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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류광수씨의 다락방 전도운동

작성자연석|작성시간10.02.24|조회수674 목록 댓글 0

류광수씨의 다락방 전도운동


제목: 류광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한 연구보고서
(본 자료는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서 제목에 관한 연구보고서로서 총회의 자료요청에 관하여 교수회에서 올린 자료의 원안입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총회장 귀하
일시: 1998년 3월 30일
제출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서론


류광수씨(이하 류씨라 칭함)는 195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고신대 신학과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여 합동측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87년에 부산 영도의 동삼제일교회에 부임하여 오늘날까지 그 교회를 시무하고 있다. 그가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다락방전도훈련원'을 설립하여 전도를 강조하면서 전국에 '지회'를 설립하고, 여러 집회와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 자신의 '전도방법'을 소개하고 홍보하면서부터이다.


처음에는 건전한 기성 교회의 목사들과 성도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가 주장하는 효과적인 전도방법을 배우거나 응용하여 도입하려고 하였다. 전도에 대한 강조와 새로운 전도방법에 대한 소개는 자연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류씨가 주장하는 가르침과 실제 행하는 방법에 적지 않은 문제가 드러나면서 교회에 혼란과 분쟁이 생기고, 심지어는 분열의 아픔까지 맛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본 교단에서는 1995년 광주은광교회에서 개최된 제 45회 총회에서 '류광수 씨와 다락방 전도학교'에 대한 '유사종교연구위원회'의 보고와 제언을 받고 "지금까지 관련된 교단 내의 인사에 대하여는 불문에 부치되 다락방과 계속 관련하는 인사에 대하여는 적절한 권징을 하도록 가결"하였다.

1996년 9월의 합동측 총회는 류씨의 다락방 운동을 이단집단으로 규정하였으며, 이어서 개혁측, 통합측,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교단 등에서도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계하거나 교단차원에서의 대책을 세우게 되었다.


본 교단에서는 지난 97년 제 47회 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한 결과 류씨 의 다락방 운동에 대해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 맡겨 연구 보고토록 하였다. 이에 본 교수회는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 연구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류씨와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해서 현재까지 여러 공식적, 비공식적인 비판들이 나왔고, 이에 대해 류씨와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측은 반박성명서와 해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래서 본 연구서는 여태까지 진행된 비평과 반박을 독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양측의 주장을 비교하여 <부록>에 소개하였다.


우리는 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기존의 비평에만 의존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부정적인 선입관과 편견에 치우치기 쉬우며, 다수의 견해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공신력을 얻으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아무리 이단성이 있는 견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판단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자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씨의 가르침에는 비판의 소지가 될 수 있는 표현상의 오류와 조화와 균형을 상실한 극단적 성경 해석과 표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류씨를 옹호하는 이들은 설교자의 말이나 실수를 가지고 이단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적 행위와 같은 것이며, "대한민국 어느 목사이든지 사람을 잡으려고 이렇게 단어 문맥 하나하나 따지면 이단 안 될 목사가 누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류씨는 또한 자신이 정통 교회에서 성장하였고 정통 신학의 노선을 배우고 가르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자신의 표현상의 오류로 비판을 받을 만한 소지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면 얼마든지 고쳐서 전도만 열심히 하겠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에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며, 류씨의 입장 표명에는 진실성이 결여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류씨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문제가 공적으로 제기될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시정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다. 그는 구체적으로 비판받고 지적받은 부분에 대해 솔직하고 확실한 시인을 하기보다는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으며 혹 그런 부분이 저도 모르게 있었다고 하면 고치겠다."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곤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류씨가 진정한 개혁이나 수정의지는 없이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표면적으로는 수정의사를 표명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자신의 주장들을 계속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고 본다.


나아가서 우리는 이단인지 아닌지 분별하기 힘든 불건전한 운동이 오히려 교회에 더 치명적인 피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중시한다. 류씨는 정통신학을 배운 사람으로서 정통신학으로 분명하게 정죄될 수 있는 이단의 입장을 공공연히 표방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정통 신학을 알기에 정통 신학이 이단을 규정하는 교리적인 망을 교묘하게 피해 가며, 아주 지능적이고 교묘하게 사이비적인 가르침을 퍼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와 다락방전도운동은 큰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태까지 진행된 기존의 비판들을 참고하면서, 우리는 문제를 새로이 파악하고 비판하려고 한다.


 


1.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 주장의 문제점


류씨는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복음전파운동이 바로 다락방의 시작이며, 루터와 칼빈의 말씀운동이 또한 다락방운동"이라 하였다.


류씨의 이런 주장은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의 합법성을 탄탄한 기초 위에 세우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바로 이 점에서부터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는 문제가 발단한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의 복음전파운동과 칼빈, 루터의 개혁운동은 전통적인 개신교가 주장하는 정통성의 성경적 근거요 역사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류씨가 정통 교회와 똑같은 성경적 근거와 역사적 맥락에서 자신의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전도를 소홀히 하는 기존 교회와 참된 복음전도에 힘쓰는 다락방전도운동이라는 두 세력을 대립시킨다. 여기에 이미 분열의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정통 교회와 똑같은 근거 위에서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을 찾으려는 류씨의 오만한 구상은 그 운동이 전개되면서 점점 심각한 양상으로 표면화되었다. 그는 다락방전도운동을 전개하면서 기성 교회를 전도를 잘 안 하는 교회요 참된 복음전파의 사명을 저버린 교회로 평가절하하며, 다락방전도운동이야말로 참된 복음운동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양자간에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였다. 이처럼 다락방전도운동이 정통 교회의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양자가 서로 대립하며 충돌하는 현상들이 여러 방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류씨는 기존 교회와 대립되는 교회나 교단을 결코 만들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이 진행되면서 점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교단, 기성 교회와 구별되는 소위 '참된 복음전도운동'을 한다고 하는 또 하나의 교회를 형성해 가더니, 결국 1997년 9월 10일에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전도총회'라는 교단을 만들고 말았다. 그는 기성 교회의 조직이나 프로그램을 거부하면서 자기 나름의 새로운 조직과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도핵심요원을 만들어내는 조직, 새신자를 훈련하는 프로그램, 전도학교, 전도신학교를 비롯하여 다락방전도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조직에 이르기까지 기성 교단이 가지고 있는 조직과 버금가는 대조직을 정비하였다. 이 모든 것은 교회를 돕는 측면 운동을 하겠다던 자신의 거듭된 공언과는 다른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은 기존 교회와 대립되는 새로운 교회, 전도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형태의 조직과 프로그램을 갖춘 또 하나의 교회를 형성함으로써 한국 교회 전체에 큰 혼란과 문제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런 문제의 불씨가 이미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에 대한 잘못된 주장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2. 류씨의 '전도운동'의 문제점


류씨는 젊어서부터 오직 '오직 전도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일, 결혼, 회갑, 여행 등, 심지어 초상집에도 가지 않고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에만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 왔고 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부산 영도에 '다락방전도훈련원'을 설립하고 전국 곳곳에 '지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소위 세계복음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물론 이처럼 전도를 위해 헌신하고 전도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 바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막 16:15)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도 역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었다(마 28:19). 따라서 류씨가 '전도'를 강조하고 이를 위해 애쓰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전도 운동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1) 류씨는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류씨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너무 협소하다. 그는 종종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또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것만 알면 다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전도는 쉬운 것이다."라고 하며 "전도는 되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저는 설교 준비를 안 합니다. 할 것도 없고 또 해지지도 않고 항상 누구 얘기만 하느냐? 예수님 얘기, 전도만 얘기합니다. 전도 외에 다른 것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또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요체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사도들도 그렇게 전하였고, 우리도 또한 그렇게 전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전해야 하는 복음의 내용을 항상 그런 것으로만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8-19)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분부는 그저 예수님을 영접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는가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이 다 포함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 곧 복음서에 있는 모든 말씀이 다 우리가 전해 주고 가르쳐야 할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류씨는 '전도의 내용'을 너무나 협의로 이해해서 불신자에게 처음 예수를 영접하게 하는 것이 전도의 거의 전부인 양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기성 교회는 전도를 하지 않는다고 비방하면서 자기들만 전도하는 참 교회인 양 주장한다. 물론 류씨 자신도 전도를 좁은 의미로만 보면 안 되고 넓은 의미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넓은 의미의 전도란 '복음을 전파할 뿐 아니라 새신자를 양육하여 일꾼으로 성장시키고 다시 그들을 삶의 현장으로 보내어 그 곳에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의 '일꾼 양육'을 위한 교재의 내용을 보면, 실제로는 예수님을 처음 영접하게 하는 '일차적인 전도'를 위한 훈련 및 사단 결박, 기도의 능력, 병 치료 등에 거의 치우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류씨가 전하는 복음은 매우 치우치고 편협한 것이 되고 말았으며, 그리스도인의 성화와 생활에 대한 강조가 매우 약화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류씨는 성경에 나타난 포괄적이고 광의적인 복음을 축소하고 왜곡하여, 지극히 협소하고 치우친 '축소복음주의' 또는 '전도획일주의'로 빠지고 말았다. 그 결과 성도의 올바른 윤리와 이 세상에서의 건전한 삶이 등한시되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소홀히 함으로써 실제로는 그들이 주장하던 전도도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경우 그 동안 기성 교회에 불만을 느끼고 잘 적응하지 못하던 일부 교역자와 성도들을 빼앗아 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여기에 류씨 운동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류씨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류씨는 다락방전도운동의 성경적 근거를 사도행전 1장 13-14절에서 찾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락방 전도는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중심으로 마가 요한의 다락방(the Mark's Room)에서 시작하신 순수 복음 운동이었고 기도모임이었습니다(행 1:13-14).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여한 운동이었으며, 유대교의 율법과 바리새인들의 사상과 회당을 중심으로 한 모든 교육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근거로 제시하는 사도행전 1장 13-14절은 류씨가 주장하듯이 '다락방 전도'를 위한 구절이 아니라, 그도 부분적으로 인정하듯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분부하신바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기도회' 모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때 120명쯤 되는 성도들이 모여 기도했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서 오늘날 우리가 꼭 그대로 모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기도회 모임'은 예수님의 승천 후에 오순절 성령 강림을 기다리는 역사적 특수 상황 가운데 있었으며, 그들만의 독특성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류씨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 교회의 복음전파운동이 곧 참된 복음전도운동이요, 그것이 곧 다락방전도운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류씨가 주장하는 복음과는 차이가 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류씨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좁은 의미의 복음이 아니라 성도의 모든 삶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복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도들도 '예수는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전했지만(행 9:20,22, 17:18, 고전 1:23, 2:2 등), 그 전파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은 류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치우치고 축소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그런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며 우리의 모든 삶과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우리에게 날마다 하나님을 본받아 경건하게 살 것을 요구하시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공회와 벨릭스 총독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소망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인하여 심문을 받는다고 하였으며(행 23:6, 24:15), 또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에게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전할 때에는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했다(행 24:25). 이처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포괄적이요 전체적인 복음이었다.


물론 사도들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고, 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촉구하였다(행 2:38, 4:12, 16:31 등).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전 1:21) 따라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표적'이나 '헬라인의 지혜'를 전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했으며(고전 1:23),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다."고 말한다(고전 2:2). 이처럼 우리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일차적인 전도'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도들은 류씨가 하듯이 소위 '중요한 핵심부분을 반복교육'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가르쳤다. 오순절 날에 회심한 3천명의 무리들에게 사도들은 날마다 그들을 '가르쳤으며', 거기에는 또한 '교제'와 '기도'와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사랑'이 있었다(행 2:42-47).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반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목회하였는데, 그 교회를 떠나면서 장로들에게 자신의 사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쳤다."(행 20:20)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4-5)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전한 '복음 진리의 말씀'은 곧 '믿음'과 '사랑'과 '소망'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바울은 일차적인 전도만 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인격, 성화와 생활, 나아가서 유익한 모든 것을 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넓은 의미에서의 복음이며 성경이 말하는 바 총체적인 복음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하고 있으며(빌 1:27), 또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하였다(골 2:6-7). 이처럼 바울이 전한 복음에는 '교리 부분'과 그에 따른 '윤리 부분'이 있지만, 류씨가 전하는 다락방복음에는 이 '윤리 부분'이 거의 없거나 무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전하는 '교리 부분'도 아주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내용에만 머무르고 있으며, 상당 부분이 사단과의 대결구도로 편향되고 왜곡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류씨가 주장하는 다락방전도운동은 사도들의 전도운동과는 다른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

 


3) 류씨는 종교개혁자들의 말씀운동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사도들의 복음전파와 가르침의 바탕 위에 세워진 역사적인 정통 교회들은 성경에 나타난 포괄적인 복음전파사역을 지향해 왔다. 류씨는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을 다락방전도운동과 동일한 것으로 주장하나, 칼빈의 개혁운동은 류씨와 같이 전도만 강조한 운동이 아니라 중세 카톨릭 교회에 의해 변질된 복음을 다시 회복하고 말씀으로 교회를 개혁함으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주권을 확장해 가는 총체적 복음운동이었다. 곧 칼빈의 개혁운동은 성경 말씀의 권위를 바로 세워 그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따르는 데 역점을 기울인 운동이었으며, 칭의와 성화의 교리를 재정립하며, 교회를 성경적인 모습으로 갱신하여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려는 운동이었다. 따라서 칼빈의 개혁운동은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과는 그 의미나 강조점, 목적과 성격이 아주 다른 것이다.


기성 교회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주님의 명령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고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 신자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며 교회를 주 안에서 바로 성장시키기 위해 직분자를 세우고 조직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며 목회에 힘쓰고 있다. 이 모든 목회사역이 궁극적으로 우리 교회와 교인들이 복음의 빛을 밝히 비추는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한 복음전파의 목적을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성 교회가 하는 모든 목회사역은 복음전파의 필수적인 요소요, 그 자체가 복음전파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류씨는 복음전파운동의 포괄적인 의미를 성경적 관점에서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동안 복음전파 사역에 힘쓰고 있는 기성 교회를 전도 안 하는 교회로 비난하고 있다. 그는 교회의 복음전파운동에서 중요한 요소인 성화와 양육, 나아가 이를 위해 필요한 조직과 프로그램 및 목회사역을 간과한 채, 일차적인 전도만 하는 것이 참된 복음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교회에게 주어진 총체적인 복음전파사역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4) 다락방전도 방법만이 유일한 전도방법은 아니다.


류씨는 다락방전도만이 유일한 전도방법인 듯이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도하되 다락방 전도여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전도방법은 기본 원리를 빠뜨린 채 해 왔기 때문에 전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류씨가 주장하듯이 꼭 자기들 방식대로 전도해야만 올바른 전도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우리가 전도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불변의 진리이지만, 그 전도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수천 명의 무리들에게 전도하셨을 뿐 아니라 열 두 명의 제자들에게 조용히 가르치기도 하셨다. 또한 회당에서나 집에서나 산이나 들에서 가르치기도 하셨고, 길 가면서도 가르치시고 식사하면서도 가르치셨다. 또 열 두 제자를 내어 보내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70명을 둘씩 둘씩 보내면서 복음을 전케 하기도 하셨다. 사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도들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수천 명의 무리들에게 설교함으로 복음을 전하였으며, 회개하고 믿은 자들에게는 사도들이 날마다 가르쳤다.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고 길거리서나 시장에서나 어디서든지 기회 닿는 대로 복음을 전하였다.


이처럼 복음 전파의 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나며, 꼭 어느 한 방법만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류씨가 다른 전도방법을 비판하고 자신의 전도방법만이 전도되는 방법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 류씨는 복음전파의 궁극적 목적을 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류씨는 복음전파 사역의 한 단면만을 거의 전부인 양 부각시킨 나머지 다른 중요한 면들을 백안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전도를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전도의 궁극적 목적을 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류씨에 의하면 전도의 목적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사탄의 억압에서 해방시키고 영육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라 한다. 그는 전도의 목적을 인간이 누리는 혜택의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전도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는 것을 바로 강조하지 못하고 있다. 류씨는 전도의 목적을 주로 죄와 사탄과 비참으로부터 구원(liberated from)이라는 것을 강조하나, 그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 의의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구원(liberated for)이라는 점을 바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류씨는 사람을 구원하는 열매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전도만이 능력 있는 참된 전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아처럼 120년 동안 전도했으나 아무 열매가 없어도 복음의 빛을 바로 밝힌 전도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되는 전도이다. 전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목적만 갖는 것이 아니고 끝내 복음을 거부하는 세상에 분명한 증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들로 핑계할 것이 없게 만드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신자들의 성결한 삶을 통해 교회를 비방하는 이들의 입을 막고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복음의 빛을 비치는 것도 전도의 일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전도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된 삶을 사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마 5:16).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예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다(롬 8:29). 우리가 주의 형상으로 변해갈 때, 곧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인격의 소유자로 새로워질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이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다(요 15:8). 우리를 이 땅 위에 예수의 증인으로 남겨두신 이유는 첫 사람 아담의 성품을 벗어버리고 두 번째 사람인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새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 이런 새 사람이 모인 참된 인간의 공동체의 모습과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과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이것이 곧 예수의 증인되는 삶이요, 세상에 빛을 비춘다는 의미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는 전도이다. 모든 교회와 신자들은 계속 주님을 입으로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입술의 전도는 전인적인 전도가 뒷받침되고 병행될 때 참된 복음 증거가 되는 것이다. 류씨의 가르침에는 이 전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제시되지 못함으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성화와 회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6) 현재 한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락방전도운동이 아니다.


류씨는 침체하는 한국 교회를 살리는 길이 다락방전도운동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류씨의 말은 교회성장의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고심하는 목회자들에게는 상당한 유혹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일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 교회에는 류씨가 강조하는 일차적 전도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개인 신자의 바른 양육과 성화, 교회 차원의 개혁도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기성 교회가 이런 점에서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신뢰와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본다. 현재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열심 있는 복음전파와 함께, 잃어버린 거룩과 신앙의 순결을 회복하는 철저한 회개운동과, 한국 교회에 만연하고 있는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의 요소들을 척결하는 개혁운동이다. 교회가 교회의 참 모습을 회복하고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공동체가 될 때 가장 효과적인 복음전파가 진행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여태까지 전도에 힘쓴 교회로 알려져 왔다. 개신교 역사 백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 교회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성장을 이룬 것은 한국 교회가 그 동안 전도에 열심히 매진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무시하고 류씨가 기존 교회는 전도를 안 하는 교회처럼 말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지금도 대다수 교회들이 전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많은 교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증인의 사명을 열심히 수행하며 살고 있다. 이런 기성 교회의 복음전파운동은 다락방전도운동처럼 거창하고 떠들썩하게 진행되지는 않기에 류씨의 눈에 잘 감지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류씨는 기성 교회의 전도는 '안 되는 전도'이고 다락방전도는 '되는 전도'라고 말하며 다락방전도의 성과를 크게 과시하고 있으나, 백 년 전만 해도 복음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지금은 천만에 이르는 교인이 생긴 것은 바로 기성 교회의 복음전파운동의 열매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혹자는 다락방전도운동으로 인해 교인이 늘고 목회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례들을 들면서 이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긍정적인 듯이 보이는 사례가 꼭 그 운동이 성경적이고 건전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휘어진 막대기도 사용하신다. 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가르침 안에 잔재되어 있는 산발적인 복음적 요소를 통해서 선을 이루시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이런 열매들은 다락방운동의 오류와 불건전성에도 '불구하고'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성 교회가 많은 문제점과 개혁해야 할 것들을 안고 있으며, 이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요, 그것을 들추어내는 것이 곧 나의 치부를 들추어내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교회에 대한 깊은 사랑과 눈물의 기도를 배경으로 한 건설적인 비판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사랑과 눈물의 기도가 결핍된 채 교회의 약점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 같은 자세는 과거에 있어 온 이단의 전형적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류씨가 그와 같은 잘못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교회의 문제점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자신의 다락방전도운동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참된 복음운동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그의 오만한 태도 속에는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성령의 사역자는 화평케 하는 자이며, 성령의 운동은 항상 화평의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하셨다(약 3:18). 그러나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에는 이 성령 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색이 결여되었고, 오히려 교회의 하나됨을 파괴하여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전도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류씨의 메시지는 아주 복음적인 것 같으나 아주 교묘하게 비성경적이다. 복음을 열심히 전해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하고 온갖 우상과 죄악과 어두움의 영에 사로잡힌 이 민족을 구원하자는 류씨의 외침과 호소에 공감하며 '아멘'을 보내지 않을 목사와 교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기성 교회가 전도하지 않는다는 류씨의 비판에 도전을 받으며 자신의 전도의 열심이 부족함에 대해 죄책을 느끼지 않을 그리스도인이 어디 있겠는가? 전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대의명분 앞에 누가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사이비운동이 전도라는 미명 아래 비판과 반론의 화살을 최대한 피하면서,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 교리적인 문제


1) '천사 동원권'과 '기도 응답'에 대한 주장


류씨는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이에게 일곱 가지 권세를 주셨는데 그 중에 '천사 동원권'이 있다고 한다. 류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사 동원,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주의 사자들이 가(서) 기도하는 곳마다 하나님은 주의 천사를 보내가(보내서) 불말, 불병거를 동원시키는데, 성경에 중요할 때마다 나오는데 왜 성경을 부인합니까? 성경에 있어요. 그리고 이 응답을 우리는 지금도 받을 수가 있어요. … 하나님이 순복음 OO교회 주위에 우리 K 목사님과 주의 종의 배후에 하나님은 불말과 불병거를 착 동원시키십니다. 이걸 보는 눈이 없거든. 이런 눈이. 성경 안 믿으니까 뭐! 그러니까 뭐! 왜 류 목사님은 천사 이야기를. 왜 못합니까? 성경에 있는 거를. 하나님께 함(한번) 물어 보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천사 동원권'에 대한 류씨의 이같은 언급이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그는 신자가 직접 천사를 직접 동원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에는 성경적 가르침의 한계를 벗어난 요소가 많다. 류씨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동원하시고, 또 전도하러 가면 천사를 동원하신다면서,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주의 천사가 그를 구출한 예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사도들이 전도 사역에서 천사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듯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천사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버림을 받은 것 같은 상황에 처하였던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다(고후 11:23-27). 또한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도다 …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며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 4:9, 11-13)고 하였다. 류씨는 성경에 나타나는 특별한 사례를 보편적인 것처럼 강조하므로 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또한 류씨는 참된 신자는 기도를 하면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고 하면서 기도 응답을 다락방전도운동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그는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기도 응답 받지 못한 사람들 추적해 보면 예수님을 진짜 영접 안 해서 그래  요."라고 하였고, 자신의 기도 응답이 3일을 넘긴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의 이런 극단적인 표현을 논외에 부친다 하더라도, 그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어야 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나머지 신자의 삶 속에 있는 부정적인 고난의 측면을 백안시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등 개혁교회의 신조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신자의 불완전성을 강조한다. 신자는 아무리 높은 거룩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불완전하여 육신의 뜻을 따라 구하는 성향이 남아 있다. 신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 구한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다(약 4:3). 또한 비록 바르게 구했다 할지라도 그 응답이 오래 지체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구한 그대로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 참된 기도응답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선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세 번 간절히 기도 드렸으나, 그 기도가 구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경우 그의 기도는 응답받은 기도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고후 12:7-9).

 


2) 십자가가 결여된 영광의 신학


류씨는 다락방전도운동이 개인과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도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물론 죄의 근본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죄의 구습을 처리하는 문제나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자유하는 문제는 아직 남아 있으며, 성격적 결함이나 질병, 또는 가정의 문제는 그대로 계속되기도 한다. 또 그런 문제들이 점진적이고 부분적으로만 해결되는 경우도 많다.


류씨는 또한 전도가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무리한 주장이다. 주님께서 가라지와 알곡을 추수 때까지 같이 자라게 그대로 두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전도를 통해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부분적으로 해결될 수는 있으나 그 모든 것들이 근본적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 이상적 사회나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우리의 소망이요 기도 제목이기는 하나, 현세에서 실현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신자는 이 땅 위에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신음하고 고통하면서, 종말의 완전한 해결과 구원을 소망하며 인내로써 살아간다. 성령의 능력과 풍성한 은혜는 신자를 이 종말론적인 고난과 약함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며 십자가의 길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의 삶에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도 있지만 동시에 신음과 슬픔과 고난도 공존하는 것이다(롬 8:18-25). 정통 교회는 신자의 삶의 이러한 측면을 직시하고 믿음으로 대처하게 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 왔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복음을 무시한 '번영신학' 또는 '영광의 신학'을 비성경적이며 때로는 이단적 가르침으로 정죄해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류씨의 가르침에는 이런 위험성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그의 가르침에는 십자가의 신학의 자취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에는 현재 '실현된 측면'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측면'이 있는데, 류씨는 이를 균형 있게 강조치 못하고 실현된 부분에 치우침으로 신자의 삶이 지닌 종말론적인 요소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류씨의 이런 치우친 주장은 광야의 여정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신자들에게는 시원한 안식처처럼 느껴질 수 있으며, 기존 복음이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제시하는 참된 복음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킴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한 때 한국 교계에서 하나님의 축복만을 강조하는 번영신학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류씨의 이런 균형을 잃은 복음이 또 다른 형태의 번영신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류씨의 전도운동은 참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쪽 진리만을 전하는 것이요, 성경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과장된 약속과 희망을 제시함으로써 순진한 영혼들을 교묘히 속이는, 진실하지 못한 전도 메시지이다.

 


 3) '귀신론'과 '사탄 배상설'의 문제


류씨는 귀신론과 사탄 배상설(賠償說)과 관련하여서도 교계에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명을 하기도 했다. 곧, 자신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아는 바도 없다거나, 정통 교회와 신학에 속한 자신이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거나, 또는 잘못이 있으면 이를 시정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는 "더 이상 사탄에게 굴복할 이유가 없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지불하셨다."는 발언으로 야기된 사탄 배상설에 대해서는 단 한번 언급하였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변명은 그의 신실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사탄 배상설에 관하여는 수영로교회 집회시에 설교하던 중 단 한번 언급하였다고 하지만, 그는 이와 유사한 언급을 '평신도 기초 전도이론 강의 테이프 6'에서도 말하고 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대속물로 오셨던 … 대속물이라는 말은 뭔가 갚아 주는 것 아닙니까? 사단에게 모든 우리의 실패(죄)의 댓가를 전부 다 갚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주님이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뭔 말인가 아시겠지요?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다락방측은 신학자가 아닌 한 설교자로서 한 말에 대하여 너무 가혹한 평가를 한다고 반박하지만, 이런 여러 정황을 보건대 류씨의 신실성은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여러 차례 하였다. "그 사람 죽어버리면 영혼이 갇혀 있다가 악령은 가만히 그 영혼이 후손을 괴롭히잖아요." 류씨는 또한 마귀(귀신)가 가져다주는 병의 특징으로 '병명 불분명, 이유 없는 두통, 머리에서 소리가 남, 치유되지 않으면서 순간적 변동'등을 언급한다. 또 미혹의 영은 평생 따라다닌다거나 계속 증가되며 결국 육체를 멸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류씨 자신은 김기동과의 어떠한 관련도 부인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그의 발언은 김기동의 귀신론과 매우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 교회윤리적 문제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은 기존의 교회를 비방, 매도하고 분열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심각한 폐해를 야기 시키고 있다. 그 운동의 성격을 관찰해 보면 이미 그 속에 교회의 연합을 깨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들이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 잘못된 영적 우월주의


류씨의 가르침은 구조적으로 교회 분열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신자를 예수를 '믿는 사람'과 '영접한 사람'으로 양분한다. 예수를 영접한 사람만이 성령이 내주하고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그런 가르침에 회유된 사람들은 수십 년간 예수를 믿었으나 영접하지는 못했다는 착각에 빠져 교회를 불신하고 다락방에 더욱 심취하게 된다. 또한 류씨는 기성 교회의 98%는 시험에 들어 있고 마귀에 사로잡혀 있다고 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부당한 반감과 비판의식을 조장한다. 그렇게 훈련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기성 교회 안에서 하나 되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류씨는 부인할지 몰라도 그의 주장 자체가 교회의 연합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요소들을 배태하고 있다. 결국 다락방전도운동은 자신들만이 참된 전도운동을 하고 있다는 영적 우월주의 내지는 영적 엘리트 의식으로 나타난다.


