것이고, 따르는 것 중에서 제일 잘 따르는 것은 더한 상태에서 조금 더 더하는 것이다. 멀리 우주의 광활한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바라보듯이 하고, 닭이 울 때 고개를 쳐들고 울어서 한소리 높이는 것과 같고, 창부가 노래를 부르다가 몸을 곳곳이 세워 한소리 높이는 것과 같아서, 궁현을 당기면 벼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천둥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육량시가 낮게 날다가 도중에 떠올라서 날아가는 것이 날개를 펴서 하늘에 닿는 것과 같으니, 그러한 기세라면 몇 보나 많이 날아갈지 어찌 알겠는가?

 

  그리하여 만작하여 방사하는 법이 이와 같다.

 

 

7

     

  사예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뼈마디의 품질을 알아야 한다. 만약 머리를 곳곳이 하는 뼈마디의 도리인 ''의 이치를 모른다거나, 어깨죽지뼈를 빗겨 내리는 품질의 이치인 ''를 따르지 않거나, ''''의 이치를 모른다면 활쏘기가 고질병이 될 것이다. 스승도 이런 활쏘기의 고질병을 모른다면, 사범도 없이 혼자 배웠기에 사체가 틀어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알지 못하면 비록 힘센 사람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을 결박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육량의 활쏘기는 스승 없이는 불가하므로,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활쏘기의 ''''에는 순서가 있다. 순서를 따르거나 따르지 않는 것은, 골절을 ''하는 도리를 각각 순서를 따르거나 순서를 거스른다는 것이다. 순서를 따른다는 것은 그 순서가 ''에 맞는다는 것이다. 거꾸로 한다는 것은 '' 거꾸로 따른다는 것이다.

 

  ''의 순서가 골절의 원리에 맞는다면 순서는 새로워질 것이다. 만약 ''의 순서가 골절의 원리에 거꾸로 라면 순서는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은 ''를 행하는 순서를 거꾸로 하면 하루하루는 그 순서를 모방할 수 있더라도, 한 달이 된다면 당연히 ''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만약 거꾸로 ''를 하게 된다면, 고치기 힘들다.

 

  순서가 '리'에 맞고 ''에도 합당하고 그 순서에도 맞으면, 안으로는 뼈마디가 서고 밖으로는 견갑이 거두어진다. 이것은 모두 절주에 맞는 것이다. 잘 쏘고 못 쏘고는 그 사람이 바르냐 바르지 않느냐에 달린 것인데, 그것을 헤아리는 것이 바로 스승이다. 만약 ''가 순서를 바꾸지 않는다면, ''에서 과오가 ''에 까지 심화된다. 그러므로 순서를 반대로 하면, 화가 ''에 까지 미치게 되므로 그 와중에 고질조차 감추어 버린다.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 어깨죽지뼈를 빗겨 내려도 자세를 곳곳이 바로 할 수 없다. 자세의 망가짐은 어깨죽지뼈를 빗겨 내리는 것을 방해한다.)

 

   

8

 

  사예의 기본을 배울 때, 작도지행의 기초를 다지는 것은 배가 물위를 가듯이 하는 것이다. 배를 잘 모는 사람은 큰 바다에 나가서도 육지에서 걷는 것처럼 할 수 있다. 깊고 험한 곳을 평평하게 여기는 것을 알고 나서 걸을 수 있다면, 이렇게 평평하게 여김으로 인하여 바람이 부는 곳에서도 움직이고 멈추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 파도가 일어날 지 안 일어날 지를 관찰하여 그날의 운항이 순한지 순하지 않을지 알 수 있다. 그것을 살펴 순리에 따르면 배를 잃고 바다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니, 망망대해라도 능히 항해할 수 있는 것이다.

 

  육량의 가르침도 배의 양공의 경우와 같이 하는데, 그 사체를 보는 것을 물의 깊고 험함을 보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활쏘기를 하면 허와 실, 빠름과 늦음의 묘리를 알게 될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그 숭상하는 바를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그 골절이 순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보면, 발시할 때 ''했는가 ''을 하지 못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것을 살펴 순리에 따라 만작하면, 감히 실수를 하지 않으면서 몸을 움직이고 활을 쏠 수 있다. 그리하니 능히 무궁함을 얻어 화살이 천보를 나아갈 것이다.

 

  무릇 멀리 쏠 수 있다는 것은 그 순리에 따라 만작하는 도를 이미 얻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후집하고 전거함에 힘을 쓴다면, 고풍의 사예에 도달한 것이니 이것이 멀리 쏘기의 근본이다. 무릇 오로지 후집에만 힘을 써야 하는데, 후집에 힘쓰지 않고서 다만 멀리 쏘려고만 하지 않아야 한다. 천양의 기예는 모두 이것을 본받은 것이다.

 

 

9

 

  스승이 무예를 시킨다는 것은 모두 가르쳐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르쳐도 된다는 것은 먼저 사예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 마음의 강유와 강약을 살펴야 하고, 사체와 뼈마디가 종이호랑이가 될 것인지 아닌 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야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의지를 허락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옛사람들의 사론이었다.

