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억'의 달콤한 유혹과 엉성한 각본, 호연마저 가린 여의도 잔혹사
2019년 개봉한 영화 '돈'은 박누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입봉작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장현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배우 류준열이 주연을 맡아 제작 단계에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비록 2017년에 촬영을 모두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공개되기까지 2년 가깝게 표류하는 부침을 겪었으나 베일을 벗은 영화는 여의도 증권가의 이면을 스크린에 담아내며 관객들과 만났다.
'백 억'을 향한 질주, 여의도에 던져진 위험한 주사위
영화는 오직 부자가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지인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한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 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전북 고창에서 복분자 농장을 경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원대한 꿈을 안고 입사했지만 마주한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다. 빽도 줄도 없는 서글픈 처지에 실적은 수수료 0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뿐이었고 선배와 동료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으며 동기 전우성에게 끊임없이 밀리는 등 자존심은 바닥까지 무너져 내린다.
급기야 첫 거래에서 매수와 매도를 착각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며 팀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조일현은 해고 직전의 위기로 몰리게 된다. 바로 그 순간 베일에 싸인 신화적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 분)가 그에게 접근한다. 정체를 감춘 채 구형 휴대전화를 건넨 번호표는 전화가 오면 지시대로 주문을 넣으라는 위험천만한 제안을 건넨다.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거래의 유혹 앞에 조일현은 의심하면서도 결국 작전에 뛰어들고 순식간에 거액의 수익을 손에 쥐게 된다.
달콤한 돈맛을 본 조일현은 고급 아파트와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져들며 승승장구하지만 그 화려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번호표의 뒤를 끈질기게 쫓던 금융감독원의 '사냥개' 수석검사역 한지철(조우진 분)이 등장해 조일현의 수상한 거래를 추적하며 사방에서 숨통을 조여 오기 시작한다. 일현은 밀려드는 불안감 속에서도 멈추지 못하고 번호표가 설계한 더 거대한 규모의 거래에 발을 들이게 되며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2년 표류가 남긴 불완전함… 엉성한 전개로 무너진 범죄 오락 영화
작품에는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을 비롯해 김민재, 정만식 등 연기력이 검증된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의 장점을 꼽으라면 단연 세 주연 배우의 안정적인 연기 호흡이다. 다만 뛰어난 열연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맡은 캐릭터가 과거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정형화된 모습을 연상시켜 기시감을 떨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배우 유지태의 경우 전작인 영화 '꾼'에서 보여줬던 연기 톤과 지나칠 정도로 흡사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웠다.
아울러 주식과 증권 범죄라는 다소 어려운 금융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방해가 될 만큼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은 대중성을 확보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장점은 역설적으로 장르물로서의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증권사 작전은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뻔한 세력의 물량 공세를 겉핥기 수준으로 다루는 데 그쳐 하이스트 무비가 지녀야 할 긴장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시나리오 작가가 증권가 관행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제대로 갖추고 집필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사건의 시작과 끝이 모두 엉성하게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