이런 잘못된 우월주의는 그들의 폐쇄적인 교육이나 그것에 준하는 삶의 태도로 인해 더욱 고착된다. 류씨가 운영하는 핵심요원훈련, 팀 사역훈련, 미션 홈, 전도 신학원, 선교사훈련원, 70인 요원훈련 등과 같은 많은 훈련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단순히 전도 훈련만을 위한다면 무슨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그것은 교회 일반적 전통의 토대 위에다 자신들만의 상층구조를 세우고자 하는 잘못된 엘리트주의가 게재되어 있다. 그들이 현장을 강조하고 '미션 홈'(Mission Home)을 주창하는 것은 단순히 방법론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이것은 교회사에 나타나는 '비밀회집소'(Conventicle)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2) 맹신적 추종자를 양산함


류씨의 많은 프로그램 중 특히 주일 밤마다 가지는 핵심요원훈련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목회자들을 저 멀리 경기, 충청, 강원도에서 영도 한 모퉁이까지 달려오게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하루 종일 예배를 인도하여 피곤한 목회자들이 어떻게 달려올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무슨 목회가 제대로 되겠는가?


류씨가 정말 사심이 없다면 달려오는 목사들을 오히려 막아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전도 방법론을 다 가르쳤으면 그것으로 본 교회 목회를 잘 하도록 격려하고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전에 류씨에게 배우기는 했으나 그의 집단에는 가담하지 않은 분들의 얘기가 그것이다. 방법론만 배웠으면 됐지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류씨는 핵심요원훈련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영적으로 예속시키고 있다. 그 훈련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가야만 은혜가 되고 힘이 생기고 다른 메시지는 생명이 없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점점 다락방을 떠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영적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류씨는 자신의 운동이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다락방에 예속된 영적 어린아이만을 양산하고 있다. 강하게 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다락방전도운동일 따름이다.


이렇게 다락방전도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류씨의 맹신적인 추종자로 전락하고 있다. 교회 내에서 이런 특정인의 추종자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교회의 연합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 또한 다락방전도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정서적으로 굉장한 동지의식을 가지고 있다. 기성 교회들이 다락방전도운동을 비판함으로 그들의 동지의식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소위 진리를 위해 핍박받는다는 식이다. 따라서 그들은 어떤 계기에 부딪치면 일시에 결집하고, 편당을 지어 교회에 어려움을 야기시키도 한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 교회들은 갈등과 분쟁, 그리고 마침내 교회 분열이라는 아픈 상처를 입게 되었으니, 이에 대한 책임은 어떤 변명으로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다락방전도운동이 이렇게 교회를 분열시키는 운동으로 귀결된다면 이는 결코 성령의 사역은 아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신다. 거룩하신 성령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참으시며 우리 안에서 성화를 이루어 가신다. 성도간의 상호권면도 성화의 한 방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인내를 힘입어서 교회의 부족한 모습을 개혁해 나가는 데 적극적으로 헌신하기보다는, 전도의 열심을 빙자하여 교회를 정죄하고 분열시키는 행위는 결코 성령의 사역으로 볼 수 없다.


 전술한 대로 다락방전도운동은 그 가르침이나 조직의 극단성 때문에 사실은 자신들이 표방하는 전도운동에도 별다른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 다락방전도운동에 열심히 가담했던 우리 교단의 어떤 목사에 의하면 자신의 교회에서 다락방훈련을 받은 12명의 성도들을 인도자로 세워 보았지만 아무런 성장이 없었다고 한다. 전도란 말과 행실에 모범이 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통할 때 효과가 있는 것이지, 교회 안에서의 영향력 증대나 꾀하는 왜곡된 인격으로는 아무리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별무성과일 것은 자명하다.


이런 결과는 목회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한계에 도달한 목회의 돌파구로 다락방을 찾는 목사들은 아무리 다락방에서 배운 것을 사용해도 별로 결실이 없음이 나타나고 있다. 전도란 참으로 영혼을 구원코자 하는 열정에서 이루어져야지, 단지 교회의 수적 성장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목회 사역에 별다른 열매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그 원인을 찾아 해소해야지, 그렇지 않고 다락방전도운동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비법인 것 같이 사용해 보아야 별 성과가 없을 것은 당연하다.


대구의 K 목사와 같이 간혹 다락방에 참여한 후로 교회가 성장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석한 바로는 그런 목회자는 다락방이 아니더라도 교회를 일으킬 수 있는 목회적 자질과 능력을 갖춘 분들이다. 그런 경우 다락방이 방법론적으로 조금의 도움이 되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 하나만으로 다락방전도운동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상쇄할 수는 없다.


 


결론


류씨의 가르침에는 표현상의 오류와 극단성으로 야기되는 문제를 제외하고도,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많은 면에서 비성경적이고 불건전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위화감과 대립, 분쟁과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위험성을 심각하게 배태하고 있다. 전도에 대한 그의 이해는 다분히 편향적이다. 그는 오로지 전도라는 하나의 각도에서만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에, 치우친 '축소복음주의' 또는 '전도획일주의'로 빠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복음이 성도들에게 주는 더 많은 은혜와 유익들을 바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들이 제시하고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복음운동은 단지 '일차적 전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총체적인 복음운동'이다. 이에는 일차적인 전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성화, 이 세상에서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이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씨는 그의 다락방운동이 마치 전통 교회가 계속해 온 총체적인 복음운동을 대체하는 운동인 양 주장함으로써 큰 혼란과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지난 100년 이상 한국 교회를 인도하신 삼위 하나님의 역사를 간과하는 처사이다. 또한 그의 '천사 동원권'이나 '사탄 결박권', 그리고 '귀신론' 등은 상당히 치우치고 편중된 가르침으로서, 매우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류씨의 다락방운동은 가는 곳마다 성령의 열매인 화평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반목과 질시를 초래하며, 교회에 덕을 세우기보다는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은 이단적 성격을 띤 불건전한 운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본 교단에 소속된 목사와 교인들이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일절 금하고, 성경이 제시하고 기존 교회가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총체적인 복음전파운동에 더 한층 매진하도록 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성경적 복음전파에 대한 바른 교육을 교단 차원에서 강화함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부 록> 그 동안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해 내려진 비판과 그에 대한 다락방측의 반박


현재까지 교계에 발표되고 소개된 비평들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요 논쟁점은 비슷하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부록에서는 이 논쟁의 핵심 되는 문제들에 대한 양측의 주장과 견해를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소개한다.

 


A. 삼위일체론


1. 비평


박진규 목사: 류씨의 삼위일체론은 정통 교회가 말하는 삼위일체론은 결코 아니다. 류씨의 말을 들어 보면 그의 삼위일체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므로 먼저 류씨의 말을 들어 보고자 한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 알지 못하느뇨? 그랬습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신다. 우리 안에 누가 계신단 말이지요? 하나님이 계신다. 이걸 보고 삼위일체, 그래 삼위일체 교리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단들은 전부 삼위일체를 거부하지요?"('EBS 양육' 테이프, vol.2, A163)


"성령의 실재성. 이것을 인정할 때는 굉장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요한복음 16장 8-24절. 내가 너희에게 뭘 보내요? 보혜사 성령을 보내사. 주님이 재림오실 때까지. 고게(그것이) 뭐지요? 삼위일체입니다."('새생명' 테이프, vol.2, A464)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류씨는 성령(하나님)이 우리 속에 계시는 것과 보혜사 성령을 보내신 것을 삼위일체로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류씨의 말이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들어 성도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차원을 말하는 것일까? 류씨의 말은 성도의 몸이 성전이라는 단순한 개념은 결코 아닐 것이다.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는 것이 삼위일체라는 류씨의 말은, 성령 받으면 사람이 곧 하나님이 된다는 이론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류씨의 말은 윗트니스 리의 '사위일체' 교리는 될지언정 정통 교회의 '삼위일체' 교리는 분명히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류씨의 삼위일체론은 누구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지방교회의 창시자이며 말씀 공급자로 활동했던 윗트니스 리(Witness Lee: 1905-1997. 6.)의 글을 인용해 보기로 하자.


 "성육신 이래로 하나님은 주로 사람 안에서 움직이셨다. 신약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것은 무엇이든 주로 사람 안에서였다. [안에(in)]라는 작은 전치사는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로 여겨질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이 전치사를 없애 버린다면, 신약은 무의미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전기 기구에서 스위치를 없애는 것과 같다."


그리고 윗트니스 리는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성육신 되신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윗트니스 리의 '신인합일주의' 사상이다. 윗트니스 리는 성육신의 개념을 "하나님이 당신 안으로 들어오신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였다. … 그렇다면 류씨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것 즉 성령의 임재(내주)를 삼위일체로 설명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류씨가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신 것'과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는 것'을 삼위일체라고 한 것은 윗트니스 리의 사위일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류씨의 삼위일체론은 윗트니스 리의 '삼일 하나님'(사위일체) 교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장고려(반고소)측: 그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신비적 연합을 말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트니스 리의 삼일 하나님과의 연합사상이 스며나오고, 마귀를 진멸하므로 마침내 인간은 무한한 능력의 회복을 주장하므로 한만영의 사상과 맥을 같이하고 말았다. 위트니스 리(Witness Lee)의 진리공과 1단계 제 4권에 류씨와 같은 사상이 서술되어 있어 충격을 받는다.


특히 위트니스 리는 "그는 거듭나는 것은 신인이 되는 것,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 자신과 우리의 영이 혼합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정동섭, [그것이 궁금하다], p.245), 한만영의 신화사상과 유사하다. 한만영은 그의 [그레이스 아카데미 강의록]에서 "하나님의 입장은 마귀 진멸을 위하여 인간을 이용하신다. 그리고 기도하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사용하는 인간은 하나님과 같은 수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동안 신령과 진정으로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강의록], pp.222-223)라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류광수씨의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정통 교리의 삼위일체 신론이 아닌 위트니스 리의 삼일 하나님 교리로서 사위일체이며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신인합일의 교리로 분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박진규, [류광수씨의 전도신학 문제점], p.2, [류광수씨 다락방 전도 운동의 성경 신학적인 문제점 비교 대조표], p.8).

 


2. 반박


 박진규 목사에 대한 반박: 최 목사와 박 목사는 류씨가 위트니스 리의 사상과 같은 '삼일하나님'을 주장한다고 비판했으나, 전혀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오히려 류 목사의 신론은 철두철미 삼위일체에 근거한 정통신학이며, 보수신앙 그 자체입니다. 그가 고전 3:16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삼위일체 중 삼위에 해당하는 성령님과 그 성령의 사역 중에서 '성령 내주'에 대해서 강조한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이라고 성경이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때 '성전' 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에는 '지성소'(대 제사장만 일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장소)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류 목사는 이런 것들에 근거해서 우리 성도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이 구절을 많이 인용하게 된 것뿐입니다. 그런데 위의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 류 목사의 이런 정통신앙을 이단으로 단죄하는지 이해를 전혀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최 목사와 박 목사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사단과 이단에게 유리하게 하는 이적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예장고려측에 대한 반박: 고려교단에서 발표한 성명서에는 류 목사가 고전 3:16을 강조한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을 오도하여,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Witness Lee)의 "삼일 하나님"과 같다고 주장하나, 이것은 비교종교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테마(Thema)인 "유사한 것(Das Analoge)이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즉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라고 생각합니다. 비유컨대 God(대문자 G)와 god(소문자 g)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문자 'God'는 우리 기독교의 '유일신 하나님'을 뜻하며, 소문자 'god'는 '잡신'을 뜻하는데 이것을 전혀 구분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똑같은 성경 구절(고전 3:16)을 인용하지만 류 목사는 "성령의 내주"와 "성도의 신분에 대한 고귀함"을 강조하여 한 말이며, 위트니스 리(Witness Lee)의 "삼일 하나님"은 인간이 신과 같다는 사상인데, 이것이 어떻게 같은 사상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B. 기독론


1. 비판


◆ 기독론의 오류, 성육신의 목적 오해  


예장고려측: 류광수씨는 철저히 성육신의 목적을 요한일서 3장 8절에서 찾고 있다. "…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과 전혀 관계없이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뭐하셨느니라?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만 모르고 있는데 하나님이 길을 열었다 이것입니다…. 누구를 보냈는가? 예수 …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두 가지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요한일서 3장 8정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완전히 끝내 버렸습니다. … 여러분들이 이 영적인 부분을 모르면요 인생에 대해서 절반은 모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인생 전체를 모른다고 봐도 됩니다. …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중요한 것은 하나도 모른다고 봐도 됩니다. 그 인생 자체는 실팹니다 … 모르면 무식꾼 아닙니까? 중요한 것을 모르면 … 하나님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심이라 … 보통 말이 아닙니다('복음편지' 강의 테이프 3).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심이라. 죄하고 사단하고 딱 붙어 다닙니다. 언제든지 분리가 되지 않아요(요 8:44, 요일 3:8) ­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강단에서는 언제든지 이기(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의미) 선포되어야 합니다. 성경 66권이 전부 이것 선포하도록 다각적으로 계시를 주는 것입니다."('EBS 양육' 강의 테이프 2)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이 말씀이 이해 되야 그때부터 창세기 3:1-6, 16-20 무엇 때문에 고난 당하는가 알게 돼요, 이기 이렇게 되어져야 구약의 예수님은 뭐 한다고 피를 흘렸는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해야만 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왜 졌는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평신도 기초 전도 이론' 6)


 예장고려측의 평가: 류광수씨의 복음은 요한일서 3장 8절이다.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것으로 진술한다. 마태복음 1장 21절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분명한 목적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분명한 성육신의 목적을 밝혔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은 택자 구원의 과정 즉 죄인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로 보아야 되는데, 그가 유독히 요한일서 3장 8절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김기동과 한만영의 귀신론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 사단배상설로 그리스도의 속죄 설명


예장고려측: 류광수씨는 성육신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속죄의 원리 역시 뒤틀리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때부터 마가복음 10장 45절 대속물로 오셨던 … 대속물이라는 말은 뭔가 갚아 주는 것 아닙니까? 사단에게 모든 우리의 실패의 대가를 전부 다 갚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주님이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뭔 말인가 아시겠어요,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셨습니다."('평신도 기초 전도이론' 강의 테이프 6)


예장고려측의 평가: 여기서 말하는 우리의 실패의 대가를 지불했다는 말은 신학적으로 '사단보상설' 혹은 '사단배상설'이라고 한다. 이 설은 개혁주의 신학에서 거부되는 속죄이론이다. 초대교부들이 사단에게 속가를 보상했다는 설을 주장한 바 있으나 곧 폐기된 설이다. … 중략 …그렇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속물로 주신 것은(막 10:45) 분명히 우리의 죄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죄의 값을 사단에게 지불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 값을 하나님의 공의에 지불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어찌 사단에게 값을 지불함이 되겠는가?


그는 아무렇게나 말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사단배상설이나 다른 이론을 알고 주장한다고 할 수 없다. 사단과 그리스도를 성경해석의 축으로 삼다 보니까 한 성구만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하겠다.

 


2. 반박


◆ 사단배상설에 대한 답변


류광수씨: 이 비난에 대하여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가 하고 비난하는 분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검토를 해 보았습니다. 제가 대학 3학년 때 한국학을 신학교에서 학습하던 중 무당에 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한국에는 무당 50만과 역술인 40만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부 사탄에게 잡혀 있다고 깨달아졌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전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사단배상설에 관한 비난을 받고 제 설교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수영로 교회 집회 시(Tape 2) 설교하던 중 20년간 무당 생활하다가 돌아온 교인이 있음을 소개하면서 '더 이상 사탄에게 굴복할 이유가 없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지불하셨다'고 격려한 내용이 그렇게 와전되었습니다. 그것도 단 한 번 그런 표현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표현상 실수라 할지라도 그런 오해를 끼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사과 드리며 오해가 풀려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다락방전도훈련원: 류씨는 사실 그의 설교 때마다 책의 여러 곳에서 베드로의 이 고백을 인용하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처음 듣는 사람이 볼 때는 이상하리만큼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과 "그분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류 목사의 설교를 듣고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설교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강조하면서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강조를 자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마귀의 정체를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현장에 가보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류 목사가 요일 3:8을 자주 강조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성육신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만 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보다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한 강조가 훨씬 더 자주 나타납니다.


그런데, 고려교단에서는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류 목사를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 성명서에 의하면 류씨가 요일 3:8을 인용하는 의도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예수께서 성육신 하였다'고 주장한다 합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쓴 사람들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C. 마귀론


1. 비판


박진규 목사: 류씨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죄하고 사탄하고는 딱 붙어 다닙니다, 언제든지, 분리가 되지 않아요(요 8:44, 요일 3:8)."('EBS 양육' 테이프, vol.2, A002)라고 했다. 그리고 류씨는 "이 땅과 온 세계가 망해 가는 것은 하나님을 육신과 죄와 사탄으로 말미암아 이 세 가지 때문에 망했습니다. 이 세 가지가 하나가 되어 가지고 육신과 죄와 사탄, 우리는 여기서 해방 받았을 뿐이고 구원받았을 뿐입니다."('대구 핵심' 테이프, 95.8.26, A051)라고 했다. 사탄과 죄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죄와 사탄이 일체라는 개념일 것이며, 육신과 죄와 사탄이 하나라는 말은 육신이 곧 사탄이며 죄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성경은 죄와 사탄을 일체의 개념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예장고려측: 죄와 사단의 일체를 주장하는 류광수씨의 인죄론은 개혁주의 신학과 거리가 멀다. 죄는 사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말씀 즉, 행위 언약을 어긴 것이다. 사단의 개입에 의한 인간의 불신앙과 불순종이 죄인 것인데 류씨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의 마귀 문제의 해결에 복음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사단과 마귀로서 구원뿐 아니라 전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데 이는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Witness Lee, 이상수, 1905-)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정동섭 교수가 쓴 [그것이 궁금하다]에서 위트니스 리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는데 류씨의 사상과 맥이 통한다.


"그리스도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사단을 가지고 있는 인간(Man with Satan)을 사망과 무덤으로 데리고 가서, 사망과 무덤에서 사단이 없는 인간(Man without Satan)을 데리고 나왔다. 그리스도는 사단을 무덤 속에 장사지내고 매장했다. 자, 이제 이 부활한 인간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 성육신에 의하여 하나님은 인간 안에 들어 왔다. 부활에 의하여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되었다. 이제 하나님이 인간의 영속에 계신다."(p.249)


위트니스 리의 이단 사상은 죄를 사단과 동일시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위트니스 리가 죄를 사단으로 만들며 의인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단을 죄로 만들며 비인격화하는지 분명치 않으나 죄와 사단을 동일시하는 것은 크게 성경을 벗어났다. 류광수씨가 죄와 사단을 구분할 수 없다는 일체사상은 마귀의 진멸을 회개하고 파악하기 때문에 그렇다. 성경을 억지로 해석한 결과이며 잘못된 사상의 영향으로 이러한 괴설을 주장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 '사단 결박권'에 관한 류광수씨의 진술: "우리에게는 (구원받는 자에게는) 사단 결박권을 주셨다. 막 3:14-15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 중 셋째,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주셨다."([전도 기초훈련], p.45)


예장합동측의 비판: 그리스도인들이 사단 결박권을 갖는다는 주장은 표현상 성경의 가르침을 넘어서고 있다.


(1) 사단을 결박할 수 있는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단을 결박하였으므로 그 사실을 알고 담대히 살고 있을 뿐이지, 우리가 직접 사단 혹 마귀를 결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우리는 믿음으로 사단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으나 우리가 받은 힘으로 사단을 결박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로 사단을 결박할 능력을 가지고 행사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할 일이 없어지며 또 우리가 권세 있는 자가 되어 우리의 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될 것이고, 결국 그리스도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3) 우리가 마귀를 이기고 시험과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예수의 피를 힘입은 결과일 뿐이다. 결박되지 않고 있는 사단이 우리의 기도에 의해 결박되는 것은 아니다. 사단 결박권은 예수 그리스도만 가지고 있으며 신자들은 그의 보호와 인도로 능력을 얻어 전도의 일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이다.


 

2. 반박


류광수씨: 솔직히 저는 김기동씨를 잘 알지도 못하고 언급할 만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 부분에 대한 답변은 제가 드릴 자료가 없으며 김기동씨의 베뢰아 아카데미 수료설은 절대로 헛소문입니다. 다만 설교에서 김기동씨의 불신자 사후 영이 귀신 된다는 이론은 틀린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다락방전도훈련원: 죄와 사단의 일체설에 대한 비판


"죄와 사단의 일체설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고려교단에 묻겠습니다. 죄는 누가 짓게 하는가요? 하나님이 죄를 짓게 하십니까? 아니면 천사가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까? 죄는 사단이 죄를 짓게 하는 것 아닙니까? 사단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유도하고 죄를 지으면 그것으로 계속 공격을 해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죄와 사단은 죄를 짓는 측면에서 볼 때에 불가분리라는 뜻이지 그 이상 다른 뜻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비판하기 전에 어떤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했는지 먼저 물어보는 것이 성경적일 것입니다.



D. 천사 동원권


1. 비판


박진규 목사: 류씨 강의 테이프에는 구원받은 자에게 7가지의 축복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 중에 네 번째가 '천사 동원권(출 14:19, 히 1:14, 왕하 19:35)' 이라고 했다.('다락방개요-수영로' 테이프, vol.6, B290∼vol.7, A002)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면, "네 번째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축복 … 천사 동원권입니다."('다락방개요-수영로' 테이프, vol.7, A013)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더욱이 류씨는 "하나님은 우리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천사들을 심부름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종입니까? 천사들이 우리 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신발 닦아주고 뭐 이렇게 안 해요. 하나님이 명령하십니다."('다락방개요-수영로' 테이프 vol.7, A210) 라고 했다. 그리고 '신년 축복기도 대성회'(96.1.9)에서는 천사 동원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천사동원.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주의 사자들이 가(서) 기도하는 곳마다 하나님은 주의 천사를 보내가(보내서) 불말, 불병거를 동원시키는데, 성경에 중요할 때마다 나오는데 왜 성경을 부인합니까? 성경에 있어요. 그리고 이 응답을 우리는 지금도 받을 수가 있어요. … 하나님이 순복음 OO교회 주위에 우리 K목사님과 주의 종의 배후에 하나님은 불말과 불병거를 착 동원시키십니다. 이걸 보는 눈이 없거든. 이런 눈이. 성경 안 믿으니까 뭐! 그러니까 뭐! 왜 류 목사님은 천사 이야기를. 왜 못합니까? 성경에 있는 거를. 하나님께 함(한번) 물어 보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신년 축복 기도 대성회' 테이프, 96.1.9. 대구 순복음교회당, vol.4, B229).


그렇다면 천사 동원권을 누가 받았다는 말인가? 문제의 핵심은 천사 동원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정통 교회는 천사 동원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하는 반면 류씨는 천사 동원권의 주체가 성도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쟁점이다. 그런데도 류씨는 정통 교회가 하나님께서 천사를 동원하시는 것까지 믿지 않는 것처럼 비난을 했다. 이러한 류씨의 태도는 류씨가 정통 교회(신학)를 오해하고 있거나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예장고려측: 천사가 사람들을 도와 준다는 생각은 스콜라 신학 때 유행하였다. 그가 기도를 하면 천사가 동원된다는 생각은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건짐을 받을 때의 설명들에 근거를 둔 것이지만 천사 동원 사상은 잘못되었다. 원세호 박사는 '이러한 천사 동원권은 베뢰아 귀신론에서 다루는 문제'라 하였다. 은연중 류씨가 기도의 강조와 함께 천사를 동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개혁주의 신학은 아니다. 주님이 천사 동원권을 가지고 있고 성도가 천상에서 천사를 부릴 권세가 있으나 이 세상에서 성도가 기도하면 언제든지 천사를 동원할 수 있다는 생각은 New Age 사상과 상통하며 귀신을 결박한다는 사상은 '베뢰아'에서 기원하고 있다.


예장합동측: 천사 동원권에 관한 류광수씨의 진술들은 김기동씨의 진술과 흡사한 면이 있다. '천사의 동원'에 관한 김기동씨의 언급은, 류광수씨의 '천사 동원권'과 김씨의 천사론이 모종의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준다. 김기동씨는 그의 저서 마귀론에서 "이기는 방법은 천사를 동원하여 능력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믿음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128면에서는 이런 진술을 한다. "베드로가 옥에서 빠져 나온 것은 놀라운 이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철문을 뚫고 그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천사가 동원된 것은 곧 합심 기도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천사가 성도를 돕는다는 사상은 성경적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을 받은 사건에 대해 성경은 상세하게 말하고 있다. (행 12:6 이하) 히브리서 기자도 천사가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는다고 말한다.(히 1:14) 그러나 '천사 동원권'이라는 류광수씨의 표현은 문제의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하나님이 필요시에 천사를 보내셔서 주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천사 동원권을 우리가 행사한다고 주장하는 진술은 모든 것을 영들의 일로 보는 김기동의 마귀론에서 나올 수 있는 논리이다.

 


2. 반박


류광수씨: 저는 올바른 교단에서 자랐고 배웠습니다. 이단사상을 가질 이유도, 가르칠 이유도, 또한 이단 집단에 대한 경험도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전도현장에서 일군들에게 성도의 축복을 강조하는 중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의 역사를 강조하였으며, 성도가 기도하고 전도할 때 성령의 도우심이 있으며 흑암 권세는 결박되며 천사의 도움이 있음을 성경에 나타난 것만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부분이 있다면 신학자들의 지도를 받고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락방전도훈련원: 천사 동원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군대(천사)들을 동원시켜서 구해내는 것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그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E. 재영접설


1. 비판


예장고려측:그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보면 구원을 위한 예수의 재 영접을 강력히 주장한다. 먼저 들어보자. "창 11:1-14절에 바벨탑을 쌓기도 하고 별 짓을 다합니다. 구원의 비밀을 모르는 자들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저도요 옛날에 구원을 못 받았을 때는 뭐든지 좋은 것은 아 저게 좋은 것인가 보다… 사람의 기준이 없어요. 도둑놈도 기가 찬 대도를 보면 아! 매력이 있고 …."('아비멜렉이 본 여호와')


"요한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 영접한다는 말은 또 잘 모르고 있는데요 전도를 하려면 영접이라는 말을 잘 알아야 합니다. …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교회 다닌다고 해서 신자는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가운데 이 부분(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구원받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느냐? 이게 또 중요하거든, 이런 것을 우리 머리 속에 언제든지 넣어 있으라고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서 일으켜 세워야 됩니다. 우리는 영접하면 끝나는 줄 압니다. 영접한 이후에 더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있지요 … 구원받은 이후에 비밀이 더 많습니다. … 우리가 기존 신자를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EBS 양육' 2)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단계(사 53:5, 요삼 1:2), … 그 다음에 믿는 단계, 세 번째가 영접하는 단계 …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이 내주 합니다. 그 성령은 영원히 거합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합니다. 마귀 권세에서 해방합니다. 우리의 내세를 보장합니다. … 네 번째가 시인하는(고백하는) 단계(로마서 10:29), 그 다음에 나타내는 단계… 거기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다락방 개요-수영로' 8-9)


예장고려측의 평가: 다락방에서 영접이란 말은 요한일서 3장 8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마귀 쫓아내기 위해 오셨고 3년 동안 마귀 추방하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능력이 오고 기도 응답을 받는다는 논리이다.