 

  요즘 활쏘는 사람들은 육량전을 기피하는데, 유엽전만 아는 자들은 과거에 나가 벼슬만 탐하기를 꽤한다매번 과거에 나아가 시험을 쳐도 오직 유엽전만 알고 정궁을 쏘는 방법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어찌 과거시험을 쳐서 합격명단인 과방에 이름을 올리기를 바라겠는가? 또한 사예의 융성함이 국가를 위한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비록 옛 풍습처럼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궁호로써 뼈마디를 다스리고 그 다스림으로 바르지 못한 것들을 바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예로 무과에 응시하는 자는 궁후로 1년을 쏘아서, 약자이면 다시 후포로 돌리고 강자이면 육량을 배우게 한다. 약자가 만약 유엽전을 원한다면, 그 사람의 에 맞추어 뼈마디의 험한 것을 관찰한다이후 만약 순리에 맞는 사람이라면, 궁후로써 순리에 따라 바로잡고 정기를 부드럽게 바로 잡아야 할 뿐이다. 궁후로 연습하기를 1년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정기가 처음처럼 된다는 것이다. 또한 궁후를 쏘는 법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무릇 궁후로 처음 시작하는 것은 마치 강보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것과 같다. 아기가 세살이 되어 음식물을 먹으려고 한다면, 어머니는 음식을 잘게 씹어서 부드럽게 하여 먹인다. 매번 아기가 먹는 량의 대소경중을 따져서 양을 더하거나 줄인다. 아기가 크고 자람에 따라 젖을 주는 빈도를 줄이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만약 아기가 세 살이 되었어도 말을 제대로 못해서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옹알거리기만 한다 하여도, 어머니는 다른 사람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 옹알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아기가 원하는 음식을 애정을 담아 숟가락으로 먹여준다.

 

  근육도 입맛에 맞는 것처럼 편하게만 쓴다면, 결국에는 활쏘기의 고질이 된다. 활쏘기도 의당 그러한데, 아기가 어릴 때는 젖을 먹이듯이 궁후로 가르치는 것도 쉬운 것부터 가르쳐야 하며, 아기가 크면 음식을 먹이듯이 초보자의 경지에 맞추어서 다음 단계를 가르쳐야 한다. 활쏘는 사람들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10

 

  예부터 천양의 기예나 관슬의 묘기는 밤낮으로 비바람이 불어도 사시사철 연습한 것에서 비롯된다.

  화살을 보낼 때 화살의 1순이라는 법이 있으니, 다섯을 일 순의 수라고 한다. 사법서에 이르기를 한발을 습사할 때에 다섯을 익혀 한 순을 얻으려면, 넷을 헤아릴 때까지 만작을 하고서도 화살을 발사하지 않아야 하고, 다섯을 헤아릴 때까지 만작을 하고서야 화살 한발 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실하게 쏘려면 역시 후집에 힘써야 하니 비록 나의 사론이 선대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감히 후집에 힘쓰는 것을 이와 같이 시연하여 쏘는 것을 시험했을 뿐이었다.

 

  비바람이 불 때 쏘려면 실내에서 밝은 곳을 향하여 화살을 메겨 활을 당기는데, 이렇게 쏘는 것이 미발지도이다. 비록 깍지를 놓지 않았어도 쏜 것과 다름이 없다. 백보천양의 기예는 이 '미발지도'의 활쏘기에서 시작된다. 벼룩을 수레바퀴 만하게 보는 것은 작은 것을 크게 보려는 노력의 결과인데, 이러한 천관 유슬의 기예는 모두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비바람이 불 때 십 순에서 저녁 어두워질 때까지 백 순을 내는데, 다섯을 센 이후에 한 발을 쏘는 것을 매 순마다 이어가면서 쏘아 간다. 이와 같이 시험을 한 후에야 그 깊은 묘리를 스스로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예를 배우는 것에도 도가 있으니, 목호로 미발지도를 2년이고 3년이고 계속 시험해 보는 것이다. 활의 일가를 이루는 것은 이러한 과정에 있으며, 사예로 자신을 바로 하는 것은 스스로 끝없이 반복함에 있다.

 

  목호로서 미발지도를 새로이 시작함으로써 자기를 바로 할 뿐만 아니라, 과녁만 맞추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피할 수 있으니, 이것이 걱정거리를 없애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이 미발지도의 논의가 고인들이 사풍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1

 

  우리나라에서 유엽전의 거리는 보로 측량하는데, 120보를 기준으로 한다.

