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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산해경』 ‘대예사일(大羿射日)’ 고사의 왜곡과 역사적 실체에 관한 연구

작성자한산|작성시간26.06.17|조회수12 목록 댓글 0

『산해경』 ‘대예사일(大羿射日)’ 고사의 왜곡과 역사적 실체에 관한 연구

     - 문자 발생론과 배달·단군조선의 국통맥을 중심으로 -


한 산 이 정 우 (조선철전사법 연구회)

국문 요약

본 논문은 『산해경(山海經)』 및 『회남자(淮南子)』 등에 기록된 ‘대예사일(大羿射日)’ 고사의 왜곡을 비판하고, 고대 동방의 정통 사료를 통해 역사적 실체를 규명하고자 한다. 주류 사학계는 당요(唐堯)가 궁수 예(羿)에게 명령하여 하늘의 아홉 해를 맞추어 떨어뜨렸다는 신화를 천자(天子)와 신하의 관계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본 연구는 문자 발생의 진화론적 순서(王→帝·侯)와 『예기(禮記)』「사의(射義)」에 나타난 정통 천자 분봉 체계를 통해 당요의 무자격성을 논증한다.  또한 『부도지(符都誌)』, 『환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등의 고증을 바탕으로, 황제 헌원의 모반으로 시작된 삼황오제의 혈통적 한계를 추적한다. 나아가 고대 지도자 간의 '1:1 사결(射決)' 메커니즘을 분석하여, ‘열 개의 해(十日)’는 당요를 포함한 10인의 반란 부족장이었으며, 궁후 예의 화살에 척결된 알유(猰貐)·착치(鑿齒)·구영(九嬰)·대풍(大風)·봉희(封豖)·수사(修蛇) 등의 괴수로 왜곡된 실제 반란 영수들의 실명을 밝힌다. 결론적으로 오직 활을 쏘지 못하는 잔꾀꾼이었던 당요만이 골방에 숨어 살아남았으며, 후대에 이르러 역사를 역반하장으로 왜곡한 패악의 산물임을 문헌적 각주와 함께 논증한다.

 

주제어: 대예사일(大羿射日), 궁후 예, 당요, 1:1 사결(射決), 배달국, 단군조선

 

I. 서론

동아시아 고대 신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대예사일(大羿射日)’ 고사는 당요 시절 열 개의 해가 동시에 떠올라 대지를 태우자, 궁수 예가 그중 아홉 개의 해를 쏘아 떨어뜨려 백성을 구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후대 유가 사서들은 이를 당요의 성덕(聖德)과 천자로서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본 연구는 고대 작위 체계와 작명법, 그리고 문자의 발생 원리를 고려할 때, 당요가 제후인 궁후 예에게 명령을 내렸다는 서사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역사의 왜곡이자 어불성설임을 밝히고자 한다. 특히 고대 전쟁이 하급 병사나 마부들을 동원한 대규모 소모전이 아니라 지도자 간의 신성한 1:1 결투로 결판났다는 점, 그리고 정통 활쏘기 대결(射決)의 법칙을 바탕으로 이 사건의 전말을 재해석하고 신화 뒤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고자 한다.

 

II. 본론

1. 문자 발생론과 『예기 사의』로 본 작위의 선후 관계

언어와 문자의 발달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사물을 기록하기 시작할 때는 지극히 직관적이고 기초적인 문자(숫자 1·2·3, 日, 月, 木 등)가 먼저 생성된다. 제도 및 계급을 나타내는 문자 역시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왕(王)’이라는 글자가 먼저 확립된 후, 국가 체계가 고도화되면서 ‘제(帝)’나 ‘후(侯)’와 같은 중의적·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제도적 글자가 후대에 만들어졌다.

따라서 정통성을 가진 절대적 존재인 ‘왕(王)’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그 아래에 ‘제(帝)’와 ‘후(侯)’의 작위를 임명하는 분봉(分封) 체계가 성립할 수 있다. 『예기(禮記)』 「사의(射義)」 편에 따르면, 고대 천자는 ‘천도(天道)에 부합하는 활쏘기’라는 엄격한 도덕적·무예적 검증을 통해 도와 덕이 갖추어진 인물을 선발하여 제후(諸侯)로 봉하고 봉지와 백성을 맡겼다. 이처럼 제후 중 세습이 가능한 '제작위(帝爵位)'와 당대에 그치는 임명직 관리인 '후작위(侯爵位)'를 하사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동방의 정통 천자뿐이다. 신시개천을 연 배달국의 18분 한웅천왕과 고조선의 47분 단군임금만이 이 법도에 부합하는 유일한 천자이다.