요한복음 1:12의 "영접하는 자나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에서 영접하는 자나 곧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라는 말은 현재 분사형으로 동격을 나타내고 중복성이 아닌 지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류광수씨는 여기의 영접과 믿음을 별개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믿음의 단계를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어디서 왔겠는가? 그의 말대로 어느 날 갑자기 터진 것인가?


위트니스 리(Witness Lee)의 [성경요도] 1권을 보면 "요한복음 1:12…복음과 주 예수의 구속에 찬성하더라도 그것을 믿음으로 여길 수 없다. 믿음에 찬성과 인정함이 포함되었지만 믿음 그 자체는 영접이 아니다. … 그러므로 영접만이 믿음이다"고 하였다(pp.105-106). 류씨 역시 그와 같은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성교회 성도들이 빠져버린다.


수십 년 예수님을 믿었으나 영접하지 못했다는 착각에 빠져 교회를 불신하고 다락방의 메시지에 심취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류광수씨의 메시지에 감화를 받아 지금까지의 교회생활과 신학교에서의 말씀의 연단과정도 헛것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구원의 비밀을 깨닫는 것과 예수 영접을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므로 아직도 교회 다녀도 주님을 모르면 다시 주님을 영접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은혜를 받았다고 좋아한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서정상 중생은 단 한 차례 일어나며 그가 말하는 영접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성화과정에서의 새로운 은혜의 체험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성도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는 체험적 신앙이 분명히 있으나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하에 진행되는 하나님의 오묘한 손길, 즉 느끼지 못하고 주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유치한 신앙의 차원이라 할 것이다.


예장합동측: 류광수씨는 예수를 믿는 것과 영접하는 것을 구분하고 특히 여기 영접이라는 말을 요일 3:8("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의 말씀에 기술된, 그러한 예수를 영접한다는 의미로 사용함으로써,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 외에 영접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그리고 이를 통해 "영접"하는 자를 요원화하고 결국 다락방화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경우 류광수씨의 가르침에는 성경적 구원론과 교회론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그는 예수를 영접함으로써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전도를 사단의 손에서 인간을 건지는 행위로 보고([목회자, 전도자를 위한 현장 복음 메시지] 제40과), "전도를 하기 앞서 예수 이름으로 마귀의 세력을 결박해야 한다. 마귀의 세력을 먼저 결박해서 그가 결코 마음 문을 여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평신도가 읽을 전도 훈련 교재], p.15).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과 영접하는 것이 동일한 사건의 다른 표현이라고 본다(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받는 자'), '구원받는 자'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만들고 이들을 전도 요원으로 삼는다는 것이 류광수씨의 일관된 주장이라고 사료되는 바, 우리는 이러한 논리가 구원과 관련해 비성경적이라고 확신한다.

 


2. 반박


류광수씨: 저는 구원의 은혜가 너무 고마워 학원, 공단, 군 현장에 직접 들어가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다른 사람으로 보지 마시고 전도자로 보아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전도현장에서 전도하다보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듣고 믿음을 가지겠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사실을 간증하니 많은 분들이 전도현장에 뛰어 들게 되었습니다. 공단, 대학, 군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소개하고 그 분을 영접하라고 소개했습니다. 영접 곧 믿음이라고 '요 1:12' 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 재 영접해야 한다는 말은 도저히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상식 밖의 이야기임을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고백합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지나친 강조를 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으나 저의 설교나, 강의에서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습니다. 혹 어떤 분이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듣고 지금까지 교회당에만 다녔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그분 개인의 사정이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재영접이라는 단어조차 저는 처음 듣는 단어이며 왜 정상적인 목사님들이 그런 이론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그런 표현도 한 적이 없으며 혹 그런 부분이 저도 모르게 있었다고 하면 즉각 수정하겠습니다.


다락방전도훈련원: 그의 영접관은 확실합니다. 영접을 강조할 때마다 그는 요1:12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영접하는 것과 믿음이라는 것이 동일함을 강조하며, 교회를 오래 전부터 다닌 사람이 '영접'을 요구하면 '영접'해 줄 수는 있다고 말하나, '재영접'을 주장하지는 않으며, '영접'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Witness Lee)처럼 "영접만이 참 믿음이고 다른 것은 다 가짜다"라는 극단론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려교단에서는 류 목사가 "사탄에서의 해방을 구원으로 생각하며 궁극적인 구원을 부인하고 반 구원설과 재 영접설을 주장한다"고 하나, 이는 터무니없는 곡해이며 거짓말입니다. 사탄의 일대 특징은 사람을 미혹하고 꾀는 것이며 거짓말하는 것인데(계 12:9), 도대체 이들은 어떤 영을 받아서 이러한 거짓말을 잘 하는지 너무나 의심이 갑니다."



F. 교회론


1. 비판


예장고려측: 그의 기성 교회관은 심각하다. "한국 교회 98%가 지금 시험에 들었습니다. … 한국 교회 90%가 싸움에서 쪼개져 생겼대요. 그것도 내가 낸 통계가 아니고 … 책에 나왔습니다. …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국 교회 98%가 마귀한테 잡혔어요… 인기, 명예 따라 움직이면서 복음 하나도 안 전하고 복음전하는 것 다 막고 … 너무 한국 교회가 컬컬해요."('다락방 개요-수영로' 11) "영의 세계를 똑바로 모르는 교역자는 무당보다 못해요."('다락방 개요-수영로' 8) "마귀 손에 붙잡힌 사람은 집사가 돼도 변화 안됩니다. 마귀 손에 붙잡힌 사람은 장로가 되어도 변화 안됩니다."('다락방 개요-수영로' 8) "마귀가 이것을(다락방) 막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지면 안돼요 … 다락방은 마귀가 막습니다. … 저는 15년을 해 왔는데 제게 훈련받는 교역자들이 많아요. 음으로 양으로 하다가 그만둬요. 주로 그런 사람 보면 잡탕교인 만들어요."('다락방개요-수영로' 9) "나는 여태까지 대한 예수교 장로회 싸움하는 것만 보았거든 … 여기가 천국이지 싸움하는 곳이 보수 신학인가? …."('다락방 개요-수영로' 7)


예장합동측: 다락방 전도 훈련은 기존 신자들을 '요원화'하고 '다락방화'한다는 점에서 기성교회를 분열시킬 수 있으며 또한 교회 안에 위화감을 조장할 만한 원인을 제공한다. 성령이 말씀하시는 전도 기초 훈련 47면은 초대 교회의 복음 전파를 5단계로 나누었다: 요원화 → 제자화 → 지역화 → 전도화 → 양육화, 이것은 다시 1.기존 신자→요원화 2.현장→제자화 3.말씀운동 → 지역화 4.요원화, 제자화, 지역화→전도화 5.훈련→양육화로 설명될 수 있다(위의 책). 그러나 문제는 말씀 운동을 통해 특정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지역화가 바로 지역 다락방과 연결되어 "교회의 주위 구역과 기존 교인으로 형성, 심방을 겸하면서 훈련"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 신자를 요원화하여 제자화, 지역화, 전도화, 양육화한다는 것은, 새 신자들을 성숙한 예수의 제자로서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하는 것보다 특수한 다락방 전도 훈련을 통해 그들을 다락방화시킨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기성 교회 내에서 다락방 전도 훈련의 특수 이론으로 무장한 자와 그렇지 못한 신자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장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운동이 교회 분열의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따라서 다락방전도운동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공교회가 지향해야 할 건전하고 성경적인 전도 운동은 아니다.



2. 반박


다락방전도훈련원: 정통신학은 교회를 통한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강조합니다. 류 목사도 교회관에 대해서 철두철미, 그 교회의 목회자와 교회를 통한 사역을 강조합니다. 그가 기성 교회와 지도자들을 초기에는 비판하였는데, 그 이유는 가장 중요한 주님의 소원인 전도에는 등한시하면서 다른 것에 너무나 치중하는 것 때문에 안타까워서 그렇게 한 것일 뿐, 무시하기 때문에 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핵심요원들을 양육하느라 거의 비판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이런 비판이 기성교회와 지도자들에게 누가 되었다면 앞으로 비판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교단의 성명서에 의하면 "기성 교회는 전도가 없는 종교요, 사탄의 교회"라고 했다는데, 너무 심한 표현이며,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인장이 찍힌 일련번호가 부여된 핵심요원만이 진정한 복음의 일꾼이라고 오도하고 교회를 무시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다락방에서 주는 증서는 여타 다른 교육기관에서 그 교육을 마치면 수료증을 주는 것과 동일하며, 그 이상의 다른 의미가 전혀 없고, 단지 그 다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확인하는데 사용됩니다. 그리고 다락방만큼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곳이 없는데 왜 이런 비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되며, 다락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조금 흉내를 내어 하다가, 물의를 일으키는 것 때문에 이런 비판의 소리가 나오는 듯 합니다. 겸손히 이런 비판에 귀를 기울여 교육하도록 건의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성교회의 분열에 대해 언급한 것은 수영로 교회 집회 때였습니다. 그때 참석 대상은 목사님들이었습니다. 목사님들을 상대로 하는 강의 내용은 평신도들을 상대로 하는 강의보다 자연히 어휘의 사용이나 표현에 있어서 그 톤(tone)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들으면 문제가 없는 것이 평신도들이 들으면 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G. 비판측과 반박측의 전체결론


1. 비판측의 전체 결론


박진규 목사: 류씨의 다락방 교리는 이미 두 교단(통합교단, 고신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된 윗트니스 리의 지방교회의 교리를 답습한 것에 불과하며, 기타 이단교리(사상)들이 혼합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필자가 이 책에서 다 밝히지 못한 부분들도 있다.


결국 류씨의 다락방 운동은 그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기성 교회를 넘어뜨리고, 분열 내지는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주의 포도원을 허는 여우'의 역할을 스스로 담당한 셈이 되었다. 또한 그의 강의나 설교, 교재들을 살펴본 결과 교리적으로도 상당히 잘못된 부분이 많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류씨의 다락방 운동은 영적으로 유해한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 교계의 진단이다.


예장고려측: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류광수씨의 다락방 전도 운동은 비개혁주의 신학 사상이요, 나가 비복음주의적이며, 균형을 잃은 신학이라 하겠다. 이는 류광수씨가 심취하고 수용했던 여러 단편적 사상이 혼합주의 형태로 나타난 결과이다. 그의 신학은 성격상 체험과 증거를 강조하는 감정신학이며, 사단, 마귀, 귀신을 중심으로 인간의 죄와 구원을 풀어 가는 일종의 사단신학 내지 축사신학이라 하겠다. 결국 교회사에 자주 등장했던 유사기독교 운동 내지 사이비기독교 운동의 특성을 지닌다 하겠다.


예장합동측: 이 연구가 시간 관계상 다소 미흡한 것이 사실이나,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류광수씨와 다락방 전도 훈련의 내용이 일견 복음적이요, 기존의 교회 주변 운동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믿는 단계와 영접하는 단계를 구분하고 요한일서 3장 8절을 그 핵으로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구원론에 있어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으며, 기존 신자들을 요원화하고 다락방화한다는 점에서 교회론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런 이유로, 다락방 전도 훈련은 구원론에 있어 신자를 오도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 다락방화된 신자와 그렇지 못한 신자 사이에 위화감을 조장하고 분열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다락방 전도운동을 받아들이거나 다락방 훈련 교재 및 테이프 등을 교회 안에서 신자 양육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료된다.



2. 반박측의 전체 결론


예장고려측에 대한 반박: 1) 예장 고려파가 생긴 이유는 고신교단이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것을 반대하여, 석 모 목사를 중심으로 한 몇몇 목사들이 고신교단에 반대하여, 교단을 탈퇴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생긴 교단을 일명 반 고소파라고 초기에는 불렸는데, 지금은 예장 고려파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법정에 고소하지 않는다고 출발한 교단이 고소보다 더 악한 행위를 불신자들도 다 보고, 듣는 언론, 신문, 잡지들을 통해 감행했다면, 비난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2) 세상 법정에서도 피고소인을 불러서 사실여부를 조사한 후에 법정 조치를 하는 것이 상식이며, 6.25때 공산당들이 민족의 지도자들과 기독교인들을 즉결처분을 할 때에도 피고를 형장에 불러놓고, 비록 형식적이지만, 죄명을 말한 후에 사형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고려교단과 그 신학교는 류광수씨나 다락방 전도운동에 관계된 자들을 한 사람도 불러서 사실을 확인한 적이 한 번도 없이 국민일보(1995.9.24)등과 대중 언론 매체에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과 순수한 전도단체인 다락방 전도훈련원을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단체로 매도하는 데에 선봉교단의 역할을 한 것은 분명히 불신자가 볼 때에도 상식 이하의 행동임에 틀림없습니다.


3) 한 사람을 비판하려면 그 사람의 성장 배경, 인격과 사상 등 을 깊이 연구한 후에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고려교단과 그 신학교에서는 이런 상식을 지키지 않고 불신자들이 다 보는 일반 신문에 대서특필로 성명서를 발표하여 류광수 목사와 다락방 전도훈련원의 명예를 크게 손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글의 논리적 근거가 너무나 희박하며, 말이나 글의 문맥상 뜻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것과 동일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단죄하였습니다. 목회자(?)와 학자(?)의 양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고려교단의 성명서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편협적인 것이었으며,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인상이 많습니다.


4) 기독교에서 한 목사와 단체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마치 형법에서 사형을 언도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교단과 그 신학교측은 이런 중요한 사안을 신중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속단함으로 인해 복음화 운동을 엄청나게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서 여러 교단의 수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피해를 입혔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으로 지금 전국과 세계적으로 펼쳐져 가는 다락방전도운동을 다시 한 번 더 평가해 보시기를 바라며, 이 운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잘못 판단하고 속단한 잘못을 하나님께 회개할 뿐만 아니라, 언론.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사과문을 발표하시기 바랍니다.


예장합동측에 대한 반박: 지금 다락방전도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합동측 보고서 등에 나타난 글들을 보면 거의 모두가 이단사이비로 몰아가려고 과장하여 비약시키므로 아는 이들은 보고 비웃습니다. 왜냐하면 류 목사의 근본 의도와 정반대로 비판 정죄하는 글들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다음과 같이 건의합니다. 1) 다락방전도운동에 잘못된 점이 우리 장로교 교리와 신학에 비추어 어떤 점이 어떻게 잘못되었으니 시정하여 하라고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김기동 귀신론과 유사한 것으로 사료되니 잘못된 것이다란 합동측의 방식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된 부분은 잘 고쳐서 전도를 잘 해야 한다는 지도가 중요합니다.




류광수 씨와 다락방 전도학교 보고서(1995년 11월호)- 예장 고신총회  



고신 총회 유사종교 연구위원회 발표문

 한국 교회가 선교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복음의 열정이 있음을 감사 드린다. 교회마다 국내·외의 복음 증거를 위해 힘을 모으고 정성을 쏟아 부으며 21세기의 국내·외 선교를 바라보는 헌신된 마음과 열려진 눈이 있음에 감사하기 그지없다.

 이런 열정들 속에서 근래에 한국 교계에 전도 운동들이 각각의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면서 많이 일어났고 훈련받은 자들의 역할 또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방법과 효과적인 면에서는 많은 사람을 자극하였다 하더라도 지도자의 인격과 신학적인 면에 있어서 드러난 문제점을 안고 나아가는 전도 운동도 있다. 바로 류광수 씨가 이끄는 '다락방 전도학교'가 그것이다.

 이 보고서는 본 총회 유사종교 연구 위원회가 그 동안 조사한 내용에 따라 류광수 씨와 '다락방 전도학교'가 다른 전도 활동과 다르게 교계에 물의를 일으키며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목사의 면직까지 가게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자료를 통해서 첫째, 교리적 측면과 둘째, 도덕성 문제 그리고 셋째, 다락방 전도학교로 인해 빚어진 현재 드러난 피해 상황들을 정리하여 본 위원회 입장을 제언하고자 한다.

 류광수 씨의 교리적 측면

 현재 '다락방 전도학교'가 교계에 물의를 일으키게 된 것은 류씨의 성경해석과 그의 활동의 내용이 다른 이단 집단과의 연계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가 되어 문제가 된 것이다.
 
 위험한 극단성
 그의 성경해석과 강의는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을 뿐 아니라 보편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류씨의 강의를 듣는 사람은 기존 교회의 목회나 제도, 그리고 방법 등에 혼돈을 일으켜 갈등에 빠질 우려가 많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기존 교회의 사역에 부적응하게 만드는 오류를 낳고 있다.

 그의 자료나 강의록(현장복음메시지 1. 2. 3. 및 새 생명 강의록)을 보면 극단적인 확신이나 다른 사람을 향한 극단적인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류씨의 강의록을 읽는 사람들은 때론 자신(류씨)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영혼을 사랑하여 전도의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쾌감마저 느끼게 한다.

 신자 가운데 80%가 사업에 실패합니다…(새 생명 강의록 p.72).

 회의 같은 것 하지 않습니다. 회의 같은 것은 머리가 비슷할 때 하는 것이지 기도 많이 하고…(새 생명 강의록 p.740.

 기도하면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어렵게 만드는 사람 손, 발, 입, 산업, 싹 다 묶어버립니다. 확실합니다… (현장복음메시지 2편 p.120.

 (자기에게 강의 받았던 청년 하나가 따로 다락방 운동본부를 내서 자기의 다락방 모임에 피해를 주었더니) 하나님이 조용하게 이 친구를 녹여버려요. 요새 중성자탄 있지요? 쏘면 조용하게 없어지는 것입니다(현장복음메시지 3편 p.34).

 어려움이 올 때 실패한 그 사람은 기독신자가 아닙니다. 사생자입니다. 그게 특징입니다(현장복음메시지 1편 p.37).

 앞으로 예언합니다만 모슬렘 119개 나라 밥 굶어 죽습니다. 모슬렘 119개 국가가 밥 굶어 죽고 지진으로 망하고 맙니다(현장복음메시지 1편 p.47).

 저는 설교준비를 안합니다. 설교연구도 안합니다. 할 것도 없고 또 해지지도 않고 항상 누구 얘기만 하느냐? 예수님 얘기, 전도만 얘기합니다. 전도 외에 다른 것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도하되 다락방 전도여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전도방법은 기본 원리를 빠뜨린 채 해왔기 때문에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은 완전한 영이기 때문에 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일일이 환상으로 인도하신다. 귀머거리에게는 꿈으로 인도하신다.

 귀신론 그리고 이단과의 연계성
 인간이 범죄하고 불행에 빠지는 것은 죄로 인한 타락의 결과인데 류씨는 이 결과를 무시하고 무조건 마귀와 귀신의 유혹에 빠져 그러하며 특히 미혹의 영(靈)에 사로잡히면 구원의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이 사상은 베뢰아 김기동의 사상과 같은 것으로 이런 사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그는 한국 교회의 98%이상이 마귀에게 사로잡혔고 한국 교회 90% 이상이 싸우고 갈라져서 세운 교회라 하였다(H 교단에서 본 교단 B 노회에 전달한 문서).

 그의 강의 중에 귀신에 관한 이야기와 귀신들린 현상을 적용하는 일에 무리한 점들이 보인다. 모든 질병의 원인을 귀신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인상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우리동네 교회가 하나 있는데 지독하게 싸우는 교회입니다. 얼마나 싸우는지 경찰이 와서 말려주고 하는데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악한 영(마귀)에 사로 잡혀 그런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지금도 싸우고 앞으로도 싸울 것입니다.

 영의 세계 바로 알지 못하는 귀신들린 목사다.

 우리 동네 여자만 보면 겁탈하려고 덤벼드는 녀석이 있다. 왜 그런지 아느냐?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서 그런 것이다. 그는 가망이 없다(이상 K 교단에서 본 교단 B 노회로 보낸 문서).

 직분자 속에 귀신이 들어가니까 귀신 소리하는 것이다(파급단계2. p.9).

 정신병자, 창세기 공부하다 치료 받습니다(현장복음메시지 p.340.

 귀신 들린자 살리라고 해 놓고 귀신 혼만 만들어서 싸움이나 하고 불신자가 귀신들려 가지고 예수 이름 말 안하면 살길이 없는데 우리는 너무 너무 악질이다(파급단계 7. p.9).

 류씨가 B 노회(H 교단)에서 면직된 성명에 보면 그는 김기동의  본거지인 베뢰아 아카데미를 수료한 자이며 산해원 교회(이태화)를 방문하여 그의 지도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991년 10월 15일 S 교회에서 B노회(H 교단) 정치부가 모여 류광수씨가 다른 S 교회 및 또 다른 S 교회 등에서 시행한 전도 세미나 테입과 D 교회 선교관에서 발행한 전도지와 류광수씨의 답변을 종합해 사실을 확인하였다는 보고에 보면 이단성 있는 산해원 교회의 부흥비결을 연구하러 여러 차례 찾아가 조사했는데 특히 5,000명 모일 때 교회 중식자 모두들 차에 태워 보내어 보고 배우게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특히 이단에서는 성경의 비결을 깨닫는데 보수주의는 깨닫지 못 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렇다면 이단으로 가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후 류씨를 불러 이런 내용을 체크한 결과 본인은 극구 부인하며 산해원 교회에 간 것은 옥상의 가건물을 견학하러 갔으며 녹음테입은 내용을 오해한 것이며 전도지는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곧 이후 1991년 12월 24일 류광수씨는 해명서에 김기동파와 산해원 교회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공식 기구인 노회에서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주장한데 반해 본인은 그런 일이 없다는 상반된 내용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기도와 체험

 류씨의 강의는 기도를 하면 반드시 응답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너무 강조하면서 기도를 통한 "체험"이 전도의 원동력임을 거의 모든 강의에서 주장하고 있다(현장복음메시지 2편 p.107, 134, 136, 새 생명 강의록 p.74, 77, 83, 88).

 그리고 체험적 기도 응답이 없다는 것은 곧 예수를 진짜로 영접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도 응답이 없는 사람은 엄격하게 말해서 구원받은 성도가 아니라는 표현인가?

 구원의 관점을 하나님 편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단정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3일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저는 3일을 넘김 일이 없습니다(현장복음메시지 2편 p.120.

 교회 다니는 사람중에 기도 응답 받지 못한 사람을 추적해 보면 예수님을 진짜 영접 안 해서 그래요(현장복음메시지 2편 p.11).

 류씨는 기도응답에 대해 성도는 그가 간구한 내용에 따른 체험적인 응답이 있어야 함과 그 응답은 즉각적인  응답이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국한하여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 편에서 간구의 내용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응답이나 계속해서 기다려야 하는 응답도 있는데 그의 주장대로 한다면 이런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예. 고후 12:8)

 평생을 걸쳐 이루어질 기도의 응답인데 즉각적인 응답이 없다고 그것을 응답받지 못했다 속단할 수 있는가? 뮬러는 그가 죽은 후에도 기도의 응답을 받지 않았던가?

 체험이란 기독교 신앙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임을 우리 모두 인정하지만 류씨의 강의는 기도하면 모든 것이 체험(응답)이다는 공식을 강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강의를 수강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체험을 추구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각 강의마다 참 많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질병과 치유

 인간의 삶에 나타난 여러 고난 가운데 특별히 육체적인 질병은 정말 안타까운 것이다.

 그런데 류씨는 이 육신이 병들고 아픈 것의 원인을 죄 때문에 보고 영적인 밸런스(균형)가 깨뜨려졌기 때문으로 해석하였다(새 생명 강의록 p.102). 그러면서 우리가 자꾸 아픈 것은 성경 적인 아니라고 하였다(3편 p.28).

 그의 이러한 사고(思考)는 히브리 사람들의 견해와 상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인들은 질병의 원인을 죄의 결과로 생각했다. 본인이든 부모의 죄든 죄의 결과로부터 질병이 발생하였음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육신이 병들고 아픈 것의 원인을 죄의 결과로만 볼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이유들이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성경은 실로암 사건을 통해서(요 9:1) 질병의 원인이 반드시 죄의 결과라는 고정 관념을 깨뜨려 주셨다.

 류씨의 견해대로 하면 칼빈이나 루터는 영적인 삶이 없었기 때문에 질병이 많이 있었는가?

 믿는 자가 암이나 기타 질병으로 고생을 하거나 세상을 떠난 것은 성경적이지 못한 것인가?

 또한 류씨는 믿음의 기도를 통한 치유를 많은 부분에서 강의했다(현장복음메시지 3편 p.20∼43 새 생명 강의록).

 이 내용이 조금은 극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질병에서 치유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은 완전히 믿고 맡기지 못해 치유되지 못했는가 하는 오해를 갖게 하고 있다.

 완전히 믿기만 하면 모든 질병이 치유된다면 일반 은총으로서의 의술은 무얼 말하는가? 불신자에게만 필요한 것인가?라고 하는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그는 치료에 있어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또 강조하면서 지나친 면을 보이고 있다.

 현장에 역사하는 분위기가 되면은 손수건만 던져도 됩니다(현장복음메시지 1편 p.32).

 성령치료 받으면 발가락이 문제인 사람은 발가락에 역사가 일어날 것이고 손가락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손가락에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파급단계2. p.7∼8).

 오늘날 믿음으로 기도하면 치유될 것을 우리는 믿고 간구한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지만 나머지 응답에 대한 치유의 부분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기를 소망하시고 그를 향한 계획하심이 있다면 어떤 부분으로도 치유하시겠으나 모든 병이 다 치유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고집은 오히려 그것이 비성경적이지 않는가? 류 시의 극단적인 주장은 오히려 성경을 거스르는 현상을 드러내 놓고 있다.

 류씨는 제 3의 물결의 김남수목사측을 정면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아직 그 단 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는 권세에 대한 견해는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특히 주목된 것은 이초석 목사는 우리 교계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사람이다.

 그런데 류씨는 이 초석 목사가 완전히 성경에 없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그가 사용하는 예수 이름의 권세는 인정하고 있다(현장복음메시지 1편 p.124).

 그렇다면 과연 이단으로 정죄되었다는 것이 무엇인가?

 문선명이도 예수 이름으로 외칠 때 귀신이 떠나가는가?

