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성서 번역과 역사
Ⅰ. 서 론 ........................................................................ 1
1 . 문제제기 .................................................................. 1
2 . 연구방법 ...................................................................... 1
Ⅱ . 한국의 성서번역의 역사 ....................................................... 2
1 . 초기 번역사업 ............................................................. 2
2 . 공인위원회의 신약성서 ..................................................... 2
3 . 구약성서의 번역과 공인위원회역 ............................................ 3
4 . 성서의 개역사업 ........................................................... 3
5 . 사역성서(私譯聖書) ........................................................ 4
1) 펜윅이 번역 출판한 성서 ................................................ 4
2) 게일이 번역 출한한 성서 ................................................ 5
Ⅲ . 한국의 성서번역의 주요 쟁점 .................................................. 6
1 . 번역 방법의 문제 .......................................................... 6
2 . 문체의 문제 ............................................................... 6
3 . 신의 호칭 문제 ............................................................ 7
1) 1900년 이전 ............................................................ 8
(1) 우리말 표현 ....................................................... 9
(2) 혼용 표현 ......................................................... 9
(3) 한자화 표현 ....................................................... 9
2) 1900년 이후 ............................................................ 9
(1) 하나님 호칭의 약사 ............................................... 10
(2) "하나님" 호칭의 문제 ............................................. 11
Ⅳ. 결 론 ....................................................................... 12
참 고 문 헌 ............................................................... 13
1 . 문제제기
모든 언어 속에는 그 문화권의 사상과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경전의 번역의 역사는 문화적 충격을 기록하고 있으며 두 개의 사상이 충돌하는 현장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성경이 한국에 번역되어지는 과정 속에는 한국문화가 기독교 사상과 어떤 면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어떤 면에서 이질성을 가지고 있는지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고에서는 한국의 성서번역의 역사를 두 개의 사상이 충돌하는 양상으로 조명하여, 한 선교사의 표현대로 기독교가 한국의 사상 즉 은둔의 나라 속에 접맥되는 과정을 펴보고자 한다.
Ⅱ . 한국의 성서번역의 역사
이 시기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입국하여 이러한 번역본을 한국인에게 보여 평가해보도록 하였다. 그 결과 그 번역본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귀신의 아들이라는 인상을 주도록 표현한 점 등 몇가지 오류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새로운 번역의 필요성을 일깨웠고 1887년에 언더우드를 위원장으로 하는 한국어성서번역위원회가 조직 되었다. 이 위원회는 곧이어 상임성서위원회, 번역위원회 및 개정위원회로 분화 되었다.
1892년, 국내에서 이루어진 순수번역의 효시로서 [마태복음젼]이라는 마태복음 번역본이 출판되었는데, 개정위원회는 이것을 "이름과 술어를 개정하여 이를 번역의 모범으로 삼도록" 채택하였다. 여기에 최초의 국내 번역본으로서의 [마태복음젼]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초기단계에 두드러졌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번역 사업을 가속시킨 가장 중요한 원인이 한국 신자들의 강렬한 요청과 열망이었다는 사실이며, 두번째는 부녀자와 하층민을 주로 겨냥하여 한글전용의 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1900년에 이르러서 신약을 단권으로 묶어 출판하였다. 일단 신약을 단권으로 출판한 후 성서 번역사업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하나는 이미 출판된 신약을 공인역본으로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구약을 번역하는 것이었다.
한국 최초의 공인역본 신약성서는 1906년 언더우드, 게일, 레이놀즈 등 세사람의 장로교 선교사에 의하여 나오게 되었는데 것이 1938년 개역 신약성서가 나오기까지 30여년간 한국교회에서 사용한 공인역본 신약성서였다.
구약성서를 번역하는데 끝까지 공헌했던 대표적 인물은 레이놀즈와, 김정삼, 이승두 세사람이었다. 들은 1910년에 번역을 완료, 1911년 단권으로 인쇄.배포하였다.
그런 이유로 구약개역자회가 1911년 곧 구성되기는 했으나 위원들의 사고로 소임을 다하지 못한채 지연되었다. 구약의 개역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926년 이었다. 이 작업을 주도한 인물들은 레이놀즈, 케이블, 엥겔, 베어드, 하디, 피터스, 남궁혁, 김관식, 김인준 등 이었다.
1935년 이원모가 개역위원으로 보충되어 개역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듬해 완료하여 [구약젼서 개역]이 출간되었다. 뒤이어 1937년 신약개역이 끝났고 이듬해 [성경젼서]가 발행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공인성서로서 1950년에 새 철자법에 따라 개정되어, 1952년 재판되었다.
캐나다 출신의 평신도 선교사였던 펜윅은 1889년 내한하여 1919년에 이르러서야 [신약젼서]를 펴냈는데, 이것이 이른바 펜윅의 원산번역성서 이다.
