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다. 언제나처럼 여기저기서 어린이 미술대회가 열리고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서툴게 그려나간 가족그림, 풍경그림, 꿈의 그림들은 보는 이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걸리게 한다. 어른처럼 능숙하게 그린 그림보다는 삐뚤빼뚤 서툴게 그린 그림일수록 더욱 더.1)
하지만 그 서툰 그림이 성인 화가의 그림이라면? 대부분의 우리는 더 이상 미소 짓지 않을 것이다. 서툴고 소박한 솜씨는 어른의 그림에 대한, 그것도 화가의 작품에 대한 기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성인 화가의 그림에서라면, 우리는 완성도 높은 거장의 손길, 명작의 느낌을 훨씬 선호한다.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열광하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라파엘로의 <도나벨라타>에 탄식하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그들 작품의 그 특별한 완성도와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말이기에, ‘미술’은 줄곧 탁월한 완성도를 전제해왔다. 미술은 눈에 보이는 세상,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머릿속 세계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재현해보고자 하는 인간 기술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머리카락 한 올도 놓치지 않으려는 르네상스 천재 화가들의 노력이 괜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다빈치를, 루벤스를, 다비드를, 그리고 피카소를 낳았다.
그런데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이미 거장 급의 그리기에 도달했던 피카소는 완벽한 테크닉의 소유자, 그러므로 아름다움의 소유자였음에도 일찌감치 그 완벽한 테크닉을 버렸다. <게르니카> 2)에는 초현실주의가 주요하게 영향을 미쳤지만, 이 작품은 일반적인 초현실주의 그림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어린 아이의 낙서 같은 느낌. 어떤 연유일까?
두 번의 큰 전쟁은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합리주의에 대한 회의를 불러왔다. 전쟁은 광기의 소산일 듯하나, 실은 합리적 정신이 국수적 이익에 도구적으로 복무하여 낳은 괴물 같은 자식이라는 것이다. 도구적 합리주의는 문명과 경제의 비약적 발전의 견인차로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들어왔지만, 바로 그 풍요와 편리함으로 인간을 수동적으로 길들여, 반성적인 사유와 삶의 태도를 앗아갔다는 각성이 일었다.
맹목적으로 변질되어 버린 도구적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이 미술에서는 기존의 그리기 규칙에 대한 반발과 파괴로 나타났다. 다다(Dada)가 가장 유명하지만, 개중에는 아이들의 그림, 그리고 정신병자들의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얻고자 했던 장 드뷔페(Jean Dubuffet) 같은 화가도 있었다. 그의 그림은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기존의 미술에 대한 반발인 동시에, 순응적 시민을 양산해낸 타율적 계몽의 결과로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열망과 희구였다. 그 자유를 정신병자들이나 어린아이들의 그림에서 발견하고, 그 자유를 자신도 그림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어린아이, 그리고 정신병자의 공통점이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어찌 되었건 계몽에 길들여지지 않은, 그리하여 자유로운 인간, 낭만주의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꿈꿔온 인간 유형이다. 하지만 정신병자에게서 인간성의 꿈을 찾는 것이 아이러니라 할 때, 마지막 보루로 남는 것은 어린아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프랑스의 철학자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역시 도구적 합리주의로 중무장한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에게 발생한 비인간화, 즉 효율성에 태엽이 맞춰진 자동인형처럼 기계적으로 생각하고 효율성을 좇아 행동하며 살아가는 비인간화를 해결할 지향점으로 어린아이를 꼽았다. 물론 정말로 어린아이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리오타르에게 어린아이란, 다 자라도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움, 호기심이라는 이름의 의심 등을 대변하는 상징이다.
하여, 어린아이처럼 그린다는 것은 기존의 그리기 방식에 길들여진 눈과 손을 거두고, 마음이 시키고 눈이 보여주는 인상대로 자유롭게 그린다는 것을 뜻한다. <게르니카>는 피카소의 눈에 비친 전쟁의 광기가 마음에 남긴 인상대로, 그 거칠고 격한 느낌대로 거침없이 자유롭게 그려낸 작품인 것이다.
1) <천색찬란 희망의 벽>은 2012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을 맞이하여 진행된 프로젝트이다. ’나의 꿈’을 주제로 하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어린이들과 세계 여러 나라의 어린이의 그림을 수집한 후 자원봉사자들이 벽화의 제작을 도와 강익중 작가의 배경 그림 위에 모아진 그림들을 설치하였다. 2) <게르니카>, 파블로 피카소, 1937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미학과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우리의 삶에서 미술이 무엇이었고, 무엇이며, 또 무엇이면 좋을지에 대해 미술현장과 이론을 오가며 고민하고 있으며, 고민의 결과를 글과 강의로 풀어내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동시대 미술에 관심이 많으며, 최근에는 국내의 젊은 작가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