 그들이 예수를 바로 하나님이심으로 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표적이 참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류씨의 주장은 그의 신학적인 지조를 의심할 만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류광수씨의 도덕성 문제

 음주문제

 요즘 전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를 차지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지도자의 "인격"이다. 지도자의 인격이 성숙되고 많은 사람에게 선한 도전을 주지 못하면 전도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 많은 목회자들의 고백일 뿐 아니라 교회 성장학자들도 이 요소를 가장 큰 요소중 하나로 보고 있다.

 그런데 류씨는 음주운전과 그것으로 인한 인사사고(본인 시인) 및 마산 모교회의 세미나 강사로 참석시 음주 문제로 인해(A 목사 증인) 성직자로서의 도덕성을 상실한 적이 있다

 후에 류씨는 A목사가 B노회에서 증언 한 것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A목사는 다시 B노회 앞에 증언한 내용이 사실대로임을 분명히 입증하였다. 오히려 류광수씨 본인이 약간의 술을 먹었노라고 A목사에게 진술했다고 밝혀 류씨의 음주가 명백한 사실임을 밝혀주었다.

 신임성 문제

 그는 그 후 K교단 B노회에 가입하면 K교단 법(法)에 따라 모든 것을 순종하겠다고 자백했지만 마산 음주 사건이 터지고 나자이 사건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1994년 3월 26일 S 교회당에서 모임을 계획하였으나 참석하지 않고 대신 K교단 가입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견했는지 한번도 공식적인 사과없이 부목사 K씨와 장로 B 씨를 보내 K교단 가입을 일방적으로 퇴진하겠다고 통보를 하여(B노회 수습위원회 보고) 목회자의 윤리적인 측면에서 많은 결점을 드러내 놓았다.

 지금까지의 류씨 행동을 볼 때 상당히 기회 주의자적인 면이 다분히 있을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기성교회에 대한 비난

 류광수씨의 목사면직 공고에 보면 류광수씨는 "기성교회 성도들은 수년간 교회를 다녀도 구원의 확신이 없고 자신들의 다락방에 와야 구원의 확신을 얻어 새 삶을 얻는다"고 하여 기성교회를 비방하고 성도들을 미혹시켰다고 하였다.

 "지금 한국교회는 파선했다. 한국교회 98% 이상이 마귀에게 사로잡혔고 한국교회 90% 이상은 싸우고 갈라져서 세운 교회이다.

 한국교회는 사도행전에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의 말을 듣고 항해를 계속했다가 파선당한 사건과 같이 선장이 잘못해서 파선했다. 한국교회를 구원할 사람은 여러분(청중을 지칭)뿐임을 믿으라.

 교회의 목사, 장로들이 전도에는 관심이 없고 노회로 총회로 정치나 하러 다니며 명예나 이권에 급급해 다니는데….

 깡패같은 교회에는 깡패같은 목사가 들어가야 하고 깡패같은 교회에는 깡패같은 장로들이 있어야 어울리고 우리같이 은혜로운 교회는 나 같은 목사나 있어야 하고….

 교회가 전도나 하면 되지 당회고 제직회고 노회고 총회고 그게 무슨 필요인가?" 등등 기성교회의 교역자나 제도 등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그의 자료들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다(H교단에서 K교단 B노회에 전달한 문서).

 또 그는 기성 교회에서 실시하는 전도 운동을 부정 내지는 비판을 하고 있다. 선교를 놀고먹고 선교비만 탕진한다는 식의 혹평을 할 뿐만 아니라 목사나 장로가 다락방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은혜가 안된다느니 영이 어두운 자들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교회 내에 파당을 일으키게 한다.

 본인은 해명서(1991년 12월 24일)에서 기성교회에 관한 언급에 표현이 서툴러서 혹은 표현의 과격함에 오해를 하신 분께 사과를 한다고 하였으나 살펴본 자료들을 보면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것만은 아닌 무엇인가 기성 교회의 목회자들이 인격을 내리치는 여러 부분들이 그대로 드러나며 어떤 하나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여러 제도들을 쉽게 평가해 버린 무책임함이 많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드러난 현상학적 제 문제들

 조직개요
 다락방 전도학교는 수도권, 영동권, 중부권, 호남권, 영남권, 해외권 등으로 나누어져 있고 초교단적으로 지도위원을 두고 있으며 서울과 부산에 합숙 훈련원을 두고 있다. 전국에 88개의 전도학교를 갖고 있으며 전도 신학원도 10개 정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락방 전도 훈련의 조직은 대략 다음과 같다.
 1단계 합숙훈련 - 일꾼
 전도학교 - 제자
 다락방 - 말씀운동
 팀 사역 훈련 - 사역자
 신학교 - 70인요원
 핵심요원 훈련 - 지역순회 사역자

 고신교단의 참여현황
 · 지도 위원 7명중 4명이 고신 목사이다.
 · 서울과 부산에 있는 합숙 훈련원의 책임자가 고신 목사이며 서울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 사명자 강의를 매주일 오후에 부산과 대구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대구는 토요일 오후 5시부터 본 교단 소속 교회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 전도 학교는 전국 88개중 25개가 고신 교단 교회이며 고신 목사가 지부장으로 16명, 학교장 5명, 총무 2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전도신학원 10개 중 개교회가 고신 교회이다.
 · 현재 다락방 전도 훈련에 참여하고 있는 고신 교단 교역자(목사 강도사)는 약 230명에 이른다.
 · 위 230여 참여 교역자들은 고신 교단 안이 또 다른 교역자와 신학생들에게 참여를 권장하고 있다.

류광수 씨와 다락방 전도학교에 대한 각 교단적 입장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부산노회)
 1991년 10월 14일 제133차 부산노회 본회에서 류씨 안건에 대해서 투표를 실시한 결과 당회장권 1년 박탁, 1년 근신, 1년간 대회일체 금지, 기 조직된 모든 사조직 해체 등을 결정하였는데, 이 징계 조치에 대해 동삼제일교회 전교인과 당회장 류씨는 동년 10월 24일자로 교단 탈퇴 성명서를 내었다(교회복음 신문 91년 11월 18일자). 이에 교단은 상회불신, 불복, 이단 사상 전파 등의 비리를 자행한 것에 대해 관용적 처리로 각성을 촉구하였는데 류 목사가 일방적으로 교단을 탈퇴하였기에 면직을 공고하게 되었다(1991년 11월 26일 부산노회 133회 제1차 임시노회).

 이 류씨의 안건에 대한 심의 과정에서 정치부 목사들은 류씨에게 사과하고 시정을 촉구하도록 하였으나 절대로 사과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 그는 탈퇴성 성명서에서 1991년 10월 24일) 한 번도 징계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 사전에 권면이나 진의를 공식적으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부산 노회는 류씨에 대해 목사 면직을 공고하였으며 경청노회 등 교단 산하 여러 노회는 앞으로 류씨와 관계를 맺거나 다락방 운동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이끌어 냈다(기독신보 1994년 12월 3일자).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고려)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고려)는 1995년 3월 28일 총회장 K목사 명의로 류광수 목사와 '다락방 전도학교'에 대한 건(件)의 공문을 보내 날이 갈수록 그 여파가 심각하게 확산되어 가고 있는 다락방운동이 교회에 내적 물의를 일으킴에 따라 그 대책이 시급함을 인식하고 그와 동역하는 일이나 '다락방 전도학교', '다락방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일체 금하도록 하였고 교단에 소속된 교회나 교역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 노회가 지도토록 하였으며 이후 관계를 계속할 경우 그 책임을 엄히 묻기로 하였다. 또한 류씨의 '다락방 전도학교'와 '다락방 운동'에 관계된 출판물(설교집 및 기타) 테입 등의 사용을 일체 금하도록 하였다(월간 개혁 고려 95년 4월호).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 부산노회)
 합동측 부산노회로부터 입수한 '류광수 씨의 문제점'이란 유인물에 의하면 그의 이단적 사상과 행위가 김기동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된 것과 인간의 모든 죄가 롬 7:15에 인간의 죄성에 연유한 것으로 보지 않고 악한 영, 미혹의 영들의 역사 때문으로 원인을 규정한 내용을 접수하였으나, 부산노회는 류광수씨를 이단으로는 규정하지는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1994년 4월 4일 류씨 수습위원회가 노회장 앞으로 보낸 보고에 의해 당일 노회에서 결의가 된 사항은 부산노회 모든 교회는 류광수씨를 강단에 세우지 말것과 부산노회 모든 기관, 단체에서 주최하는 회집에 류광수씨를 강사로 세우지 말 것을 결의하였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통합)
 위 두 번째 항의 고려측 총회가 내린 결의와 비슷한 입장을 비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다락방 전도학교에 따른 피해 사례들

 우리는 '다락방 전도운동'을 실시하는 모든 교회가 다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 긍정적인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한 개인이나 한 교회라도 피해를 입는다고 할 때 그것만이라도 문제를 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건전한 개혁주의 교단의 교회관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교단 내·외의 피해 사례들 중에 확인된 몇 가지를 소개한다.

 교단 내의 사례들
· 모지방 K목사는 목회적인 피해를 많이 입고 있는 경우이다. 전도 훈련에 참석하고 온교인들이 "목사와 장로들은 영이 어두운 자들"이라고 배타적인 말을 하는가 하면 '성화'에 대하여 비성경적인 입장을 주장하는 데서 많은 부작용을 빚고 있다고 했다. 즉 성화의 과정이 약화된 가르침을 말하면서 "믿는 자는 성화에 이르렀기 때문에 오직 전도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치우치고 있으며 결국 교회 내의 불협화음으로 인하여 전도 훈련을 받고 온 자들도 신앙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모지방의 노회장을 역임한 K목사는 증언하기를 노회 산하교회에서 '다락방 전도 운동'을 실시하고 있는데 목회자가 주일 오후에 훈련을 받으러 가는 일을 두고 말썽이 빚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목사의 단연성에 대한 변명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회간의 갈등이다. 비록 할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교회의 화평을 손상시키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으며 다수의 교회가 그 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였다.

 · 학원에서 섬기는 학생신앙운동 간사인 P목사는 학원에서마저 '다락방 전도 운동'으로 인하여 학생 신앙운동이 방해받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대표적인 학교가 서울의 K대학과 인천의 E대학이다.

 타 교단의 사례들
 · 1994년 12월 17일자 기독신보에 '교회 분쟁 초래한 다락방 운동'이란 제하에 '다락방 전도학교'에 일부 교회들이 참여함에 따라 곳곳에서 물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을 기사화하였다. 안양 P교회는 약 1,000여 명이 넘는 교인들이 출석하는데 다락방 모임에 참여하는 당회장에게 류 씨와 관계를 갖지 말 것을 요구하는 장로와의 대립으로 300여 명이 타교회 또는 시험이 들어 P교회를 떠나는 사태가 빚어졌다.

 ·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사는 J씨에 따르면 담임목사의 '다락방 전도학교' 심취로 교회 행정이 마비되었을 뿐 아니라 영적생활이 피폐해져 감을 투고하였다(기독신보 제1044호). 담임목사는 "류 목사님의 메시지를 공급받기 위해서" 매 주일 부산에 가며 류 씨의 강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주일 저녁집회 시간까지도 무리하게 변경을 하기도 하였고 목사님의 다락방을 추종하는 자는 복음을 이해하는 자이고 그렇지 못한 성도는 "사단의 앞잡이", "복음의 방해꾼"등의 표현을 쓰면서 반 엄포식의 목회를 하고 있다고 투고하였다.

 
·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의 P씨는 1995년 1월 7일자 기독신보에서 밝히기를 당회원들이 담임 목사에게 류씨와의 단절을 요구하고 교회예산을 당회나 제직회 결의 없이 목사가 쓸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려 하자 담임 목사는 이들을 비롯 이에 동조하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방해하는 마귀", "포도원을 해지는 여우", "반역을 일삼는 고라당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라며 "이들을 멸하여 주십시오"라고 주일 예배시간을 이용, 공적 기도를 서슴치 않고 있다니 안타까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동교회는 급기야 폭행사건이 발생해 장로와 몇 명 성도들이 잇따라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목숨 바쳐 주의 종을 지키겠다"는 종교적 맹신자와 목사와의 갈등을 일으키는 성도간에 서로 싸우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서로 질시하고 전화로 상대방을 협박하는 등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 '다락방 전도학교'는 매월 2차례씩 평신도, 목회자를 대상으로 사역자 훈련을 갖는 한편 개교회뿐 아니라 대학생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각 지역 지부장에 본 H교단 소속목회자 및 교회들이 상당수 참여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음을 기사화하고 교단 소속 목회자의 명단을 공개하기도 하였다(기독신보).

 제언

 류씨와 '다락방 전도학교'를 옹호하는 젊은 소장파 목회자들이 류씨 문제의 노회 안건 상정에 대해 만만치 않게 반대 의견들을 내놓았지만 "목사 면직자와의 동역 문제는 이단시비만큼이나 심각한 사안"이라는 반론이 객관적인 지지를 얻어 결국 류 씨 문제가 안건으로 채택되고 결국은 동역금지를 골자로 한 결의가 통과되었다(기독신보 1994년 12월 3일).

 위의 내용에서도 살펴 보았듯이 현재 교계에는 이 운동에 대해 류 씨측과 일부 교단의 상반된 견해만 있을 뿐 범(汎)교단적인 정확한 지침이 없는 가운데 여전히 많은 목회자들이(교단을 불문하고)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고 그로 인한 교회와의 갈등 또한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 총회 유사종교 연구 위원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첫째, 류광수 씨가 모 교단 B노회로부터 면직된 것은 이유 있다고 보며 본 교단B노회이 처사도 합당하게 처리된 것으로 본다.

 둘째, 현재 교단이 120여 교회와 230여 명의 교역자가 참여하고 있는 현실은 가볍게 볼 수 없다 .

 참여한 교회들 중에는 교회 성장이나 화평과 안정에 손해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만 반면에 열매를 얻고 있는 교회가 있는 것도 사실임을 인정한다 .

 그러므로 개인적인 입장에서 전도를 배우는 것은 있을 수 있겠지만 드러난 문제점을 감안하여 볼 때 개인적이라 하더라도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고 '다락방 전도운동'의 조직과 기구에 참여하여 일하는 것은 일체 금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셋째, 법적으로 강단 교류를 하는 H교단에서 목사면직을 받은 사람이기에 목사라는 호칭으로 부를 수 없고 목사라는 호칭으로 부를 수 없는 사람이기에 목사로 가입시킬 수도 없는 일이라 본다.

 넷째, 류 씨를 신봉하는 교단 내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항상 표면적으로 문제가 발생될 수 있으므로 교단의 화합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지혜를 가지고 대처, 처리해야 할 것으로 사료되는 바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11월호).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다락방운동에 나타난 실상(1995년 11월호)

예장 고려총회  



고려 총회 신학부 연구보고서

다락방 운동의 신학사적(神學史的)성격

 참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택자 구원의 전도운동(케뤼그마 운동)을 요구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바로 이것을 위한 구속사였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여러 시대에 여러 모양으로 계시하였고, 이 마지막 날에는 예수님 자신으로 말씀하시었다(히 1;1∼3, 마 1:21).

 그리고 신·구약의 전시대에 걸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라는 이신칭의(以信稱義)(Justification by the Faith only)의 원리가 강물처럼 흘러왔고, 성경은 그 진리를 온전히 계시하고 있다(롬 1:17, 갈 3:11, 히 10:38, 합 2:24).

 그러나 신·구약 성경이 정경으로 확정되기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전혀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 없는 구원의 교리를 유포시키는 운동이 있어 왔다.

 때로는 그 시대에 혜성처럼 나타나 뭇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대역사를 이루는 듯하다가도 끝이 이상하여 사이비 기독교(似而非 基督敎) 운동 혹은 이단(異端)으로 정죄되기도 하였다.

 타락한 인간들이 아무리 은혜와 은사를 받아서 순수한 복음 운동을 전개한다 할지라도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신학적 오류를 범하는가 하면 복음을 왜곡시켜 기독교의 변질을 초래하여 구속역사를 오히려 방해한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신학 혹은 교리적인 면에서 역사상의 수많은 복음 운동을 보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진정한 성경의 계시에 근거한 성경적 기독교 운동은 초대교회의 사도 및 속사도 시대에 전개되었다 그러나 교주시대부터 벌써 동서 기독교의 분할과 함께 신학적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16세기의 종교개혁으로 정상화되었다.

 성경으로 되돌아간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면 또다시 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의 운동을 전개하거나(지성주의 경향의 신학운동), 감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경향(감성 강조의 신학사조)으로 분리될 수 밖에 없는 것이 교회사적 교훈이다.

 교회사적 신학의 추운동(Pendulum movement)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감성을 강조하는 신학과 지성 강조하는 신학이 교대로 즉 반동운동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즉 2세기에 지중해를 강타한 강력한 보혜사 운동인 몬타너스주의(Montanism)는 감성을 강조한 성령운동이었는데, 이에 대한 반동(reaction)으로 2·3세기에는 지성을 강조하는 영지주의(Gnosticism)가 풍미하였다.

 이에 대한 감성적 반동 운동으로 금욕주의(Monasticism)가 일어나 3∼10세기를 지배하였다. 여기서 지성적 반동 운동인 스콜라주의(Scholsticism)가 11∼14세기에 신학적 주류를 이루는 사변신학 혹은 번쇄신학의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지식인들의 현학적 신학에 혐오를 가진 운동이 일어났는데 극도의 감성을 자극하는 14∼15세기의 신비주의(Mysticism)운동이었다. 즉 기독교의 말씀(로고스)과 성령이 함께(Cum Verbo)하는 신앙과 신학 운동을 지향한 성경적 기독교(Biblical Christianity)의 회복 운동이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감성에 치우친 경건주의 및 감리교운동(Pieitism & Methodism)이 17∼18세기를 주도하였고, 19∼20세기는 자연과 역사 연구의 결과로 인본주의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Liberalism)가 전 기독교에 파고들어 구라파 교회를 황폐화시키고 말았다. 20세기에 초대교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운동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Pentecostalism)이었다. 이러한 운동과 함께 극도의 이성과 지성을 추구하는 현대주의(Modernism)가 다양한 유니폼의 신학을 창출하며 20세기의 영혼을 사로잡아 갔다(신학이라기 보다 인간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흑인 신학, 여인신학, 해방신학, 문화명령주의신학, 한의 신학, 민중신학, 과정신학 등의 인간학이다).

 그리고 감성적 은사를 강조하는 신오순절 은사주의 운동(the Charismatic Movement)이 일어나 컬컬한 심령을 만족시키려 하고 있다. 이 운동으로 60년대 이후에는 교파의 벽이 허물어져 버렸고 교파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20세기 신학의 사조도 세계 신학사의 조류에 편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묘한 선교의 섭리로 칼빈주의 신학의 영향과 근본주의적 퓨리탄 신앙이 한국 신학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고, 개혁주의 신학의 원리가 한국 강단을 이끌어 왔다. 바로 1901년 설립된 평양신학교의 영향이며 일본의 한반도 강점과 신사참배의 강요에도 성경의 명령에 따라 끝까지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파수하는 축복을 받았다. 순교의 피를 흘리기까지 정통신앙의 파수에 한국교회는 혼신을 다했다. 6·25 전쟁으로 다시 한번 민족 멸절의 위기를 맞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오히려 교회 운동이 더욱 활발해 졌다. 하나님의 경제적 축복과 함께 한국교회에 베푼 축복으로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교회의 부흥을 맛보게 되었다. 1,200만 성도를 헤아린다는 한국교회는 지금 평신도 선교사를 포함하여 8,0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할 정도의 힘을 가진 교회가 되었다.

 이러한 한국 교회 성장의 과정에는 내적으로 상당한 홍역을 치러야한 했다. 교단 분열의 현상도 문제가 되겠으나, 그보다도 유사 기독교 내지 사이비 기독교의 신흥종교가 우후죽순처럼 돋아났고 수많은 영혼들을 사로잡을 사실이다. 90년대 들어서는 다미 선교회를 비롯한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나타나 1992년 10월 28일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하여 교회에 일대 혼란을 야기시킨 바 있었다.

 지금도 한국 교회 안에 버젓이 기독교의 탈을 쓴 유사 기독교, 사이비 기독교, 이단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대체로 성령의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열정적인 은사주의 경향을 보임과 함께 귀신론에 심취되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 진리를 왜곡하는 중대한 이단의 경향이라 아닐 수 없다. 젊은 층을 사로잡는 다양한 형태의 유사기독교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한국 교회를 다시 흔든 운동이 출현했는데 그것이 다락방 전도운동이라 할 수 있다. 기성 교회의 목회자를 비방하며 성도를 교회에서 떠나게 하고 자기들이 주장하는 복음의 대열에 서지 않으면 구원 마저 의심하게 하고 있다. 불신자에게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신자는 예수님을 재영접하지 않았으므로 구원해야 한다는 망상에서 소위 한국의 무디, 웨슬레 운동을 꿈꾸며 맹렬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 운동이 목회자들에게 특별히 매력있는 운동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교회부흥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다락방이란 사실상 교회에서 행하는 구역예배와 다른 것이 없는 데도 세계적인 발명품인양 따라서 하고 있고, 다락방 운동의 교회가 무엇이며 신학적 배경에 대한 검증을 생략한 채 무조건 추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 류광수 씨의 신학의 배경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 등 개혁주의 신학의 근간이 없이, 젊어서 배웠던 이상한 사상으로 독특한 혼합주의 형태의 다락방 운동을 창안하게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는 한국 교회의 부흥과 전도의 열망에 성경이 아닌 이단사설을 섞어서 만든 메시지로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박진규 박사가 쓴 "다락방 전도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와 "류광수 씨 다락방 전도운동의 성경 신학적인 문제점 비교대조표" 그리고 "류공수 씨의 전도신학의 문제점"이란 글을 참조해보면 류광수 씨의 신학의 뿌리가 네 가지임이 드러난다.

 첫째는, 권신찬의 구원파 사상이요, 둘째는, 김기동의 귀신론(베뢰아 아카데미), 셋째는, 한만영의 귀신론(그레이스 아카데미), 그리고 넷째는, 위트니스 리(Witness Lee)의 지방 교회 신학이다.

 그 증거는 그들이 접근할 때 던지는 세 가지의 질문에 나타난다.

 첫째, 구원받았습니까?(구원파의 영향을 받은 것), 둘째,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구원파와 지방교회가 사용하는 방법), 셋째, 예수 영접했습니까?(지방교회의 영향) 여기에 나오는 구원파, 귀신론 그리고 지방교회(회복교회)는 이미 한국 교회에서 사이비 혹은 이단으로 정죄된 사상이다.

 이제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류 씨의 허구성이 천하에 공개되었지만 그이 이후에는 최근 카나다의 빈야드(Vineyard) 운동이 또 한국 교회를 혼란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21세게는 고도의 정보화 지식 축적 사회로서 심령의 고갈 상태를 채우며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출현하리라 전망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위축된 감성은 어떻게 표출될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시대를 바로 이끌어 갈 신학은 바로 종교개혁원리로 형성된 신학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기독교의 초자연적 요소와 현실적 요소가 설명되는 개혁주의 신학인 것이다. 신학은 철도의 레일과 같다. 신앙의 열차가 달리기 위한 신학이 새삼스러이 강조된다. 우리는 그의 메시지와 그의 행위로 나타난 결과론적인 혼란상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그 내용을 공개하는데 지금까지 나타난 것을 종합하면 그의 신학은 판단컨데 일종의 사단신학 내지 축사신학이다.

 비개혁주의 신학임에는 틀림없고 복음주의적인 사상도 아니다. 균형을 잃어버린 일종의 감정을 전도를 통한 체험을 유도하는 신학운동이다.

 교회사적으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종의 유사 기독교 내지 사이비적 성격을 띤 한시적 교회운동이라 하겠다.

 다락방 전도 운도의 신학적 문제점

 이제 그이 신학이 과연 어떤 신학인지 살펴 볼 차례이다.

 그가 행한 설교와 강의가 다락방 추종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고 또 다락방을 통해서 일반 성도에게 파급되는 상황에서 다락방 전도 운동의 문제란 역시 류광수 씨의 사상과 메시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본 연구는 기독교의 진리가 가장 잘 조직화된 7영리의 체계에 맞추어 그의 신학성을 성찰해 보고자 한다.

 기독교의 7영리는 개혁주의 신학교의 정규교육과정을 주류를 이루는 것인 바, 신학 서론(종교, 계시 및 성경), 신론(Theolo효 Proper), 인죄론(Anthropolgy), 기독론(Christology), 구원론(Soteriology & Pneumatology), 교회론(Ecclesioligy), 그리고 종말론(Eschatology)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류광수 씨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그의 신학적 문제점을 찾아보자.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 전에 아직도 류광수 씨의 신학이 옳다고 착각하고 추종하는 목회자들이 발표한 변호성 성명과 일부 지방 기독교 신문에 게재된 변호성 기사를 짚어보자.

 류광수 씨의 신학이 건전하며 하나님이 축복으로 지금의 사역을 한다고 변호하는 성명서를 각 지역 대표를 비롯한 1,000명의 서명을 받아 몇 군데 기독교 유인물에 게재하고 있으니 그 사태가 심각하다 할 것이다.

 1995년 9월 17일자 "기독교 호남저널"에 실린 그들의 성명서를 읽어보자(134쪽 참조).

 참으로 서명에 동참한 목회자들이 어떤 힘에 이끌리어 이렇게 주장하는지 모르지만, 서명한 목회자 중에는 이미 상회(노회)에서 당회장권이 정지된 분들도 있고, 교회를 분리했으면 했지 끝까지 다락방운동에 동참한다는 지사형 목사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상 이 분들은 류광수 씨의 좋은 면을 보고 추종을 맹세하고 있으나 우리가 제시한 본 보고서를 참조하면 목회자의 본분을 깨닫고 자기 목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은 신령한 젖으로 양무리를 인도하게 될 줄로 믿는다. 류 씨에게 얻어 온 밥으로 자기 교인들을 양육하는 일이 중지될 것이다.

 한편 류광수 씨는 한국교회에서 자신의 전도 운동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자 일반적으로 사이비 기독교가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즉 "명예회복 위해 법정에 고소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교회복음신문(95. 7. 17)은 1면과 7면에 류광수 씨에 관한 변호성 기사를 싣고 있다. 1면에는 "목사 면직 결의 무효확인 제소, 명예회복 위해 법정 투쟁도 불사"라는 제목으로 앞으로 법정에서의 귀추가 주목된다고 보도한 후, 7면에 "류광수 목사 베뢰아 관련설은 낭설: 민·형사법 총동원 명예 회복 강력 의지"라고 제목을 달았다.

 그리고 결론부에서 예장(합동) 교단 K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고 같이 마무리 하고 있다.

 "… 현역 목회자들이 법정에 서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며 당시의 회의록 내용을 변조한 당사자들은 이제라도 류 목사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류 목사 역시 너그러운 마음으로 화해 차원에서 용서하는 아름다운 결과로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한 교계 인사는 속마음을 조심스럽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부산기독교신문(95. 7.23)은 집중취재의 형식으로 "다락방 전도훈련원의 정체를 밝힌다"는 제목 하에 부산 동삼제일교회 류광수 목사는 과연 이단인가라고 부제를 단 후 "베뢰아 아카데미 관련설 사실무근: 변론도 없이 재판 속결 정치성 짙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류광수 씨 측에는 이 두 신문을 전국의 주요 신학교 등에 보내어 자신을 변호하는 홍보를 하여 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목사의 진정한 명예 회복은 무엇인가?

