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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시민대학

2026.9.16.(화) 남산시민대학 '낭만여행'의 여덟 번째 여정 "몽촌토성"

작성자천원궁 천승대교회 카페지기|작성시간26.06.19|조회수47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6일 화요일, 남산시민대학 '낭만여행'의 여덟 번째 여정은 총 10명의 회원이 참여한 가운데 최병일 교수님의 깊이 있는 해설과 함께 몽촌토성으로 향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성백제박물관 입구에 도착한 우리들은 먼저 단체기념 사진을 찍으며 오늘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풍납토성 성벽을 거대하게 잘라놓은 실제 단면 모형이 우리의 시선을 압도했습니다.

이어진 최병일 교수님의 상세한 해설에 따르면, 오랫동안 역사책 속에만 존재하며 베일에 싸여 있던 백제의 첫 수도 '하남위례성'이 바로 이 풍납토성이었다는 사실이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졌다고 합니다. 특히 몽촌토성이 전쟁 시 대피하여 싸우던 방어용 성이었다면, 풍납토성은 왕이 살고 정무를 보던 진짜 궁궐이 있던 주성이었다는 설명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풍납토성은 그저 서울 한편에 있는 평범한 야산이나 흙더미 취급을 받던 곳이었습니다. 심지어 성벽 안쪽에는 아파트와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1997년, 아파트 공사 현장을 몰래 조사하던 한 고고학자에 의해 최고급 토기와 기와, 중국산 도자기 등 엄청난 양의 백제 왕실 유물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극적인 사건으로 “백제 초기 수도는 초라했을 것”이라는 학계의 오랜 편견이 완전히 깨졌고, 이곳이 바로 백제 왕이 살던 거대한 왕성임이 세상에 증명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풍납토성이 단순히 흙을 쌓아 올린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벽 단면을 잘라보면 마치 시루떡처럼 흙의 색깔이 저마다 다른데, 이는 진흙과 모래, 나뭇잎 등을 번갈아 깔고 엄청난 압력으로 떡을 치듯 단단하게 다져 올린 ‘판축 기법’ 덕분입니다. 여기에 비바람에 씻겨가지 않도록 잔돌까지 박아 넣었으니, 그 정교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원래 둘레가 약 3.5km(현재는 약 2.1km 보존)에 달했던 이 성은 성벽 밑변 너비만 43m, 높이는 아파트 5층 높이인 13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역사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이 성을 쌓기 위해 무려 연인원 138만 명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약 2,000년 전 백제의 국력이 이미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평지성인 풍납토성이 왕궁이 있는 평상시의 생활 중심지였다면, 산성인 몽촌토성은 위급할 때 피난 가서 싸우던 방어 요새였습니다. 고대 백제는 이렇듯 평지성과 산성을 세트로 묶어 수도를 방어하는 매우 영리하고도 치밀한 전략을 구사했던 것입니다.

박물관을 나와 자연스럽게 이어진 소마미술관과 올림픽조각공원을 관람하는 시간 또한 뜻깊었습니다. 이 두 기관은 야산 부지에 건립되어 산책로와 잔디밭으로 아름답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자연을 벗 삼아 함께 둘러보기에 더없이 좋았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만난 이승택 작가의 작품들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조각을 고정된 형식이 아닌 과정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실천적 예술로 정의하며 '비조각'이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구축한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였습니다. 돌이나 플라스틱, 기와, 노끈 등 일상의 사물을 묶고 해체하는 작업부터 바람, 불, 연기 같은 비물질적인 자연 요소까지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그의 예술 세계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최병일 교수님의 해설을 들으며 한 걸음씩 내딛다 보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백제의 첫 수도였다는 숨겨진 역사가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흔히 많은 분이 백제라고 하면 부여나 공주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백제 700년 역사 중 무려 500년 동안의 수도는 바로 이곳 서울(한성)이었습니다.

당시 한성의 방어기지였던 이곳은 평상시에는 근처 평지성인 풍납토성에서 생활하다가, 전쟁이 나거나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지형이 높고 튼튼한 몽촌토성으로 와서 적과 싸우던 구조였습니다. 특히 원래 있던 낮은 언덕(자연 구릉)을 깎고 다듬어 성벽을 만들고, 성벽 밖으로는 물길을 내어 적이 쉽게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해자'를 설치한 천연 요새였습니다. 놀랍게도 지금 올림픽공원의 아름다운 호수들이 바로 그 옛날의 해자가 변한 모습이었습니다.

