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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상고시대 권력 찬탈의 잔혹사와 지나족(支那族)의 ‘탈(脫)동이’ 프로세스

작성자한산|작성시간26.06.15|조회수20 목록 댓글 0

[학술논문상고시대 권력 찬탈의 잔혹사와 지나족(支那族)의 ()동이’ 프로세스

— 헌원·당요·우순·하우의 연쇄 시해(弑害)와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의 문자학적 실상을 중심으로 —

 

이 정 우 (조선철전사법연구회)

 

국문 요약 (Abstract)

  본 연구는 중화주의 사관과 유교적 선양설(禪讓說)에 의해 도덕적으로 미화되어 온 동아시아 상고사의 권력 이양 과정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피비린내 나는 찬탈의 역사와 사상적 변절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한다. 상고시대 고대 동방 문명의 유일무이한 최고 정통 작위는 오직 ‘王(왕)’이었다. 신시개천 배달국의 한웅천왕(桓雄天王)과 고조선의 단군임금(檀君王儉)은 천하의 유일한 종주인 ‘王’으로서 변방의 방백들을 제후(諸侯)로 임명하여 다스렸다. 그러나 이 천부적인 왕제(王制)가 무너지자, 정당한 작위가 없는 변방의 제후들이 발흥하여 스스로를 ‘帝(제)’라 참칭하고 천하를 좌지우지하는 패륜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헌원(軒轅)의 유망(楡罔) 공격을 기점으로 시작된 ‘帝’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정통 ‘王’의 질서를 무너뜨린 호족 세력들의 권력 찬탈사이다. 특히 당요(唐堯)가 정통 모계 질서를 승계했던 친동생 지(摯)를 쳐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사건은 인류 상고사의 거대한 원형적 트라우마가 되어 기독교 경전의 ‘카인과 아벨’ 신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나아가 우순(虞舜)의 장인 당요 감금·치사, 하우(夏禹)의 사촌 우순 시해는 단주(丹朱)가 계승하려 했던 ‘홍익인간주의(弘益人間主義)’ 정통파와, 권력을 추구한 우순·하우 등 ‘지나 권력주의’ 파벌 간의 전쟁이었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의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 구절은 한자의 상황적 훈고학을 통해 비밀이 풀린다. 참칭자 우순이 만난 대상은 하위 제후가 아니라, 최고 존엄이자 정통 태자를 뜻하는 ‘后(태자 후)’의 훈을 지닌 고조선의 부루태자였다.

  결과적으로 헌원 이후의 오제(五帝)와 하·상·주로 이어지는 지나족의 형성은 정통 ‘王’의 문명으로부터 이탈한 ‘탈(脫)동이 정책’의 결과물이며, 이는 인류 정신문명을 물질과 탐욕의 타락으로 이끈 변곡점임을 사료 고증과 문자학적 분석을 통해 입증한다.

 

주제어: 왕제(王制)의 우선성, 제(帝)의 참칭, 한웅천왕, 단군임금, 카인과 아벨, 후(后)의 상황적 훈고학, 사근동후(肆覲東后), 탈(脫)동이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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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동아시아 상고사는 후대의 정치적 목적과 중화주의 유학 사관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왜곡되고 파편화된 영역이다. 한(漢) 제국 이후 유교가 국교화되면서, 사가(史家)들은 고대의 잔혹한 권력 찬탈사를 평화롭고 도덕적인 '선양설(禪讓說)'로 탈바꿈시켰다. 이 과정에서 가장 심각하게 비틀어진 것이 바로 상고시대의 작위 질서이다. 후대 중화주의 사학은 자신들의 시조를 높이기 위해 '帝(제)'를 최고 서열로 두고 '王(왕)'을 그 아래로 내리는 가치의 전도를 자행했다.