 그가 진정한 주님의 일꾼이라면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것 없다. 목사가 목사를 법정에 가릴 것 없다. 목사가 목사를 법정에 고소하는 자체는 이미 고린도전서 6장 1∼11절의 말씀을 위배한 것이며 참으로 무익하다. 그가 자신을 변호하는 깊은 하나님의 공회에 순복하며 자신이 설사 억울한 조치를 받았다 하더라도 살아 계신 주님을 믿으면 그 신원이 풀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목사 재심청구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잘못이 있으면 회개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인데 그는 끝까지 자기의 의를 주장하고 세력을 규합하여 한국 교회를 무시하고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와의 정치적 논쟁은 처음부터 관심이 없다. 다만 그의 메시지에 나타난 비개혁주의적, 비복음적 내용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통하여 한국 교회 앞에 사실 자체를 알리고 바른 진리 운동을 전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싶은 것뿐이다.

 개혁주의 입장에서 그의 메시지에 나타난 신학성을 평가해보자.

 계시 및 성경관의 혼미

 마귀 계시 및 성경 외의 계시를 주장
 그의 주장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함부로 하고 있다.  

 성령이 여러분을 인도하시도록 기도하라. 어떻게든 성령은 인도하신다. 꿈을 좋아하는 사람은 꿈으로, 환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환상으로, 말씀을 좋아하는 사람은 말씀으로 인도한다. 하나님을 이해한대로 인도하신다 …성령 치료받으면 발가락이 문제인 사람은 발가락에 역사가 일어 날 것이고, 손가락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손가락에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성령은 완전한 영이기 때문에 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일일이 환상으로 인도하신다. 귀머거리에게는 꿈으로 인도하신다(파급 단계 2).

 또 다락방 파급 단계 3에서는 마귀의 계시를 언급하고 있다.

 마귀가 주는 계시를 알아야 합니다. 알고 나면 여러분이 교역자이면서 복음을 굉장히 막고 있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것 눈을 떠야 합니다. …그게 마귀가 계시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계시, 하나님만 계시하는 것 아닙니다.
 마귀가 계시해 가지고 여러분이 진짜 이것 못하게 합니다….
 마귀 계시를 받아 가지고 자기는 잘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어쨌든 행정, 조직 열심히 하면서 그게 나쁜 것 아니거든 그러면서 복음만 희미해진다.

 평가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성경을 계시의 종결로 본다. 성경을 넘어가거나 벗어나는 것은 성경 자체가 금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리라"고 하였다.

 그는 마귀가 계시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은 성경에는 마귀의 말이 있다는 말이고 결국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물론 성경에는 마귀의 말을 인용하나 그 모두는 성령님의 완전한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는 결국 성경의 완전성과 영감을 부인하고 있고, 지금도 성령을 통한 계속적인 영감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조명(Illumination of the Holy Spirit)을 분간하지 못하여 사용한 듯하나 그의 성경 계시관은 이미 비복음적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성경의 자의적 추정과 해석
 그의 주장
 류광수 씨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걸 못 깨달으면 하나님이 몇 명 장례식을 한다. 두고 보라 그랬습니다. 아브라함 부르는 걸 못 깨달으니까 아버지 부르고 형님 부르는 게 아닙니까? 보통 운동이 아닙니다… 우리의 말씀 운동이 시대적인 사명입니다(창세기에 나타난 다락방 메시지).

 …아브라함 보고 아브라함아! 자꾸 안나가려고 하니까 아마 내 생각인데 롯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형 아닙니까? 이 형이 못 가게 한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형을 불러간 것 같아요.

 끝까지 말씀 앞에 버티면 하나님이 불러가 버리는 거여. 그래가지고 아브라함이 가면 되는데 또 빌빌 돌아 다니는 거여. 어디를 가느냐 하란으로 가는 거 있지요. 하나님이 또 부르는 거 있지요. 거시서 아브라함의 아버지 불러 가버린 거 있지요. 아마 내 생각인데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자꾸 불러들인 거 같아요. 그래놓고 재차 말한 것이 창 12장입니다…(압제 당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사도 바울에겐 안수나 아나니아에 대한 설명 또한 이상하다. 사도행전 9장에 비로소 등장하는 그의 과거를 추정하여 설교하고 있다.  

 첫째, 아나니아, 예수님 당시 은혜 받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사실은 아나니아는, 70인 요원은, 제자가 사도가 아나라는 것이지, 제자들이 받는 훈련을 다 받았어요. …두번째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행 1:1∼14절에 이미 아나니아는 보통사람이 아니고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명령한 것 있지요. 그것을 기억한 사람이에요 …행 2:1∼17 그냥 일꾼이 아니지요. 그리고 이 아나니아는 행 2장에 나타난 제자훈련에 참여된 자입니다. 행 2:41∼47 그러니까 여러분은 기도제목을 붙잡아야 됩니다. 아까 말했듯이 한 지역을 어떻게 살릴 것이냐? 이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나니아가 파송 받은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평신도입니다. 평신도 아나니아에게 세계적인 전도자 사울을 맡긴 것을 알아야 돼요. 그 정도 여러분이 그릇이 돼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미래를 흔들 지도자를 하나님이 맡길 수 있겠금 되어야 합니다. 아나니아가 목사가 아니잖아요. 그냥 지역에 말씀 운동을 펴고 있는 평신도인데요.

 …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전혀 이름을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이름이 사울이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이 거론도 안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목사 뒤에 보다 여러분 뒤에 진짜 임무를 갖다 붙여 놓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나니아가 사울을 키우는 것입니다(지역을 살리는 일꾼 아나니아).

 그 외에도 창세기의 노아의 방주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안 썩는 나무를 택해야 되겠어요. 안 썩는 나무를 택해야 되고 거기다가 다른 사상 안들어오도록 틈 사이에 역청을 발라야 되겠어요. 조직적인 예수 운동을 빨리 펴야 되겠어요 …너를 위하여 잣 나무로 방주를 만들어라. 방주 만드는 하나님의 능력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보통사건이 아니에요. 지금 말씀 운동 펴란 말은 여러분의 후손을 위하여 …다른 말씀 운동 펴면 안돼요 …(94년도 전도 신학원 집회)

 평가

 그의 설교는 참으로 추정과 자기 생각 그리고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가득 차 있다. 아브라함의 소명과정에서 그의 시나리오가 가능하겠으나 본문에 언제든지 충실하지 않는 설교는 생명성이 없다.

 그가 설교한 창세기 11:31∼32의 성경본문을 보자.

 "데라가 그 아들 아브라함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새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고 하였다. 이 본문의 말씀으로 다락방 전도 운동에 동참하지 않거나 못 깨달으면 장례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류광수 씨는 70인 핵심 요원의 성경적인 근거로서 아나니아를 아주 실감있는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설명하고 있고, 결국 목회자보다 평신도가 복음 사역에 더 큰 사명이 있는 것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가능성은 있지만 본문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성경은 그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면 멈추는 것이 개혁주의 목사의 자세이다.

 그는 다락방 전도를 강조한 나머지 성경 전체의 내용을 살피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한가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무모한 성경의 인용과 해석은 성령의 영감과 하나님의 진정한 계시를 왜곡한다 하겠다.

 그가 젊은 20대에 영적인 병에 시달리다가 어느 순간에 창세기 3장을 보고 전 성경이 열린 경험이 있다고 하였고, 기도하고 전도하니까 모든 성경이 깨달아진다고 하였다. 여기에 그의 한계가 있다. 그는 누구로부터 성경 해석의 원리를 정확히 배웠다기보다 스스로 성령의 감화로 다 깨닫게 되었기에 그의 성경 해석은 상당히 풍유적이며 심지어 성경에도 없는 내용을 자의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메시지는 듣는 자에게 전혀 새로운 성경의 해석 혹은 계시로 인식되어 그의 메시지를 받으려고, 류광수 씨의 집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가 하면 심지어 주일 날 비행기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목회자가 있었다. 자기 목장의 양들을 내버려두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그의 메시지를 사모하여 합숙 훈련을 참석하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성경 절대 의존 신앙과 신학만이 한국 강단을 기름지게 할 것이고 하나님의 진정한 구속 역사 성취의 방편이 되는 것이다.

 신론과 인죄론의 오류

 천사 동원권의 강조
 그의 주장
 류광수 씨는 기도를 강조하는 가운데 천사의 동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연약한 줄 알고 사단을 이기도록 성령으로 우리를 늘 인도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뭘 합니까? 분명히 성경에 보니까 하늘 문 여시고 누구를 보냅니까? 하늘에 천사들을 보내사 뭐합니까? 기도 응답을 주십니다(영적 축복).

 기도한단 말은 일곱 가지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가만 앉아서도 사단을 결박시키고 가만 앉아서도 천사들을 움직이고 …(야곱과 에서).

 네 번째 구원받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 천사 동원권입니다.

 성경을 분명히 봐야 됩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러 가면 …주임이 천사를 동원 시키십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주의 천사가 나타나 옥문을 열었습니다. 물론 옥문을 열은 것은,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사가 사람을 활용한 것입니다. 어떻게 역사할 지 모릅니다. …히브리서 1:14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창조한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요,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종노릇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분명히 창조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다가 나왔을 뿐 아니고 바울이 풍랑 만났을 때 그날 밤에 주의 사자가, 전도하러 가는 여러분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주님이 여러분을 다스릴 뿐 아니라 우리 옆에는 누가 있지요? 주의 천사들이…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가는 곳에… 천사들을 동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천사들을 심부름 시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우리의 종입니다(다락방 개요 - 수영로).

 사단을 이기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니 하나님의 비밀을 보는 눈이 열려버렸다. …오늘 밤에도 가다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차 미끄러져 안 넘어지는 이런거 말고 천사들을 도우너해서 응답의 전도문 선교문 열리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집회 갔는데 하나님이 기뻐가지고 하늘문을 여시고 하는 군대를 동원합니다. 맞습니까? 그러면 다 뒤집어 집니다(아비멜렉이 본 여호와).

 평가
 천사가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은 스콜라 신학 때 유행하였습니다. 그의 기도를 하면 천사가 동원된다는 생각은 다니엘의 사자굴에서 건짐을 받을 때의 설명들에 근거를 둔 것이지만 천사 동원 사상은 잘못되었다. 원세호 박사는 이러한 천사 동원권은 베뢰아 귀신론에서 다루는 문제라 하였다. 은연중 류 씨가 기도의 강조와 함께 천사를 동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개혁주의 신학은 아니다. 주님이 천사 동원권을 가지고 있고 성도가 천상에서 천사를 부릴 권세가 있으나 이 세상에서 성도가 기도하면 언제든지 천사를 동원할 수 있다는 생각은 New Age 사상과 상통하며 귀신을 결박한다는 사상은 '베뢰아'에서 기원하고 있다. 김기동 씨의 책 '믿음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을 읽어보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므로 우리에게 천사를 보내 주십니다(p.128). …베드로가 옥에서 빠져 나온 것은 놀라운 이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철문을 뚫고 그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천사가 동원된 것은 곧 합심기도의 결과입니다(p.137)."고 하였다. 그리고 김기동 씨의 책 '마귀론'에서는 "습관이 되면 미혹의 영이 되어 이를 회복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기는 방법은 천사를 동원하여 능력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고 하여 류광수 씨의 천사동원권의 원천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그리고 김기동 씨의 '사람에게 접근하는 영'이란 책은 "우리가 예수를 알게되면 구원이 있게 됩니다. 또 신유를 알게 되면 역사가 나타나고 귀신의 존재를 알게되면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천사에 대해 알게 되면 그를 볼 수도 있고 또 그의 힘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천사는 집에서 파출부 대신 집이나 지키며 밥이나 하고 빨래나 빨아주는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후사들의 하는 일을 도우라고 보냄을 받은 영입니다(p. 193)."고 하였다. 그래서 류광수 씨가 베뢰아 아카데미를 수료한 것으로 말하는 것이며, 설사 그가 김기동의 얼굴을 모른다 해도 그의 사상은 그와 통하고 있는 사실은 부인할 길이 없다.

 사단론으로 모든 현상 설명(죄와 사단의 일체설)

 그의 주장

 개혁주의 신학은 신론에서 타락한 천사로서 사단을 취급하나 그렇게 비중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대부분 사단에 관련되어 있다.

 창세기 공부하기 전에 인간의 큰 문제는 죄와 사단의 출현입니다. 이것부터 공부 안 하면 3장이 이해가 잘 안되겠지요. …하늘의 천사가 타락했습니다. 마귀가 된 것입니다. 예, 특히 루시엘은 찬양 담당이었지요. 그래서 찬송이 참 중요합니다. 이것이 창3장 1∼6절에 보니까 내려와서 아담, 하와를 넘어뜨린 것입니다 …전부 정신 돌은 사람은 사단 때문에 그랬느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그런 경우가 많아요 …(다락방 선교의 메시지).

 마귀 얘기만 나오면 겁을 내는 사람이 있어요. …성경에 분명히 있어요. 아담, 하와를 꺽는 마귀는 감히 누구에게 도전하느냐? 예수님께 도전했고 이 사단은 …지금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마다 시험에 일어나는 거 보면 똑 같습니다. …교회마다 들고 일어나는 중직자들 보면은 똑 같습니다. …뭐 전도가 뭐 어떻다 전부 핑곕니다. 원래 사단이 그래요(94전국 전도 신학원 집회).

 인생의 모든 문제는 …죄도 아닙니다. 죄가 사단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단이 죄를 가지고 인류를 넘어뜨리고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만 해결한다면 우리에게는 응답의 큰문이 열릴 것입니다(다락방 파급 단계2).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사단에게 묶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지, 이 사람은 복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단에게 묶여 놓으니까 우상 숭배해야 되고 귀신 섬겨야 되고 점쳐야 되고 굿해야 되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단에게 묶인 자는 죄 가운데 빠져서 일평생 저주의 프로그램을 지키다가 지옥에 간다는 사시리을 아는 자입니다. 이것 깨달은 사람은 복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모든 문제 해결된 것입니다 …하나님 못 만나면 아무리 모아 놓아도 축복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게 복음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눈에 안보이게 여러분들을 야금야금 쪼개 먹는 것입니다. 사단 요것 꺾는 것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이걸 누려야 합니다.

 복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냐, 여러분 기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복음은 여러분 가슴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여러분 입으로, 손으로, 발로 역사 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주위에는 마귀가 꺾이고 저주는 떠나가고 성령은 임하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잊어버리는 만큼 사단에게 여러분이 당하게 돼있는 것이고 기도 안하는 만큼 당하게 돼있는 것이야. 아니 학자가 복음을 이해해야지 안 그래요. …학자가 사단을 모르니까 뒤에서 자꾸 건드리는 것이지요. …그게 무슨 학자입니까?….

 안디옥 교회가 무슨 운동을 폈느냐?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당신 저주와 운명과 미신에서 빠져 나와라 이게 다락방입니다(다락방 파급단계 5).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죄하고 사단하고 딱 붙어 다닙니다. 언제든지 분리가 되지 않아요.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복음이 아니란 말이요. 보통 지금 말하는 사람은…(EBS양육).

 우리가 죽어서 성령됩니까? 살아 있을 때 성령… 그러니까 구원에 대해서 잘 알면은 그런 실수 안 할 건데 불신자 살아 있을 때 악령이 따라 다닙니다. 그 사람 죽어버리면 영혼이 갇혀 있다가 악령은 가만히 그 영혼은 후손을 괴롭히잖아요(복음편지 테이프).

 평가
 죄와 사단의 일체를 주장하는 류광수 씨의 인죄론은 개혁주의 신학과 거리가 멀다. 죄는 사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말씀 즉 행위 언약을 어긴 것이다. 사단의 개입에 의한 인간의 불신앙과 불순종이 죄인 것인데 류 씨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의 마귀 문제의 해결에 복음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사단과 마귀로서 구원뿐 아니라 전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데 이는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Witness Lee, 이상수, 1905∼)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정동섭 교수가 쓴 '그것이 궁금하다'에서 위트니스 리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는데 류 씨의 사상가 맥이 통한다.

 "그리스도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사단을 가지고 있는 인간(Man with Satan)을 사망과 무덤으로 데리고 가서, 사망과 무덤에서 사단이 없는 인간(Man without Satan)을 데리고 나왔다. 그리스도는 사단을 무덤 속에 장사지내고 매장했다. 자, 이제 이 부활한 인간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 성육신에 의하여 하나님은 인간 안에 들어 왔다. 부활에 의하여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되었다. 이제 하나님이 인간의 영속에 계신다"(p.249).

 위트니스 리의 이단 사상은 죄를 사단과 동일시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위트니스 리가 죄를 사단으로 만들며 의인화(擬人化)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단을 죄로 만들며 비인격화하는지 분명치 않으나 죄와 사단을 동일시하는 것은 크게 성경을 벗어났다. 류광수 씨가 죄와 사단을 구분할 수 없다는 일체사상은 마귀의 진멸을 회개하고 파악하기 때문에 그렇다. 성경을 억지로 해석한 결과이며 잘못된 사상의 영향으로 이러한 괴설을 주장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의 설교에서 "영혼이 갇혀 있다가 악령은 가만히 그 영혼은 후손을 괴롭히잖아요."라고 한 것은 귀신을 불신자의 사후 존재로 보는 김기동의 귀신론과 같은 생각이다. 김기동은 그의 '귀신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고 할 때 불신자의 영을 귀신으로 취급한다는 말입니다. 그가 죽는 순간까지는, 회개하지 않고 살았을 때는 귀신 노릇한 것이고 죽었을 때는 귀신인 것입니다."

 잘못된 삼위일체론 수용 및 인간의 신격화 주장
 그의 주장
 그의 다음 주장들을 조심하여 들어보자.

 더 확실한 것은 고린도 전서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 알지 못하느뇨?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신다. 우리 안에 누가 계신단 말이지요. 하나님이 계신다. 이것 보고 삼위일체, 그래 삼위일체 교리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단들은 전부 삼위일체를 부인하지요(EBS 양육 테이프 2).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에 부딪힐 때 누가 살아납니까? 영이 살아납니다. 영이 살면 즉각 우리의 마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심령이 …살아나면 즉각 어디로 전달되느냐? 뇌로 전달됩니다. 뇌로 전달되면 어디로 갑니까? 신경으로 열결됩니다. 신경으로 연결되면 온몸으로…관절 골수(복음편지 강의 테이프 3).

 세 번째로는 창조의 복을 강조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 이 말은 사단의 간섭받기 전이기 때문에 무한한 능력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어마어마한 축복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요걸 놓쳐 버린 것 있지. 마귀 때문에, 그래서 우리 인간이 개발하면 끝이 없습니다. …인간은…노력하게 되면 어마어마한 능력이 나옵니다. 원래 인간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만난 축복은요? 무한한 가능성을 축복했습니다. 그거를 강조해야 됩니다. 창조했다는 말을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만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럼 이거 얼른 이해되지요? 왜 이것 뺏겼겠습니까? 우리는 회복됐다 이말 아닙니까?(복음편지 강의 테이프 3).

 평가
 그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신비적 연합을 말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트니스 리의 삼일 하나님과의 연합사상이 스며 나오고, 마귀를 진멸하므로 마침내 인간은 무한한 능력의 회복을 주장하므로 한만영의 사상과 맥을 같이하고 말았다.

 위트니스 리(Witness Lee)의 진리공과 1단계 제 4권에 류 씨와 같은 사상이 서술되어 있어 충격을 받는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또한 삼일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우리가 회개하고 그 분 안으로 믿고 침례 받은 후 우리는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과 연합하게 된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연합되므로 그분의 거룩한 생명과 성품을 갖고 그분과 생명의 관계와 성품을 가지며 그로써 유기적인 연합을 산출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아들 하나님과 연합되므로 그분 안에 넣어지고 그분 또한 우리 안에 계신다. 이와 같이 우리는 그분과 하나됨으로 그분과 동일한 생명과 성품과 생활과 행동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또한 성령 하나님과 연합되므로 우리의 생존과 어떠함과 생명과 생활을 위하여 본질적인 면에서 그분을 우리 안으로 영접하였으며, 또한 우리의 영적인 일과 기능을 위하여 우리 안에 임하는 능력의 영으로 그분을 영접하였다. 우리는 삼일 하나님과의 이같은 놀라운 연합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105쪽).

 특히 위트니스 리는 "그는 거듭나는 것은 신인이 되는 것, 거듭 나는 것은 하나님 자신과 우리의 영이 혼합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 데(정동섭, 그것이 궁금하다 p.245), 한만영의 신화(神話)사상과 유사하다. 한만영은 그의 '그레이스 아카데미 강의록'에서 "하나님의 입장은 마귀 진멸을 위하여 인간을 이용하신다. 그리고 기도하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사용하는 인간은 하나님과 같은 수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동안 신령과 진정으로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pp. 222∼223)."라고 주장 하였다.

 그렇다면 류광수 씨의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정통 교리의 삼위일체 신론이 아닌 위트니스 리의 삼일 하나님 교리로서 사위일체이며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신인(神人)합일의 교리로 분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박진규, 류광수 씨의 전도신학 문제점 p.2 & 류광수 씨 다락방 전도운동의 성경 신학적인 문제점 비교 대조표, p.8).

 기독론의 오류

 성육신의 목적 오해
 그의 주장
 류광수 씨는 철저히 성육신의 목적을 요한 일서 3장 8절에서 찾고 있다.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계획에 세운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과 전혀 관계없이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뭐하셨느니라?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란 모르고 있는데 하나님이 길을 여셨다 이것입니다. …누구를 보냈느냐? 예수… 하나님 보내셨습니다. 두 가지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요한 일서 3장 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완전히 끝내 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영적인 부분을 모르면요? 인생에 대해서 절반은 모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인생 전체를 모른다고 봐도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중요한 것은 하나도 모른다고 봐도 됩니다. 그 인생 자체는 실팹니다 …모르면 무식꾼 아닙니까? 중요한 걸 모르면 …하나님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심이라 …보통 말이 아닙니다(복음편지 강의 테이프 3).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심이라. 죄하고 사단하고 딱 붙어 다닙니다. 언제든지 분리가 되지 않아요(요 8:44, 요일 3:8).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강단에서는 언제든지 이기(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의미) 선포되어야 합니다. 성경 66권이 전부 이것 선포하도록 다각적으로 계시를 주는 것입니다(EBS 양육 강의 테이프2).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이 말씀이 이해되야 그때부터 창세기 3:1∼6, 16∼20 무엇 때문에 고난 당하는가 알게 돼요. 이기 이렇게 되어져야 구약의 예수님은 뭐한다고 피를 흘렸는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해야만 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왜 졌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평신도 기초 전도 이론6).
 
 평가
 류광수 씨의 복음은 요한일서 3장 8절이다.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것으로 진술한다. 마태복음 1장 21절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분명한 목적을 계시하였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분명한 성육신의 목적을 밝혔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은 택자 구원의 과정 즉 죄인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로 보아야 되는데, 그가 유독히 요한일서 3장 8절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김기동과 한만영의 귀신론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기동 씨의 '마귀론 상권'에 "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만을 기록하고 그의 일만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것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그의 아들을 보내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pp.23∼24)"고 분명히 밝히고 있어 관계를 부인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한만영 씨의 '그레이스 아카데미 강의록'에는 "그레이스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펼쳐온 신학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정을 안다. 하나님의 의도 =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사정이 어떠하시기에 창조계획 전부터 있었느냐? 하나님의 사정은 마귀 진멸이라는 대명제가 있다. 일반신학의 명제 = 구원, 구원론 놓고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를 다룬다. 그러나 인본주의이다. 하나님의 입장은 마귀 진멸을 위하여 인간을 이용하신다(pp. 222∼223)."고 하였다.

 한마디로 그들의 성육신 목적의 진술은 잘못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바로 깨닫지 못한 류광수 씨의 전도신학은 그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다.

 요한일서 4장 2절에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라고 했는데 그 목적을 잘못 알고 잘못 가르치는 것도 문제가 되리라 본다.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고 그것은 구원의 과정상의 문제임을 명심하자.

 사단배상설로 그리스도의 속죄설명

 그의 주장
 류광수 씨는 성육신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속죄의 원리 역시 뒤틀리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때부터 마가복음 10장 45절 대속물로 오셨던 …대속물이라는 말은 뭔가 갚아 주는 것 아닙니까? 사단에게 모든 우리의 실패의 대가를 전부 다 갚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 주님이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뭔 말인가 아시겠지요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셨습니다(평신도 기초 전도이론 강의 테이프 6).

 평가
여기서 말하는 우리의 실패의 대가를 지불했다는 말은 신학적으로 사단 보상설 혹은 사단 배상설(賠償說)이라고 한다. 이 설은 개혁주의 신학에서 거부되는 속죄이론이다. 초대교부들이 사단에게 속가(贖家)를 보상했다는 설을 주장한 바 있으나 곧 폐기된 설이다. 라보드(Rovert S. Rapp) 및 김달생 박사는 공저 '바른 신학 362p'에서 사단 배상설을 설명하고 훌륭한 비판을 하고 있다.

 "사단 배상설은 특히 오리겐이 주장한 것인데 다음가 같이 설명된다. 즉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했나 할 때 그것은 사단이 정복의 권세로 택자들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택한 백성들을 위한 배상으로 사단에게 속전을 헌납하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사단에게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사단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석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단 배상설은 매우 그릇된 이론이다. 만일 이 이론이 옳다면 사단을 높이고 하나님을 낮추는 결론이 나오고 말 것이니 이것은 성경의 교훈과 전연 부합하지 않는다. 속죄의 대속물은 사단에게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그 이유는 사단은 죄인에 대한 법적 청구권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죄인의 행방을 위하여 보상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속물(代贖物, Ransom)로 주신 것은(막 10:45) 분명히 우리의 죄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죄의 값을 사단에게 지불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값을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지불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어찌 사단에게 값을 지불함이 되겠는가?

 그는 아무렇게나 말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사단 배상설이나 다른 이론을 알고 주장한다고 할 수 없다. 사단과 그리스도를 성경해석의 축으로 삼다보니까 한 성구만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하겠다.

 구원론의 오류

 사단에서의 해방을 구원으로 생각
 그의 주장
 그는 사단에서 해방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할 수 있다면 두손들고 두발까지도 다 들고 축복해 주고 싶다. 주일 날에도 나는 9시 몇 분에 교회를 간다. 차를 직접 몰고 간다. 구석 구석에 사람들이 …놀러 간다. 순간 내 마음 속에 나도 놀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일날 어디 가고 없으면 되겠는가? …지금 힘을 잃은 백성들이 저 골목에서 학교에서 공단에서 다 죽어가고 있다. 사단에 공격받아 다 죽어가고 있다. 이들에게 가서 사단을 꺽는 생명을 공급시켜야 그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누리고 증거하기를 바란다 …사람을 살리는 길이 있다. 살려줘야 되고 사단에게서 풀어줘야 되는 것이다. …주님의 능력의 말씀 이기는 길을 꼭 말해야 한다.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는 예수를 영접해야 한다. 사단의 권세, 공중 잡은 자가 지금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날마다 해방 받아야 한다(서울 전도신학원 강의).