 

  요즘 활을 배우는 사람은 오호로 쏘기 시작하는데, 그 오호라는 것은 역시 궁후와 같이 연한 활이다. 활은 연하고 화살은 무거우니, 화포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피하려고 높이 들어 허공으로 쏘니 이것도 역시 옛사람들의 사풍이었다. 이미 옛사람들이 그러했으니 멀리 쏘려고 하는 사람들도 그러한데, 과녁이 가깝더라도 도달하기 힘드니 견물생심하고 비슷하다고 하겠다. 요즘 활을 쏘려는 사람은 반쪽자리 궁시의 재주를 빌려 감히 쏘려고 하니, 활의 성능이 정히 딸려서 가벼운 화살을 써야만 정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사의 관심은 매번 정곡만 하려고 하므로, 용체는 예에 비견할 수도 없게 되었고 절주는 악과 비견할 수도 없게 되었다. 반구제기신은 예부터 전해져온 사풍인데 신사는 화포를 구하지 못하니 경지를 얻지 못하는데, 연한 활과 함께 무거운 화살대를 쓰니 활대가 쏘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즉 비록 정곡을 맞추려고 하나 활대의 힘이 이미 기능을 다해 버린 것과 같다. 과녁을 맞출 수 있는 경지를 넘지 못하니, 감히 멀리가지 못하는 것이다. 과녁을 쏘려고 하나 과녁에 당도하지 못하고, 과녁에 욕심이 있으나 과녁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사가 쏘는 법을 행함에 있어, 스승은 사예를 가르치고 제자는 그것을 배운 연후에 행하여야 한다. 즉 가르치는 도리를 행한다는 것은 바름을 얻게 하는 것에 있으니, 정곡만 하려는 욕심을 버리면 저절로 화포 멀리로 화살이 날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멀리 쏘려고 하는데 반대로 짧아지고, 빨리 가려고 하나 오히려 늦어지는 것이다. 물건을 보니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듯이 쏘고 보니 과녁을 맞추고 싶어지는데 과녁을 맞추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과녁이 있기만 해도 쳐다보게 되니, 활쏘는 사람은 과녁만 본다. 스스로 정곡을 버리고 정기를 찾으려면, 이러한 근본 원리에 도달해야 한다. 이렇게 수년간 해서 활을 감당할 수 있어야만 쏴서 그 거리가 120에 이를 것이다.

 

  이렇게 활쏘기를 수년간 하여 활과 화살이 다시 새로워진다는 것은 활의 힘이 사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여, 사람의 힘이 활의 힘을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화살의 무게가 활과 조화를 이루어 쏘는 힘이 화살에 골고루 전달되는데, 활의 힘을 이기는 것을 기약하기를 삼년이고 사년이고 계속 해야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 자기가 사후를 제어할 수 있다면, 정을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정심하게 되며 정을 구하지 않아도 먼저 바르게 된다.

 

  과녁에 정곡하는 것은 많이 쏘는 것에 비롯되는 것이며, 과녁에 정곡하지 못하는 것은 적게 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무릇 정심을 공부한 연후에야 활쏘기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12

 

  정기의 활쏘기는 덕스럽게 서서 머리를 곳곳이 세우고, 얼굴 표정은 장엄하고 눈은 단정히 한다. 전거함에 오로지 힘을 구함이 없고 후거함에 다만 높게 끌어서, 앞은 가볍고 뒤는 느슨하게 한다.

 

    자기가 언덕같이 흔들리지 않고 가득차고 기울어진 것이 없으려고 한다면, 어깨의 견갑을 마치 뒷등과 뒷다리 전체와 같이 하여 몸을 곧게 하여 높게 펴서 세워 이 실해지게 해야 한다. 즉 뒤가 앞뒤의 견갑과 등 전체와 아랫다리를 이긴다는 것은 부드럽게 거함에 저절로 이지러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스스로 정기에 다다르는 것과 같다.

 

  후집한 어깨가 전거함에 지면 막판의 기세를 잃게 되어 정기에 다다를 수 없으므로, 정기의 활쏘기란 이기고 지는 힘겨루기라고 할 수 있다. 후집한 어깨의 힘이 매번 이지러지면, 그 힘이 어깨를 끌어당기게 된다. 그 힘이 자기를 이지러지게 하는 것을 스스로도 모르게 된다. 옛부터 하는 말이 '후집함이 반드시 이길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선사이거나 선사가 아니거나 하는 것은 모두 자신에게서 비롯되는데,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정과 부정에서 나온다. 적중하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않고 자기가 바르지 않음을 근심한다면, 그렇게 바름을 근심하는 와중에 도를 이루게 될 것이다. 자신이 바르지 않음을 근심하지 않고 적중하지 않는 것만 근심한다면, 그렇게 적중하는 것만 근심하는 와중에 도에서 멀어질 것이다.

 

  매번 선사를 하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자기를 바르게 해야 하는데, 이것은 활쏘기에 감추어진 이치이며 활쏘기에는 그러한 이치가 내재되어 있다. 이 이치를 따르는 중에 자연히 결실을 맺는 것이다.