  그러나 본래 상고시대의 천부적 정통성은 오직 '王'에게만 존재했다. '王'이 먼저 존재하여 제후를 임명했고, 이 왕제가 무너지자 변방의 제후들이 설치면서 후대에 '帝'를 참칭하여 천하를 좌지우지하는 패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즉, 王이 없으면 帝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파생적 작위에 불과하다. 본 논문은 신시개천 배달국과 고조선으로 이어지는 정통 '왕제(王制)'의 본질을 밝히고, 헌원의 유망 공격, 당요의 친동생 지(摯) 시해, 우순의 장인 당요 감금·치사, 하우의 사촌 우순 시해로 이어지는 상고시대 4대 연쇄 찬탈 사건의 전말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당요의 아들 단주(丹朱)가 수호하려 했던 동방의 정통 '홍익인간주의'와 우순·당요 야합 과정의 본질이 곧 정통 '王'의 문명으로부터 분리·이탈하려 했던 지나족(支那族)의 ‘탈(脫)동이 정책’이었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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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천부적 왕제(王制)와 제()의 참칭 및 문자학적 실상

 

1. 정통 왕()의 우선성과 제후(諸侯임명의 권능

  고대 동방 문명에서 최고의 존엄과 정통성을 지닌 자리는 오직 '王(왕)'뿐이었다. 신시개천 배달국을 열어 문명을 선도하신 한웅천왕(桓雄天王)님과 그 맥을 이어 국가를 개창하신 고조선의 단군임금(檀君王儉)님이야말로 천하의 고유하고 유일한 정통 '王'의 실체였다. 이 정통 '王'의 권능 아래에서 변방의 방백과 지방관들에게 활쏘기 의례 등을 통해 영지를 분봉하고 다스리도록 격을 부여한 자리가 바로 제후(諸侯)를 뜻하는 '후(侯)' 작위였다. 한웅천왕님과 단군임금님이라는 정통 '王'이 제후를 임명하고 통제하던 대동(大同)의 질서가 상고시대의 정당한 천부적 통치 체제였다.

 

2. 왕제의 붕괴와 제()의 발흥이라는 패륜의 시대

  그러나 세월이 흘러 동방의 천부적 왕제가 느슨해지자, 정당한 작위가 없던 변방의 제후들과 호족 세력들이 발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통 '王'의 권위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 '帝(제)'라는 작위를 참칭하며 천하를 무력으로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다. 문자학적·역사적으로 볼 때, 王이 없으면 帝는 존재할 수 없는 작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찬탈자들은 자신들의 핏빛 찬탈을 가리기 위해 '오제(五帝)'라는 허울 좋은 프레임을 만들어 정통 왕의 역사를 지우고 패륜의 시대를 열었다. 헌원과 오제 세력은 왕이 임명한 제후가 아니다. 지방호족세력에서 왕이 임명한 제후의 자리를 무력으로 찬탈하고 권력을 쟁취한 후 왕을 배신하고 올라간 하극상의 수장들에 불과하다.

 

3. '자의 자형적 원리와 음독·훈의 상황적 변천

  이 패륜의 시대 속에서도 한자가 상황과 문맥에 따라 음독과 훈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법칙을 이해하면 역사의 진실이 드러난다. 《서경》 순전의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에 나오는 '后(후)'는 제후를 뜻하는 '侯'가 아니다.

  '后' 자를 파자하면 '厂(굴레바위 엄, 처마 밑 집)' + '一' + '口'로 구성된다. 이는 특정한 공간이나 집단 내에서 ‘첫 번째(一) 입. 가장 소중한 사람을’ 뜻하는 글자다. 군주가 장가를 들어 맞이하는 나라의 첫 번째 소중한 입(사람)이 ‘왕후(王后)’가 되는 것이며, 세월이 흘러 자식이 장성하여 그 나라의 통치 질서와 정통성을 계승할 인물이 되면 태자를 뜻하는 ‘태자 후(后)’가 되는 훈고학적 원리를 지닌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 음과 훈이 달라지는 한자의 특성상, 해당 구절의 '后'는 왕에게 임명받은 하위 방백인 '侯'가 아니라, 동방 천부 왕제의 정통성을 지닌 최고 군주 혹은 그 정통성을 이을 세습적·정신적 후계자(태자)를 지칭하는 극존칭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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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상고시대 4대 찬탈 사건과 문명사적 타락

 

1. 헌원(軒轅)의 유망(楡罔공격제후의 반란과 탈()동이의 시원

  지나족의 시조인 황제 헌원은 동방 배달국 정통 '王'의 질서에 반기를 든 제후 세력의 첫 번째 모반자였다. 당시 정통 왕제의 일원이었던 염제 신농씨의 마지막 대인 유망(楡罔)을 향해, 호족이었던 헌원은 정당한 작위 없이 무력으로 공격하여 판천(阪泉)의 들에서 쳐부수었다. 헌원이 유망을 공격하고 치우천왕(蚩尤天王)에게 도전한 본질적 이유는, 동방 정통 왕의 도덕적 조화 질서를 거부하고 물질과 무력을 기반으로 한 자신들만의 독자적 세력권('帝'의 참칭 체제)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바로 '탈동이 분리주의'의 시작이다.

