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답사를 하는 날이다. 오송역에서 1차로 만났고 이천에서 모두 모여서 차량 2대로 나누어서 답사를 시작한다. 오늘은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아서 이동하면서 바로 답사기를 쓸 수 있어서 좋다.
이천 소고리 마애여래좌상, 마애삼존불
오전에 햇빛이 잘 들 것 같아서 첫번째 답사지로 정했는데 햇빛이 기가 막히게 비춘다. 여러 차례 왔는데도 이번처럼 잘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상체에 비해서 하체는 아주 부실한 편이고 눈동자를 양각으로 새겼다. 두광을 동심원으로 표현한 것이 익산 연동리 석불, 남원 지당리 석불, 안성 석남사 마애불 등에 있다.
또 중요한 특징은 목 부근에 마치 숄을 두른 듯 하게 대의를 표현했다. 함양 덕전리 마애불, 보성 유신리 마애불도 유사한 모습이다.
드론으로 본 모습
마애삼존불의 본존불은 텔레토비같은 모양이다. 아주 독특한 모양이라 재밌게 살폈다. 본존의 대좌에 연화문이 있는지 의견이 있다.
이천 대포동 석조여래입상
도로확장을 해서 길 바로 옆에 있다. 크기가 제법 큰 편이다. 머리의 크기에 비해서 불신이 짧은 편이다. 조명으로 보면 중간계주가 확실하게 보인다. 삼도가 몸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봐서는 고려 중기의 특징을 보인다. 왼손에 팔찌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흔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매듭이 대의의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이상한 모습이다. 아마 군의 띠가 양발사이로 내려온다.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
작년에 발을 노출해 달라는 민원을 냈더니 공사를 하겠다는 답변을 듣고난 후 궁금증을 안고 처음 찾았다. 실망스럽게도 위에 있던 박석만 걷어 냈다. 우리나라에서 빈족좌가 새겨진 유일한 작례인데도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다.
화불이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조명사진이나 탁본을 살펴도 부처가 새겨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연줄기가 두 갈래로 갈려져 있다.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 점으로 봐서 미륵보살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현장의 의견이다.
무엇보다 태평흥국 6년(981)이라는 명문이 있어서 마애불 연구에 기준이 된다. 마애불 앞에 있는 사각형 석재는 보개이다.
이천 관고동 석조여래입상
오전에는 빛이 좋아서 모두가 잘 보인다. 다들 만족도가 높아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다. 한두군데를 빼더라도 좀 더 자세하게 살피는 것이 더 좋다.
전체적으로 아주 공들여서 새긴 부처님이다. 손이 야구글러브를 낀 듯 하게 아주 크게 새겼다. 삼도가 목으로 붙어 있고 승각기가 사선이라서 고려 중기이전으로 볼 수 있다.옷주름이 내려오는 모습으로 보아 통견의 형식이라야 되는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여래인데도 비천과 팔찌를 하고 있다. 뒷면에 있는 사각구멍은 두광을 꽂았을 걸로 추측된다.
이천 관고리 오층석탑
저수지 주변에서 옮겨온 석탑이다. 갑석이 아주 두터운 편이며 1층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4단이고 나머지는 3단이다. 1층의 층급받침이 사선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2층부터 탑신석이 없는데도 옥개석이 두터워서 보통의 탑처럼 보인다. 몸돌이 있다고 하면 세장했을 것 같다. 이 곳에서 제일 시선을 끄는 것은 돌로 만든 안내판이다. 향토문화재인데도 네 종류의 돌로 아주 고비용으로 만들었다.
이천 영월암
마애여래상
몇 년 전에 드론으로 마애불을 찍었는데 당시 날씨가 좋지 않아서 다시 허락을 받고 찍었다. 오른쪽 어깨에 옷주름이 있어서 변형우견편단의 착의법을 하고 계신다. 육계가 없어서 여래인지 승상인지 나한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는 마애불이다. 현장에서는 착의법과 수인으로 봤을 때 아미타불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다.
드론으로 본 모습.
광배 및 대좌
대좌와 광배는 나말여초에 만든 것이고 석불은 현대에 다시 만들었는데 어색하지 않게 잘 만들었다. 하대석 하단석에는 향로와 7기의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하단석에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는 경우는 우리나라를 통틀어서 10기 미만이다. 중대석에는 8기의 천인 또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고 조명으로 보면 광배에는 화불이 3기 있다.
삼층석탑
옥개석 3개만 옛부재이고 나머지는 새로 만들어서 복원했다. 이렇게라도 복원해 놓은 정성이 고맙다.
석조보살좌상
불두는 새로 만들었고 불신은 옛날에 만든 것인지 근대에 만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천시립박물관
후안리 오층석탑
3기의 석탑 중 가장 아름다운 석탑이다. 비례도 적당하니 좋다.
