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4. 연중 제 11주일 오전미사
♣ 최상훈 티모테오 주임신부님 강론 말씀 ♣
네. 교우님들 제가 이번 주 피정을 다녀왔거든요. 미사가 없었는데 제가 보고 싶어서 눈이 짓무르신 분이 계신가요? 그런거 전혀 없으세요? 없으니까 살만 해요?
오늘 교우님들에게 양해의 말씀을 먼저 드려야 될 것 같아요.
오늘은 복음 말씀으로 강론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은 제가 이것을 교우님들에게 꼭 전달해 주고 싶은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얼마 전입니다. 5월 25일 우리 레오 14세 교황님이 교황이 되시고 첫 번째 회칙을 발표하셨습니다.
그 회칙의 이름은 마니피카 후마니따스(Magnifica humanitas)! 라틴어이고 우리 말로 하면은 「고귀한 인간다움」이라는 뜻입니다.
내용은 이겁니다.
주제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고귀한 인간성을 지켜낼 수 있겠는가’에 대한 겁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적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톨릭 신자라면은 교황님의 이 회칙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조금이라도 알고는 가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고요. 제가 그것을 열심히 짜깁기를 했고요. 쉬운 말로 풀었습니다.
여러분 아주 짧게 간단하게 할 테니까 조금 지루하시더라도 교황님께서 이번에 발표하신 마니피카 후마니따스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지금 들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먼저, 교황 회칙이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인지를 하셔야 합니다.
교황이 전 세계 교회 가톨릭 신자들에게 아니 때로는 전 인류를 향해서 발표하는 가장 중요한 공식 발표입니다.
그러니까 가톨릭 신자라면 이 교황님의 회칙에 대해서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된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갖다가 ‘두루 돌려 읽는 편지’ 라고 말할 수 있고요.
그래서 이것을 ‘회람 서한’이라고 부릅니다. 세계의 모든 가톨릭 교회에는 이것이 배달 되었고요. 선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교회의 응답은 무엇인가 우리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회칙은요 대체적으로 이런 내용들이 들어갑니다.
먼저 신앙과 교리
두 번째는 윤리와 사회 문제
세 번째는 시대에 대한 교회의 응답
시대가 어떤 움직임이 있을 때 그거에 대한 교회의 응답과 그리고 현대 세계의 위기와 혼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내용들이 주로 회칙에 담겨져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레오 14세 교황님이 교황이 되시고 첫 번째 회칙이 「인공 지능」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어르신들 나는 인공지능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어 라고 생각하시더라도 그래도 교회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여러분들이 좀 귀담아 들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살펴봅시다.
첫 번째, 인공지능은 교황님이 말씀하십니다. ‘인공지능은 도구이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가 첫 번째입니다.
AI는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계산하고 분석하고 예측하고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 수 있지만 인간처럼 양심을 지니고 아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으며 책임을 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 양심, 영혼, 사랑, 책임을 인공지능이 대신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계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을 더 인간답게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라는 것이 교황님의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로 가볼까요?
AI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AI는 처음부터 누군가의 생각과 누군가의 가치관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어 그래서 그런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거기에 입력시킨 값으로 AI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가, 두 번째 무엇을 무시할 건가, 누구를 위험한 사람으로 분류할 것인가, 누구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 라는 것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AI를 만든 사람 누군가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설계 됩니다.
교황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단순합니다.
이 AI는 어떤 인간관계를 가지고 만들어졌는가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편리하게 쓰는 이 인공지능은 도대체 어떤 인간관을 가지고 만들어졌는가?
이 메시지는 기술의 성능만 묻지 말고 이 기술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기술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생각을 경계하라.
인간의 약함과 한계를 기술로 완전히 넘어설 수 있다는 사상 이것을 현대말로 하면은 ‘포스트 휴머니즘’이 됩니다. 인간을 넘어서는 겁니다.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꿈이 있거든요. 인류에게는 더 오래 살고 더 건강하게 살길 더 빠르게 생각하고 더 많은 종목을 처리하는 인간, 듣기만 해도 매력적입니다. 정말로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교황님은 묻습니다.
그렇게 능력이 커진 인간은 정말 더 사랑하는 인간이 되었나 라고 묻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능력이 커진 우리 인간은 더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라고 묻고 있는 겁니다.
인간의 한계는 무조건 제거해야 하는 나쁜 것인가?
내가 가진 이 한계, 죽음에 부처진 존재라는 나의 인간의 한계가 정말 나쁜 겁니까? 라고 묻고 있는 겁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서로 돌보아줍니다.
죽음을 알기에 인간은 겸손해집니다.
상처를 알기에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엽니다.
기술이 인간을 강하게 하지만 더 인간답게 만드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라는 교황님의 메시지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입니다.
제일 무서운 건데 전쟁, 감시, 통제에 쓰이는 AI는 인간은 위협한다는 겁니다.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기계적 판단에 맡기는 일, 그리고 대규모 감시로 인간을 통제하는 일입니다.