 

2. 당요(唐堯) 세력의 혈통적 무자격성과 사료적 고증

유가 사서가 주장하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체계는 고대 동방의 천자 체계를 모방하여 조작된 불성립의 위사(僞史)에 불과하다. 당요의 조상인 황제 헌원(軒轅)은 본래 천하를 다스리는 정통 천자가 아니라, 상국(큰집)이었던 신농씨(神農氏) 집안을 공격하여 재산과 군대를 무단 강탈한 일방의 지방 호족에 지나지 않았다.

헌원은 더 나아가 동방의 정통 천자이신 신시개천 배달국 제14대 자오지 환웅천왕(치우천왕)께 대들며 모반을 일으켰고, 이는 탁록전쟁(涿鹿戰爭)으로 이어졌다. 탁록전쟁에서 치우천왕에게 철저히 대패한 반란자 헌원에게 배달국 천자가 천하를 다스릴 정통 ‘제작위(帝爵位)’를 하사했을 리 만무하며, 하사할 수도 없는 적대적 관계였다.

뿌리가 되는 조상 헌원이 제작위를 받지 못한 일방의 군벌이자 반란자였으므로, 그 자손인 당요 역시 제후를 거느리거나 임명할 수 있는 정통 ‘제(帝)’의 자격을 가질 턱이 없다. 따라서 정식 후작위(侯爵位)를 가진 영웅인 '궁후 예'가 제작위도 없는 당요의 명령을 받아 움직였다는 서사는 인과관계가 완전히 무너진 조작이다.

 

3. 고대 지도자 간 1:1 '사결(射決)' 법칙과 당요의 비겁한 생존

고대의 전쟁과 분쟁 해결 방식은 후대의 전쟁과 달리, 수레를 끌고 방패를 드는 하급 종놈(하급 병사)들을 동원한 소모전이 아니었다. 집단의 운명을 걸고 부족의 지도자와 지도자가 정면으로 맞붙는 신성한 1:1 대결이 본질이었다. 특히 당대에 행해진 활의 대결(사결, 射決)은 엄격한 규칙을 따랐다. 화살을 활용해 자신의 발자국에서 화살 하나 거리만큼의 원(圓)을 바닥에 그리고, 대결자들은 각자의 원 안에 서서 움직이지 않은 채 상대방을 향해 화살을 쏘아 맞히고, 동시에 그 제한된 원 안에서 상대의 화살을 방어해내는 극한의 무예이자 도(道)의 대결이었다.

『산해경』과 『회남자』가 은유적으로 전하는 '하늘에 뜬 열 개의 해(十日)' 및 이와 연동되어 나타나는 아홉 괴수들은 기후적 재앙이나 짐승이 아니었다. 이는 단군조선의 천도(天道)를 어겨 도덕적 붕괴를 초래하고 사방에서 제각기 왕과 천자를 자처하며 봉기한 당요를 포함한 열 명의 패역한 반란 부족장들의 실체였다.

당시 궁후 예의 신산(神算)과 같은 화살에 맞서 1:1 정면 사결(射決)을 벌이다 원 안에서 처참하게 사살당한 아홉 명의 도적놈들의 실명(후대 괴수로 왜곡된 명칭)은 다음과 같다.

  1. 알유(猰貐): 천도의 질서를 깨고 가장 먼저 봉기한 잔인한 반란 영수
  2. 착치(鑿齒): 날카로운 무기를 앞세워 동방의 백성을 핍박한 도적
  3. 구영(九嬰): 수리(水利)와 화공(火攻)을 동원해 패권을 다투던 세력가
  4. 대풍(大風): 날랜 기동력을 바탕으로 사방을 약탈하던 군벌
  5. 봉희(封豖): 탐욕스럽게 재물과 토지를 갈취하던 지방 호족
  6. 수사(修蛇): 장강과 웅거지를 기반으로 군대를 키워 대들던 반란자
    7~9. 그 외 함께 연합하여 천자를 자처했던 세 명의 무명 반란 영수들 (총 9인의 도적)

이 아홉 명의 도적놈들은 예의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평정(사일, 射日)되었다. 그러나 오직 당요 한 사람만은 대결장에 나오지 않았다. 당요는 평소 활을 쏘는 무인이 아니었기에 궁후 예와 1:1로 맞설 용기도, 패기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무예적 한계를 알고 감히 예의 앞에 나서지 못한 채, 골방 깊숙이 숨어 목숨을 구걸하는 잔꾀를 부렸다.

당요는 직접 대결을 회피함으로써 비겁하게 살아남았고, 궁후 예가 군을 물린 후 『서경(書經)』 「우서 순전(虞書 舜典)」 등에 기록된 것처럼 섭정과 선양이라는 정적 제거 및 권력 이양의 잔꾀를 부리며 후대에 패악을 전하게 되었다.

