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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강론말씀

2026.06.07.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최상훈 티모테오 주임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이순자 유스티나|작성시간26.06.07|조회수45 목록 댓글 0

 

2026.06.07.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최상훈 티모테오 주임신부님 강론 말씀

 

 

가톨릭 교회가 그리스도 승천 대축일을 시작으로 연속 4주간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좀 번거로우신가요? 4주간 대축일을 지냅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저는 딱 오늘이 되면은 생각나는 동영상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루치아노 파바로티, 세계적인 테너 돌아가셨지만 파바로티가 피아노에 딱 기대어서 까만 슈트를 입고 여기에는 하얀 손수건이 있는데 손수건을 탁 뽑아서 입을 한 번 닦은 다음에 불렀던 노래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빠니스 안젤리쿠스(Panis Angelicus)’ ‘천사의 양식이라는 성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노래를 들을 때 우리가 먹는 받아 모시는 그 주님의 성체는 그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파바로티가 열정을 다해서 불렀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오늘 독서와 오늘 본문 전체적으로 주님의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그 당시 예수님 시대에도 이 말을 듣고 반응이 제각각이었다는 겁니다.
아니 저 사람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는 거야?
왜냐하면 그 당시 유대 율법은요. 동물의 피를 먹지 않는 법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의 피를 마시라고? 아니 사람의 살을 먹으라고? 라는 이야기로 들렸던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과 백성들이 정면 충돌하는 장면이 오늘 복음의 시작입니다.
한마디로 썩어 없어질 양식과 영원한 생명의 양식과 대립하는 구조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저는 5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로 5천명을 배불리시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미쳐 날뛰였습니다.

저 사람을 잘 따라다니면 배고프지 않겠다. 신세 한번 고치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래서 예수님을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미쳐 날뛰고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피해 가십니다.

 

살아있는 빵을 먹는 행위는 주님의 몸과 피를 모시는 것으로, 단순히 자기 뱃속에 음식물을 집어넣는 횡재라기보다는 이 생명의 빵은 세상 곳곳에 함께 공유하고 나누어야 할 공공재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설파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체를 모신다는 것, 생명의 빵을 먹는다는 것은 어린애가 엄마와 결합되듯이 하느님과 일치되고 결합되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이 빵은 하느님의 생명력을 갖게 되는 일입니다.


이 빵을 먹음으로써 내가 거룩해지는 사건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그 빵을 받아 모심으로 인해서 내 안에 그분의 생명력이 자라나게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 사건을 기억하고 행하는 일이라고 예수님께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나눔을 행하고 일치를 행하고 사랑을 행하는 일, 이 빵을 받아먹는 사람은 기억하고 행하게 된다는 것 이것이 성체 성사의 본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요즘 매스컴 여러분이 그렇게 좋아하는 동영상 유튜브는 먹방이 대세입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어떻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 다 먹는 것 투성이 입니다.
여러분은 대리만족하시죠? 아오 나 이거 먹으면 살찌는 데 그러니까 좀 참아. 그런데 어떤 먹방 유튜버가 먹는 것을 보고 대리 만족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그러면 그렇다고 끄덕이세요. 먹방이 대세입니다.
얼마 전에는 차승원 때문에 차줌마 때문에 음식을 못하는 남자들은 루저로 보입니다.
차승원 때문에 참고로 차승원은 독신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데 저는 그 먹방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시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밥 먹고 싶다

저는 이 시를 읽고 가슴을 후려쳐 두드려 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대로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 두촌본당 교우 여러분,

밥 먹고 다니시는지요? 여러분 식사는 하십니까?”