 

 

13

 

  손목과 중구미와 어깨는 전거의 세 마디라고 했다. 옛사람들로부터 자신은 세 가지가 같다는 말이 전해왔는데, 삼동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은 당연히 세 가지가 같다는 뜻이다. 내가 말한 전거의 세 마디도 당연히 삼동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필히 삼절과 삼동이라는 말은 같이 일컬어지기 때문에, 삼동이라는 말을 모르면 삼절을 아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위에서 말한 내용은 자기가 언덕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민사범께서 근목지형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언덕의 나무는 강대하여 비록 바람이 분다고 해도 그 나무가 심어져 있는 언덕이 어찌 움직이겠는가?’ 라고 하셨다. 근목이 언덕보다 실하지 않다는 것은 바로 감히 언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14

 

  형태에는 허와 실이 있는데, 실하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앞은 하고 뒤는 절제하여, 이것을 갖추어 그 법규로 그 법도를 제어하는 것이다. 동은 정에서 그 형태를 갖추고, 제는 동에서 그 실체를 찾는다. 마디의 위치를 지키고 뼈마디를 온전히 하고 깍지를 끼고서 한 획을 긋듯이 활을 당기면, 앞은 뒤를 이기지 못하고 뒤는 앞에 부담을 주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전거함과 후집함의 사이에는 한 치의 차이도 없게 된다. 이것이 서로 기울어짐이 없게 하는 것인데, 마치 보름달을 그리듯이 하는 것이다. 오직 형체에 중용의 덕이 있어야만 자기가 언덕이 될 수 있는데, 이것을 실하다고 한다.

 

  ‘하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전거함에 있어 먼저 힘을 구하고 규구에 합당함을 꽤하지 않으면, 절주의 합당함을 얻을 수 없다. 전거의 정원을 하지 못하면, 후집''도 바르게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먼저 힘을 쓰면, 오직 위험할 뿐이다. 그러므로 팔다리의 힘만 쓰려고 하면, 오직 위험할 뿐이다. 힘으로만 거궁해서 먼저 쏘려고만 한다면, 후세를 다스리기 어렵게 된다. 응당 허기 이루려고 생각하면, 몸은 실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사풍이 어지럽게 되므로, 이런 이유로 (자세가)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위에서 기술한 내용은 바로 풍목지세와 같이 위태로운 것이다.

 

  움직이는 중에 가 있으면 자연히 그 사이에 이 있고, ‘하고자 하는 중에 가 있으면 생각하지도 않은 사이에 저절로 이 있게 된다. ‘도 있고 도 있는 것이다. 앞은 약하고 뒤는 강하면 앞은 실해지려고 힘을 주게 되고, 앞은 강하고 뒤는 약하면 뒤가 실해지려고 하니 몸이 움직이게 된다. 그리하니 어찌 이와 같이 하여 앞뒤가 같이 실해지게 하지 않는 것인가?

 

  무릇 사예에서 허와 실이라는 것은 규구와 절주로부터 정기로 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함으로 가 되고 함으로 가 되고, 전거함에 힘을 주는 것을 생각하지 말 것이며 후집함은 온전히 끌기만 할 것이다. 그리하면 자연히 해지는데 동쪽에서 하고 서쪽에서 하는 것처럼, 서로 같이 맞물려서 스스로 묶어지고 풀어지는 것이 마치 포스트잇을 붙였다가 떼는 것처럼 쉽게 되는 것이다.

 

  많이 쏘려면 하루에 다섯까지 헤아려서 쏘기를 백 번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을 수년간 하면 가히 금석지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순일한 마음으로 이렇게 하는 것을 어기지 않고 성실한 마음으로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가히 일정지심을 반드시 얻을 것이다. 연습을 오래하면 신이가 생기고, 신이가 생기면 기적이 생기고, 기적이 생기면 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란 것은 신묘한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생겨서 내 곁에 머무는 것이다.

 

 

15

 

  정심의 활쏘기는 정곡만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정심'이란 단어에서 이란 오행 중 하나인 가 내재된 군주이고 신명의 주인이다. 만약 사람이 폐구불선하여 수시로 만사에 따라 마음이 바뀐다면, 공명으로 부귀를 점치고 사리로 재물을 탐하여 공사와 진위가 뒤바뀌게 된다. 아침에 바꾸고 저녁에 변하면, 마음은 백방으로 흩어져 정신은 불안정하게 되어 버린다.

 

  만약에 어떤 사람의 마음이 밝지 못하더라도 공무와 사재에 진실로 힘을 쓴다면, 즉 스스로는 간사하여도 그러한 것들이 마음을 거스른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게 된다. 신명의 주인인 은 겉으로만 성실한 척하는 이것을 모르지 아니하기에, 신명이 발동하여 그 뜻을 불능으로 만들어 거짓을 막는다. 만약 어떤 사람의 마음이 사예에서 천명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서 활의 기예에서 길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이 어찌 간성에 이르렀는지 알겠는가?

 

  그러므로 공자께서 확상에서 활을 쏘실 때에 제자들의 마음을 살피기를 세 번이나 하신 것이다.

 

  사예가 정심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총명함을 알아서 관직에 오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즉 상고의 세상에서부터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사예로서 천하를 다스렸고 사예로서 위엄을 세웠다. 즉 활쏘기란 정심을 얻은 연후에 나라의 간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음으로 활쏘기를 논하는 것은 에 비견되고, (활쏘기로 벼슬에 나가는) 사후는 에 비견되는데,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정심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삼가 두려운 마음으로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16

 

  과녁을 보는데, 양눈으로 보며 쏘는 것을 논하면 다음과 같다.

