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동안 교회 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 분쟁을 바라보았습니다. 교회 분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면서 교회 분쟁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분들, 교회를 다니고는 있지만 상처를 깊게 받으신 분들을 보게 됩니다. 이 분들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교회 분쟁이 서로 인격적인 모독과 물리력이 동원되지 않고 사회법적인 분쟁 없이 해결되면 제일 이상적이겠지만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분쟁의 후유증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의 분쟁은 부패한 곳을 드러내어 여론화시켜 백기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그렇지만 세상은 결코 그렇게 선하지 않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쫓긴 쥐가 뒤돌아 무는 것과 같이 백기 항복을 받으려 하면 반드시 대항세력을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패한 곳에서 대항세력을 만들면 결코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없습니다. 오직 투쟁과 비방, 물리력이 동원될 뿐입니다. 문제는 양편을 다 아우르고 선악을 명확하게 분별하여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와 사도들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곳이 없다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회 개혁세력이 교회 분쟁의 중심에 뛰어들어서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에게 도래할 수 밖에 없었던 교회 부패상을 깨닫게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교회개혁의 전사로 영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으나 이것으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방법론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교회 개혁도 성경적인 교회를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파괴하는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측면에서 매번 교회 분쟁에 개입했을 때 그 개입이 정당했는지, 방법이 최선이었는지,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등을 피드백해서 반성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노력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교회 개혁에 대한 당위성은 있을 지라도 방법론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이런 방법론의 차이에 대해 물고 뜯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지혜로운 모습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성숙된 모습이 없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단순히 싸움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토론이라는 것은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 말에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분리하여 부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논의가 되어야 함에도 긍정적인 측면은 무시하고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하여 인신공격하는 것으로 토론을 망치는 예를 많이 봅니다. 개혁인들이 이런 토론의 기본을 무시하므로 개혁의 기본 취지마져도 오해를 받는 것을 봅니다.
상대방이 설득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대꾸를 하지 않는게 낫습니다. 인신공격을 한들 그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부감만 더 키우고 떠날 것입니다. 이들이 떠나가면 마치 승리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들은 개혁인들을 안티로 선전하며 돌아다닙니다. 승리라는 것은 그들이 개혁의 진정성을 지지할 때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개혁인들이 본의아니게 교회 분쟁이 발생하여 서로의 감정이 가장 격해있을 때 이를 통제하고 적절히 조절하면 좋은데 오히려 분쟁에 기름을 부어 감정을 악화시키는 일이 있습니다. 그 결과 분쟁이 짚불처럼 급하게 진행되기는 하지만 후유증과 해결은 숯불처럼 길게가는 것을 봅니다.
이제는 이런 방법에 대해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목동제자교회의 목동제자들도 길거리에서 매주 예배를 드리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만 교회법에서 돌이켜보지 않으니 세상법을 통해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을 봅니다. 그 기간 충돌들이 일부 있기는 했지만 감정싸움은 주적에게만 집중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교인들에 대한 감정적인 대립은 자제하는 것을 봅니다.
얼마 전 공동의회로 불미스런 충돌이 있었지만 이것도 교회법을 무시한 절차적 하자가 있는 결의였으므로 지혜롭게 대처할 것으로 보입니다. 목동제자들의 이러한 노력이 "재정장부 열람과 등사"의 권을 사회법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이것이 관례에 의해 목사 마음대로 교회 재정을 사용한 한국교회의 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분쟁에 개입할 때 헌금, 직분, 기관의 권리와 의무, 임직기간 등에 관한 조항이 명시된 모범 정관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교회 개혁을 약속받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전에 이런 언급을 하였다가 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토론해 볼 의제이지 공격의 대상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교회가 결코 성경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풍토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완전히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로 돌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최소한 사회보다 부패한 모습이라도 청소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깨어있는 사람들이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를 주변에서 이루어가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건전한 교회들이 계속 늘어가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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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여름바다 작성시간 11.08.17 몇달 기독교 개혁을 원하는 카페들을 둘러 본 소감;
1.기독교 종교로 되어 버린 개신교,참된 교회라고 할 수 없는 점
2.기독교 종교로 된 개신교를 개혁해도 참된 교회로 되기가 어려운 점
3.그래도 성경을 가지고 있는 종교라는 혼동이 있다.
4.기독교 종교를 개혁해서 참된교회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의문.
5.초대교회로부터 참된교회는 계속해서 감추어지고 핍박 당해 온 역사.
6.세상과 타협한 기독교 종교는 타협하지 않는 교회를 심하게 적대시하고 핍박했는데
7.이런 두 부류가 과연 적당히 합할 수 있을까?
8.전혀 가는 두 길이 다르다. 좁은 길과,넓은 길로 다르다.생명과 멸망이다.
9.불행히도 넓은 길 사람들은 멸망 뿐일 것 같다. -
작성자여름바다 작성시간 11.08.17 그래도 죄악과 싸우는 기독교내 개혁의 싸움은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분야에서 불법과 죄악과 마귀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일이다.
그러나,성경적 교회는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
그 참된 교회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하기를 권하고 싶다.