제가 이 질문을 단순히 우리 뱃속에 음식물을 집어넣는 그 식사를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인이 얘기한 것처럼 정말 밥 먹고 있느냐? 라고 묻는 내용입니다.
잘 먹고 사시는지요? 이거는 콜레스테롤을 걱정하고 산화 지방을 걱정하고 염분을 조절하고 당도를 따져서 드시냐는 질문이 아닙니다.
가족이 함께 밥 먹은 때가 언제이신가요? 가족 모두가 함께 뜨거운 가슴을 나누면서 식사한 적이 언제이신가요?
아니 같이 모이더라도 온갖 TV 매체를 크게 틀어 놓고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광 클릭하면서 그저 육적인 허기를 채워 나가지 않으셨는지요 그래서 묻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 식사는 하셨는지요? 밥은 먹고 다니시는지요?

가족이 함께 있으면서도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계속 보면서 음식물을 목구멍 속으로 그냥 집어넣고 계시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에 잘 아는 그 유명한 시인 김지하는 얘기했습니다.
참고로 김지하도 열심한 천주교 신자입니다. 김지하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밥은 하늘이다.

하늘이 밥이고 밥이 하늘이다라고 일갈했습니다.

밥은 식사를 조금 무식하게 표현하면 단순히 순대를 채우는 물리적 행위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그렇게 많은 철학자들이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얘기했습니다.


밥 먹고 살라고요. 밥 먹고 살라고요.

내가 먹는 이 밥은 어떤 농부가 수만 번 허리를 굽혀 보살핀 희생의 밥 그릇이고요
우리들의 어머니가 자신을 송두리째 헌신한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엄청난 사건이 있었어요. 1940년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입니다.
르네 스피츠라는 사람이 하나의 실험을 합니다. 보육원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기가 돈을 다 들여서 그 보육원을 최고의 시설로 꾸밉니다. 무균실, 병균이 들어오지 않도록 잘 아주 완벽하게 꾸밉니다. 그리고 칼로리를 정확히 계산해서 어린 아기들에게 완벽한 식사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보육사들이 가까이 가는 것도 금지하고 오히려 오히려 요람에 철사로 매달아서 젖병을 달고 아기들이 배고프면 자기들이 먹게 하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스피츠는 그렇게 보육원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완벽한 위생, 완벽한 칼로리, 완벽한 침대, 안락한 침대를 만들어 놓고 그 아기들을 보육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도출됐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케어를 받은 그 아이들,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37%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살았다 하더라도 나머지도 정상의 지능을, 정상의 기능을 발휘하는 아이들이 많이 없었습니다.

스피츠는 똑같은 실험을 또 합니다. 교도소로 갑니다.
교도소에서 거기서 아기를 낳든지 한 아들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합니다.
여기는 그냥 내버려 둔 거예요. 그런데 거기는 엄마와 함께입니다.
교도소라는 그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아기들이지만 엄마가 품에 안아주고 엄마의 젖을 물리고 엄마와 함께 살도록 한 겁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단 한 명도 죽지 않았고, 그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완전한 건강한 아이였다는 거예요.


제가 강조하고자 싶은 것은 밥은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물을 목구멍에 집어넣는 사실이 아닌 오히려 밥은 소통과 공감의 자리, 용서와 화해의 자리, 희생을 할 줄 아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쩌면 이렇게 못 살고 있고 이렇게 짐승처럼 훼방하고 모략하고 남을 업신여기고 사는 나에게도 의미 있는 인간이 되도록 자기 자신을, 자신의 살점을 나에게 먹이로 주시고, 자신의 피를 목마를까봐 우리에게 음료로 내어주십니다.
그것도 쪼개어지고 으깨어져서 나의 먹이로 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시고 자기 자신을 먹이로 주실 만큼 사랑해 주십니다.
세상이 주는 힘은 언제나 한계에 다다릅니다. 먹어도 쉽게 허기집니다.
그러나 성체 안에서 스스로가 기쁘고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그 힘, 주님의 몸과 피로써 가능합니다.


교우님들에게 제 사제 생활을 통해서 성체 성사의 힘, 성체 성사가 가진 능력을 사례를 말하라면 오늘 밤 이밤이 다 지새도록 해도 모자라니까 오늘 그런 사례를 말씀드리는 것은 거두겠습니다.