제가 단언컨데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5년 안에 우리는 AI가 나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모든 걸 통제를 할 겁니다.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기계의 판단에 맡기는 일, 이번 전쟁에도 사용됐지만 로봇이 전쟁터에 들어가게 되고, 그리고 그 상황, 이 사람의 처지, 이 사람의 어려움을 고민하지 않고 그대로 쏴버리는 AI의 만행을 우리는 지켜봤지 않습니까?
교황이 이렇게 말합니다. 평화 없는 기술은 발전이 아니라 위험이 됩니다.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기술은 인류의 미래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여러분의 일자리는 다 없어져 버릴 겁니다.
왜냐하면 기계가 더 정확히 더 모든 일을 해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부속품에 불과하겠죠.
이 회칙의 깊은 결론은 사랑의 문명입니다. 이는 감상적 표현이 아닙니다.
기술을 인간 존엄에 봉사하는 윤리,
공동선을 함께 세우는 동반자 사회
이것이 사랑의 문명이며 이것을 잊지 말라는 교황님의 촉구이십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정리한 것은 다 말씀을 드렸고요.
이제 교황님이 내신 메세지를 조금은 축약해서 정리해 봅시다.
AI 시대의 가장 큰 질문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가 아니라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입니다.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존엄과 양심과 사랑을 중심에 두지 않으면 그 발전은 참된 진보가 아닙니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한국 사회는 이렇게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우리의 마음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우리는 외롭습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 우리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 입니다.
이렇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아픈 인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우리의 한국 사회는 자살, 고독사, 세대 차이, 정치 허무, 지역 격차, 노인 인권, 청년 불안, 저출산 이 모든 문제는 한 가지 측면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경쟁자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인가? 라고 묻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경쟁했고 그렇게 경쟁해서 이 자리에 올라왔는데 나는 왜 이렇게 외로운지...
정리하면
교회는 기술의 진보를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AI는 더 발전돼야 되고 진보하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 겁니다.
그러나, 그러나 기술의 속도보다 인간의 깊이를 회복하는 선에서 우리가 기술을 바라봐야 한다는 내용이죠.
제가 이 강론을 준비하다가 깜짝 놀랐어요.
우연히 휴대폰을 들었는데 휴대폰 뉴스에 이게 뜬 거예요. 우리나라에 실제 있는 사건입니다.
어떤 사람이 변호사를 구하지 않고 자기가 변론을 해야 되는데 10분 만에 그 변론을 뽑아서 법정에 가서 그 변론을 읽었더니 승소했다고 해요. 10분 만에...
변호사한테 가서 돈 주고 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예요.
여기 의사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데 앞으로 의사 선생님들 큰일 났습니다. AI가 답을 다 말해 줄거에요.
우리 천주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어느 주교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떤 젊은 사제는 매일 강론을 챗 GPT가 불러주는 대로 적어서 그것을 읽는다.
앞으로 20년 후 저 같은 인간 사제는 필요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휴먼 로봇이 나와서 사제의 역할을 더 멋있는 말로 더 끝내주는 강론을 주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저 내치실 거예요?
로봇이 와서 미사를 드릴 때 저 내치실 겁니까? 아니오 라고 말씀을 주신 분 감사드립니다.
그 주교님이 이렇게 얘기했어요.
우리는 마지막 보루다. 인간의 영혼과 사랑과 양심에 관한 마지막 보루다.
어떻게 살까 챗 GPT에게 물어볼 수 있느냐? 그리고 그 감동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느냐?
주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라. 그들의 땀 냄새를 맡아라. 그들과 동고동락하라.
그들의 눈빛을 바라보라. 인간에게 다가가라.
그래서 강론에서 그 강론의 잉크는 네 피를 찍는 핏빛이어야 합니다 라고 어느 주교님이 말씀하셨어요.
교회가 AI 시대를 비난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교황님의 이 회칙이 만들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힘주어 말씀드립니다.
교회는 인간의 영혼, 인간의 양심, 공동체를 기도로 돌보고 살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교회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립니다.
AI는 죽음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아이와 인생을 대화합니다. 죽음을 모르는 그 기계와 통교합니다.
제가 어제 어린이 미사 끝나고 아이들하고 놀고 있는데 무슨 이야기가 나왔어요.
처음아는 3학년 짜리 아이가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야, 그거 제미 나이에게 물어봐 라고 말하더라고요.
엄마, 아빠, 스승, 선생님이 필요 없는 세상
제미 나이와 챗 GPT가 답을 말해주는 세상
다 중요하지만 인간 그 자체, 우리는 위대한 인간성을 담보하고 있는가 라는 교황님의 질문이십니다.
이것이 이번 회칙입니다.
마니피카 후마니따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적어도 이 교황님의 회칙에 대해서 인지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삶의 가치와 삶의 태도를 분명히 하고 살아야 되겠다 라는 뜻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AI 기술의 관점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인간성이 파괴되는 기술은 하늘이 거부합니다.
아멘.
** 주임신부님의 강론 내용과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양지하시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