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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진짜 싸늘했는데 결국 1000만" 모두의 예상을 깨버린 한국 영화

작성자레빈블루|작성시간26.06.06|조회수17 목록 댓글 0

"망할 것" 혹평 딛고 1000만 신화로…'왕의 남자'가 증명한 뚝심과 반전 드라마

한 편의 영화가 완성돼 스크린에 걸리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들어가지만 때로는 대중을 만나기도 전에 냉혹한 사망 선고를 받는 작품도 있다. 2005년 말 대한민국 극장가를 뒤흔들었던 영화 '왕의 남자'가 바로 그랬다. 개봉 직전까지만 해도 충무로 안팎에서는 "소재가 너무 파격적이고 비대중적이라 흥행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첫선을 보인 언론 시사회 당시의 싸늘했던 공기를 딛고 한국 영화 사상 세 번째로 '천만 관객 고지'에 오른 극적인 반전의 드라마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혹평 가득했던 시사회, 장례식장 같았던 현장 분위기

당시 분위기를 돌이켜보면 흥행 성공은커녕 제작비 회수조차 불투명해 보였다. 베일을 벗은 시사회 현장은 설렘보다는 무거운 침묵과 우려로 가득했다. 당시 동료 감독으로서 현장을 지켜봤던 장항준 감독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사회장의 공기가 정말 최악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왕과 광대, 그 사이에 흐르는 묘한 동성애적 기류는 당시의 보수적인 평단과 투자자들에게 커다란 진입 장벽이었다. 여기에 영화보다는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연출 스타일 역시 흥행성을 의심받는 요인이었다.

가장 피가 마른 것은 메가폰을 잡은 이준익 감독이었다. 투자사들로부터 "흥행 참패가 불 보듯 뻔하다"는 날 선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엄청난 압박감을 맞아야 했다. 장 감독은 이에 대해 "시사회 직후 이 감독의 탈모가 시작됐을 정도로 그가 받은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고 전하며 당시 제작진이 겪었던 심리적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대작 블록버스터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입소문의 기적

반전은 극장 문이 열림과 동시에 시작됐다. 화려한 자본을 앞세운 대작 블록버스터들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출발한 '왕의 남자'는 오직 관객들의 자발적인 입소문만으로 스크린을 장악해 나갔다. 겉으로 보이는 볼거리에 치중하는 상업 영화들과 달리, 권력의 비정함과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깊이 있게 조명한 서사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흥행 돌풍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단연 신예 이준기였다. 그가 맡은 '공길'이라는 캐릭터는 극장가를 넘어 사회 전반에 '예쁜 남자 증후군'을 신드롬처럼 유행시켰다. 300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그는, 여성을 압도하는 고운 자태와 빨려 들어갈 듯한 눈빛 연기로 단숨에 대한민국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우뚝 섰다. 관객들의 반복 관람 열풍이 일면서 영화는 개봉한 지 단 45일 만에 마의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작품의 성공이 더 값진 까닭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원래 주연으로 낙점됐던 톱배우가 군 입대 문제로 갑작스럽게 하차하는 등 캐스팅 난항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오히려 이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감우성, 정진영, 강성연 등 내공 있는 베테랑 배우들이 중심을 잡고, 여기에 이준기라는 신선한 원석이 가세하면서 폭발적인 연기 시너지를 냈다. 결국 '가장 옛 소재가 가장 대중적일 수 있다'는 명제를 증명해낸 셈이다.

시사회장에서 의문부호를 던졌던 이들은 결국 관객들의 위대한 선택 앞에 고개를 숙이며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파격적인 소재를 탄탄한 연출력으로 승화시킨 이 감독의 뚝심, 스크린 위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아본 광대들의 투혼은 약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영화계가 기억하는 가장 완벽한 반전 드라마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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