 

  우궁의 경우 우안으로만 보아서 과녁을 보는데, 줌통의 앞이 보일 것이다. 과녁을 좌안으로만 보면, 줌통의 뒤가 보일 것이다. 과녁을 양눈으로 본다면, 줌통의 가운데가 보일 것이다. 이렇게 보이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줌통은 코와 일직선에 있게 된다.

 

  코라는 것은 양눈 사이에 있어 얼굴의 가운데이다. 얼굴이 바르게 된 후에야 코가 바르게 되고, 코가 바르게 된 후에야 눈이 바르게 된다. 그 줌통의 가운데는 코와 일직선이 되는데, 줌통이 손의 가운데 있으므로, 줌통이 과녁과 일직선이 된다.

 

  만약 과녁을 보아 줌통의 아래나 위에 있으면, 자신이 잘한 것이며 과녁과 줌통이 일치하는 것이다. 만약 과녁을 보아 줌통의 앞이나 뒤가 보인다면, 뒤가 보이면 깍지손을 많이 당긴 것이며 앞이 보이면 줌손을 많이 밀은 것이다.

 

  그 후세를 실하게 하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만약 과녁을 보아서 줌통이 가린다면, 이것은 줌통이 과녁과 일직선이 되는 것이다. 줌통의 상하앞뒤로 보이는 4가지에서 장점을 취하면, 과녁이 줌통의 앞으로 살짝 보이게 하여 깍지손의 엄지와 검지로 후집에 힘쓰는 것이다. 이렇게 일자로 하려면, 모를 재는 도구인 구를 높여 보듯이 깍지손을 높여 끌어야 한다.

 

 

17

 

  선사라고 불리는 것도 '하나', 선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도 '하나'이다. '하나'라는 것은 여섯 가지 법도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전거와 후집, 좌를 살피는 것과 우를 살피는 것, 깍지를 맺는 것과 화살이 나가는 모양을 보는 것이 각각 '하나'이다. 동작과 태도가 그 '하나'와 다르지 않게 된 연후에야, 그 선사라는 '하나' 의 이름을 얻을 수 있다. '하나' 을 얻음으로써, 신사라고 말하지 않고 구사라고 말할 수 있다.

 

  신사가 3년을 넘어야 겨우 신사를 면할 수 있고, 오년이 지나서야 구사로 대접받을 수 있다. 예의 경지를 판가름하는 시점이 있는데, 만약 십년이 넘어도 선사라는 명예를 얻지 못하면, 비록 활은 쏜다고 하여도 명궁이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18

 

  강궁으로 활을 잘 쏜다는 것은 반드시 많이 쏘아서 도를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살걸음이 낮고 빠르다. 사람도 굳세고 활도 강하니, 깍지가 터지며 활이 펴지며 붕횡하는 소리가 난다. ‘이란 활이 펴지는 반동으로 활대가 진동하며 나는 소리이고, ‘이란 현에서 화살이 나가면서 현의 반동으로 나는 소리이다. 다른 사람이 보고 따라하려고 하지만, 붕횡의 경지를 따르지 못한다.

 

  이와 같이 하려고 하면, 사람과 활과 강한 깍지로 전거후집해야 이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없으면, 호랑이가 되려다가 강아지가 되고 말 뿐이다.

 

 

19

 

  살걸음이 빠르지 않는 것은 이미 한 부류이다. 이미 마음을 기약함을 얻지 못하기에 앞을 구함을 얻지 못하고 뒤는 을 잃어서 망치게 되어, 그 위직을 이루기가 어렵다. 경위를 잃으면 화살은 빠르지 못하여 높이 날면서 꼬리를 치며 날아가는데, 이는 모두 그 사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의 겨드랑이는 높고 뒤의 허리는 낮게 하면, 스스로 요사스러워서 하지 못하게 되어 만작했을 때 화살이 머무는 궁실이 필히 무너진다. 궁실이 무너지면 몸이 바르지 않고, 몸이 바르지 않으면 얼굴이 바르지 않고, 얼굴이 바르지 않으면 코가 바르지 않고, 코가 바르지 않으면 눈이 바르지 않고, 눈이 바르지 않으면 보는 것이 바르지 않은데, 어찌 정곡을 하겠는가?

 

  코가 바르면 정곡을 하고, 몸이 바르면 코가 저절로 바르게 되는 것이다.

 

 

20

 

  활쏘기를 하고 활쏘기에 대해 논하는데 있어, 도를 물어보고 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은 모두 스승의 지선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자신의 재주만 믿고서 쏘는 활쏘기보다 더 나쁜 활쏘기는 없는데, 이것은 무상하여 생기는 병보다 더 나쁜 병이 없는 것과 같다. 요즘 활을 배움에 있어, 겉멋만 들어서 활을 팔에 들고 화살을 허리에 차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며 무리를 짓는 경우가 많다. 처음 오호로 활을 쏘면서도 오직 정곡하려고만 하면, 반드시 위와 같이 될 것이다팔과 다리의 형과 정과 동의 어우러짐은 모두 활쏘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활이 뺨을 책망하듯 굽어지고 시위는 귀를 소홀히 여기며 지난다. 즉 사람이 활쏘기를 꽤한다는 것은 뺨은 사랑하고 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활이 굽어지는 모습은 마치 엄마가 아기를 사랑스럽게 팔로 끌어안는 모습과 비슷하며시위가 귀를 스치는 것은 사랑하는 처녀의 집을 지나가며 기웃거리는 청년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다.)  뺨을 사랑하지 안하고 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물론 활과 활쏘기에도 근심이 생길 것이며 나날이 깊어져서 숙병이 될 것이다.