몽촌토성 안쪽 잔디밭 한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유명한 '나홀로나무(왕따나무)'에도 역사적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원래 이곳에 백제의 유물들이 잔뜩 묻혀있어 함부로 개발하지 못하고 잔디밭으로 그대로 두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멋진 포토존이 된 것이었습니다. 산책로를 계속 걷다 보니 성벽 위에 나무 기둥들을 촘촘히 박아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는 백제인들이 흙 성벽 위에 나무 울타리를 이중으로 세워 방어력을 높였던 모습을 재현해 둔 목책이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날씨도 더워져, 우리들은 토성 내 한적한 그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준비해 온 과일과 떡, 커피 등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 입에선 감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백제의 땅이 숨 쉬고 있었다는 것을 미처 상상하지 못했기에, 역사를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깊은 울림이 일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왜 그동안 찬란했던 한성백제에 대해 이토록 무관심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습니다. 어쩌면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갔다는 이유로 은연중에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과 아쉬움이 교차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전 백제의 왕과 군사들이 한강을 내려다보며 성을 지키던 그 길을 오늘 우리가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산책은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특히 몽촌토성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백제인들이 이 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고 그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가 어떠했는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서기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3만 대군이 밀고 내려왔던 '한성 함락' 사건입니다.

당시 고구려의 장수왕은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평지성이었던 풍납토성이 먼저 포위당해 불타버리자, 백제의 개로왕과 군사들은 최후의 보루인 이곳 몽촌토성으로 철수하여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고구려 군대는 성을 겹겹이 에워싼 채 밤낮으로 화살을 퍼부었고 성문 앞에는 불을 질렀습니다. 사방에서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식량과 물마저 떨어져 가는,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끔찍한 공포 속에서도 백제의 군사와 백성들은 결코 쉽게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성을 지켰습니다. 고구려의 막강한 철갑기병에 맞선 그들의 독한 의지는 몽촌토성의 구조와 유물에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백제인들은 가파른 흙 성벽 위에 사람 키만 한 나무 기둥들을 촘촘히 박아 목책을 세웠습니다. 날아드는 화살과 성벽을 기어오르는 고구려군을 막기 위해, 백제 군사들은 이 나무 울타리를 붙잡고 피를 흘리며 끝까지 버텨내었던 것입니다.

훗날 몽촌토성을 발굴했을 때, 성벽 주변에서 엄청난 수의 화살촉과 부러진 창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는 성벽이 무너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저항했던 치열한 전투의 생생한 흔적이었습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성이 포위되자 개로왕은 성문을 굳게 닫고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정도로 고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 군사들은 왕을 지키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려 7일 밤낮을 피로써 버텨냈습니다. 결국 몽촌토성은 밀려드는 고구려의 대군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함락되었고, 개로왕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며 전쟁 자체는 백제의 참패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백제인들의 위대한 의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개로왕의 아들인 문주왕이 남은 백성들을 이끌고 지금의 공주(웅진)로 내려가 다시 백제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입니다. 만약 몽촌토성에서 목숨을 바쳐 고구려군의 발을 며칠 동안 묶어두었던 군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더라면, 백제의 핏줄은 그때 완전히 끊겼을지도 모릅니다. 그 처절한 버팀이 있었기에 백제는 훗날 화려한 문화를 다시 꽃피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부드러운 잔디 언덕처럼 보여서 마냥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하지만, 사실 그 흙 속에는 “나라가 망하는 순간에도 끝까지 내 땅을 지키겠다.”며 울부짖던 2,000년 전 백제인들의 뜨거운 숨결과 눈물이 묻혀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봅니다.

오늘 성벽 위 산책로를 걸으며 발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옛날 백제 군사들은 바로 이 자리에 서서 몰려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심장이 얼마나 세차게 뛰었을까? 하고 조용히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순간,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훨씬 묵직하고 의미 있는 역사적 발걸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참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가슴 벅찬 '낭만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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