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불문, 장애와 비장애 구분 없는 사람간의 소통, 기교보다는 동질감 형성에 더 큰 목적을 두는 소셜 서커스. 흔히 서커스라 하면 마술, 곡예, 외발자전거, 동물 묘기, 피에로가 연상되는데요, 소셜 서커스도 그러할까요? 올해 9월, 서울과 대전에서 해외전문가 초청워크숍 ‘아동, 청소년 및 소외계층 대상 핀란드 소셜 서커스 교육 프로그램 운영사례 공유’를 위해 내한한 핀란드 피푸 문화센터의 전문가들로부터 소셜 서커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초청강사 : 필비 쿠이투(Pilvi Kuitu) -피푸 문화센터 전무이사
야르모 스콘(Jarmo Skon) -소셜 서커스 연극감독 겸 예술강사
Q.핀란드 피푸 문화센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필비: 피푸 문화센터는 2005년에 설립되어 민간 및 공공분야의 다양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아동, 청소년, 성인, 노인을 위한 문화교육 프로그램과 장애아동을 위한 특별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핀란드에서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위한 지역 예술센터 네트워크 ‘알라딘의 램프’가 2003년 출범했는데요. 피푸 문화센터 역시 ‘알라딘의 램프’ 일환으로 자체적인 문화활동 프로그램 외에 학교에 제공되는 문화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합니다.
Q.서커스 하면 공중곡예, 화려한 마술, 외발자전거, 동물 묘기, 줄타기 묘기, 피에로 등이 떠오르는데요, 소셜 서커스도 이와 같은가요?
야르모: 기교, 곡예가 소셜 서커스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중은 작습니다. 한 5% 정도 될까요? 남은 95%는 참여(participation)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소셜 서커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과 팀워크를 향상시키는 데 있습니다. 소도구를 활용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도 뛰어넘어 보고, 도전의식을 가져보고, 동질감과 평등함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소셜 서커스는 학습, 사회적 성장에 어려움이 있는 소외계층 아동과 청소년에게 매우 적합한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수 십년간 유럽에서 다양한 사회적, 교육적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인터뷰 중인 필비 쿠이투(Pilvi Kuitu)(가운데)와 야르모 스콘(Jarmo Skon)(오른쪽)
Q.한국인들에게 ‘소셜 서커스’라는 용어 자체가 낯선데, 유럽에서는 이미 몇 십년 전부터 교육적으로 활용되어 왔었네요.
야르모: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청년들의 문제행동 예방과 같은 여러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서커스 교육을 도입했습니다. 소셜 서커스는 남녀노소, 장애여부를 불문하고 사람간의 소통과 참여, 동질감 형성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장애가 있건 없건, 그 장애가 신체적이건 정신적이건, 우리는 모두가 약점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평등하죠. 내가 아직 나이가 어리든, 휠체어를 필요로 하든, 시각장애가 있든, 노화로 몸이 불편하든 의지만 있다면 모두가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셜 서커스는 많은 영역에서 참가자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Q.이번 30차 워크숍에서는 진흥원 소속 예술강사 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의 선생님들이 참여해 주셨는데요, 첫 만남의 서먹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던 도구를 활용한 게임이 인상 깊었습니다.
야르모: 워크숍에 참가해 주신 선생님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모든 과정에서 모두가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에요. 링, 볼, 스카프, 저글링볼, 디아블로, 플라워스틱, 포이 등의 도구를 활용해서 두 개의 막대를 플라워스틱으로 던지고 받고, 파트너에게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서 파트너십을 키우고 협력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줄과 디아블로를 사용해 신체적 균형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도 있고요. 스카프는 저글링볼에 비해 훨씬 가볍고 늦게 떨어지기 때문에 저글링을 처음 시도하는 분들에게 좋은 도구입니다. 이러한 도구를 활용한 활동은 학생, 노인, 장애인 등 참가자의 특성에 따라 다각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Q.서커스의 꽃이라 하면 어릿광대(Clown), 그리고 빨간 코가 떠오릅니다. 특히 빨간 코가 어릿광대의 영혼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야르모: 광대는 계획 없이, 짜여진 규칙 없이 관중과 대면합니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짝을 지어 파트너의 손을 따라가는 활동이 있어요. 짝을 지어 하나는 광대가 되어 코를 착용하고, 코를 파트너의 손과 밀착시켜 그 손을 따라가는 거죠. 또한 광대 대화(Clown Speaking)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전문용어로 크롬로(Kromlo)라고 하는데요. 특이한 목소리 톤과 함께 무의미한 말들(nonsense language)을 남발하기도 하고, 날씨, 어제 일, 내일 계획 등 다양한 주제를 크롬로를 이용해 대화해 보기도 합니다. 광대 합창(Clown Choir)에서는 모든 참가자가 코를 착용하고 지휘자의 손 높낮이에 따라 moo 라는 음을 내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등 파트도 나누죠. 스타카토 등 모든 기교가 가능해요. 이도 일종의 공연으로서 연합의 느낌을 주죠.
Q.이번 워크숍에서는 실수(mistake)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거론되었어요.
야르모: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죠. 그래서 사람이기도 하구요. 우리는 모두가 약함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평등하고, 거기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실수는 다른 사람과 뭔가 즐길 수 있는 수단이죠. 특히 앞서 말씀드린 광대에게 실수는 트램펄린과도 같아요. 고의적인 것이 아닌 우연찮게 나온 실수들은 사람들을 웃게 하죠.
필비: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면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렵죠. 인간 피라미드 등 도전적인 활동을 함으로 인해 성취감과 만족감, 기쁨이 더 클 수가 있습니다. 소셜 서커스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그러한 여지를 줄 수 있는, 어찌 보면 실수와 도전을 생활화하는 정답이 없는 장르입니다.
Q.이번 워크숍 마지막 날에 참가자들이 펼친 공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야르모: 이틀간 배운 소셜 서커스를 십분 활용하여 공연을 기획하고 만들어냈다는 사실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서울과 대전 참가자들의 공연이 각기 달랐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각기 모양새는 달라도,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는 점, 그 가운데서 협동심과 서로에 대한 배려를 느끼고 알아갔다는 사실만큼은 동일할 겁니다. 완벽함을 추구하고 멋진 기교를 부리는 것보다는 ‘함께 만드는’ 성공인거죠. 모두가 참여하고 서로의 단점과 약점을 알고 감싸주는 공연입니다. 모두가 함께 작은 변화를 경험했을 때 큰 변화가 일어나죠.
Q.전반적으로 소셜 서커스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필비: 소셜 서커스는 다른 참가자들과의 역할 분담이 필수적이며, 신체적, 정신적 훈련이 함께 진행됩니다. 이를 통해 사회성, 공동체의식, 신뢰감과 자존감, 자신감, 배려심이 향상됩니다. 한편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상호관계능력, 참여성, 감상능력을 개발하는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저는 테라피스트는 아닙니다. 단지 서커스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신뢰를 쌓는 법을 알게 되었죠. 심리적 치유나 힐링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긍정적 효과일 뿐입니다. 소셜 서커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함께 만드는 성공’입니다.
인터뷰 / 정리 : 국제교류팀 송미령, 이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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