 

  그것은 자기 혼자 활쏘기를 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지, 스승에게 배워 활쏘기를 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로움으로 바로잡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니, 해로운 것을 숭상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그런즉 법규를 먼저 버리고 나서, 나중에 그것을 아쉬워하는 것과 같다.

 

  혹시 오늘 잘 쏘았다고 내일도 잘 쏘기를 바란다거나 오늘도 어제같이 쏘고 어제도 오늘같이 쏘기를 바란다면, 평생을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노력해도 이루는 것이 없으니 저절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된다.

 

 

21

 

  목을 길게 하고 어깨를 낮게 한다는 것은 활쏘기가 순리에 맞는다는 것이다. 목을 짧게 하고 어깨를 높게 한다는 것은 활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목을 높이려면 양팔을 높이 들어 올려야 한다. 목이 낮은 경우는 뒤 팔만 높이고 앞 팔은 높지 않게 되는 것이다.

 

  활쏘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용된다.

 

  목을 길게 한다는 것은, 만약 양 팔을 들어 올리지 않으면 견갑과 오두가 안으로 숨어서 밖으로 서지 않으므로 서로 간섭하여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요행히도 숨기지 않더라도 팔에 직목지형을 더하는 것과 같다. 직목과 같다는 것은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목을 짧게 하고 어깨를 높이려고 하면 오로지 양 팔만 들어 올리는 것이 되어, 높이려고 해도 아니 높아지고 법규에 따르려고 해도 순리에 벗어나게 된다.

 

  만약 목을 길게 하고 어깨를 낮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높게 드는 법규만 알고 그 가슴이 나오는 것을 모르게 되면, 가슴의 병으로 어려움이 막막하기만 하게 되는데 가슴의 병이 고질병이 되어 반드시 사리를 밝힐 수 없게 된다.

 

  무릇 가르치는 사람은 그 활쏘기에서 그 사람의 정과 동의 형태를 살펴야 한다. 뼈마디가 험이하고 굽고 비스듬하다면 그것만으로는 규구를 할 수 없으므로, 활쏘는 것을 보면서 바꾸어 주어야 한다.

 

  앞에서 논했듯이 집으로 거하고 거로써 집한다는 것이, 앞은 경이 되고 뒤는 위가 된다고 했다. 앞을 경이라고 부르고, 뒤를 위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위라는 것은 직물의 세로를 경이라 하고, 직물의 가로를 위라고 한다. 경이 바르지 않으면 위가 바르지 않게 되고, 위가 바르지 않으면 경이 바르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거한다는 것에서 거는 어떻게 하고 집한다는 것에서 집은 어떻게 하는가? 거집이라는 것에서, 앞이 견고한 것을 거라고 하고 뒤가 실한 것을 집이라고 한다. 거가 견고하지 않으면 집이 실하지 못하게 되고, 집이 실하지 못하면 거도 견고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규구에 차이가 있으면 정곡에서 멀어지고, 경위에서 차이가 있으면 과녁을 맞추기 어렵게 된다. 규구가 부실하면 방원의 묘리를 다하지 못한다. 풍우에서도 물론 활쏘기를 하는데 앞이 거함을 기약하지 못하면, 거하여도 스스로 집을 구할 수 없게 되니 먼저 집에 힘써야 한다. 위에서 말한 규구방원은 활쏘기의 큰 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깍지를 맺어 쏘는 묘리는 손끝에 있다. 손끝에서부터 손가락 세 개가 있는 넓은 부분을 아귀라고도 한다. 이는 활쏘는 도중에 묘함이 감추어지는 이치이다. 활쏘기로 일가를 이룸은 규구의 방원에 있고, 활쏘기에서 묘리를 얻음은 삼지의 아귀에 있다.

 

  깍지를 제대로 맺는 것은 손끝 이지의 후집에 있다. 아귀에 비록 묘리가 있다고 해도 아귀가 뒤의 후집에 견줄 정도에 이르지 못하면, 아귀 역시 졸렬한 기세가 되고 말 것이다. 만약 뒤의 후집하는 기세가 에 견주고 에 견줄 수 있다면 그 기세로써 다만 줌통이 부러지고 현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런 순간에 그 묘리의 극에 달하여 줌손의 삼지의 아귀가 살아날 것이요, 깍지손의 이지의 끝이 살아날 것이니, 스스로 분결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일컬어 전거라고 하고 후집이라고 한다.

