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의 나라, 아라가야 - 화염형투창토기의 의미
지금 함안박물관 입구에 커다란 구조물이 웅장하게 서 있다. 아라가야의 대표적 토기형식인 화염문투창토기이다. 가야시기 고배와 같은 토기의 다리 부분에 대부분 사각형, 삼각형 등의 창이 뚫려 있는데 아라가야가 있었던 함안지역에서 출토되는 토기의 투창형태는 불꽃무늬와 비슷하다 하여 화염형투창토기 혹은 불꽃무늬굽다리접시로 불린다.
토기의 나라, 아라가야
가야토기의 아름다움은 그 어느 나라 토기에 비하여서도 부족하지 않다. 세련된 곡선미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목항아리는 목과 몸통의 이음새가 불분명할 정도로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으며, 목은 밖으로 벌어지는 곡선으로 처리되어 긴박감을 준다. 곡선을 이루며 잘빠진 굽다리접시는 긴 네모나 날카로운 삼각형의 창이 뚫려있다. 불꽃무늬 창도 있다. 이러한 투창은 신라와 같이 엇갈리지 않고 상하 일렬로 연결되는 단순한 배치를 고집한다. 약한 듯 보이는 굽다리에 세로로 투창을 연결하여 힘을 가지게 만들었다.
아라가야 또한 토기하면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발굴되는 토기 분량도 그렇지만 토기의 모습이 다양하다. 너무 다양하다. 두귀달린목항아리는 둥근 밑 항아리의 어깨부분에 고리모양의 귀가 두개 달려있는 것으로 도질토기(회청색경질토기)로 만들어지는 최초의 종류이다. 김해지역에는 무늬가 없는 것이 많지만 함안지역에는 돗자리 무늬가 있는 것이 많다. 둥그런 그릇모양과 약간씩 남아 있는 두드림 흔적, 가지런한 세로줄 선들, 아라가야토기의 정제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굽다리접시(고배)는 제기(祭器)로 많이 이용되었다. 아라가야지역에는 원통형굽다리접시와 불꽃무늬굽다리접시가 대표적이다. 원통형굽다리접시의 경우 얕은 접시에 좁은 원통모양의 굽다리가 달려있다.
잔의 모습도 다양하다. 함안 황사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굽다리잔’은 위가 넓은 원통형의 잔을 굽다리에 붙이고 굽다리에서 잔까지 이어지는 큰 손잡이가 달려있다. 넓게 벌어지는 굽다리에는 크게 돌출한 점토판을 붙여 장식을 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토기가 있다. 함안도항리에서 조사된 수레바퀴모양토기, 등잔모양토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함안 윤외리유적에서는 토기뚜껑에 여러 가지 장식적인 문양이 새겨진 토기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토기들이 아라가야에서 많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토기요지의 발견에서도 알 수 있다. 최근의 지표조사에서 이미 알려진 법수면의 우거리토기요지와 묘사리 장명토기요지 외에 6개소에 이르는 삼국시대 토기요지가 새롭게 조사되었다. 행정구역으로 본다면 주물리 1개소, 윤외리 1개소, 우거리 3개소, 윤내리 1개소이다. 윤내리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이미 조사된 우거리, 묘사리 토기요지와 같은 시기인 4세기대 토기요지이다. 행정구역으로는 나뉘어지지만 이들 요지들은 대부분 우거리 일대에 인접하고 있고, 법수면 지역이므로 대규모 집단적 생산체제가 갖추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발견된 요지들이 대부분 4세기대의 토기요지인 것으로 볼 때 화염형투창토기와 같은 5세기대 토기들은 다른 곳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화염형투창토기가 많이 조사되고 있는 만큼 이들 토기가 함안지역에서 제작되었을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앞으로 5세기대 이후의 토기요지가 조사된다면 정말 아라가야는 토기의 나라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화염문투창토기의 분포
화염형 투창이 있는 토기종류는 고배, 기대, 대부호 등이며 그 중 고배가 가장 많다. 모두 그릇 다리 부분의 중간 위치에 둥근 형태의 머리부와 긴 이등변삼각형 형태의 꼬리부가 서로 결합된 모양을 이루며 2개~4개, 8개의 투창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토기는 4세기경에 처음 출현하여 6세기까지 사용되었고 5세기경 함안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양이 확인되고 있다.
1917년 말이산 34호분(도항리 4호분)을 발굴한 이마니시(今西龍)는 화염형투창토기 6점에 대해 “싹이 튼 마늘모양의 ㅇ 형을 이룬 창을 가진 토기로서 크기는 중형으로 유물 중 가장 전방에 가까운 좌우에 3개씩 열을 지어 남아있고, 다른 장소에는 이 종류의 것은 없고 창의 형태를 아마 세장한 방형의 창과 작은 원형의 창 두개를 약식으로 표시한 것이다”라고 하여 화염문을 싹이 튼 마늘모양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지금 까지 약 150점의 화염형투창토기가 확인되었고 함안지역에서는 31기의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특히 아라가야 지배층의 중심묘역인 도항리․말산리고분군 출토품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화염형투창토기가 출토되고 있는 유적은 모두 36개소인데, 이중 낙동강 하류를 중심으로 한 함안지역이 20개소, 의령 예둔리고분군 1개소, 마산현동유적 8개소, 창원 도계동고분군 1개소, 부산 복천동고분군 2개소, 김해 예안리고분군 1개소 등이다. 낙동강 상류의 경우 경북 금릉군 개령면 소재 벽화고분과 경주 월성로고분군 등에서도 조사되었다. 일본에서도 화염형투창토기가 출토되었다. 일본 긴기(近畿)지방을 중심으로 텐리시 후루(天理市 布留) 유적에서 소형고배 2점, 큐우호우지(久寶寺) 유적에서 발형기대 1점, 쓰즈노미야( 鈴の宮)유적에서 발형기대 1점, 미에켄쯔시로쿠다이A(三重縣 津市 六大A)유적에서 2점의 통형기대가 확인되어 당시 아라가야지역과의 교류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중 의령과 마산 현동은 아라가야 권역이라 생각되므로 아라가야권역에서 출토된 것이 대부분이다. 출토량의 90%이상이 함안 또는 그 주변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의령, 마산 등의 아라가야권역을 제외한 지역에서 보이는 투창토기는 대외교류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염문의 의미
화염문투창의 출현은 고구려 불교의 영향설, 기원후 4세기대 고식도질토기의 대각의 투공 중 긴 이등변삼각형+원형이 발전하였다는 장식문양의 발전설, 죽은 사람을 내세로 인도하거나 악령과 재앙을 물리치는 주술적인 의미를 지닌 제사·의례용기인 의기(儀器)설, 조명용토기설 등이 있다.
