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1998년 월드컵과 2000년 유로를 제패한 프랑스는 유럽 최초로 3개 메이저 대회를 연속 우승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세계 랭킹 1위였다.
이전 월드컵 당시 약점으로 지적되던 최전방 공격수 문제도 해결된 상태였다. 앙리, 시세, 트레제게 등 프리미어리그, 리그앙, 세리에A 득점왕이 모두 있었다.
프랑스는 개막전에서 세네갈과 맞붙게 되었는데, 세네갈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고 월드컵 첫 출전이었으며, 당시 참가국 중 두 번째로 낮은 42위였다. 그래서 경기는 형식적인 승리가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피파 랭킹은 이번에도 다소 오해를 낳았다. 세네갈은 떠오르는 강팀이었다. 그들은 200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8강에 진출했고, 결승 진출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85분까지 앞서고 있었다.
결국,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를 만들었다. 파파 부바 디오프의 전반 골로 1대0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승리는 세네갈을 8강으로 이끌었고, 프랑스는 조기 탈락의 길로 향하게 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에서 다시 맞붙게 된 현재, 데샹은 복수심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이미 은퇴한 상태였고 레블뢰의 일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복수’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만, 축구에는 복수란 없다. 그 일은 24년 전의 일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페이지를 써야 한다. 2002년 일은 세네갈에 축하할 일이었고, 그들에게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좋은 결과를 만들도록 하겠다.”
한편, 데샹의 오랜 코치인 기 스테판은 당시 르메르 체제의 일원이었고, 당시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자신의 9번의 메이저 대회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꼽았다.
“프랑스는 안일할 때 절대 좋은 팀이 아니다. 도전이 필요하다. 다른 팀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때 무너진다. 우리가 지금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002년 프랑스의 문제는 자만심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문제는 피로 누적이었다. 필립 오클레르의 저서 ‘Against All Odds: The Greatest World Cup Upsets’에 따르면, 비에이라는 시즌 61경기를 소화했고, 다른 동료들도 그에 못지않은 경기를 뛰었다. 단순히 지친 수준이 아니라, 조르카에프의 표현을 빌리면 “완전히 타버린 상태”였다.
한편, 세네갈 역시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엘 하지 디우프는 대구에서 칼릴루 파디가에게 상점에서 물건을 훔쳐보라고 부추겼고, 파디가는 CCTV에 적발되었다. 세네갈 대사가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나섰지만, 이미 사건은 널리 알려진 뒤였다.
숙소 문제도 있었다. 최근 레퀴프에 기고한 에르베 페노의 글에 따르면, 살리프 디아오의 침대는 너무 작아 발이 밖으로 튀어나왔고, 오마르 다프는 호텔을 “마치 휴양지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세네갈 선수들은 한밤중에 로비에 모여, 더 좋은 호텔에 머물고 있던 협회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세네갈 승리의 두 영웅은 이제 세상을 떠났다. 감독이었던 브루노 메추는 2002년 월드컵보다 더 큰 영광을 커리어에서 이루지 못한 채, 2013년 암으로 사망했다. 그는 이슬람식 장례로 세네갈에 묻혔다. 선수들은 그날 그의 지도력을 극찬한다.
디우프는 오클레르의 책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브루노는 라커룸에 들어와 습관처럼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오늘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했고, 나는 너희를 잘 안다. 너희는 정말 미친 녀석들이다. 오늘 경기가 끝나면 전 세계 사람들이 너희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일어나서 너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줘라.’라고 했다. 정말 대단한 순간이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세네갈 감독을 맡은 파페 티아우 역시 당시 선수단의 일원이었다. “브루노는 제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는 나의 멘토였다. 내 안에는 분명 그의 일부가 있다.”
결승골의 주인공 파파 부바 디오프는 이후 풀럼, 포츠머스, 웨스트 햄에서 활약했지만, 오랜 투병 끝에 2020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형 시디 피오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날을 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렇다. 나는 우리 집안에서 누군가가 그 골을 넣었다는 사실을 증손자, 다음 세대까지도 이야기해 줄 것이다. 부바가 슬라이딩하는 순간 골이 될 걸 알았다. 환호도 못 하고, 소리도 못 지르고, 그저 울기만 했다.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 경기는 우리나라를 영원히 바꿔 놓았다. 축구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이제는 축구를 사랑하게 됐다. 모든 사람의 걱정이 그날만큼은 사라졌고, 적대 관계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도 평화가 찾아왔으며, 가족들을 하나로 모이게 했다.”
시디 피오트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파파 부바가 형제 중 가장 재능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다른 형제인 라민 사네가 스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부바가 성공했을까?
“부바는 우리 모두보다 축구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축구에 모든 것을 바쳤고, 공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는 축구를 사랑했고, 그 대가로 축구는 가장 기쁘고 놀라운 날의 영웅으로서 그를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