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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예술(Interdisciplinary Arts)

작성자드림톡톡|작성시간13.12.22|조회수23 목록 댓글 1
[김복기@칼럼]왜, ‘다원예술’인가?  Column 

2013/04/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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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예술(Interdisciplinary Arts)’이라는 용어가 문화예술계에 등장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다원예술이란 이름이 눈과 귀에 익숙해졌다. 나는 근자에 다원예술 관련 기사를 다루면서 이 용어의 개념이나 정체성을 새삼 정리해 보고 싶었다.

 

다원예술이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 공식적으로 통용된 것은 2005년. 그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민간 자율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했을 때의 일이다. 위원회가 문화예술 지원 분야(시각예술 문학 영화 음악 연극 등)에 다원예술 부문을 신설한 것이다. 나는 그 속사정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예술 개념이 확장되는 오늘날, 기존의 예술 장르로 분류하기 애매한 복합장르는 늘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그 지원 관리 시스템을 보완하는 일이 필요했을 터이다. 그것은 시대 변화를 적극 수용하는 정책 전환이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문화예술위원회는 다원예술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장르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다양한 예술적 가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 창작 활동으로서 탈장르예술, 복잡장르예술, 비주류예술, 문화다원적 예술, 독립예술 등을 포괄한다. 이렇듯 한국에서 다원예술은 정책 용어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영어 사전에서는 Interdisciplinary Arts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퍼포먼스, 인스톨레이션, 멀티미디어 아트, 게릴라 아트, 퍼블릭아트, 해프닝, 그리고 아직 일반인에게 생소한 용어인 creative disturbances, sonic liberations, urban sound theatre, intervention art 등 새로운 분야를 통합하는 혁신적인 예술 형식을 포괄한다. 한편 콜롬비아 칼리지 시카고의 대학원에 개설된 다원예술학과에서는 순수미술과 미디어아트에 더하여 다양하고 실험적인 예술 형식을 연구한다. 구체적으로 아티스트북, 설치, 제스처 및 율동, 사운드아트, 인터랙티브 미디어, 비디오, 퍼포먼스, 페이퍼메이킹(papermaking), 레터프레스(letterpress), 에칭과 옵셋 인쇄, 전자제어 작업, 온라인 아트워크, 연기, 드라마 형식, DIY/DIT 협업 전략, 관계적 예술 형식 등을 통합적으로 다룬다. 다원예술은, 쉽게 말하면, 미술과 연극 음악 무용 영화 등의 장르가 서로 융합해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는 예술 경향을 일컫는다.

 

그렇다고 장르간의 단순한 결합은 아니고, 특정한 원리나 체계를 가진 독립된 장르도 아니다. 다원예술은 예술 변화의 변동을 포괄하는 개념일 뿐,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않으려는 유동적 상대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 속성은 예술 장르의 경계 해체, 장르 간의 새로운 소통, 표현 양식의 다양화로 요약할 수 있다. 혹자는 다원예술을 ‘탈장르의 문예운동’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형식상으로는 융합 통섭 혼성 교차 교접 등 장르의 상호성을 존중한다. ‘장르 간(間) 장르’ 또는 ‘간 장르’(inter genre), 즉 장르와 장르 사이에 놓인 새로운 형식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안은 미술과 다원예술과의 관계다. 이 둘은 서로 많은 DNA를 공유하고 있다. 영상 같은 미디어아트는 물론이고 퍼포먼스 실험극 현대무용 등 이른바 ‘무대 위의 예술’을 주목할 수 있다. 특히 공연예술이 근자에 미술관이나 비엔날레로 진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거꾸로 전시장에서 뛰쳐나가 무대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들도 많다. 작년 5월호 특집 〈ART on STAGE〉에서는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블랙박스’에서 공연을 펼치는 국내외 시각예술가들을 대대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이번 〈PERFORMANCE into MUSEUM〉에서는 공연예술가가 미술관으로 진입하고 있는 최신 동향을 소개했다.

 

그러나 아직도 다원예술이란 분야가 생소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원예술 중에는 기성문화에 도전하는 대안문화, 비주류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하나 문제는 다원예술을 잡지 같은 인쇄매체가 소개할 때의 한계다. 2차원, 문자 매체로는 다원예술의 역동적인 힘과 정신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4월호 〈Sound Art〉 특집과 함께 특별부록으로 ‘소리왕’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CD)을 제작하고, 참여 사운드 작가들의 공연을 열었던 것이다.

 

우리가 다원예술을 다루는 입장은 명확하다. 오늘의 전통은 어제의 전위였으며, 오늘의 전위는 내일의 전통이라는 사실. 무엇보다 미술(예술)에 대한 열린 시각을 견지하자는 것이다. 조지 디키(George Dicky) 같은 미학자의 주장대로, 예술이란 ‘열린 개념’이다. 예술(작품)은 창작자-중계자-감상자를 아우르는 예술계(art world)라는 제도의 산물이다. 과연 이것이 미술인가 미술이 아닌가, 미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문제제기와 논쟁과 해답은 결국 우리 미술계의 몫이다.  

 

@김복기, 아트인컬처, 201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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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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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파란하늘 | 작성시간 13.12.24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앞으로 우리가 더 멋지게 펼 칠 미술을 말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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