 

III. 결론

본 연구를 통해 『산해경』의 대예사일 고사는 전말이 완전히 뒤바뀐 후대 유가 문명권의 역사 왜곡임이 명백히 증명되었다.

  1. 문자 발달의 순서상 왕(王)의 존재가 선행되어야 제·후(帝·侯)의 작위가 성립되나, 당요의 가문은 정통 천자로부터 제작위를 받은 적이 없는 반란 호족(헌원의 후손)에 불과하다.
  2. 따라서 당요는 정식 후작위인 궁후 예에게 어떠한 명령도 내릴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으며, 두 사람의 관계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천자의 대행자'와 '처단 대상인 반란자'의 관계였다.
  3. 고대의 신성한 1:1 사결(射決) 대결에서 알유, 착치, 구영을 비롯한 아홉 명의 도적은 예의 화살에 맞아 사살되었으나, 활을 쏠 줄 몰라 두려움에 떨던 잔꾀꾼 당요만이 골방에 비겁하게 숨어 목숨을 부지하였다.

이렇게 살아남은 당요 세력이 후대에 권력을 잡은 후, 자신들이 마치 천하의 정통 주권자인 양 행세하고 궁후 이를 자신들의 하급 장수처럼 묘사하여 패악을 전한 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신화의 본질이다. 본 고증은 고대 유가 사서의 왜곡된 중화주의적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배달국과 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동방 국통맥의 위엄과 정통성을 올바르게 바로잡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각주 (References)

  1. 문자발생론에 따르면 구체적 실물 지칭 문자(일, 월, 왕)가 계급 제도의 정착에 따라 추상적·중의적 글자(제, 후)로 확장된다. 왕(王)의 권위가 확립된 이후에야 비로소 분봉의 개념인 제와 후가 파생될 수 있다.
  2. 『禮記』 「射義」: "故天子制諸侯... 射者 諸侯 의 本也 故以射選諸侯." (천자가 제후를 제도화함에... 활쏘기는 제후의 근본이므로 활쏘기로써 제후를 선발하였다.)
  3. 『揆園史話』 「太始記」 및 『桓檀古記』 「삼성기」: 황제 헌원은 공손(公孫)의 자손으로, 염제 신농씨의 정치가 쇠퇴하자 군대를 일으켜 가산을 탈취하고 일방의 호족으로 발흥하였다.
  4. 『桓檀古記』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치우천왕(자오지 환웅)이 탁록의 들판에서 헌원의 무리를 대파하고, 헌원을 신하로 삼아 굴복시켰으나 결코 정통 제작위를 내린 바 없다.
  5. 『符都誌』 제13장~14장: 요(堯)가 천당(天堂)의 대도를 어기고 사사로이 수수(數)를 만들어 세상을 어지럽히고 스스로 왕을 자처하며 도덕적 배달 체계를 파괴하고 반란을 일으킨 과정을 고증하고 있다.
  6. 『山海經』 및 『淮南子』 「본경훈」의 "堯時十日並出 堯命羿射九日" 기록과 함께 "살알유, 참착치, 살구영, 단대풍, 금봉희, 금수사(殺猰貐, 斬鑿齒, 殺九嬰, 繳大風, 擒封豖, 斷修蛇)"의 서사는 괴수 처단으로 각색되었으나 본질은 반란 영수들의 1:1 사결 평정 기록이다.
  7. 『書經』 「虞書 舜典」: 요임금과 순임금 시절의 권력 이양 과정은 평화적인 선양이 아니라, 무력이 없는 잔꾀꾼 당요가 규율을 어기고 골방에서 밀실 정치를 획책하며 정통성을 조작해 낸 패악의 서술 방식이다.
  8. 요·순 시기 서사의 허구성과 찬탈의 실체를 증명하는 동아시아 고대 핵심 사료 군《고본죽서기년(古本竹書紀年)》의 요위순소수(堯爲舜所囚, 요는 순에게 갇혔다) 기록,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및 〈은본기(殷本紀)〉에 내포된 혈통 조작의 흔적, 《한비자(韓非子)》 〈설의(說疑)〉의 "순핍요, 우핍순(舜逼堯, 禹逼舜, 순은 요를 핍박하고 우는 순을 핍박했다)"이라는 찬탈의 진실 규명, 그리고 《순자(荀子)》 〈정론(正論)〉에서 기성 유가의 선양설을 "허구이자 천박한 전설(夫曰堯舜禪讓 傳者之妄也)"이라 일갈한 기록들은 당요 세력이 활의 대결에서 도망친 후 밀실 모략으로 정권을 잡고 역사를 왜곡했음을 방증하는 결정적 문헌 근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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