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이 넷플릭스 공개와 동시에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5일 스트리밍을 시작한 이 작품은 공개 직후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영화’ 2위에 오르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개봉 당시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 성과를 거둔 데 이어 OTT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세계의 주인>은 <우리들>, <우리집>으로 한국 독립영화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윤가은 감독이 6년 만에 선보인 세 번째 장편 영화다. 개봉 전부터 한국 영화 최초로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인 플랫폼 부문에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핑야오국제영화제, 바르샤바국제영화제, BFI 런던영화제, 도쿄필맥스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의 러브콜이 이어지며 국내보다 먼저 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는 열여덟 살 여고생 이주인(서수빈)이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을 홀로 거부한 뒤 의문의 쪽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반장이자 모범생이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주인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윤가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청소년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다만 이전 작품들이 어린이들의 우정과 가족 관계에 집중했다면, <세계의 주인>은 10대 소녀의 내면과 정체성, 그리고 사회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함께 다룬다. 성장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관객들에게는 훨씬 깊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특히 영화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을 정면으로 비튼다. 상처를 가진 사람은 항상 슬프고 무너져 있을 거란 사회적 시선에 의문을 제기하며, 상처와 일상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때문에 영화를 본 관객들은 단순한 성장담을 넘어선 동시대 청춘의 이야기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주연을 맡은 서수빈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상 첫 주연작이나 다름없는 작품이지만, 서수빈은 밝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부터 깊은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까지 폭넓은 감정 연기를 선보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평단에서는 “괴물 신인의 탄생”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장혜진 역시 친구 같은 엄마 태선 역을 맡아 이전과는 또 다른 결의 모성애를 보여주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극장 성적도 독립영화로서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세계의 주인>은 독립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최종 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상업영화 기준으로는 크지 않은 숫자지만 독립영화 시장에서는 이례적인 흥행 사례로 평가받았다. 관객 평점 역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꾸준한 입소문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영화계의 전폭적인 지지였다. 봉준호 감독은 GV에 참석해 작품을 응원했고, 박정민과 김태리, 김혜수, 이준혁, 최동훈 감독 등도 릴레이 응원 상영회에 참여하며 힘을 보탰다. 윤단비, 김초희, 이옥섭, 임선애 감독 등 동료 여성 감독들 역시 특별 GV를 진행하며 작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실제로 관객들 사이에서는 독특한 현상도 벌어졌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아무 정보 없이 보라”, “스포를 절대 찾아보지 말고 극장으로 가라”, “올해 본 영화 중 최고였다”는 후기를 남기며 이른바 ‘스포 자제 챌린지’가 이어진 것이다. 작품의 핵심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길 바라는 관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
시상식 성과도 화려했다. <세계의 주인>은 제29회 춘사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감독상과 신인여우상을 수상했고,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감독상과 여자 신인연기상을 품에 안았다. 특히 윤가은 감독은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감독상을 거머쥐어 작품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윤가은 감독은 “주인은 영웅도 아니고 무력한 피해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래서 영화는 누군가를 특별한 존재로 포장하기보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제목인 ‘세계의 주인’ 역시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한 응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극장가에서 ‘올해의 한국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던 <세계의 주인>. 국제영화제의 선택,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지지, 그리고 관객들의 입소문까지 모두 끌어낸 이 작품이 넷플릭스에서도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받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