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禮記)》 〈사의(射義)〉 편 ‘천자(天子)’의 실체에 관한 연구
—문자 기원과 작위 수여 원칙 및 사택(射宅) 제도를 통한 배달국·고조선 상고사 복원을 중심으로—
요 약
본 연구는 《예기(禮記)》 〈사의(射義)〉 편에 등장하는 “천자이추우위절(天子以騶虞爲節)”의 ‘천자’를 주류 사학의 관점인 ‘주(周)나라 국왕’이라는 표면적 해석에서 탈피하여, 고대 문자의 형성 원리와 작위(爵位) 수여의 법도를 통해 그 역사적 실체를 추적하였다. 문자학적으로 ‘왕(王)’은 천지인(天地人) 삼재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한 샤먼이자 도통(道通)한 지배자이며, ‘제후(諸侯)’는 왕 앞에서 천도(天道)에 부합하는 활쏘기[射]를 통해 덕성을 검증받아 임명된 직책이다. 반면, 후대의 ‘황제(皇帝)’는 헌원(軒轅)의 찬탈과 진시황(秦始皇)의 참칭에서 비롯된 무력 중심의 패권적 산물이다. 본고는 천자 고유의 전용 활터인 ‘사택(射宅)’에서 천도에 부합하는 활쏘기로 제후들을 친히 시험하고 제(帝)와 후(侯)의 작위를 수여한 진정한 천자의 실체가 신시배달국의 18분 환웅천왕(桓雄天王)과 고조선의 47분 단군(檀君)임금임을 문헌 고증과 명분론을 통해 증명하고자 한다.
주제어: 예기 사의, 천자, 제후, 사택(射宅), 배달국 환웅천왕, 고조선 단군, 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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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예기(禮記)》 〈사의(射義)〉 편은 고대 활쏘기 의식인 사례(射禮)의 규범과 철학을 담고 있는 핵심 문헌이다. 해당 본문은 활을 쏠 때 지배층의 신분에 따라 예악의 절도(節)를 달리했음을 기록하며, 그 정점에 “천자는 추우를 절도로 삼는다(天子以騶虞爲節)”고 명시하고 있다. 후대 유학자들과 주류 사학계는 이를 주(周)나라의 분봉제 체제 안에서 국한하여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후대 중화주의 역사가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고대의 원형적 제도를 왜곡·편집한 결과를 맹목적으로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 본 연구는 말(言)을 기록하기 위해 글자(文字)가 만들어진 문자학적 발전 단계와, 고대 분봉제 하에서 작위가 수여되던 엄격한 명분론적 원칙을 바탕으로 〈사의〉 편에 등장하는 ‘천자’의 진정한 역사적 실체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왜곡된 고대 동북아시아 상고사의 국통(國統)을 바로잡고 예악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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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문자의 기원과 ‘왕(王)’·‘제후(諸侯)’의 개념적 선후 관계
인류의 문자는 기초적이고 직관적인 형태에서 시작하여 점차 복잡하고 중의적인 개념으로 발전한다. 숫자 1.2.3의 형태나 해와 달등 자연물의 모양에서 초기 글자가 유래한 것처럼, 고대 정치체제의 용어 역시 이 문자학적 법칙을 따른다.
1. ‘왕(王)’의 문자학적 기원과 도통(道通)의 지위
‘王’ 자는 하늘·사람·땅을 뜻하는 삼재(三)를 하나의 세로획(丨)으로 꿰뚫은 형상이다. 즉, 천지인의 우주적 질서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여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는 도통한 영적 지도자이자 제사장(샤먼)이 고대의 ‘왕’이었다. 이는 4획의 가장 기초적인 문자로서 최상위 권력의 기원이 무력이 아닌 영성과 도덕성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2. ‘제후(諸侯)’의 형성과 활쏘기[射]의 시험
‘제후’는 최고 통치자인 ‘王’ 왕이 영토의 확장과 효율적 통치를 위해 임명한 대리인들이다. 諸侯제후에는 '帝'제 작위와 '侯'후 작위가 속해 있었다.〈사의〉 편에 따르면, 왕은 제후를 선발할 때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천도에 부합하는 올바른 활쏘기’라는 엄격한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했다. 이때 능력이 검증되어 가문 전체가 그 지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세습 작위를 ‘제(帝)’라 하였고, 본인 당대에 그치는 작위를 ‘후(侯)’라 하였다. 즉, 제후는 왕의 임명 체제 하에 존재하는 하위 종속적 개념이다.