 새 신자에게 당신이 지금부터 완전히 축복을 받는 길이 뭐냐? 사단에게서 해방 받았기 때문에 사단의 풍속에서 벗어나라 역시 안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창세기에 나타난 전도 메시지).

 지금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이 세상은 저주 가운데 빠져 들어가고 …거의다 모르고 있는 마귀 사단의 세력에 묶여서 사람들은 죽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메시지만 계속 말하면 지금 현재 어떻게 되느냐? 성령이 역사해요. 그리스도만 계속 말하고 들으면 지금 당장 해방이 돼요. 모든 귀신, 세상 이런 것에서 해방돼요. 그리스도 계속 말하면 지금 당장 권세가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사단이 꺽이고 하늘 군대들이 동원되고 그렇습니다(아비멜렉이 본 여호와).

 평가
 류광수 씨의 구원관은 개혁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에게 있어서 구원은 철저히 사단과 연관되어 있다. 그는 죄를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 하고 그 원인 제공자가 사단이므로 사단에게서 해방되는 것, 사단의 권세를 이기는 것을 구원으로 이해한다. 사단 문제만 해결되면 구원이 된다고 보고 있다. 사단 문제만 해결되면 구원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구원은 주 안에서 전도의 문이 열리고 축복을 누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종말론적인 미래적 구원보다는 현세적 능력과 은사의 체험 등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강조한 나머지 귀신과 사단을 삶 속에서 축출함으로써 구원을 느끼며 살자는 것이다. 주님을 영접할 때 사단은 쫓겨 나가지, 사단을 쫓아내므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구원은 그가 말하는 그 이상이다. 아들의 권세로 영생하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는 중생과 여러 번에 걸쳐 일어나는 성화의 개념을 착각하므로 이와 같은 주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인생최대의 선물이고 마침내 영광의 보좌에 동참하게 되는 것인데 그는 구원을 사단에게 해방되는 것으로만 이해했다.

 궁극적 구원의 부인과 반구원설 주장
 그의 주장
 그는 한번 구원받아도 넘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구원받아 놓고도 넘어질 수밖에 없으니 그리스도의 생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 받아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단에서 다락방에서 생명의 말씀이 계속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 놓고 또 넘어진다(서울 전도 신학원 강의).

 구원받은 사람도 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죄를 자꾸 반복하면 무디어져 버립니다. 그러면은 죄 자꾸 짓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되지요. 그린도 전서 5장 5절에 보면 그 육체는 어디에 내어 주고? 마귀에게 내어 주고 영혼을 건지기 위함이라. 여러분 육체를 멸해버리고 여러분 영혼을 어떻게 해요? 건지리라. 그러니까 똑바로 살아야 되지요(다락방 개요8).

 평가
 사실상 고리도 전서 5장 5절의 말씀은 이해하기 난해하다. 여러 주석학자들에게 논란되고 있지만 한마디로 영혼만 구원받고 육체는 마귀에게 내어준다는 것, 즉 반구원설(半救援說)은 개혁주의 해석이 아니며, 다른 사상이 그에게 유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기동의 '마귀론 상권'에 "고린도전서 5장 1절 이하에 계모와 통간하는 음란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이방인에게도 없는 일이기에 육체는 사단에게 내어 줌으로 멸하게 하고 영은 주예수의 날에 구원이나 얻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받은 것이기에 그들이 구원은 받으나 미혹의 영에 이끌려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p.145)."는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위트니스 리(Witness Lee)의 '고린도전서'란 책에서 그 출처를 발견할 수 있다.

 "죄 있는 사람을 사단에게 내어주는 것은 징계를 위한 것이다. 5절에 언급된 멸한다는 것은 주로 어떤 질병으로 인한 심신의 고통을 말한다(고후 12:7, 눅 13:11, 126). 육신은 멸해져야 할 정욕적인 몸을 말한다. 어떤 질병은 사단으로부터 온다. 그와 같은 질병은 그의 영이 주님의 날에 구원받을 수 있도록 육신은 멸하는 데 이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죄악을 인하여 그의 죄악된 육신을 파괴함으로 주님의 날에 구원되는 상태로 유지되도록 징계 받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육신을 멸함은 구원받기 위하여 필요한 준비이다(p.9)."

 참으로 성경 전체의 정신을 오해한 해석이다. 인간의 구원은 전인적 구원이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육체는 구원을 못 받고 영혼은 구원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죽은 육체와 영혼이 결합하여 영생의 상태에 들어가게 할 것인데 성화 과정에서 넘어질 지라도 궁극적으로 구원받는 진리도 그는 간과하고 있다.

 강력한 예수 재영접의 주장
 그의 주장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보면 구원을 위한 예수의 재영접을 강력히 주장한다. 먼저 들어보자.

 창 11:1∼14절에 바벨탑을 쌓기도 하고 별짓을 다합니다. 구원의 비밀을 모르는 자들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저도요 옛날에 구원을 못 받았을 때는 뭐든지 좋은 것은 아 저게 좋은 것인가 보다. …사람의 기준이 없어요. 도둑놈도 기가찬 대도(大盜)를 보면 아! 매력이 있고…(아비멜렉이 본 여호와).

 요한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영접한다는 말은 또 잘 모르고 있는데요 전도를 하려면 영접이라는 말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교회 다닌다고 해서 신자는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가운데 이 부분(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구원받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느냐? 이게 또 중요하거든, 이런 것을 우리 머리 속에 언제든지 넣어 있으라고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서 일으켜 세워야 됩니다. 우리는 영접하면 끝나는 줄 압니다. 영접한 이후에 더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있지요 …구원받은 이후에 비밀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기존 신자를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EBS 양육 2).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단계(사 53:5, 요사 1:2), …그 다음에 믿는 단계, 세 번째가 영접하는 단계…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이 내주 합니다. 그 성령은 영원히 거합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합니다. 마귀권세에서 해방합니다. 우리의 내세를 보장합니다. …네번째가 시인하는(고백하는) 단계(로마서 10:29), 그 다음에 나타내는 단계…거기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다락방 개요 수영로 8∼9).

 평가
 다락방에서 영접이란 말은 요한일서 3장 8절의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마귀 쫓아내기 위해 오셨고 3년 동안 마귀 추방하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능력이 오고 기도응답을 받는다는 논리이다.

 요한복음 1:12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에서 영접하는 자나 곧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라는 말은 현재 분사형으로 동격을 나타내고 중복성이 아닌 지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류광수 씨는 여기의 영접과 믿음을 별개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믿음의 단계를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어디서 왔겠는가? 그의 말대로 어느 날 갑자기 터진 것인가?

 위트니스 리(Witness Lee)의 성경요도(聖經要道) 1권을 보면

 "요한복음 1:12 …복음과 주 예수의 구속에 찬성하더라도 그것을 믿음으로 여길 수 없다. 믿음에 찬성과 인정함이 포함되었지만 믿은 그 자체는 영접이 아니다. 찬성과 것과 인정한 것이라 해서 반드시 영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접한 것은 반드시 찬성하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접만이 믿음이다(p.105∼106)"고 하였다. 류 씨 역시 그와 같은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성교회 성도들이 빠져버린다.

 수십 년 예수님을 믿었으나 영접하지 못했다는 착각에 빠져 교회를 불신하고 다락방의 메시지에 심취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류광수 씨의 메시지에 감화를 받아 지금까지의 교회생활과 신학교에서의 말씀의 연단과정도 헛것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구원의 비밀을 깨닫는 것과 예수 영접을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므로 아직도 교회 다녀도 주님을 모르면 다시 주님을 영접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은혜를 받았다고 좋아한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서정상 중생은 단 한 차례 일어나며 그가 말하는 영접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성화과정에서의 새로운 은혜의 체험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성도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는 체험적 신앙이 분명히 있으나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하에 진행되는 하나님의 오묘한 손길, 즉 느끼지 못하고 주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유치한 신앙의 차원이라 할 것이다.

 교회관에 왜곡(기성교회는 전도가 없는 사단의 교회로 간주)
 그의 주장
 그의 기성교회관은 심각하다.

 한국교회 98%가 지금 시험에 들었습니다. …한국교회 90%가 싸움에서 쪼개져 생겼대요. 그것도 내가 낸 통계가 아니고 …책에 나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국교회 98%가 마귀한테 잡혔어요 …인기, 명예 따라 움직이면서 복음하나도 안전하고 복음전하는 것 다 막고 …너무 한국 교회가 컬컬해요(다락방 개요 - 수영로11).

 영의 세계를 똑바로 모르는 교역자는 무당보다 못해요(다락방 개요 - 수영로8).

 마귀 손에 붙잡힌 사람은 집사가 돼도 변화 안됩니다. 마귀 손에 붙잡힌 사람은 장로가 변화 안됩니다(다락방 개요 - 수영로8).

 마귀가 이것을(다락방) 막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지면 안돼요…다락방은 마귀가 막습니다. …저는 15년을 해 왔는데 제게 훈련 받은 교역자들이 많아요. 음으로 양으로 하다가 그만둬요. 주로 그런 사람 보면 잡탕교인 만들어요(다락방개요 - 수영로9).

 나는 여태까지 대한 예수교 장로회 싸움하는 것만 보았거든…여가 천국이지 싸움하는 곳이 보수 신학인가? …(다락방 개요 수영로 7).

 평가
 전장에서 다락방 전도 운동의 성격을 분석하였듯이 류광수 씨의 교회관은 잘못되어 있다. 그는 기성교회는 사단이 역사하는 종교로 간주하고 교회의 중직자에 대하여 상당한 혐오감을 노출하여 왔다.

 자신들은 진정한 복음운동을 하고 자신은 전도를 위한 특별한 소명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고 있다고 가르치나 그의 교회관은 어릴 때의 잘못된 시각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하겠다.

 자신의 인장이 찍힌 일련 번호가 부여된 핵심 요원만이 진정한 복음의 일꾼이라고 호도하는 것도 교회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는 평신도로서 장로가 되었다면 목사님을 잘 섬겼을 것이란 말도 하고 있으나 그는 본래 교회의 목사와 장로 때문에 교회 출입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다면 그가 기성 교회를 무시하고 자신의 운동만 부각시키면서 균형과 합력하여 주의 나라를 이뤄야하는 덕목은 팽개쳐 버렸다. 그의 다락방 전도 운동은 선풍적인 일시적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성도간의 이간 및 반목질시, 심지어 교회가 분리되는 현상을 초래하고 말았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반드시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인데(약 3:13∼18), 그가 주도하는 전도운동은 결국 교회에 유익보다 어려움을 안겨주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많은 교단과 교회에서 진정한 정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과 함께 총회와 노회에서 다루고 있는 등 해결의 기미가 있어 다행이라 하겠다.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류광수 씨의 다락방 전도 운동은 비개혁주의 신학 사상이요, 나아가 비복음주의적이며, 균형을 잃은 신학이라 하겠다. 이는 류광수 씨가 심취하고 수용했던 여러 단편적 사상이 혼합주의 형태로 나타난 결과이다. 그의 신학은 성격상 체험과 증거를 강조하는 감정신학이며, 사단, 마귀, 귀신을 중심으로 인간의 죄와 구원을 풀어가는 일종의 사단신학 내지 축사(逐邪)신학이라 하겠다. 결국 교회사에 자주 등장했던 유사(類似) 기독교 운동 내지 사이비(似而非) 기독교 운동의 특성을 지닌다 하겠다.

 전도는 류광수 씨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이요 주님의 마지막 지상 대명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다. 지금까지 교회는 이 복음운동을 열심히 해왔다. 하나님은 자기가 세우신 몸된 교회운동을 통하여 구속 역사를 계속 진행하실 것이다. 우리는 성경 계시에 의존하여 성령이 역사에 순종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는 그날, 구속의 목적이 성취되는 날 그 일은 끝날 것이다. 목회자는 자기 목장에서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주님의 양무리를 인도하고, 온 성도는 목자와 더불어 성경적인 기독교 운동을 전개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기를 기원한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11월호).



교단적 규제에 직면한 다락방 운동(1995년 12월호)

장운철Kofkings@korea.com월간 <교회와신앙> 기자


                    교단적 규제에 직면한 '다락방 운동'
         고신 고려 등 "엄중경계 요망" 공식조치에 류광수 씨 강력 반발
         합동 통합측도 '류 씨 이단성' 연구 착수...'다락방' 치명타 전망


류광수 씨는 최근 '다락방운동'에 대한 장로교단의 이단성 연구 결과(교회와신앙 95년 11월호 참조)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류 씨는 지난 10월 31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을 비롯 고려, 예장, 합동개혁, 합동 등 각 교단이 발표한 류 씨의 이단성 관련 보고 내용에 대해 "전부 틀렸다"면서, "한두 사람이 본인을 음해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인터뷰 기사 참조).
위 교단들의 연구 결과가 다락방운동을 공식적으로 '이단'이라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각 교단들의 결의가 동시다발적으로 다락방운동과의 교류 및 류 씨의 강사 초빙에 대해 '일체 금지'를 골자로 한 것은 '이단 규정'에 준하는 결과로 향후 다락방운동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번 연구 결과들이 류씨의 이단성 문제에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진행중'을 뜻하고 있어 류 씨의 이단성 논란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그 이유는 우선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통합 양자 교단이 류씨 문제에 대해 적극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91년 류 씨의 목사 직을 면직시킨 바 있는 합동측은 이미 '류 씨와의 관계 금지' 결정을 내린 고려, 고신, 예장, 합동개혁 등의 교단들보다도 강도 높은 연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내년 총회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단 연구에 가장 활달한 활동을 하고 있는 통합측도 류 씨 문제에 대한 공식 대처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씨의 이단성'을 묻는 동 교단 북노회의 '질의'가 이미 접수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통합측의 이단규정 과정과 결과를 볼 때 내년 총회 연구보고 수준은 위 교단들의 결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단 문제로 인한 피해가 한 교단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현실인식 하에 장로교단 외의 교단들도 직간접적으로 류 씨 문제를 다룰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겠다.
다락방운동에 대해 여러 교단들 내에 강성기류가 형성되어 가자 류 씨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그때그때에 맟춰 높이고 있다. 수차례 교계신문을 이용한 것을 비롯, 기자회견, 국민일보 5단 광고, 그리고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언론행위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류 씨는 자신의 이단성 관련 지적에 대해 신학적으로 구체적인 변증보다는 '말의 실수' 또는 '걱정 안해도 된다'는 식의 해명으로 일관하며 한편으로 법적 대응 등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다락방 운동'은 최근 '뜨레스디아스'나 '쓰러짐 현상' 등과 같이 한국교회 내에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바람' 중 하나이다. 특별한 '무엇'이 있어야 부흥된다는 한국교회의 분위기가 이 바람과 맞아 떨어진 모습이다. 만약 이 바람이 '이단적'이라는 범 교단적 결의가 확산되고 그 영향력이 구체적으로 미치는 상황이 되면 한국교회는 치유를 향한 내홍을 크게 겪게될 것이다. 류광수 씨의 이단성 유무에 대한 교단적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요즘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12월호)


광수 씨의 이단성은 무엇인가(1996년 7월호)

최삼경sam5566@hanmail.net월간 <교회와신앙> 발행인


서론 : 본 글을 쓰는 필자의 마음

한국교회에는 이단논쟁이 그칠 날이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한 편에서 어느 집단이나 사람을 이단이라고 하면 다른 편에서는 이단이 아니라고 하고, 또는 `하나님이 아닌데 누가 누구를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느냐',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터인데 웬 이단논쟁이냐'는 식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런 논쟁은 그치지 않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락방 전도훈련원의 류광수 씨의 이단성 논쟁은 최근에 한국교회의 이단논쟁의 핵심 중에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계속 교계 주간지들과 모 일간지를 통하여 다락방이 이단이 아니라는 광고를 하고 있으며, 필자에게는 하루가 멀다 하게 다락방의 이단성을 묻는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

그 동안 필자는 한국교회의 유익이라는 명분 하에 많은 사람들의 이단성을 밝혀 왔다. 그러면서 필자에게는 남이 모르는 많은 고민들이 있다.
그 하나는 만(萬)의 하나 필자 중심의 이단 규정이 될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개인의 감정 때문에 누구를 이단이라고 한 일이 없다고 자부하며, 또 어떤 사람에게 십(拾)이나 백(百)의 이단성을 느끼면서 그것을 천(千)이나 만(萬)으로 확대하거나, 또는 반대로 만이나 천의 이단성을 백이나 십으로 축소하지 않으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필자의 진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필자의 이단 논쟁이나 규정이 객관적으로 옳다는 증거가 되지 못함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필자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지적해 준다면 언제라도 수정 및 사과할 뜻이 있다. 이것은 필자의 주관적인 진실이지만 독자들과 특히 류씨 편에 있는 사람들이 필자의 진실을 최소한 최대한 이해해 주기 바라며 글을 쓴다.

또 다른 하나의 고민은 성경이 비판하지 말라고 한 그런 의미의 비판을 할까 염려스럽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참과 거짓을 가리지 말라는 말도 아니요, 더욱이 이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은 분명히 아니다. 그런 의미라면 이단 비판은 물론 이 땅에 설교까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목사도 거짓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의미의 비판자가 될까 염려스러워 늘 가슴을 치며 기도하고 있다.

필자가 류씨의 이단성에 대하여 정리할 필요를 느낀 것은 류씨를 이단으로 정죄하자는 것보다 어떤 것이 참이냐를 밝히자는 것이다. 이 점을 류씨나 그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해 주기를 외람스럽게 바라며 글을 쓰는 바이다. 류씨의 말처럼 신학을 한 배경이 류씨나 필자가 같다는 점에서 기준도 같을 것이다. 감정적인 논쟁이 아니라 신학적이고도 성경 해석적인 논쟁이 되기를 바란다.

I. 한국교회에 류광수 씨의 이단성이 문제가 된 과정

문제의 발단은 1991년 11월 26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이후 예장 합동) 총회 소속 부산노회가 133회 임시 노회에서 류광수 씨를 면직시킨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이단 집단과의 관련성, 기성 교회에 대한 비판, 교회의 분열을 조장, 그리고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사고를 내고 도주하다가 잡혀 수감된 일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후 류씨는 면직 당한 목사로서 그냥 다락방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활발히 해옴으로 이 운동은 계속 커지게 되었고, 따라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모르겠으나 교회에 문제를 일으킴으로 정통 교회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결국 여러 교단과 사람들로부터 이단인지 아닌지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개인의 연구는 그만두고 교단의 연구만 개괄적으로 살펴 보겠다.
먼저는 예장 합동측 교단으로부터 류씨의 이단성 여부를 다시 연구하기에 이르렀고, 역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이후 예장 통합)에서도 연구 중이니 그 결과는 이번 가을 총회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감리교 등 무려 6~7개 교단들이 류씨의 이단성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연구를 완료한 교단들이 있다. 먼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이후 예장 고신)에서는 1995년 9월 18~22일 제45회 총회시(총회장:이금조 목사) 류광수 씨의 다락방 전도훈련원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정하였다. 이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측(이후 예장 고려)에서도 1995년 9월 19~21일에 열린 제45회 총회시(총회장:김태윤 목사) 역시 류씨의 사상을 비복음적이요, 비개혁주의적이란 이유로 참여를 금지시켰다. 그리고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측(이후 예장 개혁)에서도 1995년 19일~22일까지 열린 제80회 총회시(총회장:정종환 목사) 이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던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1996년 가을에 예장 합동측의 재연구와 예장 통합측의 연구 결과가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 보여진다.

II. 그 동안 류광수 씨에게 제기한 문제점들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나 교단적으로 류씨에게 문제를 제기한 내용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윤리적인 문제요, 다른 하나는 교리적인 문제이다.

A.윤리적인 면에서 지적된 내용은 무엇인가?

사실 류씨의 비윤리적인 문제는 필자의 관심의 주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 류씨의 비윤리적인 부분에 대하여 언급된 것은 두 가지라고 본다.
우선 이 일이 사실이라면 류씨로서는 감추고 싶고 수치스러운 일이겠지만, 예장 합동측 부산노회의 보고에 의하면 음주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었고 뺑소니를 하여 구속된 일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신문지상에서 종종 목사가 뺑소니를 하다가 잡히는 경우를 보고 어떤 점에서 동정심을 느낀다. 필자라도 순간의 판단을 잘못하여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씨의 경우 음주 운전과 뺑소니가 사실이라면 먼저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에 대하여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그렇게 된 상황은 순간적인 것으로 어느 정도 이해와 동정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아무런 언급도 없이 그냥 넘어가려는 것은 공인으로서 가질 태도가 아니며 더욱이 목사로서 그럴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웬일인지 자신을 공격하는 다른 내용에 대하여는 변증을 하면서도 이 점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변명한 것을 찾을 길이 없으니 그것이 무엇을 말해 주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류씨가 이 점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밝혀주기 바란다.

두 번째로 지적된 것들은 대부분 교회와 관련된 부분이다. 물론 이것도 교회관에 관계된 교리적인 부분이 될 수 있다. 필요한 부분은 교회론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예장 합동 부산노회에서 류씨를 교회 행정에 순종하지 않는 목사로서 기본 자세가 정립되지 못한  자라고 한 말이나, 정통교회 98%가 마귀에 사로 잡혔으며 90%는 싸우고 갈라져 세워졌다고 비방하여 정통교회를 부정한다는 말이나, 예장 고신측에서 류씨의 과격한 말이나 극단적인 표현들을 문제 삼은 부분은 여기에 속한 것들이다. 류씨는 여러 교단이 자신을 이단시하는 교리적인 내용들 중의 대부분의 것은 자신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교단의 몰이해나 오해 또는 자신의 말의 실수를 확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몇 가지 교리는 자신이 보는 시각에는 잘못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천사동원권' 같은 것이 그것이다(필자는 류씨가 천사동원권에 대해서는 그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밀도 있게 비판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류씨가 웬일인지 말의 실수라는 전제하에 자신의 말의 과격성 같은 것들은 시인한 바가 있는 것이다(본지 95년 12월호 참조). 어쨌든 필자는 류씨가 더 선명히 자신을 이단시하는 근거와 내용에 대하여는 물론 비윤리적이라고 지적받는 부분에 대하여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능동적으로 시인과 사과 및 회개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B. 교리적인 면에서 지적된 내용들은 무엇인가?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이제부터 독자들은 류씨에게 이단성이 있다고 지적한 내용들이 류씨의 말처럼 교단들이 류씨의 사상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류씨가 이단적인 말과 사상을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가르쳤으면서 그것을 시인하면 이단논쟁을 피할 길이 없으니까 피하려는 류씨의 일시적이고도 임시방편적인 변명인지, 아니면 류씨가 어쩌다 한 실수요 교단은 그것을 억지로 확대해서 그를 이단으로 몰아 세운 것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필자가 보기에 그 동안 류씨에게 지적된 교리적인 내용들은 여러 가지인데, 필자 편에서 논쟁할 만한 핵심은 3가지라고 보여진다. 가능한 평가는 뒤에 결론 부분에서 하고 오직 소개만 하도록 하겠다.

1) 교회관이 잘못되었다
류광수 씨가 한 마디로 교회를 해롭게 한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말로는 “교회는 98%가 마귀에 사로 잡혔으며 90% 이상이 싸우고 갈라져 세워졌다.”는 말로 시작해서 “한국 기독교에 강력한 도전 세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위의 98% 마귀에 사로잡혔다는 말이 류씨의 말처럼 어쩌다 한 실수였는지, 아니면 그의 중심 사상에서 나온 말인데 그 말이 자신의 전도 활동에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실수였다고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실제적으로 여러 교회들이 다락방운동으로 인하여 교회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필자에게도 적지 않은 상담 사례가 있다. 과연 이 운동 속에 반교회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통교회에 유익을 주는 운동인데 정통교회가 그들을 이단시하니까 자구적 본능으로부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아니면 류씨의 사상은 그렇지 않은데 밑에 있는 사람들이 류씨의 사상을 잘못 전달해서인지, 또는 교회에 발생하는 일반적인 문제일 뿐인데 그것이 다락방이라는 운동과 함께 얽혀서 발생함으로 다락방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방법과 절차에 따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류씨의 교리 자체를 살펴보고 나아가 현상학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류씨의 교회관에는 문제가 없는데 현상학적으로는 문제가 발생할 수는 없을 것이요, 현상학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류씨의 교회관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류씨의 교회관을 면밀히 살펴보고 또한 다락방을 공부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즉 류씨나 이 다락방운동을 우상화 내지는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는지, 또는 이 운동을 전도의 수단 이상으로 보고 있거나 교회 이상의 운동으로 보고 있는지 보아야 할 것이다.

종종 이 운동에 관여한 사람들 중에 이 운동에 “목숨을 걸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다락방 편에서 낸 광고 문구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다. 이 말은 참으로 위험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다락방에 목숨을 걸었다고 말하는 사상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과연 목숨을 걸어도 될 만한 운동인가?

2) 정통교인들을 다락방의 구조 속에서 예수를 다시 영접시킨다
류씨는 다른 점에 대해서도 그러했듯이 이 점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다. “믿는 자에게 재 영접해야 한다는 말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상식 밖의 이야기임을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고백합니다.”(국민일보, 1996. 5. 2. 광고)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해졌다. 만일 류씨의 사상 속에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말하는 의미 이상의 영접의 의미를 가지고 있거나, 그리고 다락방을 한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교인들에게 예수를 다시 영접하도록 말하고 권고하는 경우가 있다면 분명히 이는 이단적인 행위요 사상임을 류씨도 인정한다는 말이다.

결론 부분에서 류씨의 사상속에 예수를 믿는 자에게도 다시 영접해야 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 증거를 제시하고 비판하겠다.

3) 마귀론의 영향을 받았다
이 점이 류씨가 이단이냐 아니냐의 핵심 문제라고 본다. 즉 그의 신학의 핵심 부분에 김기동 씨의 마귀 사상이 차지하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즉 마귀를 멸하려 오신 예수를 알아야(요일 3:8) 예수를 아는 것이요, 예수를 믿는 것이요, 그것이 예수를 진정으로 영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류씨가 어떤 부분에서는 김기동 씨를 비판하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류씨의 `천사동원권' 같은 것도 바로 마귀론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류씨는 이것도 부정한다. 자신이 김기동 씨의 베뢰아 아카데미를 수료했다는 말은 헛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류씨가 김기동 씨의 베뢰아 훈련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것이 류씨에게 김기동의 귀신론적인 영향이 있느냐 없느냐는 답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공부를 한 사람도 사상은 다를 수 있으며, 직접 가서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고, 그보다는 직간접적인 영향은 없었어도 사상은 똑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류씨에게는 귀신론의 영향이 있다. 이 점도 결론 부분에서 그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고 비판하겠다. 그것이 김기동의 귀신론이냐 아니냐는 상관이 없다. 단지 그의 신학의 핵심 부분에, 즉 구원론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비성경적인 마귀 사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필자는 귀신론, 또는 마귀론의 영향이라고 하는 것이다.
기타에는 그의 사탄 보상설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위의 사상을 그의 이단성의 핵심으로 보고 논지를 제한하여 진행하겠다.