이 번역성서는 한문성서를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만큼 한자을 음역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성신을 "숨님"으로, 예수를 "예수씨"로 표기한 것과 같은 우리의 토박이 말도 같이 나타난다.
게일(J. S. Gale:토론토대학 YMCA 파송, 후에 미국 북장로교선교부 소속)은 초기부터 성서번역위원으로 활약하였으나 "성서 원어의 문법적인 구조에 충실하고자"하는 다른 번역자들과의 견해차이로 1923년에 성서개역위원장 직을 사임하였다. 그는 그 후 이원모 등의 도움을 받아 1925년에 [신역 신구약전서]를 번역 발간하였다. 이것은 조선어풍의 "짧게 줄인 풀이역"의 번역으로 게일의 말을 따르면 "그 사상을 쉽고도 유창한 조선어로 말하는 성서"였던 것이다. 이 번역은 의역에 가까왔던 것은 사실이나 "원문을 줄였다"라는 선교사들 간의 비판과 "모든 번역은 각 민족의 고유어가 허용하는 한 축자적이어야 한다"는 대영성서공회 당국의 원칙론적 해명은 이러한 게일의 의지를 깨뜨렸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개인적으로 그것을 출판하려고 하는 게일에게 대하여 끝까지 저지하였으며 "게일이 번역하였으나, 출판권은 성서공회에 귀속되어 있다"고 일축하였다.
그러나 게일은 자기 스타일의 번역을 계속하여 1925년 [신구약젼서]를 출판한 것이다. 게일의 이 사역성경은 의역의 문제와 비공인의 문제로 인하여 많이 읽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신구약 전체로 만들어진 사역성서라는 점과 조선어풍을 구사하려는 특징에 있어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게일의 사역성경 사건은 지나친 근본주의적 경향이 초기부터 한국선교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음을 나타내주는 대표적 사건이라 하겠다.
Ⅲ . 한국의 성서번역의 주요 쟁점
그와 동시에 이러한 노력은 편협한 일면을 탈피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었다. 즉 "번역은 그 수용언어가 허락하는 한 가능한대로 축자적이어야 한다는" 명제에 그 문제가 있었다. "번역은 축자적이어야 한다"는 지침은 게일의 "조선어풍"을 강조하는 독자적 영역을 말소시킨다. 이것은 대영성서공회 당국의 "축자적 번역" 지침에도 깊은 관련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1920년대 미국에서 격돌을 빚게 된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주의 신학의 대결이 강한 근본주의적 성향을 형성하여 한국선교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즉 한국에서 선교와 성서번역을 주도했던 레이놀즈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보수주의적 성서영감설을 고수하였던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로서 지나친 근본주의적 성향을 가졌던 것이다.
예를든다면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의 서두에 게일은 "교훈하야 가라샤대"라고 했으나 다른 번역은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라는 표현이다. 3절도 "마음 궁빈한 쟈"(로스 역), "마음으로 가난한 이"(아펜젤러), "마음으로 뷘쟈"(1895년판), "마음으로 가난한 이"(1898년판)로 표현되었으나, 게일역은 "마음이 뷔인 자"로 되었다. 1895년의 번역이 "마음으로 뷘쟈"를 채택한 것으로 보아, 게일의 위원 재임 당시의 주장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텬국이 뎌희 거심이요"(1898년판)인데 반해, 게일은 "천국을 누릴 거시요"라 하여 "누린다"라는 어휘를 구사함으로 천국에 대한 소유개념을 보다 승화시켜 주고 있다.
이렇게 보면 게일의 "조선어 풍"의 의도는 그가 강조한 말 그대로 "저작자의 본 뜻을 분명히 하는" 것을 전제로 "어풍과 문화를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번역자 자신의 원전 및 방언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했고, 축자적인 번역에 비해서는 그 문화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게일의 번역성서는 그의 한국문화에 대한 업적 못지 않게, 새롭게 평가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 문제는 아직도 문제의 해결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그 문제의 진행과정을 성서번역사의 관점에서 알아보려고 한다.
개신교보다 일찍 한국에 전파된 천주교에서는 신의 호칭을 텬쥬(天主)로 하고 그 뜻을 상재(上帝), 하 님, 하 님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개신교의 경우, 성서번역과 관련, 자주 그 호칭문제로 고민하였다. 먼저 시대적으로 신의 호칭이 번역 용어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경로를 거쳐 1900년 신약전서에는 "하 님" 호칭을 채택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 연대 |
분 류 | | 1882 87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 명칭 |
--------+-----------+-------------------------------------------------
| 하느님 | -----+
Ⅰ | 하나님 | +-----------------
| 하 님 | ----------------------------
--------+-----------+-------------------------------------------------
Ⅱ | 神 | --------------
| 신 | -----
--------+-----------+-------------------------------------------------
| 상뎨(上帝)|-+ -------
Ⅲ | 상뎨님 |-+ -------
+-----------+-------------------------------------------------
| 텬쥬(天主)| ------
--------+-----------+-------------------------------------------------
(1) 우리말 표현
I 그룹에서 맨 처음 나타난 표현은 하느님이다. 이는 하늘님, 하눌님, 한울님 등과 같은 의미이다. 882년판 [누가복음젼셔]에 "한나"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하느님"의 의미에 "하나(1)"라는 뜻이 있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1883년에 "하나님" 이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바, 이것은 하늘(天)을 하날로 아들을 아달로 번역하고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이때 번역진이 (ㆍ)자 표기에 익숙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2) 혼용 표현
II 그룹은 국내에서 처음 번역을 시도할 때 아직 신의 칭호를 확정하지 않았을 때, 잠정적으로 신 혹은 신을 사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3) 한자화 표현
III 그룹의 등장은 한자문화 혹은 천주교와의 관련 속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국내번역에서는 최초로 하느님 칭호가 등장했으나(1890), 개인역에서 한자 형태인 上帝(님)가 신, 신 등과 함께 나타났다.