3. ‘황제(皇帝)’ 개념의 후기 발생과 참칭(僭稱)
‘皇帝’는 皇(빛나는 왕)과 帝(하늘의 신)가 결합한 복잡하고 추상적인 문자로, 문자 발전 법칙상 나중에 출현한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황제를 칭한 진시황(이정)은 상위 왕의 임명이나 천도의 검증 없이 무력으로 천하를 찬탈한 후 스스로를 신격화하였다. 이는 정통성에 기반한 즉위가 아닌 명백한 ‘참칭’이며 고대 예법의 파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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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황제 헌원 계보의 조작성과 역사 왜곡
중국 상고사에서 오제(五帝)의 시조로 추앙받는 황제 헌원(黃帝 軒轅)의 가계와 행적을 정통 작위 수여 원칙으로 추적하면, 후대 사가들에 의해 자행된 거대한 역사 조작의 실상이 드러난다.
1. 소전제(少典帝) 가계와 헌원의 패륜성
고대의 적법한 작위 수여에 따르면, 소전은 신시배달국 제8대 안부련 환웅천왕으로부터 정식으로 ‘제(帝)’ 작위를 수여받아 강수(姜水)에 부임했다. 소전제의 장남인 석년은 이를 정당하게 계승하여 염제 신농씨(炎帝 神農氏)가 되었고, 그 계보는 8대 유망제까지 이어졌다. 반면 헌원은 소전제의 차남인 욱(勗)의 후손(10대손)으로, 작위가 없는 방계 신분이었다. 헌원이 8대 유망제를 공격하여 군대와 재산을 빼앗은 것은 본가(큰집)를 짓밟은 도덕적 패륜이자 반역이다.
2. 탁록대전과 헌원의 참칭
헌원은 방계의 신분으로 분봉제의 최고 통치자인 배달국 제14대 자오지 환웅천왕(치우천왕)께 항거하여 탁록대전을 일으켰다. 그의 아비 계곤(啓昆) 역시 제(帝) 작위를 가진 적이 없으므로, 헌원은 법도상 결코 ‘제’가 될 수 없는 인물이며 그의 황제 칭호는 완전한 참칭이다.
3. 문헌의 가탁(假託): 《황제내경》의 예
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 등장하는 음양오행(陰陽五行) 이론은 기원전 27세기 헌원이 살았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기원후 3~4세기에 이르러서야 정립된 개념이다. 따라서 이는 후대 저작자들이 책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찬탈자 헌원의 이름을 빌려 쓴 가탁(假託)에 불과하다. 의학의 진정한 시조는 본초(本草)를 정립한 염제 신농씨이나, 역사의 왜곡으로 인해 서적 명칭마저 찬탈자의 이름으로 오염된 것이다.
4. ‘騶(추)’ 자에 은폐된 변방 호족(陶)의 정체와 문자 조작의 폭로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천자이추우위절(天子以騶虞爲節)”의 ‘騶(추)’자는, 후대 중화주의 왜곡가들이 철저한 의도를 가지고 조작해 낸 가공의 글자이다. 문자학적 자형 변천을 추적하면, 본래 이 글자는 당요의 출신 성분인 제요도당(帝堯陶唐)의 ‘陶(질그릇 도)’자에서 기인한 것이다. 당요는 본래 고조선 단군임금님의 통치권 변방에서 질그릇을 굽던 호족 세력에 불과했다.
그러나 후대의 왜곡 사가들은 당요와 우순이 삼황오제중에 오제가 되려면 단군임금님의 변방 호족이었다는 천박한 신분적 실상을 은폐해야만 했다. 이에 따라 원래 문맥에 존재하던 ‘陶(도)’자의 좌부방(阝)을 무력을 뜻하는 ‘馬(말 마)’자로 강제 치환하고 글자를 교묘히 비틀어, 세상에 없던 ‘騶(마부 추)’자를 조작하여 삽입한 것이다.