그러나 성체는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새롭게 하고 우리 안에서 뭔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겁니다.
1년 열두달 매일 성체를 받아먹지만 그 성체가 그냥 밀가루 덩어리로 변해버린다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겠죠.

제가 어느 본당에 있을 때 반 미사를 나갔습니다. 반 모임 미사를 하는데 성체를 영해 주는데

아니 이 부부가 성체를 안 모시는 거예요. 끝나고 나서

성체를 먼저 모셔야죠. 성체가 중요한 건데 성체를 모셔야죠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분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어제 병원에 갔다 왔는데 의사가 밀가루 음식 먹지 말라고 그래서...”
통탄할 일이었습니다. 가슴을, 내 가슴을 치고 싶은 말이었어요.
내 건강이 나빠질까 봐 밀가루 음식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강조하지만 성체 성사의 힘을 경험하셔야 돼요.
그래서 미사를 통해서 성체를 영한 여러분이 내 안에 오신 그분과의 완전한 일치를 체험하고 경험하셔야 됩니다.
주님 당신의 희생이 저에게 오셨습니다. 저에게 오셨고 저를 새롭게 하시고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내가 아는 분도씨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알코올 병원만 네 번째 들어갔습니다.
또 퇴원했습니다. 그분은 결심했습니다.

개인 택시를 하시는데 단 한 번도 하루도 성체를 모시지 않는 날이 없게 하겠다.
그분의 차에 보면은 청주시내 모든 미사 시간이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미사에 참여하여 그리고 성체를 모십니다.
그분은 지금껏 술을 반 잔도 안 먹었습니다. 성체의 힘이 나에게 지금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체험하고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리면서 끝낼까 합니다.
이 이름을 기억해 주시죠. ‘스콧 한미국인이고요.
장로교 목사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대학 장로교 대학에서 성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합니다. 그 교수는 주로 성서 신학에서 가톨릭 전례에 대해서 논문을 썼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서 일어나는 미사, 특별히 성체 성사에 대해서 계속 비판적인 글을 써 내려간 장본인입니다.


그런데 더 잘 쓰기 위해서 그는 평상복을 입고 밀워키의 주교좌 성당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살금살금 들어가서 저 뒷자리에 앉았겠죠. 관찰자의 입장으로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점점 미사에 압도되기 시작했다고 그는 기록합니다.
더욱이 성체 성혈의 축성의 순간 온 다리에 힘이 빠지고 나는 그때 완전히 무너졌다.’

그는 개종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카톨릭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 중에 있고요.
현재도 열심히 미사에 대해서 가톨릭 전례에 대해서 논문을 내고 있는 현직 교수예요.

 

스콧 한, 영원토록 당신 사랑 노래하리라라는 책을 썼고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거기에서 미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성사의 놀라운 신비를 그는 직접 체험하고 기록한 정말로 피를 찍어 쓴 책 입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여러분들도 읽어볼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면서 주님의 몸과 피가 나를 살리는 영약이 되고 신약이 된다는 것, 아스피린이 내 약이 아니라 주님의 몸과 피를 모심으로 인해서 나는 변화되고 새로워지며 내 안에서 뭔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경험하고 체험하는 우리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의사 선생님이 밀가루 음식 조심하라고 했다고 성체 안모시지 말고, , 오늘 고백 성사 안 보셔서 성체 못 영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오늘은 다 영하세요. 가까운 시일 내에 성사 보시면 돼요.
오늘은 모든 신자들이 주님의 몸을 꼭 모시고 그 주님의 성체 안에서 내가 어떤 기쁨을 느끼는지 한번 체험해 보시기를 부탁드리고 말씀드립니다.

 

아멘.

 

** 주임신부님의 강론 말씀과 다소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 있습니다. 양지하시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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