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복음주의는 어떻게 지성을 잃어버렸는가
9. 복음주의는 무엇이 좋은가 _제1차 대각성운동
역사적으로 복음주의는 교회 내부의 갱신운동으로 시작되어 독자적인 지적전통은 개발하지 않았다. 이들은 오직 죄와 속죄 같은 가르침에 집중하여 객관적 진리를 주관적으로 체험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우수한 세력이 되었지만 특정한 신학적 약점이 드러났고, 신학의 역할을 경시하였다.(예-덴젤의 이야기 p.467)
채워질 수 없었던 덴젤의 지적욕구 미국 복음주의는 덴젤과 같은 사람을 환영하고 쉽게 세례도 주었지만 신학적 가르침과 변증에 대한 지적양식을 해결해줄 수 없었다. 이것은 이층적 진리관에 묵종하게 된 까닭이다.
과거로 돌아가서 역사적으로 복음주의에는 두 가지 진영이 있다. 첫째는 대중적 진영이고 둘째는 합리주의와 학문적 성향의 진영이다. 우리는 대중적 진영에 집중하여 복음주의가 기독교세계관에 방해되는 요소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정체성 확인 ‘복음주의’란 용어는 보통 부흥회 설교와 개인적 회심(“중생”)을 강조하는 제1․2차 대각성운동에서 비롯된 것을 지칭한다. 이것은 교회 내부의 갱신운동으로 기존 신자에게 복음의 진리를 주관적으로 체험하여 활기를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고백교회의 정체성은 극히 미미해졌다.
승자는 누구? 복음주의의의 영향으로 좋은 소식은 식민지 이래 기독교인의 증가이다. 그러나 성장의 모습이 모두 같지 않음을 염두 해야 한다. 제1․2차 대각성운동에 참여한 교단의 신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렇지 않는 교단들의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상처 입은 자들을 도와줄 때 독립전쟁 이전의 법적 제도에 의존한 교회들은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신앙의 독점으로 종교적 무관심을 낳고 신학적 자유주의로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은 교리와 강한 영적 체험, 하나님과의 직접적 접근의식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구원을 찾아 교회에 가는 것이다.
서부 변경의 종교 거칠고 위험한 서부 개척지에서 교회가 직면한 문제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신앙을 전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해답은 감리교인과 침례교인들이 했던 활동으로, 강렬한 감정이 수반된 한 번의 회심의 체험이 제1․2차 대각성운동의 전도 집회였다.
폭풍을 뚫고 다니는 사람들 서부 개척지에서 사역하려면 안락한 생활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 성직자는 이런 것을 거부했지만 감리교와 침례교의 전도자들은 기꺼이 희생하였고 종교를 “대중화”하는데 열심을 내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평범한 진리”를 전하고 싶었다. 이러한 부흥사들의 열정의 결과로 미국은 가장 종교적인 나라로 유지된 것이다.
변경지방의 복음화 대중적 복음주의의 나쁜 소식은 대체로 반지성적이 된 것이다. 그들은 강렬한 회심의 체험에 집중하여 믿음의 인지적 요소를 일체 무시하였고 쉽고 대중화된 언어와 멜로디는 신학교육을 영적인 죽음과 동일시하였다. 또한 개개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철저한 개인주의적 견해를 낳아 지적 유산을 배격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부흥운동은 교사의 모습이 아닌 유명인사라는 새로운 리더십모델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