 

 

22

 

  얼굴과 몸은 활쏘기의 주체가 되고, 팔과 마디는 활쏘기의 보조가 된다. 보조가 주체를 따르면 활쏘기가 법도에 맞는 것이며, 주체가 보조를 따르면 활쏘기가 법도에 어긋나는 것이다. 주체가 바르면 보조는 스스로 주체에 가까워지고, 주체가 바르지 않으면 보조도 바르지 않게 되어 주체에서 멀어진다. 보조가 먼저 주체를 따라 가고 주체도 따라오는 보조를 응대하면, 서로 호응하여 하나가 된다. 위와 같이 주체와 보조가 호응하는 사이에, 부정함이 있다면 를 얻을 수 없다.

 

  주체와 보조가 같이 바르면 사체에는 엉성한 틈도 없게 된다. 사체에 엉성한 틈이 없다는 것은 주체와 보조가 하나가 되어 사체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활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살펴야 할 것이다.

 

맺음말

 

  진술한 22편은 사예의 근본과 원리를 논한 것이다.

  정심공부라는 것이 하나의 도이다.

  전거후집이라는 것이 하나의 도이다.

  맞지 않음을 근심하지 않고, 자신이 바르지 않는 것을 근심하는 것이 하나의 도이다.

  만작을 한 후 넷을 셀 때까지 발시하지 않다가 다섯을 헤아렸을 때, 깍지를 한획을 그리듯이 한번 떼는 것이 하나의 도이다.

  밤에 쏘고자 한다면 화살을 메기는 것과 그 화살을 쏘기를 다하는 것,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나서도 발시하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하나의 도이다.

  깍지를 갖추어서 후집한 팔뚝을 당기는데, 귀보다 높여 끄는 것이 하나의 도이다.

  후집함에 이지라는 것은 다만 방에 편승하는 것이며, (꽉 쥐지 않아서) 공기가 들어오듯이 하는 것이 하나의 도이다

  전거하여 팔뚝이 그 원의 힘을 버티고 오두의 숨김을 항시 생각하고, 보조(팔과 마디)가 먼저 주체(얼굴과 몸체)를 따르게 하는 것이 하나의 도이다.

  거궁하는 중간에 좌우 팔뚝을 같이 들어 올려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이 하나의 도이다.

  가볍게 들어 양 팔뚝에서 힘을 먼저 구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도이다.

  이와 같이 열가지의 도리인데 열가지 중에서 비록 한가지라도 힘쓰지 않는다면, 종이호랑이를 그리듯이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옛 책에서 말하기를 성인에게서 고풍의 활쏘기가 유래 되었다고 한다. 요즘의 활쏘기로서 규구정기의 도를 논하여 십심십정하는 부류라고 칭할 수 있다. 뼈마디의 굳세고 부드러움, 강하고 약함, 이익과 손해, 허와 실을 헤아린 활쏘기라고 할 수 있다.

  졸작이 부끄러워서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말도 안 맞고 거친 표현으로 두려워하며 이글을 쓴 것이다. 그러한 것을 방불하게 하는 괴로움을 미리 알지 못하였기에, 몇 마디의 말뿐인 이글을 쓴 것이다.

  만약 이러한 나의 부끄러운 작태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명철한 스승과 학자들께서 이 글을 읽고 익혀서 또한 매일 읽어, 사대에서 얼굴을 뵙고 같이 보며 같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며 서로 가르치고 서로 공부할 수 있다면, 비록 배우지는 못한다 해도 배우려고자 하는 그 과정과 행위 자체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역시 국가의 태평성태를 위한 무예를 권함에 있어, 우리나라의 활쏘기를 논하는 것보다 특별한 것은 없다. 

  임신년 오월 하순에 정미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가의대부였으며 첨절제사로서 복무했던 청교 장언식이 쓰다.

 

 

 

발문

 

  나는 갑신년에 17살이었을 때 활쏘기의 걸음걸이를 시작하여, 정해년 여름에 금군이 발탁되어 삼년 넘게 복무했는데, 화살의 철전을 주선공부하는 것을 했다. 그러나 철전을 주선공부 했음에도 오히려 유엽전으로 과녁을 쏘기를 수년간 연습하여, 화살이 획을 그리듯이 날아가 관중하니 보는 사람들의 절반이 나의 이런 보잘것없는 기술을 망령스럽게도 도에 이르렀다고 하며 칭찬했다.

  활을 사며 그 품질을 논할 것 같으면 천금을 가진 것처럼 요란스럽게 말하기를, ‘내 일찍이 다른 사람과 활쏘기를 논할 때 궁력이 타인에게 뒤지지 않았고, 정곡을 맞추는 내기에서도 그 무리들 중에서 아래됨이 없었다라고 했었다. 이와 같이 사풍과 사례를 행하여 방자하기 이를 데 없었고, 스스로 최고라고 자부했는데 이것이 쇠하게 되었던 단초였다.

  활솜씨가 손에 익어 활을 놓기만 하면 적중하니, 활병의 상처는 매일 깊어만 갔지만 활쏘기 시수는 오히려 늘어만 간 것이다. 강궁으로 쏘는 경지에 처음으로 접하면서도 이런 활쏘기를 계속 했는데, 한 냥의 화살을 쏘더라도 날아가는 한계를 알지 못할 정도였다. 이와 같이 하여 우려함이 없었기에 스스로 자만심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감히 알지 못 하였다.

