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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강론말씀

2026.06.20 토 오전 미사 최상훈 티모테오 주임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이순자 유스티나|작성시간26.06.20|조회수34 목록 댓글 0

 

2026.06.20 토 오전 미사

 

최상훈 티모테오 주임신부님 강론 말씀

미사 강론 전에 오늘 레지오 교육받으러 열여덟 분이 청주로 가셨는데 그런데 미사에 들어와 봤더니 묵주 기도하는 사람이 두 사람, 세 사람 있어요 묵주기도 하는 사람이.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교황님이 오셔서 WYD 세계 청년 대회를 하는데 이게 그냥 외적인 준비만 해서 될 문제인가?

정말 우리는 이 엄청난 행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오늘 아침에 들었어요. 여러분 관심 있으세요? WYD?


그냥 행사를 준비하면 끝나는 일인가? 라는 생각이 오늘 문득 들었습니다.
우리가 묵주기도 한 것을 이렇게 묵주알을 봉헌하여서 우리 본당에 오는 그 청년들에게 묵주를 만들어서 선물로 드릴 거예요.
그런데 나는 묵주 몇 개를 만들어서 드릴까요?
한 번도 한 알도 나는 봉헌한 게 없어 하나도. 콩알 하나라도 봉헌한 게 없어...

 

도대체 왜 신앙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지 이런 과정들을 겪고 있는지 우리가 한번 생각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신기하죠. 크게 이상 없는 사람만 혼나는 거야.

미사 안 오는 사람은 전혀 관심이 없어요. 미사 안 오시는 분들은 관심도 없겠죠.

오늘 강론도 도대체 너희들 세상에 살면서 무엇이 중요하냐? 라고 묻고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뭐가 중요하냐, 무엇이 중하냐 라고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신앙인이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가장 어려운 문제 같아요.

오늘 복음은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신앙인은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

신앙인은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 마태복음 624절입니다.

신앙인은 섬기는 사람인데 아무나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신 한 분만을 섬긴다.
이게 첫 번째예요. 하느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이고 하느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거예요.


그래서 내 존재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할 수 있어요.
나는 누구를 섬기는가를 보면 되는 거예요. 나는 이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 나는 누구를 섬기는가를 한번 여러분 스스로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러면 나는 신앙인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금방 알 수 있어요.
나는 누구를 섬기는가, 무엇을 섬기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시는 거예요. 이게 첫 번째예요.

 

두 번째는 오늘 복음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신앙인은 걱정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거예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전적으로 의탁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 이것이 오늘 복음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의 세 번째 이야기는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다.
마태복음 633절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것을 내 인생의 본질로 삼는 거예요.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길을 내 인생의 길로 삼는 거죠.
그래서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어요.
나는 누구를 무엇을 섬기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 의탁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의탁하고 있어요?
삼성생명보험?, 메리츠 보험에 의탁하고 있어요?

나는 누구에게 의탁하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근심과 걱정에 휘말리고 있는가?

어 이상해 나는 다리가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왜 내 인생이 그렇게 걱정과 근심에 휘말리며 살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겁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근심 걱정에 이렇게 내 마음은 산란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내 가슴이 왜 이렇게 뻥 뚫린 것처럼 산란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저도 마찬가지 이지만 우리 인간은 항상 중간 지점을 선택합니다. 적당히 타협을 합니다. 이것을 회색 지대라고 얘기하는데 검은 것도 아니고요.

검은 걸로 가려니까 지옥가는 게 두려워, 흰 쪽으로 가려니까 내 인생 살아가면서 손해 보는 것 같아 그러니까 적당히 양다리를 걸쳐 중간지점에서 회색지대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다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내 욕망을 붙들고 사는 거예요. 욕망을 붙든 만큼 나는 근심과 걱정에 휘말리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여러분 내가 붙들고 있는 그것 때문에 나는 근심 걱정...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대문호 톨스토이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합니다.

그분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 소설 속에 엄청난 그리스도 체험이 드러나고 있거든요.
그거는 다 말씀드릴 수 없겠지만 그 사람의 단편 중에 이거 한번 보세요.
제목이 이거예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제목입니다.
여러분, 몇 평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3천 평? 3천 평이 있으면 인생 좀 살 것 같아요?

나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라는 단편 소설입니다.
이 주인공은 농부, 바흠입니다. 바흠이라는 사람이 항상 생각했어요.

나는 땅만 넉넉하다면은 악마도 두렵지 않다라고 하면서 계속 이런 말을 짓거렸어요.
그 얘기를 들은 그 지역의 영주가 바흠을 불렀어요.
내가 너에게 땅을 주겠다. 광야로 불러내어 네가 갖고 싶은 대로 가져라.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다. 해 질 때까지 돌아와라.

해 질 때까지 돌아오면 네가 걸어서 돌아온 그 땅을 다 너에게 주겠다고 얘기했어요.
바흠은 기뻐서 가슴이 뛰었어요.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뛰기 시작했어요. 해 지기 전에 돌아와야 되니까.
그런데 깨닫게 됐어요. 너무 멀리 갔어. 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너무 멀리 갔어.

돌아와야 되는데 죽을 힘을 다해서 미친 듯이 뛰었어요. 그리고 자기가 출발한 곳으로 딱 와서 넘어진 다음에 피를 토하고 죽어요. 피를 토하면서 죽어요.

결국 바흠이 가진 땅은 자기가 묻힌 땅 딱 두평이에요.
바흠이 가진 것은 자기 시신이 묻힌 딱 두 평이 전부였어요.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애쓰며 살고 있는지.

그런데 이 똑같은 이야기는 탈출기에 그대로 등장하거든요.
탈출기에는요, 광야로 들어가는데 백성들이 온갖 불평불만 배고프다고 난리가 난 거예요.
야훼 하느님이 그들에게 먹거리를 내려줘요. 그것은 만나였어요.
만나가 하늘에서 떨어지면 그것으로 배불리 먹고 그리고 또 행진하고 그리고 그 다음 날 또 만나를 먹고 행진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모세는 하나의 원칙, 율법을 정했어요.
그 율법은 뭐냐 하면 만나를 내일까지 남겨두지 말라는 거예요.
그 만나를 내일까지 남겨두지 마라. 탈출기 1619절이에요. 여러분 적어보세요.
꼭 기억하셔야돼요. 그 만나를 내일까지 남겨두지 마라.
이게 하느님의 법이에요.

 

그런데 사람이라 생각이 떠오르는 거예요.
혹시 내일 만나가 내리지 않는다면 혹시 나 굶어 뒤지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겠죠.
그래서 일부는 그 만나를 더 많이 가져다가 숨깁니다.
그 결과 그 다음 날 그 꼬불친 만나에서 구더기가 끓고 악취가 진동해요. 이게 탈출기에요.

탈출기 16장 말씀이에요.

그렇게 얻으려고 했던 그렇게 가지려고 했던 것. 그것이 구더기가 끓게 되고 악취가 진동합니다.

오늘 복음은

신앙인이란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

걱정하지 않는 삶을 산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는다.


그러니 내일 걱정은 내일 하라.

우리에게 다 먹이고 입히시거늘.
왜 그렇게 걱정과 근심에 휘둘리고 있느냐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은 조금 날카로운 말이라 말씀을 드릴까 말까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데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심을 품고 성체를 영하지 말자.

구더기가 끓어 세상 온갖 걱정 다 끌어안고 성체를 영하지 말자

 

내일은 내일에게 맡기는 거. 내일은 내일에 맡겨요.

그분은 오늘도 우리를 먹이십니다.
좀 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 주임신부님의 강론 말씀과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 있습니다. 양지하시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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