이천 삼층석탑
일본으로 반출된 오층석탑과 함께 있던 석탑이다. 이층과 삼층사이의 체감률로 볼 때 오층석탑일 가능성이 크다. 이천 오층석탑은 일본에서는 운이 좋아서 겨우 볼 수 있었다. 삼층옥개석 위와 아래탑신석이 붙어 있는 형태이다.
갈산동 오층석탑
아주 세장한 석탑이고 옥개석과 탑신석이 한 돌로 만들어져 있다.
이천 중리 삼층석탑
원래 답사 동선에 실수로 빠져 있었다. 지도에 마킹이 되어 있어서 놓치지 않았다. 오늘은 주차장에 여유가 있어서 무사히 주차하고 살폈다.
굽형 받침이 있고 하층기단 갑석인지 지대석인지는 파봐야 알 수 있는데 살짝 돌을 걷어 내고 만져보니 치석이 되어 있다. 그럼 이층기단 석탑이다. 단층기단이라는 안내판이 틀렸다.
이천 영축사 광배
오늘은 빛이 좋아서 배면불이 아주 잘 보인다. 절집 보살님이 매실차를 내어 주신다. 우리나라에 광배 뒷면에 불상이 새겨진 경우를 헤아려 보니 10여군데가 있다. 그 중에서 밀양 무봉리 석불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불상이 있는 곳이다.
이천 갈산리 석조여래입상
원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몇 년 전에 영원사로 이운했다. 두 개의 돌로 만든 석주형 석불이다. 이런 형태의 석불이 이 주변에 여러 기가 있다. 고려시대 석불이다. 배례석 대용으로 탑신석을 사용하고 석불을 옮기면서 기단면석이 발견되었다. 역광이라 사진이 조금 어둡게 나온다.
이천 자석리 석조여래입상
6시가 조금 넘어서 연화정사에 도착했다. 절집이라서 너무 늦게 들어가면 민폐가 되어서 늘 조심스러운 면이 있는데 절집에 아무도 없다. 두 개의 돌로 만들었고 원형 보개인데 조선의 벙거지형 보개와는 차이가 있고 군의 띠가 있는데 이 지역의 불상에 거의 띠가 있는 듯 하다. 오른손은 꽃을 쥐고 있는 듯 하다. 만약 그렇다면 미륵불일 가능성이 있다. 답사를 마치고 비구니 나오는데 스님이 문을 열고 나오신다. 인사를 드리고 나중에 해지고 나서 다시 찾아와도 될 지 여쭈니 괜찮다고 하신다. 조금 있다 조명신공으로 확인하면 된다.
이천 선읍리 석조여래입상
신흥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신흥사에도 석불이 있는데 짝퉁같다는 의견이 있어 여기만 보기로 했다.
불두는 새로 했고 불신과 다리쪽은 표면도 부드럽게 하여 공을 들인 듯 하다. 오른쪽 팔 아래 옷표현이 착의법에는 맞지 않다. 무엇보다 대의가 대좌까지 내려오는 모습이 가장 특이한 점이다.
이천 자석리 미륵불(조명신공)
저녁을 먹고 조명신공을 위해 다시 찾았다. 낮에 봤던 것이 꽃봉우리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왔는데 불을 비추니 바로 꽃인 것이 확인된다. 낮에 왼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옷주름이었고 앞쪽에 왼손이 보인다. 두 손을 찾았고 줄기를 쥐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그럼 이 불상은 미륵불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예정에 없던 조명신공인데 성과가 크다.
야간 답사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 오니 9시가 훨씬 넘었다. 짐을 정리하고 강의를 준비하고 나니 거의 10시가 다 되어 간다. 드디어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불화에 대한 강의를 시작한다. 언제 끝날 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종일 답사를 해서 피곤할텐데도 공부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 히메가 동생에게서 빔프로젝터를 빌리고 세종아빠님이 천으로 된 스크린을 준비해 왔다. 앞으로 사정이 되면 이런 특강을 자주 하면 좋을 듯 하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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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산천초목 작성시간 26.06.07 답사기 덕분에 대리 만족합니다
맨아래 사진
세종아빠님 노트북속의 보물이 궁금해집니다
기회가 되면 방대한 세종아빠님 자료를 보면서 공부하고싶어집니다 -
답댓글 작성자노마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7 어제 밤 12시에 특강이 끝났습니다. 열혈 답사객들만의 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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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헌 작성시간 26.06.08 자석리석조여래입상의 모습에서
낮시간에 보았을때 보이지않던 연꽃을
밤시간 조명의힘을빌어 다시보니
초보의 눈에도
확연히 보이는 ᆢᆢㆍ
그래서 조명신공 이라고 했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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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노마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8 함께 경험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