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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살지

노르망디의 성자가 된 101공수부대의 두 의무병들

작성자레빈블루|작성시간26.06.06|조회수13 목록 댓글 0

1944년 6월 6일 D-DAY, 101공수사단은 적의 대공 포화를 맞으며 프랑스 땅으로 낙하한다

이 때 작전에 참가한 병사들 중엔 501연대 2대대 소속 의무병인 로버트 라이트와 케네스 무어란 군인들이 있었다.

비행기 고장으로 잘못 된 곳에 낙하한 로버트 라이트가 2시간을 걸어 노르망디 근처의 작은 마을인 앙고빌 오 플랭 (Angoville-au-Plain)에 도착

이후 케네스 무어도 4명의 부상병과 함께 합류했다.

현재도 보존되고 있는 Église Saint-Côme et Saint-Damien 교회

마을엔 12세기에 지어진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의무대를 만들어 사람들을 치료하기로 한다.

교회 인근에선 전투가 진행 중이었고 두 의무병은 아예 수레를 끌고 다니며 주변의 부상자들을 실어와 치료하길 반복했다.

놀랍게도 두 의무병은 아군 뿐 아니라 부상당한 독일군도 수레에 실어왔고 미군과 독일군간의 어색함이 있었으나 금세 사라져 두 국가의 병사들은 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전투 중 벽에 몸을 숨기는 독일 공수부대원

전투가 벌어지고 마을의 주인은 미군, 독일군 양쪽으로 몇 번 바뀌었다고 하는데 교회에 들어온 이들 모두 두 의무병과 함께 치료받는 미군과 독일군을 본 후 무기를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고 한다.

교회가 일종의 중립 지대 역할을 한 것이었다.

앙고빌 오 플랭의 101 공수부대원들

당시의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교회 의자

두 의무병과 병사들은 합심해 부상자들을 옮기고 치료했고 교회에 들어온 미군과 독일군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이를 도왔다고 한다.

인근 종탑에 있던 독일군 저격수도 이 모습을 보고 내려와 도왔다고 한다.

중간에 미군 전차가 교회를 공격할 뻔 했으나 다행히 아군 신호를 식별해서 잘 넘어간 위기도 있었고

포탄이 교회 천장을 뚫은 흔적

박격포탄이 지붕을 뚫고 떨어졌으나 불발된 기적도 있었다.

그렇게 D-DAY 시점부터 3일간 두 의무병은 부족한 상황에서도 미군, 독일군, 민간인 80명 이상을 돌보고 치료했다.

이후 앙고빌 지역을 미군이 점령, 독일군은 철수하고 케네스 무어는 합류한 중대 동료들과 먼저 떠나고 로버트 라이트는 보충 된 인력과 함께 하루 더 부상병들을 도운 후 이동했으며 두 사람은 이후 무사히 종전까지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갔다.

라이트와 무어는 이 공로로 은성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이후 로버트 라이트는 2013년 89세의 나이로 타계

케네스 무어는 2014년 90세의 나이로 타계한다.

현지엔 로버트 라이트, 케네스 무어 두 의무병과 병사들을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FOR HUMANE AND LIFE SAVING CARE RENDERED TO 80 COMBATANTS AND A CHILD IN THIS CHURCH IN JUNE 1944
1944년 6월 당시 교회에서 전투원 80명과 어린이 한 명에게 베푼 인도적이고 생명을 구하는 치료(보호)를 기린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당시 의무대로 활용했던 교회는 현재도 남아있고 두 의무병과 101 공수부대원들을 기념하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만들어졌다.

덧붙여 로버트 라이트는 앙고빌의 교회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고 그의 유해 일부를 교회에 뿌렸으며 그의 이름을 적은 석판이 있다.

지금도 현지에선 2차 대전 관련 행사가 열리며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치료했던 두 사람의 인도주의적 행위와 헌신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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