  이러한 것에서 더욱 더 그 한계를 구하매, 앞은 낮고 뒤는 짧아져서 난거난집하고 사체 또한 변하였다. 내가 스스로 자만심에 빠졌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았지만,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므로 이와 같이 하여 오래되지 않아서 활병이 생기기 시작해서 깃간에서 백분출획하게 되었다. 줌손과 깍지손 주변에 상처가 생겨 붉은 피가 눈물 흘리듯이 떨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오두는 젖혀지고 턱과 뺨은 후집에서 멀어지고 , 오두와 턱과 볼을 안으로 당기며 만작을 하려고 해도 만작조차 되지 않았다. 깍지손을 맺어 쏘지 못하였고, 발시 후 깍지손의 잔신이 오히려 바로 잡지 못하게 되었다. 자책하며 말하노니 일찍이 천금을 주고 산 것 같았던 사론이 흙벽돌처럼 싸구려가 되었다.

  이와 같이 활병이 수년간 지속되니, 나는 변방의 절제사로 좌천되었다. 즉 청춘에 종군하여 관직을 얻었지만, 반드시 관직에는 수명이 있는 것이다. 20개월 만에 이러한 불행한 일을 당하니, 이런고로 오호통재이구나! 유성이 하늘을 가르고 쇠하고 쇠하기를 겹쳐지며 극에 이르렀구나! 세월은 흘러가매 밤과 낮이 쉬지 않고 가는구나! 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고, 그렇게 삼년의 서리를 겪었다.

  집안이 비록 가난했지만 추위에 굶주리지 않았고, 비록 늙었으나 머리는 하얗게 되지 않았으며, 성품이 사라져서 변하게 되지는 않았으니, 어떻게 이 말년을 보낼 것인가? 도를 품고 은거하여 전에 활을 쏘던 기량을 자랑하지 않고 안으로 숨기는데, 스스로 그 마음을 헤아려 돌아볼 뿐이다.

  그러므로 독한 약이 입에는 쓰나 병을 고치는 데는 이롭듯이, 말 또한 귀에 거슬리는 말이 행동에는 이롭다. 그것을 몰랐으니 부끄러움에 탄식만 나오는구나!

  일찍이 경인년에 활과 화살을 챙겨서 자리를 마련하여 사부님을 뵈었는데, 자신을 보러온 까닭을 물어 보셨다. 활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니 활을 쏘는 것을 보시고 나서, 사부께서 놀라서 탄식하시며 말씀하시길 올바르게 할 방도가 보이지 않으니 이것을 어찌 해결하면 좋겠느냐말씀 하셨다. 나로 하여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논하게 하시고 굽은 것을 피고 나무활로써 자세를 바로잡아 주시며, ’임금께서 복시를 열어 궁후의 시험 날짜가 보름 후이고, 목호의 시험 날짜는 한달 후이다라고 도닥이며 말씀하셨다. ’어느 시험을 치겠느냐는 질문에 답하기를 보름은 이미 정해졌고 한달 후에는 다시 기약할 수 있으니, 보름으로 하겠다고 청하였다. 사부께 잔을 올리며 절을 하며 명을 받았지만, 등을 돌려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으니 부족함을 여쭈지 못 하였다. 나의 활쏘기가 불선하게 된 연후에 안타깝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사부님의 안녕하신 얼굴을 뵙지 못하였다.

  이와 같았는데 그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시고, 또 다시 묻기를 그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하셨다. 처음의 그 마음과 두 번째 그 마음은 다음을 묻는 것이었으니, 첫 번째 말씀은 쓴 약이 병에는 어떠하고 두 번째 말씀은 목호가 귀에는 거슬려서 듣지 아니한 것이 어떠냐고 재차 물으신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나를 거울삼아 고향의 제현들은 나의 잘못을 경계하여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제 62살에 깨달음을 홀연히 얻어, 이 깨달음을 목호로 8개월간 시험하여 초보자를 면하였다. 그러하니 고목이 다시 살아나서 꽃을 피우고 과실을 두 배나 더 많이 열리는 것과 같이 되었으니, 노약한 병자가 회춘하게 된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지금은 65살이 되어 어찌 이와 같은 것을 얻었지만, 단지 소일함에 있어 이러한 법도가 쓸모가 없으니 정녕 이와 같이 되었구나! 만약 십년 전이라면 벽돌 같았던 나의 활쏘기가 반드시 황금이 되었을 것이고, 만약 삼십년 전이라면 황금 같았던 나의 활쏘기가 흙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어둠이 밝아오듯이, 과거의 활쏘기를 반성하고 그런 과거의 일을 뉘우치니 어찌 한탄스럽지 아니한가! 나의 뒤늦은 깨달음을 되돌아보고 이미 지난 나의 과오를 본받아서, 다른 사람의 활쏘기에 법도가 되기를 바란다.

  여러 군자들께서도 나처럼 망해버린 이후에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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