불교영향설은 고구려 불교의 연화문에서 유래한 것으로 화염문투창토기는 불교의식에 사용된 특수한 용도를 가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화염문투창토기와 함께 출토되고 있는 유물에 근거를 두기도 한다. 즉 함안 말이산 34호분에서 출토된 수레바퀴모양토기, 함안 도항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연화문(蓮花紋) 장식금동판, 도항리 암각화고분에서 출토된 금동대금구편, 부산 동래 복천동 53호분 출토 등잔모양토기 등이 화염문투창토기와 함께 출토되었다.
수레바퀴모양토기는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무덤 속에 시신과 함께 묻었던 명기(明器)의 일종이거나 제사의례 때에 술과 같은 것을 돌려마시는 그릇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화문장식금동판 조각은 두께 3㎜ 내외 정도의 얇은 청동판에 일곱 잎의 연화문을 정교하게 새기고 금으로 도금처리한 것으로 연화문양의 1/3정도만 파편으로 남아있다. 여기서 연꽃문양은 불교미술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문양이므로 아라가야지역에 불교가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항리 암각화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제대금구의 경우 금동제의 얇은 판위에 앞면에는 일정한 간격의 점으로 이루어진 화염문이 새겨져 있다. 파손이 심하여 전체적인 형태의 복원은 어렵지만 머리에 쓰는 관의 부속구로 추정된다. 등잔모양토기는 고배의 다리위에 크고 작은 둥근 잔모양의 토기가 원통형의 관을 통해 서로 통하도록 연결되어있다. 등잔이라기 보다는 수레바퀴모양토기와 같이 분향의식에 사용된 향로로 파악되기도 한다.
화염문투창토기와 함께 출토되고 있는 이들 부장품들은 함안지역에 전래되기 시작한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화염문은 연화문에 유래한 것이며, 등잔․수레바퀴모양토기는 불교용의 향로였으며, 연화문장식의 금동판은 가야지역에 불교가 수용되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근거로 보고 있다. 즉 고구려의 불교가 신라를 경유하여 아라가야지역에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왜의 신라침략에 대하여 신라를 지원하기 위하여 고구려가 군대를 파견한 것이 400년이었고 지금의 김해지역까지 고구려군대가 이르렀다. 즉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정 때문에 김해의 가락국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가야사회 내부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가야사회에는 고구려의 뛰어난 전쟁도구와 함께 불교가 전파되었고, 5세기 중엽이후에는 고분내부까지 상징적인 형태로서 불교가 표현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화염문을 불꽃으로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입장은 화염문을 연꽃봉오리로 보아서 아라가야의 불교유입과 관련시키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즉 아라가야에 불교가 들어왔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없으므로 연화문이라 간주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투창을 불꽃으로 보고 있는데, 백제 무녕왕릉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있다. 무령왕릉내부에는 등잔을 밝히는 등감이 있는데 거기에는 타다 남은 심지가 그대로 남아있어 불을 밝혔던 시설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 등감에 국기의 깃봉과 비슷한 보주형의 윤곽에 따라 화염문을 채색하고 있고, 그 형태는 함안의 화염문투창과 닮아 있다. 등감 형식이 보주형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불을 상징하여 표현한 형태일 수 있다. 뿐만아니라 무령왕의 관장식, 서산마애삼존불상의 광배모양, 봉황문전 등 백제의 유적, 유물에서 불꽃을 묘사한 예가 많다. 백제가 오랫동안 아라가야와 밀접한 관계였음을 감안할 때 불과 화염문의 표현형식도 백제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혹은 아라가야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형태였을 수도 있다.
원래 불은 음식물을 조리하고 빛을 비추어 밝게 하고 따뜻하게 하며 또 짐승이나 벌레, 또는 인간 등의 외적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불은 더러움을 정화하고 이승과 저승을 구별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와함께 함안에서 출토된 등잔형토기의 의미도 이러한 불에 대한 인식에 비추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불꽃모양을 내세워 토기에 새겼던 아라가야의 성격이 어느 정도 주술적이면서 의례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이외에 함안 말이산 34호분에서 발견되고 있는 벽감(壁龕)시설과 불꽃모양 투창고배들에 주목하여 공주 무녕왕릉에서 확인된 벽감과 등잔처럼 주로 고분내의 조명용토기로서 불꽃모양 투창고배가 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화염문의 의미가 어떠하든지 간에 화염문이 새겨진 토기는 아라가야의 권역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다. 유물의 분포를 가지고 정치적인 영역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입장도 있지만, 동일한 문양을 가진 토기가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출토되고 있다면, 정치적 성격으로 이해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화염문투창토기가 발견되고 있는 함안지역과 가까운 지역 즉 마산 현동, 칠원․의령․진주․창원의 일부지역은 아라가야의 권역에 포함시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