 

2. 당요(唐堯)의 친동생 지(帝摯시해와 기독교 '카인과 아벨신화의 원형

  유교 사서에서 덕치의 화신으로 미화되는 요임금(당요)의 집권 과정은 정통 왕제를 허물기 위한 비극적인 형제 살해 구데타였다. 당요는 제위의 정당한 승계자이자 자신의 친동생(형제)이었던 제지(帝摯)를 무력으로 쳐죽이고 권력을 찬탈하여 스스로 '帝'라 칭했다.

  제지는 기존 동방 문명의 근간인 자연 친화적 모계 중심 사회와 인류 본연의 조화 질서를 승계 했던 인물이다. 반면 당요는 권력의 독점과 폭력적 부계(父系) 중심의 세습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당요는 동생 지(摯)를 살해한 후, 기존 동방의 천문 역법과 신성 철학을 인위적으로 변조한 '오행의 변(變)'을 일으켰으며, 이에 저항하는 동방 부족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대지를 피로 물들였다.

  이 형 당요가 권력 탐욕을 위해 친동생 지(摯)를 잔혹하게 쳐죽인 패륜 사건은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 거대한 문명사적 트라우마로 각인되었다. 이 상고시대의 피의 기록은 세월이 흐르고 문명이 파편화되어 서구로 흘러 들어가는 과정에서 신화적으로 변색되었으니, 곧 기독교 경전(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형제 살해 기록인 '카인과 아벨(Cain and Abel)' 이야기의 결정적인 역사적 모티브(Motif)가 되었다.    문명을 배신한 자(카인/당요)가 정통성을 지킨 자(아벨/제지)를 죽이는 탐욕의 역사가 동서양 경전에 동일한 원형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3. 단주(丹朱)의 홍익인간주의와 우순(虞舜)의 변절 및 야합

  당요의 권력 독점 프로세스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아들 단주(丹朱)였다. 단주는 부친의 탐욕적 권력관을 거부하고, 동방 단군임금의 정통 '王'의 철학을 계승하려는 정통파 ‘홍익인간주의자(弘益人間主義者)’였다. 그는 부친 당요의 부계 독재와 사상적 타락에 거세게 저항하며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따랐다.

  따라서 단주에게 권력을 넘겨줄 수 없었던 당요는 혈통적으로는 동이족이었으나 개인의 영달을 위해 동방의 정통성을 배신하고 자신의 탈동이 노선에 적극 동조한 변절자 우순(虞舜)을 포섭했다. 당요는 자신의 두 딸(아황, 여영)을 우순에게 시집보내 그를 사위로 삼고 정당한 후계자인 단주를 철저히 배제하는 사상적·정치적 야합을 통해 패륜의 권력을 창출했다.

 

4. 우순(虞舜)의 장인 당요 시해와 하우(夏禹)의 사촌 우순 격패

  권력과 변절로 맺어진 당요와 우순의 결말은 피의 배신이었다. 《고본죽서기년》의 기록에 따르면, 우순은 세력이 결집되자 장인인 당요를 평양(平陽)에 가두고 권력을 완전히 찬탈했으며, 단주마저 단수(丹水)로 추방하여 부자간을 강제로 격리했다.

  이러한 찬탈의 사슬은 하우(夏禹)에게로 이어졌다. 우순이 집권 과정에서 하우의 아버지인 '곤(鯀)'을 처형하자, 하우는 군사를 일으켜 자신의 친사촌 관계였던 우순을 격패하고 남쪽 창오(蒼梧)의 들로 내쫓아 난중(亂衆)에게 맞아죽게 만들었다. 헌원-당요-우순-하우로 이어지는 오제의 역사는 유교적 성인들의 아름다운 양도가 아니라, 왕제가 무너진 틈을 타 제후들이 발흥하여 친형제를 죽이고, 장인을 가두어 죽이고, 사촌을 패 죽인 연쇄 시해의 잔혹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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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동이 정책의 실현과 사근동후(肆覲東后)’의 문자학적 실상

  정당한 제후(侯)의 작위조차 없던 우순은 정당성 없이 장인을 시해하고 천자(帝)를 참칭한 뒤,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도량형(동률도량형)을 통일하는 등 방대한 정치적 쇼를 벌였다. 《서경》 우서 순전은 이 대목을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라고 기록하고 있다.

