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사라집니다.
공동체 의식에서 생겨난 '우리'라는 말이,
여러 형제의 부모이기에
'나'의 부모가 아니고
'우리' 부모가 되는 것이고요.
여러 교인들의 교회이기에
'나'의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입니다.
굳이 외국어는 그렇지 않다고
우리의 '우리'를 비하할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너무 사랑하는 우리는
그 '우리' 속에 숨어서
'못된 우리'가 함께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함께 하는 '우리'가
좋은 것에 머물게 하기 보다
이익이 되는 것쪽으로 함께 가는 것을
가르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익이 뭐가 나쁘냐구요?
'나의 이익, 우리의 이익은
'너의 이익, 그들의 이익'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늘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경우에 따라 다르기도 합니다만.
평생의 과제는
너와 같아지지 않기
그래서 나의 고유성을 찾기입니다.
'나'가 내 삶을 살고
내 말을 하고
'나'가 '내가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 앞에서
세상의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을 깊이 숙고합니다.
그렇다면 '나'가 '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내가 되어 너를 사랑한다'입니다.
철저한 개인주의자라고 비판하는 무식깽이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나가 될때만 너를 사랑할 수 있다고요.
자랑질 하나 :
다음주에 강연이 있어서 원고를 보냈더니
전혀 모르는 학자가 제 강연 논찬을 한답니다.
혹독하게 또 비판받겠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있는데
논찬을 극찬을 해서 논찬 원고를 미리 보내주었습니다.
한두 마디 소개하면
"가장 독창적인 아름다운 문체로
가장 독창적인 신학과 새로운 형식의 문화비평적 에세이....
이러한 글쓰기는....교회안에만 소통되는 신학이 아니라
인문계와 방송계와 법조계, 정치계에서 소통될 수 있는......"
ㅎㅎㅎ
다 늙어서
또 이렇게 극찬을 듣다니 하고 생각하다
자신의 고유성을 생각하며
'나'는 '우리'가 아니라
'나'로 살아야 한다는 평생의 숙제가 생각나서 한마디 해 본 것입니다.
자랑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랑하는 이유는
행여나 착한 제자들이
우리 선생은 왜 이리 못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힘내라고
'누구의 제자다' 라는 것이
조금은 위로가 되길 바래서 하는 소리입니다.
그래도 우습다구요?
자랑질 지울까요?
'나'를 '나'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만드신 분의 뜻이 '나'에게서 드러나는가?
아니면 괜히 남 따라 하다
아까운 시간 다 버리는가?
치열하게 또 고민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