또 하나 1897년경 거의 "하 님"으로 호칭이 귀일되어 가고 있었는데, 天主(텬쥬)가 등장한 점은 번역위원에 동참한 한국인의 성향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이 시점부터 1950년대 까지는 "하 님", "하나님", "上帝"(상뎨)의 표현만 남게 된다. 아래의 도표는 대한성서공회에 보관된 성서를 시대적으로 고찰, 도표화한 것이다.
칭 호 | 발행년도 | 번 역 본 이 름
-------------+---------------+----------------------------------------
하 느 님 | 1904 | 신약젼셔
| 1908 | 시편
| 1911 | 구약젼서
| 1925 | 성경젼셔, 신역(新譯)신구약전서
| 1926 | 鮮漢文 관주 성경전서
| 1938 | 셩경개역
| 1939 | 신약전서 부 시편
| 1949 | 신약전서
| 1953 | 관주성경전서
-------------+---------------+----------------------------------------
하 나 님 | 1919 | 신약젼셔(펜윅 역)
| 1924(?) | 셩경젼셔
| 1937 | 簡易 鮮漢文 舊約
| 1939 | 신약전서 부 시편(개역)
| 1952 | 성경전서 한글개역판
| 1954 | 간이 국한문 신약
| 1956 | 개역 한글판 성경전서(현행본)
-------------+---------------+----------------------------------------
上 帝 | 1906 | 신약전서(국한문)
(상뎨) | 1910 | 신약전서(국한문), 부표 관주신약젼셔
| 1921 | 신약전서(국한문)
| 1922 | 구약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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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 호칭의 약사
하나님 칭호는 로스역(1882년 누가복음젼서 초판)에서 나타났던 적이 있지만 국내번역에서는 1919년 펜윅의 [신약젼셔]에서 처음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52년 한글 맞춤법에 따라 성경을 개정할 때 (ㆍ)자를 없애는 과정에서 "하나님"으로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1960년대 까지 이 문제는 잠복해 있다가 활발한 사역과 함께 논의에 불이 붙게 되었다.
1977년 부활절을 기하여 출판된 "공동번역성서 외경포함"에서는 그간 신의 호칭 문제를 수렴하여 "하느님"으로 표현하였다. 최근에 "하나님", "하느님" 호칭 문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 "하나님" 호칭의 문제
초기의 "하느님", "하나님"은 "하 님"으로 관용되다가 끝에가서는 "하나님"으로 고정되면서 새뜻으로 해석되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이신 "님", 즉 유일신이란 뜻을 가지게 되었다. 리고 여기에는 어원론적인 의미보다는 한국교회 나름으로의 신앙고백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즉 "한"이라는 단어 속에 "크다", "위대하다", "밝다", "유일하다"라는 함축된 의미를 "하나님" 호칭 속에 부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의미의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본래 우리말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있다. 즉 이것은 번역이라기 보다 신어 창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 호칭 주장자는 어원론적으로 보아 "하 님"은 "하느님"으로 개칭되어야 옳다고 고집한다. "하늘"의 고어는 "하 "이었으나 "하나(1)"의 고어는 "?搭?"였다는 것, 따라서 유일신의 의미를 지니려면 "하 님"이 아니라 "?搭ご?"이어야 했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수를 표시하는 말에 님을 붙인적이 없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 라서 신의 칭호 "하 님"은 초기에는 유일신의 의미보다 지고(至高)신의 의미로서 사용된 것이 분명하다. 즉 번역상의 맥락에서는 "하느님" 호칭이 정당한 것 이었다. 신의 호칭 문제는 오늘날 번역상의 문제에서 신학상의 문제로 비약하고 있다. 이 문제를 정립하는 과제는 한국기독교의 신학적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보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검토와 합의가 범교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Ⅳ. 결 론
따라서 지금은 기존의 번역본에 대한 지나친 보수주의적 고집이나 또한 무분별한 급진주의적 성향을 벗어나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성서한국의 지평을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