III. 류광수 씨 편에서 하는 변증의 내용은 무엇인가?

다음은 위의 지적들에 대하여 류씨나 류씨 편의 사람들이 글과 말로 하고 있는 답변들을 필자 편에서 분석해 본 것이다.

A. 전도의 열매가 많이 맺히며 능력과 기적이 일어난다

이 다락방 운동은 1992년 9월에 `1단계 전도합숙훈련' 제1기생을 시작으로 그 뒤로 4년 남짓한 지금까지 100기가 넘도록 이 훈련 과정이 진행됐으며, 훈련받은 인원만도 1만명이 훨씬 넘는다고 말하며 그 중에 3,000명 이상이 교역자라고 한다(목회와 신학, 96년 2월호, pp.182~183).

그리고 저들은 이 다락방 운동을 통해 침체되어 가고 있는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독특하고도 유일한 운동 같은 인상을 준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훈련을 받았고 더욱이 이 운동을 통하여 초등학교 전도, 중.고등학교 전도, 대학교 전도, 무당 전도, 개척교회 전도, 큰 교회의 증거, 선교사들의 증거를 열거하며 자신들이 이단일 수 없다는 것이다(국민일보, 96. 5. 18. 광고).

언제나 자신들을 통해 일어나는 선교의 역사와 기적적인 사건들을 자랑하고 강조하고 있다. 류씨의 설교 테이프에서 직접 인용해 보자. 천하에 똑똑한 사람도 자신들을 통하여 일어나는 기적을 보기만 하면 아무 말도 못한다는 것이다.

'천하없이 똑똑한 사람도 증거 앞에는 할 말이 없어요. 그렇지요? 우리 교회 예배 때마다 증거 나타나고, 자꾸 밀려들어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여러분이 주님 살아 계신 증거를 보이는데 아무리 지식인도 말 못해요.'(류광수, 복음편지, Vol. 3B).

좀더 살펴보자. 위의 신문에 난 글 중에 재미있는 말이 있어서 하나만 직접 인용해 보고 싶다.

'얼마 전에는 `심진송' 무당이 대한민국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떠든 바가 있었습니다. 우리 요원 목사님 한 분이 청와대 비서실장 장로에게 전화해서 언론이 자제하도록 요청한 바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흥시에 있는 심진송 무당집 근처에 봉고차를 세워 놓고 점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1:1로 전도를 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예수 영접하고 복체를 헌금하고 돌아간 증거가 많습니다. 심진송 무당은 견딜 수가 없어서 서울 강남구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 시간 심진송 윗집에서 다락방 말씀운동을 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 어느 누가 심진송에게 전도했습니까?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심진송에게 전도하는 다락방 전도요원들이 사이비입니까? 사이비요 이단이면 심진송 무당이 웃을 것입니다.'(국민일보, 96. 5. 2. 광고)

물론 이 말은 무당까지 전도하는 자신들을 알아 달라는 말로 들을 수 있다. 류씨는 웬일인지 전도의 이유와 방법마저도 우상숭배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마귀, 귀신, 우상숭배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증거이다. 류씨는 1996년 2월 5일자 <한국선교신문>에서 “전도해야 할 이유가 뭔가?”라는 항에서도 전도의 이유를 오직 우상문제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우상을 청와대로 옮겨 놓고 실패의 종말을 맞이했고, 5·18 사건에 휘말린 전직 대통령도 우상숭배를 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한 분은 팔공산에 우상을 만들어 놓고 지금도 고난을 당하고 있으며, 일본이 망한 것도 신사참배를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나라에는 30만의 역술인과 50만의 무당이 있음을 말하며 전도의 이유를 말하였다.

칼뱅은 말하기를 인간은 우상 제조기라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항상 우상숭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우상숭배는 전도를 해야 하는 하나의 소극적인 이유는 될 수 있지만 적극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위의 말 중에 일본이 망한 것도 신사참배 때문이라는 말도 얼마나 억지스러우며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또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말인가? 일본은 패망 후에도 신사참배와 우상숭배가 더 증가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우상을 제일 많이 숭배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지금 최상의 번영을 누리고 있음은 그의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 않는가? `이제 앞으로 망한다'고 하겠는가?

물론 하나님의 백성을 제하고는 다 망하게 되어 있다. 비록 도덕적으로 선해도 말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지만 불신 자체가 우상숭배요, 또 불신은 우상숭배를 가져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은 전도의 의무를 류씨의 말처럼 우상숭배와 연결시켜 말하고 있지 않다. 전도는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에게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가 해야 할 당위인 것이다.

또한 필자가 볼 때 류씨가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혔다고 하는 광고를 보고 그 사실성을 확인하기에는 구체성과 신빙성이 약하다는 것이요, 또한 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이비 이단이 아니라는 증거로 보는 그 시각에 참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성경의 예언과 오늘날 이단의 현실을 보면 이단이 더 많은 사람을 미혹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터인데, 어떻게 그런 논리를 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자신이 바른 신학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이단인지 아닌지 잘 안다는 말을 하는 점에 비하면 모순된 말로 들린다.

위의 광고를 볼 때 사이비 이단 문제를 무당을 기준으로 하여 말하는 점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류씨의 신학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모든 사람들과 교단들은 무당마저 웃기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이 건전한 신학이라고 말하고 있는 교단들, 즉 류씨로부터 건전한 신학으로 이루어졌다고 인정받은 합동측과 고신측 교단이 류씨를 이단시 결의한 것을 보면 이 교단들은 무당 심진송이 웃을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다락방에 속한 사람들과 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전도의 열심을 자랑한다. 전도의 열심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항상 모든 열심이 다 바람직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열심의 내용과 동기와 목적과 방법이 반드시 성경적일 때만 그렇다. 그렇지 못하다면 사망의 언덕을 향하여 달려가는 비행기와 같아서 오히려 더 위험한 것이 된다. 기어서라도 생명의 언덕을 향하여 가야지 죽음의 언덕을 향해 빨리 가면 그만큼 빨리 죽을 것이 아닌가? 오히려 이단들에게 더 열심이 있음은 한국교회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예컨대 필자는 지금까지 시한부종말론자들만큼 종말신앙이 뜨거운 사람들을 보지 못하였고, 김기동 씨만큼 우상숭배를 배격하고 예수를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구원파만큼 구원의 열심이 큰 사람들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B. 다락방은 하나의 전도 운동인데 이단 운운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류씨는 자신을 전도자로 보아 달라고 말하였다. 국민일보 96년 5월 2일자 신문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조사위원회의 질의에 대한 류광수 목사의 답변서'라는 광고 중에 `재영접설에 대한 답변'이란 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를 다른 사람으로 보지 마시고 전도자로 보아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 말에 모순을 두 가지로 지적하겠다.

첫째, 이 말이 객관적으로 모순된다.
신학이 가장 변질되기 쉬운 곳이 선교 현장이다. 그래서 선교학에서는 이단 문제를 더 심각하고 날카롭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단논쟁에 무슨 전도자니 선교사니 목사니 신학자니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비판 기준은 원칙론적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복음을 변질시켜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류씨는 스스로 정통신학을 했다고 말하는 목사로서의 전도자다. 전도자나 선교사는 이단논쟁의 안전지대에서 있을 수 있다는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가? 한 마디로 없다.

목적 없는 방법은 없듯이 전도의 방법도 신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전도자에게도 신학이 있다. 그것이 반드시 이단논쟁을 일으킬 수 있고 이단사상이 있을 때에는 이단논쟁을 일으켜야 한다.

둘째, 이 말이 주관적으로도 모순된다.
물론 모르는 것은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 더욱이 어린 사람에게 어른과 같은 윤리를 요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신학생과 신학교 교수를 같은 선상에 놓고서 이단논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신도 전도자에게 신학자와 같은 수준의 교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본다. 얼마든지 전도자에게 동정과 이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류씨가 이런 말을 하려면 전도자로서 무슨 이단성이 있을 때에만 가능할 일이다. 이단성이 없다면 전도자니 신학자니 하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류씨는 자신에게 어떤 이단성이 없다고 말하면서 전도자로 보아 달라고 하는 말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모순된다.
더욱이 다락방에 관련된 사람들은 다락방을 하나의 전도 단체라고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다락방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다”는 말은 아주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문제는 후에 교회론에서 다시 비판하겠지만 하나의 전도운동에 목숨을 걸었다는 말은 참으로 외람된 것이다.

다락방에 관련된 사람들은 하나의 전도운동으로 주장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도 교회 이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전도자에게 이단논쟁을 일으키는 것이 옳지 못한 것인양 말하는 것은 스스로도 모순된 소리이다.

이 점을 보다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월간 <목회와 신학> 96년 2월호를 인용해 보겠다. 류씨도 <목회와 신학>의 입장이 다락방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이라고 여길 것이다.

'다락방전도를 교회성장의 수단이나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이해하고 달려들면 99퍼센트 실패할 것입니다. 저는 다락방전도를 통해 순수하게 복음 전하겠다. 철저히 하나님의 소원을 따르겠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락방전도는 전도 이전에 하나님과 성경을 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습니다.'(목회와 신학, 96년 2월호, p.188).

이는 서울 목동에서 다락방운동을 지지하며 K교회를 목회하는 K목사의 말이라고 하였다.
어떤가? 다락방은 하나의 전도운동으로 볼 수 없다. 그러니 류씨의 위의 말은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모순된 소리다.

C. 인간으로부터 나왔으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면 망하지 않을 것이니 이단 운운하지 마라

이 말도 <국민일보> 96년 5월 2일 광고에 나온 말이다.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그러므로 류광수 목사와 다락방에 대한 입장을 한국교회와 교계가 어떻게 취해야 될 것인가를 가말리엘 교법사의 말에서 정확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말리엘 교법사 가로되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 5:24~39). 따라서 제한적인 인간의 생각과 판단력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사역과 복음사역을 잘못 판단하거나, 그릇되게 이단으로 규정하면 그 잘못된 결정과 실수로 인해 나중에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영적으로 판단하시길 간절히 바라며, '`하나님의 사역(The work of God)임이 확인되면 생명 걸고 동참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국민일보, 96. 5. 2. 광고)

어떻게 신학을 총신과 고신에서 했다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필자에게는 이런 말이 오히려 류씨 스스로 정통교회의 시각으로는 자신에게 이단성이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위의 말은 많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이단논쟁을 피하려고 인용하는 전용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통일교가 이 말을 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자신들은 이단이 되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예수교성결교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이재록 목사도 같은 말을 하였다.

위의 글을 본인 편에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 이해된다. 첫째,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하나님에게서 났으면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으며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니 사람이 이단이다 아니다 하지 말고 이단 문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이다는 것이요, 둘째, 그런 점에서 오히려 이단논쟁을 하거나 이단을 규정하는 것은 복음을 방해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요, 셋째, 이단 문제를 영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인가?
첫째, 성경적으로 잘못되었다. 성경에서는 류광수 씨의 말처럼 이단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냥 두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만 예를 들겠다. 요한은 이단과는 인사도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하였는데(요이 1:10),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단을 판단할 수 없도록 하셨다면 하나님 스스로 모순되는 말을 하신 것이다. 이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누가 이단인지 알고 이단과 인사도 하지 말라는 말인가? 분명히 우리가 이단을 알아야 하고, 알 수 있기 때문에 주신 말씀이 아니겠는가?

물론 궁극적인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정통교회는 이것을 부정하기에 이단을 규정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정통교회가 이단을 규정하는 것은 진리를 따라서 하는 일이요, 그것이 성경이 교회에 요구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 기자마다 이단을 경계하지 않았는가? 특히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 점이 더욱 선명할 것이다. 이단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면 우리는 이단을 알 수도 없으니 따라서 경계할 수도 없을 것이다.

둘째, 교회사적으로 잘못되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류광수 씨의 말은 맞지 않는다. 만일 류광수 씨의 말이 맞다면 기독교 자체가 존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2천년 동안 기독교는 이단논쟁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정통교회가 먼저 정통신학을 말하고 그 후에 이단이 이단 교리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이단이 먼저 이단의 교리를 가르침으로 이단에 대한 변증의 필요가 정통신학을 낳은 것이다.

류광수 씨의 말에 의하면 정통교회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비롯하여 많은 종교회의를 통하여 이단을 규정해 왔는데 이는 다 잘못한 일이 아니겠는가? 예컨대 아리우스나, 아볼로나리우스나, 에비온파나, 유디키안이나, 사벨리우스 등 누구든지 교회사적으로 이단으로 규정된 모든 사람들이 이단으로 규정될 이유가 없고 오히려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큰 죄를 지은 것이 되지 않겠는가?

셋째, 논리적으로 잘못되었다. “누가 이단이다”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면 똑같이 누구를 “이단이 아니다”라고도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단문제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이라면 이단이 아니다는 말도 역시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단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무엇이 이단이 아닌지도 모를 일일 것이다. 류씨의 말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류광수 씨는 자신을 이단이라고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 맡기라고 교훈하면서 자신은 이단이 아니라는 변증은 자신이 스스로 하고 있는가?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이다. 류씨를 이단이라고 하는 자도 하나님에게서 났으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요,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니 말이다.(월간<교회와신앙> 96년 7월호)




류광수 씨의 다락방 전도운동에 대한 연구보고서(1996년 11월호)

예장 합동총회  




예장 합동측은 이번 81회 총회에서 `다락방 운동'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이처럼 류광수 씨는 최근 몇년 동안의 논란끝에 공식적으로 자신의 출신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됨으로써 어떠한 방향으로든 결단을 실행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합동측 총회는 `다락방 운동'에의 참여 또한 금할 것도 결의, `다락방'에 관련을 두고 있는 많은 지도자들 역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내홍의 최소화를 기도하면서 본 연구보고서를 전재한다.<편집자 주>


서론

소위 “다락방 운동”이 이 한국 교계의 여러 교단들에서 신학적 목회적 및 교회론적 문제로 마찰음이 점차 커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본 교단이 이 운동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라고 사료된다. 더욱이 지교회의 다락방 전도 운동의 도입으로 인한 부정적 피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는 터여서, 이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시급이 요청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본 교단이 총회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한 연구를 착수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사료된다.

본 연구는 다락방 운동에 대한 연구경위, 다락방 운동의 기원과 현황, 다락방 운동의 확산 이유와 다락방 운동의 긍정적인 면을 밝힌 다음, 다락방 운동에 나타난 문제점을 개혁주의 입장에서 교리적 및 신학적으로 지적하려고 한다.

1. 다락방 운동에 대한 연구 자료

1) 1차적으로, 류광수씨의 모든 저서들.
2) 류광수씨의 강의 및 설교 테이프.
3)박진규 목사 편저, 류광수 다락방 자료집 제 1집, 제 2집.
4) 고려측 제 45회 총회 신학부 보고서(1995) 및 고려측 유사 종교 연구 위원회의 “류광수씨와 다락방 전도 학교 보고서”(1995).
5) 기타 공판 자료, 신문 자료 및 총회 내외 여러 목사님들의 사신 등.

2. 다락방 운동에 대한 연구 경위

우선 류광수 씨와 본 총회의 관계를 밝히자면, 류씨가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년을 수료하고(1984)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3학년에 편입학하여 동대학원을 졸업한(1985년) 후 부산노회에서 안수받았다는 줄거리로 집약할 수 있으나, 이 관계는 1991년 11월 26일 부산 노회 제 133회 1차 임시노회에서 그가 다락방 교리 및 도덕적인 문제로 인해 목사 면직의 판결을 받음과 동시 목사 면직이 공고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 후 류광수씨는 교단을 옮겨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 남부산 노회에 가입하였으나(1993년 10월 정기 노회시)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 부산 노회에서 교회의 위치와 소속 노회의 지역이 상이하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류광수씨가 고신측 남부산 노회에 가입한 것을 불법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의 해노회 가입이 원인 무효화되기에 이르자, 류광수씨는 다시 당교단을 탈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단의 재적(在籍) 문제와 관련 다시 이전의 위치로 환원하고자 1994년 10월에 그는 본 총회(합동) 산하 부산 노회에 목사 면직(1993년 11월 26일)에 대한 재심청구를 올렸다. 따라서 총회는 지난 80회 총회에서 “다락방 확산 방지 및 이단성 규명 위원회”를 구성하고 류광수씨의 다락방 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이어서 본 “다락방 확산 방지 및 이단성 규명 위원회” (이하 총회 조사 위원회; 위원장 이상강 목사)는 동삼제일교회 류광수씨 개인과 관련하여 ① 도덕적인 면, ② 정치적인 면, ③ 이단 사상적인 면, ④ 조사 위원회 요구 사항 등 4가지 항목에 걸쳐 질의한 바 (1996년 1월 30일자), 류광수씨로부터 상기 4가지 항목에 걸친 답변을 얻었다(1996년 2월 15일). 얼마 후 총회 조사 위원회는 1996년 3월 11일 총신대학교에 의뢰하여 교수의 답변 얻기를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관련 책자 및 테이프 내용들과 함께 총신대학교 총장 앞으로 다락방 운동의 이단 여부 조사 의뢰서를 발송했다(1996년 3월 28일자). 그리고 이에 관한 기사가 기독신보 1996년 4월 13일자 1면에 실렸다. 그 일이 있은 뒤 류광수씨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조사 위원회의 질의에 대한 류광수 목사의 답변서”를 국민일보 1996년 5월 1일자 11면 광고란에 게재하고 자신의 입장을 변호했다. 그러나 상기 국민일보 광고란에 게재한 답변서에서 류광수씨는, 총회 조사위원회가 제시한 4개항의 질의서(1996년 1월 30일자)에 대해 1996년 2월 15일자로 당 조사 위원회에 보낸 바 있는 4개항의 답변 원문 중 “1. 도덕적인 면”은 전면 삭제하고 나머지 3개 항에 대한 답변을 다소 수정 보충하여 공고하기에 이르렀다.

“1. 도덕적인 면”에 있어서 류광수씨가 총회 조사 위원회에 소명한 답변서에 따르면, 류씨는 9년 전 1987년 12월 20일경 친구 목사댁”을 방문하고 그 곳 “목사댁에서 피로 회복에 좋다는 좋은 뜻의 권유로 집에 담가 두었던 포도주를 먹”은 후 “그 때 구입한 지 얼마 안되는 봉고차를 몰고 오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수습없이 지나쳐 오던중 피해 청년이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뒤따라온 경찰이 류씨의 음주 상태를 확인하게 되엇다고 한다. 그 후 피해 청년과는 합의를 이루게 되고 한편으로 부산노회에서는 이 사실을 검토한 후 류씨에게 3개월 근신 처분을 내림으로써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답변서는 말한다. 9년이 지난 과거사를 들추어 냄으로써 우리가 그의 인격에 흠을 내자는 뜻은 추호도 없다.

단지 문제는,
(1)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조사 위원회의 질의에 대한 류광수 목사의 답변서”(국민일보 1996년 5월 1일자 11면 광고란)라는 자신의 명의로 된 글에서 그가 상기한 부분을 삭제하고 게제하지 않았다는 데서 그의 정직성에 대해 우리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가 포도주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몰랐다는 사실, 교통 사고를 낸 후 “청년의 얼굴에 빽 미러 부분이 스치게” 되었음에도 “전혀 가벼운 상처도 나지 않았고 병원에 가 볼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모르고 그냥 지나갔다”고 주장하는 것은, 양식있는 사람으로서 변명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 또한 그의 정직성에 대해 우리의 의심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경찰이 그에게서 나는 “포도주 냄새를 알고 문제를 삼았”을 정도라면 사건은 더 심각해 진다. 자신이 취한 상태에서 피해자가 자기차의 빽 미러 부분에 부딪힌 마당에 상처의 발생여부와 경중의 정도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사고 후 이른 바 뺑소니를 쳤다는 사실과 경찰의 추격에 붙잡혀 음주운전이 확인되었다는 점은 우리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그의 현재적 태도가 어떠한지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사상과 인격, 인격과 행동이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마 7:16~18)는 점을 고려하건데, 음주사고 후의 도피는 그의 신학적 이단성 문제를 논하는 우리의 이성에 그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를 창출하지 않을 수 없는 바, 우리가 불가불 이 문제를 짚어 두는 것이다.

(2) 총회 조사 위원회에 소명한 답변서에 따르면 류씨는 본 교단 부산노회에서 면직된 후 고신측 남부산 노회에 가입하고 다시 고신측 교단을 탈퇴한 후 본 총회 산하 부산노회에 목사 면직에 대한 재심 청구서를 제출하였다고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바, 목사 면직과 타교단 가입 및 본교단 복귀 노력과 관련해 우리가 당시의 정황을 십이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그의 순수성에 관한 우리의 평가에 한 가닥의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가 또한 본총회에서 재인정을 받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의 연구의 한 시발점이 된 이상 이 사안 역시 여기에서 일별(一瞥)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총회 조사 위원회와 총신대학교 총장의 의뢰를 받은 교수들은 류광수씨의 이런 행동을 예의 주시하면서 그의 교리적 실체 및 목회적인 면을 관찰하고자 다락방 전도 훈련원에서 교수되는 교재 및 강의 테이프와 기타 자료들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3. 다락방 운동의 기원과 현황

다락방 운동은 다락방 전도 훈련원의 설립자요 현 원장인 류광수씨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류광수씨는 1987년 8월 2일 부산직할시 영도구 동삼제일교회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담암하고 있으며 다락방 전도 훈련원 원장도 겸임하고 있다. 류씨가 설립한 교회는 현재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666-2번지에 소재하고 “대한 예수교 장로회 동삼제일교회”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류광수씨 자신과 그를 옹호하는 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신학교 시절부터 전도에 대해 특심한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강도사 고시 시험 치러가지 전에도 전도하러 돌아다니다가… 강도사 고시 시험공부를 못해서 걱정”하였다고 스스로가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테이프, 새 생명 9). 또 “전도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일, 결혼, 회갑, 여행 등 심지어 초상집에도 가지 않고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에만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옹호자들의 변이다(부산 기독교 신문 1995년 9월 17일자 “성명서”에서). 다락방 운동은 이러한 그의 전도 강조를 통해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신학적 사상이 김기동의 귀신론과 흡사하다는데 있다. 그의 전도 훈련 강의 테이프와 저서 곳곳에는 이러한 사상이 배어 있다. 그 자신은 이른 바 “베뢰아”와의 유관성을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그는 베뢰아와 상관된 마산 산해원 교회를 5차례 이상 다니며 그의 가르침을 배우고(그의 강연 녹음테이프), 베뢰아 아카데미를 수료하였다고 한다(고신측 신학부 연구 보고서, 1~9). 설사 그의 주장대로 그가 베뢰아와 전혀 무관하다 하더라도 그의 모든 사상이 요한 일서 3: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라는 구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김기동씨의 영향을 받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는 이런 사상적 맥락에서 전도와 기도를 강조하는 가운데 자신의 전도 사역의 일환, 아니 구심점으로 이른 바 다락방 운동을 펴기에 이른 것이다.
1995년에 나온 고신측 45회 신학부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그의 다락방 전도학교는 그가 담임하고 있는 부산 동삼제일교회를 거점으로 수도권에 35개, 중부권에 8개, 영동권 3개, 호남권 11개, 영남권 20개 등 국내에 적어도 77개 이상이 있으며 해외에도 일본 4개, 미국 2개, 대만 1개가 존재한다. 전국 대학의 다락방 전도 실태를 보면, “서울 24, 안산 1, 용인, 안성 5개, 성남, 안양 12개, 인천 10, 수원 9, 천안 6, 군산 4, 전북 9, 대전 9, 충주 7, 부산 고신 등 17, 전남 5, 경북 16, 강원도 14, 광주 9, 마산, 창원, 진주 7 등 171개 대학에 340여 명을 파송하고 있다”(상기 보고서, 2-2).

그리고 1995년 현재 고신 “교단의 120여 교회와 230여 명의 교역자가”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며 우리 교단 산하 교회들과 교역자들의 참여여부 및 정도는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른 바 “다락방 운동”은 일종의 전도 훈련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밑바탕을 이루는 사상이 김기동씨의 교리와 접목되어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4. 다락방 운동의 확산 이유

1. 우선은 류광수씨 본인의 전도 제일주의적 의지에 크게 힘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2. 1974년 엑스폴로 집회 이래로 약 10년 동안 강세를 유지해 온 청소년 운동은 교재의 상대적 빈곤으로 인해 그 돌출구를 찾고 있었다.
3. 교회적으로 볼 때, 교회주변 운동이 강세를 띠고 이 운동 역시 일정한 세력을 형성함으로써 목회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던 바, 많은 목회자들이 이 운동을 자신의 목회에 도입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4. 특히 90년대에 이르러 한국 교회의 성장이 둔화 내지 후퇴하고 있다는 보고들이 출현하면서 목회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5. 기존 교회의 목회 방향을 갑자기 선회하지 않고도 이 운동의 교재를 사용하여 서서히 성도들을 설득할 수 있다.
6. 다락방 전도 교재는 목회자 외에 평신도들이 쉽게 전도 및 양육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편의점이 있다.
7. 단기간 급속한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 특히 목회자들에게 다락방 전도 운동은 큰 유혹 내지 관심 거리가 아닐 수 없다.
8. 다락방 전도 훈련원에서 나온 각종 자료, 특히 강의 및 설교 테이프는 오늘날 분주한 목회자들에게 다락방 전도 운동의 고취 및 적용이라는 이름아래 “설교 준비가 없는 설교”를 하고 싶은 유혹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5. 다락방 운동의 긍정적인 면

1. 전도의 긴급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칫 교회 내의 문제에만 집착하기 쉬운 기성 교회로 하여금 교회 밖의 죽어 가는 영혼들에게로 관심을 쏟게 한다.
2. 전도 운동에 쓰이는 교재가 평이하고 누구나 사용하기 쉽다.
3. 현장 위주 전도 강조로 전국 130개 지역 및 대학 등에 다락방 전도 학교를 설치 운영함으로써 기성 교회의 손이 닿기 어려운 공단, 군부대, 학원가 등에 침투하고 있으며 특히 신도시를 전도 전략지로 삼고 있다 (기독신보 1995년 10월 21일자, 동년 10월 28일자, 12면, “류광수씨 다락방 운동, 과연 이단인가?” [상, 하]).
4. 이 다락방 전도 운동이 “한편에서 긍정적인 실효를 거두고 있”으며, “열매를 얻고 있는 교회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보고도 나온 바 있다(고신측, 총회 유사 종교 연구 위원회 보고서, “류광수씨와 다락방 전도학교 보고, 9면).