  기존의 중화주의 강단사학은 글자의 훈을 오독하여 이를 '천자인 순임금이 동쪽의 제후(侯)들을 만났다'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뵐 때 쓰는 극존칭인 ‘근(覲)’의 용례를 고려할 때, 제후를 참칭하던 자가 제후를 알현했다는 해석은 완벽한 오류이자 모순이다.

  한자의 음독과 훈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법칙을 적용할 때, 이 구절의 '后'는 하위 방백인 '侯'가 아니라 나라의 가장 소중한 정통 후계자를 뜻하는 '后(태자 후)'로 해석되어야 문맥이 완벽히 통한다. 즉, 이 구절의 진실은 정통 '王'의 질서를 깨고 '帝'를 참칭하며 패악을 부리던 우순이, 동방의 진짜 종주국이었던 고조선 단군임금의 장남이자 정통 후계자인 ‘부루태자(東后)’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알현(覲)하여 찬탈한 정권의 정당성을 승인받으려 했던 외교적 격하의 현장이다.

  하우 역시 도산회맹(塗山會盟)에서 부루태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치수의 비결인 금간옥첩(金簡玉牒)을 전수받아 겨우 권력을 유지했다. 이 모든 기록은 지나족 세력이 아무리 '帝'를 참칭하며 설쳐대도, 정통 '王'의 질서를 지닌 고조선의 압도적인 위상과 천부적 질서 아래에 종속되어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하우가 하나라(夏)를 개창하면서 본격화된 지나족의 ‘탈동이 정책’은 동방의 정통 '王'의 문명과 홍익인간 사상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오직 인간의 탐욕, 폭력, 법술(法術)만이 지배하는 독자적인 지나 제국을 정립하는 종착지가 되었으며, 이는 인류 정신문명이 본질을 잃고 타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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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결론

  본 연구를 통해 고찰한 상고시대의 피비린내 나는 연쇄 정권찬탈 사건들은 단순한 정권 교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방 고조선 문명의 정통 '王'의 철학이자 상생의 가치인 '홍익인간주의(단주 파)'와, 이를 배신하고 '帝'를 참칭하며 물질적 권력 독점을 추구한 제후들의 '지나 권력주의(당요·우순·하우 파)' 간의 격렬한 문명적 사상 전쟁이었다.

  한웅천왕님과 단군임금님께서 제후(侯)를 임명하시던 천부적 왕제(王制)가 무너지자, 변방의 제후들이 발흥하여 '帝'라는 파생 작위를 참칭하고 설치며 친동생을 시해하고, 장인을 가두어 죽이고, 사촌을 패 죽이는 패륜의 시대를 열었다. 특히 당요의 친동생 지(摯) 시해 사건은 서구 기독교 경전 성경의 '카인과 아벨' 신화로까지 유전될 만큼 인류사에 거대한 타락의 상흔을 남겼다.

  '동순망질 사근동후'라는 여덟 글자는 '侯'와 '后'의 어문학적 구분을 통해 그 진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王'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帝'를 참칭하던 우순이 고조선의 정통 후계자인 부루태자(東后)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사료적 실상을 그대로 박제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상고사 연구는 이와 같은 왕제의 우선성 회복과 한자의 상황적 훈고학 분석을 통해, 왜곡된 동아시아 고대사의 첫 단추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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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References)

《서경(書經)》 〈우서(虞書) 순전(舜典)〉

《고본죽서기년(古本竹書紀年)》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은본기(殷本紀)〉

《한비자(韓Free子)》 〈설의(說疑)〉

《순자(荀子)》 〈정론(正論)〉

《구약성경(Old Testament)》 〈창세기(Genesis)〉 4장 (카인과 아벨)

신채호,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종로서적, 1983.

학회 사료 총서, 〈갑골문·금문을 통해 본 상고시대 후(后)의 자형 원리 연구〉, 상고사학보 제24집,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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