헌원의 아비 계곤이 제(帝)작위가 없었기 때문에 헌원은 '제(帝)'가 될 수 없었고, 그의 후손인 소호금천, 제곡고신, 전욱고양, 제지, 당요, 우순, 하우까지의 오제 세력 전체가 '제(帝)'작위가 없는 '변방 호족 세력'일 뿐이었다는 역사적 진실을 감추기 위해 행해진 거대한 문자 사기극의 실체가 바로 “천자이추우위절(天子以騶虞爲節)”의 ‘騶’자 조작이다.
IV. 〈사의(射義)〉 편 ‘천자(天子)’의 공간적 실체와 배달·고조선 복원
《예기》 〈사의〉 편에서 천자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제도적·공간적 장치는 바로 ‘사택(射宅)’의 존재이다.
1. 천자 전용 활터인 사택(射宅)의 정치·종교적 위상
고대 분봉제 하에서 사택은 단순한 건축물이나 일반적인 처소가 아닌, 오직 천자만이 보유하고 주재할 수 있었던 신성한 ‘천자 전용 의례용 활터’를 지칭한다. 한웅천왕님과 단군임금님은 이 신성한 성역에 제후들을 모아놓고, 연례를 통하여 고대의 예악적 절도에 맞추어 천도(天道)에 부합하는 활쏘기로 많이 맟춘자를 제후로 선발하도록 명했다. 왕의 앞에서 흐트러짐 없이 활을 쏘아 과녁을 맞히는 과정은, 제후가 하늘의 뜻과 지상의 예법을 온전히 체득했는지를 검증하는 유일한 정통성 평가 메커니즘이었다.
2. 사택(射宅)을 주재한 진정한 천자: 환웅천왕과 단군임금
인류 역사상 무력이 아닌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라는 천부(天符)의 도리로 백성을 교화하고, 신성한 활터인 사택에서 영적·덕성적 기준으로 제후들을 엄격히 검증하여 작위를 내린 유일한 정통 통치자는 신시배달국의 18분 환웅천왕(桓雄天王)과 고조선의 47분 단군(檀君)임금뿐이다.
헌원부터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 순, 하우에 이르는 계보는 상위 천왕의 적법한 임명 절차가 결여된 참칭 집단이며, 이들의 역사는 후대 사가들이 정통성 세탁을 위해 조작한 거짓 역사에 불과하다.
3. 동방 천자 제도의 중화식 변질과 문헌의 흔적
후대 중화의 사가들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방계이자 참칭자인 헌원을 최고 시조로 둔갑시키는 거대한 역사 조작(화이동포론)을 단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배달국과 고조선의 위대한 천자 제도와 사택의 규범을 주나라 왕실의 제도로 가탁하여 《예기》에 편집·수록한 것이다. 그러나 "천자가 전용 활터(사택)에서 천도에 맞춰 제후를 시험하고 임명했다"는 핵심 원형의 기록만큼은 중화 사가들이 미처 지우지 못하고 역사의 결정적 흔적으로 남겨두게 되었다.
V. 결론
본 연구는 《예기》 〈사의〉 편의 “천자”가 결코 주나라의 왕이나 참칭자 헌원 계보의 인물이 될 수 없음을 고증하였다. 문자의 발전 단계상 기초 명사인 ‘왕(王)’이 복합 명사인 ‘황제(皇帝)’보다 선행하며, 정당한 작위인 ‘제(帝)’와 ‘후(侯)’는 오직 천지인을 일이관지한 최상위 왕의 임명을 통해서만 성립된다.
따라서 신성한 천자 전용 활터인 사택(射宅)을 주재하며 천도의 활쏘기로 제후들의 덕성을 검증하고 작위를 수여했던 진짜 천자의 실체는 오직 신시배달국의 18분 환웅천왕과 고조선의 47분 단군임금뿐이다. 본 연구는 중화주의 왜곡과 식민학풍에 가려진 동방 정통 상고사의 국통(國統)과 예악 및 사택 제도의 원형을 복원하고, 동북아 상고사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학술적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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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禮記》 〈射義〉 편 원문.
사마천, 《史記》 〈五帝本紀〉.
《黃帝內經》 〈素問〉·〈靈樞〉.
계연수 편저,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桓檀古記)》, 상생출판, 2012.
임승국 번역·주해, 《환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
상고사학회 편집부, 〈고대 동방 분봉제와 작위 수여에 관한 연구〉, 《상고사학보》, 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