6. 다락방 운동에 대한 비판:
류광수씨의 신학적 문제에 대한 우리의 견해

1. “미혹의 영”에 관한 류광수씨의 진술들
- 복음편지 10면: 우리를 놓친 사단은 미혹의 영, 귀신을 시켜 우리를 방해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 복음편지 17면: 그러나 방심하지 말 것은 악한 영들과 미혹의 영, 거짓 선지자의 영, 이단의 영, 귀신들을 활용하여 신자들을 방해합니다.
- 전도 기초 훈련 103: 악령(미혹의 영)
-새 생명 10면: 악령(미혹의 영)
-현장 복음 메시지 제 9과 기도와 치유
(1) 그 마음은 미혹의 영이 작용한다.
(3) 미혹의 영의 특징: 1. 평생 따라 다님. 2. 계속 증가됨. 3. 결국 육체를 멸함
-현장 복음 메시지 제 10과: 2. 정신병, 영혼의 병은 사단(마귀)과 미혹의 영(악한 영)의 작용 없이는 들지 않으며 그러므로 이 병은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 현장 복음 메시지 제 39과: …미혹의 영에 계속 잡히게 되므로 큰 문제를 가져오며 성령 충만과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

논평:
1) 아마도 류광수씨가 가장 강조해 가르치는 것들 중 하나가 미혹의 영의 역사일 것이다.
2) 미혹의 영에 관한 가르침은 김기동씨의 미혹의 영에 대한 가르침과 흡사하다.
한국 교회에서는 김기동 목사가 미혹의 영을 악령들과 다른 존재로 말하고, 신자들을 돕도록 보냄 받은 천사들이 신자들이 그릇된 행동이나 성냄 등으로 하나님에 의해 가변되어 일생 신자들을 괴롭히며 그 신자들과 동행해 넘어지게 하므로 귀신들이 들어간다는,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하였다고 본다. 김기동씨의 책에 나타난 미혹의 영에 관한 진술들을 보자:
- “미혹의 영들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들로서 하나님에 의하여 유혹을 역사 하실 때 쓰임 받으나(삼상 16:14~15) 요한계시록 12장 9절의 마귀와 함께 내려온 사자들은 그들과는 다른 적그리스도의 영들입니다(요일 4:3)”(마귀론 중 58~59면).
- “하나님의 신은 천사가 가변하기 전을 말하고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은 그 천사가 가변되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이라 일컫는 천사는 가변될 수 있는  영들입니다. 비록 가변된 영들이라도 이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반항하거나 대적한 영들이 아니고 자기가 섬겨야 할 성도들로 인하여 책임을 함께진, 말하자면 주인 잘못 만나 좌천된 영들입니다. …그러나 성도에 대하여 배임한 책임을 져야 하는 천사들인 고로 타락한 영은 아닐지라도 책망 추궁을 함께 받고 벌을 받아 좌천될 수밖에 없었던 영들입니다. 그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은 이미 오래 전에 가변된 천사로서 사울의 주변을 배회하는 그의 미혹의 영입니다. 한 번 가변된 천사는 그 성도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일생을 괴롭히려고 대기하고 있으니 거룩한 자들의 그 거룩함을 업신여길 때에 받는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해야 합니다”(마귀론 중 61~63면)
- “유혹이란 말은 가변된 천사를 뜻합니다. 즉 영이란 말로서, 부리시는 악신이란 뜻입니다. 선지자들의 마음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고 또 그들의 실질인 사실들이 변질되어 버리면 하나님이 유혹을 역사 하시어 그들의 영을 가변시켜 버리십니다. 이와 같이 일단 변질된 천사는 우리 주위를 배회하며 항상 유혹의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타락 경험의 분량만큼 그를 따라 다니며 괴롭히는 악신들의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마귀론 중 64~67면).
- “한 번 가변된 천사는 성도를 항상 따라다니며 괴롭히거나 그가 다시 회개하면 잠시 그를 떠나며 거룩한 천사들이 역사합니다”(마귀론 98면).
-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될수록 가변된 천사는 늘어나며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구제할 길이 없게 됩니다. 미혹의 영은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고 주변에 배회하며 따라다닙니다”(마귀론 상 142면).

비판:
미혹의 영은 류광수씨가 즐겨 사용하고 강조하는 용어이다. 미혹의 영이 가변된 천사라는 직접적 주장은 전술한 류광수씨의 글에 나타나지 않으나 미혹의 영이 “계속 증가”된다는 그의 표현은 김기동씨의 천사 가변 사상 및 가변 천사 즉 미혹의 영이 늘어난다는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미혹의 영이란, 신자를 지키도록 보냄 받은 천사가 신자들의 잘못으로 가변되어 신자들을 괴롭히는, 그것도 일생 동안 괴롭히는 그런 영이 아니며, 또 성도의 반복적 죄악으로 그들이 계속 증가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경은 그러한 가변과 가변되는 영의 증가에 대해 보고하지 않는다. 또 귀신이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도록 가변된 미혹의 영이 미혹하고 유혹한다는 것은 성경의 진리 및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전적으로 배치된다.

2. “천사 동원권”에 관한 류광수씨의 진술들
- “네 번째 천사 동원권을 주셨다. 우리는 복음 전하러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주의를 천사들이 늘 지켜 주고 있음을 믿으라”(전도 기초 훈련 45면).
- “두 가지 권세를 주셨다. (1) 사단을 결박하는 권세를 주셨다. (2) 천사를 움직이는 권세를 주셨다”(사명자 가이드 13면).
- “(2)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천사들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기도로 천사들을 사용할 권세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천사는 종이기 때문이다.
- (3)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므로 사단이 결박되고 악령이 쫓겨난다”(현장 복음 메시지 제 41과).
- “또한 기도는 영적 과학이므로 기도할 때 천사들이 파송되며 (히 1:14) 기도는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이 됨…”(현장 복음 메시지 제 44과).
- “이 집회에 하나님의 천군 천사들을 동원하시며…”(외곽 전도 전략 21면)
- “하나님이 누구를 보내느냐? 주의 천사를 보내사 틀림없는 역사가 일어납니다”(외곽 전도 전략 34면).

논평:
천사 동원권에 관한 류광수씨의 진술들은 김기동씨의 진술과 흡사한 면이 있다. 천사의 “동원”에 관한 김기동씨의 언급은, 류광수씨의 “천사 동원권”과 김씨의 천사론이 모종의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준다. 김기동씨는 그의 저서 마귀론에서 “이기는 방법은 천사를 동원하여 능력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믿음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128면에서는 이런 진술을  한다.
“베드로가 옥에서 빠져 나온 것은 놀라운  이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철문을 뚫고 그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천사가 동원된 것은 곧 합심 기도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천사가 성도를 돕는다는 사상은 성경적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을 받은 사건에 대해 성경은 상세하게 말하고 있다(행 12:6 이하). 히브리서 기자도 천사가 구원얻을 후사들을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는다고 말한다(히 1:14). 그러나 “천사 동원권”이라는 류광수씨의 표현은 문제의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하나님이 필요시에 천사를 보내셔서 주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천사 동원권을 우리가 행사한다고 주장하는 진술은 모든 것을 영들의 일로 보는 김기동의 마귀론에서나 나올 수 있는 논리이다.

3. “사단 결박권”에 관한 류광수씨의 진술
- “세 번째로 우리에게는 (구원받은 자에게는) 사단 결박권을 주셨다. 막 3:14~15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 중 셋째,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주셨다”(전도 기초 훈련 45면).

논평:
그리스도인들이 사단 결박권을 갖는다는 주장도 김기동의 마귀론에서 나온 진술들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김기동 씨의 글에 따르면,
- “이 땅에서 마귀를 정복한 자가 예수 외에 또 있습니까? 그러니 그러한 권세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김기동 마귀론 상 30면).
- “마귀를 이길 권세가 없으면 이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진리를 알므로 강력한 능력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마귀론 상 33면).
- “그래서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죽음을 이기는 힘입니다. 이 힘으로 마귀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에게 인간을 빼앗겼고, 예수는 마귀로부터 인간을 구출해 내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죽음을 이길 힘을 주셔서 마귀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입니다. 예로 예수가 아니고는 마귀의 손에서 사람을 빼앗을 자가 없고 구해낼 자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마귀가 가지고 있는 사망권세를 없이하시고 사람에게 죽음을 이기는 힘을 주신 것입니다.”(마귀론 상 26면).

그리스도인들이 사단 결박권을 갖는다는 주장은 표현상 성경의 가르침을 넘어서고 있다.
(1) 사단을 결박할 수 있는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단을 결박하였으므로 그 사실을 알고 담대히 살 수 있을 뿐이지 우리가 직접 사단 혹 마귀를 결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우리는 믿음으로 사단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으나 우리가 받은 힘으로 사단을 결박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로 사단을 결박할 능력을 가지고 행사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할 일이 없어지며 또 우리가 권세 있는 자가 되어 우리의 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될 것이고, 결국 그리스도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3) 우리가 마귀를 이기고 시험과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예수의 피를 힘입은 결과일 뿐이다. 결박되지 않고 있는 사단이 우리의 기도에 의해 결박되는 것은 아니다. 사단 결박권은 예수 그리스도만 가지고 있으며 신자들은 그의 보호와 인도로 능력을 얻어 전도의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것이다.

4. 기타, 자율 신경이 약해지면 병이 든다는 류광수 씨의 진술
류광수씨는 병들게 되는 과정을 이렇게 말한다.
1) 하나님이 모든 육체의 기관에 눈에 안 보이는 자율신경을 두었다. 이 신경이 약해지면 그 기관은 병들이 들게 된다(홍태수  박사: 생체학교수). 신경이 튼튼하면 병이 와도 자체에서 이길 수 있다. 2) 이 신경은 전부 척추를 연결하여 활동되며 척추는 뇌(머리)와 직결되고 뇌는 생각과 마음과 연관된다. 3) 생각과 마음은 영혼과 연결되므로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바르게 살 수 없고 건강하게 살다가도 고난이 닥쳐오면 영혼, 마음, 육신이 병들게 된다.

논평:
위 류광수씨의 주장은 김기동씨의 가르침과 매우 유사하다.
- “사람들이 의지를 굳게하여 그의 의지를 하나님께로 향하면 귀신은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정함이 없고 변덕스러운 사람은 귀신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귀신이 사람의 몸에 들어올 때 그는 육체 곧 신경 계통에 들어옵니다.
육체의 신경이 있는 곳은 어느 곳이나  귀신이 사용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신경 계통을 의식, 또는 마음이라고 합니다(김기동 마귀론 중 110면).
- “귀신은 사람에게 들어와서 영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의 중간 즉, 신경계통에 들어와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는  일을 합니다.”(김기동 마귀론 112면).

비판:
(1) 귀신이 들어오는 것이 사람의 생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혹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귀신이 신경계통을 통해서 들어와서 의식인 마음과 연결한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2) 자율신경이 약해지면 병든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다. 병이 드는 경로는 여러 가지이다. 자율신경을 통해 병이 든다는 것은 귀신이 자율신경을 통해 역사한다는 김기동씨의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5. 구원론의 문제
류광수씨는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는 단계를 5항목으로 나누고 (아는 단계, 믿는 단계, 영접하는 단계, 시인하는 단계, 나타내는 단계), 예수를 믿는 것과 영접하는 것을 구분한다(성령이 말씀하시는 전도 기초 훈련 63면).
그는 믿는 단계로 요 3:16의 성경적 증거를 들고, 또한 영접하는 단계로 요 1:12; 계 3:20을 들고 있다. 동시에 영접하는 단계에서 예수를 영접하면 가) 성령이 내주 (고전 3:16; 2:12), 나) 영원히 거함(요 14:16), 다) 모든 삶을 인도하심(요 14:26~27), 라)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마 16:18, 엡 2:2), 마) 내세 보장(요 14:1~3, 6~9) 등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위의 책).
그러나 신자가 구원받는 단계에서 믿는 것과 영접하는 것을 구분하여 두 단계로 교리화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그는 또 그밖의 곳에서(EBS  양육 테이프 2A) 다음과 같은 진술을 한다:

이 진리(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를 몽땅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영접, 안 받아들였는데도 영접해도 아니겠지요? 뭔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교회 다닌다고 해서 신자는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가운데 이 부분(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 일을 말하려 하심이라)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구원받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느냐? 이게 또 중요하거든. 이런 것은 우리 머리 속에 언제든지 넣어 있으라고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서 일으켜 세워야 됩니다.…

복음을 전해야 되지? 일어나야 되지? 안 그래요? 이 사실을 빨리 가르치는데… 교회 안에서, 그 다음에 현장에 가서, 기존 신자를 먼저 일으켜 세워야 됩니다. 이게 우리의 중대한 사명입니다. 조금 문제가… 있기는 있습니다.

류광수 씨는 예수를 믿는 것과 영접하는 것을 구분하고 특히 여기 영접이라는 말을 요일 3:8(“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의 말씀에 기술된, 그러한 예수를 영접한다는 의미로  사용함으로써,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 외에 영접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그리고 이를 통해 “영접”하는 자를 요원화하고 결국 다락방화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경우 류광수씨의 가르침에는 성경적 구원론과 교회론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그는 예수를 영접함으로써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전도를, “사단의 손에서 인간을 건지는 행위”로 보고(목회자, 전도자를 위한 현장 복음 메시지 제 40과), “전도를 하기 앞서 예수 이름으로 마귀의 세력을 결박해야 한다. 마귀의 세력을 먼저 결박해서 그가 결코 마음 문을 여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평신도가 읽을 전도 훈련 교재 15면).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과 영접하는 것이 동일한 사건의 다른 표현이라고 본다(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구원받은 자”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만들고 이들을 전도 요원으로 삼는다는 것이 류광수씨의 일관된 주장이라고 사료되는 바, 우리는 이러한 논리가 구원과 관련해 비성경적이라고 확신한다.

7. 교회론의 문제
이와 같이 예수를 믿는 단계와 예수 이름으로 사단을 결박하고 사단의 권세를 이기는, 영접하는 단계를 상호 구분하는 것은, 교회 안의 신자들을 구별하는 이론으로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룬다는 공교회의 교회론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성경에서 믿는 것과 영접하는 것은 두 단계가 아니다(요 1:12; 3:16; 5:24; 롬 8:16~17; 엡 2:8; 4:1~6).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를 원하신다(엡 4:13). 동시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며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며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성경은 가르친다(엡  4:15~16).

류광수씨가 신자의 구원을 두고 “믿는 단계”와 “영접하는 단계”를 구분하는 것은 기존 신자를 요원화, 다락방화하여 결국 공교회와 분리시켜 사조직화하는 행위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며 또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8. 교회의 질서 유지 문제
다락방 전도 훈련은 기존 신자들을 “요원화”하고 다락방화한다는 점에서 기성 교회를 분열시킬 수 있으며 또한 교회 안에 위화감을 조장할 만한 원인을 제공한다. - 성령이 말씀하시는 전도 기초 훈련 47면은 초대 교회의 복음 전파를 5단계로 나누었다: 요원화→제자화→지역화→전도화→양육화. 이것은 다시 1. 기존신자→요원화 2. 현장→제자화 3. 말씀운동→지역화 4. 요원화, 제자화, 지역화→전도화 5. 훈련→양육화로 설명될 수 있다(위의 책). 그러나 문제는, 말씀 운동을 통해 특정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지역화가, 바로 지역 다락방과 연결되어 “교회 주위 구역과 기존 교인으로 형성, 신[심]방을 겸하면서 훈련”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 신자를 요원화하여 제자화, 지역화, 전도화, 양육화한다는  것은, 새 신자들을 성숙한  예수의 제자로서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하는 것보다 특수한 다락방 전도 훈련을 통해 그들을 다락방화시킨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기성 교회 내에서 다락방 전도 훈련의 특수 이론으로 무장한 자와 그렇지 못한 신자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장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운동이 교회 분열의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뒤의 피해 사례를 보라)는 점에서 우리의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따라서 다락방 전도 운동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공교회가 지향해야 할  건전하고 성경적인 전도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락방 전도 훈련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교회들이 본 교단뿐만 아니라 타 교단에도 여러 교회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개교회에 나타난 피해 사례중 몇 교회만 제시하려고 한다.

사례1 부천 KI교회
이 교회에서는, “오직 다락방 전도 운동을  교회 전체의 활동으로 규정하고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 성도들은 귀신들린 자로 취급 강대상에서 공공연히 공격을 하였다.” 또한 “매주 설교가 [다락방] 전도 학교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그대로 선포하는” 것일 뿐이며 담임목사는 “교단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무식의 소치라고 말하면서 교단을 탈퇴하더라도 다락방 운동을 계속할 것을 천명”하였다. 나아가 “다락방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성도들을 터부시하므로 많은 성도가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현재 남은 사람들은 심한 갈등에 시달리고” 있고 “교회 내 공모임에, 다락방 운동에의 불참자는 참여치 못하게 하고”있다.

사례2 대구 DJ교회
가. 류광수 목사의 전도 설교를 그대로 설교함.
나. 장로로 하여금 대표 기도를 못하게 함 (기도가 다르다고 하여)
다. 그래서 장로 두 명이 교회를 떠났다. (이상 두가지 사례, 고신측 신학부 연구 보고서 2~13, 2~14).

사례3 안양 PS교회
“지난 1991년 12월 11일 주일 낮 예배를 마친 안양 PS교회에서는 [다락방 운동이 불씨가 되어] 성도들 간에 20여 분간 심한 몸싸움이 벌어져 모 장로가 머리에 부상을 당했는가 하면 사고 조사를 위해 인근 경찰서에서 수사관이 출동한 불상사가 발생했다… 1천명이 넘는 교인들 가운데 몇 달 새 300여 명이 타교회[로 가거나] 또는 시험에 들어 PS교회를 떠났다.”(기독신보 94. 12. 17일자 2면).

사례4 서울S교회 전홍렬의 글
“제가 출석하는 [교회는] 본 교단 중부노회 산하 강동 시찰에 소속한 S교회로 성도가 40여 명 되는 개척 교회이다. 11월 부산노회에서 면직된 류모씨가 대표로 있는 다락방 전도 학교에 [담임목사님이] 심취하면서 교회 내에 숱한 문제가 야기되다 지금은 분열 위기에 처해 있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글을 쓴다….
또한 주일 설교는… 오로지 다락방 전도에 관한 내용으로 일관, 성도들의 영적 생활이 피폐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목사님은 다락방을 추종하는 자는 복음을 이해하는 자이고 그렇지 못한 성도는 `사탄의 앞잡이' `복음의 방해꾼' 등의 표현을 쓰며 반엄포식의 목회를 하고 있다. …”(기독신보 제 1044호).

사례5 현대종교 7월호의 글
“본지에 접수되는 제보나 문의에 의하면 다락방 전도 훈련 집회에 참석한 후 신도들이 교회에서 양분되어 교회가 분열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조용할 날이 없음을 호소하기도 하고, 심지어 교회의 양들을 보살펴야 할 목회자들이 전도 훈련집회에 심취한 나머지 양들을 돌보는 일에 소홀하게 되어 교회가 파탄지경에 놓여 있다는 경우도 접수되고 있다…”

결론: 교회의 대응책

1. 이 연구가 시간 관계상 다소 미흡한 것이 사실이나,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류광수씨와 다락방 전도 훈련의 내용이 일견 복음적이요 기존의 교회 주변 운동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믿는 단계와 영접하는 단계를 구분하고 요일  3:8을 그 핵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원론에 있어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으며, 기존 신자들을 요원화하고 다락방화한다는 점에서 교회론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런 이유로, 다락방 전도 훈련은 구원론에 있어 신자를 오도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 다락방화된 신자와 그렇지 못한 신자 사이에 위화감을 조장하고 분열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다락방 전도운동을 받아들이거나 다락방 훈련 교재 및 테이프 등을 교회 안에서 신자 양육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료된다.

다만, 이 교재를 통해 “한편에서 긍정적인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을 부인하지” 않고 “열매를 얻고 있는 교회가 있는 것도 사실임을 인정”임(고신측 총회 유사 종교 연구 위원회 보고서, “류광수씨와 다락방 전도 학교보고,” 8면)을 긍정하더라도 이 운동에 “참여한 교회들 중에는 교회 성장이나 화평과 안정에 손해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는(위의 글, 같은 면) 이상, 다락방전도훈련 교재를 직접 사용하는 것을 삼가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2. 류광수씨의 교재들에 김기동씨의 마귀론과 흡사한 내용이 자주 언급된다. 가령 미혹의 영, 천사 동원권, 미혹의 영들에 의한 병듦, 특히 요일 3:8(“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을 제 이론의 구심점으로 삼기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김기동의 그것과 유사한 가르침들은 개혁교회의 원리에 배치된다.

3. 핵심 요원 양성을 위한 4단계 훈련 과정으로 수입되는 금액이, 1인에게서 들어오는 경우만을 따지더라도, 제 1단계 전도 합숙 훈련 20만원, 제 2단계 팀사역자 합숙 훈련 15만원, 제 3단계 전도 신학원 2년간의 학비 (미학인), 제 4단계 70인 전도 요원 합숙 훈련 10만원 등이요, 기타 교재 및 테이프, 비디오 테이프 판매 대금들은 기하학적 숫자라고 사료되는 바, 이는 마땅히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4. 지금까지 진술한 제반 이유로 인해, 부산노회가 류광수씨의 목사 면직을 판결하고 이를 공고한  것은 정당하다고 보며, 류광수씨가 자신의 목사 면직에 대한 재심 청구서를 제출한 것과 관련, 이상의 문제점들을 완전히 시정하기 전에는 이를 기각함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동시에, 이후로 본 총회 산하 모든 목사 및 성도들은 류광수씨의 집회 및 다락방 전도 훈련의 조직과 기구에 참여하지 말 것이며, 다락방 전도훈련을 지교회에 도입하는 것도 삼가야 할 것이다.(월간<교회와신앙> 96년 11월호)


류광수씨에 대한 예장통합측 연구보고서(1996년 11월호)

예장 통합총회  



예장 통합측은 이번 81회 총회에서 류광수 씨의 다락방운동을 사이비성이 있는 것으로 규정했다. 통합측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이비성'이라는 용어는 `이단성이 어느 정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통합측이 이번에 통과시킨 `다락방운동'에 관한 보고서는 “이 운동에 참여하거나 그대로 답습하는 일이 없어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보고서가 결의될 때 1,500명의 총대중 3명만이 반대입장을 표명했다.<편집자 주>


1. 다락방 전도운동의 개요

가. 류광수씨
다락방전도훈련원의 창시자요, 원장인 류광수 씨는(부산 동삼제일교회) 예장합동측 부산노회 소속 목사였으나, 1991년 11월에 류씨가 베뢰아 귀신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1987년에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로 구속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것 등의 이유로 그 교단으로부터 면직된 자이다.

나. 다락방 전도운동이란?
류광수씨는 다락방 전도운동을 정의하기를 `우리가 처해 있는 곳에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는 줄 믿고, 전도의 지역에 침투해 들어가서 전도 활동을 펴기 위한 성경 공부 활동'이라고 한다(평신도가 읽을 전도훈련교재-전도훈련교재 1, p.11). 즉, 부산에 있는 류씨의 교회(동삼제일교회)에 본부를 둔 `다락방전도훈련원'에서 합숙훈련을 받은 요원이 전도 지역에 들어가서(학교, 직장, 기관 등 포함) 성경공부를 하면서 전도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락방전도훈련원은 전국에 100개 이상의 지역에 전도학교, 전도신학원 등을 두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1천만 요원과 국내 40만 요원을 양성하고 `10만 대학 요원'과 `10만 중고 요원'을 확보하겠다고 선전하고 있으며, 다락방전도신문·도서출판 예수생명·다락방 방송센타(영상 다락방) 등의 기관들을 통해서 류광수 씨의 `다락방 메시지' 등을 담은 교재와 녹음(녹화)테이프를 공급함으로 이 운동을 확산시켜 가고 있다.

2. 다락방 전도운동의 문제점

(가) 류광수씨의 핵심 사상은 구속사를 마귀와의 대결로 보는 잘못된 마귀론에서 비롯되었다.
류씨는 김기동(베뢰아 아카데미) 마귀론의 기본 사상과 유사한 구도 속에서 `전도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통해 마귀의 세력을 결박하라'(평신도가 읽을 전도훈련교재-전도훈련교재 1, p.15, 전도의 관점에서 본 창세기 - 현장메시지 4, p.12, 목회자·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메세지 - 현장메세지 3, 제 44과)고 하며, `성도에게는 기도하면 천사를 동원할 수 있는 천사동원권이 있다'(전도의 관점에서 본 창세기 - 현장메시지 4, p.31, 새생명, p.13, 지역복음화를 위한 다락방전도전략 p.122)고 주장한다. 또한, 자율신경이 약해지면 병이 든다고 하면서도, 모든 영적 정신적 육체적인 병은 마음을 타고 들어오며, 마음의 병은 악령의 활동이며 특히 정신병 영혼의 병은 사단(마귀)과 미혹의 영(악한 영)의 작용 때문이라거나 재난, 불화, 실패 같은 것이 연속되는 것은 전부 영적인 병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나, 미혹의 영이 평생 따라 다니고 계속 증가되어 결국 육체를 멸하게 한다([목회자·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메세지 - 현장메세지 3], 제 8, 9, 10, 49과)고 주장하여 구속사를 마귀와의 대결로 보고 있다.

류씨의 위와 같은 가르침이 비록  김기동의 마귀론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류씨의 변명에 의하면 자신도 김씨의 마귀론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고 하며(지역복음화를 위한  다락방전도전략, p.120) 단지 역술인과 무당들을 전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예수가 오신 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한 것이라는 류씨의 주장은 김기동의 마귀론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나) 기성교회를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교회를 혼란하게 한다.
류씨는 `다락방전도훈련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으나 전도 훈련을 시키는 것보다 다락방전도훈련원을 중심으로 한 전도운동을 목적으로 다락방식 성경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정통교회에서 수용할 수 없는 다락방 사상들을 주입시킴으로 교인들을 혼란하게 하고 있다. 나아가 다락방 전도운동을 하나의 전도의 방법으로 보는 차원을 넘어 전도의 유일한 방법인양 강조하는 인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성교회를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기성교회보다 다락방을 우월시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 다락방 전도운동 과정에서 기성교인들에게조차 다락방식으로 영접을 시키는 사례가 나타난다.
구원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과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류씨는, 예수 믿고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영접이며,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진짜 복음이라고 한다(다락방전도전략 pp.37-38, EBS 양육테이프 2A, 복음편지 테이프 1A, 복음편지 테이프 2A). 또한 믿음에는 `첫째는 예수를 아는 단계(사 53:5, 요삼 1:2)가 있고, 둘째는 믿는 단계가 있고, 세번째는 영접하는 단계가 있다'고 하였다(테이프).

즉, “정확한 복음을 빨리 전해야 돼요.… 전도지를 들고 나가기 전에 성도들로 하여금 이걸 깨닫게 해야 합니다. 올바른 구원(을 몰라) 지금 너무 너무 확신이 없이 방황하거든요. 신자 가운데 수많은 신자들이 지금 이것이 안돼 가지고 방황하고 있습니다.”(복음편지 테이프 1A)라고 하고, `교인들의 80%가 믿지 않는다'(목회자·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메세지 - 현장메세지 3, 제 28과)고 가르쳐 다락방 전도운동 과정에서 기성교인들에게조차 다락방식으로 영접을 시키는 사례가 나타나는 것은 구원론에까지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
류씨는 자신의 다락방에 대하여 문제들이 제기되자 수차에 걸쳐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겠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나 방법을 어떻게 시정하겠다고 밝히거나, 구체적으로 시정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없다.

3. 연구결론

류광수 씨의 다락방 전도운동은 비록 전도운동이라 주장하지만 그 가르침 가운데 마귀론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을 혼란하게 하는 등, 사이비성이 있으므로 제 81회 총회 이후로는 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 운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이 없어야 될 것이며, 본 교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총회 전도학교를 적극 활용토록 함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월간<교회와신앙> 9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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